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72) 복음전파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장애요소가 되는가?(행17:1~9)_2022-11-22(화)

https://youtu.be/BkvFUdCz5AI [혹은 https://tv.naver.com/v/31023126 ]

 

1. 복음을 전파할 때 무엇이 가장 장애 요소가 되는가?

복음을 전파하거나 선교할 때 가장 많은 장애를 일으키는 요소는 대체 무엇인가? 복음을 전파할 때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때로는 예상하고 있는 난관을 만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파할 때에 만나게 되는 어려움들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사도행전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5가지 난관들이 있다.

첫째, 소명의식의 부족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러낸 소명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복음 전파를 끝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하다가 중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인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동역자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다. 복음 전파는 혼자서 감당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둘 이상의 동역자가 꼭 필요하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꼭 2명씩 파송하시지 않으셨던가!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에 있는 지도자를 파송하실 때에도 바나바와 바울, 이렇게 두 명을 파송하셨다. 그리고 그 뒤에도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전도자들이 두 명이나 혹은 그 이상이 함께 사역하곤 하였다. 복음 전파는 그만큼 함께 사역하는 일꾼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건강의 문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준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사역자가 건강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에게도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의사 누가를 붙여 주셨다. 건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넷째, 물질의 문제다. 선교비가 있어야 선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교하려면 의식주 문제와 다양한 선교 활동에 선교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 교회에서 선교비를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선교에 많은 지장이 있다. 바울도 그랬었다. 특히 2차 전도여행 때에 더 그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람을 붙여 주셨다. 빌립보에서는 루디아 자주장사를 붙여 주셨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붙여 주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해꾼들의 문제가 있다. 방해꾼의 배후에는 항상 사탄 마귀가 있으며, 사탄 마귀의 조종을 따라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달라붙는다. 이것을 비로소 극복할 수 있을 때에 복음 전파는 왕성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에는 선교에 있어서 어떤 난관에 부딪혔는가?

바울이 전도여행을 할 때에는 참으로 많은 고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차 전도여행 때에는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아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하였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이방인들의 고소로 인하여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2차 전도여행 중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에는 2가지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선교비가 떨어졌다. 그래서 바울은 밤낮으로 일하면서 전도를 해야 했다(살전2:9). 감사하게도 선교비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가 2번이나 그에게 선교비를 보내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빌4:15~16). 둘째는 유대인들의 핍박이었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선교를 악의적인 방법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3. 유대인들은 어떻게 바울의 선교를 방해했는가?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바울의 선교 사역을 방해한 것은 아니다. 안식일이 되었을 때에 바울은 회당에 나와 구약성경을 강론했다. 그런데 무려 3주간을 그렇게 하였다. 그러자 헬라인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여러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바울을 뒤따르게 된다. 그러자 시기심이 난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바울이 전하는 신앙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 전하는 메시야가 이미 오셨으니,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전하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아들로 오신 것인데, 그들은 그분을 몰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유일한 분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을 계속해서 핍박하였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4. 바울은 어떻게 유대인들의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지만 평소 때에는 밤낮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살전2:9). 선교비를 충당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주간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시장의 불량배들을 고용하여 바울과 실라를 덮치게 된다. 그때 그들은 야손의 집에 들이닥쳤다. 아마도 바울 일행이 당시 야손의 집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그 시간에 바울은 야손의 집에 없었다. 아마도 선교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하러 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바울을 체포하려고 시도한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바울이 천하(로마)를 어지럽게 한다는 것이었다(행17:6). 그리고 둘째는 바울이 사람들로 하여금 가이사(로마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왕인 예수님을 따르게 한다는 것이었다(행17:7). 그러나 그건은 악의적인 고소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을 정치적인 반역 행위자로 고소하여 체포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고 있는 것은 참된 복음이었던 것이지,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 황제에게 대항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 누가 가장 복음 전파의 장애 요인이 되는가?

