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시대 말기에 내렸던 전염병 재앙을 다윗은 대체 어떻게 그치게 할 수 있었는가? 그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요인이 있어서였는가? 이것을 알면 우리는 우리 삶에 내려진 재앙을 피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늘에서 속죄(죄용서)가 일어나게 되는지, 그리고 이 땅에 죄로 인한 저주(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죽어서 천국에도 들어가고 살아서 저주도 더 이상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2-02-13(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무엘하강해(34) 다윗이 제사드린 것만으로 과연 속죄가 일어나고 재앙이 없어진 것인가?(삼하24:10~2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57ovSo2eMjE [혹은 https://tv.naver.com/v/25124593 ]

 

1. 들어가며

  사무엘하 24장은 속죄와 재앙(저주)에 관한 놀라운 계시의 말씀이 들어있는 본문이다. 사무엘하의 본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본문 중의 하나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능력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사의 기능이 어떤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할 때 지은 죄에 대한 재앙을 받지 않는 것인지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무엘하 24장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지는 말씀인지라, 이 사건을 구약적인 관점에서만 들여다보지 않고, 신약적인 관점에서도 들여다볼 것이다. 다시 말해,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하늘에서 속죄가 일어나는 회개를 할 수가 있으며, 재앙까지 받지 않게 해주는 회개를 할 수 있는지까지를 살펴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진정한 회개의 능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다윗의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2가지 범죄는 무엇이었으며, 둘의 범죄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윗은 일생일대에 커다란 2가지 죄를 범했다. 그것은 먼저, 삼하 11장에 나오는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과 그의 남편 우리아의 살해 사건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우리가 읽었던 삼하 24장에 나오는 다윗의 인구조사 사건이다. 그런데 서로 일치하는 점은 둘 다 중대한 범죄였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윗이 자기가 지은 죄를 알아보는 싯점이 둘 다 10개월 정도 된 후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앞의 간음과 살해사건은 나단선지자가 와서 책망하기 전까지 다윗은 잘 몰랐거나 알았어도 숨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뒤의 인구조사 사건은 그렇지 않다. 요압장군으로부터 인구조사결과를 보고 받자마자 다윗은 자신이 큰 죄를 범했다고 스스로 알고 자책하며 회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삼하24:10). 앞의 사건은 다윗의 나이 40세경에 일어난 것이고, 후의 사건은 다윗의 나이 65세경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러므로 후자의 시기는 다윗이 상당히 영적으로 성숙해져 있는 시기였음을 알 수 있다. 벌써 죄에 대해서 민감하여 자신의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를 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로 인하여 그가 행한 인구조사의 죄를 용서해주었는가? 그리고 그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았는가?

 

3. 인구조사한 것을 두고 다윗이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국에 재앙을 내리셨는가?

  먼저 알 것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이 다윗만의 책임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의 충동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대상21:1).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내버려두셨기 때문이다(삼하24:1).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범죄를 막지 않으셨는가? 그것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민족을 치시기 원하셨던 것이지 다윗을 치려는 마음은 없으셨기 때문이다(삼하24:1).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을 그대로 내버려두시어 그로 하여금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이 사건을 통하여 다윗을 시험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제 65세가 된 다윗이 얼마나 죄에 대해서 민감한지를 알고 싶어하셨고, 그가 자기 민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으셨던 것이다. 셋째는 이것을 계기로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성전터를 다윗으로 하여금 확보하도록 할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이다(대상22:1, 대하3:1). 그래서 하나님은 인구조사를 막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왕국 전역에 재앙을 내리셨다. 3일동안 내릴 전염병(온역)이었는데 하루동안만 내리셨던 것 같다. 그래도 약 7만명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갔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의 댓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으셨는가? 그것은 다윗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신 것이 아님을 우선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징벌로서 전염병을 내리신 것이기 때문이다(삼하24:1). 왜 그런가? 다윗이 인구조사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이 지은 죄는 남유다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고, 북쪽의 10개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세반의 반역에 가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신정왕국을 뒤엎으려는 반역을 한 것이기에 그들을 형벌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인구조사는 그리 크게 죄될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정도일지라도 하나님보다는 군사력을 의지하려는 다윗을 하나님은 책망하시길 원하셨다. 하지만 다윗은 인구조사 후 즉시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의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4.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에게 내린 전염병 재앙을 중단시키셨는가?

