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02) 두 왕국의 충돌, 진정 무엇 때문이었는가?(삼하2:1~17)_2022-01-06(목)

https://youtu.be/5zhs5b1d4Pg  [혹은 https://tv.naver.com/v/24489062 ]

 

1. 사울왕이 죽은 이후 유다 왕국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사울왕이 죽자 다윗은 하나님께 묻는다. 유다의 한 성읍으로 올라갈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림과 둠밈으로 대답하셨다. 그리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자기의 두 아내와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그들의 가족을 데리고 시글락에서 헤브론으로 올라와 거기에 거주하였다. 헤브론은 제사장들이 거주하는 성읍이었으며, 해발 900미터 정도되는 산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훗날 헤브론에 거주하였던 사가랴와 엘리샤벳이 그곳에서 세례자 요한을 낳는다(눅1:39). 다윗은 제사장들과 함께 그곳에서 새로운 유다 왕국을 시작한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의 사람들이 다윗에게 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 여러 차례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왜 처음에는 유다 왕국의 왕으로 등극했지만 훗날에 갔을 때 비로소 전 이스라엘의 왕국의 왕이 될 수 있었는가?

  다윗은 세 차례에 걸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 첫 번째는 다윗이 약 15세 되던 해에 베들레헴의 자기 아버지의 집에 있을 때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삼상16:13). 그리고 두 번째는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유다의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나이 30세 때에 헤브론에서 기름부음을 받는다. 그리하여 유다 왕국의 왕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그의 나이 37세 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에 의해 헤브론에서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삼하5:3~4). 이때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 헤브론 땅에서 7년 6개월을 다스렸으며, 예루살렘으로 이동한 후에는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거기서 다시 33년 반 동안 이스라엘과 온 유다를 다스린다. 그렇다면 왜 다윗은 처음부터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지 않았던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사울왕 때문인 것 같다. 사울왕은 단번에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기 전이나 직후까지는 부모를 공경했고, 아랫사람의 말도 들을 줄 알았으며,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한 마디로 그는 겸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는 시기 질투심과 혈기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고, 죄를 짓었으나 그것을 시인하거나 인정하는데 인색했으며, 끝내 회개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무례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좀 쉬엄쉬엄 왕이 되도록 인도하신 것 같다. 차근차근 왕으로서의 인품과 지도력을 갖추어 온전한 왕이 되도록 인도하신 것이다. 그때가 바로 다윗의 나이 37세였다. 이것은 오늘날 사람을 쓰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서 자신이 사명자일수록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하겠다. 

 

3. 유다 왕국의 왕이 된 다윗이 등극 후 맨 처음에 한 일은 무엇인가?

  다윗이 유다 지파 사람들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후 그가 맨 처음에 한 것은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게 사신들을 보내 두려워하는 그들을 축복하고 평강을 기원하는 일을 행한 것이다. 그럼 왜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다윗의 정적이었던 사울왕과 그의 아들들의 장례를 치러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40년 전에 사울이 왕으로 옹립될 즈음에 사울왕으로부터 커다란 은혜를 입게 된다. 그러자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을 시체를 가져다가 장례를 치러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혹시 다윗이 왕이 되어 전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불어닥칠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다윗의 세심한 관심과 돌봄으로 인하여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은 점차 열렬한 다윗의 지지자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 큰 지도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작은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고통과 불편을 해소해 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다. 

 

4. 사울 왕국과 다윗 왕국은 어떻게 충돌했는가?

