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5가지 직분은 무엇이며,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오늘날의 교회에게 있는 '목사'라는 직책은 과연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방언'이나 '예언'같은 신령한 은사는 언제까지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보다 더 좋은 은사가 있는 것인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말은 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오늘은 고전12장과 13장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자.

 

2021-09-01(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20) 교회 안에 주신 직분의 은사들과 사랑의 은사(고전12:28~13:1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PV0RUNQT6QQ [혹은 https://tv.naver.com/v/22220994 ]

 

1. 들어가며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분들이 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시대에 교회가 탄생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그때 있었던 직분들 중에는 지금도 있는 직분도 있으나, 그때는 없던 직분이 지금에 와서 새롭게 생겨난 것도 있다. 하지만 초기 교회 가운데 직분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데에 꼭 필요한 은사였다. 그러한 직분의 은사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가 있었다. 그렇다면 당시에 이러한 직분들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직분의 은사들 중에서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는 두 가지 은사는 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을 공부하면 우리는 이어서 사랑의 은사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사랑의 은사는 어떤 은사인지 그리고  이 은사가 다른 은사들과는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고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 사랑의 은사의 속성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은사들이 지난 한계점과 그것들의 존속 시기는 언제까지인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아무쪼록 직분의 은사들과 사랑의 일반 은사에 대해 주님의 가르침을 주목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교회에게 주어진 5중직 중에서 복음 전하는 자는 어떤 직분의 은사인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28과 에베소서 4:11을 통하여, 교회에게 주어진 은사에는 5가지 직분의 은사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은사들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가 있었다. 이것들 중에서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에 대해서는 지난 주에 살펴보았고 오늘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복음 전하는 자'의 직분은 초기 교회 당시 사도와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를 세우는 은사에 속한하는 은사다.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는 사도와 선지자와 더불어 똑같이 어떠한 하나의 장소에 머물러서 사역하지 않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은사다. 즉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또한 다른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사역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 은사는 일종의 '선교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선교사는 타지역이나 외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되, 그곳에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면, 이 은사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교회를 세우는 은사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복음 전하는 자'의 은사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로서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빌립(집사)가 성경에 나온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을 받은 전도자다. 그래서 그는 적어도 3차례 이상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였다(딤후1:11, 갈1:6~9). 그리고 둘째로, 복음 전하는 자 곧 전도자에는 '디모데'가 있다. 특별히 디모데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임명하여 파송한 사람이다. 그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 전파하기를 힘쓰라"고 하였던 것이다(딤후4:5). 그로 하여금 전도자의 직무를 성실히 감당할 것을 권면한 것이다. 셋째로, '빌립(집사)'이라는 전도자가 있다. 그는 원래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피택된 인물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핍박으로 인하여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던 차에,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곳에 사마리아 교회가 개척이 된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자 곧 전도자는 오늘날에 전도사 정도의 신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준 사도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하였고 교회를 세웠으며, 세례도 주었다. 그리고 빌립 같은 경우에는 능력도 행사하였고 축사도 행했다. 수많은 표적들과 기사들이 그에게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의미의 순회 전도자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3. 목사와 교사의 직분의 은사는 어떠한 은사인가?

  직분으로 교회 가운데 주신 '목사'와 '교사'의 은사는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함께 초기 교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직분의 은사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목사와 교사의 은사자들로 인하여 교회가 든든히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교사는 이단의 세력으로부터 성도를 보호하고, 귀신으로부터 지켜내며, 세상으로부터 이기는 성도가 되도록 인도하고 세워주는 은사자들이었다. 특히 '목사'와 '교사'의 은사자는 앞의 3가지 은사자와 달리, 한 곳에 머물러 일하는 사역자들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양육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목사와 교사는 자기가 섬기는 교회가 일정하게 정해져 있고, 거기에서 풀타임 사역자로 평생을 일하는 분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목사의 은사란 어떤 것인가? 목사의 은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오중직의 직분 은사들 가운데서, '교사'의 은사자와 더불어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은사인데(엡4:11), '목사와 교사'라는 명칭을 보면, 단어는 2개이지만 한 개의 정관사만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목사는 반드시 교사여야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목사나 교사는 양육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라는 명칭은 사실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목자'로서 나온다. '목자'는 헬라어로 '포이멘'인데, 양떼들을 지키고 돌보는 목자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왜 교회의 성도들을 양육하는 직분을 일컬어 '목자'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양으로 생각하시고 당신을 목자로 말씀하신 것에서 기원한 것이 아닌가 싶다(시100:3). 그리고 예수께서도 당신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셨기 때문이다. 어느 때에 예수께서 당신을 소개하기를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0:11,14~15).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라는 직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양 무리 곧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하는 자를 일컫는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 후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사역을 위임하실 때에,"너는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일컬어서 '양들의 큰 목자(히13:20)'라고 하였고, 베드로도 예수님을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이자 '목자장(벧전5:4)'이라고 말했다. 

