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3)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인가?(행1:1~11)_2022-06-08(수)

https://youtu.be/ce9WRLk_Ags  [혹은 https://tv.naver.com/v/27276286 ]

 

1.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구인지 사도행전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가?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군지는 분명하다. 그는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다. 이것은 성경 외의 증거들이 정확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부정할 수가 없다. 즉 교회의 역사가들의 증언과 초기 교부들의 기록들 그리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 기록만으로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렇다. 그런데 쉽지는 않다. 우선 사도행전 내에서 우리는 그가 바울 선교팀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것도 2차 선교 여행 때에 바울팀에 합류한 사람으로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2차 전도 여행 때에 처음으로 자신을 '우리'라는 말로 표현했기 때문이다(행16:10). 그럼, 2차 전도 여행 때에 바울과 함께 했던 자들은 누구인가? 출발은 바울과 실라가 함께 하였다(행15:40). 그리고 루스드라에서 디모데가 합류하였다(행16:1~5). 그리고 저자는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다"고 말한다(행16:10). 그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구인가? 바울? 실라? 디모데? 그런데 이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라고 말하던 이는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를 '우리'에서 제외시킬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행16:17, 17:14, 17:16). 그렇다면 2차 전도 여행 때에 합류하여 계속해서 3차와 로마 여행까지 함께 했던 바울의 선교 동역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바울 서신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는 한 사람으로 귀결된다. 그는 바울이 A.D.67~68년경 순교할 때까지 함께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사랑받는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이다(골4:14, 몬1:24, 딤후4:11). 

 

2. 사도행전은 누구를 위하여 쓴 것인가?

   사도행전은 누구를 위해 썼는지를 처음부터 밝힌다. 그는 '데오빌로'이다. '데오빌로'가 누군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에게 누가가 복음서를 써서 드렸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써서 드린 것이다(눅1:1~4, 행1:1~2). 그에게 누가가 '각하'라는 존칭어를 사용했을 뿐더러 그가 이미 알고 있는 바가 있는데, 그로 하여금 더 확실하게 알게 하기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쓴 것이다(눅1:4). 아마도 데오빌로는 로마의 고위직이었지만 초신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데오빌로'라는 말은 '데오스'(하나님)와 '필레오'(사랑하다)가 합쳐진 단어이며, 그 뜻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기에, 그가 비록 로마의 관리였지만 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 애칭으로 그렇게 불렸을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승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클레멘스'였다는 기록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의사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려 주기 위하여 또 하나의 복음서를 썼으며, 사도행전을 써서 사도들의 행적으로 정확하게 알려 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려면 '누가복음'을 읽어 보는 것이 좋으며, 사도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알려면 '사도행전'을 읽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3.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행하신 마지막 유언이자 명령은 대체 무엇인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유언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예루살렘에서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리라는 것으로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었다(행1:4~5). 그리고 둘째는 성령을 받은 후에는 능력을 받으라는 것이었다(행1:8). 왜냐하면 그래야 사도들도 복음의 전파자요 주님의 증언자들이 되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아버지의 약속'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오늘 본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으니,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행1:5). 그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 성령에 관하여 약속하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세례인 것을 뜻한다. 그럼, 구약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성령 세례에 관하여 어떤 약속을 하셨는가? 그것은 총 2가지였다. 

  첫째, 주님께서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여 자신을 정결하게 되면, 같은 종류의 질적으로 새로운 여호와의 영을 그들의 영 속에 집어넣어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겔36:26~27). 그리하여 그후부터는 누구든지 성령받은 자는 곧바로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서 걸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B.C.586년경의 약속으로서, 성령의 내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책망하고 회개케 하는 일을 하신다. 

