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0) 다윗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4가지 특징(삼하7:8~16 )_2022-01-14(금)
https://youtu.be/FlqVJ7j0J6k  [혹은 https://tv.naver.com/v/24773187 ]

 

1. 다윗 언약은 어떤 언약인가?

  다윗 언약은 편무언약(片務言約)이다. 편무언약이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쌍방이 합의하여 세운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인간을 향하여 정하신 언약을 가리킨다. 다윗 언약도 편무언약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과 세우신 언약의 내용을 보면 전부 복에 관한 선언이요, 복에 관한 언약이다. 어떤 조건이 없다. 즉 "다윗아, 네가 앞으로 이러이러한 것을 잘 행하면 너에게 이러한 복을 주겠다"고 하시는 언약이 아닌 것이다. 그동안 다윗이 한 일 특히 그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과 마지막으로 그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말을 듣고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선언하신 놀라운 축복의 언약이다. 

 

2.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의 내용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다윗 자신에게 말씀하신 언약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다윗 때문에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언약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들에게 말씀하신 언약이다. 먼저 첫째로, 다윗 자신에게 말씀하신 언약을 살펴보자. 그것은 첫째는,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언약이었다(9절). 그리고 둘째는, 다윗을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해 주겠다는 언약이었다(11절). 그리고 셋째는 그의 왕위(왕의 자리)가 영원히 견고하게 해 주겠다는 언약이었다(16절). 그리고 크게 둘째는, 다윗 때문에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언약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한 곳(장소)을 정하여 그들을 심을 것이고 그들을 거기에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않게 할 것이며, 악한 종류들이 결단코 이전처럼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언약이다(10절). 결국 그곳은 다름 아닌 '천국'에 대한 약속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다윗 때문에 그의 백성들에게 천국을 약속하신 것이다. 셋째는, 다윗의 후손들에게 말씀하신 언약이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들이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며(14절), 그의 후손들이 다스릴 왕국이 견고하게 될 것이며(13절), 그의 후손들이 차지할 왕의 자리(왕위)가 견고하게 보전될 것이라고 하는 약속이다(16절).

 

3. 다윗 언약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4가지 복의 특징 중 앞의 2가지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다윗과 세우신 언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 복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 복은 과분하게 주어지는 복이라는 사실이다(8,10,12~15절). 이 말은 다윗 때문에 다윗 한 사람만이 복받는 것이 아니라 다윗 때문에 다윗 개인도 복을 받지만 더불어 그가 속한 공동체(이스라엘 민족)도 복을 받고, 그의 후손들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윗이 잘 했더니 다윗이 속한 민족(나라)과 다윗의 후손들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주시는 복이 크다고 하셨다(8절). 둘째는 그 복이 이 땅에서만 누리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서 누리게 되는 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에게 약속하신 복은 이 땅에서 다윗의 누릴 복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땅에서 받을 복은 단지 맛보기일 뿐이다. 그가 받을 진짜의 복은 그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거기서 받을 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시켜 그가 받을 복에 대해서, "내가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하늘에서도] 만들어 줄 것이다(9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이 땅에서 명예스럽게 되고 이 땅에서 건강하게 사는 것만이 아닌 것이다. 진짜 하늘에서 그의 이름이 크게 되는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고 약속받은 사람은 성경에 딱 두 사람만 나온다. 그중의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고(창12:2~3) 또 나머지 한 사람은 다윗이다(삼하7:9). 그러므로 신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조상들을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둘을 언급한다. 그 첫 번째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어서 두 번째 사람으로서 다윗을 언급하는데 다윗은 특별히 왕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고 소개하고 있다. 즉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조상들 총 71명 가운데, 첫 번째로 '아브라함'의 이름을 꺼내어 말하고 있으며, 또한 다윗에게는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이름이 크게 되었음을 여기서도 밝히고 있는 것이다. 

 

4. 다윗 언약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4가지 복의 특징 중 나머지의 2가지는 무엇인가?