  그럼, 목사는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한마디로 목사는 하나님이 맡기신 양 무리를 목양하는 직무자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양떼를 먹이는 일을 하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양떼를 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양 무리를 '먹인다'(보스코)'는 말은 양들로 하여금 풀을 뜯게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먹일 수 있어야 한다(요21:15,17). 그리고 목사는 양 무리를 '치는(포이마이노)' 일을 행한다. 여기서 '친다'는 말은 '돌보다, 지키다'라는 말로서, 양떼들을 하여금 세상에서 승리하게 잘 돌보고, 그들을 사탄 마귀와 귀신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2가지를 사용하는 자다. 하나는 '막대기'로서 양들을 헤치려 오는 동물들을 후려치는일을 행하는 것이며, 반대로 '지팡이'로서는 양떼들을 푸른 초장과 맑은 물가로 인도하는 것이다. 

 

4. 교사의 은사는 무엇이며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교회에게 주신 마지막 직분의 은사는 무엇인가? 그것은 '교사(디다스칼로스)'라는 은사다. 이는 성경을 잘 해설하고 가르치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교사는 목사의 은사와 더불어 짝을 이루고 있다. 왜냐하면 목사는 교사처럼 말씀을 가르쳐야 하는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딤전5:7). 그렇지만 교사가 반드시 목사인 경우가 아닐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린도 교회에 '아볼로'라고 하는 성경 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행18:24~25). 그는 목사도 아니었고 복음 전하는 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목사나 교사의 다른 은사에 비해 다른 것은 둘 다 한곳에 머물러서 성도들을 양육한다는 점이다. 특별히 교사는 성경을 잘 배워서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도 성경 교사로서(딤후1:11, 2:7) 구약의 율법을 잘 해석하여 그것을 신약의 성도들에게 잘 전달하는 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자로서 디모데를 택하여 에베소 교회에 목자와 교사로서 파송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에게 성경을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권하였던 것이다(딤전4:13). 

 

5. 사랑의 은사는 왜 필요한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의 초반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특별 은사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어서 후반부에서 직분의 은사를 언급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너희는 더욱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했다(고전12:31). 그리고 '사랑의 은사'를 언급하였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는 매우 가장 좋은 은사요 큰 은사임에 틀림없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사도 바울은 아무리 신령한 은사들 곧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방언을 발설할 수 있는 자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같고,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말했다(고전13:1). 그리고 예언의 은사가 있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아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있으며, 산을 옮길 수준의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고전13:2). 오 정말 그러한가? 그렇다. 거기에 사랑이 없다면, 말의 은사는 말장난에 불과하여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모든 소유물로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다(고전12:3). 왜냐하면 그렇게 수고했어도 천국에서는 아무것도 계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 사용에 있어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그것을 자신의 마음의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6. 사랑이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이서 사도 바울은 사랑이 어떤 것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한다(고전13:4~7). 사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다(요일4:8).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대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사랑의 특성을 총 15가지로 소개한다. 그것을 헬라어원문을 가지고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질투)하지 않으며, 사랑은 자랑하지(허풍떨지) 아니하며, 교만하게 되지 아니하며, 5  수치스럽게 행동하지 아니하며, 자기 자신의 것들을 찾지(구하지) 아니하며, 분노하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꾀하지 아니하며, 6 불의에 대하여 기뻐하지 아니하며, 그런데 진리에게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들을 덮어주며, 모든 것들을 믿으며, 모든 것들을 소망하며, 모든 것들을 견디느니라

  그렇다. 사랑은 일종의 구호나 관념이 결코 아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덕목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천이 없는 사랑은 공허한 것이다. 그렇다면 15가지 사랑의 항목들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속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내'라는 속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하나님을 저버리고 떠나갔고 죄를 지었지만 끝까지 오래 참으셨다. 그리고 회개하기를 끝까지 기다려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며, 그가 회개하여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있기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7.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사랑의 은사는 어떻게 다른가?