  사울이 죽자 살아남은 군대 장관 아브넬(사울왕의 사촌으로서, 그의 숙부 넬의 아들이었다)은 살아남은 사울왕의 넷째 아들인 이스보셋을 데리고 요단강 건너편 얍복강가에 위치한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로 치면 백제가 망한 후 후백제가 잠깐 생겼다가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 그리하여 후 사울 왕국이 세워졌으니 그것이 바로 이스보셋 왕국인 것이다. 이스보셋은 40세에 왕으로 등극하여 2년을 통치하였지만, 얼마 안있어 두 군지휘관에 의해 암살당하고 만다. 그렇지만 이스보셋이 죽기 전까지는 북이스라엘의 11개 지파는 후 사울 왕국에 속해 있었다. 이스보셋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쪽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는 다윗의 왕국과 북쪽에서부터 남하하고 있는 사울 왕국과는 충돌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두 세력은 기브온 물 웅덩이 앞에서 대치하게 된다. 아브넬은 사울 왕국의 대표 주자로, 요압은 다윗 왕국의 대표 주자가 되어 서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싸움에 차도가 없자 서로는 12명씩 백병전을 통해 승자가 전쟁에 이기는 것으로 결정한다. 그런데 결과는 아브넬의 패배였다. 그러자 아브넬은 왕이 있는 마하나임으로 도망을 친다. 그때였다. 요압의 동생이었던 아사헬이 아브넬을 뒤쫓아간 것이다. 그러자 아브넬은 그가 전쟁의 전리품을 진정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보라고 권면한다. 하지만 그의 말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넬을 따라잡았지만 그는 아브넬이 뒤로 툭 내어민 창에 찔려 그만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전쟁은 휴전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두 왕국의 전쟁 용사들이 죽은 숫자만큼, 다윗 왕국은 점차적으로 커지고 있었지만, 후 사울 왕국은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요압편에서는 20명이 죽었는데, 아브넬편에서는 무려 360명이 죽었기 때문이다(숫자적으로 보면 18배 차이가 난다).

 

5.  두 왕국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두 왕국 간은 이렇게 충돌을 해야만 했는가? 사실 이스라엘이 블레셋 나라에 패했다면, 이제는 두 왕국이 힘을 합쳐서 블레셋을 무찔러야 마땅한데도 말이다. 그것은 순전히 사울왕의 책임 미수 때문이다. 사울왕은 살아 생전에 적어도 2번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왕국은 이제 끝난 것이고 ㅇ파으로 새로운 왕에 의한 새로운 왕국이 조성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분명 '다윗'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다. 사울은 이제 자신의 죽을 운명이 다가왔음을 깨닫고 있었지만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사명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으니, 블레셋을 무찔러서 나라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권을 차기 왕으로 내정된 다윗에게 돌려야 했다. 하지만 사울은 권력 욕심에 그 왕권을 다윗에게 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죽고 말았으니, 아브넬은 응당 사울왕의 살아 있는 아들을 통해 나라가 회복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만약 다윗 가문과 자기 가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을 때에 사울이 그것에 순종만 했어도 자기 자신은 그러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권력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자신을 내려놓기가 더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결국 유언 없이 죽은 사울 왕 때문에 아브넬과 요압 사이에 둘 중의 하나가 완전히 죽을 때까지 동족상잔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01월 06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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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이 힛데겔 강가에서 보았던 환상은 바사제국이 멸망하고 헬라제국이 들어선 후 헬라제국의 두 나라, 애굽왕국과 시리아왕국이 서로 각축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이때 두 나라는 무려 150년에 걸쳐 전쟁을 치른다. 그들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전쟁을 치러야 했는가? 그리고 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이스라엘은 어떻게 중심을 지켜야 했는가? 실재의 B.C.2~3세기의 놀라운 역사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고 계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20-07-08(수) 수요기도회
제목: 다니엘강해(18) 힛데겔 강가의 환상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환상(단11:5~45)
https://youtu.be/nUw3s37oAdk [혹은  https://tv.naver.com/v/14689696  ]

 

 