  분명히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거역과 반역의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셔야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린 재앙이 '전염병'이었다9삼하24:1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루만에 전염병으로 이스라엘을 치고 있는 천사에게 그의 손을 거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전염병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셨기 때문이었다(삼하24, 대상21:15). 그럼, 하나님께서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다윗의 진심어린 회개를 보시고 재앙을 거두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삼하24:10). 더욱이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재앙을 내리는 천사를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 주셨다(대상21:16). 그러자 그것을 지켜본 다윗은 또 다시 회개를 하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백성의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옷을 입고 얼굴을 땅에 엎드려서 회개하였다. 그리고 감동적인 것은 자기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아뢴 것이었다. "주여, 인구조사를 시킨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지 않은 당신의 백성을 치십니까?(실제는 그렇지 않았지만) 치시려면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재앙으로 치시고 당신의 백성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대상21:17)" 그랬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 다윗의 진실한 회개를 보셨다. 그리고 재앙내리심을 후회하시고는 재앙의 칼을 막으신 것이다. 

 

5. 다윗의 회개로 이미 죄용서도 일어났고 재앙도 멈추어졌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더러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는가?

  사실 이 세상에서 전염병 재앙이 그쳤다는 것은 이미 하늘에서는 속죄가 일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하늘에서 죄용서가 되지 않았는데 이 땅에서 저주의 재앙이 그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회개는 하늘에서 속죄가 일어나게 하였으며, 이 땅에서는 재앙을 그치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의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대상21:26). 왜 속죄도 이루어졌고 재앙도 끝내신 하나님께서 굳이 모든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윗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한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늘에서 이미 속죄가 일어났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알 수가 없고, 재앙이 그쳤다는 것도 그들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다윗과 백성의 장로들이 드리는 회개의 기도를 받으시고 이제는 더이상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를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미 속죄가 끝났고 재앙이 그친 것을 공식적으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더러 백성을 대표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신 것이다. 그러자 모든 백성이 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을 그들도 분명히 알 수 있도록,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어 제물을 태우게 하셨다(대상21:26). 

 

6. 만약 다윗이 자신의 진정어린 회개 없이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사만 드렸다면 그때도 재앙이 그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하나의 가정이다. 하지만 이 질문을 답하라고 한다면 우리는 속죄제사만으로 재앙이 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재앙이 그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하늘에서 속죄도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나하면 이 땅에서 재앙이 그치게 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속죄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러한 가정에서 속죄제사의 효력이 이스라엘에게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을 하는가? 그것은 히브리서 9장에 나오는 속죄일제사에 대한 나름 해석 때문이다(히9:6).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께서 골로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건을 레위기 16장에 기록된 속죄일제사의 완성이라고 해석했다. 그렇다면 속죄일제사는 어떤 제사인가? 그것은 어떤 한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기시 위한 제사가 아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의 허물을 용서해주기 위한 제사이다. 만약 속죄일제사를 통하여 자신이 개인적으로 지은 죄를 용서받는 자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는 평소 때에 자신이 지은 개인적인 죄를 위해 속죄제사를 드려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속죄일제사는 백성의 허물을 용서하기 위한 제사이기 때문이다. 곧 무지하여 모르고 짓거나,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은 죄들을 용서받기 위한 제사가 속죄일제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제사제도를 악용한다면, 그는 평소 때 지은 죄에 대해서 결코 속죄제사를 드리지 않으려 할 것이다. 번거롭고 돈도 들어가고 시간도 들어가는 개인 제사를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기다렸다가 일년에 한 번 드리는 속죄일 제사에 참여하 1년치의 모든 죄를 다 사함받으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얄팍한 마음을 가진 자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신약적으로 해석하자면, 매일 자신이 지은 죄를 개인적으로 회개하고 있는 자가 결국 속죄일 제사로 주어지는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 모든 죄를 사함받을 수 있는 것이지, 평소 때에는 개인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도 않고 있으면서, 속죄일제사의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만을 믿는다는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의 모든 죄가 용서되지는 않는 것이다. 

 

7. 구약시대에도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속죄제사를 드렸다면 그는 자신이 모든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었을까?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속죄의 방법은 개인적으로 속죄제사를 드리는 것이다(레4장). 범죄자의 신분에 따른 제물을 가지고 와서 그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잡아 의식을 행함으로 죄용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제사를 드렸다고 해서 모든 죄다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마음이 빠져버린 형식적인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나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당만 밟고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져오는 제물이나 분향이나 절기를 싫어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그것이 무거운 짐이라고 하셨다(사1:11~14). 그렇게 마음이 빠져있는 형식적인 제사를 주님은 받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윗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범죄후 쓴 시편에 이렇게 말했다. 

