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성막의 분향단이 들려주는 3,500년 전의 기도의 비밀(출30: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_gRbQaaWBc  [혹은 https://tv.naver.com/v/28284429 ]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마태복음 6:9~13에 나오는 주께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기도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무조건 "주여!" 혹은 "주 예수여!"라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들으신다. 그렇지만 기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지금모다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아! 기도는 이렇게 되어서 구만리장천 떨어진 하나님께서 전달되고 이렇게 응답되는구나" 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일평생 붙들어야 할 기도를 한 번 제대로 알고 기도해보기 위해 이번주부터 기도설교 씨리즈를 시작해 본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서 지금으로부터 3,500년전에 출애굽기에 나오는 기도의 비밀을 살펴보려고 한다. 거기에는 성막이 있었고, 성막 안에는 분향단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사르는 향이 이었다. 그래서 영적인 비밀들을 담고 있는 이러한 분향단을 통해 우리는 기도에 대한 정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우리들의 마음자세를 올바로 정립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를 바란다. 

 

2. 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가 전능자라면 아마 기도는 더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우리가 못할 것이 없다면 우리는 더이상 기도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그것도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는 타락했고 연약해져여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자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도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도 기도하여 그러한 능력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하나같이 기도하여 기도에 성공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독교회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 역시 기도에 열중했으며 그들 역시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영성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진정한 영성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더 나아가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역시 기도를 배우고 기도를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기도란 무엇이며 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기도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기도를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기도는 절대초월자되시는 신적 존재와 교통하는 소통의 한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기도는 대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도할 때에는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입술을 벌려 기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도가 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그러한 비밀은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사람이 드린 기도는 '향'의 형태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향이 어떤 주발 같은 대접에 담기거나 향로에 담기는 것이다. 천국에는 모든 피조물의 대표인 네 생물들과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표인 24장로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서 24장로들이 하는 일은 딱 2가지다. 하나는 거문고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며, 또 하는 기도하는 일이다. 그런데 계5:8에 말씀에 보면, 일찍 죽임당한 어린양에게 경배하는 24장로들을 본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는 향이 가득담긴 금대접이 들려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사도요한의 해설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이 향이라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라는 것이다(계5:8). 그렇다. 천국에서 기도는 향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와 같은 시편 기자는 자기의 기도가 주의 얼굴에(앞에) 분향함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시141:1~2). 그렇다. 천국에서 기도는 향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 자체는 향을 분향단에 태우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4. 기도는 어떻게 천국의 분향단까지 올라가게며 또한 우리에게 응답으로 되돌아 오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한 말로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천국에서 향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아는가? 그것은 천사들의 활동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 천사가 붙여진다. 그래서 그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모든 일이 날마다 하나님께 보고가 된다. 그런데 이때 기도를 하게 되면, 천사가 그 기도를 대접에 향으로 받아 전달을 해준다. 자기보다 더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진 천사에게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기도담당 천사장에게 그것이 전달된다. 이때 기도담당 천사장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분향 제단 곁에서 그것을 자신의 향로에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분향단에 쏟아붓는다. 그러면 향이 불에 타면서 향연이 피어오르는데 그 향연을 천사가 자신의 손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흠향하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이다. 이때 응답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게 되며, 이러한 응답이 지상에 내려올 때에는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계에서 일어나는 기도의 전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요한계시록 8:3~5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분향단에 불태워지는 향의 연기와돠 같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 채 하나님의 보좌 앞의 분향단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도 없어지지나 사라지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분향단까지는 올라가는 것이다. 

 

5. 지상에 있는 성막의 분향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천국에서는 천사가 분향단에 향을 부어서 그것을 사르는 일을 한다. 그런데 지상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가 있다. 그것은 성막의 '분향단'이다(출30:1~10).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분향단과 그곳에서 향을 사르는 것을 고스란히 모세에게 보여주시고는 그 식양대로 이 땅에 분향단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향을 사르라고 하셨다. 그곳이 바로 성막의 '분향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 있는 성막의 분향단에 대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기도의 전 과정과 절차 그리고 기도의 능력과 하나님의 존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분향단은 성막의 기구들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 진을 쳤을 때에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하나님의 백성의 법도를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20~24장에 나오는 십계명법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법에 따라 죄를 지었을 때에 어떻게 용서받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하였다. 그것이 출애굽기 25~40장에 나온다. 고로 성막법은 사람이 죄를 용서받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막에서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과정이 거기에 들어있다. 고로 우리는 이때 제작되는 분향단의 제조과정과 또한 분향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살펴본다면,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한 받으시는지를 알 수가 있다. 

