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1)(계1:4~8)_2022-04-27(수)

https://youtu.be/g9j2_mo-Vps  [혹은 https://tv.naver.com/v/26518369 ]

 

1.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한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고는 그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다(요20:28).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원래는 하나의 인간이었는데 제자들이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함으로서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그분을 그렇게 고백함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참으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떤 분이라고 고백할 때에 비로소 그렇게 되는 분인가? 절대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칭호로 부르던지 그분은 처음부터 그랬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 비로소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렇지만 도마가 이런 고백을 하기 전에도 이미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요20:28). 그러나 예수님을 신앙 고백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고백의 산물로만 보려고 시도한다. 그분을 직접 만나 보면 아마도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피나게 때리고 싶어질 텐데 말이다. 

 

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칭호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말해, 실제로는 그렇지 아니한데 그렇게 불러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부동산 중개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나 남자이면 '사장님'이라고 칭하며, 여자이면 '사모님'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그 사람을 '사장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냥 사장님이 되는 것이고, '사모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냥 사모님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고로 예수님을 가리켜 도마가 '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때부터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그렇게 칭하기 전에 이미 '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불리려면,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주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은 사역적으로도 주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시다는 말은 그분이 자존하시며 무소부재(=동시존재)하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이 사역적으로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말은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으로도 하나님이신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게속 발견된다. 

 

3. 초기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는 왜 이단이 되었는가?

  초기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는 철학이 기독교내에 침투하여 만들어 낸 이단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영지주의는 완전 이단인 셈이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람이 되셨는가? 무엇 때문에 삽자가에서 죽으셨는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는가? 사실 이 모두는 복음의 핵심 사항이다. 그렇다. 이것은 전부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우리 죄인들을 살려 내고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 안에 이 3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기독교를 가장한 가짜 기독교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경전처럼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은 일종의 예수님의 어록이 수록된 책이다. 배경이나 나레이션 없이 그냥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께서 제자들과 대화하시는 말씀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은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깨달은 지식 곧 영지를 통하여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다시 가는 데에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냥 깨달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본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육신을 입은 모습으로 보인 것은 그렇게 보인 것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는 사람의 몸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영지주의 분파에서는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육체를 잠시 동안 빌리셨다가 죽기 전에 탈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로 영지주의는 신성이 육체 안에 거하신 놀라운 신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대단히 큰 이단 세력인 것이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예수님은 한 마디로 100%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100% 인간이시다. 예수께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나 역시 하나님으로 계신다. 그런데 그분도 한 때는 사람으로 사신 적이 있으셨다.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서 육체를 입고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걸어다니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님은 '지상을 거니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예수께서 100% 하나님이시며, 100% 인간이셔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래야만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선각자들이나 성인들은 단지 사람일 뿐 하나님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들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이들 누구도 인간의 죄와 죽음과 사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던 분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분이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속죄 때문이었다. 죄의 값인 사망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창조주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 인하여 세상 임금인 사탄 마귀를 때려잡을 수가 있었다. 만약 그분이 사람이 아니셨다고 한다면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셔서 죄값을 지불하시고 사망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으며, 동시에 이때 죄없는 예수님을 사망 권세로 죽임으로 불법을 저지른 사탄 마귀의 사망 권세를 빼앗으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때 이후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칭호로 보나 혹은 존재론적으로나 보나 그리고 사역적으로 볼 때 가장 잘 표현된 말씀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표현해 주고 있는 문구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고르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8절 말씀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한 구절에는 한 분 하나님이시자 예수님이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칭호로서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존재론적으로 보나 사역적으로도 보나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동시에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까지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첫째, 요한계시록의 끝부분으로 가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직접 말씀하신 분이 나오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계22:13). 둘째, '장차 올 자'라는 표현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8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군지를 어떻게 표현해 주고 있는가? 그것은 첫째,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호칭으로도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요20:28). 둘째, 예수님이야말로 '알파와 오메가이신' 것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이'인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존재론적으로 볼 때에 그분은 주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는 자존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기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 속에 다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분이 존재론적으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표현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 있다. 또한 그분이 사역적으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그분은 전지전능하셔야 하고 영원불변하셔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그분의 전능성인데, 요한계시록 1:8에서는 그분이 '전능하신 이'로 소개되어 있다. 앞으로 계속 더 살펴보겠지만 예수께서는 호칭면에서나,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으로 하나님이신 것이 분명하다. 