1. 들어가며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는 것인가? 그리고 사람들이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진정 무엇인가? 오늘 살펴보게 될 다니엘 이야기는 순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그것도 헬라제국 때에 일어나 두 나라 간의 150년간의 치열한 전쟁 이야기다. 그 나라들은 북방왕 셀류커스왕조의 나라와 남방왕 프톨레미왕조의 나라들로서, 이 두 나라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그 두 나라 사이에 남유다가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제2성전을 짓고 살고 있던 이스라엘은 그래서 늘 동네북이었다. 남유다는 처음에는 남방왕을 기대며 살았으나, 나중에는 북방왕의 지배를 받고 살았다. 그런데 북방왕의 최고 정점이었던 셀류커스왕조 제8대 안디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는 남유다를 정치와 종교적 측면에서 거의 초토화시켰던 왕으로서,. 오늘날 볼 때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하나님은 왜 다니엘에게 이러한 전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또한 에피파네스에 의한 남유다의 처참한 유린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헬라제국의 두 나라 간의 전쟁과 남유다의 유린에 관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다니엘 11:5~45의 말씀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오늘 다루게 될 다니엘 11:5~45의 말씀은 바사왕 고레스 제3년(연대기 B.C.549)에 다니엘이 바벨론의 힛데겔 강가에서 보았던 묵시의 중간부분에 해당한다. 다니엘은 그때에 약 4가지 정도의 묵시를 받았다. 첫째는 단10:20~11:4까지의 묵시로서, 바사제국이 멸망당하고 이어서 헬라제국이 건설되지만 곧 분열되어 4개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묵시을 받았다. 둘째는 단11:5~20까지의 묵시로서, 분열될 헬라의 나라들 가운데 북방왕(셀류커스왕조)와 남방왕(프톨레미왕조)이 서로 150년간 벌이는 전쟁에 관한 묵시를 받았다. 그리고 셋째, 단11:21~45까지의 묵시로서, 제8대 북방왕(셀류커스왕조)이었던 안디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가 남유다를 처참한 유린할 것에 관한 묵시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단12:1~13까지의 묵시로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환난과 성도들의 부활휴거 및 상급에 관한 말씀의 묵시까지를 받았다. 그중에서 오늘은 두번째와 세번째 묵시에 관한 말씀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 왜 전쟁을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전쟁을 그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는가? 그 이유는 많을 것이다. 식량난 때문에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을 하기도 한다. 또한 살기 좋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전쟁을 한다. 근대에 올수록 석유나 지하자원같은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전쟁을 하고, 노예를 얻어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도 전쟁을 하기도 한다. 하여튼 전쟁을 하여서 이기기만 한다면, 이긴 속국에게로부터 조공 즉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전쟁은 고대로부터 최근까지 쉬임없이 지속되어 온 것 같다. 그런데 때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차원에서도 전쟁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헬라제국의 두 나라 곧 셀류커스왕조와 프톨레미왕조는 무려 150년간 쉬지도 않은 채 전쟁을 한 것인가? 오늘 우리는 헬라제국의 두 왕조가 벌였던 전쟁을 통해서 왜 사람들은 전쟁을 하는지 그들만의 이유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끝없는 탐욕때문이었다. 좀 더 많은 땅을 확보하기 위해, 좀 더 권력을 차지하여 권세를 누리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을 종으로 삼아 부리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생애에 더 많은 안정을 누리기 위해 전쟁을 하였던 것이다. 둘째는 원수를 갚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 두 나라간의 전쟁은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한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두 나라 간의 전쟁은 이내 원수갚음으로 비화되었다. "내 누나를 죽을 원수를 갚으리라, 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아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리라"는 것에서 전쟁을 행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그러한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땅을 얻었으면 얼마나 얻었으며, 원수를 갚는 것으로 속시원했으면 얼마나 시원했겠는가? 엄청난 사람만 죽어나갔고 국토가 파괴되었으며 인권은 유린되고 말았다. 전쟁은 인간의 과도한 욕심과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미워하는 마음의 발로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고로 전쟁을 그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도바울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한다(딤전6:6). 우리가 이 세상에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 빈 몸으로 왔다. 그리고 또한 죽을 때에는 손에 쥐고 갈 수도 없다. 그러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부하려 함으로 인하여 온갖 시험과 올무와 새로운 욕심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욕심의 시작은 사탄마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를 욕심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도한 욕심은 죄라는 것을 알고 우리 성도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면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과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부한 성도가 되기를 바른다. 전쟁을 그치게 하려면 둘째, 자신이 직접 원수를 갚으려 노력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고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5:43~44). 그래서 원수갚는 일이 끝날 수 있다. 원수를 갚아야 할 일이 진정 존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심으로 하실 일이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만이 원수갚음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는 결코 온전하지 않다. 실수가 있으며 허물이 있으며 잘못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원수를 미워하지 말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4. 북방왕들과 남방왕들은 150년간 대체 어떤 전쟁을 치렀는가?

