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2)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첫째 부활의 시기는 언제인가?(계20:1~6)_2022-04-08(금) 

https://youtu.be/Qewiol-BdyI  [혹은 https://tv.naver.com/v/26115580 ]

 

1. 하늘의 보상에 관한 시기인 천년 왕국을 푸는 2가지 열쇠는 무엇인가?

  '천년 왕국'이란 성도들이 죽은 후에 받는 보상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성도가 언제, 그리고 둘째로는 어디에서 보상을 받는지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은 과연 언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어디에서 보상을 받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데 주 예수께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 보상을 받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럼, 사람이 죽은 후 곧바로 보상을 받는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받는 것인가? 그리고 보상을 받는 장소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상에서인가 아니면 저 천국에서인가? 이것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4번의 시간을 통하여 이 문제를 살펴보았다(천국복음 38강, 39강, 40강, 41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천년 왕국에 관한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우리는 지난 4번의 시간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성도들이 보상을 받는 장소는 이 지상이 아니라 저 천국이라는 것이다(계5:9~10, 21:24~27). 성도들이 죽은 후에 저 천국에 올라가 거기 땅에서 왕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서 추가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천년 왕국은 결코 육체를 입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때 어린양과 사자들이 함께 뛰놀며 어린이가 독사의 굴에 장난치는 원시 지구의 에덴동산의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는 육체를 가진 존재가 사는 때가 아니기 때문에 1,000년을 산다든지, 100년을 산다든지 하는 말은 천년 왕국과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성도들이 보상받는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라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첫째로는 이 시기가 사탄이 감금된 상태라는 것을 가리키며(계20:1~3), 둘째는 성도들이 부활한 이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계20:4). 그래서 우리는 지난 4번의 시간을 통하여, 사탄이 감금된 시기가 언제인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가 아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바로 그 직후였다는 것이다(요12:31~32, 골2:13~15). 사탄은 이때 죄 없는 예수님을 사망 권세로 죽게 함으로, 결국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빼앗기고 말았으며(계1:18), 하늘에서 내러온 천사에 의해 금 쇠사슬로 결박당한 채 무저갱에 던져 넣어진 바 되었음을 살펴보았다(계20:1~3). 그래서 그는 지금도 여전히 지상으로 못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그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음부에 있는 악한 영들을 대신 올려 보내어 자신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용이 요한계시록에 13장에 나온다. 이때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귀신=악한 영)은 용으로부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아서 음부에서 올라옴으로 사탄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일은 성도들을 유혹하고 죄짓게 만들고 핍박하고 죽이는 일이다. 이에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귀신=악한 영)이 이 대열에 합류함으로서, 지구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게 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표로 매매를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3. 요한계시록 20:4에서는 천년 왕국이 언제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천년 왕국의 존재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곳은 오직 요한계시록 뿐이며, 그것도 요한계시록 20:4~6에 나오는 말씀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천년 왕국의 시기에 어린양이 사자들과 뛰놀 것이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사11:6~9, 65:25). 이스라엘인들이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들을 율법 말씀으로 가르친다는 말씀도 역시 나오지 않는다(사65:18~21). 제3의 성전을 세운다는 말씀도 또한 없다(겔40~44장). 다만 여기에 기록된 말씀은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24보좌에 앉은 자들로부터 심판을 받고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 뿐이다(계20:4). 그러므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곧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천 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데에 있다.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정확히 표현하면 '첫 번째의 부활' 내지는 '먼저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활체를 입지 않은 자들이 천년 왕국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사람이 평화로이 살거나, 오래도록 산다는 말씀, 예루살렘이 천년왕국의 수도가 되고 거기에 에스겔 성전이 세워질 것이며, 유대인들이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들을 가르친다고 하는 말씀들 곧 이사야서나 에스겔서나 스가랴서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들을 이 천년 왕국의 말씀에 끼워넣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사65:17,20,25, 겔40~44장, 슥14장). 왜냐하면 천년 왕국은 오직 부활체를 입은 자들이 왕 노릇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4, 천년 왕국이 시작되는 시점을 알려 주는 첫째 부활이란 대체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그렇다. 천년 왕국은 부활체가 왕 노릇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언제 부활체를 입는가? 어떤 사람은 그 시기가 그리스도의 재림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때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무덤에 머물러 있거나 아니면 중간 상태에 있다가, 에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여 심판받고 천년 왕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과연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어찌되었든 우리는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부활체를 입는 시기는 대체 언제일까? 그것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정확하게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전15:23~24). 

