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3월 특별새벽집회("천국, 소망에서 이제는 실제로") 셋째날입니다.

제목: 천국복음(10) 달란트의 비유, 순종의 비유인가 충성의 비유인가?(마25:14~30)_2022-03-02(수)

https://youtu.be/5Zv9DkRJoag  [혹은 https://tv.naver.com/v/25469494 ]

 

1. 달란트의 비유는 왜 열 처녀의 비유 다음에 주어진 것인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마25:14~30)는 '열 처녀의 비유'(마25:1~13) 다음에 나온다.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또"라는 말로 시작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왜냐하면~"이라는 말이다. 이는 앞 문장의 결론 부분인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 '달란트의 비유'를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깨어있는 것이 곧 기름을 준비하는 것인데, 만약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달란트의 비유를 통해서 알려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이미 주께서 하신 말씀을 더 구체화시킨 것이다. 즉 주님이 언제 오실른지 모르니 깨어서 준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충성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마24:44~45). 그래서 먼저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열 처녀의 비유'(마25:1~13)를 말씀해주신 것이고, 이어서 '충성하는 것'에 대해서 알려주시기 위해 '달란트의 비유'(마25:14~30)를 말씀해주신 것이다. 

 

2. 천국은 사모하면 차지할 수 있는 것인가?

  천국은 사모하지 않는 자가 차지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사모한다고 해서 다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면류관에 대해 사모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은 내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전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것이다. 게을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기름이 어찌 그냥 기름병에서 채워지겠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날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는 순간에 "아, 믿는 것으로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구나." 그러면서 "이제는 회개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회개하는 것이 없이는 결코 그 나라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머리로는 회개해야지 하지만, 회개를 위해 댓가를 지불하지 않으면서 어찌 회개했다고 할 수가 있겠으며, 면류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 면류관을 얻기 위해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어찌 면류관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면 기름을 얻게 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해 '달란트 비유'를 이어서 말씀해주신 것이다. 그것은 충성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게을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달란트의 비유는 충성하라는 비유인가 순종하라는 비유인가?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왜 주셨는지를 들었다. 그것은 충성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베푸신 비유인 것이었다. 그렇다. 천국에서 넉넉히 들어갈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서도 높은 신분과 여러가지 면류관, 보다 더 앞쪽에 있는 보좌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열 처녀의 비유'로 말하면, '기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요, '왕의 아들의 혼인잔치의 비유'로 말하면 예복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해야 하는가? 둘 다 해야 한다.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이 둘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충성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순종하는 것과 충성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순종하는 것이나 충성하는 것은 둘 다 게을러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해야 비로소 이것들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순종하는 것과 충성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의 비유"(마24:45~51)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에 나오는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마25:14~30)의 차이를 알 수 있다면 확실히 더 잘 알 수 있다. 주님은 똑같은 비유를 연거푸 하시지는 않으신다. 그러므로 둘 다 "충성된 종과 악한 종"에 관한 비유이지만 둘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차이가 바로 '순종하는 것'과 '충성하는 것'의 차이다. 결론적으로 먼저 말씀드리면,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비유는 '순종의 비유'라고 한다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비유는 '충성의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첫째, 어디에서부터 책임과 사명이 주어진 것이냐의 차이가 있다. 마24장의 비유는 이미 하늘에서부터 그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가 내린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자를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라 부른다. 그러나 마25장의 비유는 이 땅에서 주님께서 그 사람의 능력을 따라 달란트를 맡겨주시고 천국에 돌아가셨는데 다시 오실 때까지 자신이 받은 달란트로 열심이 일하였던 자를 가리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24장의 종은 정확하게 자신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것은 "주인의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다(마24:45).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이 땅에 영혼을 내려보내실 때 이미 결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안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많지는 않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위해 그 일을 행하신다. 그런데 마25장의 종은 이 땅에서 받은 능력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자신의 조상들이 물려준 것에는 좋은 것도 있겠지만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왜 나에게 이러한 능력들이 왔는지를 스스로 깨닫고 이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 달란트 받은 이들의 모습이다. 사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지시받은 것은 없다. 단지, 능력만을 물려받는 것이다(물론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그러므로 '순종'이 좀 의무성이 강한 것이라면, '충성'은 좀 자발성이 강한 것이다. 

 

5. 순종과 충성의 두 번째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리고 '순종'과 '충성'의 두 번째 차이는 '복과 형벌'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먼저 첫째로, 순종을 잘 한 이는 충성하는 이에 비해 상이 더 크다. 왜냐하면 사명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주인의 모든 것(소유)을 다 그에게 맡긴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4:47). 그러나 달란트로 자기 재량껏 일하여 주인의 소유를 더 남긴 자는 "주인이 은 것으로 그에게 맡긴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5:21,23). 사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하늘에서 사명을 받고 온 자는 이미 하늘에서 그가 받을 예비되어 있다(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 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둘째로, 불순종한 이는 불충성하는 이에 비해 형벌이 세다. 사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악하게 행동한 종이 받을 형벌은 참으로 가혹하다.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이라고 했다(마24:51). 그렇다고 해서 이런 자들이 휴황불못에 던져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불충성하는 종에 비해서는 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불충성한 자 곧 한 달란트를 받았으나 그대로 가져왔던, 악하고 게으른 종은 예루살렘 성 바깥의 어두운 곳으로 내어쫓겨날 것이라고 했지만, 불순종헸던 자는 본인이 성 바깥쪽으로 쫓겨날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맞을 뿐만 아니라 외식하는 자가 받을 형벌까지 받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5:30). 그렇다. 하늘에서 사명을 받아서 이 땅에 온 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더 큰 상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순종하면 더 강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기의 부모로부터 능력을 물려받은 자는 충성하면 그에게 많은 상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불충성했을 때에는 천국으로 지칭되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이며, 성 바깥에 있는 더 어두운 곳으로 버려지게 될 것이다. 

