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무엘하강해(21) 압살롬의 죄를 처벌하지 아니한 다윗에게 돌아온 부메랑은?(삼하14:1~33)_2022-01-26(수)

https://youtu.be/2u-UAgcn36E  [혹은 https://tv.naver.com/v/24850766 ]

 

1.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3년이 흐른 뒤에 왕궁에 어떤 기류가 있었는가?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외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아람 나라의 소국 그술로 도망을 친 후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갔다. 그러자 다윗왕의 마음이 이제는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해졌다. 왜냐하면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은 이미 위로를 받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2. 압살롬을 그술로부터 데려오기 위해 요압장군이 펼친 계략은 무엇이었는가?

  이제는 압살롬을 데려올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직감한 요압장군은 하나의 꾀를 내어 다윗왕으로 하여금 압살롬을 데려오게 한다. 그것은 드고아에 사는 지혜로운 여인을 투입시켜, 왕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은 실제가 아니라 꾸며 낸 이야기였지만 다윗은 그 여인의 호소를 진심 어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다. 이때 그 여인이 말했다. 자신은 과부인데 두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아들이 싸울 때에 말리는 자들이 없어 그만 형이 동생을 쳐죽였다는 것이다. 그러자 온 가문이 일어나 과부인 자기를 핍박하기를, 동생을 쳐죽인 형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아들을 내어 주면 집안에 상속자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편도 없는 가운데 홀로 남게 될 자신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왕은 그 여인에게 말하기를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겠다(삼하14:11)"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의 경솔한 판단이었다. 왜냐하면 압살롬은 계획적으로 살인을 한 것이지만 이 여인의 아들의 경우는 우발적으로 살인한 것으로서 조금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다. 율법은 고의로 사람을 죽이면 사형시키라고 되어 있었다(레24:17). 고로, 압살롬의 범죄는 죽어 마땅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여인에 대한 판결이 이미 내려진 상태에 있었으므로, 다윗은 요압을 시켜 압살롬을 데려오게 해야 했다. 

 

3. 왜 요압은 압살롬을 불러 들였는가?

  그렇다면 왜 요압은 이러한 작전을 펼치게 되었는가? 아마도 첫 번째는 그의 교활하고도 기회주의적인 성격을 통해서 살핀다면, 이는 장차 왕이 될 자가 압살롬인 것을 알아차린 요압이 미리 압살롬에게 일찍 줄을 서 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벌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나이가 많아 늙어가고 있는 다윗(아마 60~65세 정도 되었을 것) 왕에게 일어날 혹시 모를 죽음에 대비하여 압살롬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서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다시 3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압살롬을 결코 왕궁에 불러들이지 않았으며, 그를 자기 집에만 있게 하였다. 이는 왕이 압살롬으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조치한 것으로서 그의 죄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삼하14:24).

 

4. 가문의 대를 잇게 하고 과부가 된 어머니를 모시게 한 것이 동생을 살인했던 형에 대한 처벌보다 우선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남은 아들을 살려서 부모를 공경하게 하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살인한 아들을 처벌을 하여 그를 죽게 하는 것이 우선인가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왕국의 안정을 위해서 죄를 처벌하지 않고 압살롬을 불러올 것인가 아니면, 그의 죄값을 철저하게 물릴 것인가 하는 것이 딜레마인 것이다. 그런데 왕은 전자의 경우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사실 그것은 애매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압살롬을 불러들인 것은 그를 징계한 것도 아니며, 그를 용서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압살롬의 고국귀환은 그를 왕도에 불러들여 결국 반역의 불씨만 만들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다윗왕은 그때 압살롬을 어떻게 처리했어야 옳았는가? 다윗은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대표자였기에, 압살롬을 살려서 후계자로 세울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지 말고, 그에게 죄값을 엄하게 물렸어야 했다. 왜냐하면 고국에 돌아왔지만 압살롬은 여전히 자신의 죄가 정당한 것이었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것은 아주 계획적인 범행으로서 미움의 감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가 의도적으로 벌인 살인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을 품어 준 것도 아니며 용서해 준 것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취하여 험한 풍파만을 가져오게 하였다. 

 

5.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애매한 처벌이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다윗은 압살롬을 불러다가 정확히 그 죄를 지적해야 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해 참회하고 자숙하도록 했어야 했다. 그런 다음 그를 용서해 주고 다시 어엿한 왕자로서 그리고 차기 후계자로서 왕의 후보의 반열에 올려 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다윗은 그를 벌하지 않았다.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태도는 결국 압살롬으로 하여금 왕에 대한 미움만을 더 싹트게 하였고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자 하는 반역을 획책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명심해야 한다. 죄에 대해서 완전한 해결이 없이는 반드시 그 죄가 또다시 나에게 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이다.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이것에 대한 적용은 우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우리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 죄로 인하여 계속해서 저주를 담당하기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회개하여 그 죄를 없애버리든지 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이미 예수를 믿고 있으니 나는 회개하지 않아도 저주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애매한 태도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화를 불러오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인식했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쪽을 우리는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애매한 태도 때문에 이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고, 죽었을 때에는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2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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