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5) 사역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축복은 무엇인가?(행15:22~35)_2022-11-09(수)

https://youtu.be/PBhhFaElyC8  [혹은 https://youtu.be/PBhhFaElyC8 ]

 

1. 주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일하는 사역자들은 무엇이 제일 필요한 것일까? 우선은 사역자로서의 부르심과 자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이 없는 사역자는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지 못하며 힘들 때에는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돕는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사람이기에 먹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잠자기 위한 물질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2. 사도 바울의 삶에 있어서 어떤 만남의 축복이 있었는가?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축복 가운데 하나는 만남의 축복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축복의 향배도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최대의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만난 동역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로부터 악한 영을 뽑아주고 성령의 은사를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은 다메섹에 있는 형제 아나니아가 해 주었다. 둘째로, 그가 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친교의 교제를 나누려 할 때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을 믿어 주어서 사도들과 야고보에게 친교의 악수를 나누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셋째로, 홀로 선교여행을 떠나야 했던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실루아노)가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3.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인 실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번째의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실라'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행15:22).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를 안디옥교회에 가서 전해 줄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의 구원의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총회가 열렸다.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으로는 안 되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의 구원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유대인들을 위해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야고보의 의견이 그대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총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교회에 전달해 줄 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편지와 더불어 유다와 실라가 선택되었는데, 이 둘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예언을 할 수 있는 선지자로서(행15:32),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를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써 준 편지를 들고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것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로 되돌아갔다. 

 

4.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3대 축복이자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바울에게는 놀랍게도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바울을 도와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렇게 되어지도록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보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의 종은 자신의 부르심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다 부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역과 사명에 합당한 은사가 부어진다. 그중에서도 복음을 전달할 사역자들에게는 설교의 은사, 환상의 은사, 치유의 은사, 귀신쫓는 은사 등은 꼭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과 함께 사역을 감당할 신실한 동역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일은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대부분 팀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떤 동역자가 있었는가? 감사하게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그에게는 복음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꼭 있었다. 그러한 사람으로는 먼저는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고, 청년 디모데와 의사 누가도 있었다. 셋째, 자신의 복음전파 사역에 필요한 물질을 후원하는 선교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려면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러한 선교 후원자가 꼭 있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대표적인 후원자였다. 이들은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 후원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울의 든든한 선교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은 그 험난한 선교여행을 잘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항상 통하는 법칙은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도의 영성은 주의 종의 영성을 능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교회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 대한 충분한 기도이다. 주의 종들에게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시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신실한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가 주의 종과 함께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동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동역이 어찌 말씀 사역과 물질 후원 뿐이겠는가? 왜냐하면 기도의 동역이야말로 그 어떤 동역보다도 가장 필요한 동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양질의 양식을 받아서 누리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며, 주의 종들은 성도들의 기도와 더불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0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49) 이방인 선교에 가장 적합한 두 인물은 어떻게 해서 세워졌는가?(행11:19~26)_2022-09-30(금)

https://youtu.be/5WQ6dOgocLI  [혹은 https://tv.naver.com/v/29634766 ]

 

1.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한 것은 누구였는가?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였다. 그런데 그 이유가 놀랍기만 하다. 베드로가 이방인었던 고넬료를 접촉하여 그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가 잘못된 일을 행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베드로의 소식을 듣고 베드로를 비난했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선교 보고를 들은 후에 그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안디옥에서 일어난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 이방인 선교를 위해 친히 사람을 보내줄 수준으로까지 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안디옥에 있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님을 믿는 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곧바로 그들을 돌보아주고 지도해줄 지도자로서 바나바를 그들에게 파송했기 때문이다. 