 

6. 지상의 성막의 분향단에서는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 향을 사르는가?

  그 렇다면 지상에 있는 성막의 분향단에서는 과연 누가 향을 사르게 되는가? 또한 향을 사르는 장소는 대체 어디인가? 출애굽기 30장을 읽어보면 그 답이 나온다. 과연 누가 성막에서 향을 사르는지 그리고 성막의 어디에서 향을 사르는지가 나온다. 첫째, 누가 향을 사르는가? 그것은 아론 곧 하나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사람 곧 대제사장만이 향을 사를 수 있다고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아침마다 금등대의 불을 끌 때에 분향단으로 가서 향을 사르고 또한 저녁에 불을 켤 때에도 분향단으로 가서 향을 사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출30:7~8). 둘째, 어디에서 향을 사르는가? 이처럼 향은 대제사장만이 사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분향단의 위에 놓인 향로에서 향을 사르라고 되어 있다. 그냥 자기의 처소에서 병풍을 쳐놓고 거기에서 향을 사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향을 사르는 곳은 성막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7. 분향단은 실제로 성막의 어디에 위치해 있었던 것일까?

  일반적으로 분향단은 성막의 성소의 둘째 휘장 앞쪽에 위치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제 그러할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에서는 분향단이 성막의 성소에 위치해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그렇게 알려져 왔고 그렇게 인정하고 있지만, 아닌 것이다. 그리고 성막공부를 해보면 알겠지만, 모든 성막전문가들도 다들 그렇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 성경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단 한 번도 분향단이 성막의 성소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지성소의 증거궤에서 볼 때 분향단이 둘째휘장 뒷편에 있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런 말씀은 한 구절도 없다. 그렇다면 왜 성막전문가들까지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지 않고 성소에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분향단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대해 히브리어 원문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0:6을 우리말 개역성경으로 보면, 그것은 지성소에서 볼 때 휘장 '밖에' 있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 [분향]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출30:6)"라고 나온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분향단은 휘장 '밖에'(=후츠) 두는 것이 아니라 휘장 '앞에'(=파님) 두라고 나온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직역에 가까운 표준새번역을 살펴보자. "너는 분향단을 증거궤 앞, 곧 증거판을 덮고 있는 속죄판 앞(=파님), 휘장 정면에(=파님) 놓아 두어라. 거기 그 속죄판에서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출30:6). 그렇다. 성경 전체서 분향단을 휘장 '밖에'(=후츠) 두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성소에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지만 '떡상'(진설병상)과 '등잔대(등대)'는 분명 둘 다 휘장 '밖에' 두라고 아예 지정하고 있다. 그중에서 떡상은 휘장 밖에 있는 북쪽에 두라고 나오며, 등잔대는 휘장 밖에 있는 남쪽에(떡상 건너편)에 두라고 나온다(출40:22, 27:21). 그런데도 우리는 개역성경의 오역된 말씀(출30:6)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역대하 26장에 나오는 웃시야왕(재위 B.C.767~739)의 분향사건을 통해서 분향단이 성소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는 것이다. 웃시야왕은 남유다의 10번째 왕으로서 상당히 센 왕이었다. 그러다보니 영토를 늘리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는데 그러자 교만해져서 그만 자신이 직접 여호와의 성전(헤칼)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자 깜짝 놀란 대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들 80명을 데리고 들어가 그를 데리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래도 막무가내로 분향단의 향로를 손으로 잡고 분향을 하려 시도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한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그를 급히 쫓아내었고 하나님이 치셨다는 것을 알게된 그도 급히 나가게 된다. 그때 아사랴 대제사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라 오직 분향하기 위해서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이니, 성소(미크다쉬)에서 나가소서"(대하26:18). 아마도 사람들이 여기에 나오는 단어 '성소'(미크다쉬=거룩한 장소)를 지성소가 아니라 성소로 이해했거나, 아니면 진짜 이때쯤에는 누군가 분향단을 성소에 갖다 놓았든지 했기 때문에, 분향단이 성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성막에서 분향단은 지성소의 법궤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며, 또한 다윗의 명을 받아 솔로몬이 지었던 첫번째 솔로몬성전(B.C.966)에서도 분향단은 내소 곧 지성소에 있었다는 것이다(왕상6:22). 

