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22) 압살롬의 반역과 예루살렘을 내주며 맨 발로 떠나는 다윗(삼하15:1~37)_2022-01-27(목)

https://youtu.be/psrMxubdgLM  [혹은 https://tv.naver.com/v/24912195 ]

 

1. 압살롬은 나라를 전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자신의 힘을 키웠고 준비하였는가?

  압살롬은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아주 컸다. 그리고 순번으로도 자신이 차기 왕권을 이어받을 제1순위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윗에 이어 차기 왕이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그가 공을 들여 반역(나라 전복)을 통해서 다윗의 왕국을 차지하는 과정은 이러하였다. 첫째, 압살롬은 자신을 지켜 주고 보호해 줄 경호 체계를 갖추었다. 자신을 위하여 전차와 말들을 구입하였고, 그 사이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호위병도 50명이나 두었다(삼하15:1). 둘째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훔쳤다. 송사자들이 예루살렘의 다윗 왕에게 호소하러 오면 그가 성문에서 그들을 가로채서 왕에게는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주었다. 또한 워낙 미남이었기에 때문에 그가 한 번 입을 맞춘 자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삼하15:3~5). 셋째, 그는 왕의 감시망을 피하여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32km 떨어져 있는 헤브론에서 반역의 무리들을 결집해 나갔다. 그중에서도 다윗 왕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다윗 왕의 최고의 모략가이자 척사였던 아히도벨의 마음을 훔쳐간 것이었다(삼하15:12). 아히도벨은 다윗의 8번째 부인이었던 밧세바의 할아버지라는 인물로 추정되는데, 그가 다윗을 모반하는 무리에 가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넷째 마지막으로 그는 모반의 때를 무려 4년이나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압살롬이 다윗의 왕국을 전복하려 할 때에는 이미 이스라엘 전체가 압살롬에게로 마음이 많이 기울어진 상태에 있었다. 그러자 압살롬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정탐꾼을 보내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선포하게 하였다. 

 

2. 다윗은 왜 도망쳤는가?

  그러자 압살롬에 대한 소식이 다윗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다윗은 요압이나 아비새 장군을 헤브론으로 급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도를 비우고 도망가자고 하였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만 해도 이스라엘 도시들 중에서 예루살렘 만큼 요새화된 도시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 중에 거의 대다수는 다 다윗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루살렘 거민들 중에 압살롬을 지지하는 자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윗에게는 야전에서 이골이 난 요압 장군과 아비새 장군 그리고 가드 사람 잇대 장군이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왕도를 압살롬에게 넘겨주려고 예루살렘을 빠져나갔다. 왜냐하면 다윗은 압살롬이 일으킨 구테타를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현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기꺼이 왕도를 버리고 도망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감람산을 올라갈 때 그의 모습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감람산을 올라가면서 머리를 가렸고, 맨발로 울면서 올라갔다. 이는 다윗이 이와 같은 일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이 잘못에 대한 형벌이라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3. 도망치고 있는 다윗에게 와서 위로하고 낙심하지 않게 해 주었던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가?

  사실 영원히 내 편인 사람은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우리가 전적으로 의지할 대상은 없다. 다윗이 그토록 공력을 쌓고 믿어왔던 유다 지파 사람들이 그를 먼저 배신했기 때문이다. 사실 예루살렘이 다윗 왕국의 수도가 되기 전에 유다지파의 헤브론이 수도였다. 그런데 헤브론 사람들이 다윗을 버리고 압살롬을 왕으로 세우는데 앞장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 왕의 가장 신실한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반역하여 압살롬 편에 설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그랬다. 그러나 낙심한 채 도망치고 있는 다윗을 위로하고 용기를 갖게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은 바로 다음과 같은 세 부분의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군인이었고, 또 한 무리는 제사장들 그룹이었고 마지막 하나는 왕의 척사(모사)였다. 이는 다윗이 비록 도망치는 몸이기는 하였어도 다윗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도망치는 다윗이었지만 다윗을 계속해서 군사적 종교적으로 그리고 지혜의 측면에서 볼 때 돕는 이들이었다. 이것은 아직도 다윗의 왕권이 쇠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러니까 우리도 역시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는 자를 붙혀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다윗에게 나타난 지지자들은 다윗을 어떻게 위로하여 힘을 주었는가?