 

2. 안디옥에서 어떻게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흩어진 헬라파 유대인(디아스포라 성도들)으로서 믿는 자들이 북쪽과 서쪽을 향해 나가면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북쪽으로는 베니게(페니키아)와 안디옥(안티오크)까지 복음을 전해주었고, 서쪽으로는 지중해의 섬이었던 구브로(키프로스)까지 복음을 전해주었다. 그렇지만 이 때만 해도 디아스포라 성도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의 몇 몇 성도들이 안디옥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헬라인(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해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일은 하나님께서 매우 바라고 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주의 손(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이방인이었던 안디옥의 사람들도 주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 안디옥 소식을 들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누구를 그곳에 파송했는가?

  그러자 안디옥의 복음전파 소식을 듣게 된 예루살렘 교회는 즉시 바나바를 파송한다. 참으로 잘 한 일이다. 그런데 그때 왜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에게 사도를 파송하지 않고 바나바를 파송한 것일까? 사실 바나바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게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열려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곳도 역시 이방 지역인 구브로였기 때문에, 그는 이방인들과 접촉이 비교적 쉬운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믿음과 성령도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예루살렘 교회에 들어오게 될 때에 자신의 밭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놓을 수 있었다(행4:3~637). 무엇보다도 그는 사람을 잘 중재할 줄 아는 은사가 있던 사람이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니, 사울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로서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아무도 그를 만나주거나 환영해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 바나바가 맨 먼저 바울을 만나 그가 어떻게 주를 만났고, 주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을 들었으며, 예수님을 만난 후 다메섹에서 어떻게 주님을 증거했는지를 들었다. 그리고 그를 형제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사실을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였던 베드로(사도들의 대표)와 야고보(평신도의 대표)에게 전달함으로 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었다(행9:26~27). 그리하여 베드로와 바울의 첫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다. 이처럼 바나바는 사람을 잘 볼 줄도 알면서 또한 사람을 잘 권면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사도들도 처음에 바나바를 알아보고는, 그의 이름이 원래는 '요셉'이었으나 그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위로의 아들', '권면의 아들')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로 통했다. 고로, 이방인 지역이었던 안디옥으로 가서 이제 갓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을 도와주기에 바나바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안디옥에 파송하기로 한 것이다.  

 

4. 안디옥 교회에 큰 무리가 합류하자 바나바가 행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이제 바나바가 안디옥에 파송됨에 따라 안디옥에서 큰 무리가 주님께 더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나바는 아주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것은 일전에 자신이 베드로 사도와 야고보에게 소개해주었던 새로운 회심자 사울을 찾으러 길리기아의 다소에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헬라어 성경을 보니, 이때 바나바는 다소를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사울(바울)을 찾았다고 나와 있다(행9:25). 그만큼 바나바에게는 사울이 필요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은사는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이라면, 바울은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은사를 가진 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막 시작하여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 안디옥 교회가 튼튼하게 성장하려면 사울의 도움이 그에게는 절실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성경에 능통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울은 직접 주 예수님을 뵙고 자신의 사명까지도 들었던 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사울은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주님이 직접 선택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떠난 것이다. 그리고 다소에 가서 드디어 바울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안디옥교회에 돌아온다. 그리고 둘은 1년간 서로 협력하면서 복음 사역을 펼치게 된다. 

 

5. 예루살렘 교회와 바나바의 결정은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가?

  안디옥에 사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 바나바를 파송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왜냐하면 이제 갓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나 어떻게 신앙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초신자들을 다독거리면서 돌보아야 줄 부모와 같은 양육자로서 바나바처럼 적합한 이물은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대상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교제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그들에게는 필요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일을 감당하기에 바나바처럼 적합한 인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몰려오는 수많은 신자들을 바나바가 혼자서 감당하기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그들을 말씀으로 양육해야 하는데 자기의 능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약 7~8년전에 만났던 사울을 안디옥 교회에 사역자로 데리고 오려고 결정하였다. 이것 역시 신의 한 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울은 하나님께서 이방인 선교를 위해 특별히 작정하고 보낸 사명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고 또한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역자로 쓰실 때에 그냥 아무나 함부로 사용하시겠는가? 그리고 더욱이 사울은 바나바가 그를 부를 때까지 무려 10여년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울은 아라비아에서 약 3년을 보내었으며, 예루살렘 방문 후에는 자신의 고향 다소로 돌아가 약 7~8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울은 자신이 이방인 복음전파의 사역자로서 쓰임을 받기까지, 적어도 10년간을 준비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박학다식한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이후 온전히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모든 교만함을 다 내려놓았다. 뿐만 아니라, 오직 주 예수님의 복음증거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는 바울의 합류로 인하여 놀라운 성장의 성장을 거듭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며 유대교를 믿는 자들도 아닌 새로운 분파였기 땝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혹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그리하여 최초로 안디옥에서 기독교가 탄생한 것이다. 