고전15:23~24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 말씀에 따르면 부활은 오직 두 종류 뿐이다. 첫 열매인 그리스도를 시작으로 먼저 부활하는 것이 있고, 이어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부활하는 것이 있다. 첫 번째 부활은 그리스도를 필두로 성도가 죽으면 곧바로 개인적으로 부활하여 부활체를 입는 부활이다(고전15:23). 이것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첫째 부활'(첫 번째 부활, 먼저의 부활)이라고 명명하고 있다(계20: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24보좌들에 앉은 자들의 심판을 따라 천국에서 누릴 보상을 얻게 된다. 이때 왕 노릇할 자는 왕 노릇하게 될 것이며 종노릇할 자는 또한 종노릇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왕 노릇한다는 말은 천 년 동안 천국에서 왕 노릇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여기서 천 년이란 하늘에서의 시간으로서, 충분한 수를 나타내는 10을 세 번 곱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간이 충분하고 긴 시간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두 번째 부활 곧 마지막 부활이 있다(고전15:24). 이때는 예수께서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실(쓸모없게 하실, 폐하실) 때라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통치와 권세와 능력'은 다 천사의 계급을 지칭하는 표현들이며(엡1:21, 6:12, 3:10, 골1:16), 그날에 예수께서는 높은 계급의 악령들을 멸하실 것이다. 이날은 타락한 천사들을 무저갱으로 보내는 날이자 그를 따르는 자들을 처리하는 날로서, 아마겟돈 전쟁(=곡과 마곡의 전쟁)의 날이 될 것이다(계19:20, 20:10), 그러므로 이 날은 예수 재림의 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지구의 약 80억 인구들 중에 어떤 그리스도인은 죽기도 할 것이고 어떤 그리스도인은 산 채로 있다가 곧바로 부활체를 입기도 할 것이다(살전4:13~17). 이것을 '둘째 부활'(두 번째 부활, 마지막 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부활은 개인적인 부활이 아니라 전 우주적인 부활이 될 것이며 단체적인 부활이 될 것이다. 

 

5. 천년 왕국이 시작되는 첫째 부활의 시기는 언제인가?

  고로 성도들이 죽어서 보상을 받는 시기인 천년 왕국은 성도들이 죽은 즉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the first resurrection)은 이미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부터 시작이 된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아파르케=the first fruit)가 되신다(고전15:20).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스타트가 되신 것이다. 구약시대 절기 가운데에는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가 있다. 그것을 '초실절'이라고 부른다(레23:20~11).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제일 처음 익은 보리 한 다발을 주님께 드린다. 그리고 보리 추수를 계속해서 칠칠절(맥추절, 오순절)까지 하고 보리추수를 마친다(레23:15~16).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첫째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A.D.30년경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후부터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지금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을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전천년설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죽으면 오늘 즉시 심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 보상을 받거나 아니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정신차려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 일한 만큼 천국에서 보상받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오늘부터라도 회개하고, 천국복음 증거하며, 주께서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고, 주의 일에 열심을 내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2년 04월 08일(금)

정병진목사

 

 

오늘날 기독교인 치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부정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부활이 언제 일어나게 되는지, 지금 죽은 성도들은 대체 어디로 가 있는지 그리고 부활체와 영체는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죽으면 무덤 속에 들어가서 쉬고 있다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부활한다고 믿는 분들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부활관을 가진 자들은 자기 식구가 죽어도 화장을 못하게 한다. 장차 있을 육체의 부활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에 관한 잘못된 상식들과 부활신앙의 역사 그리고 부활의 순서와 영광스러움에 관하여 전체적으로 조망해보고자 한다. 자, 놀라운 부활의 신비,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 보자. 

 

2021-10-06(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23)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고전15:1~3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R-NJValI3Sg  [혹은  https://tv.naver.com/v/22836669 ]

 

1. 들어가며

  고린도전서에서 교리 부분이 있다면 유일하게 고린도전서 15장 한 장 뿐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인 '부활'에 관한 말씀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종말론과 관련지어서 그리스도인들의 부활관도 사실은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오늘날 들어와서 그리스도인들 중에 부활이 없다거나 혹은 부활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부활할 때에 어떤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지 또한 부활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지 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시체는 땅 속에 묻히지만 그의 영혼은 무덤 속에서 잠자는 상태에 있는가? 그렇다는 분들도 있고, 죽은 다음 하늘에 있는 낙원에 올라간다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죽더라도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누가 맞는 주장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부활에 관하여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만약 지금 나의 부활 신앙은 어떤 것이며, 혹 잘못 믿고 있다면 어떤 것을 잘못 믿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부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내가 죽은 후에 받을 다음 세계의 보상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부활 신앙에 관하여 잘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신약성경 중에서 부활장으로 일컬어지는 고린도전서 15장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웬만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그는 고린도전서 15장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하여 기록된 아주 중요한 성경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주제로 다룰 때에는 공관복음서에 등장하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그리고 고린도전서 15장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만큼 공관복음서 이외에 부활에 관한 가장 중요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다룰 본문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고린도전서에서 15장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주지하시다시피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신앙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짚어 보고 그것에 대한 처방책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고린도전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에 그 내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기록하였다. 하나는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을 직접 진단하여 처방전을 내리는 전반부(1:10~6장)이고, 또 하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질문했던 내용을 목회자로서 답변하는 후반부(7~15장)이다. 전반부는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고린도교회의 분쟁 및 분파 문제(1~4장), 성도의 근친상간과 음행의 문제(5장)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간의 송사문제(6장)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목회적 답변으로서, 결혼과 이혼과 재혼 문제(7장), 우상의 제물의 섭취 문제(8~10장), 공중예배 가운데 여자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는 문제(11장 전반부)와 성만찬 문제(11장 후반부) 그리고 성령의 은사 문제(12~14장)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의 문제(고전15장)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다룰 부분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의 질문 가운데 부활에 관한 문제로서 교리 부분을 처음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3. 고린도 교회에서는 부활에 관하여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가?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이 그들에게 전해 주었던 부활 신앙을 버리고 헬라 철학 사상을 수용하여 변질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할 때에 사람이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며, 부활할 때에 어떤 방식으로 부활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2가지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중 첫 번째 그들의 질문은 12절에 나와 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이 정말로 부활하게 되는가 하는 의문이었다(고전15:12).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35절에 나와 있으니, 부활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부활할 것이냐 하는 질문이었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은 고린도전서 15:1~34에 답하고 있으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고린도전서 15:35~58에서 답하고 있다. 

