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72) 복음전파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장애요소가 되는가?(행17:1~9)_2022-11-22(화)

https://youtu.be/BkvFUdCz5AI [혹은 https://tv.naver.com/v/31023126 ]

 

1. 복음을 전파할 때 무엇이 가장 장애 요소가 되는가?

복음을 전파하거나 선교할 때 가장 많은 장애를 일으키는 요소는 대체 무엇인가? 복음을 전파할 때 대부분의 전도자들은 여러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때로는 예상하고 있는 난관을 만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파할 때에 만나게 되는 어려움들에는 대체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사도행전에 따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5가지 난관들이 있다.

첫째, 소명의식의 부족이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러낸 소명이 분명하지 않을 때에는 복음 전파를 끝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하다가 중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명인 것이다. 이것이 없으면 수많은 난관들을 극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동역자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다. 복음 전파는 혼자서 감당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둘 이상의 동역자가 꼭 필요하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꼭 2명씩 파송하시지 않으셨던가! 성령께서 안디옥교회에 있는 지도자를 파송하실 때에도 바나바와 바울, 이렇게 두 명을 파송하셨다. 그리고 그 뒤에도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전도자들이 두 명이나 혹은 그 이상이 함께 사역하곤 하였다. 복음 전파는 그만큼 함께 사역하는 일꾼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건강의 문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준비되었다고 할지라도 사역자가 건강의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에게도 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의사 누가를 붙여 주셨다. 건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넷째, 물질의 문제다. 선교비가 있어야 선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교하려면 의식주 문제와 다양한 선교 활동에 선교비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 교회에서 선교비를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선교에 많은 지장이 있다. 바울도 그랬었다. 특히 2차 전도여행 때에 더 그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람을 붙여 주셨다. 빌립보에서는 루디아 자주장사를 붙여 주셨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붙여 주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해꾼들의 문제가 있다. 방해꾼의 배후에는 항상 사탄 마귀가 있으며, 사탄 마귀의 조종을 따라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세력들이 달라붙는다. 이것을 비로소 극복할 수 있을 때에 복음 전파는 왕성하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2.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에는 선교에 있어서 어떤 난관에 부딪혔는가?

바울이 전도여행을 할 때에는 참으로 많은 고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1차 전도여행 때에는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아 거의 죽을 뻔 하기도 하였다.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이방인들의 고소로 인하여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가 2차 전도여행 중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을 때에는 2가지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는 선교비가 떨어졌다. 그래서 바울은 밤낮으로 일하면서 전도를 해야 했다(살전2:9). 감사하게도 선교비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빌립보교회가 2번이나 그에게 선교비를 보내와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말이다(빌4:15~16). 둘째는 유대인들의 핍박이었다. 유대인들이 바울의 선교를 악의적인 방법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3. 유대인들은 어떻게 바울의 선교를 방해했는가?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바울의 선교 사역을 방해한 것은 아니다. 안식일이 되었을 때에 바울은 회당에 나와 구약성경을 강론했다. 그런데 무려 3주간을 그렇게 하였다. 그러자 헬라인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여러 귀부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바울을 뒤따르게 된다. 그러자 시기심이 난 유대인들이 바울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바울이 전하는 신앙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이 전하는 메시야가 이미 오셨으니,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전하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아들로 오신 것인데, 그들은 그분을 몰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유일한 분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바울을 계속해서 핍박하였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4. 바울은 어떻게 유대인들의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바울은 안식일에는 회당에 가서 복음을 증거했지만 평소 때에는 밤낮으로 일을 했던 것 같다(살전2:9). 선교비를 충당하려고 말이다. 그런데 주간에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시장의 불량배들을 고용하여 바울과 실라를 덮치게 된다. 그때 그들은 야손의 집에 들이닥쳤다. 아마도 바울 일행이 당시 야손의 집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그 시간에 바울은 야손의 집에 없었다. 아마도 선교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하러 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바울을 체포하려고 시도한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바울이 천하(로마)를 어지럽게 한다는 것이었다(행17:6). 그리고 둘째는 바울이 사람들로 하여금 가이사(로마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른 왕인 예수님을 따르게 한다는 것이었다(행17:7). 그러나 그건은 악의적인 고소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울을 정치적인 반역 행위자로 고소하여 체포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이 전하고 있는 것은 참된 복음이었던 것이지,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 황제에게 대항하라고 가르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 누가 가장 복음 전파의 장애 요인이 되는가?

