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1) 세상 권력자들의 바람과 사도 바울의 바람(행24:24~25:12)_2023-01-27(금)

https://youtu.be/leZrm9kkKZk [또는 https://tv.naver.com/v/32764046]

 

1. 가이사랴에 있던 로마 총독 벨릭스는 자신이 구류하고 있는 바울에게 어떤 것을 바랐었는가?

  유대인들의 대표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고발되었던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서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유대인들과의 관계 때문에 벨릭스는 무죄한 바울이었지만 그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지 않고 다만 선고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를 구류하여 둔다. 하지만 정작 바울은 죄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총독은 그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주면서 타인의 방문까지도 허락한다(행24:22~23). 수일 후에 벨릭스는 자신의 유대인 아내였던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불러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관하여 듣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총독에게 들려준 것은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자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는 바울로부터 돈(뇌물)을 받을까 하여 계속해서 더 그를 불러내어 그의 말을 들으려 하였다. 그것도 무려 2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렇다. 세상 권력자들의 바람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첫째로, 평화와 안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권력자들은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정치적인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돈(뇌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로마 총독 벨릭스도 다른 세상 권력자들이 밟았던 그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2. 벨릭스의 뒤를 이어 부임한 베스도 총독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벨릭스가 바울을 구류하여 둔 지 약 2년이 지난 A.D.60년경 벨릭스는 로마로부터 소환 명령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보직 해임을 당한다. 이는 유대인들의 청원에 따라 로마 총독으로서의 권한을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과의 충돌 문제에 벨릭스가 헬라인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 그만 유대인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로마 황제에게까지 청원이 들어가자, 로마 황제가 그를 소환하여 보직 해임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벨릭스의 뒤를 이어 베스도가 로마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다(재위 A.D.60~62).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전임 총독 벨릭스는 아주 잔인했고 탐욕스러웠으며 불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임 총독 베스도는 훌륭하고 능력있고 공평한 통치자라 불림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베스도도 유대나라를 잘 통치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었다. 

 

3. 베스도가 부임한 후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베스도는 선임 총독이 소환당한 후 보직 해임당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유대인들과 친하게 지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부임한 장소인 가이사랴에서 무려 104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부임 후 3일 만에 방문을 한다. 그런데 사실은 유대 대표자들이 가이사랴에 와서 로마 총독을 알현해야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베스도는 자신의 권위를 부리지 않고 겸손히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대 지도자들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유대 대표자들은 바울을 신임 총독에게 고소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를 청하였다. 이는 매복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스도는 이미 그들의 이러한 속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곧 자신이 가이사랴로 내려갈 터이니 거기 가서 고발하라고 말한다. 결국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계획은 또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가이사랴에 가서 또 바울을 베스도 총독에게 고발한다. 그리고 가이사랴에 도착한 다음 날 베스도는 재판을 열어 바울을 심리한다. 베스도는 전임 총독에 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그의 성실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베스도가 바울에게 제안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어 고발자였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 중에서 고관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는 바울의 여러 가지 죄를 거론하면서 바울을 공박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말하는 죄들 곧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기에, 바울은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하나씩 변호하게 된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베스도는 유대인들이 말했던 것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에게 재판을 받는 것이 어떠한가를 묻는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잘못 행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과 자신이 죽을 죄를 짓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내주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피력하면서 자신은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상소한다고 호소한다(행25:11). 그러자 베스도는 자신과 함께 배석한 위원들과 협의한 후에 바울의 청원을 따라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을 받을 것을 허락한다. 역시 베스도도 전임 총독 벨릭스처럼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 시민으로서 바울의 청원은 합당한 것이었기에 결국 베스도는 바울의 청원을 거절하지 못하고, 바울을 로마에 보내게 된다. 

