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2)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2)(행2:5~13)_2022-06-17(금)

https://youtu.be/Fj2qfKVFPHs  [혹은 https://tv.naver.com/v/27450516 ]

 

1. 방언 통역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방언 통역의 은사란 남이 하는 방언을 들었을 때 그것을 알아듣는 은사를 가리킨다. 보통은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자국의 언어로 들린다. 하지만 그 내용의 전반적인 것이 깨달아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상대방이 방언으로 말하는 소리를 듣지만 자기의 언어로 들리므로 그것을 알아듣게 되는 것이다. 

 

2. 오순절날, 예루살렘 마가 다락방에 나타난 방언 통역의 은사는 어떤 것이었는가?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순수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전무하였다. 그들을 회개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남은 자들이었다. 사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였고, 또한 주님의 승천까지 보았던 자들이 적어도 성인 남자만 500여명이 넘었지만 그중에 380명은 떨어져 나갔고, 오직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120명의 성도들만 남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뒤에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그들의 방언 소리를 듣고 몰려든 군중들의 놀라운 반응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침 9시경에 마가 다락방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들었던 말은 자기가 태어난 곳 곧 헬라 지역의 지방말이었다. 소문을 듣기로는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고, 또한 그들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헬라 지역의 지방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20명의 성도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글로싸')을 말하고 있었지만 듣는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 고국의 지방말('디아레크토스')로 듣고 있었던 것이다. 

 

3. 15개국의 헬라파 유대인들은 대체 어떤 것을 들은 것인가?

  오순절을 지키러 왔던 15개국의 사람들은 그날 갈릴리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귀에는 그들이 하는 말인 자기들의 고국 언어였다.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지방말이었던 것이다. 배우지 않은 갈릴리 사람들이 외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입에서부터 나왔던 그들의 감탄사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행2:11[직역] 그레데인들과 아라비아인들이다. 우리가 우리의 각 방언('글로써')로 하나님의 위대한(엄청난, 장엄한) 일들을 발설하고 있는 것을 듣는도다

  그럼, 그들이 그때 들었던 방언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한 계획과 섭리 그리고 그동안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과 그 의미였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얼음이 되어 있었다. 

 

4. 방언 통역을 해 보면 주로 어떤 내용인가?

  방언 통역을 해 보면 방언하는 자가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고 있는지가 나온다. 그런데 오늘날 방언 통역하는 분들의 수준이 너무나 낮은 탓에, 정말 영이 말하는 비밀과 영의 기도를 정확히 통역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은사들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정말 순수하고 깨끗하고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방언 통역의 은사를 경험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 앞에 모두가 감탄한 채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방언의 내용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주님의 신령한 말씀이요 자신의 영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언의 내용은 주로 어떤 것인가? 방언의 주된 내용은 평신도와 목회자에게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평신도는 기도하는 것이 많다면, 주의 종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예언)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신도의 경우에는 이렇다. 아내에게는 남편을 머리로 알고 복종하라는 통역이 많이 나온다. 자식들에게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나온다. 교회의 장로들에게는 목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권사들에게는 그들이 시험에 흔들리지 않고 기도해 준 것에 대해 고맙다는 주님의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들었고 보았기에 반드시 그날에 심은대로 갚아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목회자에게는 어떤 내용이 나오는가? 주로, 그가 복음 전파의 길을 가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는데 지금 어떤 단계에 있는지를 알려 준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이 제대로 될 수만 있으면 너무나 유익하고 유익한 것이 방언 통역인 것이다. 

 

5. 방언이 어떻게 복음 전파에 활용될 수 있는가?

  방언 자체는 복음 전파에 활용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하면 자신의 영을 건축할 수 있기에 유익하지만 그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또한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음에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방언하는 자는 방언 통역을 해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타락하고 기도에 집중하는 사람이 적은 시대가 된 까닭에 온전한 방언통역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온전한 방언 통역을 들을 수 있다면 모두들 하나님의 놀라운 일에 감탄하고 순복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은 통역만 제대로 되면 거의 예언과도 같은 기능을 수행하여 그 사람에게 권면하고 책망하고 폭로하고 가르치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지 않는 듯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다는 것이 방언 통역 가운데 다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불순종한 것을 책망하고 죄를 폭로하여서 방언을 하는 자로 하여금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개인을 세우기 위해서, 가정을 세우기 위해,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이 온전한 방언 통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방언은 매우 유익한 성령의 은사임에 틀림없다. 특히 개인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통로가 바로 방언 통역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방언 통역을 받아 본 자들은 스스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명자의 길과 평신도의 길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주의 종들을 사랑하는지도 알게 된다. 이처럼 방언 통역이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전달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데에는 방언 통역만큼 좋은 것이 없을 정도다.

