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32) 다윗의 인구조사, 대체 무엇을 위함이었는가?(삼하24:1~25)_2022-02-10(목)

https://youtu.be/a97aVYAkbUM  [혹은 https://tv.naver.com/v/25059190 ]

 

1. 다윗이 말년에 시킨 인구조사는 잘못된 명령이었는가?

  다윗은 일생에 있어서 거의 죄를 짓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게도 두 번의 크나큰 범죄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삼하11장에 나오는 사건으로 밧세바와의 간음사건과 그녀의 남편 우리아 살해사건이 그것이다. 다윗은 이 범죄로 인해 씻을 수 없는 과오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왕의 재위 40년 중에서 30년동안 그 죄값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그에게 한 번 더 죄를 짓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그의 나이 65세 무렵쯤에 요압 장군에게 인구조사를 시킨 것이다(삼하24:1). 그렇다면 그가 인구조사를 시킨 것은 과연 범죄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민수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2번에 걸쳐 인구조사를 하게 한 일이 있다(민1:2~3, 26:2). 이때 첫 번째의 인구조사의 목적은 하나님께 바쳐진 레위인보다 장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여 속전을 바치게 함이었다(민3:45~48). 그리고 두 번째 인구조사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나누어 주되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주고 적은 자는 기업을 적게 주기 위함이었다(민26:53~54). 그러므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시킨 것인가?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시킨 것인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라 할 수 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 다윗을 격동시키사(부추기어) 가서 ...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삼하24:1)" 그랬다. 분명 사무엘하 기자는 다윗에게 인구를 조사하게 하도록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두번째는 그 이유가 조금 다르다. 역대상 21장의 평행본문을 보면, 여기서는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부추기어)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상21:1). 어떤 기록이 정확한 것인가? 그런데, 실제 인구조사를 마치고 나서 그 숫자를 보고를 받았을 때 다윗은 자신이 인구조사를 시킨 것이 큰 범죄라고 자책하였다(삼하24:10). 이는 결국 세번째로 다윗도 자기 나름대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이어서 죄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인구조사를 명령한 장본인은 다윗이지만 이 인구조사는 하나님과 사탄이 개입되어 있는 어떤 특별한 사항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결론적으로 다윗이 인구를 조사하게 최종적인 명령권자는 다윗이었다. 그러므로 다윗도 인구조사 보고 후 자책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기의 어린 아들인 솔로몬(당시 15세 정도)에게 나라를 물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솔로몬은 한 번도 전쟁을 치러보지 않은 아들로서 공부만 했던 아들인지라, 나라의 국방은 튼튼한지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얼마나 방어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의 인구조사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서 다윗더러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럼 그러한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사무엘하 24장의 기록을 보면 그 이유를 3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그 중에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고 싶어하셨기 때문이다. 그때 그것은 하나님에게 합격점이었다. 사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도록 한 원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기 위함이었다(삼하24:1).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인가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징계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냥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시면 되었다. 굳이 다윗더러 인구를 조사하게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과연 다윗이 얼마나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자기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신 후에 나타난 다윗의 반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그때였다. 전염병으로 하루만에 7만명이라는 백성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하나님께 말씀드리기를 "보소서, 내가 범죄하였고 내가 악을 행하였는데, 주께서는 왜 이 양무리를 치시나이까? 청하건데 차라리 당신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21:17)"라고 청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죽음을 자신의 허물과 잘못으로 보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리고 주님이 이번 일로 징계하셔야 한다면  죄없는 백성을 치실 것이 아니라 다윗 자신과 그의 후손에게 벌을 내리시라고 청한 것이다. 이처럼 늘그막에 다윗은 작은 일에도 죄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자기목숨보다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하게 한 궁극적인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킨 보다 더 근본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장차 솔로몬이 세울 성전터를 다윗으로 하여금 미리 준비하게 하되 그 장소가 어딘지를 정확히 다윗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왜냐하면 이 사건을 계기로 다윗은 장차 솔로몬이 성전을 세울 장소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때 예루살렘을 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낸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서 있었고, 갓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으로 하여금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삼하24:18). 고로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성전터를 아라우나로부터 구입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범죄로 인해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갈 때에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인하여 끝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구입하여 거기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거기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도 전염병을 그치셨기 때문이다(삼하24:25). 즉 재앙을 끝내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5. 다윗의 인구조사와 그가 받은 징계 그리고 그가 드린 제사가 말해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누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죄는 반드시 형벌을 가져온다라는 것이다. 그 형벌은 죄를 지은 당사자인 본인과 그의 후손들에게 주어질 수 있고, 혹 범죄자가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일 경우에는 한 나라와 민족이 그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회개는 용서를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형벌을 면제받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다윗은 자신이 잘못했노라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엎드려 회개했다(대상21:16). 그러나 셋째, 다윗의 인구조사를 통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의 제사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모든의 형벌이 장차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돌아가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갈3:13). 그렇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은 실로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일어난 후에 범죄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의 해결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해결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내려오는 그 결과들 곧 귀신들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자백할 때에 비로소 우리 몸 밖으로 내보내거나 우리 주변에서 떠나게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1:9). 

