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사실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려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천국복음 전파사역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악한 영들과 맞짱을 떠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자들은 이때 핍박과 반대 그리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천국복음전파자는 전부 다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복음 전파자들에게는 특별한 약속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궁극적으로 받을 상은 대체 무엇인가?

 

2022-05-08(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각오해야 할 일과 비교할 수 없는 상급(마10:16~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8NNoCmYPNRw [혹은 https://tv.naver.com/v/26808221 ]

 

1. 들어가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사람을 보내시고 있다. 이 땅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도록 준비하신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시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사명자'(천국복음전파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명자들의 사역을 도울 수 있도록 또한 그에게 사람을 붙여주신다. 이들을 '협력자'(천국복음전파협력자)라고 부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는 직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일하는 자들이 있고(마4:18~22), 또 하나는 이들을 도와서 하늘의 부르심에 동참하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히3: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체 어떤 일을 맡기시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천국복음전파사역'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천국복음전파사역을 감당할 자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있으며, 이러한 자들과 협력하여 일할 자들을 보내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어려움도 없는 것일까?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꼭 주의하고 있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준비해 두신 상은 대체 무엇일까? 그래서 오늘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먼저 각오하고 있어야 할 마음의 자세와 더불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주어질 비교할 수 없는 상급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주의하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천국복음 전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행한 사역의 핵심이다. 예수께서는 이땅에 사실 때에 3가지 일만 하셨다. 첫째는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둘째는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셋째는 병든 자와 약한 자를 치료하시고, 귀신들린 자들로부터 귀신을 쫓아주셨다. 그런데 사실 이 3가지 사역은 오직 한 가지 '천국복음전파사역'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천국의 실상에 대해 잘 모르고 천국에 대한 기록된 말씀을 잘 모르니까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요, 천국이 실재하여도 사람들이 천국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 천국이 실제하는 것임을 알게 하고자 육신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자들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복음 전파 사역자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 천국복음을 전파할 때에 주의하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핍박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복음을 전파하려 한다면 핍박과 반대와 심지어 죽음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천국복음전파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이들은 어떻게 천국복음전파자들을 핍박하며, 왜 천국복음전파자들을 핍박하는 것인가? 

  첫째,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과연 누가 핍박하는가? 그것은 4부류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첫째는 동족으로서 특히 종교지도자들이 핍박할 것이라고 했다(17절). 둘째는 이방인 집권자들도 핍박할 것이라고 했다(18절). 셋째는 특히 가족의 반대과 핍박이 아주 심할 것이라고 했다(21~22절). 넷째는 모든 사람들이 천국복음전파자를 미워할 것이라고 하셨다(23절). 

  둘째, 핍박자들은 어떻게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핍박하는가? 즉 핍박의 유형은 대체 어떤 것이 있는가? 이것도 역시 4가지라고 말씀하셨는데, 첫째는 동족에게는 천국복음을 전파하자들이 죄인으로 취급받고 재판정에 넘겨지며 그곳에서 채찍질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17절). 둘째는 불신 권력자들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고 감옥게 갇히기도 할 것이라고 하셨다(18절). 셋째는 가족이 일어나 대적할 것인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자기를 죽는 데에 넘겨주거나 직접 죽일 수도 있다고 하셨다(21절). 넷째는 천국복음전파자는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22절). 

