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무엘상강해(41) 사울 왕의 경우처럼 교만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10가지 특징은?(삼상28:15~2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skdXwu_crE [혹은 https://tv.naver.com/v/24416813 ]

 

1. 들어가며

  성경에 등장하는 가장 비운의 인물을 한 사람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사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40세에 통일 이스라엘의 왕국의 초대왕으로 등극하였지만 비참한 생애를 마친 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악한 조짐은 왕이 된지 2년만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국이 튼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시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그의 나이가 62세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의 명령에도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명령을 복종하지 않는 왕을 세운 것을 매우 후회하신다고 하셨다(삼상15:11). 그리고 그를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18년동안이나 더 왕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이다. 이는 그가 혹시 회개하지 않을까 해서다. 하지만 그는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말년이 되자 하나님께서 완전히 그를 떠나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결국 전쟁이 터졌고 그 전쟁의 승패를 알아보려고 신접한 무당을 찾아간 다음날 그는 길보아 전쟁에서 전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울왕이 이렇게 버림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의 '교만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 왜 그는 교만해진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울왕의 교만이 얼마나 발전했으며,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들었고 비참하게 만들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게서 나타나는 교만함의 10가지 특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2.'교만함'의 죄란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하는 이 용어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겸손하거나 온유함이 없이 자기 생각과 뜻대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신약시대에는 '교만'은 죄의 목록에 들어간다(막7:22, 롬1:20, 딤후3;2). 그러나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교만함이 죄라고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교만은 모든 죄의 출발이요 씨앗과도 같다. 교만함에서 많은 죄들이 가지를 치고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교만함의 대명사는 역시 '사울왕'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고 자신을 높이려고 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울왕의 경우를 보면, 그의 교만함은 이내 더 많은 죄를 산출하였으니, 다윗을 보고는 시기질투심이 터져 나왔고 이내 혈기분노의 죄가 합쳐져서 '미움'의 죄로 싹트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움의 마음은 '살인'의 감정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이 죄라는 것을 빨리 깨닫고 자신이 교만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사실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결코 벗어날 수 벗는 죄의 문제가 교만함의 문제요 음란함의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이들과 싸워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잘못 되었으면 즉시 회개함으로 이러한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교만함의 죄를 어떻게 보시는가? 구약시대에 율법에는 교만한 마음이 죄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사울왕으의 태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교만함의 범죄가 결국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두는 우상 숭배의 죄라고 말씀하셨다(삼상15:23). 즉 교만함은 권위를 무시하는 데에서 그 죄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대부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의 판단대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의 죄는 자기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처럼 우상시하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교만함을 드러낸 사울의 예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범죄가 곧 점치는 죄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하셨다. 즉 교만함의 죄는 십계명에 나오지는 않아도, 십계명 중에서 1계명과 2계명을 어긴 죄와 동일한 죄라고 평가되는 것이다. 

 

3. 사울왕에게서 나타나는 교만함의 10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울왕에게 나타나는 교만함의 10가지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만한 자는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분명히 죄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꾸 변명을 한다. 그는 42세 때에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으며(삼상13:13), 또한 62세 때에도 역시 아말렉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지만 둘 다 회개하지 않았다(삼상15:13~15). 

  둘째, 교만한 자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만이 옳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 사람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자기의 행동으로 모든 사람을 끌고 들어가려 한다. 자기를 지지해주는 자를 위해서는 자기의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지만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결단코 가만 두지 않는다. 사울이 그랬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도 섬기려고 하였다. 그러므는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였다(삼상15:20). 

  셋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도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이 저지른 행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사울은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그렇게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제사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더 바라신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삼상15:22). 

  넷째,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적하면서도 그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위가 위임된 권위자의 말도 무시해버린다. 사울은 하나님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다. 자기가 왕으로 가진 권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까지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삼상15:30).

  다섯째, 강포하고 폭력적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만함은 보통 혈기와 분노와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교만한 사람은 대체적으로 혈기와 분노가 장난이 아니다는 것이다. 사울은 처음에는 아주 겸손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출 줄도 알았으며, 자신의 아랫사람의 말도 경청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왕으로 등극하자 그는 안하무인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의 아들이라도 가만 두려고 하지 않았다. 다윗을 돕는다고 장자 요나단도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삼상20:33). 그리고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미명하에 놉 땅에 있는 제사장들을 다 죽이는 파렴치한 일도 자행하였다(삼상21:16~19). 

  여섯째,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려 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도 자기가 잘나서 한 것이라고 자랑한다. 자기를 과시하며, 자기가 이러한 사람이라고 보여주려고 한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늘 잊고 산 사람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가 일평생 동안 하나님을 높였다는 대목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영광돌려야 할 그 순간에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했던 것이다(삼상15:12). 