  셋째, 성막의 전문가들이 신약성경의 하나인 히브리서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에 어떤 성물들이 놓여있는지가 나오는데, 거기를 보면 성소에는 등잔대와 떡상이 있고, 지성소에는 향단 위에 놓는 향로와 언약궤(법궤,증거궤)가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히9:1~4). 하지만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향로가 놓인 향단은 비록 성소에 있지만 지성물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히브기서 기자가 잘못 쓴 것이 아닌가 하고 주석을 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성막에서 분향단은 지성소의 법궤 앞에, 그리고 휘장 밖이 아니라 바로 휘장 앞에 있었다고 나온다는 사실이다. 훗날 누가 성소에 갖다 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8.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는 지성물이었다는 것과 기도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첫째, 지성소는 하나님이 현현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출25:21~22,30:6). 하나님은 성소에 있지 아니하며, 성막뜰에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의 두 그룹 사이에서 현현하신다. 그리고 바로 그 앞쪽에 놓인 분향단에서 향을 사른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얼굴(직역) 앞에서 향을 사른다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상에서 드리는 기도는 구만리 장천을 직행하여 올라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는 분향단에 향을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것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서 향을 사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구별된 자로서 대제사장만이 그곳에 들어가서 향을 사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하자.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우리에까지 활짝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모든 자를 주님은 대제사장처럼 여기주시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십자가에서 찢으신 예수님의 육체가 둘째 휘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전의 둘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게 된다(마27:50~51).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들(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주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열어놓으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히10:19~20).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기도할 때에는 대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요, 누구든지 자신의 기도만큼은 하나님의 보좌 앞 곧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올려보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고로 사도 베드로는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한 것이다(벧전2:9). 

 

9. 기도가 향으로 드려지고 향기되어 올라가며 응답이 떨어지는 장소인 분향단이 들려주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기도가 아무런 가감없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장소인 지상의 분향단으로 가보자. 그런데 성경은 분향단을 어떻게 제조하며, 또한 그곳에서 향을 사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 분향단은 조각목(아카시아나무)로 짓되 그것의 보이는 모든 부분(위면와 옆면들)을 순금을 입히라고 했다는 것이다(출30:1~3). 여기서 '조각목'은 사람의 '인성'을 상징하고, '순금'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상징한다. 사람의 성품은 깨끗하지 않다. 더럽고 추하다. 아담의 원죄가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더러운 인성일지라도 분향단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신성한 본성으로 감싸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비록 더럽고 추하다고 할지라도 기도할 때만큼은 그분이 우리를 금으로 덮어주시어 우리더러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분향단을 만들 때에위쪽 네 모퉁이에는 뿔을 만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출30:2~3). 이러한 뿔은 성막기구들 중에서 오직 번제단과 분향단에만 있다. 그리고 이 뿔은 영적으로 '힘'과 '권세'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지만 기도할 때만큼은 하나님의 힘과 권세가 그에게서 나타나게 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미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는 방법은 오직 기도에 있다. 그러므로 위대한 인물들도 다 이러한 전능자의 힘과 권세를 기도를 통해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분향단에 향을 피우게 되면 어떤 죄인의 죄도 가려지고, 심지어 죄를 지은 것도 용서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레16:12~13, 민16:46~48).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사는 대제사장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대제사장은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향연으로 지성소를 가리는 것이다(레16:12~13). 그러면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민수기 16장에 나온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염병으로 그들을 치실 때에, 아론이 향로를 가져다가 향을 피움으로 염병이 그쳤다는 말씀이 나온다(민16:46~48). 그렇다. 기도할 때에는 지은 죄도 속죄가 일어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징계까지도 멈추시며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번제단에서만 속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향을 사를 때에도 죄를 사함받을 수가 있음을 알라. 오, 이 얼마나 큰 은혜란 말인가?