  방언,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고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방언은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비밀을 말하는 영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과연 방언 통역자가 깨끗한 상태에서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말로 방언 통역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그렇게 되면 반드시 기도에 집중하되, 회개 기도를 많이 하여 방언 통로의 길을 깨끗하게 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차라리 방언 통역의 은사를 받지 않는 것이 낫다. 방언이나 방언 통역의 은사는 말의 은사이자 기도하라고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까지 건축하는 데 유익한 은사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욱더 회개에 집중하여 자신을 깨끗이 하는 데에 더욱더 노력하자.  

 

2022년 06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활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01)(행2:5~13)_2022-06-16(목)

https://youtu.be/Dj0meeD1FXM  [혹은 https://tv.naver.com/v/27450228 ]

 

1. 오순절날 방언이 복음전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순절 방언이 120명의 성도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구약 시대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사람의 영 속에 들어가니까 사람의 영에게 생명이 공급되고 생명이 공급되니 영이 살아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영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처음으로 방언이 터져 나올 때 그 방언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종류의 전혀 딴 언어로서 영의 언어였다. 고린도전서 14:2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바로 그 '글로싸'가 터진 것이다.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고 하나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 언어를 알아듣게 하시는 은사를 주셨다. 그래서 듣는 이들이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는데 자기들이 태어난 곳의 지방말로 방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이한 일 앞에 놀라고 있었다. 

 

2. 오늘날 방언에 대해서 어떤 주장들이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 방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그것은 보통 3종류다. 첫째는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지방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1개국에서 찾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사용하던 언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순절날 터져 나온 방언(글로싸) 처음부터 지방말(디아레크토스)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 들어와서는 인터넷 온라인 상에서 많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마지막 사명'의 앤드류 강이 주장하는 바이다. 둘째는 방언은 헛소리 지껄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데 이것을 방언의 은사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방언은 귀신 소리요 마귀 방언이요 고린도 현상이라는 것이다. 방언은 고린도에서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으로서 그것은 이방신의 영향으로 나타난 귀신 소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통독 사경회를 개최하였던 우리 교회(통합측)의 원로 목사님의 주장이다. 그럼, 어떤 주장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이 이렇다고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회개와 천국복음에서는 성경에 나온대로 '방언'(글로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표적이요(막16:17~18),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바,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요 하나님과의 대화 채널이라고 본다. 글로(방언)가 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인지에 관하여서는 본 교회 홈페이지 "유튜브방송설교"란의 "성령의 은사(28강)" 참고하기 바란다. 

 

3. 방언과 맞물려 꼭 필요한 은사는 무엇인가?

  방언과 더불어 꼭 필요한 은사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방언 통역'의 은사다. 사도 바울은 바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역하기를 기도하라고 말하였다(고전14:13). 방언을 하지만 만약 통역이 없다면, 방언의 은사는 예언의 은사만 못하다고 하였다(고전14:5).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자는 자기의 영이 무슨 말로 기도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를 방언 통역을 통해서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4. 방언 통역을 해 보면 그 내용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방언을 통역해 보면 어떤 내용으로 영이 말하고 있을까? 방언 통역은 사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영적인 수준에 따라 방언 통역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수준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똑같은 방언을 들려주어도 통역하는 분의 영적 수준에 따라 방언 통역이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을 받으려면 제대로 방언 통역을 할 수 있는 분을 만나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아예 방언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개인의 영을 건축하고 재건하고 복구하기 위해서는 방언이 참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고전14:4). 왜냐하면 방언을 하면 자기의 덕을 세운다고 사도 바울이 말했는데, 이 단어는 '오이코도메오'라는 단어로서, 그 뜻이 '짓다. 건축하다'. '세우다. 설립하다', '재건하다. 다시 세우다', '복구하다. 복원하다'의 뜻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시대에도 온전한 방언 통역을 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방언 통역으로 공개한다"는 책을 쓰신 송재근 목사 유순자 사모님은 2013년까지 43년 동안 약 1,000회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약 20만 명 이상의 방언 통역을 해 오신 분들이다. 이분들 말에 따르면, 방언의 내용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이것은 방언의 약 10~20% 정도를 차지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인데, 그때에는 주님(정확히는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이것은 약 80~90%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요, 일반 평신도는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의 분량이 훨씬 더 많다. 