그렇다면 복음 전파에 있어서 가장 장애가 되는 요인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복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이들에 의한 방해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에 가장 집요하게 방해한 세력은 무엇인가? 그들은 바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1차 전도여행 때를 보더라도 그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리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까지 쫓아와서 집요하게 방해했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에 데살로니가에서는 시장의 불량배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체포하고 죽이려고 하였다. 그럼 왜 유대인들은 그토록 바울의 복음 전파를 방해한 것인가? 그것은 알기는 알지만 어설프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진리는 모른 채 자기가 듣고 배운 교리만 집착하여 그것에서 벗어난 것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 중에는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믿지 않고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라고 하신 일이 결코 없다. 한 마디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는 자들로 인하여 복음 전파는 오늘도 막히고 또 막히고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22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5) 사역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축복은 무엇인가?(행15:22~35)_2022-11-09(수)

https://youtu.be/PBhhFaElyC8  [혹은 https://youtu.be/PBhhFaElyC8 ]

 

1. 주의 사역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일하는 사역자들은 무엇이 제일 필요한 것일까? 우선은 사역자로서의 부르심과 자질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르심이 없는 사역자는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지 못하며 힘들 때에는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돕는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정적으로 뒷받침받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도 사람이기에 먹고 입고 자고 이동하고 잠자기 위한 물질이 꼭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2. 사도 바울의 삶에 있어서 어떤 만남의 축복이 있었는가?

  사람이 받는 축복 가운데 가장 귀한 축복 가운데 하나는 만남의 축복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인생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따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사람의 축복의 향배도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최대의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만난 동역자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매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첫째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 그로부터 악한 영을 뽑아주고 성령의 은사를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은 다메섹에 있는 형제 아나니아가 해 주었다. 둘째로, 그가 변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친교의 교제를 나누려 할 때에는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신을 믿어 주어서 사도들과 야고보에게 친교의 악수를 나누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셋째로, 홀로 선교여행을 떠나야 했던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실라(실루아노)가 동역자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3.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인 실라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세 번째의 사람은 예루살렘교회의 '실라'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였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그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행15:22).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과를 안디옥교회에 가서 전해 줄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의 구원의 문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총회가 열렸다. 이는 이방인들의 구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과연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냐 아니면 그것으로는 안 되고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종 결과는 사도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의 구원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유대인들을 위해 이방인들이 주의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야고보의 의견이 그대로 수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총회의 결정 사항을 안디옥교회에 전달해 줄 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편지와 더불어 유다와 실라가 선택되었는데, 이 둘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예언을 할 수 있는 선지자로서(행15:32),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났을 때에 그를 권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영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둘은 사도들과 장로들이 써 준 편지를 들고 안디옥교회를 방문하게 되었고 그것을 전달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교회로 되돌아갔다. 

 

4.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3대 축복이자 기도 제목은 무엇인가?

  바울에게는 놀랍게도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서 바울을 도와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의 사역자들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렇게 되어지도록 기도할 제목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보통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주의 종은 자신의 부르심을 잘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은사를 받아야 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다 부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사역과 사명에 합당한 은사가 부어진다. 그중에서도 복음을 전달할 사역자들에게는 설교의 은사, 환상의 은사, 치유의 은사, 귀신쫓는 은사 등은 꼭 있어야 한다. 둘째, 자신과 함께 사역을 감당할 신실한 동역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일은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은 대부분 팀 사역을 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어떤 동역자가 있었는가? 감사하게도 바울에게는 여러 종류의 동역자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그에게는 복음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꼭 있었다. 그러한 사람으로는 먼저는 바나바와 실라가 있었고, 청년 디모데와 의사 누가도 있었다. 셋째, 자신의 복음전파 사역에 필요한 물질을 후원하는 선교 후원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려면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러한 선교 후원자가 꼭 있었다. 2차 전도여행 때에는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가 있었고,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바울의 대표적인 후원자였다. 이들은 바울이 안디옥교회로부터 선교 후원비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바울의 든든한 선교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사 바울은 그 험난한 선교여행을 잘 마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오늘날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위해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항상 통하는 법칙은 제자가 스승을 능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성도의 영성은 주의 종의 영성을 능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교회가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 대한 충분한 기도이다. 주의 종들에게 영권과 인권과 물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부어 주시어 주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역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신실한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도가 주의 종과 함께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동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동역이 어찌 말씀 사역과 물질 후원 뿐이겠는가? 왜냐하면 기도의 동역이야말로 그 어떤 동역보다도 가장 필요한 동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는 주의 종들을 통하여 양질의 양식을 받아서 누리면서 하늘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되며, 주의 종들은 성도들의 기도와 더불어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사역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로소 교회는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가 있는 것이다. 