 

2022년 02월 10일(목)

정병진목사

 

다윗의 범죄는 죽어 마땅한 범죄였다. 그는 십계명 중에서 3가지 계명을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당장 죽지도 않았고 그의 왕위를 빼앗기도 않았다. 그런데 선왕 사울은 결국 비참하게 죽어야 했고 그의 왕위도 빼앗기도 말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편애하시는 분이신가? 어찌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분이라면 누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시는 법칙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 말씀이다.

 

2022-01-21(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무엘하강해(16) 하나님께서 범죄한 다윗을 죽이지 않은 3가지 이유(삼하12: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r94sd8P0ak

 

1. 들어가며

  여호와의 이상적인 종이었던 다윗도 사람이었다. 그도 역시 범죄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죄를 짓고도 뻔뻔스럽게 지냈다. 남의 유부녀와 간음을 행하고 범죄를 은닉하려고 사람을 죽이게도 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정면으로 어기는 파렴치한 행위이자 중대한 범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선왕 사울에게서처럼 그에게서 왕위를 빼앗지도 않았고 그를 죽이지도 않았다. 사실 다윗의 범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고 4배의 변상을 해 주어야 할 중대한 범죄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는 그러한 처벌을 무겁게 물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께서는 편애하시는 분인가? 선왕 사울은 미워하고 다윗은 사랑한 것인가? 언뜻 보기에도 다윗의 범죄에 대한 처벌을 볼 때에, 다윗에 대한 어떤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다윗이 중대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지 않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다윗이 무슨 죄를 범한 것인가?

  아무리 하나님께서 인정한 선한 종이라 할지라도 온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예수님 이외에 모든 인간은 자기 안에 이미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전혀 안 짓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죄의 경중에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윗은 중대한 죄를 지었다. 십계명 중에서 3가지를 범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제7계명을 어겼다. 간음죄를 지었던 것이다. 둘째는 살인죄를 지었다. 그것도 죄질이 나쁜 살인죄를 지었다. 왜냐하면 자기가 직접 죽이지 않고 남을 시켜서 죽게 했기 때문이다. 이는 제6계명을 어긴 것이다. 셋째는 탐욕죄를 지었다. 남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는 제10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들에 대한 처벌은 무엇인가? 간음죄와 살인죄는 사실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죄다(20:10, 레24:17). 그리고 남의 아내를 빼앗은 죄의 경우도 죄가 무겁다. 그것이 소의 경우라면 다섯 배로 갚아야 하고 양의 경우라면 네 배를 갚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출22:1). 그러니 이것에 상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윗의 범죄는 사형만이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윗은 죽지 않았다. 왕위를 빼앗기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3. 다윗의 범죄가 가르쳐 주는 영적인 사실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의 범죄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정리하면 그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받은 자로서 주께서 인정한 종이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범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다윗이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안정을 이루게 될 무렵, 다윗왕도 서서히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을 보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도 권력의 맛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를 남용하여 성착취를 시도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러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모든 사람은 이처럼 죄를 지을 수 있다. 넘어질 수 있으며, 양심이 마비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남자는 성적인 죄로부터 자유롭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돈과 권력과 여자를 정복할 수 있다면 그 종은 참된 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 모든 인간은 아담 이후 죄된 본성을 자기 안에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롬5:12).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은 다윗이 성령을 받은 자였는데도 불구하고 죄를 범했다는 사실이다(삼상16:13, 시51:11). 물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성령이 경륜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고,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도 내주하시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구약시대에도 여전히 성령이 내려오셔서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몇 사람이 되지 않는다. 다윗도 그러한 몇 안 되는 사람의 하나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범죄한 것이다. 십계명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죄를 자원하여 범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멸시하고) 나 보기에게(내 눈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헷 사람 우리아를 치되 암몬 자손의 칼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삼하12:9)"라고 말씀하시고 호통을 치셨다. 그것은 그를 왕으로 세워준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요 일어나서도 아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이러한 중대한 죄를 범함으로 그를 왕으로 세운 것을 기뻐하시고 그를 나단 선지자에게 '내 종'이라고 자랑하셨던 하나님의 명예는 대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4. 극악무도한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에게 사울왕처럼 왕위를 빼앗지도 아니하고 그를 죽이지도 아니한 것인가? 우리가 그 이유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은 결코 미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과 판단이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면 누가 그분을 신뢰하고 따라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판단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 절대 바뀔 수 없고 바뀌어서 안 되는 법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두 개의 법칙이 상충될 때에는 어떤 법이 우선하는지도 알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당신이 세워 놓으신 법칙과 어긋나게 판단하셔도 아니 되고 벗어나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 노릇하기가 그리 쉽지 않는 것이다). 왜 그런가? 만약 심판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상실된다면 하나님은 마귀도 여전히 심판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왜 사울왕과는 달리 다윗에게는 관대한 처벌을 내리셨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성경 전체를 가지고 그 이유를 3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크게 볼 수 있는 안목이요 둘째는 당장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이요, 셋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기인한 것이라고 하겠다. 