  다니엘서 11장은 계속해서 "북방왕"이라는 말과 "남방왕"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동일한 인물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 북방에서 출현할 왕들과 남방에서 출현할 왕들을 계속해서 표현하는 것이므로, 그가 누군지를 역사적으로 찾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북방왕"은 분열된 헬라제국의 땅덩어리 중에서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땅을 차지한 "셀류커스 1세(니카노르)"에 의해 시작된 왕과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며, "남방왕"은 분열될 헬라제국의 땅덩어리 중에서 애굽(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땅을 차지한 "프톨레미 1세(소테르)"에 의해 시작된 왕과 그의 후손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두 나라는 특별히 싸울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셀류커스1세는 프톨레미 1세의 부하였다가 나중에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이유가 있다면 알렉산더가 죽으면서 "[나라를] 쎈 놈에게 물려주어라"는 말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 두 나라는 평화롭게 지냈다. 그런데 아들 대에 가서 그만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그것은 프톨레미왕조의 제3대왕이었던 프톨레미 3세(오에르게테스)가 자기 누나의 원수를 갚겠다고 전쟁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프톨레미1세(소테르)는 지혜로운 아들을 두었다. 그가 바로 제2대왕으로 등극한 "프톨레미2세(필라델푸스)"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을 지어 전세계에 있는 책을 모았다. 그중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도 있었으니, 그가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오늘날 70인역이라는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는 북쪽 안디옥에 위치한 북방왕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자기의 딸(베레네스 혹은 베로니체)을 셀류커스1세의 아들인 안티오커스2세(테오스)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러나 안디오커스2세(테오스)는 이미 자기에게 왕비가 있었고 또한 슬하에 아들도 있는 몸이었다. 하지만 화친을 위해 자기의 아내와 이혼하고 새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리하여 시집간 베레니스는 거기에서 아들까지 낳았다. 하지만 그녀가 시집간지 2년만에 아버지인 프톨레미2세(필라델푸스)가 죽고 만다. 그러자 별 이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안디오커스2세(테오스)가 베네니스와 이혼하고 다시 전처를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문제가 그때 발생한다. 부인을 이랬다 저랬다 바꾸고 있는 남편을 불신하던 안디오커스2세의 전처였던 라오디스(혹은 라오디케)가 자신의 남편을 독살해버리고 자신의 아들, 셀류커스2세(칼리니쿠스)를 왕으로 앉힌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베레니스와 그의 아들마저 죽여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베레니스의 남동생 프톨레미3세(유에르게테스)(프톨레미1세의 둘째아들이자, 프톨레미2세의 동생)가 누나의 억울한 죽음을 갚겠다고 시리아로 쳐들어간 것이다. 그리하여 프톨레미2세(유에르게테스)와 안디오커스2세의 아들이었던 셀류커스2세(칼리니쿠스)와 전쟁이 났다. 예상대로 그 전쟁은 프톨레미3세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러자 프톨레미3세는 라오디스(안디오커스2세의 전처)를 처형하고 엄청난 노략물을 얻어 귀환했으니, 금4천달란트, 은4만달란트 그리고 2,500개이상의 우상들을 가지고 금의환향했다. 이것이 남방왕과 북방왕의 제1차 전투 이야기다. 