  다윗 언약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복은 총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나머지 2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그 복은 오래 지속되는 복이자 영원히 누릴 복이라는 사실이다(13,16절). 그 복은 이 땅에서도 오래 지속되는 복이기 때문이요, 하늘에서는 영원히 지속되는 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고 있는 복은 잠시 잠깐 누리다가 없어질 복이 결코 아니다. 저 하늘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복을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하늘에서 누릴 이 영원한 신령한 복 곧 영적인 복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죽어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서 사는 복이요, 144,000명의 보좌 자리에 앉는 복이요, 그곳에서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는 복이다. 둘째는 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복들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짜들이 주어지는 복이라는 사실이다(12절). 그렇다. 모든 복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오직 하늘과 땅 사이에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으신 것이다. 

 

5. 우리도 다윗 언약의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다윗 시대와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이다. 정말 영원히 떠나지 않고 영원히 우리 안에 내주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장차 하늘나라에서 받을 복에 대해 미리 맛보게도 하시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이러한 복을 누릴 수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믿음과 회개'생활을 하고 있고, 맡겨진 바 일이 있다면 그것에 '충성'하면 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그는 신본주의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그는 성령께서 자신의 죄를 지적했을 때가 되자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다시 출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날 바로 죽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수십 년을 살아야 하니까, 그중에 하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회개를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결코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렇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첫째, '견고한 믿음'을 갖는 것이요, 둘째, 자신이 지은 죄를 토설하고 그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맡겨진 일이 생기면 그것에 충성하는 것이다.

  

2022년 01월 14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09) 회개와 천국복음의 관점으로 보는 다윗 언약의 영적 비밀(삼하7:8~16)_2021-01-13(목)

https://youtu.be/AxEHN47d848  [혹은 https://tv.naver.com/v/24772073 ]

 

 

 

1. 왜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했을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 드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만류하였다. 만약 하나님께서 정말 성전이 필요했다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후 성막을 지을 때부터 이때 다윗의 시기까지 어느 사사에게라도 그것을 지어 달라고 명령하거나 지시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다윗이 비록 성전을 짓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지만 그 마음만은 받고 성전짓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5년 뒤에 태어날 다윗의 아들 솔로몬(B.C.990?~930)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단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다윗에게 임하여 알려 주신 것이다. 그 내용은 역대상 22장에 나온다. 그때 다윗은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할 것을 당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7~8)" 그랬다.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려서 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다윗이 성전을 지을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다윗이 성전을 지을 수 없었던 이유를 더 큰 관점으로 본다면 첫째로, 다윗에게는 성전을 지을 사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다윗에게는 이 땅에 신정 국가 곧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짓는 것까지는 그의 사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은 다 이 땅에서 자신의 사명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사명자는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목적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둘째로, 성전은 예표론적으로 볼 때 다윗이 아니라 평화의 왕인 그의 아들 곧 메시야인 예수께서 지어야 맞기 때문이다(마16:18). 그래서 예수께서 성막으로 오셨으며(요1:14, 2:19~21), 성전인 교회를 건축하신 것이다. 

 

2.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려서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말을 영적인 관점으로 보면?

  다윗이 전쟁을 많이 하여 피를 많이 흘림으로 사람을 많이 죽였기에 그가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영적인 관점으로 보면 어떤 것인가? 그것은 그에게 살인의 영이 많이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 숫자만큼 그리고 그 크기만큼의 살인의 영들이 달라붙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갈라디아서 6:7의 말씀처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람을 많이 죽여 살인의 영을 많이 가지고 있기에, 그의 아들들이 많이 죽었다. 첫째 아들 암논은 자신의 셋째 아들 압살롬에 의해 죽임당했고, 둘째 아들은 일찍 죽었으며, 셋째 아들 압살롬은 자기에게 구테타를 일으켰다가 요압 장군에 의해 죽임당했으며,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구테타를 일으켰다가 여덟째 아들 솔로몬에 의해 죽임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화의 왕으로 태어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이 성전을 지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있을 때에 사람을 살인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는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 일만 행하셨다. 즉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주셨으며(38년된 중풍병자), 죽어야 할 사람(요8장에 나오는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도 살리셨고, 죽은 사람(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도 살리셨다. 그분은 이 땅에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요10:10). 

 

3. 다윗은 왜 족보책에 '왕'으로 기록되어 있을까?