 

4. 성도들의 부활의 예표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정말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었는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의심하고 있는 죽은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근거로서 먼저 말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실제했던 역사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의 대부분의 종교들은 실제 교주가 그렇게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렇게 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실제 그렇게 했다고 믿어 버린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예수님을 신적으로 숭배하기 위해 각색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든지 일어나지 않았든지 상관이 없는 부활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예언을 따라 죽으셨지만 성경을 따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전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은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이 직접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을 기록해 놓고 있다. 그들은 사도 게바(베드로), 열두 제자들, 오백여 형제들, 야고보, 모든 사도들 그리고 조산아와 같은 사도 바울이었다. 물론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 외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더 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가 있지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는 기록하지 않았다. 즉 그분의 부활을 막달라 마리아도 보았고,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도 보았으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12제자들 아님)도 보았기 때문이다. 

 

5.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전달해 준 복음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전달해 준 복음은 자기도 전달받아서 알게 된 복음이었다. 그러나 그가 복음을 전달받은 경로는 일반 사도들과는 달랐다. 일반 성도들이나 사도들은 복음을 받을 때에 보통 그것을 먼저 받았던 자들로부터 또다시 전달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누구로부터 들어서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자신의 영의 눈으로 보고 알았으며, 그가 영으로 보았던 그것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어느새 사도 바울이 전해 준 복음에서 떠나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견고히 붙들지 않고 있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고전15:1). 둘째는 사도 바울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실제적인 일로 믿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의 믿음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고전15:2).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을 직접 목격하였던 자들이 여전히 바울 당시에도 살아 있었고, 또한 그것을 전해 주고 있었기 대문이다. 고로 우리는 복음의 핵심 내용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우리를 위하여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압축해 놓은 단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6.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로 없었던 사건을 가짜로 말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하지 않은 허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며, 신앙 고백적으로만 존재하는 이야기였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부활 사건은 역사적인 사실이면서 동시에 신앙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 그것을 믿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러한 부활사건은 성도들의 구원 사건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의 성도들이 가짜를 믿고 따르는 일이 될 것이고, 그러면 인류를 위한 그분의 속죄 사역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활이 가짜였다면 장차 자신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소망하고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죽은 후에 하늘에서 받을 상과 면류관을 기대했던 소망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결코 은밀하게 행하지 않으셨다. 당시에 예루살렘에 몰려왔던 120만 명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형 집행이 다 공개적으로 처리되도록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사형 사건도 그들의 눈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분이 사흘 만에 살아난 것도 역사적인 사실로 보고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7. 사람이 죽으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는가?

  사람이 죽는다면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인가? 어떤 이는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서 잠자는 상태로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무덤 속에서 그의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죽은 즉시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서, 사람의 육체는 원래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의 영혼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악인은 땅속(음부, 지옥)으로 내려가고, 의인은 천국에 올가가기 때문이다. 둘 다 부활체를 입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이 땅에서 입었던 육체를 다시 입는 것이 아니다. 영혼에게 몸이 주어짐으로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었을 때에 쉬는 상태에 있다가 장차 주님 오시는 날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요한계시록을 보라.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나온다. 거기에는 24장로들도 나오고, 순교자들도 나오며, 144,000명의 처녀들도 나오고, 사도들과 선지자들도 나온다.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이 A.D.95년경에 쓰여진 책이라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약 60~65년이 지난 시점에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는 왕 노릇하는 성도들도 있었던 것이다. 