 

2022년 04월 27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1)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시다(01)(계1:1~8)_2022-04-26(화)

https://youtu.be/DmISlHynFz0  [혹은 https://tv.naver.com/v/26518040 ]

 

1. 우리는 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는 2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때 회심으로서 회개를 하고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모른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과 끝까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상은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은 지혜와 능력이 출중하여 인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상대할 때에는 그것들보다 더 뛰어난 지혜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며 섭리하시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2. 지상을 거니셨던 예수님 곧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공관복음에 나온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께서 누구신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만을 믿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 정도일 뿐이다. 좀더 말하자면 기적을 행하던 선지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은 그분을 어떻게 믿었을까? 처음에 그들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뛰어난 선생님(랍비)이나 혹은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민족을 구원해 주신 분, 그리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병든 자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분의 공생애 기간이 다 끝날 무렵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훌륭한 선생님이나 선지자 정도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제자들의 신앙 고백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을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백은 매우 탁월한 고백으로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분의 신분에 대한 계시적인 고백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구약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실로 엄청나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에게는 최소 2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마16:18~19). 이 중에서 '음부의 권세'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음부의 문들'이다. 그럼, 음부는 무엇인가? 사람이 죄값으로 인하여 죽게 될 때에 죽은 영혼을 빨아 당기는 세력 있는 문들이다. 이 문들은 지구의 곳곳에 있기에 복수로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육체를 벗을 때면 사망이 죽은 사람의 영혼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의 영혼을 집어 삼키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은 그 권세가 더 이상 그 영혼을 이기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계2:11). 그렇다면 '둘째 사망의 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곧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을 가리킨다(계21:8). 그러므로 누군가가 예수님을 진실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다면 그의 영혼은 최소한 둘째 사망의 해 곧 불못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실제로 천국에 가 보면 천국에 진짜 들어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성밖 곧 새 예루살렘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밖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불못에 던져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가 보면 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천국 열쇠를 받는 복을 받게 된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남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님 곧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지상을 거니셨던 바로 그 예수님 수준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분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계3:21). 다시 말해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인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그분이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천국에 올라가셔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 때부터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본래부터 주 하나님이셨다. 다만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육체를 입고 오셔서 목수로 30년 동안 사시고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주 하나님이셨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럼, 언제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분의 부활 사건이다. 그분이 죽고 난 이후에 그분을 믿고 따르던 제자부터 시작하여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사실 제자들도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분이 진짜 누군지를 잘 몰랐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정도로 생각했다(눅24:19). 만약 제자들이 진짜로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면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다 도망갈 리가 없었을 것이요, 풀이 죽어 마가 다락방에 숨어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 이후에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문을 닫아 놓았는데 그분이 그냥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 그분은 죽고 무덤에 묻히셨었는데 살아서 다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절대 다시 못 오는데 그분이 오신 것이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람이셨지만 사람만이 아니셨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이 자신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지만, 더욱이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40일 동안 그분을 여러 번 뵈온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마가 다락방에 모여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오순절날에 성령을 받게 되자 그때부터 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은 채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5.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최초의 고백은 누가 고백한 것이었으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최초의 신앙 고백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디두모(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였다. 도마는 예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거기에 있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 사실을 믿지를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흐르자 주님께서 일부러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그때도 역시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평안을 빌었다. 그때였다. 주님께서는 일부러 의심 많은 도마에게 가시더니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그러자 즉시 도마가 대답하였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나의 그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그 하나님이십니다(혹은 '나의 유일한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음)"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의'라는 말을 뺀다면,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것도 둘 다 정관사가 붙어 있다. "호 퀴리오스 무 카이 호 데오스 무(The my Lord and The my God)". 참고로, 요한복음에서 '주'라는 호칭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쓰이며,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주'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호')가 붙지 않지만, 부활 후에는 '주'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호')가 붙는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그분이 유일한 주가 되시며 유일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 '주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22장에 가서 '주 하나님'(1:8, 4:8,11, 11:17, 15:3, 16:7, 18:8, 19:6, 21:22, 22:5,6)이라는 용어를 '주 예수'(계22:20,21)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2022년 04월 26일(화)