  셋째, 그렇다면 왜 천국복음 전파자들은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것인가? 그것은 핍박자들이 사탄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은 사탄에게 속해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의 자궁에 있을 때부터 귀신의 공격을 받아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다 마귀의 자식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와서 마귀에게 붙들려 있는 자들을 구출하여  빼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귀를 그것을 보고는 잘하고 있다고 박수를 쳐 주겠는가? 아니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우리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겠는가? 결국 이 세상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천국백성이 되려면 반드시 악한 영들과 필연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예수께서는 이러한 핍박에 직면하지 않으셨는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다가 자기의 동족 특히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의해 죄없이 고소를 당해야 했고, 이방 권력자는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의해 사형에 처해지셨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없애기 위한 속죄제물이자 속건제물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죽음은 영광스러운 죽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도 자신의 동족과 이방인 집권세력에 의해 고난을 받고 그리고 죽음에 넘기워지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국복음전파자들은 천국복음을 전파할 때에 반드시 적의 공격과 맞딱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3.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핍박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렇다고 핍박하는 자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영적 싸움과 맞딱드려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6~27절). 즉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되면 사탄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을 써서 핍박하는 일은 응당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을 들려주는 것이지만 장차 제자들이 천국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공개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숨긴채 전파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드러나서 전파되어야 할 천국복음이기 때문에 천국복음을 전파하되 겁먹지 말고 담대히 나가서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다. 둘째, 핍박하는 자들이 복음전파자들을 죽인다고 하여도 그들은 몸만 죽일 뿐 정신이나 마음까지 결코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8절).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몸은 죽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는 핍박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동시에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셨다. 셋째, 복음전파자들에게 일어나는 그 어떤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단 한 가지라도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9~31절).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하찮은 날짐승인 참새를 비유하셨다. 하찮은 참새 한 마디로 하나님의 허락없이 결코 땅에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고 있었다. 한 앗사리온은 노동자의 하루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16의 값어지를 지녔다. 그러므로 오늘날 노동자의 하루품삯을 5만원으로 치자면, 참새 한 마디는1,562원 밖에 나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이 참새가 팔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하물며 참새보다는 몇 천 배 몇 만 배 특별한 복음전파자들일까보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설령 핍박자들이 복음전파자들을 핍박하고 죽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주님의 허락하심 하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복음전파자를 가장 귀하히 보시는데 그냥 내버려둘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오늘날 우리가 천국복음을 듣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천국복음을 자신의 모든 미래를 내어맡기는 것도 다 주님의 허락하심 하에 일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사실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가장 관심이 크시다. 그것 때문에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그것을 하려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이요. 그것을 위해 제자들을 뽑아 일하게 하셨으며, 오늘날도 이것을 위해 하늘에서 준비하신 일꾼을 보내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4.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준비하고 있는 상은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하늘에서만 상을 주시는 분은 아니시다. 이 땅에 그들이 있을 때에도 당신의 눈을 그들에게서 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는 이 땅에서 최소 3가지 복을 주신다. 첫째는, 어려운 고비 때마다 성령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마10:19~20). 그러므로 혹시 천국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로 끌려가서 심문을 받을 때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때가 되면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실 것이라고 했다(19~20절). 그리고 둘째는  현세에도 물질이나 가족도 많은 100배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막10:29~30). 그렇다.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 가족이나 집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100배나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천국복음을 전파하거나 천국복음 전파사역에 동역하는 분들을 하나님께서는 매우 귀히 보시고 그가 하는 일에 복을 주신다고 약속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데 협력하는 평신도 중에는 물질적으로 엄청 큰 복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셋째,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그들이 살고 숨쉬고 움직이는 모든 것까지 다 이끌어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주관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렇다. 어느 누구도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눈이 그들에게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자의 삶은 결코 그 어떤 계획이나 돌봄없이 땅에 방치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받을 복은 이 땅에서 받을 복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에 받을 복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렇다. 사실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받을 복의 진짜는 하늘에서 받는 복일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천국복음전파자들은 죽은 후에 결코 지옥(게헨나)에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29절).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될 것(막10:38~40)이라는 뜻이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되 새 예루살렘 성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땅의 왕들의 위치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천국에 들어가서되 땅의 왕들로서 천국백성을 심판하는 권한을 이어받을 것이고, 또한 보좌에 앉아 다른 사람과 천사를 심판하고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계21:24,26). 셋째, 무엇보다도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천국복음 전파에 그렇게 헌신했던 모든 것들과 천국복음 전파에 협력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것도 이 세상에 아니라 오는 세상인 저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도록 주어질 것이다. 특별히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제자들에 의해 믿게 될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말씀해주셨다. 즉 제자들(사명자들)을 영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며, 주님을 영접하는 일은 곧 주님을 보내셨던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누군가가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자들을 돕게 되면 그도 천국에 들어가서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누군가 의인 곧 천국복음전파자로부터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의롭게 하는 사람들을 돕는 자들은 의인들이 상을 받을 때에 같이 동참하여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41절). 그리고 혹시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다고 할지라도 그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천국복음 전파자가 그 상을 잃는다는 것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 나오며

