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1) 세상 권력자들의 바람과 사도 바울의 바람(행24:24~25:12)_2023-01-27(금)

https://youtu.be/leZrm9kkKZk [또는 https://tv.naver.com/v/32764046]

 

1. 가이사랴에 있던 로마 총독 벨릭스는 자신이 구류하고 있는 바울에게 어떤 것을 바랐었는가?

  유대인들의 대표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의해 고발되었던 사도 바울은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서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유대인들과의 관계 때문에 벨릭스는 무죄한 바울이었지만 그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지 않고 다만 선고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를 구류하여 둔다. 하지만 정작 바울은 죄가 없는 사람이었기에 총독은 그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주면서 타인의 방문까지도 허락한다(행24:22~23). 수일 후에 벨릭스는 자신의 유대인 아내였던 드루실라와 함께 바울을 불러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관하여 듣게 된다. 그러나 바울이 총독에게 들려준 것은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자 벨릭스는 바울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는 바울로부터 돈(뇌물)을 받을까 하여 계속해서 더 그를 불러내어 그의 말을 들으려 하였다. 그것도 무려 2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렇다. 세상 권력자들의 바람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첫째로, 평화와 안정을 이루는 것이다. 이처럼 권력자들은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정치적인 타협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로, 돈(뇌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로마 총독 벨릭스도 다른 세상 권력자들이 밟았던 그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2. 벨릭스의 뒤를 이어 부임한 베스도 총독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벨릭스가 바울을 구류하여 둔 지 약 2년이 지난 A.D.60년경 벨릭스는 로마로부터 소환 명령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보직 해임을 당한다. 이는 유대인들의 청원에 따라 로마 총독으로서의 권한을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과의 충돌 문제에 벨릭스가 헬라인들의 편을 들어준 것이 그만 유대인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로마 황제에게까지 청원이 들어가자, 로마 황제가 그를 소환하여 보직 해임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벨릭스의 뒤를 이어 베스도가 로마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다(재위 A.D.60~62).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 따르면, 전임 총독 벨릭스는 아주 잔인했고 탐욕스러웠으며 불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임 총독 베스도는 훌륭하고 능력있고 공평한 통치자라 불림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베스도도 유대나라를 잘 통치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었다. 

 

3. 베스도가 부임한 후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베스도는 선임 총독이 소환당한 후 보직 해임당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유대인들과 친하게 지내보려고 애를 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부임한 장소인 가이사랴에서 무려 104km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부임 후 3일 만에 방문을 한다. 그런데 사실은 유대 대표자들이 가이사랴에 와서 로마 총독을 알현해야 옳은 일이었다. 하지만 베스도는 자신의 권위를 부리지 않고 겸손히 예루살렘으로 가서 유대 지도자들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유대 대표자들은 바울을 신임 총독에게 고소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를 청하였다. 이는 매복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의도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스도는 이미 그들의 이러한 속내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곧 자신이 가이사랴로 내려갈 터이니 거기 가서 고발하라고 말한다. 결국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계획은 또한 연기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가이사랴에 가서 또 바울을 베스도 총독에게 고발한다. 그리고 가이사랴에 도착한 다음 날 베스도는 재판을 열어 바울을 심리한다. 베스도는 전임 총독에 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그의 성실성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베스도가 바울에게 제안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이어 고발자였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 중에서 고관들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는 바울의 여러 가지 죄를 거론하면서 바울을 공박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들이 말하는 죄들 곧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기에, 바울은 자신의 무죄함을 하나하나씩 변호하게 된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베스도는 유대인들이 말했던 것을 따라 예루살렘에 가서 자기에게 재판을 받는 것이 어떠한가를 묻는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잘못 행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과 자신이 죽을 죄를 짓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내주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피력하면서 자신은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상소한다고 호소한다(행25:11). 그러자 베스도는 자신과 함께 배석한 위원들과 협의한 후에 바울의 청원을 따라 가이사에게 가서 재판을 받을 것을 허락한다. 역시 베스도도 전임 총독 벨릭스처럼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마 시민으로서 바울의 청원은 합당한 것이었기에 결국 베스도는 바울의 청원을 거절하지 못하고, 바울을 로마에 보내게 된다. 