 

 

2022년 11월 0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56) 바울에게 있어서 마가 요한의 시작과 마침(행13:13)_2022-10-14(금)

https://youtu.be/EZkhn3IMFEg  [혹은 https://tv.naver.com/v/30214985 ]

 

1. 마가 요한은 누구인가?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외조카이다(골4:10). 왜냐하면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행12:12)와 바나바는 누나와 남동생이기 때문이다(반대로 오누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의 집은 베드로가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교회가 함께 모여 기도하던 집이었다(행12:5,12). 그러므로 마가 요한의 집은 오순절날 성령이 임한 장소와 같은 장소이며, 예수께서 12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성만찬을 했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A.D.40년경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가 기근으로 인하여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 구제 헌금을 전달하게 한다. 그리고 돌아오는데,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안디옥으로 데려온다(행11:30). 그리하여 마가 요한이 안디옥교회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때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자 이 선교여행에 마가가 보조자로 참여하게 된다(행13:5). 그렇다면 그의 이름이 '마가'라고 하는 '요한'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이름을 헬라식으로 하면 '요한'이지만, 로마식으로 하면 '마가'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요한'은 히브리식으로 말하면 '요나'에 해당한다. 

 

2.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 할 때에 바울은 왜 그를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는가?

  A.D.47년경 성령의 지시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때 바울은 A.D.49년까지 약 2년 동안 2,300km나 되는 전도여행을 한다. 그런데 그때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보조자(수행원)로 데리고 떠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가 요한은 전도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 시기는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 섬에 대한 전도를 마치고 밤빌리아의 버가라는 도시에 도착했을 때다(행13:13). 그러니까 전도여행 초기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 나중에 바울의 말을 통하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이방인을 선교하는 일에 같이 동참했던 마가 요한이 갑자기 상의도 없이 그들을 떠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선교지에서의 고생과 심적인 부담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걱정 등이 함께 그에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인다. 고로 바울이 보기에는 아무리 보조자로 참여하고 있다 할지라도 마가는 선교사로서는 부적격자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왜냐하면 선교라는 것이 애들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일은 거룩한 씨앗을 뿌리는 사역이며, 악한 영들과 전쟁하는 것인데, 거기에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그리고 누가 따라다니며 선교사들에게 식사를 제공해 주겠는가? 어찌 선교여행이 그리 편한 여행이 되겠는가? 그러나 마가 요한은 미성숙한 자로서 그러한 어려움들을 이기지 못한 채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할 때에 일어난다. 바울이 바나바에게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했던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를 방문하자"고 선교여행을 다시 시작할 것을 제안했을 때에, 바나바는 또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 일에 반대했다. 결국 A.D.49년경 바울과 바나바는 심히 다투고는 피차 갈라져서 각각 따로 선교여행을 떠난다. 이때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다시 구브로로 떠났고,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육로를 이용하여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다. 

 

3. 마가 요한은 사도 바울과 영영 헤어진 것인가?

