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1) 다윗의 마지막 말 및 참된 신정국가의 조건(삼하23:1~39)_2022-02-09(수)

https://youtu.be/vHngFj3mNHA  

 

1. 사무엘하 23장에 나오는 다윗의 시(다윗의 마지말 말)은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무엘하에 나오는 다윗의 시는 총 3개다. 하나는 1장에 나오는 "활의 노래"(삼하1:19~27)이고, 22장에 나오는 "다윗의 승전가"(삼하22:2~51)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무엘하 23장의 한 편의 시(삼하23:1~7)가 있다. 이중에서 사무엘하 22장의 시는 다윗이 자신의 왕정 초기에 기록한 것으로 추측되며,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사무엘하 23장의 시는 그의 말년에 기록한 시로 보인다. 그러므로 시마다 각기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삼하23장의 시에는 다윗의 신앙과 인생경륜이 오롯이 배어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2. 사무엘하 23장의 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무엘하 23장에 있는 다윗의 시는 영성이 깊어진 다윗의 면모가 오롯이 나온다. 그만큼 깊이와 무게가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가 이제 여호와의 영에 깊이 감동된 상태에서 이 시를 기록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삼하23:2). 그리고 다윗은 이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이 누군지를 1절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자신을 이새의 아들이었다가 야곱의 하나님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높이 세워진 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을 높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말한다(삼하23:1). 그런데 '이새의 아들'이라고 표현을 보자. 이 표현은 사실 사울왕이나 세바처럼 다윗을 대적했거나 미워했던 자들이 다윗을 경멸할 때에 주로 사용했던 표현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이 용어를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 이는 그가 사실 별 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서 목동으로 자라났던 비천한 신분이었다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 다윗은 원래 자신이 그러한 존재였다는 것을 항상 자기의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의 지도자가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한다. 참으로 겸손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3. 사무엘하 23장의 시는 어떤 내용인가?

  다윗은 그의 인생의 말년에 이 시를 마지막으로 기록하였다. 이 시는 시편에는 나오지 않고 여기에서만 나오는데, 이 시는 누가 신정왕국의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자가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지를 말하고 시다. 그리고 이어서 악한 자의 특징과 그의 결말까지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다윗은 장차 메시야 왕국을 예표하는 신정왕국을 이루는 지도자는 2가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는 사람은 공의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삼하23:3).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경외해야 한다고 했다(삼하23:3). 왜냐하면 공의가 빠진 지도자는 훌륭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지도자는 하나님께서도 그를 높여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복이 그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했다(삼하23:4~5). 첫째로, 그러한 자에게는 돋는 해의 아침 빛같이 그에게 내려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로, 비 내린 후 땅에서 돋는 새 풀처럼 청청할 것이라고 했으며, 셋째로, 그러한 자가 사는 집은 모든 것이 잘 갖추어진 집이 될 것이며 견고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말 영안을 열어서 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보편적으로 3가지가 보인다. 첫째로, 그의 집에 빛이 비춰지고 있고, 둘째로, 비나 물이 잔잔한 호수나 바닷가 옆에 그 집이 지어져 있으며, 셋째로, 그의 집이 초가집이 아니라 멋진 인테리어로 장식된 대궐 같은 집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다윗처럼 이 정도의 영성을 갖추려면 사실 매우 많은 회개가 필요하며, 주님의 수많은 다루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말년에 다윗은 이미 이러한 영성을 갖추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악한 지도자는 내버려지는 가시나무 같아서 주변 사람이 그를 만질 수가 없는데,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도 곧장 불살라 없애버리실 것이라고 했다(삼하23:6~7). 그렇다면 나는 과연 주님께서 인정해주시는 영광스러운 참된 지도자인가 아니면 내버려지고 불태워질 악한 지도자의 모습인가? 악한 지도자는 늘 남을 찌르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이 잘 붙지를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4. 다윗에게는 어떤 용사들이 있어서 그를 도왔는가?

  사무엘하 기자는 이제 사무엘하를 마감하면서, 다윗의 곁에서 다윗을 도운 37명의 장수들의 명단을 이 책에 기록한다. 아마도 다윗을 도와 신정국가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훗날 후배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의도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다윗을 도왔던 자들의 이름을 전부다 기록하려면 상당하겠지만 사무엘하 기자는 그중에 대표자들 37명의 이름을 소개한다. 그들은 다윗과 그의 나라를 지킨 첫 3인 용사들 그리고 둘째 3인 용사들 그리고 30명의 용사들이다. 그런데 이들을 다 합치면 총 36인이다. 그런데 37명이라고 말한다. 이는 앞의 36명에다가 이스라엘의 총 사령관인 요압을 합쳐서 37인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럼, 이들 중에서 다윗의 첫 3인 용사는 누구인가? 그들은 '요셉밧세벳'과 '엘르아살'과 '삼마'라고 나온다(삼하23:8~12). 그리고 둘째 3인 용사는 '아비새'와 '브나야'와 이름이 기재되지 않은 어떤 용사라고 나온다(삼하23:18~23). 그리고 마지막으로 30명의 용사들이 나오는데, 그 용사들의 명단에는 요압의 막내동생이었던 '아사헬'과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과 밧세바의 남편이었던 '우리아' 장수의 이름도 나온다(삼하23:24,34,39). 그러니까 이 명단은 다윗의 통치 시작 무렵의 다윗의 용사들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사울과 이스보셋의 군장인 아브넬에 의해 죽임당한 아사헬의 이름이 여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윗이 암몬자손의 손으로 죽였던 헷 사람 우리아 장수의 이름도 여기에 나오기 때문이다. 

 

5. 다윗의 용사들  중 둘째 삼인 용사들의 무용담이 여기에 기록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무엘하의 기록 중에서 감동적인 명장면 하나를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 중에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에 둘째의 세 용사들이 적진의 영채인 베들레헴에 쳐 들어가 물을 길어다가 다윗에게 바친 이야기다(삼하23:15~17). 그런데 이 이야기는 세 용사의 충성심도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세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길어온 그 물을 다윗이 마시지 않고 그 물을 오히려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장면을 볼 때에는 정말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된다. 목숨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의 모습도 아름답다고 하겠지만, 그 물을 받아든 다윗이 그 물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 장수들의 피값이 서려있는 물이라고 말하면, 자신이 어찌 그 물을 자신이 마실 수 있겠느냐고 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이때 다윗은 그 물은 오직 그 피값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다고 하면 그분께 부어드린다. 이런 부하와 이러한 주군이 있는 나라가 있다면 정말 가장 멋진 나라요 하나님께서도 복주시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나라의 지도자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만, 훌륭한 지도자가 있는 나라는 정말 훌륭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다윗의 37명의 용사들처럼 그 지도자를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는 신하가 없다면, 그 나라는 위대한 나라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룬 나라로서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2022년 02월 0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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