  제일 처음 첫 번째로서 피난하는 다윗에게 힘과 용기를 보태준 자는 가드 사람 잇대였다. 그는 이 사건이 있기 직전에 자기와 자기의 가족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에 망명해 온 블레셋 장군이었다. 그러자 다윗은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왕인 압살롬 밑에서 충성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잇대는 다윗에게 말했다. "진실로 내 주 왕 앞에서 맹세하옵나니, 주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내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피난 중에도 자기를 지지해주는 군대장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제사장들의 동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들고 왕이 행차하는 노정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제사장들이 자기와 동참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서 도망가는 신세이이기 때문에, 법궤가 그러한 자기와 함께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그들도 다윗을 지지하는 세력이니만큼 예루살렘에 대기하고 있다가, 예루살렘의 상황을 그들의 아들들인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을 통해서 보고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셋째는 아렉 사람 후새의 동참이었다. 다윗이 울며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맨 발로 감람산 꼭대기를 지나가고 있었을 때에 아렉 사람으로서 다윗의 모사 중의 하나였던 후새가 찾아와 옷을 찢고 흙을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도 함께 가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다윗이 그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을 위해 일을 하고 있어라. 그리고 아히도벨의 묘략을 어둡게 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충성스러운 후새는 다윗의 첩보원으로서 압살롬 왕의 자문 위원이 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5. 다윗이 압살롬의 구테타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당시 온 이스라엘의 마음은 압살롬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모든 이스라엘이 압살롬의 등극을 지지하고 새로 탄생한 왕국을 축하해 주었지만 결국 압살롬의 구테타는 실패하고 만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첫째로, 다윗이 겸손하게 하나님의 징계를 지심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신의 자녀들이 죽어 나가고 자신이 도망을 치는 상황에서도, 그것이 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범죄한 것에 대한 징계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도 담담하게 그 어려운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었다. 이 때 다윗은 자신이 죄인이었기에, 도망을 친다고 할지라도 죄수로서 도망치는 것이었기에 맨 발로 도망치고 있었으며, 머리에 손을 얹고 울면서 피난을 했던 것이다. 다윗이 압살롬의 구테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둘째로, 다윗을 위해 목숨 걸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심지어 다윗과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가드 사람 잇대가 나타나서 충성을 맹세하자, 외롭고 힘든 길을 가는 다윗에게는 많은 힘이 되었다. 그리고 제사장 그룹에서도 다윗을 지지해 주었고, 모사인 후새도 지원해주자 다윗은 그들이 참으로 고맙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이들처럼 한 번 주님께 먹은 마음 변치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에 대하여 절개를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하리라.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이끌어 주시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27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3) 다윗에게 있었던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일들(삼상21:1~15)_2021-12-23(목)

https://youtu.be/ge5I09ClWyU [혹은 https://tv.naver.com/v/24312015 ]

 

1. 사울왕으로부터 쫓기게 된 다윗이 요나단과 작별한 후에 찾아온 곳은 어디였는가?

  사울은 자기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는 것이었고 자기 아들 요나단의 뜻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는데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한다. 그의 마지막 10년의 인생을 여기에 바친 것이다. 그러자 뒤이어 사울왕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게 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곁에서 떠나보내기로 결정한다. 에셀 바위 옆에서 그렇게 둘은 서럽게 울고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어디로 도망쳤을가? 그가 찾아간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있는 놉 땅이었다.

 

2. 왜 다윗은 대제사장을 제일 먼저 찾아갔는가?

  이제 요나단과 헤어진 다윗은 실로 도피여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제일 처음 선택하여 찾아간 곳은 놉 땅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대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다윗은 도피 여정을 시작하면서 곧장 자기의 부모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놉 땅으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놉 땅에 있었던 일을 지켜보고 사울에게 보고했던 도엑의 말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이유가 큰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뜻을 여쭈어 보기 위해 다윗은 일부러 그곳에 간 것이다(삼상22:10). 그렇다. 다윗은 그간 국가의 중대한 일이나 전쟁을 하기 전에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그가 선택한 것은 제사장에게 찾아가는 묻는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곳에 간 김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함도 있었다(삼상22:10, 21:3). 그는 배가 고팠가 때문이다. 3일 동안 먹지 못했던 것이다(삼상21:5). 사실 그의 도피는 힘겨운 것이었다. 이 일이 바로 있기 전에 요나단에게도 죽음이 한 걸음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삼상20:3). 그처럼 다윗은 위험하고도 급박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망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급히 도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를 따르는 몇몇 소년들과 함께 아무도 몰래 기브아를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혹시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가 있으면 그것을 얻으려고 놉 땅에 있는 제사장을 찾아간 것이다. 