 

8. 예수님을 비롯한 죽은 성도는 어떤 순서대로 부활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부활은 어떤 순서대로 일어나는가? 사도 바울에 따르면 첫 사람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부활체를 입은 순서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첫째는 부활의 첫 열매인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계속해서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임을 말해 준다. 그분은 부활의 첫 열매이시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예수님만 부활하셨고 나머지 모든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시에 부활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첫 열매라는 단어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다. 구약시대에 죽었던 모든 성도들은 영혼의 상태로 낙원에 가 있다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제일 처음으로 살아나심으로 부활체를 입으신 직후에 모두가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낙원에 있던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고, 구약의 성도들 중에 이기는 자들이 144,000명의 명단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중에 대표자들은 24장로의 명단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오늘 이 시간까지 천국인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체를 입고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개인적으로 부활체를 입는 성도들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라고 말한다(계20:5~6). 그리고 주님의 재림시에는 한꺼번에 성도들의 추수 곧 휴거가 일어난다(살전4:16~17). 이것을 일컬어 '둘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인 것이다. 그리고 악한 영들의 높은 계급들인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사망을 멸하신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부활의 순서를 이렇게 말했다. 

고전15:23-26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25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9. 고린도 성도들이 부활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일부 고린도 성도들이 사실은 부활을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만약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면 죽은 자를 대신하여 세례를 받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고전15:30). 이것은 사실 성경적인 세례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그러한 사례를 들어,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미 다 죽은 자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바울 일행도 죽음을 무릅쓴 채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이유는 부활이 있음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고전15:31~32a). 만약 정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고 할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고전15:32).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깨어서 의를 행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한다.  

 

10. 나오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부활 신앙은 내세에 대한 신앙의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영역이다. 다음의 생이 없다고 한다면, 누가 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으며 누가 주의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겠는가? 부활은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생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목표가 달라질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영역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죽음 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죽도록 충성한 사람에게는 커다란 상이 주어질 것이다. 물론 성도들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우리 모든 성도는 부활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기꺼이 고난을 감수할 수 있고,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수고와 노력 그리고 헌신과 봉사, 심지어 순교까지도 사실은 부활 신앙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부활은 성도들 개인의 가장 큰 소망이며, 가장 확실한 기대인 것이다. 이것을 믿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드릴 수있으며, 선교사로 자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주를 위해 몸된 교회에서 충성하는 것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부활 때 입을 새로운 몸이란 어떤 것이며, 그때에 그에게 어떤 영광이 주어지는지에 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2021년 10월 06일(수)

정병진목사

 

 

 

 

 

부활은 과연 언제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과연 한 번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반복적으로 있는 것인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첫째부활'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우리가 부활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부활에 관해 대강 알고 있는 것들도 상당수다. 그런데 부활에 관한 말씀들 중에서도 개인적인 부활과 우주적인 부활에 관해 모르는 자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있어질 전 우주적인 부활만을 생각하고 지낼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순간에는 환난전휴거론에 빠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 그러다보면 매일 재림의 징조를 살피고 그것을 전달하기에 바쁘게 될 지도 모른다. 나중에 정말 재림의 징조라고 생각하는 것이 출현하게 되면 직장도 때려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그것이 잘못된 것임이 반복되다보면 그만 무력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에 나가 싸울 힘마저 잃어버린다. 그러다가 폐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신앙과 종말신앙에 대한 바른 성경적인 지식을 알고 그날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오늘 죽으면 오늘 부활체를 입고 오늘 주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준비를 해야 한다. 왜 그런가? 이제 성경적인 부활관과 성경적인 종말관을 알아보자.

2019-04-28 주일낮예배
제목: 오늘날 잘못된 부활신앙이 가져다주는 병폐는 무엇인가?(살전4:13~18)
https://youtu.be/fUl4-MXos1s


1. 들어가며

   오늘날 교회에서는 부활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부활절예배"라고 부르기도 하고, "부활주일예배"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것이 맞는 주장인가? 그런데 둘 다 맞다. 왜냐하면 부활절은 부활주일로 시작하여 7주간 진행되는 절기로서 오순절 성령강림절로 마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절을 마쳤는데 왜 부활절현수막을 떼지 않았느냐고 말하면 안 된다. 부활절은 더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부활절과 관련된 말씀을 증거하려고 한다. 그런데 부활절과 가장 관련 깊은 용어가 하나 있다면, 사실 예수님의 재림이요 종말론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시에 성도들의 우주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부활은 2가지 종류여서, 예수재림시에 있을 부활은 우주적인 부활로서 둘째부활을 가리키고, 그 전부터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첫째부활을 잘 모르는 자들은 환난전휴거설에 미혹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은 잘못된 부활신앙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병폐인 시한부종말론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부활신앙과 더불어 살펴보면서 바른 부활신앙과 바른 종말신앙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예수님은 언제 오시는가?

