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3) 예수께서는 사람 다윗의 자손이자 뿌리이시다(계22:16)_2022-05-26(목)

https://youtu.be/jmm15VLm684  [혹은 https://tv.naver.com/v/27080715 ]

 

1.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 22:16에서 당신을 누구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 22:16에서 당신 자신을 3가지로 말씀하셨다. 첫째는 "나 예수"라고 하셨다. 이는 구약 시대로 치자면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형태를 그대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표현은 단 한 번 여기에서만 사용하신다. 그분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아들로서 활동하시기 전까지는 "나 예수"라는 표현을 쓰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한 분 하나님이신 그분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 예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셋째,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광명한(광채나는, 빛나는) 새벽별(새벽의 별, 샛별)이다"라고 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어둠을 끝내고 광명한 아침을 여는 지도자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새벽별은 어둔 하늘을 밝히는 가장 밝은 별이면서 동시에 어둠을 끝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어둠의 역사를 끝내고 밝은 빛의 역사를 시작하시는 프로토토코스(으뜸, 원형, 최고, 시작, 먼저이신 이)이신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말씀하는 표현을 가리켜 우리는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의 자기 선언"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이시기에 이 땅에 계실 때에 당신 자신을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8:24,28,58). 그런데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에 "나는 ~이다"라는 표현 중간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으셔서 당신 자신이 누구신지를 말씀하시기도 하셨다. 요한복음에 보면 그러한 표현은 총 7가지가 나온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51)",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나는 포도나무다(요15:1,5)".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당신 자신을 소개하셨다. 그러한 표현으로는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계1:17,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계21:6, 22:13)",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계21:6, 22:13)"이 있으며, 또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다(계22:16)", "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중에 예수께서는 인간의 이름을 사용하여 당신 자신을 표현하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실 때에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다"라고 선언하셨는데 이 말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라고 하신 것은 사실 2가지 표현이다. 하나는 예수께서 다윗의 뿌리이시다는 표현이며, 또 하나는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시다는 표현이다. 예수께서 다윗의 뿌리이시다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다윗의 근원이시다는 뜻이다. 이는 예수께서 다윗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을 쓰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혈통적으로 볼 때에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롬1:3).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예수님을 부르는 호칭으로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이 상당히 많이 쓰였다. 두 맹인이 두 번씩이나 그렇게 불렀으며(마9:27, 20:30), 자기 딸이 귀신들렸던 가나안 여인도 그렇게 불렀다(마15:22). 그리고 또한 군중들이 예수께서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부른 찬송 속에도 역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15)"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한 메시야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4.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다"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예수께는 그 어디에서도 당신 자신을 사람의 이름을 가져다가 쓰신 적이 없으셨다. 오직 단 한 사람만 들어서 그렇게 표현하였으니, 그것은 바로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다"라고 표현하신 것이다(계5:5, 23:16). 이것은 주님께서 다윗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실 예수께서는 다윗의 뿌리(근원)였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에게 다윗은 그토록 자랑스러운 존재였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럼, 왜 다윗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자랑스러운 존재가 된 것인가? 그것은 다윗의 일생이 그와 같은 사실을 잘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행13:22).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그에게 자신의 모든 뜻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의 중심에는 항상 하나님만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째로 그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하나님을 최고로 모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람(예,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으며, 또한 자신은 향기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법궤는 펄럭이는 휘장 속에 그냥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으며 자신이 혹시 잘못한 것은 두 번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종을 자신의 손으로 해하지 않았으며, 자기가 잘못했던 것은 정말 가슴에 새겨 두었다. 그래서 다윗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넷째로, 주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다 배설물처럼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자, 기꺼이 왕위를 내려놓고 피난길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복을 주셨으니 가장 큰 복은 그에게 왕직을 주신 것이었다. 그것도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자 그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왕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그에게는 하늘의 비밀들도 알려 주셨다. 다윗이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하자 그가 피를 많이 흘렸기에 안된다고 하셨지만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아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늘의 성전을 보여 주시고 성전 설계도까지 그리게 하셨다. 그리고 천국의 모형으로 예루살렘 성의 이름을 고스란히 사용하여 천국성의 이름도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명명하셨다. 그리고 천국에서 예배드리는 순서(반차)가 24반차가 있다는 것을 다윗에게 보여 주셨다. 그렇다. 천국에서는 24장로들이 각 지파의 대제사장격이 되어서 각 24반차를 따라 올라와서 예배를 인도한다. 그런데 이것을 맨 처음에 본 자가 바로 다윗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실 때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그는 사건 1천 년 전에 미리 볼 수가 있었다(시110:1).