시51:16-19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진정한 회개다. 그분이 바라시는 것은 제물의 피가 아니었던 것이다. 주님이 바르시는 제사는 진정한 회개의 마음이시다. 그리고 나서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도 받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도 속죄제사를 드렸다고 해서 하늘에서 모든 죄가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죄를 지은 것에 대해 아파하고 그것 때문에 흠없는 제물이 죽어갔음을 애통해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8.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가 예수님을 믿었으면 더이상 회개하지 않아도 하늘에서 이미 속죄는 끝난 것이며 더 이상 재앙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오늘날 믿는 이들 중에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으면, 과거의 죄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죄도 다 속죄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재앙)을 받으셨으니 나는 더이상 재앙을 받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왜냐하면 혹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가 회개한 것으로 인하여 그가 그 이전에 지었던 죄를 한꺼번에 용서함을 받았을른지는 몰라도, 그가 현재 짓고 있는 죄나 앞으로 지을 죄들은 반드시 자백함 없이는 용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늘에서 속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가 과거에 지었든지, 현재에 짓고 있든지, 아니면 앞으로 미래에 지을 죄이든지 상관없이 본인이 지은 죄들에 대해 자백하지 않았다면, 그 죄로 인하여 이미 우리 몸에 침투해 들어온 악한 영들은 계속 우리 몸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악한 영들도 우리의 고백을 듣고 우리 몸에서 떠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8에 의하면, 믿지 않는 자만 불못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핍박의 현장에서 비겁하게 주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죄로 인하여 그는 불못에 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5에 의하면, 그런 자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으로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도 지은 죄들은 반드시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죄로 인하여 성 밖으로 쫓겨가거나 불못에 던져지게 되고 말 것이다. 

 

9. 왜 오늘날 우리는 내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지은 죄들까지 대신 회개해야 하는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었으며,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그리고 혹시 지은 죄가 있을 때에 그것을 회개하고 있는 자는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요, 죄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내 조상들이 예수믿기 전에 그리고 오랜 과거에 지은 우상숭배의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 때문에 불못에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이것들 때문에 우리 인생과 신앙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상숭배의 4가지 죄를 지은 조상들이 있었는데, 그 조상들이 죄를 우리가 대신 회개하지 않으면 그때 조상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 역사했던 영들이 고스란히 나와 내 후손에게 역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우상숭배 때문에 내려온 영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악한 영들이 우리 몸으로부터 떨어져나가고, 우리 몸 밖에 있던 영들도 더 이상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믿고 있고 회개하고 있는 자라면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내가 지옥에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많은 영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 예로서, 어떤 이는 질병에 시달릴 것이고, 어떤 이는 물질로 고통을 받을 것이며, 어떤 이는 자녀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조상들의 죄까지 지은 과거의 죄들을 낱낱이 고백함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요일1:9). 그래서 악한 영들이 우리 몸에서 다 떠나가게 해야 한다. 우리 몸 밖에 있는 영들도 힘을 잃고 떠나가게 해야 한다. 그럴내면 내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와 나의 조상들이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0. 나오며

  우리는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에 하늘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며 이 땅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구약시대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우리의 관점까지 살펴보았다. 그렇다. 우리가 진실로 회개한다면 하늘에서는 우리가 지었던 죄들이 용서되고, 이 땅에서는 지었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떠나가게 된다. 그러면 저주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잘못 알고 있다. 예수님만 믿으면 속죄도 이미 끝난 것이고, 저주(재앙)도 더 이상 받지 않게 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하늘에서 속죄가 일어났는지 그가 본 일이 있는가? 그리고 본인은 이제 재앙도 끝나서 더 이상 재앙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건강과 물질과 자녀에게서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비단 자신이 지었던 과거의 죄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내려온악한 영들이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대에서 저주를 끝내려면 그는 반드시 자신이 예수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과 조상들이 믿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대신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이 드디어 내 몸과 내 주변에서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다윗시대에 왜 전염병 재앙이 그쳤는가? 그것은 다윗이 제사를 드린 것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진실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울왕이 저지른 죄도 대신 회개했다. 그리고 백성들이 지은 죄도 자신이 지은 것처럼 회개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내리시던 재앙을 그치게 하셨다. 그렇다. 진정한 회개는 하늘에서 속죄도 일어나게 하고 이 땅에서도 재앙을 그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수만 있으면 지은 죄들을 회개해야 한다. 특히 예수 믿지 않고 우상숭배를 자행했던 조상들의 죄들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었더라도 살면서 온갖 종류의 재앙을 받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상들이 죄를 더 많이 지었던 사람일수록 더 많이 그리고 자주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회개하면 이 모든 재앙이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2022년 02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3) 하나님이 재앙을 그치신 이유는 회개 때문인가 제사 때문인가?(삼하24:10~25)_2022-02-11(금)

https://youtu.be/fHvOSSbxsFQ  [혹은 https://tv.naver.com/v/25124033 ]

