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4)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부름받았지만 왜 그토록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렘1:4~10)_2023-02-10(금)

https://youtu.be/Hv0OBh7dPbg [또는 https://tv.naver.com/v/33097024]

 

1. 예레미야는 선지자로 언제 선택되었으며 언제 부르심을 받았는가?

  예레미야는 그가 모태에 빚어지기 전에 그리고 그가 태로부터 나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히 구별하셨으며, 그의 나이 약 20세 전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아이라 말할 줄 알지 못하나이다"고 말했다. 이때 '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아르'라는 말로서, 소년에서 청년에 이르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빠르면 14세 정도에 그리고 좀 늦게는 20~25세 정도에 부름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보통 신학자들은 그가 18~20세 정도에 부름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부름받았을 때는 남유다 16대 왕 요시아 13년으로서 B.C.627년이었다(렘1:2). 

 

2.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후 선택을 받지 않는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어떻게 쓰실 것인지를 정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수준에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 땅에 보내실 때에도 아무 집안 아무 여인의 태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를 어느 집안 가문의 어느 여인의 태에 보낼 것인지도 하나님이 정하신 후에 보내신다. 또한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만큼 크게 쓰실 것인지에 대하여 예정하시어 그릇의 크기도 정해서 보내신다. 또한 그가 어떤 사역을 감당하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사역할 것인지 즉 사역의 기간도 정하신 채 보내시는 것이다. 예레미야도 역시 그랬다. 하나님은 그를 제사장 가문의 사람으로 보냈으며(렘1:1), 그를 남유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선지자로 보내셨다(렘1:5,10). 그리고 그에게는 예언 중에서도 심판을 주로 선포하되 회복까지 외치는 예언자로 보내셨으며, 사역의 기간도 적어도 40년 정도 길게 쓰임받는 선지자로 보내셨다(렘1:2~3). 

 

3. 그를 열방의 큰 선지자로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어떻게 응답했는가?

  예레미야는 겸손했다. 그리고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할 때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자신은 아이와 같은 자로서 말을 잘할 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실제로 나이가 어렸다. 한 20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 보지 않았기에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격려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누구에게 보내든지 그리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그냥 그대로 말하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먼저는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어 말하게끔 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요(렘1:9), 또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와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이며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그를 구출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1:7~8). 이 말씀은 결국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활동하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결코 어려움에 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를 건져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4. 예레미야의 선포 사역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레미야는 다른 선지자에 비해 사람들로부터 결코 부러움의 대상이 되거나 존경받는 대상이 되는 선지자가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의 선포 사역은 심판 예언 사역이 주를 이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내가 오늘 너를 이방 민족들과 여러 왕국들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렘1:10)" 그렇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심판과 회복을 2대1의 분량으로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것' 4가지이고, '건설하고 심게하는 것' 2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40년 동안 엄청난 분량의 심판 예언을 쏟아내야 했다. 그러므로 그의 선지자 사역은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이 이미 암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5. 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임받았지만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사실 40년간의 그의 사역 가운데 요시아왕이 살아 있었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첫째로 왕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에 제18대 여호야김왕은 예레미야가 보낸 두루마리가 읽혀지게 될 때는 그것을 찢어서 화로불에 던져고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였다. 또한 20대 시드기야왕은 자꾸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우유부단하여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대신 관료들에게 물어서 일을 결정하곤 했는데, 어느 때에는 대신 관료들의 말을 듣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 뜰에 있는 구덩이에 처넣기도 했기 때문이다(렘38:6). 둘째,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항상 예레미야의 의견과 반대되는 말을 했으며, 예레미야를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짓선지자 하냐냐는 바벨론에 끌려간 포로와 성전기구들이 2년 안에 돌아올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꺾으셨기 때문이라고 예언했다(렘28:1~4,10~11). 하지만 그것은 거짓 예언이었다.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꿈을 꾸었다느니 혹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느니 하면서 예루살렘은 평안할 것이며, 재앙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렘23:25~27). 하지만 그것 역시 거짓 예언이었다. 그리고 제사장인 임메의 아들 바스훌은 예레미야가 불길한 예언을 한다면서 그를 때리고 목에 나무 고랑을 채우는 행각도 서슴치 않았다(렘20:1~2). 그리고 셋째로, 자기 고향 아나돗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도 예레미야의 심판 예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예레미야를 죽여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렘11:19~21, 26:8).