 

 

2022년 09월 3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고생을 피해 도망쳤던 마가요한은 어떻게 선교사 바울에게 동역자라는 말을 듣게 되었는가?(몬1:23~25)_2020-01-06(월)

https://youtu.be/TV6dlDGsjb4

 

1. 바울은 어떤 사람에게 "동역자"(쉰에르고스)라는 명칭을 사용했나요?

  바울은 복음전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 특히 천국백성을 산출하는 일에 함께 동역하는 사람을 일컬어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사람들로는 디모데(롬16:21),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롬16:3), 에바브로디도(빌2:25), 유오디아와 순두게(빌4:2~3), 의사 누가(몬1:24) 등이 있습니다.

 

2.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요한은 제1차전도여행에 동행했지만 바울은 그에게 동역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나요?

  마가요한의 바나바의 조카였습니다(골4:10).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1차전도여행을 할 때에 그도 바울선교팀의 수행자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그만 선교팀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행13:13). 그러나 1차전도여행을 마치고 2차전도여행을 출발하려 할 때, 마가요한을 데려가는 문제로 드디어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바나바는 그를 또 데려가자고 했지만 바울은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말다툼은 결국 바울과 바나바를 결별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요한을 데리고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거쳐 더베로 이동하였습니다(A.D.49년). 그래서인지 바울은 마가요한에게는 동역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3. 4차전도여행인 로마선교여행 중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은 마가요한에 대해 어떻게 불렀나요?

  그런데 로마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골로새교회의 지도자였던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A.D.60~62년경)에 따르면, 그때 바울은 마가요한을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몬1:24). 바나바와의 결별 이후 약 13년이 지났을 때에 마가요한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그를 "나의 동역자"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레몬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난 뒤 약 4년이 지났을 때,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마가요한은 바울에게 매우 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올 때에 마가요한을 데리고 오라고 간곡히 부탁합니다. 왜냐하면 마가요한은 이제 바울에게 사역을 위한 유익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딤후4:11).

 

4. 마가요한은 어떻게 되어서 바울에게 이제 동역자이자 사역을 위한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요?

  마가요한이 중간에 어떻게 되어서 바울에게 이제 동역자라는 말을 듣게 되고, 바울의 사역을 위한 유익한 존재가 되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년에 마가요한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선교여행의 고생을 피하여 1차전도여행 때에 마가요한은 그만 집으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13년 뒤 마가요한은 더이상 과거의 마가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선교사역을 위한 매우 유익한 존재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제 천국백성을 산출하는 데에 바울선교의 일부분을 담당할 만한 사람으로 변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중간에 많은 반성과 함께 굳은 결단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이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 자신의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사람으로 달라져 있었던 것입니다.

 

5. 마가요한은 어떤 사람인가요?

  마가요한은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의 저자인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상당히 부잣집의 아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도시 예루살렘에 120명이 들어갈 정도의 넓은 공간인 2층집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집이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장소로 쓰였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 열심을 다해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했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집이 예루살렘교회 건물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는 처음에는 바울에게 고생도 모르는 풋내기 총각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하지만 훗날에는 바울에게나 로마교회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마가요한은 바나바와 선교여행 이후 로마에 들어가 베드로의 수종자와 통역자가 되었고, 베드로로부터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 복음서를 저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 책입니다.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으나 점차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서, 바울의 동역자라 칭함받았던 마가요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2020년 01월 06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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