  그렇다면 마가 요한은 바울과 영영 헤어진 것인가? 그럴 것 같지만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때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A.D.60년경, 바울이 로마에 압송되고 거기에 있는 감옥에 갇혀 있게 되었을 때에,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한 통 써 보냈는데, 그때에 바울은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몬1:24). 어느새 로마에서 마가는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동역자(쉰에르고스)'라는 말은 복음전파를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로 10여 년 뒤 바울과 마가는 아주 친밀한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대체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추측컨대 마가 요한은 2차 전도여행을 떠난 후에 뭔가 많이 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가 로마에 갔었고 로마에서 그는 복음전파에 있어서 아주 귀중한 일들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A.D.64~65년경 로마에서 기록한 베드로의' 첫 번째 편지 곧 베드로전서를 보면, 베드로는 그를 "나의 아들 마가"라고 언급한다는 것이다(벧전5:13). 이는 마가가 A.D.49년경 바울과 헤어진 뒤 15년 정도 지난 후 이제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이자 제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자료에 따르면, 마가 요한은 로마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베드로의 통역자의 일을 했다고 한다. 즉 베드로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파할 때에 마가 요한은 그의 통역자로서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는 바울이 먼저 갔었는지 아니면 마가가 먼저 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바울과 베드로에게 마가 요한은 복음전파의 보조자로서 톡톡히 그 일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바울이 죽기 일보 직전에 기록했던 디모데전서에 따르면, 바울은 A.D.66~67년경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네가 올 때에 [에베소에 있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라고 했다. 그렇다. 마가 요한은 어느새 바울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매우 유익한 인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4. 어떻게 되어서 마가 요한은 바울의 동역자가 될 수 있었고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마가 요한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합리적인 추론에 따르면, 1차적으로는 바나바와 2차 선교여행을 같이 떠남으로써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고 추측이 된다. 그리고 선교여행 이후 마가 요한은 베드로를 따라 로마에 갔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곳에서 또한 베드로를 섬기면서 많은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즉 그의 일생에 있어서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바나바'와 '베드로'였던 것이다. 그러니 마가 요한은 예루살렘교회의 두 명의 지도자들로부터 특수 과외를 받은 셈이다. 마가 요한은 처음부터 예루살렘교회의 일원이었으며 바나바도 그곳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다. 그러므로 마가 요한은 바나바와 베드로를 통하여 순종이라는 훈련을 톡톡히 받았을 것이다. 자기에게 바나바는 외삼촌이요 베드로는 하늘 같은 교회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5. 마가 요한의 변화된 삶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마가 요한은 시간이 지나면서 베드로의 통역관으로서, 그리고 바울에게는 정말 중요한 동역자로서 탈바꿈하였다. 그렇다. 누구나 경험이 없거나 인생의 경륜이 짧을 때에는 남들이 보기에 철이 없어 보이고 책임감 없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다 그러한 실수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바나나의 행동은 마가 요한을 격려하고 다독거리는 차원에서 볼 때는 옳아 보인다. 하지만 선교에 있어서 주도권이 바울에게 있었던 것만큼, 바나바는 어찌하든지 바울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했었다. 고로 바나바의 계속된 주장도 바른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젊은 사람 키워보자는 바나바의 의견을 무시했던 바울도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마가 요한을 훌륭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셨다. 결국에 마가 요한은 바울에게는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베드로에게는 아들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베드로의 말씀을 통역하면서 마가 요한은 예수님의 일대기를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은 결국 '마가복음'이라는 최초의 복음서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과 베드로의 순교 이후, 마가 요한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는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묶여서 끌려다니면서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그는 그것을 불평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그렇다. 처음에 마가 요한은 유약한 사람의 모습이었으나 점차 성장하여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이 된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여 교회의 큰 사역자가 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싶다. 우리는 부족하다. 그리고 연약하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자신에게 주어지든지 그것을 달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라도 이겨낼 줄 아는 보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2022년 10월 14일(금)

정병진목사

 

교회에는 지도자들이 있다. 누가 과연 주님께 칭찬받을 만한 지도자인가? 반대로 누가 과연 주님께 책망을 듣는 지도자인가? 요한삼서는 15절 밖에 안 되는 편지이지만 여기에 그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이 들어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람들은 늘 진리의 동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동역자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이며, 이런 자들에게는 어떤 상이 기다리고 있는가? 요한삼서를 통해서 사도 요한이 그토록 축복해주고 싶어하는 지도자가 누군지를 한 번 찾아보자.

2022-01-26(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서신강해(09)[최종회]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과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책망 및 칭찬(요삼1: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rD8A1uHxrHA [혹은 https://tv.naver.com/v/24851377 ] 

 

1. 들어가며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보낸 세 번째 서신으로 알려진 책이다. 사도 요한은 이제 나이가 많아 자신을 '장로'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자기로부터 복음을 받아서 영적인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던 가이오에게 편지를 써 보낸다. 고로 요한삼서는 사도 요한이 목회자에게 보낸 일종의 목회 서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이 편지는 사도 요한이 개인적으로 가이오를 향한 감사와 기대와 권면의 말씀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체 사도 요한은 왜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야 했을까? 그리고 그 편지에 언급한 내용은 무엇인가? 우리에게는 고, 조용기 목사님으로 인하여 삼중 축복으로 말해지고 있는 요한삼서 1:2의 말씀만이 아니라, 요한삼서 전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으며 무엇에 감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하여 A.D.90~95년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교회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으며, 목회자와 성도 간에는 어떤 협력 관계가 필요한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 지도자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교회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 요한삼서, 어떤 책인가?