 

10. 나오며

  우리는 번제단에서 듸는 제물의 향기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분향제단에서 사르는 향의 향기도 하나님일 받으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별히 우리가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신다는 것도 들었다. 왜냐하면 오직 향을 사를 수 있는 분향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대제사장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각목 같은 우리 인생들이지만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은 우리를 순금으로 덮어주신다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향연이 존엄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가려주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대면하여도 죽지 않게 해 주는 것이다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죄를 지었을지도 직접 향을 태우고 있을 때에는 우리의 지은 죄들도 용서해주신다는 것도 배웠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큰 죄를 지은 자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 기도는 내 몸이 비록 이 지상에 있지만 내 영혼을 순식간에 하늘의 지성소인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보내는 고속도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죄를 지은 자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한 기도의 능력이며 이 얼마나 놀라운 기도의 권한인가? 기도를 하자. 우리도 기도를 드리자. 그래서 우리도 그 순간만큼은 대제사장이 되어보자. 그리고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예외로 인정해주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해 보자. 기도가 바로 특권이요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며, 기도야말로 능력과 권세이자,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이기 때문이다. 

 

2022년 07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

 

예수께서는 누구신가? 히브리서는 예표론적성경해석방법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도 아니었다. 그리고 성전에서 죽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분은 단지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버려진 채 죽임을 당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예수님은 나의 구주로 믿고 따르는가? 대체 그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히브리서만이 들려주는 놀라운 속죄제사의 비밀, 우리는 지금 거기에 가보려고 한다.

2020-03-15(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예수께서는 이 땅의 참 성막의 대제사장이셨다(히8:1~6)
https://youtu.be/1DivMwFk8U0

[ https://tv.naver.com/v/12877650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는 자들이다. 즉 예수께서 2천년전에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인류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대속의 사건이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에 의하면, 속죄일제사는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집례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아뱌(요11:49)에 의해 성전에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하나의 모형에 불과할 뿐, 진짜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속죄사역을 한 것으로는 안 되고 죽고 부활한 후에 승천하셔서 하늘의 성소에서 제사를 다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진술이 맞는 진술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골고다언덕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사건이 과연 인류를 위한 구속사건이었으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믿는 자가 받게 되는 혜택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인류의 구원을 위해 대속죄일 제사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구약성경 레위기 16장을 보면,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제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가 나온다. 거기에는 속죄제사를 드려 죄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첫째는 제사드리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곳은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장소 곧 성막(성전)이 있는 곳이라야 한다. 아무데서나 제사를 드린다고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는 제사에 사용될 속죄제물이 있어야 한다. 틀히 죄인을 대신하여 죽을 흠없는 속죄제물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제사를 드려줄 제사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속죄일 제사에는 그냥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드린 속죄제사는 과연 대제사장이 인류를 구원할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이었까? 그리고 오늘은 이 3가지 관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보도록 하자.

 

3. 예수님은 과연 성전(성막)에서 돌아가셨는가?

