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55) 마술사의 눈을 멀게 한 바울의 영권, 어디에서 난 것일까?(행13:4~12)_2022-10-13(목)

https://youtu.be/nKpL_K0bELI  [혹은 https://tv.naver.com/v/30214770 ]

 

1.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 장소로 선택한 곳은 어디였는가?

  성령의 지시에 따라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게 된다. 그리하여 바울과 바나나가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고서 선교여행을 떠난다. 그리하여 A.D.47~49년경 약 2년간 2,300km의 바울의 선교여행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맨 처음 선교지로 선택한 장소는 어디였을까? 그곳은 지중해의 섬 '구브로'였다. 구브로는 지중해에서 시실리, 그레데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인데, B.C.59년경에 로마에 의해 합병되어 로마 총독이 다스리던 섬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B.C.300년경부터 이미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 섬에 부임한 총독이라도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런데 이 섬은 바나바의 고향이었다(행4:36). 그래서 아마도 이 섬이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첫 번째 장소로 선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2. 첫 번째 선교지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

  바울의 1차 전도여행 가운데 첫 번째 선교지였던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기에 선교가 수월할 줄 알았으나, 실제는 그러지 않았다. 먼저 바울 일행은 안디옥에서 실루기아로 내려가 배를 타고 구브로로 향했고, 구브로의 동쪽 해안 항구도시인 '살라미'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에서 아무런 전도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자 바울 일행은 섬을 가로질러 가면서 복음을 전했지만 여전히 전도의 열매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섬의 서쪽 해안 항구도시인 '바보'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는 로마총독의 공관이 있었다. 거기서 바울은 자신과 이름이 동일한 로마의 지방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바울도 이때로부터 자신의 히브리식 이름이었던 '사울'에서 헬라식 이름인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헬라어를 잘 구사할 수 있었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바울은 자연스럽게 총독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총독도 유대인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바울이 전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기오 바울이 늘 자문관처럼 생각하고 있던 유대인 거짓 선지자 마술사 엘루마가 한사코 서기오 바울이 말씀을 듣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악한 영들의 방해가 있었던 것이다. 

 

3. 바울은 마술사 엘루마를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가?

  그러자 바울은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엘루마를 주시하였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했다. "모든 계교와 모든 교활이 충만한 이여, 마귀의 아들이여,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들을 비틀게 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치지 않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으로 있을 것이다. 어떤 시점까지는 해를 보지 못할 것이다."(행13:10~11) 그러자 즉시 침침함과 어둠 둘 다가 그에게 떨어졌다. 이에 그는 자신을 손잡아 이끌어 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그랬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권을 사용하여 악한 영에 붙들려 있던 마술사를 제압한 것이다. 그러자 깜짝 놀란 총독이 마술사 엘루마가 눈이 멀게 된 것을 보고는 주 예수님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주의 가르침을 따르기로 한다. 그리하여 그는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의 첫 열매가 된다. 

 

4. 왜 악한 영을 제압하는 데에 바울이 쓰임을 받았는가?

  그렇다면 바울 일행의 전도를 방해하던 마술사 엘루마를 왜 바나바가 아니라 바울이 제압해야 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 일을 하기에 바울이 적합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방 선교를 위해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선택한 사명자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물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큰 은사를 선물로 주시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디 그것 뿐이었을까? 바울은 또한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처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무려 10여 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 날을 기도하면서 준비해 왔다. 그러므로 이제 사도 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기도해 온 것들을 그대로 사역의 현장에서 펼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나바는 인격이 훌륭한 사람으로서, 인간관계를 잘 하는 사람이었다. 고로 그의 은사와 달란트는 악한 영을 제압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안디옥에서는 바나바가 훨씬 더 귀하게 쓰임받았지만, 선교 현장에서는 바울이 더 귀하게 쓰임받게 된 것이다. 