 

1. 하나님께서는 다윗 시대에 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의 재앙을 내리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윗 말기에 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셨는가? 다윗이 한 나라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다윗의 범죄를 그의 백성에게 물린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신 것인가? 모든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만, 사무엘하 24:1에 말씀에 따르면, 그것은 이스라엘이 범죄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재앙을 내리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묻기 위해 재앙을 내리기 전에 다윗도 범죄에 가담하게 하심으로 다윗과 함께 그 죄를 물으셨다는 것이다. 이 때 다윗이 범죄한 것은 인구조사를 한 것이다(삼하24:10). 사실 왕이 인구조사를 시행한 것을 두고 범죄라고 규정하기도 쉽지는 않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의 출애굽 초기에 인구조사를 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인구조사 명령은 사실 큰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백성의 세금징수를 위하여, 그리고 전쟁이 났을 때에 참여할 군인들의 숫자를 헤아리기 위하여, 아니면 기본적으로 현재 국방력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하여서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자신의 개인적인 범죄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작은 일에도 자신을 자책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2. 다윗이 인구조사의 죄를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징계를 내리신 것인가?

  다윗은 이때 자신이 인구조사를 시킨 것을 회개했다. 다윗은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삼하24:10)"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징계를 내리시는 것을 철회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성경에 어떤 죄를 지었다고 명기되어 있지는 않지만 추정해보면,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운 종인 다윗을 대적하여 반역한 죄를 묻는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다윗에게 반기를 들었던 악한 자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했던 것이 유다지파였으며, 이어지는 세바의 반란 때에 다윗의 왕국을 대적했던 것이 북이스라엘 10개지파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는 회개는 받으셨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다윗에게 3가지 재앙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신다. 그러자 다윗은 7년(혹은 3년) 기근과 3달 전쟁, 3일 전염병(온역) 중에서 결국 하나님이 치시는 것을 선택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전염병(온역)'이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루 만에 7만 명이나 죽어나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를 보시고 전염병을 그치도록 천사에게 명령하신다. 그때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칼을 빼어들고 있는 여호와의 천사를 본 다윗은 곧바로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를 시작한다. 그때 다윗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올린다.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데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대상21:17)" 이는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벌을 내리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는 용서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마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모든 인류의 죄값은 자기에게 물으시고 온 인류의 죄는 용서해달라고 부탁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아보인다. 

 

3. 다윗의 회개로 인하여 이미 재앙이 그치기 시작되었지만 왜 하나님께서는 다윗더러 제단을 쌓고 제물을 바치라고 하셨는가?