  우선 예수께서 인류구원을 위한 속죄제물로 죽으시려면 "장소"가 합당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한 장소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구약성경에서 대속제물을 바치는 장소는 어디였ㅈ는가? 그것은 성막이었다. 혹은 그것이 발전된 성전이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성막 혹은 성전에서 돌아가셨는가? 우선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는 결코 성전 안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날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문 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무의미한 죽음이라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속죄제일 제사를 완성하기 위한 첫번째 단추부터 끼워보자. 예수께서는 과연 성막(혹은 성전)에서 돌아가신 것인가? 이부분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것은 히9:8의 말씀이다.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9:8).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장막"이 무엇이며, "성소"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첫 장막"이 무엇인지는 히9:1~2에 보면 나온다. 거기에서는 첫 장막을 "성소"라고 부르며, 그것 안에는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첫 장막은 첫째성막으로서 성소를 가리킨다. 그러면 둘째장막은 둘째성막으로서 지성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히9:8의 말씀을 보면, "첫장막"과 "성소"와 충돌한다. 둘 다 똑같은 말인데, "첫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는 첫장막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했다"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히9:8에 나오는 "첫장막"과 "성소"가 각각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선 "첫장막"을 지상에 있는 성전의 성소라고 가정해보자. 예수께서 죽으실 때에 과연 지상의 성소가 어찌되었는가? 그렇지 않았다. 그러므로 "첫장막"이란 지상의 성소를 가리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성소에 들어가는 길"에 나오는 성소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선 헬라어원문을 보면, 이따 "성소"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성소들"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실마리가 풀리가 시작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오는 "성소들"은 하늘에 있는 성소들이라고 풀면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는 구약을 모형론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히9:11~12에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일의 좋은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후에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1~12)". 고로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행하신 후에 예수님의 영(부활체)는 하늘에 있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9:8의 "첫장막"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히10:19~20에 나온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들]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10:19~20)"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들어갈 장소는 다름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성소들(성소와 지성소들)이라는 사실과 아울러, 지상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둘째 휘장이 예수님의 육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첫장막(첫째성막=성소)은 예수님의 육체였던 것이요, 둘째장막(둘째성막=지성소)는 예수님의 영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첫째휘장을 열고 들어가면 일곱금촛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놓여있으며, 좌우에 싯딤나무로 지어진 판자들이 있고 앞쪽에는 지성소를 구분하는 둘째휘장이 있는 곳이 "첫째성막"으로서 "성소"인데, 지상의 성전의 성소는 모형이고, 이것의 실체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각도에서 성경을 보면 많은 부분이 열리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요1:14에서 사도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증언하였다. 그런데 "거하시매"라는 단어를 보면, "스케노오"라는 헬러어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천막을 치다. 장막을 치다. 성막을 짓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육신을 입은 사건이 곧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성막을 치신 사건인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땅에 물질적인 성막(모형) 말고 또 하나의 진짜 성막이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야말로 "움직이는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직접적으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그런데 사도요한은 이 성전을 가리켜 "예수님의 성전된 자기 육체"라고 해석했던 것이다(요2:21).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는 성전의 첫째방으로서 성소였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몸이 성전의 성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지상의 성전에 있는 둘째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마27:51), 그리고 한 가운데(눅23:45)가 찢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성전의 휘장은 모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이 성전의 성소 곧 첫장막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확실히 예수님이야말로 걸어가는 성막(성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분의 몸은 첫째장막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그분의 영은 둘째장막에 해당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일곱금촛대에 불을 밝히고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고 떡상에 떡을 진설하는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몸안에서 행하는 사역이었고, 지성소의 법궤 위에 피를 뿌리는 것은 그분이 영 안에서 행하시는 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께서 성막(성전)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같은 일들로 인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걸어다니는 성막(성전)이었기에 그분이 어디서 돌아가시든 그분은 속죄제사의 첫번째 조건인 속죄제사는 성막(성전)에서 드려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예수님의 베데스다 못가에서 돌아가시든, 벳바게 언덕에서 돌아가시든 상관없이 그분이 돌아가신 그 장소가 성막(성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4. 왜 예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것은 왜 예수께서는 여러 장소들이 많은데 굳이 "골고다언덕"에서 돌아가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번째 이유는 그것이 대속죄일 제사에서 죽임당할 속죄속죄제물에 대한 규례 때문이다(보다 더 정확히 말하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래 바랬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온 회중의 죄를 사하는 대속죄일 제사는 레위기 16장에 나온다. 거기에 보면, 대속죄일 제사 때에 온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속죄제는 2마리의 속죄양(숫양2마리)가 사용되었는데, 한 마리는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으로 드려졌고 또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속죄양으로 드려졌다.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을 잡아서 그 피를 지성소(둘째장막)의 법궤 위와 동편 앞에 뿌려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마리는 안수 후 산 채로 광야의 무인지경에 내다 버려야 했다. 그때 아사셀 양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버림받아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죽으신 것은 이 두 마리 속죄양으로 죽으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로부터 아사셀 양처럼 버림받아 골고다언덕(당시에는 성문밖에 위치해 있었다)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그 장소가 여호와를 위한 속죄양의 피가 떨어질 자리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1988년경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 론 와이어트가 예루살렘을 여행하던 중 천사의 지시를 받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장소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때 법궤의 위치까지 알아낸다. 그곳은 골고다언덕의 바위 밑이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날 지진이 일어났었는데, 그때 십자가에서 흘러내린 피가 고여있다가 지진으로 벌어진 틈새를 따라 밑으로 스며들었으며, 지하 예레미야 동굴에 감추어둔 법궤 위와 동편에 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를 위한 한 마리의 속죄양의 피가 지성소의 법궤 위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주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골고다언덕이야말로 성전(예수님의 몸)이 있는 장소였고, 지성소(법궤가 놓여 있음)가 놓여있는 장소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참고로 그 자리에 법궤가 있었던 이유는 남유다가 타락으로 인하여 멸망이 가깝자, 경건한 제사장들이 법궤를 당시 예레미야의 동굴로 옮겨놓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5. 예수님은 흠없는 속죄제물이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흠없는 속죄제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동정녀(처녀)마리아의 태를 빌려 태어나셨기에 죄된 본성을 갖지 않은 채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분이기 때문이요, 그분은 이 세상에 살면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요 죄를 짓지도 아니하셨기 때문이다(고후5:21, 히4:15, 요일3: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그래서 사도베드로는 예수님의 피를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피(벧전1:19)"라고 하였던 것이다.