 

5. 바울의 영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렇다면 바울의 영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하나는 그에게 주어진 사명에 따른 은사에서 나온 것이라 판단되며, 또 하나는 그의 간절한 기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판단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용하시되 쓰실 그릇을 이미 천국에서 결정하여 이 땅에 보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그릇은 처음부터 어떤 특별한 은사가 그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이미 천국에서 보낼 때에 주신 은사대로 이 땅에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다메섹의 선지자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바울의 눈을 감고 있던 뱀을 제거해 주셨다.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에 사도 바울의 눈에서 뱀 비늘이 벗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그에게 처음부터 주어져 있던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마귀에게 붙들린 자를 주께로 인도하는 데에 특화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명자가 다 자신의 은사와 달란트를 십분 발휘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그에 따른 간절한 기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은사를 달라고 구하는 자에게 더 풍성한 은사를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울은 무려 10년 동안 기도의 내공을 쌓아왔던 자다. 그리고 선교여행을 떠났을 때에도 바울은 밤마다 기도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특히 고린도전서를 읽어 보면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기도를 더 많이 하면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전14:18). 사실 모든 영권은 방언의 은사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는 방언을 누구보다도 많이 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착실하게 영권을 쌓아갔고 선교 현장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따른 은사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영권이 발휘되는 것이다. 

 

2022년 10월 13일(목)

정병진목사

 

2022-09-11(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교회를 향한 바울의 그 장엄한 스케일의 기도(엡1:15~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LWLk-y6tGns  [혹은 https://tv.naver.com/v/29138576 ]

 

1. 들어가며

  신앙생활의 핵심은 역시 '말씀'과 '기도'다. 그런데 기도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가르쳐준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필요'를 위한 균형 잡힌 기도였고, 다윗의 기도 역시 '통성기도'와 '묵상기도'의 균형을 맞춘 기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과 다윗의 기도에 이어서 사도 바울의 기도에 대해 좀 살펴보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에베소 교회에게 보낸 회람편지에 나타난 그의 기도 곧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는 이 기도를 통해서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과연 성도들은 무엇을 소망해야 하며, 장차 천국에서 받을 것들은 대체 무엇이며, 이러한 것들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인가?

 

2. 신구약의 영성가들에는 과연 누가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2천년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성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사도 '바울'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구약시대의 최대 영성가들이었던 '모세'나 '다윗'보다도 더 나은 영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떠한 영성가였는가? 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다. 그리고 성막이 지어진 후부터는 수시로 성막의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뵈었언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얼굴은 항상 빛나고 있어서 수건으로 가려야 했다. 그러니 그의 영성은 대단한 것이었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모세는 저 하늘에 생명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책에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음을 알고 있었다(출32:32~33). 그리고 그는 천국에서의 시간개념도 알고 있었으니, 천 년이라는 기간도 밤의 한 순간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시90:4).

