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2)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2)(행2:5~13)_2022-06-17(금)

https://youtu.be/Fj2qfKVFPHs  [혹은 https://tv.naver.com/v/27450516 ]

 

1. 방언 통역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방언 통역의 은사란 남이 하는 방언을 들었을 때 그것을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킨다. 보통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국의 언어로 들린다. 하지만 그 내용의 전반적인 것이 깨달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상대방이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지만 자기의 언어로 들리므로 그것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다. 

 

2. 오순절날,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 나타난 방언 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이었는가?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순수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전무하였다. 그들을 회개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남은 자들이었다. 사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였고, 또한 주님의 승천까지 보았던 자들이 적어도 성인 남자만 500여명이 넘었지만 그중에 380명은 떨어져 나갔고, 오직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120명의 성도들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뒤에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그들의 방언 소리를 듣고 몰려든 군중들의 놀라운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침 9시경에 마가 다락방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들었던 말은 자기가 태어난 곳 곧 헬라 지역의 지방말이었다. 소문을 듣기로는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헬라 지역의 지방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20명의 성도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글로싸')을 말하고 있었지만 듣는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 고국의 지방말('디아레크토스')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3.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대체 어떤 것을 들은 것인가?

  오순절을 지키러 왔던 15개국의 사람들은 그날 갈릴리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귀에는 그들이 하는 말인 자기들의 고국 언어였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지방말이었던 것이다. 배우지 않은 갈릴리 사람들이 외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입에서부터 나왔던 그들의 감탄사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행2:11[직역] 그레데인들과 아라비아인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각 방언('글로써')로 하나님의 위대한(엄청난, 장엄한) 일들을 발설하고 있는 것을 듣는도다

  그럼, 그들이 그때 들었던 방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한 계획과 섭리 그리고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과 그 의미였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얼음이 되어 있었다. 

 

4. 방언 통역을 해 보면 주로 어떤 내용인가?

  방언 통역을 해 보면 방언하는 자가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는지가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 통역하는 분들의 수준이 너무나 낮은 탓에, 정말 영이 말하는 비밀과 영의 기도를 정확히 통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은사들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고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방언 통역의 은사를 경험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 앞에 모두가 감탄한 채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방언의 내용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주님의 신령한 말씀이요 자신의 영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언의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 방언의 주된 내용은 평신도와 목회자에게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평신도는 기도하는 것이 많다면, 주의 종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예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신도의 경우에는 이렇다. 아내에게는 남편을 머리로 알고 복종하라는 통역이 많이 나온다. 자식들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나온다. 교회의 장로들에게는 목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권사들에게는 그들이 시험에 흔들리지 않고 기도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주님의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들었고 보았기에 반드시 그날에 심은대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목회자에게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가? 주로, 그가 복음 전파의 길을 가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데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이 제대로 될 수만 있으면 너무나 유익하고 유익한 것이 방언 통역인 것이다. 

 

5. 방언이 어떻게 복음 전파에 활용될 수 있는가?

  방언 자체는 복음 전파에 활용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면 자신의 영을 건축할 수 있기에 유익하지만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음에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방언하는 자는 방언 통역을 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타락하고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이 적은 시대가 된 까닭에 온전한 방언통역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온전한 방언 통역을 들을 수 있다면 모두들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감탄하고 순복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통역만 제대로 되면 거의 예언과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여 그 사람에게 권면하고 책망하고 폭로하고 가르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지 않는 듯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다는 것이 방언 통역 가운데 다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불순종한 것을 책망하고 죄를 폭로하여서 방언을 하는 자로 하여금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개인을 세우기 위해서, 가정을 세우기 위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이 온전한 방언 통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방언은 매우 유익한 성령의 은사임에 틀림없다. 특히 개인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통로가 바로 방언 통역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방언 통역을 받아 본 자들은 스스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명자의 길과 평신도의 길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주의 종들을 사랑하는지도 알게 된다. 이처럼 방언 통역이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전달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데에는 방언 통역만큼 좋은 것이 없을 정도다.