  천국복음은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천국복음 전파는 더더욱 아무나 할 수 있는 사역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사실 세상이 하도 악하게 변해버렸기에,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사역자들을 하늘에서 미리 준비하여 이 땅에 내려보내고 계신다. 그런 자들로 인하여 저 천국백성이 될 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역자들로 인해 자신의 연약함과 잘못됨을 깨닫고 회개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란 바로 천국복음전파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복음 전파사역에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오늘까지 바로 이런 자들에게 시선을 떼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복음 전파자들이 당신의 일을 대신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수고를 주님께서는 결코 간과하지 아니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들의 수고를 기억하시고 이들에게 상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일도 매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천국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고 또 직접 사역현장에 뛰어드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나는 지금 어떠한 위치에 있으며, 천국복음 전파에 얼마나 동참하고 있는가? 이것에 따라 천국에서 누릴 우리의 상급과 영원히 소유하게 될 우리의 신분과 위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제 지구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을 배출하고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성도를 배출하는 일에 나도 동참하여 하늘에 준비된 비교할 수 없는 상을 받는 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5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주님은 어떤 경우에 우리가 믿음이 작은 자라고 책망하시는 것일까? 기왕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으면 큰 믿음을 소유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선택받았던 12제자들이었지만 그들도 주님으로터 책망을 5번이나 받았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이러한 이유를 통해서 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토록 책망하신 것일까?

 

1. 들어가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신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성경에서 단 6차례만 발견된다. 대체 예수께서는 어떤 경우에 제자들의 믿음이 작다는 것을 책망하셨을까?

 

2. 사람이 가진 2가지 종류의 믿음은 무엇인가?

  사람이 가지는 믿음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구원얻기 위해 필요한 믿음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믿음이다. 앞의 믿음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는 믿음이요, 이미 예수께서 하신 일을 믿는 믿음이다. 일종의 과거에 일어난 사실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 이것을 결국 우리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결정해 주는 것기에, 이러한 "구원얻기 위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믿는 데에 어떤 긴장관계가 있거나, 불안하거나 하는 것은 없다. 단지 믿든지 아니 믿든지만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에는 큰 믿음이 있거나 작은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후자의 믿음은 다르다. 이것은 지금도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역사하는 믿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 현재의 믿음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지금 현장에서 나타나여 보여지는 믿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긴장관계가 있다. 또한 이러한 믿음에는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믿음은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불리며, 크고 작음이 있기에 "은사적인 믿음"이라고 한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큰 믿음이 제자들에게 부족한 것을 아셨다. 그래서 그들을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왕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구원얻는 믿음만 가질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역사하는 큰 믿음을 갖기를 소망한다.

 

3. 주님께서 작은 믿음을 가졌다고 제자들을 책망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경우에 제자들이 믿음이 작은 것을 책망하셨을까? 성경을 보면, 딱 6가지 사례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사례를 집중해서 살펴보아서, 어떤 자가 작은 믿음의 소유자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큰 믿음으로 향해 나갈 수 있는지를 힘써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다고 책망한 경우는 마태복음에서 5번 나오고(마6:30, 14:31, 8:26, 126:8, 17:20). 누가복음에서 1번 나온다(눅12:28). 그런데 누가복음에 나오는 말씀은 마6:30과 일치하는 평행문구이므로, 실제적으로는 딱 5번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그 사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예수께서는 의식주의 생계의 문제를 걱정하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마6:30). 다시 말해, 제자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고 하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공중나는 새와 들의 백합화를 기르시고 입히시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더 먹이시고 입히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여한 사명에 더 충실할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믿음을 더 크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의식주에 대한 걱정(근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손으로 힘써 일하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일할 때에 의식주의 문제는 해결해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고로, 걱정근심과 의심을 버리는 것이 큰 믿음을 갖는 핵심포인트가 된다.

  둘째, 예수께서는 물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며 빠져가는 베드로를 건져주시면서 믿음이 작은 자라고 책망하셨다(마14:31). 베드로는 그 순간 큰 믿음에서 작은 믿음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았던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기더러 오라고 하자, 물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가다가 그만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다가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말았다. 사실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는 없다. 자연계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기에 천지만물은 그분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때에 베드로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바다를 붙든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고 믿음을 가졌던 베드로가 그만 거센 파도를 보자 그만 무서워하고 말았다. 그 순간 자연계의 법칙에 따라 그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보다 더 큰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현상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더 신뢰해야 하는 것을 말해준다. 이 세상의 것들은 어제의 진리가 오늘의 거짓으로 둔갑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진리다. 주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주님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만물도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그러므로 현상을 더 크게 보지 말고 주님을 더 크게 보고 믿는 것이 큰 믿음을 갖는 핵심포인트가 된다.