정병진목사

 

귀신은 영물이다.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가 귀신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나이는 적어도 6천살은 넘었다. 그동안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약점도 잘 알고 있고 근성도 잘 알고 있어서,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찌하든지 죄를 짓게 만들고 우리 속에 거하려 한다. 그래서 지옥으로 끌고가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귀신들을 우리 몸 안에 그냥 두어서는 절대 아니 된다. 쫓아내버려야 한다. 그럼, 그놈들은 어떻게 해야 확실히 쫓아버릴 수 있는가? 여기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2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소극적인 방법이요 또 하나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우리가 가진 믿음 특히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0-02-14(금) 금요기도회
제목: 귀신들이 떨면서 떠나가게 만드는 올바른 신앙고백은 무엇인가?(약2:19)
https://youtu.be/khUyNglzkzE


1. 들어가며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왔지만 쫓겨나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귀신이 우리 몸 속에 들어왔는데도 그냥 내버려두어 상관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 속에 들어오려고 하는 귀신이란 대체 어떤 존재이며, 우리는 귀신을 어떻게 처리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 될 일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대로 두어도 되겠지만, 귀신을 쫓아내라고 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귀신을 좇아내야 한다. 그런데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는데도 안 쫓겨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그 놈을 제압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귀신을 쫓아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전반적으로 말씀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문제해결에 대한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사실 귀신축사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지금 얼마나 적극적인 방식을 취해왔는지를 점검해보고, 모든 귀신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귀신은 어떤 존재이며 귀신이 내 안에 들어오면 그냥 두어도 되는 것인가?

  귀신은 죽은 조상이 아니다. 귀신들은 타락한 천사다(계16:13). 사탄이 하늘에서 쫓겨날 때(눅10:18), 천사들이 그의 편에 섬에 따라 같이 하늘에서 쫓겨나서 귀신이 되었다(계12:7~9, 눅10:18~19).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사탄을 자신의 왕으로 섬기고 있으며(마12:24,26), 귀신들은 그의 부하들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 마귀가 죄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도록 했기에 그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기고 말았으며(계1:17~18), 지금까지 음부 속에 갇혀 지내고 있다(천년왕국이 끝날 무렵에 잠깐 내보낼 줄 것이다). 그렇지만 사탄마귀는 자기의 부하들에게 자신이 가진 권세와 능력을 주어서, 지금도 음부의 문들(마16:18)을 통해 지구로 올려보내어, 일을 행하게 하고 있다.

  그럼, 사탄마귀와 귀신들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영혼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다(요10:10).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셨으며, 12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라고 명령하셨고(마10:1, 눅9:1), 이어서 70명의 제자들에게 똑같이 명령하셨다(눅10:1,17).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막16:17~18). 왜냐하면 귀신은 백해무익한 존재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방햇꾼이며, 하나님의 원수이기 때문이다.