 

5. 두 명의 총독 앞에 선 복음 전도자 바울의 관심사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바울의 재판을 맡았던 2명의 로마 총독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유난히도 탐욕이 많았던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과 잘 지내기를 원했고 더불어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재판을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 바울이 분명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판 선고를 뒤로 미루면서 그를 무려 2년간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 바울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바울로부터 돈을 받아 볼 속셈으로 자꾸 바울을 불러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부임한 베스도는 벨릭스보다는 조금 더 나았다. 왜냐하면 그는 비교적 원리 원칙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스도도 역시 유대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말을 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가이사에게 재판받을 것을 청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자꾸 불렀을 때에, 바울이 그에게 전한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바울은 이때 여느 사람처럼 자신의 석방을 위해 벨릭스에게 아첨의 말을 하거나, 뇌물을 주었던 것일까? 아니었다. 바울은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사도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인만큼, 그가 누구를 만나든지 혹은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항상 그의 만남의 원칙은 복음 전파였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죄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의 권력이나 쾌락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 맞이하게 될 심판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랬다. 바울은 이처럼 오직 복음 전파 일념 하나로 모든 삶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었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27일(금)

정병진목사

 

2023-01-0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도 바울도 회개했을까?(행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u691s-kig4  [혹은 https://tv.naver.com/v/32238772]

1. 들어가며

  바울도 과연 회개했을까? 우리는 성경에 바울에 관한 기록들을 갖고 있다. 그의 행적은 사도행전(9~28장)과 13권(로마서~빌레몬서)의 그의 서신서들에 들어 있다. 그런데 성경기록만을 보면 과연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 직접적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왕은 살인교사죄와 간음죄 이후에 과연 죄를 회개했을까? 회개했다. 그가 회개한 사실은 시편 51편과 32편과 6편에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회개를 안 한 것인가? 회개를 했는데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회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더듬어보면서 과연 바울이 회개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도 과연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이 진정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입술로 고백한 것만을 가지고 회개를 했다고 판정하기는 사실 어렵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마3:8).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쳤던 선지자들 중의 최고의 선지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기에게 세례받기 위해 나아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어떻게 책망했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7~9)." 그렇다. 그는 자신에게 와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회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에 관하여는 과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그에게서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3. 회개를 실제로 나누면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회개는 보통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서의 회개로 나뉜다. 회심으로서의 회개란 처음 믿을 때에 행하는 회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하나님으로 믿고 섬긴 죄를 회개하고,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거나 모른 채 살아온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은 과거에 지은 자신의 모든 죄에 대해 탕감을 받는다(임시적인 용서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람은 그때 이후로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자백함을 통해 자신의 죄들을 용서 받아야 한다(요일1:9).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과연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는 이 두 방면에서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회개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으니 그가 맺은 회개의 열매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먼저 첫째로, 그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던 것인가? 물론 했다. 그 증거가 있는가?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온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을 때에 주님이 직접 그를 만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러고는 다메섹의 아나니아로부터 자신에 대한 주님의 소명을 들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 이때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때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자 그때부터 며칠 지난 후 그는 곧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증거하기 시작한다(행9:20,22). 이는 그가 확실히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둘째로, 그는 자백함의 회개를 했는가? 그렇다. 이것도 역시 그가 지은 죄들에 대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들을 지었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십계명을 어긴 것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레마(말씀)을 거부하한 것도 역시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으로만 짓는 것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입술로 짓는 것도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우리는 사도행전으 기록과 그가 남긴 서신서들을 중심으로 그가 최소한 3가지의 죄는 지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살인과 폭력의 죄를 지었다(행22:4, 19~20, 26:10~11).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기 직전에 지은 죄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깨닫지 못해 지은 죄였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기에 지은 죄였다. 그 죄는 바로 주님의 충성스러운 평신도였던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스데반을 죽이는데 직접 참여는 하지 않고, 다만 증인들의 겉옷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 집사를 죽였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내가 이 도를 박해아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행22:4)" 그랬다. 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때렸으며(행22:19), 감옥에 가두었으며, 회당에서 처벌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기도 하였다(행26:10~11). 그리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투표를 하였으며,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가담했다(행22:20). 