  그런데 당시 왕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뭇 백성들은 왜 한결같이 예레미야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인가? 그것은 첫째로, 예레미야가 한사코 불길한 심판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은 파괴될 것이고 성전이 훼파되어 버려질 것이라고 예언하고, 바벨론에게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거짓을 예언하지 않고 참된 것을 예언한 것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통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참된 선지자는 백성이 좋아하는 말을 만들어 예언할 것이 아니라, 설령 그것을 백성들이 싫어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것이다. 둘째, 많지는 않아도 그의 조상들 중에 반역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역의 영이 내려온 상태에 있었기에, 예레미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그중에서 통일왕국 제3대 왕이었던 솔로몬 때에, 예레미야의 직계 조상이었던 아비아달 제사장이 반역의 무리에 가담했다가 파면을 당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왕상2:26~27). 이때 아비아달 제사장은 사울왕이 없애버리려 했던 이다말 가문의 제사장의 하나였다. 그러다가 아비아달은 사울왕으로부터 간신히 피해 다윗왕에게로 가서 다윗왕 시대에 다윗과 함께 했던 대제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다윗이 죽자 아도니야의 반역에 아비아달은 요압 장군과 더불어 합류하게 됨에 따라 아비아달 제사장 역시 반역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솔로몬은 아비아달이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에게 한 일을 기억하면서 그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를 파면시키고 그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보내 버렸다. 그러자 결국 폐위당한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자신의 고향인 아나돗으로 가서 거주하게 되는데, 그의 후손으로 예레미야가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많지는 않지만 약간의 거역의 영, 반역의 영이 그의 집안에 내려온 채 있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레미야는 더 심각하게 배척을 받게 된 것이다. 

 

 

2023년 02월 1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5) 사역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축복은 무엇인가?(행15:22~35)_2022-11-09(수)

https://youtu.be/PBhhFaElyC8  [혹은 https://youtu.be/PBhhFaElyC8 ]

 

1. 주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일하는 사역자들은 무엇이 제일 필요한 것일까? 우선은 사역자로서의 부르심과 자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이 없는 사역자는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지 못하며 힘들 때에는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돕는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사람이기에 먹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잠자기 위한 물질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2. 사도 바울의 삶에 있어서 어떤 만남의 축복이 있었는가?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축복 가운데 하나는 만남의 축복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축복의 향배도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최대의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만난 동역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로부터 악한 영을 뽑아주고 성령의 은사를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은 다메섹에 있는 형제 아나니아가 해 주었다. 둘째로, 그가 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친교의 교제를 나누려 할 때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을 믿어 주어서 사도들과 야고보에게 친교의 악수를 나누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셋째로, 홀로 선교여행을 떠나야 했던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실루아노)가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3.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인 실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번째의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실라'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행15:22).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를 안디옥교회에 가서 전해 줄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의 구원의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총회가 열렸다.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으로는 안 되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의 구원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유대인들을 위해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야고보의 의견이 그대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총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교회에 전달해 줄 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편지와 더불어 유다와 실라가 선택되었는데, 이 둘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예언을 할 수 있는 선지자로서(행15:32),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를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써 준 편지를 들고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것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로 되돌아갔다. 

 

4.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3대 축복이자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바울에게는 놀랍게도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바울을 도와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렇게 되어지도록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보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의 종은 자신의 부르심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다 부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역과 사명에 합당한 은사가 부어진다. 그중에서도 복음을 전달할 사역자들에게는 설교의 은사, 환상의 은사, 치유의 은사, 귀신쫓는 은사 등은 꼭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과 함께 사역을 감당할 신실한 동역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일은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대부분 팀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떤 동역자가 있었는가? 감사하게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그에게는 복음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꼭 있었다. 그러한 사람으로는 먼저는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고, 청년 디모데와 의사 누가도 있었다. 셋째, 자신의 복음전파 사역에 필요한 물질을 후원하는 선교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려면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러한 선교 후원자가 꼭 있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대표적인 후원자였다. 이들은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 후원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울의 든든한 선교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은 그 험난한 선교여행을 잘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항상 통하는 법칙은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도의 영성은 주의 종의 영성을 능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교회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 대한 충분한 기도이다. 주의 종들에게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시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신실한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가 주의 종과 함께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동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동역이 어찌 말씀 사역과 물질 후원 뿐이겠는가? 왜냐하면 기도의 동역이야말로 그 어떤 동역보다도 가장 필요한 동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양질의 양식을 받아서 누리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며, 주의 종들은 성도들의 기도와 더불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0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54) 주님의 사역자라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다르다(행13:1~3)_2022-10-11(수) https://youtu.be/46CLbGZom0c [혹은 https://tv.naver.com/v/30214254 ]

 

1. 안디옥 교회에는 어떤 직분자들이 있었는가?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에는 어떤 직분을 가진 자들이 있었는가?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안디옥 교회에서는 여러 종류의 직분자들이 있었다. 우선 안디옥 교회에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이라는 직분자들이 있었으며(행13:1), 복음전하는 자 곧 '선교사'가 있었고 그리고 또한 '사도'가 있었다. 먼저, 선지자들과 교사들로서는 '바나바'와 니게로라고 칭해지는 '시므온' 그리고 구레네 사람 '루기오' 그리고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엘'과 '사울'이 있었다.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 곧 선교사로서는 '바나바'가 있었고, 사도로서는 '사울'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훗날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4가지 직분을 주셨는데, 그것은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인 '교사'가 있다고 했던 것이다(엡4:11).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하나님께서 교회에서 세운 직분자로서 '사도', '선지자', 교사'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고전12:28).