  예수님은 언제 오시는가? 예수께서 언제 오실른지에 관하여는 크게 2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환난전휴거설이요 또 하나는 환난후휴거설이다. "환난전휴거설"은 마지막 시기에 출현할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7년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데, 그때부터를 7년간을 환난으로 보고, 이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교회의 성도들은 부활하여 휴거될 것이고, 남겨진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치하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을 지켜야 구원얻는다는 이론이다. 그리고 7년환난 기간 중 전3년반은 미온적인 환난기이겠지만 후3년반은 적극적인 환난기로서 이 때 짐승의 표가 찍히는데 이것을 받지 않으려고 유대인들은 순교함으로도 구원받는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환난후휴거설"은 이와는 반대로 성도들이 환난을 받고 있는 끝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성경적인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환난전휴거설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이것에 관해서는 본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약 70%는 왜  환난전휴거설을 자신의 종말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것은 복음전래의 초기에 우리나라에 선교하러온 미국선교사가 환난전휴거설을 믿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미국에 유학가서 신학을 하고 돌아온 목회자들이나 신학박사들이 환난전휴거설을 배워서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환난전휴거설은 1500년대 후반기가 되기 전까지는 기독교회사에 없었던 이론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인해 1,500년대 후반에 나타난 환난전휴거설이 온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일까? 그것은 로마카톨릭의 교황 때문이다. 1,517년이후에 종교개혁자들 대부분이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강력히 규탄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황은 적그리스도가 교황이 아니라는 학설을 만들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알카자 신부(A.D.1554~1613)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짐승은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의 현존 인물이라면서 그는 네로황제 내지는 도미시안황제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석을 "과거주의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었다. 프란시스 리베라 신부(A.D.1537~1591)는 요한계시록의 짐승은 먼 미래적 인물로서 장차 불신세력에서 등장하여 전세계를 지배하는 인물일 것인데, 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을 "미래주의적 해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영국의 성공회 신부였던 존 넬슨 다비(A.D.1800~1882)가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스코필드 성경에 환난전휴거설을 집어넣았다. 그런데 이 성경이 불티나게 팔린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환난전휴거설이 미국을 덮었고 그것이 한국에까지 소개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교회의 약 70%가 환난전휴거설을 믿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예수께서는 적그리스도가 7년대환난을 시작하기 전에 재림하실까? 환난전휴거론자들은 그렇다고 한다. 그때는 예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지 않고 공중으로 오실 것인데, 만약 이때 휴거되지 못하고 지상에 남겨진 자는 대환난을 통과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한 번 환난전휴거설을 들어본 자는 어찌하든지 환난전에 휴거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므로 이것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공중재림에 늘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무렵 나타나게 될 징조들을 날마다 연구하고 찾아보고 검색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정말 환난전휴거론자들의 주장처럼 환난전에 성도들을 공중으로 휴거시켜 올려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께서 환난후에 오신다고 기술되어져 있기 때문이다(마24:29~30). 자, 성경에서 "종말장"이라고 일컬어지는 마태복음 24장을 통해 그리스도가 언제 재림하시는지 살펴보자.

마24:29-31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렇다. "그날 환난 후에" 해와 달과 별들에 이상이 생기면서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때부터 거의 대부분은 성도들은 환난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였다. 그래서 환난 가운데서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것이다. 그런데 1,500년대 후반에 로마카톨릭의 교황의 지시에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교황이 아니라는 학설로 등장한 "미래주의적 해석"이 그만 성공교회를 거쳐 개신교회 안으로까지 들어왔고 그것이 한국교회까지 들어온 것이다.

 

3. 환난전휴거설과 부활신앙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그렇다면 환난전휴거설은 우리가 가진 부활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매우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의 시기의 한 부분이 예수재림의 시기 곧 성도들의 휴거의 시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활의 시기와 부활의 순서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환난전휴거설을 좇아가게 되고, 그러면 이상한 종말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4. 부활은 언제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부활은 언제 있는가? 오늘날 성도들의 대부분은 부활의 시기를 주님의 재림의 때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활은 크게 2가지로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첫째부활이라고 부르며, 또 하나는 둘째부활이라고 부른다. "첫째부활"이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표현으로서, 예수승천이후 재림전까지 죽은 성도들이 죽을 때에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부활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이란 첫째부활에 참여한 자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 성도들의 부활이 예수재림시에 한 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승천이후에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그 증거는 성경 곳곳에서 나타나 있다.

  첫째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날 주께서 데리고 올 성도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살전3:13, 4:14). 둘째,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 재림 전인데도 이미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며 기도하고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로는 분향제단 아래에서 기도로 호소하는 이들도 있으며(계6:9~11), 보좌와 어린양 앞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찬양하고 경배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이다(계7:9~10). 이미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자들이다. 셋째,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칭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추수는 첫 곡식 한 단을 하나님께 바친 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오순절까지 이어지는데,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이시니 그후부터 성도들의 부활이 계속해서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맨 나중 주님의 재림시에는 한꺼번에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둘째부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넷째, 예수께서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죽으면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가지만, 신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아간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요5:28~29). 사람이 죽으면 죽은 즉시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을 받지만, 신자는 생명의 부활을 받기 때문이다.

 

5. 부활은 어떤 순서로 있게 되는가?