 

5. 두 명의 총독 앞에 선 복음 전도자 바울의 관심사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바울의 재판을 맡았던 2명의 로마 총독들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었는가? 유난히도 탐욕이 많았던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과 잘 지내기를 원했고 더불어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재판을 올바르게 하지 않았다. 바울이 분명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에게 무죄 선고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판 선고를 뒤로 미루면서 그를 무려 2년간 붙잡아 두었다. 그리고 바울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바울로부터 돈을 받아 볼 속셈으로 자꾸 바울을 불러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부임한 베스도는 벨릭스보다는 조금 더 나았다. 왜냐하면 그는 비교적 원리 원칙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스도도 역시 유대 총독으로서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말을 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사실을 들어서 가이사에게 재판받을 것을 청원한다. 

  그런데 우리는 벨릭스 총독이 바울을 자꾸 불렀을 때에, 바울이 그에게 전한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바울은 이때 여느 사람처럼 자신의 석방을 위해 벨릭스에게 아첨의 말을 하거나, 뇌물을 주었던 것일까? 아니었다. 바울은 달랐다. 그는 하나님의 사도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음 전파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인만큼, 그가 누구를 만나든지 혹은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항상 그의 만남의 원칙은 복음 전파였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신의 죄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의 권력이나 쾌락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이 죽은 다음에 맞이하게 될 심판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랬다. 바울은 이처럼 오직 복음 전파 일념 하나로 모든 삶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이었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2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0) 유대인들의 거짓고소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행24:1~23)_2023-01-26(목)

https://youtu.be/mVEUnpplqL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47]

 

1.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된 것은 여러 이방 교회들이 모아서 건네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성전에 예물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바울을 보았던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성전에 있는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시도한다. 그때 이것을 지켜 본 천부장이 막아섰고, 안토니오 요새의 층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없이하자고 외친다. 그러자 다시 천부장이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공회에 그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공회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 문제로 소요가 그치지 않게 되고, 그를 다시 공회로 부를 시점에 중간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총독 앞에 서게 된다. 

 

2. 바울을 고발한 자들은 누구였으며,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발한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104km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와 몇몇의 유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이 바울을 기소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소요죄로 고발했다. 바울이 세계에 온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단 괴수죄로 고발했다. 즉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셋째, 성전 모독죄로 고발했다. 즉 바울이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이들의 고발에 변명해야 했는가?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에 자신의 죄목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 총독 벨릭스의 허락에 따라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첫째, '소요죄'에 대해서는 2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거짓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행24:11~13). 첫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밖에 안 되었으니, 소요를 일으킬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누구와 변론을 했다든지 혹은 회당이나 시 안에서 무리를 소동했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째, '이단 괴수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행24:14~16절). 즉 바울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믿으며, 그들의 소망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셋째,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행24:17~19절). 다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민족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헌금과 제물을 가지고 왔으며, 성전 안에서는 결례를 행한 것 뿐, 거기에서 어떤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소동도 없이 성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었으면 당사자가 고소했어야 하는데 고소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예루살렘의 공회에서 사건이 마무리 되지 못한 것은 공회 석상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함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총독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4. 총독 벨릭스는 어떤 선고를 내렸는가?

  이에 총독 벨릭스는 고발자의 고발과 피고인의 변호를 다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선고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행24:22). 하지만 바울은 무죄였다. 그러므로 총독도 바울을 감옥에 수감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를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바울을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만 말하였다(행24:23). 일종의 자유로운 구류를 지시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바울을 석방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유대 지역의 대표자들인 산헤드린 공회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독 벨릭스는 자기와 유대 지역 대표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고를 무기한으로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무려 2년씩이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5.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는 재판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에게는 한사코 시기와 모함,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울도 역시 그랬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가로막기 위해 유대인들은 그를 뒤따라 다니면서 방해했고, 그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총독 앞에서 바울을 이단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교리와 바울이 전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니, 삼단이니 말하면서 모함을 하게 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사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을 동원한 사탄의 계략은 아무리 치밀할지라도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었던 로마 총독과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편이었지만 둘은 바울을 결코 정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행한 일들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총독은 뒷일을 생각하여 바울을 구류해 두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거짓이 진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불의가 의로움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코 불의한 일을 저질러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본다. 

 

 

2023년 01월 26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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