  우리는 여기서 재앙이 그치게 된 것이 회개 때문인지 제사 때문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은 둘 다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럼, 무엇이 먼저인가? 사무엘하 24장을 보면, 회개가 먼저이고 제사가 나중이다. 그럼 만약 둘 중의 하나만 행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말해, 만약에 회개는 했는데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면 그래도 재앙이 그쳤을까? 반대로 만약에 제사는 드렸는데 회개는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대한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제사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회개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세례를 받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죄사함을 받는 것이 먼저인가 하는 것과 비슷하다.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가 세례를 받은 것이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죄사함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 사람이 지은 죄는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는가?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제사만 드리면 어떻게 될까?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에,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서 죄를 용서받게 되는지부터 살펴보자.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그 죄를 깨달은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의 신분에 맞는 속죄제물을 하나님께서 바쳐서서 제사드림으로 죄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레4장).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 백성의 허물을 용서받기 위해서는 1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이 집도하는 '대속죄일'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다(레16장).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죄를 지었을 때에는 개인적으로 속죄제사를 드리면 되었다. 그리고 1년에 한 차례,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대속죄일 제사에도 참여하였다. 그런데 어떤 약삭 빠른 사람은 이런 생각도 한다. 대속죄일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1년동안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려야하는 개인적인 속죄제사는 굳이 다 행할 필요가 없고, 오직 대속죄일 제사에만 잘 참석해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만약 개인적인 속죄제사는 드리지 않고, 민족 공동체가 한꺼번에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만 참여하면 그 사람이 지은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속죄일 제사 때에 용서받는 온 백성의 죄는 일반적인 죄가 아니라 '허물'의 죄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히9:7). 여기서 '허물'이랴는 것은 '에그노에마'라는 단어로서로, "무지해서 지은 죄, 몰라서 지은 죄"를 뜻한다. 그렇다. 어떤 사람이 대속죄일에 제사를 드릴 때에 자신이 지은 죄와 허물을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평소 때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개인적으로 제사를 드려왔던 자였는데도 불구하고 빠뜨리고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을 때에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가 바로 대속죄일 제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록 십자가에서 공개적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을지라도, 개인적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있는 자가 결국 나머지 죄들도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의 개인적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서 십자가 사건만을 믿는다고 하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죄가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5. 구약적인 복과 신약적인 복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복은 크게 보면 2가지다. 하나는 구약적인 복으로,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땅의 것으로 복을 받은 경우다. 대표적인 것은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다. 아브라함이 우상숭배를 끊고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회개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2가지 복을 약속하셨다.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고 하셨고,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즉 이 땅의 복으로서, 물질적으로 받는 축복과 자손번성으로 받는 축복이 구약의 2대축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는 신약적인 복도 있다. 그것은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며, 에베소서 1장에서 사도바울도 언급한 것이다. 이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서 저 셋째 하늘에 있는 천국에 들어가서 그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복이다. 그런데 이러한 복은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물질적인 축복이 아니다. 저 천국에 들어가서 영이 받게 될 축복인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도 영적인 축복을 받지 못했는가? 그건 아니다. 실제 천국에 들어가보면 24장로들 중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과 유다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구약의 백성들도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찬가지로 신약의 복에는 저 천국에 들어가서 그의 나라를 기업으로 차지하는 영적인 복 뿐만 아니라 땅의 기름진 복도 함께 들어있는 것이다. 즉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살고, 물질도 풍성해지고, 자녀가 형통함을 얻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3가지 축복을 다 누리고 사는 사람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극소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의 핵심은 역시 그가 진정으로 회개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의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보면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과연 어떻게 영적인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갔는지를 일부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거꾸로 신약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어서 이 땅에서의 축복을 받아 재앙의 문제를 해결받았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2월 1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2) 다윗의 인구조사, 대체 무엇을 위함이었는가?(삼하24:1~25)_2022-02-10(목)

https://youtu.be/a97aVYAkbUM  [혹은 https://tv.naver.com/v/25059190 ]

 

1. 다윗이 말년에 시킨 인구조사는 잘못된 명령이었는가?