  그렇다면 부활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사도바울은 고전15장에서 이와같은 사실을 명확히 기록해놓았다. 고전15장에 의하면, 부활은 3가지 순서로 일어난다(고전15:23~24). 첫째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께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다. 그리고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속한 자들이다. 이들은 이미 첫째부활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던 자들이다. 셋째는 마지막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시의 모든 성도들이다. 이때의 부활은 우주적인 부활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도 순서가 있다. 살전4:16~17에 의하면,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고 그리고 나머지 살아있고 남겨진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6. 개인적인 부활을 잘 모르는 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폐해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위와같은 부활의 시기와 순서를 잘 모르면, 우주적인 부활인 그리스도의 재림이 언제 일어나는지에 관하여서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환난전에 있을 부활만을 생각하게 되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환난전휴거론에 그만 미혹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든지 환난을 받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데 그러면 언제 환난이 찾아오는지 늘 거기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개인적인 부활을 준비하지 못한 채, 우주적인 종말의 때만을 연구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런 자들은 이런 특징들(병폐들)이 나타나게 된다.

  첫째, 지금 죽으면 그날 즉시 부활체를 입고 심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모르니, 늘 종말의 때가 다가왔는지에 대해서만 온갖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재림의 징조와 날짜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도 뉴스를 보아도 항상 거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 이스라엘에 제3의 성전이 건축되는지, 올 해 나팔절과 초막절은 언제인지, 핏빛 빨간 달의 출현은 언제 있는지 등에 대해서만 늘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환난전에 들려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모든 성경을 환난전휴거에 꿰맞추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 말세에 나타나게 된다는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짐승의 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가 덜컥 666 베리칩 종말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2013년에 미국 전역에 베리칩이 시행되고 2017년부터는 강제로 주입한다고 하는 그들의 주장은 이미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2006년도부터 그것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러니 베리칩종말론에 빠진 자들은 벌써 12~13년을 허송세월한 것이다. 재림도 은밀하게 오시는 것에 관점을 맞추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을 곡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도둑이 언제 공개하고 오겠느냐면서 주님은 은밀하게 오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은 재림의 은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돌발성(갑작스러움)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은밀하게 공중으로 오신다는 예수님이라고 그냥 믿기에 성경도 그러한 식으로 해석한다. 어찌 그 뿐일 것인가? 빌라델비아교회에서 주신 말씀에,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준다는 말씀을 그들은 환난전휴거로 해석해버린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을 보라. 거기에는 온 세상에 임하는 시련의 때로부터 성도들을 지켜준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계3:10). 무엇보다도 셋째, 이런 자들은 세상과 환난을 이길 힘을 상실해버린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실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준비해왔는데 해마다 번복되면서 주님의 재림이 지연됨으로 낙심하는 것이다. 어떤 자는 어떤 해에 주님이 정말 오실 것으로 알고 직장도 내버리고 집단촌에 들어갔는데 그만 주님이 오시지 않으니, 더이상 세상을 살아갈 힘마저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폐인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7. 주의 재림에 관한 징조에만 신경쓰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부활 준비에 힘을 쓸 것인가?

  그런데 놀라지 말라. 예수님의 때나 사도바울의 때나 항상 재림의 징조들이 있어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계속해서 처처에 기근과 지진과 전쟁이 있어왔다. 그리고 예수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 또한 있어 왔으며,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미혹도 계속해서 있어왔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주님 오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징조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에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아니 된다. 오늘 죽으면 오늘 내가 부활체를 입고 주님 앞에 선다는 마음을 가지고, 날마다 회개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놀라지 말라. 아무리 처처에 기근이 나고 전쟁이 터진다고 하여도, 노아의 때처럼 주님재림 날에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을 것이다. 두 남자는 밭에서 일하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겨둠을 당할 것이다. 두 여자가 멧돌을 돌리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겨둠을 당할 것이다(마24:40~41). 그리고 밤에는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겨둠을 당할 것이다(눅17:34). 즉 주님의 재림 때까지 이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갈 것이니, 너무 재림 징조에 관심을 두지 말라. 그것이 주님의 재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님의 때에 주님이 결정하실 일이다. 그날은 우리의 소관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다만 우리는 오늘 죽으면 오늘 부활체를 입고 오늘 주님 앞에 설 일을 생각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회개하는 일이다(마4:17).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아서 지옥가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해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니 날마다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죽는 즉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라는 것이다(마24:45). 주님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주의 일에 힘쓰기를 바란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다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고전15:58).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라. 그래야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이다.