  그리고 시리아의 셀류커스왕조의 제6대왕이었던 안디오커스3세(마그누스)는 북방왕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왕이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영토확장을 위해 많은 전쟁을 치른다. B.C.168년경에는 토성을 쌓아서 남방왕이었던 프톨레미4세(필로파토르)의 스코파스 대군을 격퇴하고 시돈땅을 차지하게 되었다(15절). 그리고 가자지구까지 점령하였다(16절). 그리하여 팔레스틴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는 프톨레미왕국에 대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자 작전을 쓰는데,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11~14살 먹은 프톨레미5세(에피파네스)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다(17절). 그런데 클레오파트라는 어린 프톨레미5세와 결혼하자마자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면서 프톨레미왕조를 위해 모든 헌신을 다한다. 오히려 남편의 왕국에 충성을 바친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부탁한 프톨레미왕국의 전복의 음모를 철저히 외면해버린다. 그래도 안디오커스3세(마그누스)가 애굽정복의 꿈을 버리지 못하자, 이제는 로마가 애굽을 도와주기 위해 장군 스키피오를 보낸다. 그리하여 B.C.188년 마그네시아에서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때 로마의 스키피오장군이 승리하면서 아파미아조약을 체결한다. 이때부터 시리아왕국은 로마에 해마다 막대한 양의 조공을 바치게 되고, 그때 자신의 셋째아들인 안디오커스4세(에피파네스)가 로마에 볼모로 잡혀가는 비운을 맞이한다.

  그리고 안디오커스3세가 죽자, 셀류커스왕조 제7대왕으로 그의 장남인 셀류커스4세(필로파토르)(B.C.187~175)이 나라를 이어받는다. 하지만 아버지가 로마에게 패하였던 탓에, 로마에게 막대한 세금을 바치기 위해 온갖 힘을 기울인다. 그 즈음에 남유다의 성전을 맡고있는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당시 오니아스대제사장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거짓정보를 셀류커스왕조에게 제공한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수없이 많은 돈과 보물이 있으며, 그것은 제사용이 아니라 셀류커스4세가 와서 얼아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셀류커스4세는 당시 왕실의 총리였던 "헬리오도루스"를 예루살렘에 보낸다. 가서 돈을 다 몰수해오라고 한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가서 그 돈을 다 내놓으라고 하지만, 오니아스 대제사장은 그 정보는 거짓이라고 하면서, 성전금고에는 얼아정도의 돈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돈이기에 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금고안을 조사해야겠다고 하고 호위병들을 데리고 성전금고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것이다. 갑자기 황금갑옷을 입은 기사를 태운 말이 나타나 앞발을 헬리오도루스에게 돌진한 것이다. 그는 쓰러졌고 함께 나타난 두 명의 천사가 채찍으로 총리와 호위병들을 죽음에 이를 정도로 때리고 사라진다. 그렇지만 오니아스는 훗날을 위해 헬리오도루스를 위해 희생제사를 드리고 그를 치유해준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셀류커스4세와 헬리오도루스 사이에 논쟁이 격화된다. 그때 헬리오도루스는 무모한 조세정책으로 인해 예루살렘 및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중봉기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고심끝에 왕에게 반기를 들었고 왕을 독살해버린다. 그리하여 셀류커스4세의 통치는 끝이 난다. 

 

5. 셀류커스왕조의 제8대왕이었던 안디오커스4세(에피파네스)는 어떤 인물이었는가?