 

2. 안디옥 교회에서는 누가 선지자이며 누가 교사였는가?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안디옥 교회에 있는 5명의 지도자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그 교회의 '선지자들'이며 '교사들'이라고 말했다. 이들 5명은 '바나바, 시므온, 루기오, 마나엔, 사울'이다. 그렇다면 이들 중에 누가 선지자들이며, 교사들인가? 그런데 누가는 특별히 직분을 구별하여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이 교회에서 2종류의 직분자들이 있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조금 구별이 될 만한 단서가 있기는 하다. 그것은 '테(te)'라는 접속사다. 이 접속사는 '그리고', '또한'이라는 뜻인데, 보통 둘 다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런데, 이들의 이름 목록 가운데 '테'라는 접속사가 2번 나온다. 먼저는 바나바와 시므온 이름 사이에 들어 있고, 마나엘과 사울 사이에도 역시 들어 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13:1의 말씀을 원문에서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안디옥 안에 교회가 있는 것을 따라서,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어왔다. 바나바와 니게르라고 불리고 있는 시므온 둘 다가, 구레네 사람 루기오가, 1/4통치자 헤롯과 함께 양육받은 마나엔과 사울 둘 다가 [있어왔다]". 그러므로 선지자들로서 바나바와 시므온이 있었고, 교사로서는 마나엘과 사울이 있었다고 구분할 수가 있다. 중간에 들어있는 루기오는 아마도 선지자 쪽에 속한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누가는 이 직분을 딱 잘라 구별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사도행전에 나오는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바나바는 선지자에 해당하는 것 같고, 바울은 교사에 해당하는 것 같다. 

 

3. 주를 섬겨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는 어떤 식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구별하라고 했을까?

  그런데 어느날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그들을 이미 부른 채 있는 바, 그 일 안으로(그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나에게 [단번에] 구별하라.” 그렇다면 이때 성령께서는 어떤 식으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에게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교회 안에 선지자들이 있었으므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선지자들 중에 한 명이 성령의 음성을 전달한 것 같다. 왜냐하면 교회의 직분자로서 선지자의 직책을 가졌다고 한다면 최소한 그는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므온이나 루기오 중에 어떤 한 명의 선지자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예언을 하지 않았나 싶다. 

 

4. 교회에 주어진 다양한 은사와 직분은 무슨 의미일까?

  교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와 직분은 교회의 필요를 따라서 하나님께서 안배하시는 일이다. 모든 직분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님께서 이미 천국에서 이 땅에 영혼을 보내실 때에 결정하여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이 땅에서 창조된 것도 아닐 뿐더러, 이미 어떤 사명을 가진 채 이 땅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사실 천국의 낙원에서 창조되어 성장하고 있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어진 자들 중에는 좀 더 영의 나이가 성숙한 상태에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갖게 되는 교회의 직분은 자신의 사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것을 잘 감당했을 때에는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 안디옥 교회에도 다양한 교회의 직분이 있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선교사), 교사가 이 직분들이다. 이러한 직분자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 평신도는 어떤 일을 맡은 자들인가? 그것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 금식하고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고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행13:2~3). 그렇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를 보니, 어떤 것을 맡았든지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자들에게는 큰 칭찬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어떤 직분을 맡았든지 맡은 자가 진정 구해야 할 것은 역시 '충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바나바와 바울은 어떤 직분의 사람들이었는가?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평신도 중에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였다. 그리고 그는 인간관계를 잘 맺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일곱 집사들이 떠난 후 사도들은 안디옥에 교회가 개척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곧장 바나바를 그곳에 파송하였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에 부임한 바나바는 말씀을 가르치고 전해줄 전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길리기아의 다소 성에 머무르고 있던 사울을 교회로 데려왔다. 그리고 함께 목회했다. 그래서 큰 무리를 양육할 수가 있었다(행11:26). 그중에서 가르치는 일은 교사의 직분을 가지고 있었던 사울 담당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지시를 내리시었다(행13:2).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이 안수를 받고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안디옥 교회에서는 바나바가 일종의 담임목사였고 사울이 협동목사 격이었는데, 선교지에 갔을 때에는 그것이 역전되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복음전파와 가르침과 치유의 은사는 사울이 더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울은 처음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지만 바나바는 '선지자'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여행에서 주된 역할을 한 사람은 역시 사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2차전도여행을 떠나려 할 즈음에는 사울이 주된 선교사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둘은 각각 사명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땅의 주의 몸된 교회의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사용하신다. 우리는 다만 주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순종할 뿐이다. 하지만 충성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충성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이다. 

 

2022년 10월 11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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