  방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비밀을 말하는 영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과연 방언 통역자가 깨끗한 상태에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말로 방언 통역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그렇게 되면 반드시 기도에 집중하되, 회개 기도를 많이 하여 방언 통로의 길을 깨끗하게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차라리 방언 통역의 은사를 받지 않는 것이 낫다. 방언이나 방언 통역의 은사는 말의 은사이자 기도하라고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건축하는 데 유익한 은사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욱더 회개에 집중하여 자신을 깨끗이 하는 데에 더욱더 노력하자.  

 

2022년 06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방언통역은 꼭 해야 하는가?(롬8:26~28)_2019-03-22(금)

https://youtu.be/q-mCThH8E4k

 

1. 방언통역은 꼭 해야 하는 것인가요?

 

2. 결론적으로 방언통역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언통역은 유익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방언통역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또한 방언통역이 필요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만약 예배시간에 방언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라면 반드시 방언통역을 해야 합니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이기에 예배시간에 방언을 사용할 때에는 통역함으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평소 때 자신의 영의 기도와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도 않은 채 자신의 육신대로 살아가는 분들은 반드시 통역을 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영이 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성령께서는 자신의 영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여서,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성령세례까지 받아 방언을 말하는 자인데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를 지은 채 살아가고 있다면, 안타깝게도마지막 날에 구원받지 못하고 버림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과 혹은 사람에 따라 방언통역이 필요할 수도 있고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언통역의 유익한 점은 무엇입니까?

 

3. 고로 방언통역을 해서 들어보면 몇 가지 유익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방언통역이 아니라면 지금 자신의 영이 무슨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무입니다. 둘째,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진정 자신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것과 성령께서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은 같으며 어떤 것은 다른지를 확인해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를 들은 후에 비로소 자신의 잘못된 삶을 반성하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하는 말(특히 목회자가 하는 말)을 신뢰하거나 아멘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성령께서 통역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에는 그것을 거역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넷째, 자신이 지금 어떤 영적 상태에 있는지 방언기도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동시에 자신의 삶이 현재 일치하고 있는가를 확인해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약 그가 충성되고 회개하고 있는 성도라고 가정한다면, 그 사람의 영은 보통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을까요?

 

4. 그가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겸손하며 평소에 회개하는 성도라면 방언통역을 받아볼 필요는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에게서 방언통역을 해보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그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가 어떤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를 확인해볼 수가 있어 좋기는 합니다. 보통 충성되고 겸소하며 평소에 회개를 잘 하는 성도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에는 대체로 이러한 기도를 드립니다. 첫째, 감사의 기도입니다.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인데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 주시고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 소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해지도록 도와달라고 충성되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셋째, 사명과 책임의 기도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부여한 사명과 책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한 것에는 가족구원을 위한 기도, 교회와 목회자를 위한 기도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까지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가 만약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며 성령을 거슬러 살고 있는 자들이 있다면, 그때 성령께서는 그에게 어떤 말씀을 하는 계시는 것일까요?

 

5. 안타깝게도 현재 약 70~80%의 성도들은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 혹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의 방언을 통역해보면, 다음의 경우처럼 성령께서 책망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을 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조금 한 것을 가지고 자기자신을 높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의 종이나 다른 성도들을 비방하는 자들의 무리에 함께 끼어서도 아니 된다고 하십니다. 의식주 때문에 사명을 망각하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주에 매달려 있음을 책망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겸손하라고 하십니다. 충성하라고 하십니다.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라고 하십니다. 둘째, 자신이 잘못 행하고 있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진작 그에게 징계를 내려야 했지만 회개하기를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지금이라도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그렇습니다.자신이 분명 거듭난 성도가 되어,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까지 행하는 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며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는 자는 방언통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자에게 성령의 음성은 그를 회개를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에게는 죄에 대한 지적이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만약 평소 때 회개하는 삶을 살고, 성령께 귀기울이며 살고 있다면, 사실 그런 자들에게는 방언통역이 필요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자는 방언통역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 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는 있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9년 3월 22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