  끝으로 사도 바울은 각종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사랑의 은사를 비교한다(고전12:8~13). 그러면서 말하기를 예언이나 방언, 지식의 말씀의 은사 등이 참으로 놀라운 은사일지라도 이것들은 결국 한시적이며 부분적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만 유효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어떤 것도 천국에까지 필요한 은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모든 것까지 그가 다 아는 것은 아니며, 그가 영안이 열리는 은사와 환상의 은사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천국과 지옥을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귀신과 천사들 모두를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 부분적일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시거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죽어 하늘에 올라간다면, 이러한 신령한 은사들을 다 그치게 되고 폐지될 것이다. 그것들이 천국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렇더라도 어린아이 때에는 이러한 은사들이 상당히 유효하게 쓰인다고 말이다. 왜 그런가? 초자연적인 은사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현존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랑의 은사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듯 사랑의 은사도 영원한 것이다. 천국에서도 사랑의 은사는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사모하고 추구하는 은사를 정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단연코 사랑의 은사를 선택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끝까지 자신을 지켜내야할 '믿음'도 중하고,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소망'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기 때문이다. 

 

8.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건축하게 하고 교회를 건축하게 하기 위해 성령의 선물로서 은사들을 각자에게 분량을 따라 주시고 있다.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교회들 가운데 직분의 은사로서, 어떤 사람에게는 사도의 직책을, 어떤 사람에게는 선지자의 직책을 그리고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의 직책을 주시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의 은사들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고로 교회는 각종 은사들과 오중직의 직분을 통하여 반석 위에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은사들이 교회에 풍성하다 할지라도 각자에게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은사를 받았다가 잘못 사용하여 훗날 심판의 때에 주님으로부터 심한 책망을 받거나, 아울러 불법을 행하는 자로 낙인 찍혀 주님으로부터 버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는 정말 교회의 질서 가운데 겸손하게 그것도 남을 섬기는 것으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직분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남들 위에 군림하지 말아야 하며, 신령한 은사를 이용하여 남의 돈을 갈취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아니 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값없이 내주시고 섬겨주셨듯이 우리도 값없이 주어진 은사와 직분을 가지고 이웃 형제를 섬길 수 있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9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께서는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하나됨을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교회는 7가지의 하나를 힘써 지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교회를 온전케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 땅의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은 직분의 은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았다면 그것을 귀히 여기고 그것의 목적에 맞게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7가지 하나와 교회에게 은사로 주신 직분 5가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21-01-13(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1)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함(엡1:1~16)
https://youtu.be/NNwsGg7H1PY [혹은 https://tv.naver.com/v/17916458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가장 심오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품으신 구원경륜을 소개하고 있으며, 천사들도 전혀 몰랐던 인간구원에 관한 예정론이 들어있고, 교회가 무엇인지를 7가지 방면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영적 싸움에 관한 심오한 말씀들을 토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영성가로 치자면 아마도 기독교 최고의 영성가가 아닐가 생각된다. 그는 주님으로부터는 비밀스러운 계시를 받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특히 그가 에베소서를 통하여 들려주는 말씀과 그가 올리고 있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그는 영원한 하나님의 뜻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갈 방향을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또한 제시해주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 성도들이 힘써야 할 교회공동체의 연합과 일치에 관한 말씀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교회의 7가지 하나됨의 필요성을 살펴볼 것이며,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5가지 직분적인 은사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통하여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하며, 성도를 온전케 하고 일을 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독려해야 한다. 

 

2. 교회공동체와 일치와 연합을 위한 7가지 하나는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시는 7가지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몸과 성령과 소망, 주와 믿음과 세례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들이다. 이들의 구조는 셋 셋 하나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 셋은 성령 하나님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고, 가운데 셋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하나는 성부 하나님을 각각 거론하고 있다.

  먼저, 맨 처음 셋에 대해서 살펴보자. 그것은 "몸과 영과 소망"에 관한 것이다. 사도바울은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제일 처음으로 "몸"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몸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구성원 모두가 자신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형제들이라는 것과 지체들인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전12:12~13,20,27). 그리고 몸은 한 분 성령님으로 인하여 하나가 되는데, 결국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모두 한 가족이 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첫번째 하나의 묶음의 내용들이다.