  셀류커스왕조의 제8대왕 안디오커스4세(에피파네스)(B.C.175~163)는 어떻게 해서 왕이 되었는가?  그는 부친이었던 안디오커스3세(마그누스)의 장손이 아니었다. 그는 삼남이지만 속임수와 궤휼을 동원하여 왕이 된 아주 간교한 자다. 그럼 그는 어떻게 되어서 왕이 될 수 있었을까? 그의 아버지는 셀류커스왕조의 왕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오커스3세(마그누스)(B.C.223~187)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였던 안디오커스3세(마그누스)가 B.C.188년 로마와의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스키피오장군에서 대패한다. 그리고 그때 체결한 아파미아(Apamea)조약에 따라 에피파네스는 로마로 보낸 볼모 20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13년을 자유를 상실한 채 지냈다. 그러다가 자신의 형인 제7대 시리아왕 셀류커스4세(필로파토르)의 아들인 데메트리우스를 로마로 끌어들여 자신을 대신하여 볼모로 남게 하고, 자신은 아테네를 거쳐 안디옥으로 오게 된다. 그런데 셀류커스4세(필로파토르)가 총리대신 헬리오도루스에 의해 독살당하자, 어린조카(왕의 둘째아들)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안디옥에 와서는 자신의 부하 안드로니쿠스를 시켜 어린조카를 암실한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지기를 두려워 또한 안드로니쿠스도 살해한다. 그리고 총리대신 헬리오로두스도 제거한 다음, B.C.175년 셀류커스왕주의 제8대왕으로 등극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사람들은 셀류커스왕조의 안디오커스4세 에피파네스왕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모욕적으로 이스라엘백성을 박해하고 성전과 하나님을 모독한 독재자로 본다. 그는 사실 다니엘서 8장에 보면, 숫염소에 네 뿔  중에 한 뿔(셀류커스왕조)에서 올라온 "작은 뿔"로서(단8:9) 이미 소개된 바 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의 인물로 묘사된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인 하나님을 대적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고난받게 하고 잔인하게 죽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B.C171년에 그는 예루살렘에 갔다. 그리고 유대의 대제사장이었던 오니아스3세를 폐위시켰고, 뇌물을 받아서 오니아스의 동생 야손(Jason)에게 대제사장직을 맡겼다가, 또 다시 더 많은 뇌물을 가져단 준 베냐민지파 메넬라우스(Menelaus)에게 대제사장직을 맡겼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B.C.167년에는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안식일에 약 10만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4만명은 잡아다가 노예로 팔았으며, 성전의 보물들을 약탈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일드리는 제사를 없애버렸으며, 번제단에 자기 얼굴을 닮은 제우스 신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매달 25일이 되면 돼지피로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하였다. 또한 그는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였으며, 할례도 금지하였다. 그리고 율법책을 소유하거나 복사하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이것을 어길 경우 사형에 처하였다. 그것이 바로 2,300주야 곧 1,150일(3년55일)간에 있었던 바로 그 사건이다. 그럼 왜 그는 이러한 짓을 저질르게 되었는가? 그 부분에 관하여는 다음주에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6. 성도들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상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접하만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은 두번씩이나 그렇게 초자연적으로 막으시면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할 때에는 그냥 내버려두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는 당신의 백성을 연단하여 정결케하려고 의도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들의 박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심으로 그들을 정결케하시는 것이다. 둘째, 백성들 중에서 과연 알곡이 누구며 가라지가 누군지를 가려내어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로 구별하시기 위함이시다. 그렇다. 고난과 핍박 없이 어찌 스스로 자신이 진정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고난의 현장에 있을 때 그들의 신앙이 진정 빛을 발할 수 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과 핍박에 관하여는 다음주에 더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7. 나오며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빈번한 전쟁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헬라제국의 두 나라, 애굽왕국(프톨레미왕주)와 시리아왕국(셀류커스왕주)간의 싸움은 치열하기로 매우 유명하다.인명피해도 피해이지만 무려 150년간에 걸쳐 전쟁을 수행했으니 죽은 사람이 얼마이겠는가? 그들은 영토확장과 안정 그리고 원수갚음을 위해 전쟁을 수행했다. 하지만 그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서로 얻은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예루살렘의 통치권이 프톨레미왕조에서 셀류커스왕조에게로 넘어갈 정도였을 뿐이다. 하나님은 그순간 이스라엘 백성이 과연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시험하셨다. 그리하여 정금같은 신앙인들만을 골라내고 계셨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시련이 바람이 끊이지 않고 계속 불어닥칠 것이다. 그때에 우리 나라는 북쪽에 붙을 것인가 남쪽에 붙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전능하시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 붙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영원하시며 그분만이 만왕의 왕이시며, 그분만이 모든 왕들의 앉고 일어섬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는 탐욕과 위선의 가면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며 용서하며 관용을 나타내야 한다. 그리고 악을 도모하지 말고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지조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7월 0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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