 

5. 다윗이 죽지 않았던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나마 그렇게 관대하게 처리하신 것은 그의 윗대 조상(선조들)이 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갈6:7). 다시 말해 선조들 중에 누군가가 자기의 후손을 위해 심어 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윗에게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일에는 심은 대로 거둔다(갈6:7)는 법칙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가 없으며, 콩 심은 데에 팥이 날 리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다윗을 이처럼 살게 했을까? 그것은 그의 선조 3대와 4대 조상이 심어 놓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의 목숨과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하나님을 위하여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그의 3대 조상이었던 증조 할아버지 보아스와 증조 할머니 룻이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는 고엘 제도를 더 넓게 적용하여 과부이자 홀로 남게 된 룻을 자기의 아내로 맞이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 말론의 땅을 사 주었다. 다시 말해 과분한 친절, 넘치는 친절을 그녀에게 베푼 것이다. 그리고 룻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찾아서 자기의 고국과 부모와 고향을 떠나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기꺼이 넘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그녀는 과부의 신세였고 더욱이 그녀가 봉양할 홀로된 시어머니(나오미)가 있었다. 그랬다. 그녀는 평생을 시어머니를 봉양하고자 고향 산천을 두고 남의 나라로 넘어온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보셨다. 또 하나는 다윗의 4대 조상이었던 고조 할아버지 살몬과 고조 할머니 라합이 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이 첫 번째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앞두고 있었을 때에 일어났다. 살몬이 가나안 땅의 두 명의 정탐꾼으로 발탁되어 파송된 것이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여리고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쫓김을 받고 있었다. 그때 기생 라합이 그 두 사람을 자기의 목숨을 걸고 지켜 준다. 그래서 결국 살몬은 기생 라합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였던 것이다. 그렇다. 조상들 중에 목숨을 걸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선택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마땅이 죽어야 할 사람이었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윗이 그동안 계속해서 신본적인 삶을 살았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고픈 마음을 가졌다는 것에서도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다윗이 직접 한 일이라기보다는, 다윗의 조상들이 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서 다윗에게 허락된 은혜라고 할 수 있다. 

 

6. 다윗이 죽지 않은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이어서 다윗이 죽지 않고 왕위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었던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를 알아보자. 