  셋째,  예수께서는 바람과 거센 풍랑이 일어나 배가 뒤집힐 지경에 이르렀을 때 무서워서 죽겠다며 아우성치는 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마8:26).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오직 주님의 뒤를 따라가겠다면서, 자신의 직업과 가족도 버린 채 뒤따라오던 제자들이 문득 만난 장애물 앞에서 금새 자신의 각오를 무너지는 것을 보시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적어도 주님께서 그 배에 같이 타고 있다면, 비록 풍랑은 만나다고 하더라도 배는 전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가 전복되어 죽을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지만물의 창조주께서 또한 그것을 다스리는 주관자께서 그 배에 함께 타고 계시는데, 바람과 풍랑이 그들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면 풍랑은 일어나도 그것들이 우리의 목숨은 건드릴 수는 없다. 오직 주님이 우리에게서 잠시 손을 떼신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또한 제자로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한다면, 세상의 어떤 풍랑이 우리를 결코 헤칠 수 없다는 것을 믿으라. 그러므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가 아직 세상에서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우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임을 믿는 것이 큰 믿음이 되는 핵심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넷째,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니까 제자들이 떡을 챙겨오지 못한 것을 알고 걱정하고 있었을 때, 주께서 그들의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신 것이다(마16:8). 원래 주님의 말씀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의 가르침을 주의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의 귓가에 떡을 챙겨오지 못한 꾸증으로 들렸다. 하지만 설령 그들이 떡가져오기를 잊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언제든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전능자임을 믿으면 되었다. 예수님이 그들 곁에 계시면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걱정만 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그들에게 그들이 믿음이 작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렇다. 여기에서 작은 믿음이 되는 조건은 전능자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며, 언제라도 주님을 믿고 있으면 부족한 것이라고 채워진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전능자이신 예수님이 계시다고 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거나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언제라도 채워주실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전능자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 그리고 물질은 언제라도 전능자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큰 믿음을 갖는 핵심포인트가 된다.

  다섯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간질병걸린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는 그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셨다(마17:20).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자를 치유할 수 있는 권세를 이미 받은 상태에 있었다(마10;1). 그러므로 담대하게 권세를 사용하면 귀신들도 제자들의 말에 순종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간질병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온 어떤 아버지의 소원을 그들은 들어주지 못했다. 아마도 자기자신들을 정의하기를 자기들은 여린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믿음이 좋다고 알려진 3명의 제자들 곧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고, 지금 산 아래에는 나머지 자기들 아홉명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없으니, 자신들은 간질병에 걸린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아내기가 힘들 것이라고 즈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귀신은 우리의 믿음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권세에 대한 담대함을 보고 떠나갈 뿐이다. 우리가 가진 권세가 누구의 것은 크고 누구의 것은 작은 것이 아님을 알라. 동일한 권세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귀신이든지 예수이름으로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9명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약하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작게 여긴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가진 권세는 이미 예수님의 권세인 것이다. 그분의 권세는 결코 작지 않다. 그것을 알고 사용하는 자의 믿음이 담대하지 못해서 그런 것 뿐이다. 결국 자신이 가진 권세가 스스로 작다고 생각하는 불신과 의심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이유가 되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위임하신 권세는 그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척척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이 큰 믿음이 되는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4. 나오며

  결국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작다고 책망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위의 5가지 경우를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문제 앞에서 늘 걱정근심에 쌓여있는 것과 전능자이신 주님이 곁에 있음에도 그분의 전능성을 믿지 못하는 불신과 의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세상의 문제를 주님보다 더 크게 보고 두려워하는 마음이었다. 아니다. 이제는 이런 것들을 밖으로 내던져 버리라. 전능자이신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께 기도한다면,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음을 믿으라. 그리고 우리에게 이미 위임된 권세가 있음을 알고 담대하게 그것을 사용하라. 즉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이미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믿고 실행하라. 실행하되 주저주저하지 말라. 귀신들도 다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여호수아와 같은 담대함이 요청된다. 예수님의 권세를 지리멸렬하게 사용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고 세상의 군왕처럼 선포하라. 그러면 우리도 어느새 큰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있을 것이요, 그러면 우리가 육신을 가진 이 세상에서도 주님의 능력을 맛보며 살아가는 복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는 어떤 자일까? 다윗은 시편14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런데 중의적인 방법으로 그를 소개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두번째 부인의 전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누구이며, 그 최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아보자.
 

 

1. 들어가며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는 누구인가? 사실 교만이라는 품성은 원래 인간의 품성이라기보다는 사탄의 품성이었다. 그가 하늘에 있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교만한 마음을 품었고, 그 마음을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도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사탄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곧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면서, 교만한 자의 최후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는 누군가?