  일곱째, 자기를 높히려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어떤 일에서나 자기가 높아져야 직성이 풀린다. 다른 사람이 높아지는 것을 싫어한다. 지는 것을 싫어한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한다. 이 사람에게는 오직 자기의 체면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름이 명예스럽게 된다면 거금도 거뜬히 내는 편이다. 심지어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는 하나님도 이용한다. 교만의 특성이 남이 잘 되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기에 교만한 사람은 대개 시기와 질투심도 매우 강하다. 사울은 그랬다. 사울은 모든 백성 앞에 자기가 높아지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다윗이 전쟁에 승리하여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자기에게는 천천을 돌리자 다윗을 죽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삼상18:7~9). 그리고 다윗을 죽이려고 자신의 두 딸 메랍과 미갈까지도 이용한다(삼상18:17~27). 

  여덟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하나님의 책망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특히 자기를 꾸중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러니 주의 종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늘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귀가 닫혀져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 사울은 40세에 왕위에 올라 80세에 죽는다. 그런데 그의 평생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했다는 대목이 나오지 않는다. 그가 62세 때에 치른 아말렉전투 이후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 그에게 오게 된다. 그뒤로 18년동안 사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채 살았다. 그리고 그의 나이 80세에 블레셋이 다시 쳐들어오자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 엔돌에 신접한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보기까지 한다. 그에게는 꿈으로도 선지자로도 음성으로도 계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삼상28:6). 

  아홉째,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것은 비굴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언제라도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겸손함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사울이 그랬다. 사울의 평생에 진실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대목이 없다. 그는 자기가 주인이었고 자기가 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것이다. 교만한 자는 항상 자기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행세만 했을 뿐이다(삼상15:30)

  열째, 늘 남을 판단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신도 판단받아야 할 대상이요 연약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늘 재판관의 자리에 앉아 있다. 내 판단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남은 비판하는 데에 아주 익숙하지만 자기를 판단하는 데에는 인색하다. 그러나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사울이 그랬다. 그는 자기 부하의 말에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 그리고 자기 아들 요나단의 이야기를 귀감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자신의 생각을 그에게 강요할 뿐이었다(삼상20:30~31). 

 

4. 나오며

  베드로도 사실은 상당히 교만한 사람이었다. 그에게 혈기와 분노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자기가 앞장서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느날에는 다른 사람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기자신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다짐했지만 자기가 위험해 처해지자 그는 그만 주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다. 만약 주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해주시지 않았다면 그는 시험에 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남긴 첫 번째 편지 속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매우 강조해서 말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벧전5:5-6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렇다. 어디 교만한 자가 사울뿐이며 베드로 뿐이겠는가? 우리 모두에게도 이러한 교만한 마음이 다 들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만함의 선봉자이었던 사탄마귀의 꾀임에 넘어가 나도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었던 하와의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는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외식하려고 하고, 생색내려 하고, 자기 이름내기를 기뻐하는 자를 사탄은 가만 두지 않는다. 그 사람 속에서 시기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키고, 혈기와 분노를 일으켜서 그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교만해지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교만해서라기보다는 대부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교만의 영들이 역사해서 교만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교만한 가문에서태어난 사람이 교만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교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늘 자신을 낮추는 것에 더욱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늘 덕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하나님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생활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교만한 마음이 우리를 일생동안 지배하려고 웅크리기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만의 영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때로 금식도 해야 한다. 그래야 교만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어 주님이 높여주실 때까지 우리는 다만 묵묵히 우리가 감당할 일을 해야 한다. 남의 티끌을 보기 전에 내 눈 속에는 들보가 있음을 알고 남을 판단하기 전에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01월 0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23) 사울왕의 첫번째 불순종이 가져다 준 뼈아픈 결과는?(삼상13:1~23)_2021-12-13(월)

https://youtu.be/gT02aruasWs  [ 혹은 https://tv.naver.com/v/24060051 ]

 

1. 사울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에게 주어진 사명은 좀 특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택정함을 입은 소수의 사람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막중한 사명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선지자였던 사무엘이 그에게 알려 준 바대로, 그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왕)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었다(삼상9:16~17). 

 

2. 그가 왕이 되어 치르게 된 두 번째 전쟁은 어떤 전쟁이었나?