  둘째, 다윗이 죽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다윗을 죽이지도 않고 그로부터 왕위를 빼앗지 않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에게만 주어진 특별하고도 개인적인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고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비록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려서 그 일에 대한 허락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다윗은 그것을 진정 원하였고 또 원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이 진정한 것이었음은 그가 일평생을 성전을 짓기 위한 모든 준비를 다 해 주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개인적인 약속을 해 주었다. 그것은 "네 수한히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것이다"(삼하7:12)는 말씀이었고, 그의 후손까지도 계속해서 왕위가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삼하7:13).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 혹시 범죄할지라도 사울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것처럼 그들에게서 왕위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것이 있었다(삼하7:14~16). 이것은 다윗이 잘 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이 범죄했어도 그를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 다윗이 죽지 않은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 함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인생은 아담의 범죄와 함께 다 죄인이 되었다. 아담의 범죄에 씨의 형태로 다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아담의 범죄가 의도적인 범죄 곧 고의적인 범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아담의 범죄는 하와를 사랑해서 저지른 범죄였고, 또한 하와도 역시 뱀의 꾀임으로 죄를 범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일부러 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로 결정하신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을 상쇄시킬 자를 보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더 이상 자비가 베풀어질 수는 없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이 잘못했을 때에도 그를 급히 죽이시지는 아니하시고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다윗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어 놓고도 죄를 죄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리고 그의 죄를 책망하셨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그로 알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울왕과는 반응이 달랐다. 사울왕은 그렇게 알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윗은 정말 달랐다. 나단 선지자가 자기에게 어떤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주자 즉시 그것이 자기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자기가 탐욕 때문에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른 것을 인정하고 눈물로 통곡하면서 회개를 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7. 나오며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다. 넘어질 수 있으며 실수할 수 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인정해 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아브라함도 그랬다. 그도 모든 것을 버린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왔지만 그도 여전히 사람이었다.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였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채 아내의 말을 듣고 첩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얻으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례를 통해 그는 철저히 회개했다.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기쁘게 받으셨다. 이것은 다윗에게도 마찬가지다. 다윗도 아브라함도 약한 것이 있었다. 그는 성적인 측면에 있어서 약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탐욕의 죄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는 인간이면서 가장 탐낼 수 있는 왕권도 그렇게 탐하지 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버린 왕이었지만 끝내 사울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리지 않았다. 그리고 훗날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역이 있었을 때에도 그는 기꺼이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여자에게서만큼은 약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의 아내였으며 그것도 자신의 충성된 부하 장수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훔친 것이다. 그리고 부하 장수를 전장의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하였다. 참으로 비열하고도 나쁜 죄를 범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왕위도 빼앗기지 않았으며 죽임당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수한이 차서 죽었으며, 그의 왕위도 역시 여전히 보존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조상들이 자기의 후손을 위해 한 일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 잘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약속을 받아 놓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긍휼의 법칙 곧 회개할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지적하실 때에 금방 알아차리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사울왕은 그것을 알려 주었어도 그것에 무감각했다. 알려 주었어도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과연 나의 후손을 위해 무엇을 심고 있는지를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에게 회개하라고 사인을 보내고 있는지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징계를 받아도 긍휼이 있는 징계를 받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2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5) 여호와의 이상적인 종이었던 다윗이 저지른 엄청난 범죄(삼하11:1~27)_2022-01-21(금)

https://youtu.be/QvK_VD2UWDs [혹은 https://tv.naver.com/v/24773781 ]

 

1. 다윗의 평생에 있었던 가장 어두운 사건이자 그의 인생에서 최대의 오점을 남긴 사건은 무엇이었는가?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의 성품은 온화했고 성실했으며, 권위를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할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신앙심은 더욱 뛰어났으니 그의 신앙심은 어릴 적부터 잘 갖추어진 채 있었다. 최소 그가 15세 이전에 목동으로 지낼 때에 불렀던 찬송들은 또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었는가? 그리고 그의 신앙은 그가 15세 되었을 때에도 이미 진가가 나타났다. 즉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과의 싸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었을 때에도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에 안치하는 일을 했으며, 전쟁하면서 늘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둔 하나님의 법궤가 마음에 걸리자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자 그러한 마음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전달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깊은 감동을 느끼셨다. 그리하여 그에게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위대한 언약을 해 주었으니, 이름하여 다윗 언약(삼하7:8~16)이다. 그리고 그는 은혜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자가 아니라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윗 자신을 위험한 현장으로부터 빼내어 살려 준 친구 요나단의 우정도 잊지 않았고 그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신의 아들이자 왕자처럼 살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던 그였지만 그만 커다란 실수이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부하 장수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을 일으키고 곧 임신이 되자 그것을 무마시키기 위해 자신의 부하 장수 우리야를 죽여 없애도록 요압장군에게 시켰던 것이다. 

 

2. 다윗이 저질렀던 2가지 중대 범죄는 율법에 따르면 어떤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가?

  한 마디로 다윗은 2가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나는 밧세바와 간음죄를 저지른 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야 장수를 죽인 것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저지른 죄는 하나는 '간통죄'요 또 하나는 '살인 교사죄'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에 따르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는 어떻게 처리하라고 되어 있는가? 첫째, 간음죄(간통죄)는 간부와 음부 둘 다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레20:10)"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살인죄(살인 교사죄) 역시 살인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되어 있다. "만일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레24:17)" 고의로 살인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살인을 당한 형제는 살인자를 죽일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다윗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살해를 교사했으니 다윗은 죽어 마땅한 죄를 범한 것이다. 그것도 2가지 죄를 한꺼번에 범했으니 말이다. 