  다윗은 일생에 있어서 거의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두 번의 크나큰 범죄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삼하11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밧세바와의 간음사건과 그녀의 남편 우리아 살해사건이 그것이다. 다윗은 이 범죄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과오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왕의 재위 40년 중에서 30년동안 그 죄값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그에게 한 번 더 죄를 짓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그의 나이 65세 무렵쯤에 요압 장군에게 인구조사를 시킨 것이다(삼하24:1). 그렇다면 그가 인구조사를 시킨 것은 과연 범죄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민수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2번에 걸쳐 인구조사를 하게 한 일이 있다(민1:2~3, 26:2). 이때 첫 번째의 인구조사의 목적은 하나님께 바쳐진 레위인보다 장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여 속전을 바치게 함이었다(민3:45~48). 그리고 두 번째 인구조사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주되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주고 적은 자는 기업을 적게 주기 위함이었다(민26:53~54). 그러므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시킨 것인가?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시킨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라 할 수 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 다윗을 격동시키사(부추기어) 가서 ...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 그랬다. 분명 사무엘하 기자는 다윗에게 인구를 조사하게 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두번째는 그 이유가 조금 다르다. 역대상 21장의 평행본문을 보면, 여기서는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부추기어)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상21:1). 어떤 기록이 정확한 것인가? 그런데, 실제 인구조사를 마치고 나서 그 숫자를 보고를 받았을 때 다윗은 자신이 인구조사를 시킨 것이 큰 범죄라고 자책하였다(삼하24:10). 이는 결국 세번째로 다윗도 자기 나름대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이어서 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인구조사를 명령한 장본인은 다윗이지만 이 인구조사는 하나님과 사탄이 개입되어 있는 어떤 특별한 사항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결론적으로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게 최종적인 명령권자는 다윗이었다. 그러므로 다윗도 인구조사 보고 후 자책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기의 어린 아들인 솔로몬(당시 15세 정도)에게 나라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솔로몬은 한 번도 전쟁을 치러보지 않은 아들로서 공부만 했던 아들인지라, 나라의 국방은 튼튼한지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얼마나 방어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다윗더러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럼 그러한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사무엘하 24장의 기록을 보면 그 이유를 3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격점이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한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기 위함이었다(삼하24:1).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인가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징계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면 되었다. 굳이 다윗더러 인구를 조사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과연 다윗이 얼마나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신 후에 나타난 다윗의 반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때였다. 전염병으로 하루만에 7만명이라는 백성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범죄하였고 내가 악을 행하였는데, 주께서는 왜 이 양무리를 치시나이까? 청하건데 차라리 당신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21:17)"라고 청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자신의 허물과 잘못으로 보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주님이 이번 일로 징계하셔야 한다면  죄없는 백성을 치실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과 그의 후손에게 벌을 내리시라고 청한 것이다. 이처럼 늘그막에 다윗은 작은 일에도 죄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자기목숨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한 궁극적인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킨 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장차 솔로몬이 세울 성전터를 다윗으로 하여금 미리 준비하게 하되 그 장소가 어딘지를 정확히 다윗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왜냐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다윗은 장차 솔로몬이 성전을 세울 장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예루살렘을 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서 있었고,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삼하24:18). 고로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성전터를 아라우나로부터 구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범죄로 인해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갈 때에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인하여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입하여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거기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전염병을 그치셨기 때문이다(삼하24:25). 즉 재앙을 끝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5. 다윗의 인구조사와 그가 받은 징계 그리고 그가 드린 제사가 말해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누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죄는 반드시 형벌을 가져온다라는 것이다. 그 형벌은 죄를 지은 당사자인 본인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수 있고, 혹 범죄자가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일 경우에는 한 나라와 민족이 그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회개는 용서를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형벌을 면제받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다윗은 자신이 잘못했노라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했다(대상21:16). 그러나 셋째, 다윗의 인구조사를 통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의 제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모든의 형벌이 장차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돌아가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갈3:13). 그렇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은 실로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일어난 후에 범죄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의 해결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해결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내려오는 그 결과들 곧 귀신들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할 때에 비로소 우리 몸 밖으로 내보내거나 우리 주변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1:9). 

 

2022년 02월 10일(목)

정병진목사

 

다윗은 진정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형벌을 일생동안 받아야 했는가? 그럼 회개해도 다 소용이 없다는 말인가?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성경에 있다. 히스기야왕은 죽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회개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내리려고 하던 징계를 멈추셨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우리는 군소리 말고 그분이 결정한 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인가? 여기에는 회개와 형벌에 관한 신구약 시대의 놀라운 경륜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2022-01-23(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사무엘하강해(17) 왜 다윗은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앙을 받은 것일까?(삼하12:7~1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qBqddDQzTE [혹은 https://tv.naver.com/v/24774077 ]

 

1. 들어가며

  신구약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갔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갔을까? 성경의 기록과 실제 천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간증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성경에 기록된 신앙의 위인들은 대부분은 다 천국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구약의 사람들로는 아담, 아벨, 에녹, 노아가 있고, 아브라함과 욥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있으며,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고, 엘리야와 엘리사, 이사야와 에스겔, 다니엘과 예레미야 선지자 등이 있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로는 예수님의 직제자였던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 등이 있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 그리고 사도 바울과 그의 선교팀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 뿐만 아니라 회개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갔다고 성경에 기록된 인물을 꼽으라면 욥과 다윗을 들 수 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위인들은 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지만 공개적으로 자신이 회개함으로 천국에 들어갔다고 하는 분은 욥과 다윗 그리고 베드로 등이 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오늘 우리가 다룰 인물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칭함을 받았던 '다윗'이다. 그런데 다윗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철저히 회개한 사람에 속한다. 그렇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 재앙(징계)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재앙을 일평생에 걸쳐서 받아야 했다. 왜 그랬을까? 그의 회개가 소용이 없었던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오늘날 열심히 회개하여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나려고 회개하고 있는 것은 다 헛된 일이라는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은 회개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재앙을 받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상황은 어떤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회개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2. 다윗, 그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어떤 죄를 지었는가?