 

8. 나오며

  주님의 재림은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순교자의 숫자가 차야 한다. 그리고 롬11장과 계11장에 의하면, 이방인의 때가 차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숫자가 다 있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아들을 이 세상에 다시 보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적인 종말의 시기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개인적인 종말을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 개인적으로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과연 죽을 때에 생명의 부활을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서 상급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4월 28일(주일)

정병진목사 


예수님의 부활은 소생과 다르다. 소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지만 다시 썩을 것으로 부활한 것이며, 다시 죽을 것으로 부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달랐다. 예수께서도 분명히 죽으셨지만 다시 썩지도 아니하고 다시 죽지도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에 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첫째는 예수께서 공생애기간에 가지고 있던 그 몸을 그대로 부활한 것을 보면서 자기도 이 땅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육체 그대로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들의 부활은 먼 미래 곧 주님의 재림의 때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셋 다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부활의 실제적인 사실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부활에 관한 전체적인 진리들 중에서 핵심사항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019-04-26 금요기도회
제목: 부활에 관한 오해와 성경적인 진리들 그리고 부활의 영적 의미(고전15:20~28)
https://youtu.be/maWZHC-zb7E


1. 들어가며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사실 인류역사에 한 획을 긋는 놀라운 사건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했던 사망의 권세를 박살내로 음부의 문을 열어버린 놀라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여러가지 면에서 원래의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것들이 있다. 그리고 부활의 참된 의미가 무엇이며 그 중에서도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늘 생각케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주목보면서, 부활과 소생의 차이가 무엇이며, 부활체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부활의 첫열매이신 예수님을 기점으로 부활이 어떤 순서로 진행되고 있고 어떻게 끝마쳐질 것인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로 부활의 참된 의미를 우리 인간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에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부활(活)과 소생(蘇生)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시 살아나다"는 측면에서 볼 때에 "부활"과 "소생"은 사실 같은 의미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활"과 "소생"은 그 개념이 확연히 다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볼 때에, 소생에 비해 부활이란 확실히 2가지의 핵심적인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로는, 다시 썩는 것이냐 아니면 썩지 않는 것이냐 하는 관점이다. 소생은 다시 썩는 몸으로의 부활을 가리킨다면, 부활은 다시 썩지 않을 몸으로의 부활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 개념은, 다시 죽느냐 아니면 죽지 않을 것이냐 하는 관점이다. 소생이 다시 죽는 것으로 부활이라면, 부활은 다시 죽지 않는 것으로의 부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알려준 부활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의다(고전15:53).

고전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살려주셨던 3명의 사람들 즉 "회당장 야이로의 딸"(막5장)과 "나인성과부의 아들"(눅7장)과 "베다니의 나사로"(요11장)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소생한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햐면 그들의 비록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는 했으나 다시 죽었고, 그들은 살아났으나 그의 몸이 다시 썩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몸(육체)의 부활을 경험한 것이지 결코 영의 몸으로 부활한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3. 부활의 첫 열매는 대체 누구며 부활체를 입는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사도바울은 고전15:20에서,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회개와 믿음을 지녔던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의 부활 전에 한 사람도 부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 다음의 부활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보통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 모두가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해요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우주적인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분명히 있겠지만 그 전에 개인적인 부활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러한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살전3:13, 4:14). 그렇다. 성경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그 후에 성도들의 부활이 있었고, 예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다시 오실 것이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이미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 있는 성도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양께서 다섯째인을 떼실 때에 [분향]제단 아레에 있는 자들이 나온다(계6:9~11). 그리고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흰옷을 입고 큰 무리들도 나온다(계7:9). 또한 예수 재림 전에 두 선지자(증인)들도 먼저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나온다(계11:10~12). 그렇다.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부터는 죽은 즉시 성도들이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거기에서 예수님의 재림시까지 천년왕국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성도들은 언제 부활체를 입은 것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였으니 그 뒤에 있었을 것이다. 엡4:8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셨다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에 해석한다면, 그때에 이미 죽어서 그의 영이 낙원에 있힌 자들이 비로소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입성한 것이다(물론 그때도 낙원은 천국의 한 켠에 있었다. 하지만 아직 구약의 성도들은 부활체를 입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후부터 신약의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도바울은 성도들의 부활이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는 것처럼 묘사했던 것일까?(고전15:50~52, 살전4:16~17). 그것은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부활의 진실을 잘못 알고 잘못 알려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때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쓴 초창기(살전4:16~17)와 중반기(고전15:50~52)의 기록들을 보면, 그는 자신이 죽은 때를 주님의 재림의 때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니 처녀 딸이라도 시집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주님의 재림은 지연되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죽을 무렵(A.D.67)에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에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딤후4:7~8,18). 즉 사도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처음에는 개인적인 종말(개인의 죽음)을 우주적인 종말(그리스도의 재림)과 동일시했던 것이다. 그러자 나중에 가서는 자신이 사명을 다 하고 죽을 때에 죽은 즉시 천국에 들어가서 재판장이신 예수님에게 상급을 받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가서는 우주적인 종말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때에 주님이 실행할 것으로 알고,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종말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4. 성도가 죽으면 중간상태인 무덤 속에서 쉬고 있다가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한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는 거의 가 다 성도가 죽은 후에는 중간상태에 머물러 있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체를 입은 후에 주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것이 아예 교리에 나와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특별히 여기서 "중간상태"라 함은 몸은 죽었으나 영은 죽지 않고 잠자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서 영이 죽어있는 상태로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의 영이 무덤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약에 에녹과 엘리야를 보라. 죽은 후에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죽어서 무덤 속에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영은 하늘 곧 낙원으로 들어갔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까지 성도가 죽으면 중간상태로 무덤 속에 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에서 기인한다. 우선 예수님의 말씀부터 살펴보자.

