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2)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행25:13~26:32)_2023-01-31(화)

https://youtu.be/mWHutGPFj6k [또는 https://tv.naver.com/v/32764123]

 

 

1. 복음을 모르는 두 종류의 사람들은 누구인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복음 자체를 아예 모르는 불신자들이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로마 총독으로서 유대에 파견된 베스도와 같은 경우다. 또 하나는 복음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지만 복음을 정확히 모르는 자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그립바 왕이나 그의 여동생 버니게가 여기에 속한다. 왜냐하면 아그립바 왕이나 버니게는 헤롯의 증손으로서 아그립바1세의 아들 딸들이었는데, 이들은 다 하나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자인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복음을 전혀 모르거나 복음을 알되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자는 둘 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2. 왜 바울은 베스도와 아그립바와 버니게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되었는가?

  유대 총독이었던 벨렉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이제 막 집무를 시작했을 때에 문안 인사차 아그립바 왕(아그립바2세)과 버니게가 가이사랴에 온다. 그러자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2세와 그의 동생 버니게에게 바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자문을 요청한다(행25:13~27). 이에 아그립바도 승낙하자 바울의 심문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그러자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게 되고(행26:1~13), 청문회 참석자들에게도 신앙을 권고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다 거절한다.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서도 그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청문회를 마치자 한사코 다들 그는 무죄하다고 말한다(행26:14~32)

 

3. 복음을 모르는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는 자리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및 거기에 배석한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한다. 그것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에 의해 약속된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행26:16~18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고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눈이 열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적인 세계를 볼 줄 아는 영의 눈이 열려지는 것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했던 것이다. 

 

4.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영안)이 열리게 되면, 받을 수 있는 4가지 축복은 무엇인가?

  우리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영안이 열리게 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이 4가지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즉 첫째로, 어둠에서 빛으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둠'이란 거짓과 사망을 가리키고, '빛'은 진리와 생명을 가리킨다. 둘째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사람은 영의 눈이 감겨지기 시작하였다. 즉 하나님을 보는 눈이 감기게 되고 사탄이 주는 보이는 세계에 대한 눈만 더욱 열리게 된 것이다. 셋째로, 죄들 사함(용서)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이미 대제사장으로서 속죄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속죄의 은총이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넷째로, 예수님을 믿어 거룩하게 된 자들에게 하늘의 기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실 바울도 역시 다메섹 도상에서 영안이 열려지기 전까지는 이러한 축복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도 역시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처럼 그러한 놀라운 하늘의 소식을 듣고도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5. 영안이 열리지 못했던 자들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는가?

  유대인들이나 산헤드린 공회 그리고 이어서 벨릭스 총독과 베스도 총독 또한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는 바울로부터 복음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유대인들이나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때로부터 10년 뒤였던 A.D.70년에 유대 나라는 완전히 망하여 지구상에서 없어지고 말았다(민족만 명맥을 유지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1948년 5월 14일에 독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벨릭스 총독은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고 또한 바울로부터 뇌물을 기대하여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있다가, 그만 총독직에서 해임되고 말았다. 베스도 총독은 벨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대신 들어왔으나 역시 무죄한 바울을 석방하지 않음으로 인해 총독으로 부임한 지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아그립바2세 왕과 버니게는 헤롯대왕의 증손들이었으나, 그 가문은 자신들을 끝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렇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을 거부하는 자는 이처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성령으로 복음을 전해 주었던 바울의 말을 곧이듣지 아니함으로, 결국 다 파멸의 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2023년 01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

  끈질겨도 이렇게 끈질길 수가 있을까? 유대교에서 나사렛예수교로 전향한 한 사람, 그 바울 때문에 유대교의 핵심세력들이 총출동하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장로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이다. 사두개인이라 불려지는 제사장그룹과 장로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바리새인그룹들은 평소 때에는 원수관계로 지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약 25년전 예수님을 죽이던 당시와 같이 이번에도 바울을 제거하기 위해서 한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바울을 정죄할 수 없었고 그를 죽일 방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꼭 붙들고 계셨기 때문이다.