 

3. 귀신이 내 안에서 완전히 쫓겨나가게 하려면 어떻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귀신은 어떻게 되어서 사람 속에까지 들어오게 되는가? 그것은 어찌되었든 귀신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내가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 속에 들어오실 때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서 우리가 들어오도록 허락할 때에 비로소 들어오신다(계3:20). 그런데 하물며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올 때 무턱대고 들어오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들이 우리 사람들 속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그것이 충족될 때 들어오는 것이다. 그럼, 언제 귀신이 들어오는 조건이 성립되는가?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다(요일3:8). 요일3:8에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 속한다"고 했다. 그럼, 죄란 무엇인가? 죄는 율법말씀을 어긴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다(고전15:56). 그러므로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능력으로 역사할 수 없었다. 그러나 B.C.1446년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다. 그러므로 귀신들도 누군가 율법이 있기 전에는 결코 사람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율법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도덕법(십계명)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도덕법은 예수께서 한층 더 강화시켰으니, 마음으로 간음해도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고, 마음으로 미워하고 욕하게 되면 살인죄가 성립된다고 하셨다(마5:21~22, 27~28). 그러므로 우리에게 귀신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면 나는 십계명을 어긴 것이 없나를 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십계명 중에서도 특히 제2계명 즉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면 그 죄값은 3~4대까지 내려간다고 했다(출20:5). 그러므로 그의 후손들이 예수님을 잘 믿으면 상관없겠으나, 예수님을 믿는둥 마는둥 하면서 죄짓고 살면 영락없이 귀신들이 그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귀신이 그 후손에게 들어가서 거주한다. 그러면 귀신은 저주받은 영이니 저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십계명을 어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십계명을 어겼는데도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때에 귀신들이 합법적으로 우리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 안에 들어온 귀신을 쫓아내려면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여서 내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 동파리가 나쁘다가 동파리(귀신)만을 맨날 쫓아내려고 열심내지 말고, 우리 안에 들어있는 더럽고 냄새나는 똥 자체(죄)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한 첫번째 조건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조상이 지은 죄까지도 대신 회개하기도 하는데, 귀신이 쫓겨나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는 것에 대한 두번째 문제 해결의 열쇠다. 마17장에 보면, 간질병에 걸린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가 나온다(이때 아이의 의지가 그의 아버지에게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귀신이 아이로부터 나가지 않았던 것은 그의 아버지에게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산아래 있었던 9명의 제자들은 그 아이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 산위에서 예수께서 3명의 제자들과 함께 내려왔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의 아버지를 향하여 엄히 꾸짖고 책망하셨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마17:17)"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믿음없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비로소 예수께서는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내쫓아내준다. 나중에 제자들이 와서 조용히 물었다.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했나이까?" 그러자 주님은 "너희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마17:20)"고 하셨다. 그 아버지는 믿음이 없었고, 제자들은 믿음이 작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귀신축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내게서 귀신이 잘 안 나가는 것은 내게 믿음이 작거나 없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4. 귀신이 두려워서 떨고 떠나가게 하기 위한 믿음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귀신이 떨고 나갈 수 있는 믿음이란 대체 어떤 믿음을 가리키는가? 오늘 예수님의 친동생이자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자였던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네가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행]하는도다. 귀신들도 [역시] 믿고 떠느니라(약2:17)". 귀신들이 떠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믿을 때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또 이렇게 말했다. "믿음은 들음에서(으로부터)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고로 믿음이 생겨지려면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그것도 그리스도의 말씀(레마)을 들을 때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과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내 마음에 레마(딱 꽃히는 말씀)가 될 때에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귀신들린 사람치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이 누군지에 관하여 들었던 말씀이 적었거나 없었다는 것이다. 대체 예수님은 누구신가? 귀신들이 두려워서 떨고 나가게 하기 위한 믿음이란 대체 어떤 믿음인가? 그것에 대해 오늘 주의 동생 야고보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했다.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믿음이 귀신축하에 매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을 아는 성도들을 보고 귀신들도 떨기 때문이다(약2:19).