그렇다면 복음 전파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요인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이들에 의한 방해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가장 집요하게 방해한 세력은 무엇인가? 그들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1차 전도여행 때를 보더라도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리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까지 쫓아와서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에 데살로니가에서는 시장의 불량배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체포하고 죽이려고 하였다. 그럼 왜 유대인들은 그토록 바울의 복음 전파를 방해한 것인가? 그것은 알기는 알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진리는 모른 채 자기가 듣고 배운 교리만 집착하여 그것에서 벗어난 것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 중에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믿지 않고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라고 하신 일이 결코 없다. 한 마디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는 자들로 인하여 복음 전파는 오늘도 막히고 또 막히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22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5) 사역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축복은 무엇인가?(행15:22~35)_2022-11-09(수)

https://youtu.be/PBhhFaElyC8  [혹은 https://youtu.be/PBhhFaElyC8 ]

 

1. 주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일하는 사역자들은 무엇이 제일 필요한 것일까? 우선은 사역자로서의 부르심과 자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이 없는 사역자는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지 못하며 힘들 때에는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돕는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사람이기에 먹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잠자기 위한 물질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2. 사도 바울의 삶에 있어서 어떤 만남의 축복이 있었는가?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축복 가운데 하나는 만남의 축복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축복의 향배도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최대의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만난 동역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로부터 악한 영을 뽑아주고 성령의 은사를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은 다메섹에 있는 형제 아나니아가 해 주었다. 둘째로, 그가 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친교의 교제를 나누려 할 때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을 믿어 주어서 사도들과 야고보에게 친교의 악수를 나누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셋째로, 홀로 선교여행을 떠나야 했던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실루아노)가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3.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인 실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번째의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실라'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행15:22).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를 안디옥교회에 가서 전해 줄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의 구원의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총회가 열렸다.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으로는 안 되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의 구원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유대인들을 위해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야고보의 의견이 그대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총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교회에 전달해 줄 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편지와 더불어 유다와 실라가 선택되었는데, 이 둘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예언을 할 수 있는 선지자로서(행15:32),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를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써 준 편지를 들고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것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로 되돌아갔다. 

 

4.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3대 축복이자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바울에게는 놀랍게도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바울을 도와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렇게 되어지도록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보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의 종은 자신의 부르심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다 부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역과 사명에 합당한 은사가 부어진다. 그중에서도 복음을 전달할 사역자들에게는 설교의 은사, 환상의 은사, 치유의 은사, 귀신쫓는 은사 등은 꼭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과 함께 사역을 감당할 신실한 동역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일은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대부분 팀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떤 동역자가 있었는가? 감사하게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그에게는 복음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꼭 있었다. 그러한 사람으로는 먼저는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고, 청년 디모데와 의사 누가도 있었다. 셋째, 자신의 복음전파 사역에 필요한 물질을 후원하는 선교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려면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러한 선교 후원자가 꼭 있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대표적인 후원자였다. 이들은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 후원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울의 든든한 선교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은 그 험난한 선교여행을 잘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항상 통하는 법칙은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도의 영성은 주의 종의 영성을 능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교회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 대한 충분한 기도이다. 주의 종들에게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시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신실한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가 주의 종과 함께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동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동역이 어찌 말씀 사역과 물질 후원 뿐이겠는가? 왜냐하면 기도의 동역이야말로 그 어떤 동역보다도 가장 필요한 동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양질의 양식을 받아서 누리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며, 주의 종들은 성도들의 기도와 더불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09일(수)

정병진목사

 

2022-08-26(금) 금요기도회

제목: 풍성한 기도응답과 천국 곳간의 비밀(마13:5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3quX8PDxGw  [혹은 https://tv.naver.com/v/28841319 ]

 

1. 들어가며

  사람들이 기도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종합해 보면 보통 3가지다. 첫째는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채워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예를 들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물질을 달라고 기도하며, 건강을 달라고 기도한다. 둘째는 어떤 나쁜 상황에서 건져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예를 들어, 질병에서 치유해달라고 기도하고, 위기로부터 탈출시켜 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리고 셋째는 앞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를 한다. 예를 들어, 자녀의 앞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자신의 직업과 직장과 배우자의 선택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오늘은 첫 번째의 기도제목 곧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채워 달라고 기도하는 예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기도를 할 때에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 아주 중요한 영적인 비밀이 숨어있다. 그것은 하늘창고에 관한 비밀이다. 

 

2. 지혜와 물질과 건강을 풍성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풍성하지 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간구하는 기도의 유형 가운데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을 풍성하게 채워달라고 기도할 때에는 다른 2가지 유형의 기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2가지 유형의 기도는 우리가 그냥 하나님께 요청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나쁜 상황에서 건져주실 것이고, 앞 길을 인도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의 문제는 우리가 무작정 기도한다고 해서 다 풍성하게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다른 변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도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실천하고 있었든지 아니면 실천했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도응답에 관한 전제조건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요청한다고 할지라도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이 풍성하게 채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가끔씩 응답이 되기는 하겠지만 풍성하게 채워지지는 않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천국에 있는 자신의 곳간에서 꺼내올 것들 곧 옛 것들과 새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비축해 놓았어야 할 옛 것들과 새 것들이 없기 때문에 기도해도 그것을  꺼내 쓸 수가 없는 것이다. 