 

5.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다윗의 자손이자 뿌리"라고 표현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자 뿌리"라고 말씀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5:5에 나오는 표현에 들어 있다. 그때 24장로들 중 한 명이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가리켜 "유다 지파의 사자"이자 "다윗의 뿌리"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님이 바로 유다 지파의 왕이시다는 것과 예수님 자신이 다윗을 창조한 창조주이신 것을 동시에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무명의 이새의 아들 다윗이 왕이 된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역시 천국에서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으신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보면, 예수님의 조상들 곧 41명이 나오는데, 그중에 유일하게 한 사람 곧 '다윗'이라는 사람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놓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마1:6). 고로 우리들도 이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다윗은 그의 아버지인 이새에게서 뻗어 나온 줄기(호테르)였다(사11:1). 하지만 예수님은 이새의 뿌리에서 올라온 가지(네째르)이시다. 즉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직접 올라온 새 순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거가 비록 무명이었고 보잘것 없었어도 다윗처럼 살면 우리도 역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영예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한번 그렇게 살아 보자. 그래서 천국에서 다윗처럼 왕 노릇하는 성도가 되어 보자. 왜냐하면 믿는 자에게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로 형상화된 다윗의 열쇠가 쥐어진 상태에 있으니까 말이다(계3:7). 그러면 우리도 역시 그 열쇠를 사용하여 천국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2022년 05월 26일(목)

정병진목사

 

 

메시야가 사람으로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분이 사람으로서 모범을 보이시려고 오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가? 메시야가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진짜 무엇이인가? 그분은 병든 자들을 치료해주시려고 오신 것인가? 아니면 귀신을 쫓아주려고 오신 것인가? 물론 그분의 오심은 이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에서 사람이 되셔야 했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2019-12-20(금) 금요기도회
제목: 메시야 탄생의 목적은 무엇이 핵심인가?(눅2:8~14)
https://youtu.be/HtTBHV5eFTk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는가? 병들이 신음하던 이들을 고쳐주려고 오셨는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려고 오셨는가? 기득권세력을 책망하시려고 오셨는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다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고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과연 무엇 때문에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탄생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구약성경에서 성탄절을 말하려 할 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신구약성경에서 성탄절날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누구인가? 엘리사벳, 사가랴, 요셉, 마리아, 동방박사, 목자들... 저 나름대로 중요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예수탄생 당시 실제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성탄절 때에 단골로 나오는 구약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다윗"이다. 그는 마태복음 1장에 있는 "메시야의 족보"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는데, 그의 이름이 무려 5번이나 나온다. 그리고 메시야의 출생장소와 메시야의 혈통과 메시야의 신분에 대해 언급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도 역시 다윗이다. 왜냐하면 메시야의 출생장소에 예언된 장소(미5:2)는 베들레헴인데,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기 때문이다(눅2:11). 그러므로 천사는 목자들에게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2:11)"고 말했다. 그리고 다윗은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눅2:4) 호적하러 갔다고 거기서 예수님을 낳았다. 그리고 요셉에게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소식을 전달할 때에도, "다윗의 자손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마1:20)"고 말했었다. 그렇다.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예언 가운데 메시야의 신분은 다윗과 같은 왕의 신분이 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사9:6, 겔34:23~24, 37:24~25, 렘23:5). 그러므로 가브리엘 천사도 마리아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놓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의 나라 무궁하리라(눅1:31~33)"라고 했다.

 

3.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함이다(마1:21). 그래서 그것은 궁극적으로 병을 고쳐주기 위함도 아니며, 그것은 귀신을 쫓아주기 위함도 아니며, 그것은 기득권세력들인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책망하기 위함도 아니었다. 물론도 그러한 이유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장 궁극적인 메시야 오심의 목적은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현몽하여서 태어날 아기에 대해 소개해 줄 때에도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0)"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할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그분이 흠없는 속죄제물로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속량하기 위함이었다(히9:22). 그 이유 말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할 이유는 다른 필연적인 이유는 아마 없을 것이다.

 

4.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는 "속죄"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국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세시대에 교회가 속죄부를 팔아서 사람의 죄를 꼭 용서해줄 수 있는 것처럼 속였듯이,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예수만 믿으면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가 모든 죄로부터 자기를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예수께서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피는 죄많은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준비시켜놓은 것이지 그것 자체가 믿는 자를 자동적으로 구원시켜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죄용서를 받으려면, 예수께서 흘리신 그 피가 인류의 속죄를 위함이었음을 믿고,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에 비로소 죄용서를 받는 것이다(요일1:9). 그래야 죽을 때에 자신의 영혼이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것이 사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도 볼 수 없고, 천사나 귀신들도 볼 수 없다. 그러나 몇몇 사람 중에는 영적인 세계가 일시적으로 아니면 조금이나마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보편적인 용례가 아니다. 이 세상의 3차원의 세계에서 4차원의 세계를 그냥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죽을 때에 영안이 열려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이 다음의 영적 세계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다고 설명해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자신이 고백한 죄들이 용서함받는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는 자는 자신이 죽을 때에 자신의 모든 죄도 그때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죄용서를 받는 것이나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육안으로 결코 볼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두자. 그것은 비로소 우리가 죽었을 때에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서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5. 나오며

  우리는 오늘날 예수께서 하나님이셨지만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분이 자신이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스스로 주장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되면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350가지의 예언을 예수께서 오셔서 직접 다 이루셨기에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확실하지만, 만약 메시야가 장차 이러이러한 일을 할 것이라고 예언된 350가지의 예언의 말씀을 예수께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을 나의 구원자이자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이라고 받아들일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수많은 책의 기록들과 고고학적인 발견들과 역사적인 증거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오셔서 구약의 350가지의 예언을 성취하신 분인 것을 믿는다. 그분을 나의 구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또한 그분이 이미 발성해놓으신 말씀 가운데 아직까지 성취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의심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이전까지의 그분의 삶이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20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