  사울은 맨 처음 사무엘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아 왕으로 구별되었고 미스바에서 제비로 뽑혀 왕으로 선출된 바 있다. 그리고 암몬 사람 나하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그는 명실공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암몬 족속과 치른 첫 번째 전쟁으로 인하여 사울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릴 수가 있었다. 사실 사울이 치른 첫 번째 전쟁은 그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왜냐하면 먼저 그는 자신의 조상 5대로부터 기도가 축적되어 있는 상태였으며(삼상9:1), 하나님의 성령이 사울 위에 내려왔기 때문이다(삼상10:10).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전쟁을 하기에 탁월한 외모를 갖추었으며(삼상9:2), 전쟁하기 위해 모여든 장병의 숫자도 무려 33만 명이나 되었으며(삼상11:8), 그가 발휘한 기습 작전도 대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삼상11:9~11). 무엇보다도 정치 지도자로 세움받은 사울 자신과 그리고 종교 지도자였던 사무엘이 각기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감당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 이후 사울은 약 3,000명의 근위병들만을 남겨 놓은 채 다 집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이때 2,000명은 자기의 병사로 남겨 두었고, 나머지 1,000명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아들이자 뛰어난 장수였던 요나단에게 맡겼다. 그리하여 사울은 요나단과 합세하여 이스라엘 진영까지 와서 주둔해 있던 블레셋 진영을 쳐버린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그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많은 숫자였기 때문이다. 즉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철병거가 삼만 대가 준비되어 있었고, 말탄 기병도 6,000명이나 되었으며, 보병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3,000명의 군인들은 여기저기에 숨느라고 바빴고 요단강 건너편까지 도망가느라고 바빴다. 이미 2,400명의 사울의 군사는 황급히 도망치고 말았고 겨우 600명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러니 사울은 더욱더 군급했다. 그러자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한 가운데 자신이 번제를 드리고 말았다. 결국 사울은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는 했지만 사울왕은 이 전쟁을 계기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3. 사무엘의 책망을 들은 사울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블레셋과의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사울왕이었지만, 그는 600명의 군사마저 흩어지려 하고, 또한 벌떼처럼 달려드는 블레셋 군대를 보자, 사울왕은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정한 시간이 다 되기까지 사무엘이 오지 않자, 사울은 번제와 화목제 중에서 먼저 번제제사를 드리고 말았다. 그러자 사무엘이 곧이어 도착하였고, 사무엘은 왕이 무엇을 행했는지를 말하게 했다. 그러나 그때 사울은 변명하기에 바빴다. 한 마디로 부득이하게 먼저 제사를 드렸다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었는가? 그것은 첫째, 사울왕이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를 블레셋 족속을 쳐부수기 위해 세운 사명자였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이 전쟁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그는 적의 숫자를 보고 두려워하였다. 둘째, 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했다. 사무엘이 와서 제사를 드리기까지 기다려야 했으나 그는 그것을 참지 못했다. 셋째,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었다. 즉 그는 사무엘을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것이다.

 

4.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사무엘의 책망은 무엇이었는가?

  그러자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그에게 전달하였다. 우선 첫째로, 왕이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한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시려고 계획되었던 복이 떠나가게 했다고 말했다. 그럼, 사울왕이 말씀대로 실천을 했을 경우, 받기로 작정된 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왕의 나라가 영원히 굳건하게 서는 것이었다(삼상12:13). 그리고 왕의 왕국이 계속해서 연장되는 것이었다(삼상12:14). 하지만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참고로 이 말을 좀더 풀어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시면서 이미 그의 아들인 요나단을 통하여 왕통이 이어지게 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울이 왕으로 선택받아 기름부음을 받았던 때의 나이가 40세였기 때문이다(이때 사무엘의 나이는 52세였다). 그러므로 사울이 왕으로 세움을 받던 해에 요나단의 나이는 적어도 10~20세 정도였던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요나단은 전쟁을 매우 잘하는 뛰어난 장군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는 하나님이 예정하여 보내려고 했던 다윗은 아직 잉태도 되지 않던 시기였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때로부터 약 8년 뒤에 이새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사울 왕국은 좀더 지속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울의 왕국은 단명의 왕국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5. 사울 왕이 정말 실수한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 사람들 중에 사울왕도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책망을 들은 이후 3가지 치명적인 일들을 저지르고 말았다. 첫째, 그가 사무엘로부터 책망을 들은 후에도 결코 회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에 관하여 그가 들었을 때 그는 사무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것은 사무엘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무릎을 꿇는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 열왕기하 20장을 읽어 보라. 히스기야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병든 히스기야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이제 죽고 더 이상 살지 못할 것이라는 선고를 들었을 때 어떻게 했는가? 그는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회개하기를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다. 그렇다. 사울왕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다. 둘째, 그는 한 번만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연거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 배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블레셋과의 전쟁 이후에 아말렉과 또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때에 또 한 번 반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만다. 그러자 그 전쟁 이후 성령께서 그를 떠나 버리신다. 그리고 셋째,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제사하지 않고 오히려 엔돌에 있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물어보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사울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회개하자. 그리고 연거푸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말라.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무당을 찾아가지는 말자. 

 

2021년 12월 13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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