  그런데 '모세'보다도 더 영성이 깊은 구약의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다윗'이다. 그는 모세처럼 천국에 '행위책'과 '생명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시69:28, 56:8). 악인들은 결국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시69:28). 그리고 천국에서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찬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시116:13). 또한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아들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시2:7~8), 장차 1,000년 뒤에 이뤄질 일들을 환상으로 보았으니, 장차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사 원수를 발로 짓밟게 될 것도 보았다(시110:1). 그리고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성도들이 24개의 반차로 나뉘어져서, 그중 한 개의 반차가 올라와 예배드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제사장들을 24반차로 분류하였고(대상24:3~4), 레위인으로 구성된 찬양대도 24반차로 나누었으며, 찬양대의 숫자도 4,000명으로 조직하게 된다(대상25:9~31,23:5). 왜냐하면 천국에 있는 찬양대도 4,000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윗은 실로 놀라운 영성가였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다음에 뛰어난 영성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사도 '바울'을 꼽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방문을 수시로 받았으며(행26:16,23:11), 자기의 눈에서 뱀이 떠나가는 것을 경험하였고(행9:18), '낙원'과 '셋째 하늘'에도 다녀왔고(고후12:4,2), 영안이 열려 귀신을 보고 쫓아내었을 뿐만 아니라(행16;18) 죽은 자도 살려내었고(행20:7~12), 그의 앞치마와 손수건을 사람에게 얹으면 귀신도 떠나가도 병든 사람도 낫는 영성을 가졌던 것이다(행19:11~12). 더욱이 그는 성령의 9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들을 가졌으니 곧 지혜의 말씀이나 지식의 말씀, 방언, 예언, 방언통역, 병고침 등의 은사를 다 받아서 사역했던 위대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말년에 에베소에 보낸 편지 속에서 그는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사모해야 햘 신앙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기도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회람용 편지를 통해 성도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무엇이며,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성도들이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드렸던 기도 2가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그가 교회를 위해 비는 기도는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그 기도(엡1:17~19)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가 2가지 기도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했다(엡1:17). 여기서 '지혜와 계시의 영'이란 구원받은 이들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성령' 자체일 수도 있고,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은사'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성도라면 이것을 다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베소 성도들은 이 편지를 받을 때에 하나님을 잘 몰랐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없으면 성경을 읽어도 그리고 말씀을 들어도 잘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특히 그가 에베소서 1:1~14에서 제시한 하나님의 경륜을 보면,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떤 경륜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는지를 알 수 없음을 살펴볼 수 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에베소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시기를 기도했다(엡1:18~19).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은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이러한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성도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서 그것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의 눈도 밝아질 수 있기를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럼, 여기서 바울이 말했던 '마음의 눈'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사람에게는 사실 3가지 눈들이 있다. 첫째는 육안이다. 육체가 가지고 있는 눈이 있다. 이것을 통해 사람은 만물을 보게 된다. 둘째는 영안이 있다. 이는 영이 가진 눈으로서 영적인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이다. 이 눈이 열려지게 되면 영적인 존재들인 천사들이 보이고 귀신들이 보인다. 그리고 예수님도 볼 수 있고, 천국과 지옥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영안이 열려지는 은사를 받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영안을 열어주실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셋째는 심안이 있다. 마음의 눈이 있는 것이다. 마음의 눈은 영안과는 달리, 영적인 것들을 보지 않아도 영적인 것들의 존재를 믿으며 그것을 추구하게 하는 눈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가 심안 곧 마음의 눈이 열려지기를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심안으로 볼 수 있는 것에는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4. 하나님께서 장차 믿는 자들에게 주시려는 것 3가지는 무엇인가?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이 마음의 눈이 열려져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들을 다 받을 수 있기를 기도를 하였다(엡1:18~19). 이것들은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것들로서, 첫째는 '부르심의 소망'이 있다(엡1:18a).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과 그리고 사탄마귀로부터 불러내신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천국의 상속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세상에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그것도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유대인들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그도 유대인들과 함께 상속자가 될 수 있고 함께 지체가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엡3:6). 그러므로 우리는 늘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엡5:26~27). 

  둘째는 '상속의 풍성함'이 있다(엡1:18b). 이는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성도들에게 주실 상속분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이것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에게 상속해줄 것들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은 총 3가지다. 첫째로,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가 풍성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천국집'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국에 들어간 모든 성도가 다 똑같은 집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집을 짓는 위치가 각각 다르며, 집의 크기와 모양도 각각 다르며, 집의 인테리어도 각각 다르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러한 집을 약속하셨다. 천국에는 제자들이 거할 장소가 많으며, 가서 제자들을 위한 거처가 마련된다면 그때 다시 와서 그들을 영접할 것이라고 하셨다(요14:1~3). 그러므로 나 자신이 들어가서 영원히 거주할 처소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빛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면류관은 이 땅에서 충성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상인데, 이것은 성도들의 머리에 씌워주는 것이다. 성도들은 예배드리러 갈 때에 이것을 쓰고 간다. 어떤 사람은 1~2개의 면류관을 쓰고 가는 자도 있고 20가지가 넘는 면류관을 쓰고 가는 자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러한 면류관을 쓰지 못한 채 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은 빛나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얻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로, 144,000석의 보좌에 앉아 왕노릇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천국에는 144,000석의 보좌가 따로 준비되어 있다. 이 보좌는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왕노릇하는 성도들이 앉게 될 보좌로서,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들을 위해 마련해 두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보좌들 에 앉지 못하고 이 보좌 뒤에 서서 예배를 드린다. 그러므로 기왕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성도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이기는 자들이 되어 144,000석의 보좌에 앉아 왕노릇하는 성도들이 되기기를 소망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바로 이 세 가지 것들을 천국에서 상속분의 풍성함으로 누리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있다(엡1:19).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어떤 능력들을 준비해두셨는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신 것들로서 표현하셨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총 6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로, 죽은 자도 일으키는 부활의 능력이요, 둘째로, 낮은 자를 높은 곳에 앉게 하는 능력이요, 셋째로, 여러 종류의 천사들과 귀신들을 통치하는 능력이요, 넷째로, 최고의 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게 하는 능력이며, 다섯째로, 모든 만물을 복종케 하는 능력이자, 여섯째로, 모든 만물을 통제하는 능력이다(엡1:20~22a). 그렇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려는 능력이 실로 대단한 것이다. 그것은 오는 세상에서만 누리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부터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이것을 먼저 그리스도가 받아 누렸고, 교회는 그분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도 역시 그것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엡1:22b~23). 그렇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주시려는 능력도 역시 어마어마한 것이다. 