  다윗, 그는 B.C.1040년에 태어나 목동으로 지내고 있다가, 15살에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드디어 30세에 유다 지파의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7년 6개월 뒤에는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리고 70세에 하늘나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는 약 40년간 왕으로 통치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일반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내 종'이라고 불렸으며, 구약시대이지만 성령을 받은 몇 안 되는 소수의 은혜받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흠도 티도 없을 것 같은 다윗이었지만 그도 역시 중한 죄를 범하고 말았으니, 그만 파렴치한 '간음죄'와 잔인한 '살인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일은 그가 왕위에 오른지 15년~20년 사이에 일어났다. 유다 지파의 왕이 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천도하고 법궤를 안치한 후, 주변 나라들을 정복해 가고 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충성스런 부하 장수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았으며 그리고 그녀가 임신하자 그 죄를 은닉하고자 부하 장수를 죽이도록 시켰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게 그 일을 은밀하게 진행했지만,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음을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3. 범죄한 다윗은 진정 회개한 사람이었는가?

  그러던 어느 날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이 찾아왔다. 그러고는 하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 그것은 한 도시에 살고 있는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였다(삼하12:1~6).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가난한 자였다. 부자는 자기 집에 양떼와 소떼가 아주 많았으나 가난한 자는 가까스로 어린 암양 새끼 한 마리를 사서 집에서 기르고 있었다. 그러니 애지중지 딸처럼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행인이 부잣집에 찾아왔는데 부자가 그만 자기의 짐승은 아끼고 가난한 자의 암양 새끼를 강제로 빼앗아 잡아 행인을 대접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윗은 그런 자는 반드시 죽여야 하고 그 죄값으로 4배를 갚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그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였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12:13)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때 다윗은 진정 회개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회개하는 시늉만 한 것일까? 사무엘하의 기록만으로는 그가 진정 회개했는지 그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긴 시편의 기록들을 보면, 그때 그가 어떠했었는지를 잘 나온다. 그러한 기록들에는 시편 51편, 32편, 40편, 6편 등이 있다. 이 시편의 글들을 보면 그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확실하게 그때 인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시51:3), 그가 칼로 우리아장수를 죽였던 살인자였음도 알 수 있다(시51:14). 그리고 그가 그 일로 인하여 회개를 시작했을 때에, 회개 중에 자신의 죄가 머리털보다도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눈물이 주야로 음식이 되었고 그 눈이 자신의 침상과 요를 적셨다고 한다(시6:6). 그러니 그의 회개가 진실한 회개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다윗이 정말 진실한 회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받게 되었는가?