 

3. 지혜와 물질과 건강의 문제는 하늘의 천국창고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천국에도 이 땅에서처럼 창고가 있다. 그런데 천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창고가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께서 마련해두신 창고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은사창고'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은사창고에서 우리가 구할 때에 은사들을 내려주신다. 그런데 또 한 종류의 창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마련해주시는 창고가 아니라 우리가 마련하는 창고다. 이 창고에 대해서 마태복음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마13:52[직역]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 때문에 하늘들의 왕국에 관하여 제자가 되었던 모든 율법교사는 마치 새 것들과 오래된 것들을 자기의 곳간(창고)에서부터 꺼내오는 사람으로서 누구든지 가장(집주인)과 같은 것이다. 

  천국에 창고가 있는데 '자기의 창고'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다. 이 창고는 자기가 비축해놓은 저장물들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창고를 가리킨다.

마6:19~20[직역] 너희를 위하여 보물(저장물)들을 땅 위에 저장하지 말고 있어라. 거기는 좀과 동록(먹는 것)이 망쳐놓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둑들이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그들이 도둑질한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저장물)들을 하늘 안에 저장하고 있어라. 그런데 너희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저장물)들을 하늘 안에 저장하고 있어라. 그곳에는 좀이나 먹는 것이 망쳐놓지 못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도둑들이 구멍을 뚫지도 못한다. 역시 그들은 도둑질도 못한다. 

  그런데 하늘창고는 놀라운 특징이 있다. 그것은 한 번 하늘창고에 저장한 것들은 그 어떤 존재들도 그것을 손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도둑들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며 도둑질도 못한다. 이는 영적으로 무엇을 말해주는가? 요10:10에 의하면, 도둑들은 사탄마귀와 귀신들이다. 그러므로 이미 하늘창고에 저장한 것들은 귀신들이라도 손댈 수 없고 그것을 가져거가나 훔쳐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창고의 것들은 그놈들이라도 영원히 손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창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성경에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에 저장할 수 있는 창고가 최소한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하나님께 바칠 때에 쌓이는 '예물창고(헌물창고)'이며 또 하나는 이웃들을 구제할 때에 쌓이는 '구제창고'다. 먼저, '예물창고'가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자.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렇다. 천국에서는 먼저 '예물(헌물)창고'가 있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드리는 모든 것들이 저장된다. 그래서 거기에는 '십일조'도 저장할 수 있고 '헌물들'도 저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드린 모든 것은 저 하늘에 있는 예물창고에 보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창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웃을 섬길 때에 저장되는 '구제창고'다. 우리 주님께서는 '구제창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눅12:33[직역] 너희의 재산들을 팔아라. 그리고 구제하라. 너희는 낡아지지 않고 있는 돈주머니들을 너희자신을 위하여 만들어라. 하늘들 안에 끝이 없는 저장물로. 그곳에는 도둑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 역시 좀이 썩게 하지도 못한다. 

  그렇다. 천국에는 '예물창고' 외에 '구제창고'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구제할 때마다 하늘에 있는 구제창고에 그것이 저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그것을 언제든지 꺼내다가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삶에 지혜나 물질이나 건강이 차고 넘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물질의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구제를 실천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부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의 구약의 격언의 말씀들을 주목해보라.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4. 천국창고에서 꺼내올 수 있는 옛 것과 새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람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하늘에 있는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창고(곳간)에 어떤 저장물들을 보내어 그곳에 저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늘 저장창고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기도를 통해 하늘창고의 것을 꺼내쓴다고 할지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우리가 기도해서 이미 하늘에 저장된 저장물들을 꺼내쓴다고 할지라도 한 번 그곳에 저장된 것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한 번 그곳에 저장되면 저장물들이 다함이 없는(끝이 없는) 상태로 보관되기 때문이다(마6:20).

  그렇다면 우리가 꺼내다 쓸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마13:52에 의하면, 우리가 꺼내 쓸 수 있는 것들은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새 것이요 또 하나는 옛 것이다. 이것을 헬라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하나는 '최근의' 것들이요 또 하나는 '오래된'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자는 집주인(가장)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이렇다. 즉 우리 자신이 천국창고에 저장들을 저장한 것들은 최근의 것들이 되는 것이요, 우리 조상들이 저장해놓은 것들은 오래된 것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자가 집안의 '가장'이라고 한 것은 어떤 집안이든지 그 집안이 이미 저장해둔 것을 그의 집안의 후손들이 꺼내다가 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물창고'야 보통 성도들이 채우는 것이겠지만 '구제창고'는 불신 조상들도 채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조상들 중에 구제를 많이 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후손들 중에 누군가는 그 저장창고로부터 그것을 가져다가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은 비록 부지런히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부족함이 없거나 풍성하게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의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구제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내가 그 집안에 태어나게 하신 것을 말이다. 