  둘째, 그는 혈기 분노의 죄를 지었다(행15:39). 그가 혈기 분노의 죄를 지은 것은 그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복귀했다가 다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수행자로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동역자인 바나바와 피차 다투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은 갈라섰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울에게는 혈기 분노의 영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가 다메섹의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을 때에는 살인과 폭력의 영이 떠나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 사울의 눈에서 어떤 뱀 비늘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여전히 혈기와 분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싸웠다. 그러므로 그때 그는 혈기 분노의 영을 더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셋째, 그는 교만의 죄를 지었다. 그는 교만했는지를 그의 속에 들어가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후서의 편지에서 교만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후12:7~9). 

고후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랬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는 좀 달랐다. 비록 육체로 계셨던 주님의 사도는 아니었더라도,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에 대한 거의 모든 계시를 다 받은 자였다(갈1:11~12). 그러므로 그에게는 교만한 마음도 역시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자신의 몸 속에 있는 사탄의 천사 곧 귀신을 제거해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귀신을 자신의 교만함에 대한 표출의 잣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교만했었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베드로를 책망하고 바나바를 책망하면서 더 교만한 마음을 가졌을른지도 모른다(갈2:11~16). 
 

5. 바울은 회개했는가?

  바울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는지는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는가를 통해 그가 회개했는지를 역추적할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회개해서 완전히 죄용서를 받은 것도 있었지만 회개하는 과정에 있는 죄도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살인 폭력의 죄는 확실히 회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살인 폭력에 가담한 것이 분명한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자신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았으면 받았지 남을 핍박하고 고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복음 전하다가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예수믿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채찍질하고 감옥에 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회개의 열매를 통해서 그가 살인 폭력의 죄에 대해 회개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둘째로, 혈기 분노의 죄도 회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2차 전도여행 이후를 보면 그가 혈기 분노를 낼 수 있는 형편에 처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한 번도 혈기 분노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본문처럼 그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는데, 거기어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죄인으로 붙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고소한 죄목에는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가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고 고소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일에 자신이 죄인 취급 받게 되었을 때에 그들을 향해 혈기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다. 왜 거짓으로 나를 모함하고 고소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손으로 때리고 옷을 잡아당기는 일을 했지만 한 번도 반항하거나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이는 그가 혈기 분노의 죄를 회개하여, 혈기 분노의 영을 내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교만의 죄는 그가 회개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교만해서 자기 안에 들어온 사탄의 천사들 곧 악한 영을 내보내 달라고 주님께 간구했지만 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에게 작더라도 교만함의 영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사도권 방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가? 그것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그는 자신이 사도인 것을 알 수 있도록 얼마나 그 사실을 편지에 써서 말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은 이런 자인데 왜 너희들은 그것을 몰라보느냐?"는 그의 교만함의 표출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는 점차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십자가만 자랑한다. 그리고 자신의 학식보다는 예수님을 더 드러낸다. 이는 그가 계속해서 교만한 죄를 회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교만의 죄와 음란의 죄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줄어들고 약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교만의 죄에 부분에 대해서는 일평생 회개를 통해서 자복하고 눈물 흘리며 회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천국에서 24장로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회개하라고 하니 어떤 사람은 회개기도문을 수백 번 읽은 것을 가지고 자신은 회개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바울이 비록 말로 자백함으로 회개했다는 대목이 성경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회개하는 자였고 또한 회개를 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지금 천국에서 갖고 있는 지위를 통해서도 그는 회개한 자였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렇다. 그는 회개하는 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이제 회개할 때에는 자신의 회개한 죄목에서 자신이 진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열매와 결과가 나타나고 있을 때에 진정한 회개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일평생에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를 통해 과거에 지은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리고 범죄의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죄를 안 짓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한 일에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깨끗한 그릇으로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회개에 집중하고 열매맺는 회개를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3년 01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0) 바울의 고별설교(1)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4가지는 무엇이었나?(행20:13~27)_2022-12-29(목)

https://youtu.be/nbgKGxZkYN0  [혹은 https://tv.naver.com/v/32116058 ]

 

1.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밀레도에 도착하여 행한 것은 무엇인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드로아를 지나 밀레도에 도착했을 때 행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청하는 일이었다. 밀레도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서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있다. 바울이 드로아를 떠나 이곳 항구도시에 정박해 있을 때에 에베소의 장로들을 그곳으로 불러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는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약 3년 동안 머물러 있었던 곳으로서,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였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에서 최초로 두란노 서원이라는 선교센타를 운영하여 선교사를 훈련하여 각 지역으로 파송한 바 있다. 