 

5.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은 우리가 어떻게 얻고 누리게 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이러한 여섯 가지 능력을 다 누리도록 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죽은 사람도 살리는 부활의 능력을 누구에게나 다 주신다고 해보자, 그럼 그것을 어디에 사용하겠는가? 만약 그가 그것을 받아 누릴만한 합당한 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통하여 그는 자기의 능력을 자랑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하시지만, 아무나 주시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누가 그것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준비된 자라야 한다. 그것을 받아서 오직 그리스도께서 부탁하신 일을 자신도 행하는 자들이 그것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받아 누리길 원한다면, 우리는 오늘부터라도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막16:15~18, 10:7, 막6:12). 이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그제야 끝이 온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인생들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오직 보이지 않는 다음 세계를 마음의 눈을 떠서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상속자로 참여할 수 있고, 하늘에 들어가서도 받아서 누리게 될 상속의 분량이 커지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복음전파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당신이 하는 일을 하게 하겠지만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요14:12). 그렇다. 우리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이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실로 어마어마한 능력을 준비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능력을 받아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그렇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 것을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얻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마련해서 주시고자 한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마음의 눈이 열려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말씀을 들어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고, 또한 그것을 얻기 위해 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을 한 마디로 딱 정리하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목표가 되는 것들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여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자들이 천국에서 받아 누릴 영광스런 복들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먼저는 이것들을 사모하고 얻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천국복음을 전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지만, 천국에서 누릴 상속분은 우리가 얼마나 이 땅에서 충성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천국에서 누릴 영광의 분량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그것을 사모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놓고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힘쓰라고 하였다. 그렇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듣는 순간부터 도전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부터라도 하늘에서 받을 엄청난 상속분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그 다음날이 더 풍성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서 면류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 감격적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9월 11일(주일)

정병진목사

 

바울의 영성은 깊고도 높다. 아마도 이 세상에 살다간 사람들 중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이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그가 권면하는 성도의 바람직한 영성은 어떤 것인가? 그는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을 제일 귀하게 여겼는가? 그는 그것을 대체 어떻게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였는가? 그는 변화된 새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의 핵심은 속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누구도 말하지 않은 하늘에 속한 사람을 언급한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가 받은 영성과 그가 귀하게 여긴 교회의 가장 큰 핵심가치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자.

2020-12-30(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0) 바울의 기도에 나타난 영성과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는 법(엡4:14~4: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7y0e9bIf4k [혹은  https://tv.naver.com/v/17583924 ]

 

 

1. 들어가며

  사도바울은 제4차전도여행(로마여행) 중 로마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 편지는 어떤 개교회에 보내어진 것이 아니라 회람용 서신으로서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읽혀질 것을 기대하고 쓴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편지는 개교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교회가 어떤 경륜에 따라 탄생하였고 성장해야 하는지를 깊이있게 서술하였다. 그는 이러한 서술에 함에 있어서, 자신이 받은 계시가 교회에 관한 계시인 것을 소개하였다. 그것이 바로 1장에서 3장까지의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3장 후반부에는 성도를 향한 그의 두번째 기도가 나오는데(엡3:14~21), 그는 여기서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간구하며,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네 가지 차원의 그리스도의 풍성이 충만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4장부터 교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기초로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바울의 두번째 기도에 나오는 그의 영성과 더불어 교회생활의 가장 기초가 되는 하나됨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 대해 함께 살펴보기를 원한다. 