  시편14편에서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다윗은 그가 바로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시14:1). 그렇다면, 이 세상에 가장 교만한 사람의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윗은 시편14편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의 특징들을 4가지로 열거해 놓았다. 이 세상에서 교만한 사람은 첫째,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이 주인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횡포를 통제할 수는 없다(시14:1). 둘째, 그는 늘 자의적으로 행한다. 그래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일하며 자신의 배만을 위해 살아간다(시14:3). 그리고 셋째, 열심히 이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내어버린다(사14:4). 그래서 자신에게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제거해버리거나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넷째,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미워하며 핍박한다(사14:6).

 

3. 다윗이 초기에 경험했던 교만한 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렇다면, 다윗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다윗은 그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다윗을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했다(시14;1). 여기서 우리는 '어리석은'이라는 형용사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단어가 '나발'이라는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윗의 초기 도피생활 가운데 그에게 악인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마온출신의 나발이라는 사람이었다(삼상25:2~3). 그는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었다. 그에게는 양이 3천마리, 염소가 1천마리나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종들도 여럿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완고했고, 행실이 악했으며, 은혜도 몰라보는 파렴치한이었다. 어느날 다윗이 같이 도피하는 자들 600명과 함께 갈멜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갈멜에 있는 나발의 양떼들을 보호해주고 지켜준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둘이 상종할 동안에 누군가 다치거나 양떼 중 잃은 것이 없었다. 어느날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자신의 소년 10명을 보내 나발로부터 무엇인가 은혜를 구했다. 하지만 나발은 자신의 떡과 물과 고기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다윗은 자신의 군사력으로 얼마나 나발의 양떼들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았다. 하지만 나발은 그 은혜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칼을 찬채 나발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발의 종 하나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주인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 고하였다. 아비가엘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러니 즉시 떡과 포도주, 요리한 양고기와 볶은 곡식 그리고 건포도와 무화과뭉치를 자루에 넣고 나귀에게 싣고 다윗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그의 지혜로운 말은 다윗을 감동케하고도 남았다. 결국 다윗은 그녀를 받아주었고 그녀의 남편과 종들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발이 왕의 잔치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있지 아니한가? 그러자 그 다음에 술이 깬 나발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나발은 그 즉시 마음이 무너지면서 몸이 돌과 같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0일 후에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자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자 훗날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아비가일을 데려와서 자신의 두번째 아내로 삼는다.

  이 사람이 바로 나발이다. 나발은 하나님이 없다고 사는 자였다. 오직 자신의 부와 권력을 믿고 자신의 육체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온 자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실천하지 않았다. 고아와 객과 과부를 선대하라고 했지만 그는 객들인 다윗의 소년들에게 매우 인색했다. 아니 그들을 경멸했다. 또한 자신의 양떼를 보호해주고 종들을 지켜준 은혜를 저버렸다. 그가 바로 어리석은 자 곧 나발이었던 것이다.

 

4. 교만한 자의 최후는 어떻게 돌변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 곧 악한 자의 종국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시14:5)" 이 말은 악행을 저지르며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자기맘대로 살아가는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대변해준다. 악인 혹은 교만한 자의 최후는 한 마디로 비참하다. 왜냐하면 심판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발은 다윗을 악하게 대한 것에 대해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윗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그만 낙담하여 그의 몸이 돌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죽음이 자기를 엄습해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공포에 질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겸손히 선행을 실천하고 회개생활을 해 온 자는 죽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겸손하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들을 용서해주실 것을 겸손히 간구한다. 그리고 주님의 속죄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천군천사가 자기를 데리러 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만한 자 곧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오직 자기자신만을 믿고 살아온 자는 죽음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에게 죽음은 공포 그 자체다. 심판을 받아 어떤 상황에 떨어질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발이 그랬다. 자신의 부요와 권력을 믿었을 때에는 가진 자로서 무수한 횡포를 저질렀다. 하지만 자기보다 더 힘쎈 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있었기에, 나발은 그만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소화나 제대로 되었을까 의심스럽다. 밥이나 제대로 목으로 넘어갔을지 의심스럽다. 결국 나발은 10일이 지난 후에 죽고 말았다.

 

5. 나오며

  그렇다. 악인은 자신의 악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악인은 빨리 죄인의 신분으로 자신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은 악인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 수가 없다. 그리고 오직 자기의 육체만을 위해 살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지도 않고 자비를 베풀지도 않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자신이 악하게 살아왔다면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동안 자신이 인생을 잘못 알고 살아왔음을 겸손히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간구해야 한다. 자신의 지은 죄들에 대한 주님의 속죄를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심판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떨지 않게 된다. 그래야 죽을 날이 가까울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충만해진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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