 

6. 예수님은 진정 속죄제사를 드릴 자격을 갖춘 대제사장이었는가?

  이제는 마지막 단계에 왔다. 예수님은 자체가 성막이셨고 흠없는 속죄제물이셨다. 그렇다면 그분은 속죄제사를 드릴 수 있는 대제사장이셨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더욱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자체가 1장부터 10장까지 예수님께서 속죄제사를 드릴 대제사장으로 합당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간을 내서 차근차근 히브리서를 읽어보라. 1장에는 그분이 죄를 정결케하는 일을 하셨다고 나오고(1:3), 2장부터는 계속해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시라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대제사장으로서 합당하신 분인지를 증거하고 있는데, 그분은 천사보다 뛰어나고(1~2장), 모세보다 뛰어나며(3~4장), 아론보다 뛰어난 분(5~10장)이라고 증거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시작도 끝도 없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으로서, 영원무궁토록 대제사장의 신분을 갖고 계시다고 증거한다(7장). 예수께서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를 앞으로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매일 새벽 유튜브로 방송하는 "아침묵상(홈페이지)"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7. 골고다언덕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는 어떤 복을까?

  그렇다면, 골고다언덕에서 인류를 위한 속죄제사를 믿는 자들은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가? 많다. 아주 많아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다. 우선 예수께서는 요3장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3:15).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의 속죄제사로 인하여 죄들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고(히9:22,2:17,1:3), 우리들의 양심이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고 했으며(히9:14), 죄인들을 거룩하게 하며 온전하게 한다고 하였다(히10:14). 그리고 그날 예수께서 열어놓은 새롭고 산 하늘 길을 따라 하늘(셋째하늘=천국)에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으며(히10:19~20), 결국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히9:25).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앉으셔서(히8:1), 중보자로서 일하시는 그분의 도우심을 받아(히2:18),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히4:16), 우리가 드린 기도가 응답되며(히7:25~26),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처인 하나님의 나라까지 상속받을 수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히3:14).

 

8. 나오며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드린 제사가 인류의 구원을 위한 완전한 속죄제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그분은 골고다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이 땅에 성막을 치신 것이다. 그분이 성육신하신 것이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해 인류의 죄를 전가받은 후, 당신이 이 세상의 죄를 없이하시려고 죽으신 것이다. 하지만 그분이 구원자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서 무려 350가지 이상의 구약의 예언들을 성취하셨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두 마리의 속죄양으로서 돌아가셨다. 그 표적이 바로 지상성전에 있던 둘째휘장이 찢어진 것이며, 예레미야동굴의 법궤 위에 피가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3일동안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무덤 속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 가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의 중보자로서 대제사장적인 직무를 감당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그분만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기를 바란다.

 

2020년 03월 15일(주일)

정병진목사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2개 내지는 3개가 아니라 오직 한 개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승천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천주교의 아이콘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성자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잡수시거나 서로 토론하고 계시고 있는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후 하늘에서 3가지 직무를 수행하고 계시다. 그분은 그 일을 심판하시는 날 직전까지 행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그 일은 대체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에수께서 승천하신 뒤에 그분은 보좌우편에 앉으셨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 다른 보좌가 있지 아니한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승천하신 뒤에 어디에 앉으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원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성경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잘못 넘겨짚으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있는 것처럼 말하기 쉽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2.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씀이 있는가?