 

2. 에베소 성도를 향한 바울의 두번째 기도는 무엇인가?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두 번의 기도를 올린다. 하나는 엡1:15~23까지인데, 여기서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그들의 마음의 눈이 밝혀져서 첫째,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둘째, 성도들 안에서 그분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셋재, 그분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이에게 베풀어주시는 지극히 크심이 어떻한지를 알기를 간구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본문 말씀의 앞부분(엡3:14~21)으로서,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영)이 강건하게 되고, 이미 내주하여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혼의 영역까지도 모두 차지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사차원의 영성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충만케 되기를 간구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3.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충만함의 차이는 무엇인가?

   에베소에는 몇가지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용어들을 잘 이해하고 있을 때 우리에게 에베소서는 더 풍성한 책이 된다. 그것들 중에서 "풍성"이라는 단어와 "충만"이라는 단어가 에베소서 참 많이 나온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3: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런데 이러한 "풍성"에도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풍성"이 있고(엡3:16),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있다(엡2:7). 하나님의 풍성하심은 하나님의 어떠하심 곧 신성의 어떠하심이 풍성하다는 뜻이지만, 그리스도의 풍성하심은 그리스도의 어떠하심 곧 신성에다가 인성을 결합한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풍성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얼마나 풍성한 분이신가? 구약성경에 보면 우리는 예표와 상징과 사건과 예언 등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풍성한 분이심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창3:15에서는 그리스도가 남자의 씨에서 나올 것이 아니라 "여자의 씨"에서 나온다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민수기21장에 가면, 우리를 이 땅에 유월절 양(출12장)으로 오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 놋뱀 사건으로 예표되어 있다. 그리고 안식일은 예수님의 그림자에 해당한다(골2:16~17). 이러한 풍성들이 성령을 통하여 채워질 때 모든 성도들은 속사람이 강건하게 된다(엡3:16).

  그렇다면, "충만"이란 또 무엇인가? 특별히 사도바울은 교회를 정의하기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하나님)의 충만함이라고 했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에 대한 표현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충만에도 "하나님의 충만"(엡:13, 3:19)이 있고, "그리스도의 충만"(엡4;13)이 있다.

  그렇다면 풍성과 충만의 어떤 차이가 있는가? 풍성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이 우리의 밖에 많이 널려 있는 것을 가리킨. 그런데 충만은 그것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공간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풍성함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은 과정을 거쳐서 우리의 것이 되는데 이때 그리스도의 풍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풍성은 우리 안에 들어올 때에 비로소 우리는 누리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될 수 있다. 

 

4. 바울이 말하는 "속사람"과 "새사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바울은 에베소서서 "속사람"(엡3:16)과 "새사람"(엡2:15,4:24)을 언급한다. 여기서 '속사람'의 반대는 '겉사람'이고(고후4:16), '새사람'의 반대는 '옛사람"이다. 그럼, 속사람과 컽사람은 무엇을 지칭하는 말인가? 여기서 속사람은 우리 속에 있는 사람을 뜻하고, 겉사람은 우리의 밖에 있는 사람을 칭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의 내면에 들어있어서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사람이 있는 이것을 "영의 사람"이라고 부르며, 이것을 일컬어 "속사람"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한편, "새 사람"은 옛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와 반대적인 개념은 옛사람은 예수 믿기 전에 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몸과 혼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자기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아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아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두번째 간구에서 등장하는 "속사람"은 사람의 내면에 들어있는 "영의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과연 사람은 자기속에 속사람이 있다고 것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속사람도 우리와 똑같이 생겼으며, 그도 눈이 달려 있어 그것으로 볼 수 있고, 귀가 달려있어 그것으로 들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엘리사의 종 게하시는 자신의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상태로 있었다. 그래서 아람나라의 수많은 군사들을 보고 기겁을 하였다. 하지만 엘리사는 게하시의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돕는 천사가 도단성을 둘러 진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자 영안이 열려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순간에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아람나라의 군사숫자보다 영안으로 보고 있는 군사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속사람으로 능력으로 강건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 시작된다(엡3:16). 그런데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시어 우리 안에 영으로 들어오신 분이시다. 이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안에 내주하시는데, 영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이제 마음에 거주하도록 할 때에 속사람은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마음"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마음이란 우리가 가진 중요기관으로서, 사랑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은 영의 양심의 기능과 더불어 혼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결합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고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 뿐만 아니라 혼까지 장악하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 그가 영이 강건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그리스도의 사차원의 영적 분량과 그러한 기도의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바울은 이어서 기도하기를 모든 성도들이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바라다(엡3:8). 그리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넓이와 길이, 그리스도의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원 한다고 기도하였다(엡3:9). 사실 그리스도는 매우 넓으며 그 스펙트럼이 매우 길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매우 깊고 또한 매우 높다. 그리고 이렇게 큰 입방체 안에 그리스도의 성분이 가득채워지면 우리는 그를 "성령충만"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의 기도는 응답도 잘 된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이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6.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지키는 방법은 무엇인가?(엡4:1~3)