요5:28-29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무덤 속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그때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미 성도들의 부활과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假定)해 놓았기 때문에, 이 말씀에 나오는 "무덤 속에 있는 자"는 죽어서 무덤에서 쉬고 있는 자라고 해석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성도들은 그들의 영혼이 잠자는 상태로 무덤 속에 쉬고 있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들은 거의 가 다 영적인 말씀이으로서 이 본문도 거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46년동안 지어왔던 물질적인 성전을 허물어뜨리고 그것을 다시 3일만에 건축하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몸된 성전인 예수님의 육체를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일으키시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이 없다"는 말도, 예수님의 살은 예수님을 통해 주어질 생명을 의미하고 예수님의 피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줄 예수님의 속죄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진짜 예수님의 살을 뜯어먹고 피를 마시라는 말씀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요5:28에 나오는 "무덤"은 결코 흙으로 만든 "무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덤"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말씀의 문맥에 들어있다. 25절로 가보자.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렇다.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란 이미 죽은 자들로서 영이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5장 25절과 2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무덤"이란 다 사람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 속에 사람의 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슥12:1~2, 딤후4:22). 그래서 영이 죽어있던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의 말씀을 듣고 우선 자신의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육체가 죽을 때에는 죽은 즉시 곧바로 부활체를 입는 것이다. 그래서 죽은 즉시 성도는 생명의 부활로 나아갈 것이고, 성도가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이후에는 바로 그 다음의 열매들이 계속해서 맺혀지게 되는데, 우선은 구약의 성도들의 부활이 있었고, 그때부터 죽은 성도들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 주님의 재림시까지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5. 부활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로서, 성도들과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영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단순히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으로 끝인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인류역사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의의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소한 2가지 의의를 말해준다.

  첫째, 그분의 죽음이 우리 인류의 죄용서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고전15;17).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최소한 예수께서 자기의 죄로 죽지는 않았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때에 예수께서 다시 살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분의 죽음은 자기의 죄로 인한 죽음이었는지 대속의 죽음이었는지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다시 살아남으로 인하여, 최소한 예수께서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지는 않았음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다시 살아났던 것인가? 그것은 그분의 죄로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표적임에 동시에 그분의 죽음이 인류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가장 장력한 표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인류를 대신하여 죽어서 인류의 죄값을 치른 것이 그분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그 사건으로 인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었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며 ,회개하는 자에게 속죄의 은총이 주어지게 되고,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둘째, 성도들이 현재 주님과 교회를 위해 애쓰는 수고와 헌신 그리고 고난과 죽음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왜 고난을 자처하며 죽을 고비를 넘겨가면서 복음을 전파했는가? 주님과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는가? 그것은 우리의 수고가 수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과 교회를 위해 수고한만큼 그날에 주님께서 다시 우리에게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물론 성도들이 그날에 주님께서 어떤 것으로 주실지에 대해 계산해보면서 수고하고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날에 주님이 결정하실 것이라고 믿는다. 오후5시에 농장에 들어와서 일을 했지만 비록 1시간만 일했던 자라도 하루치의 품삯을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로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받는 고난과 핍박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 안에서 수고하는 모든 봉사가 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 안에서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질 날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현재의 고난과 핍박에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다. 그리고 주 안에서 수고함을 내 시간과 물질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 그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6. 부활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의미로서, 예수님 자신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보조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알려주는 놀라운 또 하나의 영적인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주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는 부활하심으로 육체를 지녔던 공생애의 한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으로서 무소부재한 하나님이 되셨음을 알려 주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분은 아니 계신 곳이 없으며, 세상 끝날까지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마28:20). 만약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이 성도들과 동시에 임마누엘하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부활 후에 40일동안 무려 12번 이상을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으로 그분은 언제 어디서나 성도들과 동행하고 계심을 가르쳐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 그분이 선재하신 하나님이요,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7. 나오며

  예수님의 부활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분이 부활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목숨 걸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려고 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에 의해서다. 그리고 예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따라 성령을 받았던 자들이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것마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찬송하면서 기꺼이 사자밥으로 자신을 내어주었고 화형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또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활신앙은 모든 시련을 이기게 도와주었고 고난과 죽음까지도 극복하게 해주었다. 그것이 로마를 300년만에 기독교 국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 주 안에서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음을 알았기에 자신의 물질과 시간과 달란트를 주님께 바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동방에서 가장 못사는 이 나라에 누가 와주었는가? 하찮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이 있는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삶을 주님과 복음을 위해 드리는 것을 가장 귀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2019년 4월 26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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