  둘째, 주님께서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는 그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그들의 육신 위에 여호와의 영을 쏟아 부어주실 것인데, 그 대상을 제한하지 않고 부어주실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게 될 것이라고 했다(욜2:28~32). 그러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B.C.800년경의 약속으로서, 성령의 외적인 부어주심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믿는 이들 머리 위에 쏟아부어지는 성령께서는 다양한 은사들을 주신다는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문제는 지금 우리들에게 있다. 초기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먼저 믿고 회개하여서 성령 세례를 받았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구하여서 능력을 받았는데, 지금 우리들은 과연 이와 같이 성령을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능력'을 받는다는 것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리킨다(눅9:1~2). 고로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고 이어서 임하는 성령을 받아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복음의 증인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성적인 머리(혼적인 생각)만으로 복음을 전해 왔고,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사람들을 속여온 것이다.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아서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에 비로소 우리도 구원을 얻게 되고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데도, 성령, 능력, 귀신, 영적인 세력 등은 뒷전에 두고 오직 예수만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죽어서는 천국가며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같은 제사장으로 참여한다고 가르쳐 왔던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도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죽은 후에 성령은 떠나가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며, 그런 자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 자라도 계급이 똑같지 않아서, 그중에 어떤 이는 왕 노릇하는 자가 있지만, 반대로 천국에서 섬기며 사는 성도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사실인지 알려면 영안이 열려서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오직 혼적인 가르침으로 복음을 전했으니 이것들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 한다. 나도 성령의 세례를 받고 그러고 나서는 기도하여 능력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하며, 악한 영들을 제압하는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22년 06월 08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2) 사도행전, 누가 왜 썼는가?(행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G9RWr5MRo  [혹은 https://tv.naver.com/v/27209983 ]

 

1. 사도행전의 저자에 대한 외적인 증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여기서 '사도들'이라 함은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지칭하는 것이요, 13~28장까지는 '바울'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전반부(1~12장)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으며, 후반부(13~28장)은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쓴 것인가 아니면 바울이 쓴 것인가? 그런데 둘 다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그리고 사도행전까지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저술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찬찬히 읽어보면, 요한복음도 누가 썼는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들어있고, 사도행전도 역시 누가 썼는지 그 힌트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은 성경 외의 기록이나 자료들 가운데 익히 누가 썼다고 하는 것이 있을까? 있다. 그것은 교회사적인 증거와 고고학적인 증거들인데, 먼저, 교회사적인 증거를 보면, 초기 교부들이 공히 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 교부들이었던 이레네우스(A.D.130~202)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215) 그리고 터툴리안(A.D.155~240)도 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다고 전해주고 있으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특히 한 세대가 지난 후 기독교인들의 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A.D.260~340)도 다음과 같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였던 누가가 썼다고 전해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성경 외적인 증거를 보면,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가 쓴 것이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3권 제4장 '사도들의 초대후계자'에서 유세비우스는 "누가는 안디옥 태생의 의사로서, 바울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나머지 사도들과도 잘 알고 지냈다.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서 얻은 영적인 치유 기술의 개요를 두 권의 영감된 책으로 남겨주었는데, 그중 한 권이 '누가복음'이다. 그는 이 복음서에서 자신은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가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기록하였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갔다고 증언하였다. 또 한 권의 저서는 '사도행전'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가 들은 것이 아니라 그가 친히 목격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2.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군지를 알려주는 내적인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군지 알려주는 내적인 증거는 없는가? 있다. 성경 안에 증거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도행전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과 바울서신의 기록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요약하면 첫째,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행전이 자신의 두 번째 기록인 것을 밝혀놓고 있다는 사실이다(행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행1:1-2)" 그렇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데오빌로'라는 각하(고위관리)에게 먼저 써서 드린 글이 있다고 사도행전을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글은 바로 '누가복음'을 가리킨다. 누가복음의 서두가 이렇게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눅1:1-4)" 그렇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수신자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는 먼저 누가복음을 써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냈으며, 그리고 이어서 사도행전도 써서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가 꼭 '누가'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둘째로, 그 증거는 사도행전과 바울의 편지들 속에 나온다. 그것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도록 하자. 