  바울은 이제 그의 두번째 기도에 이어, 어떻게 하면 교회생활이 정상적으로 잘 작동되는지를 권면한다. 그것은 성령이 하나이신 것처럼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때에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어떻게 성도들을 하나가 되게 하시는가?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면서, 그리스도의 4가지 성품으로 변화될 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첫째로, 겸손함이다. 자기를 낮추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모든 성도들 안에는 공통분모로 성령께서 거주하고 계신다. 하지만 각자의 성품은 다르다. 생각과 감정과 의지 곧 각가의 혼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각각 다른 혼들이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의 첫째가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내려놓지 아니하고 자신을 높이려 하면 교회는 성령의 하나를 지켜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 오늘날에 교회에 분열이 생기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겸손함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온유하심이란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가리킨다. 혈기와 분노로 표출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이 각자의 혼들을 주장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겸손과 온유는 그리스도의 2대 성품이라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마11:29). 그리고 세번째와 네번째의 성품도 필요하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를 지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래참는 것이며 사랑으로 서로를 용납하는 것이다.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급해서도 아니되며, 혈기를 내고 분노해서도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적인 사랑으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각자가 다른 혼들(생각과 감정과 의지)을 소유하고 있지만 교회의 일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평강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강은 그리스도의 4가지 성품이 교회의 구성원들 각자로부터 표출되어 나올 때 얻을 수 있는 최종적인 열매인 것이다. 천연적인 인성을 가지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지켜낼 수는 없는 것이다. 

 

7. 교회가 강력해지기 위해 필요한 7가지의 하나는 무엇인가?(엡4:4~6)

  그렇다면, 교회가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강력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들을 지켜야야 하는가? 그것은 7가지 하나를 지킬 때다. 바울은 하나인 것을 총 7가지로 소개하였다. 그것은 몸이 하나요, 영이 하나이며, 소망이 하나요 주가 하나이며, 믿음이 하나요 세례가 하나이며,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7가지 하나는 다시 셋 셋 하나로 구분된다. 성도는 먼저 한 몸과 한 영과 한 소망을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성령을 붙들 때 가능하다. 그리고 성도는 둘째로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세례를 가져야 하는데, 이것은 주되신 예수님을 붙들 때가 가능하다. 그리고 성도는 한 분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과하여 계시고, 만유 안에 있을 때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시간관계상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한다. 

 

8. 나오며

  사도바울의 기도를 보면, 그는 육체적인 어떤 것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면하지 않았다. 그것은 잠시 잠깐 있는 것들로 썩어없어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다른 생명체와는 달리 물질세계에만 소속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영의 세계와 물질세계의 양쪽에 소속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들은 영으로서 영의 세계에 속한 것들을 접촉할 수 있으며, 육으로서 물질세계에 속한 것들도 접촉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물질세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세계의 사람들을 얻으려 하신다. 그 방법은 교회를 통하여서다. 그리스도의 풍성함이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표현된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상속자를 얻으려 하시고, 하늘에 속한 지체들을 찾고 계시며, 하늘에 속한 약속들을 성취해 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온전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각자의 속사람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하나될 때 가능해진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마음에 내주하시게 함으로 가능하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킬 때에 가능해진다. 지금은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변화된 성품에 참여하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다. 건투를 빈다. 

 

 

2020년 12월 30일(수)

정병진목사

 

 

하나님에게는 감추어진 비밀이 있었다. 바울이 이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는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바칠을 만큼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과 계시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이미 안 채 있는 바울의 기도는 어떤 것이었을까? 바울의 기도는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기도와 어떤 차이가 많이 난다. 여기 그의 깊이있는 영성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메시지가 있다.