 

2022년 03월 02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종말신앙(19)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과 차이점은(마25:31~3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BUpMsvKnu8  [혹은 https://tv.naver.com/v/22308344  ]

 

1.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5장에는 3가지의 천국 입성 및 심판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첫 번째는 열 처녀의 비유이며(1~13절), 두 번째 비유는 달란트 비유이고(14~30절), 세 번째 비유는 양과 염소의 비유이다(31~46절). 

 

2. 이 세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비유는 각각 독특한 점도 있지만 사실 이 세 가지 비유는 같은 종류의 다른 비유들이다. 그럼 무엇이 같은가? 첫째, 이 세 가지 비유는 마지막 날에 있을 성도들의 상급과 심판에 관한 비유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상급보다는 심판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는듯 보인다. 왜냐하면 종말과 주의 재림을 맞이하는 성도들의 자세들을 언급하는 본문들 가운데 모두 비유의 끝은 각성과 경고로 끝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비유가 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 이후에 있을 백보좌 심판의 비유라고 한다면 상(급)에 관한 언급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하여 불못에 던지면 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유는 상급도 있고 심판도 있다. 성도들에 관한 상급과 심판에 관한 비유인 것이다. 둘째, 이 세가지 비유는 성도들이 심판을 받게 되면 딱 둘로 갈라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열 처녀의 비유를 보면 문 밖(새 예루살렘 성의 진주문 밖)에 영원히 버려질 자와 성 안에 들어가 혼인잔치를 하는 신부들로 갈라진다.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먼저 주인의 즐거움(혼인잔치)으로 들어간 후에 주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맡게 되는(므나의 비유와 합치면 여러 고을들 위에 왕노릇하는 것) 자가 있는가 하면,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 자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양과 염소의 비유에 따르면, 복을 받아 창세로부터 예비된 채 있는 왕국을 상속받을 자와 저주를 받아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채 있는 영원한 불에 들어갈 자로 갈라진다. 셋째, 재림의 때의 예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공의와 심판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 때에 우리 주님은 심판주로 오신다. 사실 초림의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어 종의 형체를 입고 말구유에 태어나셨다. 한 없이 자신을 낮추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오실 재림의 예수님은 한없이 높으신 분이시다. 그분은 만민을 공의대로 심판하실 심판주이기 때문이다. 

 

3. 주께서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때에 성도들을 심판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많은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은 초림의 예수님과 같아서 사랑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왠만한 잘못은 다 용서하시어 모른 채 넘어가주실 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재림하시는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랑의 주님이 아니시다  공의와 심판의 주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오셔서 보좌에 앉으시는 분은 우리를 심판하시되, 우리의 믿음을 따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따라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그랬고, 달란트의 비유에서 그랬으며,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그러하신다. 모두가 다 그들의 행위들에 따라 성 안과 성 밖의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가? 그건 아니다. 여기서의 '행위'란 구원얻기 위해 행하는 행위들이 아니다. 믿음을 갖고 있고 회개하는 자라면 당연히 열매로서 나타나는 행위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예수님을 믿은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열매나 믿음에 따른 어떤 열매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는 자는 그날 심판의 때에 성 바깥에 남겨지거나 더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거나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의 노정을 시작하지만 우리의 노정의 끝나는 날에 받을 심판은 우리의 행위를 따른 심판이 될 것을 짐작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비록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날 심판대에 앞에 섰을 때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미리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4.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말은 진정 사실인가?

  그렇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사랑과 용서의 주님으로 오시지 않으시고 공의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날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는 우리의 믿음을 따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행위들을 따라 심판하신다. 그런데 그날 그 심판의 장소에서 어떤 사람은 상을 받을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가 모두 다 부정적인 경고의 성격이 매우 강한 비유들이기 때문이다. 여기, 그날 심판의 때에는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들이 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19:27-29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눅22:28-30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5. 이 비유의 차이점은 대체 무엇인가?

  이 비유의 차이점은 심판 후에 장차 성도들이 들어가게 될 최종적인 장소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상 받을 장소도 각각 차이가 있고, 벌을 받을 장소도 각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열 처녀의 경우를 보자. 열 처녀 중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문 안으로 들어가는데, 이는 그녀들이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것을 말해 주며, 미련한 다섯 처녀는 문 밖에 버려진다는 것이다. 둘째로, 달란트를 받은 종들의 경우를 보자. 이 비유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즐거움(어린양의 혼인잔치와 같은 것) 안으로 들어가게 되며, 악하고 게으른 종은 더 바깥의 어둠의 장소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얌과 염소의 경우를 보자. 이 비유는 실천적으로 사랑의 열매가 나타났던 자들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처소 곧 왕국에 들어가게 되겠지만, 염소의 비유는 그 어떤 행위도 나타나지 않았던 자들로서 그래서 버림을 받고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특별히 주님으로부터 떠나가게 되는 자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거주할 장소가 각각 다르다. 그들은 성밖이나 바깥 어두운 곳이나 영원한 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이러한 곳으로 가면 안 된다. 우리는 죽은 후에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나아갈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므나의 비유처럼 왕노릇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최소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기업을 차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021년 09월 0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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