 

3. 다윗은 왜 이토록 악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렇게 선하고 온화하고 정직하며 바르게 살았던 다윗이 왜 이토록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일까? 물론 거대한 안목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이 사건은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직접적인 요인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근 10년 동안 계속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다 보니 이제는 그것을 누릴 때가 되었다고 자만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30세에 왕이 되어 숱한 전쟁을 치렀으며 그리고 모두 승리하였다. 그리고 부하 장수의 권유로 그랬는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부하 장수들만 전쟁터에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때 다윗은 자신은 이제 이만한 삶을 누리고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평안히 궁에 거하다가 이런 사건과 마주한 것이다.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 자신의 삶에 만족하거나 누리며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러다가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그의 영적인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피비린 내나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진정 부하와 나라를 사랑하는 왕이었다면 그는 그 시간에 제사를 드리든지 기도하고 있어야 옳다. 하지만 그는 낮잠을 잤고 밤에 일어나 옥상을 산책하다가 그만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에게 영적인 긴장이 풀린 시각에 그러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렇다. 사탄은 디윗이 영적인 해이에 빠져 있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셋째, 다윗에게 권력이 주어져서 수많은 부인들을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에 부인을 한 명 더 두는 것은 그리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니다. 아무리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할지라도 한 남자의 한 아내라는 결혼 원칙을 어기면 아니 되는 것이다. 다윗은 이 원칙을 어겼기에 왕자들의 난을 직접 보게 되는데, 그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최소 3명의 아들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4.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다윗의 간음죄와 살인죄 그리고 탐욕죄가 가르쳐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죄를 지을 수 있으며, 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고 말했다. 아무리 성화되고 위대한 성군으로 인정을 받은 자라도 얼마든지 다시 범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둘째, 통치 권력이 잘못 사용되었을 때에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 개인의 권력 남용이라고 할지라도 이 죄는 나라의 통치자가 지은 죄이기 때문에 다윗 자신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큰 고통을 겪게 된다. 셋째, 일단 한 번 범죄에 빠지게 되면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하고 한 번 마비된 양심은 더 큰 죄를 서슴없이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의 범죄는 비록 간음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의 범죄는 아주 잔인한 형태의 범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5. 다윗이 저질렀던 이 사건 뒤에는 무슨 일이 뒤따르게 되었는가?

  아무리 은밀히 죄를 범하였더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죄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배우겠지만 다윗의 이러한 중대한 범죄는 첫째, 엄청난 징계가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어떠한 중대한 죄를 범하였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회개'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1월 21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24)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05) 음란(음행)의 죄(삼하1:1~5)_2020-12-18(금)
https://youtu.be/mg8eFdMOklo  [혹은   https://tv.naver.com/v/17316903  ]

 

 

1. 음란(음행)의 죄는 어떤 죄인가요?

  음란 음행의 죄는 비정상적인 성적 문란 행위를 행한 죄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음란"이란 간음(합법적인 혼인 관계를 벗어나는 성관계)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음욕을 즐기는 모든 행위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음란행위에는 음행을 비롯하여, 음란물을 즐기는 것(글, 그림, 사진, 영화, 음란비디오, 인터넷, 핸드폰),변태적인 성욕(동성애, 수간, 강간, 근친상간, 외도)과 관음증, 음담패설, 마사지샵 이용, 방송을 빙자한 성욕채움, 뉴스검색, 음란한 장소(스텐드바, 술집, PC방) 출입하는 모든 음란적인 활동들을 포함합니다. 

 

2. 음란(음행)의 죄는 다른 자범죄들에 비해 더 심각한 것인가요?

  음행의 죄는 자기의 몸으로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모든 죄들은 다 몸 밖에 짓는 것이지만 음행의 죄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더 심각한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전6:18). 특히 음행의 죄는 몸으로 성적인 교제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영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속사람(영의 사람)이 동시에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더럽히고 영혼을 손상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에는 몸의 음행에 불과하지만 속으로는 속사람의 결합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음행을 통하여 속사람과 관련된 영(악령, 귀신)의 교류가 서로에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때에 상대방의 세력(악령, 귀신)이 내게 들어오고 내 세력이 상대방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전이든 결혼후이든 그 결과는 음행의 죄는 상당히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귀신이 이성(남자에게는 여자로, 여자에게는 남자)로 화하여 자기와 성적인 행위들을 행하는 것인데, 그러면 그 일로 인해 그 사람은 결국 말라서 죽게 됩니다. 그만큼 무서운 일이 바로 음행의 죄입니다. 