 

5. 방언 통역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방언 통역은 일반적으로 2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하나는 방언하는 자가 방언을 하면 그것을 멈추게 하고 방언 통역자가 방언 통역을 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방언하고 방언 통역하고' 이런 식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는 방언을 하게 하고 방언 통역자는 직독직해로 계속해서 방언 통역을 하는 것이다. 후자가 훨씬 더 영적 수준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 통역자들은 어떻게 방언 통역을 하는가? 그것도 2가지 형태인데, 하나는 상대방이 방언하는 것을 들어 보면 그 내용이 무슨 내용이라는 것이 떠오르는 형태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는 실수가 많다. 자기의 생각이 많이 가미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방언하는 자의 말이 자기의 언어로 들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그대로 말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의 단점은 상대방의 허물을 폭로하는 경우, 공동체가 방언하는 자의 죄를 듣고 심한 충격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를 그대로 말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순자 사모님 같은 경우는 그것을 그 사람만 아는 것으로 바꿔서 통역해 달라고 요청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은 그것이 제대로 될 수 있으면,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매우 유익한 채널이 될 수 있다. 

 

2022년 06월 16일(목)

정병진목사

 

 

왜 방언으로 말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가? 왜 방언을 수십년간 말해왔어도 나쁜 성격은 없어지지 아니하는가? 왜 죄를 끊지 못하는가? 그러다가 자신이 마귀의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왜 그러한 행위를 계속 지속하는가? 사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라는 것은 맞지만 방언기도의 내용을 알지 못한 채 수십년을 방언으로 기도한들 결국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자는 자신의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과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방언통역이 알려줄 것이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방언통역은 귀하고 귀하다 하겠다. 하지만 방언통역을 해보지 않고서도 자신의 영의 기도와 자신의 마음의 기도가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자는 굳이 방언통역을 해보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하는 영의 기도와 자신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같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자신이 영으로 드리는 기도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같이 가게 할 수 있을까? 오늘은 그것을 알아보자.

2019-03-24 주일낮예배
제목: 방언통역을 통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고전14:13~15)
https://youtu.be/0VUkMxbUNao


1. 들어가며

  오늘날에 대한민국에 있는 교인들을 가운데 약 250만명 정도가 방언을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만해도 무슨 신령한 사람이나 기도 많이 하는 사람만 방언을 하는 줄 알았는데, 사도행전에 보니 예수님을 믿고 그 영이 살아난 자에게 성령께서 부어지실 때 선물로서 방언을 말하게 한다고 나와 있다고 하자, 그때부터 누구든지 방언을 말하게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방언을 부정하거나 방언을 못하게 하는 교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언은 사도시대를 끝으로 끝났다든지 아니면 신약성경기록이 완성됨과 동시에 끝났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고전14장에 나오는 방언이 곧 행2장의 예루살렘교회의 방언과 같고, 그것은 또한 행10장의 고넬료가정의 방언과 같으며, 행19장의 에베소교회의 방언과 같다고 한다면(실제로 똑같은 '글로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방언은 알 수 없는 언어로 형태로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방언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사람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기에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통역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하는 영의 기도가 무슨 내용이며, 영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에는 영의 기도와 자신의 마음의 기도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의 영의 기도가 자신의 마음으로 기도와 일치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방언통역자를 만나지 못해 방언통역을 못해보았기 때문이요, 또 다른 이유들이 더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내 영의 기도(방언기도)가 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와 일치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경험과 통계를 통해서 살펴보기를 원한다.

 

2. 방언은 어떤 것이며, 누가 받을 수 있는 성령의 은사인가?

  먼저 방언이 어떤 것인지 간단히 정리해보자. 방언은 고전14:2와 고전14:14에 따르면, 거듭난 사람이 자신의 영으로 하나님께 비밀들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영의 기도다. 하지만 그것이 영의 언어인지라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라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다. 다시 말해, 이 세상에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언어가 아닌 전혀 별개의 말이 바로 방언인 것이다.

 그렇다면 방언은 누가 받을 수 있는가? 방언은 믿는 자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성령의 펴적이자 은사들 중 하나다(막16:17~18, 고전12:7~10). 사실 A.D.30년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성령께서 역사하는 방식이 달라졌는데, 이전에는 성령께서 사람 위에 내려오셔서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에는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시게 되었으며, 또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께서 위에 부어질 때에는 선물들이 동시에 주어지는데, 그것을 일컬어, "성령의 은사들"이라고 말한다. 방언의 성령의 기본적인 9가지 은사들 중의 하나다. 하지만 방언은 성령의 은사들 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은사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내려오시면 나타나는 놀라운 현상들이 있었는데, 그것에는 능력, 지도력, 치유, 예언 등이 나타났지만 오순절 이후에 매우 특별한 현상이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방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약시대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은사가 방언이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순절 이후에 방언의 은사가 특별히 새롭게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사람의 영이 살아남으로 살아난 영이 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예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셨고 그리고 당신 대신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은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셨으니(고전15:45),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 들어오실 때에 하나님의 생명도 가지고 들어오시게 되었다. 그러므로 없던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영 속에 더해지자 죽었던 사람의 영이 말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방언이다. 그러므로 방언은 오순절이후에 나타난 특별한 은사임에 틀림없다.