 

2.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무엇을 말했는가?

  바울이 이때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무엇을 말했을까? 우리는 이때 바울이 말했던 것을 한 마디로 바울의 '고별설교'라고 부른다. 그럼, 바울은 이때 무엇을 전했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 거기에서 어떻게 복음 전파를 했는지를 말했고, 장로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을 전했다. 이때 바울은 먼저 자신이 에베소에 들어가서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지와 거기에서 전했던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의 각오와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것은 자신에 관한 언급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권하는 말을 전했다. 그들이 어떻게 교회의 감독자가 되었는지 기억하고 감독자로서 양떼를 위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한 경계와 아울러 기독인들의 바른 삶의 자세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3. 바울이 밀레도에서 행한 고별설교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울은 적어도 3번의 설교를 했다. 첫 번째는 1차 전도여행 중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했던 설교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2차 전도여행 중 아덴에서 행한 설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3차 전도여행 중 밀레도에서 행했던 이번의 설교다. 그런데 이 세 번의 설교는 상당히 구별된다. 왜냐하면 안디옥에서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였고, 아덴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설교였는데, 이번 밀레도에서 전한 설교는 복음 전파를 위한 설교가 아니라 에베소의 장로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목회설교를 한 셈이다. 그러니까 앞의 두 번 설교가 전도설교였다고 한다면, 뒤의 한 번의 설교는 목회자들을 위한 훈련과 권면의 설교였던 것이다. 

 

4. 바울이 이때 전했던 4가지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의 설교 가운데서 가장 무르익은 설교를 하나 고르라면, 우리는 응당 밀레도에서 행한 고별설교를 들 수 있다. 바울은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다 놓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하였는데,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복음과 교회 생활에 대해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그가 회고하면서 전했던 말씀을 보면, 복음의 핵심 4가지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크게 보면, 영육 간에 유익한 것을 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회개'와 '믿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 관한 메시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때 유대인들과 헬라인 둘 다에게 이러한 복음의 핵심을 전했던 것이다.

  첫째, 바울은 그들에게 '회개'에 대해 언급했다(행20:21). 이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가리킨다.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한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라고 권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때 바울이 전한 회개는 구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의 회개를 전한 것이며, 그것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상숭배'에 대한 회개와 '자범죄'에 대한 회개를 전한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도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함으로서 죄용서를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회개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저주 가운데서 해방되는 회개를 전한 것이다. 

  둘째,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에 대해 언급했다(행20:21). 이는'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믿음을 전한 것이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이신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주 하나님 자신이요, 한 분 하나님의 표현이시다. 그렇다면 그분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것은 인류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피를 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는 아담 이후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흠없는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흠없는 제물로서 사람이 되신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피가 없이는 속죄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피 흘리심으로 죽으신 것이다. 

  셋째, 바울은 '나라(왕국)'를 전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예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에 대해 전한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두 종류가 있다. 상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공간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상태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부터 실현되는데,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쫓겨남으로 실현된다. 그리고 장소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장차 들어가게 될 공간적인 천국을 가리킨다. 

  넷째, 바울은 '하나님의 뜻(의도, 계획, 경륜)'을 전했다. 여기서 뜻이라는 단어는 '쎌렘마'(뜻, will) 가 아니라, '불레'라는 단어로서, 이는 뜻과 의지 그리고 의도와 목적, 계획과 경륜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는 바울이 왜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게 되셨는지를 그 근본 의도와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에게 상속시켜 주고자 함이다. 이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되는 만세 전의 계획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거기에서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왕 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것이다. 

 

5. 오늘날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오늘날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는 회개를 잘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이 회개요,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비결도 회개인데도 사람들은 회개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서는 주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으로서,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도 모르며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경륜)에 대해서도 잘 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우주 경륜에 대해서 전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복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바울이 전한 순수하고 위대한 복음이 회복되고 온 세상에 그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2년 12월 29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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