  성경을 읽다보면 난감할 때가 가끔씩 있다. 그 대표적인 용례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표현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막16:19,골3:1,히10:12)"는 표현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히12:2)"는 두 가지 표현이 다 나온다. 어찌 되었든지 이 두 가지 표현을 한데 모아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이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천상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또다른 예수님의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보좌는 2개 3개가 아니라 오직 한 개뿐이다.

  신구약성경을 다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한 개의 보좌에 좌정해 계신다(사6:1~10, 단7:9). 구약시대에는 그곳에 앉아 계신 분이 여호와이시다(사6:8). 하지만 요한계시록 22장에 의하면,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 내지는 "여호와의 보좌"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한다(계22:1,3). 그렇지만 여기에 쓰인 '보좌'라는 단어는 단수명사다. 즉 보좌가 한 개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광경에 대한 계시의 종점에서는 그 보좌를 "하나님의 보좌"라고도 말하며, "어린양의 보좌"라고도 말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어린양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혹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우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을 다 상징적인 것으로 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메튜헨리는 예수께서 보좌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을 이렇게 주석한다. "그것은 그의 위엄있는 주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에게 우주를 통치할 수 있는 권세가 부여된 것이다. 지금 그는 창세전부터 그에게 있었던 영광으로 영화롭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호크마주석에서는 "거기서 예수는 영광과 권위를 상징하는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개념은 상징적인 개념이다. 사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볼 수가 없으시며, 우주에 충만하시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오른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왼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 때부터 하나님의 오른편이라는 개념이 "영광과 존귀와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쓰였다. 예를 들어보자. 출애굽기15장에 보면, 모세가 이렇게 노래한 것을 볼 수 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조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출15:6)"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과연 오른손이 있는가? 영이신 그분에게는 보이는 오른손이 없다. 그분이 권능으로 홍해 속에 세계최강의 애굽군대를 수장시킨 것을 빗대어서 모세가 주의 오른손이이 영광을 드러냈다고 말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능력과 권세로서 애굽군대를 쳐부수시고,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을 일컬어 그분의 오르손이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편에서 다윗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16:8)" 그렇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분의 권능으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것을 일컬어 자신의 오른쪽에 그분을 모시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에게는 사실 오른편과 왼편이 따로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말이 곧 예수께서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5.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기까지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대체 무슨 일을 하셨길래 그러한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일까? 히브리서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그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히10:12~13)" 그렇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이서 지상에서의 속죄사역의 직무를 온전히 감당하심으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예수께서 지상에서 감당해야할 속죄사역을 다 완성하시고 승천하사 영광스러운 자리를 얻게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6. 천국에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의 보좌가 있지 아니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 혹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하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의 우편에 있는 또 다른 보좌가 있고, 거기에 예수께서 앉아계시는 줄 착각한다. 아니다. 성경 66권을 다 뒤져보라. 오직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2개 내지는 3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중세시대 삼위일체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는 아이콘들에는, 하나님이 세 명의 사람 혹은 세 명의 날개달린 천사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그분들이 보좌에 앉아 있을 때에는 3개의 보좌 위에 세 분이 각각 따로 앉아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삼위일체,_20Trinity_20by_20Unknown_20painter.jpg 080518-1.jpg

  그러므로 중세의 사람들은 가운데의 보좌에는 성부 하나님이 앉아계시고, 그분의 오른쪽에 있는 보좌에는 성자예수님이 앉아계시며, 그분의 왼편에 있는 보좌에는 성령하나님이 앉아 계시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보좌는 한 개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천주교인들 중에도 중세의 아이콘을 한 번만이라도 본 자는, 천국에 하나님은 세 분으로 계시며, 하나님의 보좌도 3개가 있고, 거기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앉아있는 줄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단 한 개 뿐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 앉아계신다.