  요한삼서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장로인 사도 요한이 A.D.90~95년경 소아시아에 있는 어떤 교회의 '가이오'라는 지도자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한이다. 일종의 개인 서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편지의 수신자인 '가이오'는 어떤 교회의 지도급에 있는 인사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편지를 굳이 구분하자면, 일종의 '목회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사도 요한은 당신이 파송했던 순회 전도자들로부터 가이오와 그가 속한 교회의 사정을 들었던 것 같다(3절). 그러자 그는 자신이 이전에 그 교회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또한 들은 소식을 가지고 가이오에게 편지를 써 보내고 있다. 이때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데메드리오'라는 순회 전도자의 손에 들려서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이 편지가 짧게 기록된 것임을 알리면서, 곧 찾아가서 대면하게 보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이 책은 총 15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문장이지만, 정확하게 편지 형식을 갖추어 쓴 서신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송수신자와 축도(1~4절)가 도입부에 나오고, 본론부(5~12절)에서 자신의 용건을 밝히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끝인사(13~15절)로서 이 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사도 요한이 요한삼서를 통해서 가이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소식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정리하면, 그것은 한 마디로 복음 전도 사역자를 영접하여 그의 필요를 채워 주었던 가이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그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또 권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3. '가이오'라는 인물은 대체 누구이며, 그는 어떻게 되어서 사도 요한의 마음을 기쁘게 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요한삼서의 수신자로 거론되고 있는 '가이오'는 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가이오가 누군지에 대해서 그를 모든 면에서 다 알 수는 없다. 사실 그가 어느 교회에 속한 일꾼인지도 성경에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다. 다만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도 요한이 그를 그 교회의 참된 일꾼이자 지도자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특히 진리 안에서 사도 요한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다(1절, 5절). 사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편지의 첫 부분인 도입부와 그리고 중간 부분인 본론부의 앞부분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그는 사도 요한이 참으로 사랑하는 자였으며(1절), 둘째로, 그는 진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던 자였다(3절). 이것을 두고 사도 요한은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고 셋째로, 그는 사도 요한의 전도를 통해 영적인 자녀가 되었던 사람 같아 보인다(4절). 그리고 넷째, 그는 그 교회를 방문한 순회 전도자들을 잘 영접하고 그들을 지극히 대접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5절). 그러므로 가이오라는 인물은 사도 요한이 매우 칭찬하는 교회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4.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지도자에게 꼭 전해 주고 싶어했던 말씀은 무엇인가?