  그리고 두번째 하나의 묶음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님님으로 인하여 하나되는 것을 소개한다. 그것은 "주님과 믿음과 세례다" 제일 처음으로 하나는 "주님"으로 하나되어야 한다는 말한다. 성도들은 결코 두 주인을 섬겨서는 아니 된다는 뜻이다. 신약이후 주님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믿음"도 하나여야 한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믿는 믿음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주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잉태과 출생, 그분의 공생애 그리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승천과 재림에 관한 신앙고백이 항상 같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 곧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한 가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도 하나여야 한다. 이때 받는 세례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가리킨다. 오늘날 장로교에서는 보통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만,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한 번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준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여기서 하나를 언급할 때에는 그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믿는 이들이 세례를 통하여 다 "옛사람"으로 하나가 되며, 죽고 그리스도와 접붙힘을 받은 후에는 "새 사람"으로 하나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하나님도 한 분이시다"고 소개한다. 사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모르는 성도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회서 주일에 고백하는 "사도신조"를 보면, 거기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는 신앙고백이 빠져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 정 하나님을 제대로 믿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다는 생각을 다시 확고히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과연 한 분인가 세 분인가? 어찌보면 이것도 맞는 것 같아 보이고 저것도 맞아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는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이다(엡4:6). 

엡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특히 사도바울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마지막 사항으로 언급한 것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는 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모든 만)의 아버지 곧 근원이자 시작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으로 낳음을 받은 자가 곧 교회요 그 지체들인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은 3가지라는 것을 소개한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유 위에 계신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분 홀로 모든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고 인도하신다. 둘째, 성자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통일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니고는 존재하는 만물도 사실은 없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들은 영원히 성자이신 예수님을 찬양하고 경배해야 한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경영도 알고 미래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님은 만유 가운데 계신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모든 믿는 자들 각자의 속에 지금도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셔도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을 나눠서 순차적으로 집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선물은 무엇인가?

  그런데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두 차례에 걸쳐 내려오셨다. 그것은 순전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신(눈높이를 하신) 것이다. 그 중에 첫번째 낮아지심은 성육신하심이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무한하신 분이 유한한 육체를 입은 것이다. 두번째는 그분이 음부에 내려가신 낮아지심이다.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했다. 그분께서 지극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신 후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이다(엡4:8). 그리고 사도바울은 그분께서 지극히 높으신 곳에 올라가셨다면 그분은 땅의 아래 부분들의 더 낮은 곳에 내려가셨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그곳은 어디인가? 그분은 음부가 아닌 다른 곳이 아니다. 시편16편 기자인 다윗은 장차 나타나게 될 메시야는 결코 음부에서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시16:10).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땅 속에 3일간 계셨다(마12:40). 왜냐하면 땅 속에 음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 뒤에 살아나셨다. 그분에게서 죄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분의 1차적인 승귀다. 부활이 그것이다. 그리고 한 번 더 승귀하셨다. 그것은 승천이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보좌 위에 앉으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무슨 일을 하셨다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그것은 "사로잡혔던 자들"을 다시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전통적으로는 사탄마귀나 죄와 죽음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사탄마귀나 죄와 죽음을 사로잡지는 않으셨다. 그것은 부활 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승천하실 때에는 누구를 사로잡았는가? 그것은 엡4:8에 답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때 사로잡혔던 자를 사로잡으시고 바로 그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사로잡혔던 자들'이다. 추정해보면, 사로잡혔던 자들은 사탄마귀에게 육신의 죽음을 당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경험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음부에 내려가지 않고 하늘에 있는 낙원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아직은 부활체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원문), 사로잡은 자들은 죄로 인하여 사탄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자들을 예수께서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다. 그들에게 면류관도 주고, 집도 주고 상급도 주신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4. 교회에게 주신 은사로서 주어진 5가지 직분은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선물로 주시고 있다. 이러한 은사들에는 초자연적인 은사들이 있는가 하면(고전12:8~10), 직분의 은사들이 있다(고전12:28~29, 엡4:11).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는 오늘날에도 그성령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총5가지 직분의 은사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인 교사. 여기서 목사와 교사를 하나의 직분으로 본다면, 4가지 직분의 은사들을 그리스도께서 나눠주시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12:28~29에는 5가지 직분의 은사들 중에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만 나온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엡4:11에 나오는 5가지 은사를 다 받은 자다. 딤전2:7과 딤후1:11에 의하면, 스는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와 교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행13:1~2에 보면, 그는 선지자와 교사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온전케 하라고 주신 5가지 은사들은 대체 어떤 은사일까?