 

3. 방언의 은사의 단점은 무엇이며, 방언의 내용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런데 방언에도 단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그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고전14:2).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반드시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고전14:13). 그러나 오늘날까지 방언을 제대로 통역해주는 사람이 얼마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방언통역은 영감으로 그 사람의 영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초자연적으로 그 사람의 입술로 통해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고 말하게 하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방언통역자를 통해서 수십년간의 방언을 통역했던 내용들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놀라운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방언은 그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감사의 기도다. 자신이 구원받게 된 것, 지금도 주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 것,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간구와 중보하는 기도를 드린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가족구원을 위해 정말로 열심히 기도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기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주의 종들을 위해,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하며, 더 나아가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세계에 흩어져 선교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둘째, 그런데 방언은 놀랍게도 사람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 성령께서 그의 영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도 방언의 약 80~90%가 성령께서 그의 영에게 말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성령께서 그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사람의 영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하신다.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잘 견디고 있으며, 눈물로 간구하는 모든 기도를 다 듣고 있다고 위로하며 격려하신다. 또 하나는 책망과 권고와 경고의 말씀도 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책망과 권고와 경고의 말씀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그만큼 방언을 말하고 있는 자라도 죄를 짓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4. 방언을 수십년간 말해도 소용없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수믿는 자들이 외적인 성령세례를 간구하여 방언의 은사를 받고 있다. 하루에 여러 시간을 그리고 수십년을 그렇게 기도해온 분들도 많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방언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들은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물음표라는 것이다. 왜 그랬런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수많은 시간을 방언으로 말했지만 방언통역을 제대로 받아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언을 받기까지는 정말 간절히 기도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방언으로 기도해봤자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으니, 방언기도도 시들해지고 어떤 분들은 방언을 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방언을 말하게 되면 자신의 삶이 저절로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방언통역을 통해서 자신의 영이 무슨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를 알고, 성령께서 자신에게 무슨 책망과 권고를 하시는지를 알아야 고칠 것은 고치고,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에 충실할 수 있을텐데, 그것을 알지 못하니 그만 신앙도 시들해지고, 더 아나가서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쌓이다 보면 어느날부터는 본인이 교회에서 마귀짓을 하는 것이다. 이간질시키고, 싸움붙이고, 비방하고, 목회자를 비난하며, 나중에는 목회자를 쫓아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다 방언을 말하지 않는 사람일까? 아니다. 방언을 말해도 자신이 방언의 내용을 통역으로 알아듣고 회개할 때에 비로소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지,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만 계속해서 말하니 그의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방언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 뒤 회개생활을 하지 않고있고, 구원에 보답하는 보은의 삶을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기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세미한 음성에 주의하면서 죄를 지적하면 즉시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해준 은혜로 어떻게 보은할까를 생각하지 않고 방언만 말하는 자는 자신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자들은 사실 방언을 말하지 못하거나 방언통역을 받아보지 못한 자보다 더 못하다.

 

5. 자신의 영의 기도와 자신의 마음의 기도가 일치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방언통역을 해서 방언의 내용을 들어보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정말 좋은 기도들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방언기도에는 하나도 악하거나 이기적인 기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은 자신을 아무리 미워하고 있고 핍박하고 있는 자라도 그를 용서해준다고 기도하고 있고 그를 위해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방언기도라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필자도 무려 25년이상을 방언통역이 없이 방언하면서 지내왔다. 그동안 한 번도 방언을 그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나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와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를 해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6년전 회개의 중요성과 보은의 중요성을 알고 기도한 끝에 2년이 지나서 처음으로 방언통역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내 영이 드리는 기도나 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나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방언통역을 받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방언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죄악상을 낱낱이 깨닫게되고 성령의 책망을 받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기를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로부터도 자신의 죄를 책망하는 설교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요, 회개없이는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와 자신이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일치하게 하려면 회개기도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해준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비록 방언을 통역해보지 않아도 내 영의 기도가 곧 내 마음의 기도와 동일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나오며