2020-12-16(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09)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와 바울의 두번째 기도(엡3:1~13)_2020-12-16(수)
https://youtu.be/JDiyvzUvkRs  [혹은 https://tv.naver.com/v/17278413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성경66권 중에서 가장 심오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는 창세전의 시간으로 넘어가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무려 구약시대 4천년간 숨겨두었던 비밀들을 계시를 통해 공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은 에베소서라 일컬을 수 있는 골로새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숨겨진 비밀"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숨겨진 비밀"은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것은 왜 천사들도 몰랐던 것인가? 심지어 지혜로 보았을 때 하나님 다음가는 천사장 루시엘도 그것을 몰랐었던 것 같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아버지께 올려드린다. 그래서 오늘은 에베소서에 나오는 가장 심오한 말씀인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정리해보고 이어서,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두번째 기도를 통하여 교회가 추구해야 할 기도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바울이 전달하려고 했던 핵심 키워드들(예를 들어, 속사람과 겉사람 등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그리스도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풍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말했다(엡1:23). 그리고 에베소서 3장에 들어와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풍성"이라고 말했다(엡3:8).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풍성의 차이는 무엇인가? 얼핏 보기에 두 문구는 거의 같은 뜻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것은 장소와 공간에 있어서의 차이다.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했을 때에는 어떤 제한된 크기의 그릇 안에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가득히 채워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면, "그리스도의 풍성"은 넓은 공간에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이 진열되어 있는데 아주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내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충만"의 표현이며, 외부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풍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진정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면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 가득 채운 그리스도의 충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진정 주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만 우리는 우리의 외부를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으로 진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외부에는 그리스도이 이미 이루어지놓으신 풍성함으로 가득하다. 첫째는 그분의 낮아지심과 겸손이 성육신으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둘째는 그분의 희생과 사랑은 그분의 십자가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그분의 초월하심과 높아지심과 권세있음은 그분의 부활과 그분의 승천과 그분의 보좌에 앉으심으로부터 왔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 외부에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반대로 교회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속성들이 충만히 채워질 때 우리는 몸된 교회가 그리스도의 체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교회를 통하여 비로소 높은 계급의 천사들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지혜는 대체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천사들에게 하나님의 각종지혜가 알려졌다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 곁에서 하나님께 수종들던 천사들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비밀은 교회다. 천사들의 생각에 사실 하나님의 아들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여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지기까지 천사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 듣던 신분이름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시험하고 싶었다. 겉으로 보기는 40일 금식을 통하여 피골이 상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예수께서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그리하여 마귀는 마치 조폭세계의 경우처럼 예수님을 상전으로 떠받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쫓겨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잠시 예수님의 곁을 떠나 와신상담하기 시작하였고 중국에 가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지도자들과 군중을 꼬드겨 선동하여서 사람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는 파렴치한 행각을 저지른다. 그들의 생각에는 예수님만 죽고 없었지만 모든 것이 자기들 세상차지가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법적으로 사망권세를 사용한 마귀는 그때로부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내주어야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3년반이라는 대환난이라는 기간동안) 예수께서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권세를 믿는 성도들에게 허락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일 때에 마귀고 흠모할만한 특권을 받아누릴 수가 있게된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자기들의 오히려 사망권세를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결코 둘째아담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예수님을 그렇게 대우했기에 그들은 무장해제당했고, 사탄마귀는 오늘날까지 무저갱에 갇혀 지내고 있다. 다만 거기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올려보내서 자기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있는 귀신들이라 할지라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들은 이미 "진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회개하고 이긴 자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가면 귀신도 떠나간다는 사실이다. 

 

4.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며 천국마을까지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누구인가?

  바울은 이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무릎을 꿇은 채 두번째 기도를 드린다(엡3:14~15). 그런데 이때 그가 기도하는 대상은 이렇다. "하늘들과 땅 위에 있는 각 족속(종족)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다(엡3:14b~15a).