 

5.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이신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이라는 말은 조금은 생소하기는 것이다. 단지,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계시다는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귀신들이 떨 수밖에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약2:19)이 오늘날에 정말 요청된다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 혹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고 늘 이야기하였다(특히 요한복음을 읽어보라). 그러므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다. 맞다. 틀린 말이 아니다. 더불어 예수께서 인성으로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태어나셨기에, 그분은 "마리아의 아들"도 되신다. 어찌되었든 예수께서는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셔서 이 땅에 들어오셨고, 동정녀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태어나셨으니,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그분이 하나님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반응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정도로는 생각했으나,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나 하나님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여호와증인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을 피조된 하나님의 아들(피조물) 내지는 미가엘 천사장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틀렸다. 아니 이단적인 주장이다. 예수님을 그렇게 믿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지만 그분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딤전3:16에서 그분(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도 없도다. 그(하나님)는 육신으로 나타나난 바 되시고...(딤전3:16)" 그리고 사도요한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고 말했다(요1:14). 그렇다. 그분은 여기에 계시기 전에 이미 하늘에서 존재하시던 분이시다. 다시 말해, 동정녀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될 때 생겨난 분이 아니다. 그분은 피조물이 아닌 것이다. 그분은 아버지께로부터 하늘로부터 오셔서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이다((요8:42,13:3). 그러므로 예수님을 피조물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피조물의 형상을 잠시 빌려쓴 것뿐이다. 그것을 조성해준 자가 마리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 전에 어디에 계셨으며 누구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으로 계셨다는 것이다(요5:58).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나는 나니라"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나니라"라는 말씀은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이 누군지를 가르쳐주실 때에 처음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자기선언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그렇다. 이는 예수께서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며,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하나님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 구약성경을 통들어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이 누군지에 관하여 말씀하신 적이 많지는 않다. 남에 의해서 불려진 이름은 많지만 당신 자신이 자기가 누군지를 소개해주는 것은 많지 않았던 것이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기칭호는 딱 2가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출애굽기3:14의 말씀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자기선언이며, 또 하나는 이사야에 나오는 말씀으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라"는 자기선언이다(사41:4, 44:6, 48:12).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두 가지 선언만큼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말씀하실 때에 사용한 아주 독특한 자기선언이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자기선언을 고스란히 자기에게도 적용하여 말씀하셨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는 선언은 요한복음에 보면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음을 알 수 있다(헬라어원문참조)(요8:24,28,58). "만일 내가 ~인 줄 믿지 아니하면(요8:24)",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에 내가~인줄 알고(요8:28)",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나는 ~이니라(요8:58)"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후에 사도요한에게 주신 계시록의 말씀에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다(계1:17, 2:8, 22:13). 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누군지를 소개하는 자기선언에 있어서 구약의 여호와께서나 신약의 예수님이 다 똑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며, 신약시대에는 예수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이름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그토록 많이 등장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 곧 "여호와"라는 이름이 신약성경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임마누엘 하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마1:23).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고로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은 사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요, 전능자요 창조주이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경험해 본 도마는 예수님 앞에서 "당신은 나의 주이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사도들도 예수님의 공생애 때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줄 잘 몰랐다. 그분이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자신을 아들이라고 하시니까, 그냥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그분은 동시에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로서 오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죽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더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무소부재하신 상태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셨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고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다. 왜냐하면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자기를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입어 이 땅에 오셨으며,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주셨는데(빌2:6~8), 알고 보니 그분이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기이자 아들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하나님 자신이시다(사9:6). 그분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오르셨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계3:21, 7:17, 20:11, 21:5~6). 그분이 하나님이시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이지만 그분의 보좌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단수)"라고 불린다. 그분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오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어린양의 보좌인 것이다(계22:1,3). 고로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볼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각각 따로 만나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또한 동시에 세 개의 보좌에 세 분이 앉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다면 우리는 삼신론자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한 분이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삼위로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동시에 삼위로 존재하시나, 여전히 한 분이신 하나님 그분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6. 나오며