  고로 방언을 말하고 있지만 자신의 삶이 달라지지 않고 있는 자는 지금 자신의 영이 드리는 기도와 자신의 마음이 드리는 기도가 같지 않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런 자는 아무리 하루에 몇 시간씩, 수십년을 방언으로 기도해도 자신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자기 안에 들어오신 성령의 책망에 순종하여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하면 보답할까 기도하면서 그 은혜를 보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필수다. 그런 자의 방언기도는 곧 자신의 마음의 기도가 된다. 그런 자는 방언통역도 필요없다. 왜냐하면 이미 방언통역을 통해서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을 지금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으며,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혹시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방언통역을 받아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다만 몇 번이라고 제대로 된 방언통역을 받아보기를 바란다. 혹 방언이나 방언통역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분은 최소한 자기 안에서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날마다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구원의 은총에 보은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기를 바란다. 이것도 잘 안 된다면 적어도 주일 설교시간에 회개를 촉구하는 목회자의 지도를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어느날 회개의 영이 부어져서 회개함으로 내 영의 기도와 내 마음의 기도가 같은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2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가짜방언통역이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고전14:12~15)_2019-03-26(화)

https://youtu.be/HZONr81jhd4

 

1.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사람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하지만 A.D.30년 오순절이후 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순절이후에 성령이 오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선물(은사)은 대체 무엇입니까?

 

2.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사람 위에 내려오시면, 성령이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을 때에 놀라운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자는 능력을 받기도 하고, 어떤 자는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사실을 사람에게 말하기도 하여 사람들을 이끌어 가고, 어떤 자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며, 어떤 자는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도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없었습니다. 고로 방언으로 말한다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나타난 아주 특별한 은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방언의 은사는 믿는 자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하시게 되자, 죽었던 사람의 영이 살아나게 되는데, 그때 외적인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그냥 그 영이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터져나오는 것이 곧 "방언(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사람 안에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이미 살아난 영을 성령께서 터치하여 사람의 영으로 하여금 말하게 함에 따라 영이 말을 하는 것이 곧 "방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방언은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말하는 영의 언어이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고전14:2).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방언으로 말하게 된 자는 방언을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했습니다(고전14:13). 왜냐하면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자신의 영이 기도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마음은 전혀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입니다(고전14:14).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에는 방언으로 말하는 자는 무려 약250만명이라는 비공식적인 통계가 있습니다.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 방언통역을 하는 자는 대체 얼마나 될까요?

 

3. 정확히 조사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방언통역을 하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잘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언을 말하는 자는 많지만 방언통역을 하는 자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도 채 안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일각에서는 방언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 외국어이며, 이러한 외국어방언일지라도 사도들이 죽고 성경기록이 완성되자 중지되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불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성경이 말하는 방언이 아니라 고린도현상이요 귀신의 장난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입니까?

 

4. 충격적인 사실은 방언을 외국어라고 주장하는 분들 중에 이단에 속한 분들이 상당이 있다는 것입니다. 첫째, 안식일교회가 방언은 외국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는 여호와증인이 그렇게 주장합니다. 셋째는 침례교 중에서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하는 어느 교단이 그렇게 주장합니다. 넷째, 장로교 중에서 아직도 방언을 인정하지 않는 교단이나 그러한 목회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통교단에 속해 있는 분들 중에서도 방언을 외국어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떻게 되어서 방언이나 방언통역을 터부시하고 있는 것인가요?

 

5. 정통교단 사람들 중에서도 방언이나 방언통역을 터부시하는 이유는 방언통역을 하신다고 하는 분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많이 일으킨 분들이 있고, 또한 방언과 방언통역이 신비한 은사이니만큼 그것에 대해 잘 모르니까 가짜방언통역을 방언통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예 방언을 차단하는 교회와 목회자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유튜브방송이 발달하여, 방언통역하는 모습을 인터넷에 올려놓은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홍혜선전도사, 은혜로교회 신옥주목사 등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사도 빈야드 운동쪽에서 활동하는 분들 중에도 그러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통교회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 이것은 온전한 성령운동이 아니라고 판단하고는 방언이나 방언통역, 예언이나 치유사역 등을 아예 멀리하려는 분들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랴?"는 말이 있습니다. 방언은 성도들에게 유익한 점이 많고 방언통역도 매우 유익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것을 일부러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시는 분들은 꼭 방언통역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여겨집니다. 그것도 제대로 된 방언통역을 말이죠. 그렇다면, 어떤 방언통역이 진짜 방언통역인 것인가요? 그것은 내일 이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2019년 3월 26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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