  최근에 북한이 대북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24시간 안에 대북방송장비를 공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준전시상태를 명령하면서 북한의 호전적인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남한을 흔들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후 그들은 어떻게 해야 했는가? 테이블에 마주앉아 무박4일간의 긴 협상에 매달려야 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 북한의 재래식 목함지뢰폭파가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했고, 곡사포도 자신이 쏜 것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협상 중에도 쉬지 않고 잠수함을 물 속에 집어넣었고, 미사일까지 추켜세우며 시위의 화살을 당기면서 말이다. 참으로 끈질긴 사람들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노라니 마치 바울을 죽이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유대종교지도자그룹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보인다. 바울을 없애기 위해 그들도 입만 열면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바울을 보라.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유대인들 앞에서도, 산헤드린공회 앞에서도 그리고 가이사야의 벨릭스 로마총독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율법과 성전에 대해서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가이사에 대항하여 폭력을 행사하거나 국가의 전복을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한사코 그가 아주 나쁜 불량자이며, 국가전복하기를 시도하는 선동가이며, 율법을 어기는 파렴치한 인간이라고 고소했다. 하지만 어느것 하나도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증인도 없었다. 모두가 다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의 대적 마귀도 처음부터 거짓말장이다(요8:44). 그가 인간 앞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에 그는 거짓말로 말을 시작했다. "선악과를 따먹는다해도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선악과를 따 먹으면 그의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으로 인하여 영적인 죽음을 맛보게 되고, 이어 육체적은 죽음도 맛보게 되는 것이다. 그때 만약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더면, 아마도 인간은 낙원에서 1,000년이상을 살았을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탄의 화신인 뱀의 거짓말에 순종함으로 인하여 인간의 축복이 점점 감소되기 시작했다. 수명은 급격히 단축되었고, 죄악은 날로 커져만 갔으며, 그들의 범죄행위도 더욱더 커져만 갔다. 그렇다. 유대인이건 기독교인이건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키며 더 큰 범죄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죄를 그치라. 작은 것이라고 그것부터 잘라버리라. 그렇지 않으면 바울의 고소 이후 10년후의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바울의 고소이후 10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디도장군을 보냈고 그래서 유대교의 총본산인 예루살렘의 도시를 파괴해 버렸고, 성전자체를 없애버리셨다. 그렇다. 마귀는 자신이 파괴되어 없어지는 그날까지 끈질기게 우리들을 공격할 것이다.

  그만 할 때가 된 것도 같았지만 유대종교지도자들은 바울을 고소하고 죽이려는 것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벨릭스총독에 뒤를 이어 베스도가 부임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가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바울을 고소하기에 바빳다. 그것도 바울을 기아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주기를 청했다. 그 이유는 길에 매복했다가 바울을 죽이려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총독이 새로 부임했으니 부임축하행사 내지는 특사를 통해 죄인이라도 풀어달라고 요청해야 할 판인데, 종교지도자들의 악독함은 한 없다. 죄없는 사람을 불러다가 죽이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탄의 속성을 따라가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베스도는 일면으로 볼 때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곧 있으면 가이사랴 다시 가는데 굳이 그를 예루살렘까지 오게 할 필요가 뭐가 있겠느냐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당시 바울을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지도자를 사용하신다. 그래서 바울을 보호해주신다. 그에게는 아직도 못다한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스도도 사람인지라 사람의 눈치를 봐야 했던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막상 자신의 주거지인 가이사랴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그 다음날 함께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종교지도자들의 고소를 받아들여 재판을 열었다. 하지만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서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도는 바울에게 자기랑 같이 또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재판을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바울을 떠본다. 그것은 베스도가 로마총독으로 부임하여 처음으로 하는 일이 유대인들의 청을 거절한 것이었다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다.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사람은 공명정대함이나 공평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사람의 눈치를 따라 행하려고 한다. 그러나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라. 그것은 결코 올바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의에 대해서 눈감아주시는 그러한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회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베스도가 항상 사람의 눈치만 살펴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다른 편에서 보면 지혜로운 모습도 보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아무리 뜯어보고 조사해보았지만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울을 그냥 석방시켜버린다면 유대인들로부터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때였다. 이러한 상황를 파악한 바울은 자신은 지금까지 유대종교재판석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이사의 재판석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말아달라고 하면서, 가이사랴의 재판석보다 더 높은 로마의 재판석에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때였다. 북쪽을 다스리고 있던 갈릴리의 분봉왕격인 아그립바2세가 그의 누이동생 버니게와 함께 로마총독의 유대지역 부임 축하차 가이사랴에 내려온 것이다. 아그립바2세는 그의 증조할아버지가 헤롯대왕인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의 상황과 유대인의 율법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자  베스도는 즉시 아그립바2세에게 청문회를 개최하여 자신이 로마황제에게 전할 보고거리를 얻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다. 마침 아그립바2세왕도 바울로부터 직접 무엇인가를 듣기를 원했기 때문에 결국 아그립바왕 앞에서 바울의 송사는 이어진다.

  그렇다. 자신의 짧은 생각이나 소견이 부족하다면 전문가나 높은 사람의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베스도는 어쩌면 겸손함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유대 갈릴리지역의 왕에게 자신의 관할지역에서 일어난 어려운 일에 대해 자문을 구했으니 말이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있는 지식이 부족하다면 얼마든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자가 올바른 지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지도자이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려보라. 그리고 베스도의 경우처럼 올바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보라.

2015-08-26 로마총독 베스도 및 아그립바 왕 앞에서 선 바울(행25;1~27).ts_0000054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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