  이러한 영적인 진리는 '지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오늘날 지혜로운 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잘나고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조상들 중에 누군가를 남을 가르쳐 출세케 한 일이 많을수록 그의 후손들 중에 지혜로운 자가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을 지혜롭게 한 일이 없는 집안에서 지혜로운 자가 나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미 누군가가 하늘의 창고에 지혜를 많이 저장해두었어야 그이 후손들 중에 지혜로운 자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러한 조상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그것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5. 지혜와 물질과 건강의 문제는 산상수훈의 기도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하늘에 예물창고나 구제창고와 같이 자기의 자기의 조상들이 마련해 둔 창고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며 살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가 지혜를 얻고 물질을 풍성하게 누리고 사는 문제는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으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말씀이 구약에도 나와있었으며, 특히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주목하지 못했다. 특히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산상수훈의 기도에 관한 말씀 중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다는 것을 주목했어야 했다. 그것은 마7:7~12에 나온다. 

마7:7-12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는 마7:7~11의 말씀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에 관한 말씀의 결론이 곧 12절에 있다는 것에는 잘 주목하지 못했을 것이다. 12절을 헬라어 원문으로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7:12[직역] 그러므로 만약 너희가 장차 사람들이 무엇을 너희에게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 모든 것들 만큼을 너희도 이와같이 그들에게 행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구하여 얻기를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나에게 무엇인가를 얻기를 소망하는 자들에게 베풀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구하는 것을 풍성하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많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턱없이 부족했으며, 남에게 구제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풍성하기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에서 풍성하게 넘치는 일이 적거나 없었던 것이다. 

 

6. 사람이 부자로 살지 못하고 가난하게 하는 이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사람이 부자로 살지 못하고 가난하게 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이유들에는 첫째로, 나와 내 조상들이 남의 것을 착취하고 강제로 빼앗고 노름하여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것을 빌린 후에 갚지 않고 야반도주한 일이 있다면 나와 내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 둘째, 하나님에게는 인색하게 드리면서 이방신을 섬길 때에는 어마어마한 물질을 드린 자들도 역시 가난하게 살게 된다. 셋째, 하나님의 것(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하여 떼어 먹었을 때도 그렇다. 그리고 넷째, 남을 돕고 구제하는 데에 인색했던 사람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창고가 텅 비어 있기에 이런 자들은 기도를 해보아도 꺼내다가 쓸 수 있는 저장물들이 없기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가장 먼저 나와 내 조상들이 착취한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으면 그들에게 갚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방신에 물질을 많이 바쳤다면 하나님께 속죄예물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떼어먹은 것도 갚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부터라도 구제하며 베풀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풍성하게 드려야 하겠지만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사는 것이다. 

 

7. 나오며

   이 땅은 어떤 장소인가? 이 땅은 내 것을 하늘에 저장하는 장소이자 흩어서 나누어주는 장소인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동안에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풍성하게 살 수는 없다. 하늘의 창고에 있는 것들을 가져다가 쓸 수가 있어야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에는 '지혜'도 그렇고 '물질'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다. 남을 지혜롭게 하여 하늘창고에 저장하지 않은 사람과 그의 후손 중에 지혜로운 자가 나오기 어렵다. 삶이 어렵고 힘든 이웃에게 베풀거나 나눠준 일이 없어 하늘창고에 보관된 저장물들이 없는 자는 기도해 보아도 풍성하게 채워지지가 않는다. 남을 건강하도록 도운 일이 없으면서 자신은 건강하게 해 달라고 비는 기도는 그리 효력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창고의 비밀이다. 우리가 기도한 것들 중에 어떤 것들은 우리가 요청만 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기도들도 있다. 그것은 어떤 나쁜 상황에서 건져달라는 기도요, 앞 길을 인도해 달라는 기도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풍성하게 해 달라는 기도는 기도만으로 풍성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먼저 하늘창고에 저장한 것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하늘창고가 비어있는가? 지금부터라도 그 창고에 저장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와 내 후손이 이 땅에서 풍성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08월 26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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