  주의 동생 야고보는 귀신은 어떤 경우에 떤다고 말했는가?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알고 떤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으나 사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분이 곧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오순절이후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이제 성령을 보내주셨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의 또다른 표현으로 우리 안에 계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고로 우리가 성전삼고 거하시는 분은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죄도 없는데 우리 몸 안에 더러운 영이 꼽싸리끼려고 한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레벨이 안 맞다. 크기가 너무나 많이 차이난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안에 계신 이(예수)가 세상에 있는 자(마귀)보다 크심이라(요일4:4)",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예수)가 그(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성도들)를 지키시매, 악한 자(사탄마귀)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그렇다. 우리 안에 계신 이(예수)는 한 분 하나님으로서, 주 하나님이시요, 전능자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요,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시다. 그런데 어찌 감히 귀신이라는 것이 우리 몸에 하나님과 짝하여 거주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고로 이러한 사실을 알고 믿으면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래야 귀신이 떨면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고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지은 죄도 회개해야겠지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을 공부하고 믿어서 전능자의 이름으로 꾸짖어 쫓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 2월 14일(금)

정병진목사 


우리는 성경이 얼마나 귀하고 귀한 책인지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어떻게 이것이 성경(정경)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쳐져서 지금 내 손에 있다는 것은 사실 기적 중의 기적이다. 사실 우리는 이이 성경을 통해서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 인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알고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인류 구원을 위해 4,000년 이상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직접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그 일을 성취하셨다. 하지만 어떤 문서나 기록은 예수님을 선각자나 철학자 정도로 비하시키려 시도한다. 그리고 영지를 깨닫는 것만으로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럼, 이러한 주장은 대체 무엇이 틀렸고 어디에서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도마복음"의 발견과 도마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2019-08-04 주일낮예배
제목: 진정한 도마복음이란 무엇인가?(요20:24~29)
https://youtu.be/2IkY4XiuKTM


1. 들어가며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볼 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남겨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고로 말씀에 나온대로 믿고 순종하면 말씀대로 이뤄지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신약성경 중에서 우리는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있을 때에 들려주신 말씀을 만날 수 있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 외에도 또 있을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20장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라고 말씀함으로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더 있었음을 암시학 있다. 그리고 요한복음 21:25에 의하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한다.

  그런데 1945년에 놀라운 발견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사복음서 이외에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기록된는 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도마복음"이라는 책이다. 그런데 왜 그 책의 이름을 '도마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도마의 신앙고백과 더불어 그가 전하고자 했던 진정한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복음서 이외에 새롭게 발견된 "도마복음"이란 대체 어떤 책인가?

  1945년 12월, 농사에 필요한 퇴비를 확보하기 위해 땅을 파던 청년 무함마드 알리는 11살 아래의 동생이 소리치는 말에 달려간다. 가서 보았더니 붉은 유약으로 덮힌 거대한 토기 항아리가 땅 속에 있었다. 가장자리는 천연 아스팔트 역청으로 봉합되어 있었다. 깨뜨려보니 거기에는 52개나 되는 영지주의 관련 책들이 들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언어인 곱틱언어로 기록된 파피루스 코덱스 책들이었다. 거기에는 도마복음을 비롯하여, 빌립복음, 진리복음 등의 많은 위경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도마복음"이었다. 그 책의 서두에는, 자신을 "디두모(라 불리는) 유다 [곧] 도마"라고 소개하는 이가 예수님의 비밀의 말씀을 기록했다고 씌여 있다. 살펴보니, 총 114절의 말씀(어록)인데, 모두가 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되어 있다. 특히 이 어록집에 수록된 114개의 말씀은 사복음서에 수록된 예수님의 말씀과는 약 50% 가량 정도 일치되고, 나머지는 거기에만 있는 특별한 말씀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놀라워했고, 사복음서에서는 없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라고 모두들 기뻐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이 책은 많은 논란을 야기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의 말씀은 사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이었지만, 사복음서에 기록된 말씀과는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것은 왜곡되어 있었고, 어떤 것은 짜집기한 것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첫째, 이 책은 과연 사도였던 도마가 쓴 것이 맞는가? 둘째, 이 책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진짜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인가? 그래서 이 부분을 우선 살펴보도록 하겠다.