 

 

3. 사도행전의 저자였던 누가에 대한 고고학적인 증거와 기록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럼, 사도행전의 저자였던 '누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소아시아의 에베소의 입구에 가 보면, '누가의 묘'라는 것이 있다. 그럼, 어떻게 되어서 누가의 묘가 에베소 입구에 있게 된 것일까? 우선 역사적인 기록들을 보면, A.D.60~62년 어간에 누가는 로마의 바울 곁에 머물면서 누가복음을 기록하였으며, 이어 A.D.63년경에는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약간의 시간적인 오차는 있을 수 있다). 그리고 A.D.67년이나 혹은 68년경에 바울이 네로 황제의 의해 목이 잘려 순교한다. 그러자 그후에 누가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의 순교이후 누가(Loukas)는 데살로니가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 도시의 우상숭배자들에 의해 순교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때 그의 시체를 에베소에 있는 사도 요한이 가져다가 에베소 도시 앞에 매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이 누가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석같은 것안데, 거기에 보면, '십자가' 표시와 더불어 '황소'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무덤의 주인이 누가라는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4.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헬, 루카스)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위에서 잠깐 살펴보았지만, 교회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는 누가를 '안디옥 출신의 의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분명히 의사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도 역시 골로새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를 "사랑받는 의사 누가"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골4:14). 그리고 초기교부였던 이레네우스(A.D.130~202)도 누가를 '바울의 동역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레네우스는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바울이 전파한 복음을 기록하였다"(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제5권 제8장)고 말했던 것이다. 고로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도 누가가 의사였으며, 바울의 동역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안디옥 출신이라는 것은 성경 외의 기록에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교회역사가였던 유세비우스가 그를 안디옥 출신의 의사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터키 성지순례를 가서 보면, 가이드들이 에베소에 있는 누가의 묘 앞에서 누가에서 대해 소개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성지순례의 가이드에 따르면, 누가는 원래 로마의 판사였던 '푸리스쿠스'가 부리는 종의 자식이었다고 한다. 누가의 아버지 '엔자'와 어머니 '이리스' 모두가 푸리스쿠스의 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엔자의 헌신적인 죽음을 보고는 '푸리스쿠스'가 엔자와 이리스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자유인이 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누가는 프리스쿠스의 아들인 '디오도로스 시리누스'의 딸 '루블리아'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루불리아'가 그만 말라리아 열병으로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빼앗아간 원수와 싸우기 위해 누가가 의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결국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안디옥에서 바울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바울의 선교를 도왔다고 한다. 만약 이러한 진술이 바른 것이라면, 우리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읽을 때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여자들과 소외되고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 취급받지 못하던 베들레헴의 목자들의 아기 예수 경배(눅2:8~20), 유대인들로부터 개 취급받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15~37),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세리의 기도(눅18:9~14), 가버나움까지 따라 와서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의 이름들(눅8:2~3) 등은 누가복음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기사들이기 때문이다. 

 

5. 사도행전의 저술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누가는 누가복음 외에 이어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인가? 그것은 누가복음의 기록목적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의사 누가는 누가복음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동행하여 따라다닌 채 있는)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교육받았던)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알도록 하기) 함이로라(눅1:3-4)" 그렇다. 누가복음은 시작부터 예수님의 목격자가 되었고 말씀의 사역자가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것을 그대로 저술하려고 붓을 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정확히 기록하여서 데오빌로에게 전해주려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이다. 그중에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고, 사도행전은 두 사도였던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것도 전혀 불순물이나 거짓말 등이 전혀 들어가지 않게 하여서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누가는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을 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그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복음사역자들과 복음을 알기를 원하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성령의 역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고자 두 권의 책을 신중하고 그리고 철저하게 고증을 거쳐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은 곧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자를 만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복음서이자, 베드로와 바울의 신실한 복음전파 행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2022년 06월 0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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