  그럼, 사도 요한이 편지를 써서 가이오에게 꼭 들려 주고자 했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 가운데 있는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대접한 것에 대하여 가이오를 칭찬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렇다. 가이오는 자기 교회를 방문하는 순회 전도자를 잘 영접하였으며 또한 그러한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해 주고 교회를 떠나가는 날에는 사역자들이 다음에 머물 장소까지 잘 가실 수 있도록 교통비와 숙박비와 식비 등을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머물고 있던 에베소 교회까지도 그 교회를 다녀온 순회 전도자들을 통해 그 교회의 소식을 잘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가이오가 베푼 사랑과 선한 행위가 너무 귀하다는 것이다. 사실 순회 전도자들은 자기가 복음을 전파한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제공받지 않는다면 힘겨운 선교생활을 감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늘 기쁨으로 그것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가이오는 달랐다는 것이다. 사실 순회 전도자들은 복음을 전파할 때에 이방인에게서는 어떤 사례나 답례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렇게 순회 전도자를 잘 챙겨 준 그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 즉 '진리의 동역자'라고까지 불러 주었다. 그러므로 오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역시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었다고 하는 것에 만족하거나 그냥 안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복음 선교 사역에 기도나 물질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8절).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누가 과연 복음 전파 사역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최전방 일선에 나가서 직접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이야말로 복음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사역인 것 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전방 사역자가 그 사역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병참과 무기를 비롯하여 그에게 여러가지 보급품을 잘 전달해 주는 후방 사역자가 꼭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라고 해서 복음 전파 사역에는 아무런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오히려 후방 사역자들도 전방 사역자들 못지 않게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는 전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디오드레베'는 어떤 인물이며, 왜 그는 사도 요한으로 꾸중을 듣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본론부 후반에 등장하는 '디오드레베'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9~10절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첫째, 가이오가 지도자로 있는 바로 그 교회의 지도자들 중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로 보인다(9절). 왜냐햐면 그는 교회에서 성도들을 출교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10절). 둘째, 그는 사도 요한의 복음 사역자들을 악한 말로 헐뜯었던 자였다는 것이다(10절). 그가 비난했던 사역자들 안에는 심지어 사도 요한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셋째, 뿐만 아니라 그는 사도 요한이 보낸 복음 순회 전도자들을 맞아들이지 않고 배척했던 인물이다(10절). 그리고 넷째, 성도들 중에서 순회 전도자들을 환영하고 환대하는 성도들을 교회에서 출교시키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한 말씀으로 다섯째, 그는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교만한 자요 안하무인이었다는 것이다(9절). 그는 교회에서 항상 첫째가 되기를 원했었다. 누군가를 다스리고 지배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이 곧 그 교회에서 중요한 법이었고 그가 한 번 말하면 다른 사람은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고 제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는 순회 전도자들이 자기 교회를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들을 섬기거나 대접할 줄을 몰랐으며, 교회 성도들 중 그들을 대접하는 자들을 오히려 책망하고 출교하는 그러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낮아지지 못했던 교만한 자요, 자기 말을 주입시키려 하는 강포한 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가이오 더러 절대 그를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고 권면한다. 그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그가 악한 자요 더욱이 하나님도 본 채 있지 않은 자였기 때문이다(11절). 그는 사실 하나님을 잘 모르는 자였다. 그는 영적으로 볼 때에도 어린아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자였던 것이다. 

 

6. '데메드리오'는 누구이며, 그는 무슨 일 때문에 이 편지에 등장하고 있는가?

  이제는 요한삼서에 등장하는 마지막 인물에 대해 주목해 보자. 그는 누구였는가? 그의 이름은 '데메드리오'였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진리에 대해서도 증거를 받은 사람이었다. 특히 사도 요한이 시무하고 있는 에베소 교회에서도 그의 증언이 참이라고 인정해 주는 자였다. 그는 한 마디로 순회 전도자로서 모든 교회에서 인정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데메드리오는 장로인 사도 요한이 쓴 편지를 가이오에게 전달하기 위해 선택된 자로서, 가이오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순회 전도자였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데메드리오가 가이오의 교회에 당도하면 그를 합당하게 전송하고 그의 필요를 채워 줄 것을 권면하였다.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은 채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요한삼서는 장로인 사도 요한이 어떤 교회의 지도자였던 가이오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한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지도자의 자격과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어떤 지도자는 하나님께 칭찬들을 만한 지도자였지만 반대로 어떤 지도자는 악한 지도자로서 성도들이 멀리 해야 할 지도자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중에 가이오는 정말 진리 안에서 걸어가고 있는 있는 참된 지도자였기에 사도 요한은 그를 축복한다. 그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고 그의 육체도 강건하기를 기도한다(2절).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교회를 방문하는 복음 전파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진리의 동역자로서 장차 하늘나라에서 상을 얻을 지도자였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었다. 디오드레베는 악한 지도자였다. 순회 복음 전도자를 영접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악한 말로 비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교회 성도들이 복음 전도자를 대접했다고 그를 교회에서 출교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늘 으뜸되기를 좋아하여 교회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였지 도무지 섬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를 본받고 누구를 귀감으로 삼을 것인가? 덧붙여 사도 요한은 말한다. 복음 전파를 위해 수고하는 자와 함께 일하는 자가 곧 진리의 동역자라는 것이다. 이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이들에게 같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더욱더 주 안에서 복음 전파에 노력하고 복음 전파자와 함께 동역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다운로드] 요한삼서 헬라어 직역 및 명령과 선포문(https://dongtanms.kr/89801)

1. 요한삼서강해.pptx

2. 요한삼서강해.pdf

 

2022년 01월 2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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