  만약 우리가 사무엘하를 읽어 본다면 우리는 다윗이 분명 회개를 하였고 죄용서를 받았으나 그 벌은 면제받지 못한 채 일평생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회개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회개했을 때에는 죄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죄에 대한 처벌까지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런데 다윗도 우리들처럼 분명 진실한 회개를 하였는데 그는 왜 죄용서만 받았을 뿐 죄에 대한 형벌은 면제받지 못한 것인가?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몇 가지 가설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 다윗이 회개를 하긴 했으나 형식적인 회개만 하였을 뿐 참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헝벌을 내렸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다윗의 회개는 진정성이 있는 회개였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둘째, 그가 회개를 하기는 했지만 그가 죄를 지은 즉시 회개한 것이 아니라 무려 10개월 동안 죄를 숨기고 있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비로소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을 했을 때에 억지로 회개한 것이기 때문에 그가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를 징계하기로 결정해 놓은 상태였기에 그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견해이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 보이나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셋째, 그가 지은 죄는 일반 사람들이 지은 죄가 아니라 한 국가의 지도자가 저지른 범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죄값을 무겁게 물렸다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칭하였고, 내 종이라고 하였으며, 성령까지 주신 자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다윗도 하나님을 매우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여삐 여기시고, 한낱 목동이었던 다윗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며, 사울의 나라를 그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부하 장수의 아내가 탐이 나서 그녀와 간음을 행하였고, 또한 그녀의 남편을 살해했으니,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죄값을 엄히 물으셨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모세도 단 한 번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죄값을 엄히 물으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이 다윗이 진정으로 회개하고도 그 죄에 따른 형벌을 받게 되었던 진정한 이유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5. 다윗이 회개하고도 중한 처벌을 피하지 못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이 자신이 지은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도 엄청난 처벌을 받은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형벌을 내리시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다윗의 시대와 지금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의 시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경륜적인 차이)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왜 형벌을 내리시는지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은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 있는지를 우리는 율법 말씀을 공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상 숭배를 한 자는 3~4대까지 죄값을 물린다고 하셨다(출20:5). 그리고 이웃의 아내와 간음을 행한 자와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레20:10, 24:17). 그러므로 다윗이 지은 간음죄와 살인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임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다윗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들려주실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6~7)" 그러므로 범죄한 다윗이 형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이러한 죄를 지은 후에 진실로 회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회개하는 자에게도 이렇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인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해 보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그렇다.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하나님은 깨끗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말씀도 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55:7)"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악하고 불의한 자라 할지라도 여호와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고 그를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내리실 수도 있고 내리지 않고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징계를 내리셨다가 철회하신 경우도 있었고, 또한 내리려고 생각하셨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때도 있었다. 히스기야왕은 전자의 경우이고, 요나서에 나오는 니느웨성의 회개는 후자의 경우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었고 그 죄값을 계속해서 물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값을 엄하게 물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지만, 일평생을 두고 죄값을 엄하게 치러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구약시대에는 회개를 한 자가 징계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6.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회개하면 우리도 다윗처럼 형벌을 받게 되는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경우다. 과연 우리들은 어떠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도 다윗처럼 진실로 회개를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의중에 따라 처벌을 받기도 하고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다윗의 경우처럼 형벌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륜적으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2가지 측면에서 다윗과는 다른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다윗 시대는 아직 예수께서 인류의 죄값과 형벌을 대신 치르기 전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시대는 이미 2천년 전에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의 죄값을 처리하려고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채찍에 맞으시고 못 먹고 못 입으셨으며 수치와 멸시와 천대를 대신 받으신 이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시대에는 회개한 자라도 그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처우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분의 의중이 중요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죄를 엄히 물으시려고 결정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탐욕을 남용하여 남의 가정을 파탄내었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지도자에게는 죄값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를 알려 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시대는 다르다. 예수께서 이미 오셔서 인류의 죄값도 처리하셨고 우리가 받을 형벌까지도 대신 받으신 후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 이미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을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 내 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를 우리가 대신 회개함으로 우리 속에 들어와 있거나(10%) 아니면 우리 밖에서 진치고 있는 악한 영들(세대의 영들)(90%)을 우리가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우리가 자백함으로 회개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 말씀이다(요일1:9).

  그리고 둘째는,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의 천사를 시켜서 벌을 주시던 시대였다는 것이다(삼하12:13).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으며,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들을 빼앗을 것이고 그들을 네 이웃들에게 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이 모든 재앙들을 구약시대에는 다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 그렇게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한 자라도 재앙을 더 받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덜 받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온갖 저주를 다 담당하신 이후에는 우리가 귀신들과 또한 그들이 가져다 준 저주를 처리하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적어도 신약시대부터는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귀신들이 사람들의 몸속에 들어와서 온갖 재앙을 일으키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로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회개라는 것은 놀라운 축복의 도구가 아닐 수가 없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즉시 귀신을 내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며, 귀신의 세력을 해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막16:17~18). 그러므로 오늘날에는 진실로 회개하고 있는 자에게는 결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형벌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회개를 하지 못해서 귀신의 공격을 받거나 귀신이 주는 재앙을 받고 있을 뿐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실로 지금의 시대는 복된 시대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늘에서는 우리의 죄들을 용서받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는 귀신들과 저주들을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이 살던 시대는 지금의 우리의 시대와 경륜적으로 달랐다. 그때에는 아직 예수께서 형벌을 대신 받기 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시켜 형벌을 내리던 시기였다(삼하12:13).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예수께서 이미 우리의 저주를 다 담당하신 뒤이고 우리가 회개하기만 하면 귀신들을 내보내고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내가 받고 있는 저주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거의가 다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귀신들이 공격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재앙들을 두고 하나님을 향하여 삿대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대신 받게 하신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알라. 우리는 다만 내가 죄를 지었을 때에 내 몸에 침투해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가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서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들로 인해 악한 영들이 내려와 있더라도, 우리가 조상들이 지은 죄를 대신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고 그들의 세력을 와해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형통의 축복은 절로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내 집안에는 왜 형통의 축복이 오지 않느냐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는 말을 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조상들이 그만큼 죄를 많이 지었기에 응당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요, 우리가 회개하지 못해서 귀신들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의 게으름을 회개하고 우리의 죄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는 악한 영들을 와해시키기 위해 회개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할수록 우리는 온갖 저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다 누리게 될 것이다.

 

2022년 01월 23일(주일)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