  첫째, 그는 아버지께 기도를 했다. 어떤 사람은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기도할 때에 "여호와여"라는 기도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무섭고 엄위하고 심판하시고 공의로우셨던 여호와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한 분 하나님께서 이제 육신을 입고 예수님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신성만 가지신 그분을 우리는 '아버지'라고 부르며,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그분을 우리는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동일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님으로서 계시는 예수님에게 기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더 명확하게 하려면 우리는 "아버지"에게 기도해야 한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를 보라.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주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마을에 이름을 주신 것처럼, 천국에 들어가서 사는 성도들의 마을의 이름도 지어주셨다고 했다. 사실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늘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가면,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마을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마을, 이삭마을, 다윗마을, 다니엘마을, 세례요한마을, 베드로마을, 바울마을, 스데반 마을 등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에 자기들이 들어갈 마을은 그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자기 가문의 사람들을 예수믿게 했다면 그는 아브라함 마을에 들어갈 것이고, 순종하여 온유함으로 살았던 사람은 이삭 마을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날마다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천국을 전하는 자는 세례요한의 마을에 입성하게 되는 것이다. 바울도 아마 자기가 들어가서 살 마을에 미리 가 본 것 같다. 

 

5. 속사람의 강건함을 위한 바울의 기도는 어떠한 것이었는가?

  이제 바울은 에베소 성도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데, 그 내용을 보면 총 4가지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을 통하여 그들 속사람을 능력있게 강건하게 하시기를 간구했다. 둘째,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들 마음 안에 계시기를 간구했다. 셋째, 모든 성도들과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간구했다. 넷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닫기를 간구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첫번쨀포 간구했던 에베소 성도들의 "속사람"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바울은 자신의 서신서에서 "속사람"에 대해서 3번 언급하였다. 그것은 로마서에서 1번, 고린도후서에서 1번, 에베소서에서 한 번이다.

롬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엡3: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그렇다면, 바울이 강건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속사람"이라는 대체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고후4:16에 의하면, "겉사람"을 반대되는 개념이다. 사람에게는 밖으로 사람이 있고 안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전했던 말을 요약하면, 겉사람은 몸을 기관으로 삼고 혼생명(생각과 감정과 의지)을 인격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육체에 죄된 본성이 들어와 있는데 혼생명이 그것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속사람은 영의 사람을 가리킨다. 특별히 바울은 영의 사람을 언급할 때에는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여 성령과 자신의 영이 하나된 영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영의 사람은 성장이 가능하다. 영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되어지만 영도 나이를 먹듯이 성장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엄마의 뱃속에서 사람이 잉태될 때, 육체는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받아 만들어지지만(물론 이것도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다), 영은 천국에 있는 영이 이 땅으로 내려와서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에서 보내어진 영도 나이가 있다. 그래서 좀 더 성숙한 영이 오기도 하고 어린이의 영이 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이가 아주 작은 어린이의 영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면 이 사람은 징징거리는 스타일이 나타난다. 그렇지만 영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자라게 된다. 그러면 성숙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이미 성령을 받아 자신의 영과 하나가 된 사람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아 더 성숙해지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6. 나오며

   신구약 66권 중에서 에베소서처럼 심오한 책은 사실상 없다. 그만큼 에베소서는 성숙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이 성숙한 바울이 이제 말년에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에베소서는 바울이 초기에 기록된 책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의 경륜이 구구절절이 배어있다. 그리고 그가 드리는 기도는 단순히 어떤 환난에서 자신을 면케해달라는 기도가 없으며, 에베소성도들이 물질적으로 힘들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도 없다. 오로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어짐으로 그들의 마음의 눈을 밝혀져서 그분이 그들을 부르신 부름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분의 주고자 하는 하늘기업의 영광스러움이 얼마나 큰지를 알기를 바라고, 그분이 교회에게 주신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이것이 그의 첫번째 기도였다(엡1:15~19). 그런데 그의 두번째 기도를 보니(엡3:14~19), 사람의 속사람이 강건케 되기를 기도하고 있다.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물질적인 축복과는 거리가 먼 기도다. 이 세상에서 잘 살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승진하며, 육체적으로 강건하기를 위하는 기도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알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자신을 그리스도의 목적에 내어주어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어서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케 되어서 이런 장성한 분량을 갖춘 기도를 드리고 이런 기도에 올인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2020년 12월 1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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