 

3. 도마복음은 진짜 도마가 썼을까?

  우선 이 책은 도마가 직접 쓴 책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우선 이 책은 콥틱어로 기록된 책으로서 추정 결과 A.D.340년경에 필사된 것이지만 적어도 1세기에 도마가 슨 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A.D.1898년 이집트에서 헬라어로 기록된 '도마복음'일부도 발견되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원래 콥틱어로 기록된 책은 아니었고, 원래는 헬라어로 기록된 책이었으나 나중에 콥틱어로 번역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분석한 결과, 이 책은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의 책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나중에 그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A.D.120년경에서부터 180년에 꽃을 피웠던 자들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때 즈음에 이 책이 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둘째, 이 책이 도마가 직접 쓴 책이 아닌 것은 이 책을 도마가 썼다는 흔적이나 증거들이 다른 곳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A.D.45년 이후 신약의 정경에 포함된 책들은 A.D.95년까지 당시 여러 교회들에게서 회람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결코 '도마복음'이라는 책이 들어있지 않다. 셋째, 이 책의 저자인 도마는 A.D.34년 이후 그가 순교하던 A.D.72년까지 인도에 복음을 전하러 갔기에 예수의 어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마는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서 책을 저술하지 않았다. 도마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A.D.34년경 뽑힌 제비에 따라 인도지역으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A.D.72년경에 창에 찔려 순교했기 때문이다.

 

4. 도마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진짜 역사적 예수의 말씀인가?

  그렇다면, 도마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114개의 예수님의 말씀은 진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114개의 말씀 중에서 약 1/3은 사복음서에도 고스란히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부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놓았다.

  첫째, 분명한 사실은 이 책은 왜곡시킨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을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이리 붙히고 저리 붙혀 짜집기를 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씀을 일부러 영지주의에 맞게 왜곡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때 이 책의 저자는 예수님을 영지를 깨달은 선각자나 철학자로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영지(깨달음)의 사상을 전달하기에 알맞는 말씀만을 골라 짜집기해 놓았다. 그러므로 "도마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복음서의 말씀과 비교하면 원래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기록되어 있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114개의 어록 중에서 제39번의 말씀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깨달음의 열쇠들을 받고 그것들을 감추었다. 그들은 들어가지도 않고,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까지 막았다. 그러나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이 말씀은 어찌면 왜곡수준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저자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깨달음의 열쇠를 가진 자로 묘사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했는가? 이들은 외식하는 자들로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자들로서, 지옥자식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왜곡 수준이다. 둘째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말씀하신 것은 복음을 전파하도록 제자들을 내보실 때, 지혜롭게 행동하라는 말이었는데, 여기서는 정말 자신의 깨달음을 현장에서 잘 적용하라는 말처럼 왜곡시켜 놓았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이제는 제62번의 말씀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비밀에 합당한 자들에게 나의 비밀을 말한다. 네 오른손이 무엇을 하게 되든지 네 왼손은 그것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하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이 말씀은 사실 사람이 구제할 때에 그렇게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이었지, 영지를 남이 아무도 모르게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두 말씀을 붙여서 짜집기함으로 전혀 새로운 의미라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마복음" 안에는 진자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분도 들어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만, 그것이 쓰인 배경과 환경을 기록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 말씀의 의미를 앞뒤문맥이 심히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엉뚱한 위치에 붙혀버렸기 때문이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디에 그 말씀을 붙혀놓느냐가 그 말씀의 뜻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둘째, 도마복음을 기록한 목적 자체가 성경27권을 기록한 기록목적과는 너무나 많이 차이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 책에서 예수님은 무지를 깨우치러 온 분이요, 영지를 먼저 깨달은 선각자 내지는 철학자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영지(영적인 지식"이라는 사람은 본래 빛의 자녀로서 빛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존재이기에, 이 세상의 물질계의 소욕을 버리고 무심으로 상태로 돌아가면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난다"는 사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러한 영지를 예수께서는 이미 가지고 있었으며, 이어서 제자들도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고서 빛을 받아서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예수님은 속죄를 위해 마땅히 이 땅에 오실 희생제물이어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되어온 그 메시야이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다.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서 흠없는 사람이 필요했기에 예수님이 오셔야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마복음"에서는 죄가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피흘려 죽으셨음을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로, 이 책은 구원에 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 여기에서 구원이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있지 않고 오로지 "영적인 깨달음"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즉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아 영적인 지식을 소유하게 되면 구원받는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이 책이 플라톤시절부터 있었던 영지주의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신구약성경 66권이 말씀하고 있는 바, 인류의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희생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철학서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단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지주의자들도 예수님의 말씀들 중에서 자기들의 사상을 전하기에 필요한 말씀만을 골라서 사용하되, 어떤 것은 필요에 따라 짜집기를 하였고, 어떤 것은 심히 왜곡시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13번의 말씀을 보자. 예수께서 어느날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와 같은지를 물었다. 그러자 시몬베드로는 "당신은 의로운 천사와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마태는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마는 "선생님, 내 입은 당신이 누구와 같은지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야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성경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의로운 천사나 현명한 철학자와 같거나 어떤 비밀한 것을 가르치는 교사이었으면 만족했던 것이다.