 

3. 음란(음행)의 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사람이 음행의 죄를 짓게 되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라고 언급했습니다. 음행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그것은 가정의 파괴를 가져오게 되고, 낙태 등의 살인행위를 부르게 되며, 음행의 죄로 임신한 자녀에게는 태아 때부터 악령으로부터 치명적인 공격을 받게 되어 영혼이 많이 손상된 채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자녀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힘들수 있습니다. 둘째, 좀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영혼을 함께 부정하게 만들어 성도로 하여금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을 지극히 방해받게 됩니다(고전6:15~16). 그러므로 한 번 음행의 죄를 허용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회개하지 못한 채 그 상태에 계속해서 머무를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셋째,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고전6:9~10, 계21:8). 이는 음행의 죄가 결국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가장 치명적인 죄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4. 음란(음행)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예. 음행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심각하고 치명적인 음란(음행)의 죄라 할지라도 진실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해주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윗의 간음(음행)죄입니다. 구약의 율법말씀에 의하면 간음을 행하는 자는 둘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신22:24, 레20:14, 레21:9). 그러므로 다윗의 범죄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37명의 부하장수들 가운데 하나였던 우리야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였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왕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의 손녀로서 정말 다윗도 매우 조심해야 할 사람이었는데, 그만 안목의 정욕을 못 이기고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만 밧세바가 임신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간음죄를 무마하려고 우리야장수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였지만 실패하게 되자, 우리야장군을 최적진에 보내 죽게하는 살인교사죄도 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음행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말씀처럼, 다윗은 이 음행의 죄와 살인죄 때문에 일평생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단선지자를 보내 그의 죄를 지적해주었던 것입니다(삼하11장). 그런데 다윗은 사울왕과는 달랐습니다. 즉시 자신이 지은 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시32:3,5). 그리고 눈물로 통곡하며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했으며 참회하고 또 참회했습니다(시51:17). 그리고 두 번 다시 음행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행의 죄를 끊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치명적인 죄를 범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고, 천국에도 들어갔으며,천국에서도 한 마을을 책임지는 지도자가 되었고, 아마도 24장로 안에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나쁘고 치명적인 죄를 범한다 할지라도 진실로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애통하며, 그후에 정말 죄를 짓지 아니하고 죄를  끊는면 누구든지 다 용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금식하면서 눈물로 통회자복하는 중에 몇은 용서를 받게 될 것입니다. 

 

5. 음란의 죄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음란(음행)의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방이 더 중요합니다. 음행의 죄는 다른 죄와 달리, 우리의 육신이 존재하는 그날까지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게 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피하는 길 외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어찌하든지 음행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어떻게 음행의 죄를 피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보지 말라"(삼하11:2). 다윗도 저녁에 일어나 옥상을 거닐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아서 그러한 죄를 저지르게 됩니다(삼하11:2). 고로 음란물같은 것들을 보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매체이든지 그러한 장면이나 영상이 나오는 것을 피하십시오. 영화라고 해서 괜찮다고 하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둘째, "가지 말라"(창39:10). 음란이나 음행이 저질러 질 수 있는 장소를 피해야 합니다. 그곳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 장소에 함께 단 둘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요셉도 그 주인의 처가 동침하기를 유혹했지만 그 장소에 함께 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창39:10). 은밀한, 밀폐된 장소를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곳에는 음란의 영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셋째, "접촉하지 말라"(고전5:1~2). 음란한 사람과 접촉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음란한 사람과 접촉하면 음란의 영이 내게 넘어올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자가 교회에게 어찌 함께 있을 수 있으냐면서 그러한 자를 내어쫓으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고전5:1~2). 그러므로 주변에 음담패설을 즐기거나 영화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되도록이면 그러한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공개적인 것도 그러한데,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러한 사람이 주의 종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가만 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음행의 죄는 자기의 몸 안에 죄를 범하는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속사람을 손상시키는 매우 치명적인 범죄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하든지 음행을 피하십시오. 이것을 위해서는 날마다 회개생활을 철저히 하시고 거룩한 것을 추구하십시오. 

 

2020년 12월 18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