 

7. 천국에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그렇다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서 어떤 일을 수행하시는 것일까? 중세시대 하나님에 관한 그림을 보면, 세 분이 둥그렇게 앉아서 뭔가를 잡수시고 있는 듯한 그림이 있다. 그러므로 이 그림을 본 자는 세 분 하나님이 서로 어떤 협의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시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세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국에서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세 분 하나님이 대화를 나누시는 장면을 상상하지 말라. 그런 장면은 오직 중세시대 아이콘에만 있을 뿐이다. 또한 세 분이 모여서 어떤 음식을 먹지도 아니하신다.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6957.jpg

  그러나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적이 있으셨다. 또한 죽고 부활하신 적이 있으셨다. 그러므로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군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1:27b~18a)" 그렇다. 그분은 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사람이 되신 유일한 이유는 한 가지다. 오직 피흘리심으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피흘릴 수가 없으므로,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오직 흠없는 피가 필요했기에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히9:2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을 따라, 육신을 입고 아기이자 아들로 오셨음을 알 수 있다(사9:6, 요1:14). 그래서 온 인류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그분은 사람이셨던 목적을 위해 일하실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행하시는 3가지 일이다.

  첫째, 하늘에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일하신다(히8:1~2).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히8:1-2)" 그는 하늘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일을 하신다. 왜냐하면 그가 사람으로 오시어, 모든 인류의 죄를 속해주시기 위해 대제사장이 되셨으며, 대제사장으로서 골고다언덕에서 속죄일제사를 드리셨고, 천국에 올라가셔서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앞으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대제사장으로서 일을 하실 것이다. 인류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일을 계속 하시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당신을 구주로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주시지, 회개하지도 않는 자들의 죄를 자동적으로 용서해주시는 아니하신다(요일1:7,9). 그러므로 죄를 지었으면 즉시 지은 죄를 회개하기 바란다.

  둘째, 하늘에서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일하신다(롬8:34, 딤전2:5).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그렇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주신다. 지금 이 지상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시고 있지만(롬8:26), 천상에서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중보기도해 주시고 있다.

  한편, 요한사도는 예수께서 천국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사역하실 뿐만 아니라, 보혜사인 중보기도자로서 사역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렇게 증언하였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일2:1-2)" 그렇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서 그냥 쉬시고 있는 것이 아니시다.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자로서  끊임없이 사역하고 있으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딤전2:5)"께서 지금도 중보자의 일을 하고 계신다.

  셋째, 마지막으로 하늘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영적인 피조물인 천사들의 왕으로서 일하고 계신다(벧전5:22, 엡1:20~21, 히1:3).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벧전3:22)",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1:20-21)" 그렇다. 지금 천국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에서 모든 천사들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구원얻을 후사들을 돕고 섬기라고 천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기도 하신다(히1:14). 그러므로 우리가 위험한 일을 당할 때에도 안전하게 보호받는 이유는 하늘의 왕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돕는 천사들을 보내어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타락한 천사들의 왕도 지배하고 계신다. 예수께서 귀신들의 왕인 사탄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들이 믿는 이들을 지배하려 한다 해도, 예수께서는 회개하는 자에게 예수의 이름을 주시어 귀신을 쫓아내도록 권한을 주신다(막16:17~18). 그래서 믿는 이들은 주 예수께서 보낸 천사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악한 천사로부터는 지키심을 받는 것이다. 즉 하늘에서부터는 선한 천사들의 도움을 받고, 지상과 음부에 있는 귀신들로부터는 예수의 이름으로 지키심의 은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8. 나오며

  그렇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영이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또다른 어떤 보좌가 있어 거기에 예수께서 앉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예수께서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잘 완성하시고 하늘에 오르시어 영광스럽게 되셨으며, 권세와 능력을 얻으셨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셨다가 죽고 부활하신 분이시므로 천국에 들어가셔서 3가지 직무를 수행하고 계신다. 하나는 대제사장으로서 회개하는 모든 이들의 죄를 씻어주시는 일을 하신다. 그리고 또 하나는 모든 믿는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천상의 왕으로서, 하늘의 돕는 천사들을 보내 성도들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귀신들로부터 우리 성도들을 지키고 보호해주시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렇다. 예수께는 천국에서도 우리를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이 세상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분량의 구원얻을 자를 다 얻게 되시어 재림하실 때까지 주님은 결코 쉬지 않으시는 것이다. 우리주 예수님을 찬양하라. 지금도 우리를 위해 쉬지도 않으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중보기도자로서, 왕으로 일하고 계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하라. 아멘. 할렐루야!!!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