 

3. 다윗이 얻어 먹은 음식은 과연 다윗이 먹어도 괜찮은 것이었는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은 과연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받아 먹은 음식(빵)이 다윗이 먹기에 합당한 음식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그때 자기의 손 안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일반적인 떡은 없었고 오직 안식일에서 성소에서 물려 내온 떡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삼상21:4,6). 사실 율법 규정을 보면, 제사장이 성소에서 물려 낸 떡 곧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과 제사장의 가족만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레24:5~9). 하지만 다윗은 유다 지파의 사람으로서 제사장의 지파가 아니었기에 그 떡을 먹을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그의 소년들은 제사장으로부터 그 떡을 받아서 먹었던 것이다(마12:3~7, 막2:26, 눅6:3~4).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행위를 범죄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이때 다윗은 율법을 어기고 만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경우는 부득이한 경우로서 그래도 받아 줄 만한 특별한 종류의 일인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율법의 규정 자체로만 본다면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은 율법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안식일이나 혹은 다른 일들이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인 경우 용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다윗이 이러한 행위에 죄가 없는 것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휼의 차원에서 보면 다윗의 행동은 그래도 받아 줄 만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동물이 구덩이에 빠져도 건져내 살려내는데,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갈 때에는 우선 살려 놓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율법의 규정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때 다윗은 진설병 음식 외에도 엘리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무기도 얻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몇 년 전 다윗은 블레셋과 전투할 때에 물매 돌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그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벤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골리앗의 칼을 전리품으로 습득하여 자기 집에 갔다 놓았다(삼상17:54). 그것이 어떻게 보자기에 싸여서 성소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그 과정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이후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왕에게 드렸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드림으로 놉 땅의 제사장이 보관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다윗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꼭 기억해 놓으셨다가 나중에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 도로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가 있다. 

 

4.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을 속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식량을 얻고 무기를 얻었던 것은 괜찮은 일인가?

  다윗이 이히멜렉 제사장에게 혈혈단신으로 왔을 때에 제사장이 그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홀로 왔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왕이 내게 어떤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 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삼상21:2). 그런데 사실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다윗은 자신이 도망자인 것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둘러서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과연 죄가 되는 것인가? 어찌 보면, 이것을 두고 다윗이 지혜롭게 답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엤지만, 그것은 사울왕이 실제로 한 말이 아니라 다윗이 지어낸 말이기 때문에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다윗의 이 거짓말로 인하여, 놉 땅에 있는 제사장들 85명과 제사장의 아들 딸들이 죽어야 했으며, 가축까지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그때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의 제사장이 가문이 전멸을 당하시디피 하였고, 이때에 죽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까지도 다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삼상22:18~19). 그러므로 다윗이 한 말을 두고 결코 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십계명 중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에 완전히 저촉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 사람을 죽게 하려고 주어진 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5. 다윗이 놉 다음에 도피처로 찾아간 곳은 어디였는가?

  다윗이 놉 땅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였다. 마침 그곳에 '도엑'이라는 사울의 목자장이 어떤 일로 와 있었다. 그러므로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에게 베풀어 준 일을 도엑은 고스란히 보게 된다. 그리고 다윗도 눈치로 그가 사울왕에게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보고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더이상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자신을 숨길 장소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그는 이웃나라로 망명을 시도한다. 이스라엘에 근접해 있는 블레셋 나라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서 망명을 시도한 것이다(삼상21:10).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블레셋의 사람들은 다윗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소문이 이미 다 퍼져 있다는 것을 다윗도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간파하고는 즉시 미친 사람 흉내를 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대문짝에 자신의 몸을 긁적거리면서 침을 흘리다가 미친 사람 취급받고 왕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갖고 있어야 할 체면과 품위를 그곳에서 완전하게 구기게 된다. 그는 이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몇 년전만 해도 가드의 거인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우면서 무슨 말을 했는가? 어찌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도록 내버려두느냐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그러한 대적의 왕을 찾아가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였다는 것을 그가 남긴 시편 34편과 52편과 56편을 보고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윗에게도 숨기고픈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사람인데 모든 것이 다 완전할 수 있겠는가! 

 

2021년 12월 23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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