 

5. 왜 영지주의자들은 도마가 쓰지도 않은 책을 굳이 "도마복음"이라고 이름붙힌 것인가?

  그렇다면, 영지주의자들은 왜 자기들의 필요를 따라 짜집기한 이 책을 "도마"가 썼다고 기록한 것일까? 그 이유는 첫째, 도마가 예수님과 쌍둥이라고 알려져 있다는 당시의 소문을 가지고, 도마를 예수님의 비밀한 말씀을 잘 알아듣는 자로 묘사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사실 "도마"는 아람어로 "쌍둥이"라는 뜻이며, "디두모"도 헬라어로서 "쌍둥이"라는 뜻인데, 이것을 두고 그를 예수님의 쌍둥이와 같은 형제로 하기도 한다. 그러면 사람들로부터 이 책에 대한 더욱 더 큰 권위를 확보할 있었다. 그리고 둘째, 도마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서 매우 신비하고 놀라운 고백 곧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최초의 장본인이었기 때문인듯 싶다. 사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그 어느 누구도 그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한 분, 유일신만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으로 나타나셨으나,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그분을 두고 도마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이는 정말 그가 예수님에 대해서 놀라운 비밀을 발견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지만 그분은 홀로 한 분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이다.

 

6. 진정한 도마복음이라는 어떤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진정 알아야 할 도마의 복음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도마복음 속에서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식이 결코 아니다. 즉 영지를 깨달은 선각자 내지는 철학자로서 예수님이 결코 아닌 것이다. 도마는 사실 결코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것은 영지주의자들이 각색에서 나온 것이다. 도마는 오직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람되신 분이라고 고백했다(요20:28).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예수께서 비록 대속물로 되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지만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건의 비밀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는 것이다(딤전3:16). 그리고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제물로 죽으셨다는 것이다(딤전2:3~6)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딤전2:3-6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 나오며

  그렇다. 영지(영적인 지식)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분이 인류를 대신하여 속죄제물로 값진 희생을 치르셨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죄값을 처리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믿는 자는 영지를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도마는 몸소 체험하였다. 그러자 그는 무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때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고는, 그 이전까지 어느누구도 깨닫지 못했던 예수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요20:28). 이것이 도마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복음이 아니라면 또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도마복음"인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그토록 끈질긴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을 탈출하여 영원한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건투를 빈다.

 

2019년 8월 4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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