  첫째, "사도"의 은사가 있다. 사도의 은사란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파하도록 친히 보낸 자들을 가리키는데, 어린양의 12사도들이 첫번째 사도들이다(눅6:13). 그리고 또 한 명의 사도가 있는데, 그는 "바울"이다. 베드로가 할례자들을 위해 보냄받은 사도라고 한다면, 바울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이기 때문이다(갈1:1, 15~16, 2:7~8). 첫번째 어린양의 12사도들 가운데 가룟 유다가 자기의 길을 감으로 베드로는 맛디아를 제비뽑는데 그때 사도의 조건으로 예수님을 직접 보았던 자라고 했다(행1:21~22). 그러므로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기에 오늘날 우리는 그를 사도라고 부르는 것이다. 

  둘째, "선지자"의 은사가 있다. 여기서 선지자가 함은 구약의 선지자와는 좀 다른 은사자를 가리킨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오실 메시야를 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하는 자를 가리키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선지자는 더이상 오실 메시야를 예언을 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미 오신 메시야를 말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약의 선지자는 보통 대언자라고 부른다. 사도행전 13:1에 보면,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이 있었고, 사도행전 15:32에 보면 예루살렘교회의 성도였던 유대와 실라(바울의 2차전도여행 수종자)가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신약의 선지자 중에는 예언적인 은사로 미래의 일을 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선지자라기보다는 예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자라고 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초대교회가 개척되고 세워질 때에 가장 필요한 직분의 은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사도"와 "선지자"의 은사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기초)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했기 때문이다(엡2:2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경륜의 비밀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나타내셨다고 말했다(엡3:5). 그러므로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정도의 기능을 가진 자를 선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선지자는 교회를 개척하고 세우는 은사에 속하기 때문이다. 

  셋째, "복음전하는 자"의 은사가 있다. 말 그대로 여러지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를 일컫는다. 그러므로 사도나 선지자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 속한다. 그러나 복음전하는 자를 사도나 선지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도행전에 보면, 초대교회였던 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들 중에 한 명으로서, 사마리아교회를 개척했던 빌립집사를 "복음전하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행21:8). 예수님에 의해 직접적으로 보내심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바로 "복음전하는 자"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자기의 후계자로서 에베소교회에 파송했던 "디모데"로 하여금 "복음전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권면하기도 하였다(딤후4:5).

  넷째와 다섯째, "목사인 교사"의 은사가 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의 은사는 목사의 은사요 교사의 은사다. 그런데 이 두 직분을 언급하는 헬라어단어를 보면, 정관사가 하나만 붙어 있다. 그러므로 "목사이면서 교사"인 직분자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여기서 "목사"는 양떼들을 목양하는 자라는 뜻이다. 또한 목사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바울은 말한다. 만약 이 두 직분을 나눠서 "목사와 그리고 교사"라고 한다면, 오늘날 교회학교(주일학교) 선생님들은 교사의 직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목사"라는 직책은 사실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포이멘"이라는 단어로서 양떼를 치는 "목자"와 동일한 단어다. 하지만 개신교회에서는 목자라는 단어를 목사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

  참고로, 오늘 위의 5가지 직분 가운데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하는 직분은 "목사"와 "교사"뿐이다. 앞으로 3가지 직분인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는 원래적 의미로서 그 직분이 현재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왜 교회에서 이러한 5가지 직분을 주셨을까? 그것은 엡4:12에 나오는데 다음주에 공부해보기로 하자. 

  

5. 나오며

  오늘은 교회공동체의 하나됨을 위해서는 모든 성도가 7가지 하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엡4:4~6). 그리고 성육신하셔서 사람이 되셨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땅 아랫곳인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그때 승천하시면서 사탄에 의해 육체적인 죽음을 맛보았던 자들로서 그때 낙원에 있던 성도들을 다시 사로잡으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하여 지금 그들은 부활체를 입고 주님이 주시는 상을 받아서 자기 천국집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시어 교회를 세우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의 성도들 중에서 각자 성령께서 정해주신 분량에 따라 직분의 은사도 주셨다는 가실을 배웠다. 직분의 은사는 사실 하늘에 속한 은사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영을 보내어 육체 속에 집어넣어주실 때에 은사를 줘서 보낸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 교회에서 받은 은사가 있다면, 그것은 사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교회를 섬기라고 보낸 은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물론 더러는 하늘에서 주신 은사가 아닌데도 임직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을 직분에 충실하지 않는다. 왜 그러한 과분한 직분이 자신에게 주어졌는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자기에게 어떤 직분이 주어졌든지 상관없이 받은 직분에 충성하고 진실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를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다른 사람을 예수믿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도와주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1월 13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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