  마태복음 1장에 보면, 다윗은 그냥 다윗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장 5~6절을 보자.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1:5~6). 그렇다. 이새는 그냥 다윗을 낳은 것이 아니다. 그는 다윗인 왕(헬라어 원문)을 낳았던 것이다. 그렇다. 다윗은 처음부터 왕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왕으로 보내어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신정 국가를 수립할 왕으로서 그에게 사명을 주어 이 땅에 왕으로서 보내신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때가 되면 반드시 왕으로 등극할 자였다. 그러니까 그가 아무리 목동으로서 자기의 아버지의 양떼를 치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아야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자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부어 왕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명을 주어 보낸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 목적으로 그 사람을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에 자신이 그것을 모른 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사명이 주어져 있는 자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배'라는 것이다.

 

4.  왜 다윗은 굳이 이새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왕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왜 이새의 집이었고 왜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이었는가? 그것은 그 집안에 다윗과 같은 자가 태어나기에 합당한 어떤 일을 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어떤 집에 보내야 한다면 아무래도 그것을 받기에 합당한 집안에 보내시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꼭 이새의 집안인가? 그것은 이새의 아버지 오벳이 효자였으며, 할아버지는 보아스였고 그의 할머니가 룻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보아스는 매우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서 오직 신앙 하나만 바라보며 시어머니를 따라온 룻을 위해 일부러 고엘(기업 무를 자)이 되어 자기의 아내로 맞이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새의 증조 할아버지 또한 신앙 좋은 '살몬'이라는 인물이었고 증조 할머니는 여리고 사람 기생 라합이었기 때문이다. 기생 라합 역시 이방인이었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최고로 알고 섬겼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의 사람들 중에서 이새의 가문으로 다윗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이새의 장자로 태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안배였다. 왜냐하면 다윗은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5. 다윗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는데, 왜 복은 다윗의 후손들이 받았는가?

  이것이 바로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이새의 증조부모와 고조부모의 신앙 때에 하나님께서 이새의 집안에 다윗을 보내셨던 것처럼, 다윗 때문에 그의 아들들이 복을 받게 한 것이다. 그의 아들들은 20대까지 계속해서 왕이 됨으로 다윗 왕조를 이룰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대로도 똑같다. 어떤 분은 왜 조상들이 지은 죄를 내가 받아야 하며 내가 회개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조 아담이 지은 죄를 오늘 내가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조상들이 지은 죄를 내가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회개해야 한다. 사실 아담이 범죄할 때 모든 인류가 그의 허리에 있는 씨로서 참여한 것처럼, 조상들이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을 때에 우리도 같이 참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죄로 인하여 저주가 더이상 자신의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하려면 내가 그 저주를 끊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백하는 '회개'인 것이다(요일1:9). 그러면 천 대까지 혹은 천 명까지 은혜를 받게 된다고 하셨다(출20:6). 그러나 반대도 있다. 자신의 조상들의 죄 때문에 후손들 중에 장애인이 나오고 가난하게 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좀 전의 말씀처럼 조상들이 잘해서 그의 후손들에게 복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다윗 한 사람 때문에 그의 20대 후손이 복을 받은 사례가 분명히 성경에서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롬5:19).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처럼,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01월 13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08) 다윗 언약, 그것은 무슨 언약의 완성인가?(삼하7:8~17)_2022-01-12(수)

https://youtu.be/Ct4cWqoX3O8  [혹은 https://tv.naver.com/v/24771960 ]

 

1. 다윗 언약, 그 내용은 대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크게 3가지다(삼하7:8~16). 3가지 모두가 영광스러운 것이다. 첫째, 하나님께서 다윗 개인에게 주신 언약이다. 이 언약은 다시 3가지인데, 첫째로는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요(9절), 둘째로는 그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해 주겠다는 것이며(11절), 셋째로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그의 후손에게 왕위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다(11절). 다시 말해 다윗에게 왕조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 다윗 때문에 당신의 백성에게도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인데, 그것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고 거할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그 장소는 어디인가? 그것은 그 어떤 악한 자도 해칠 수 없는 땅이라고 하셨다(10절). 그러니까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주변 민족이 이스라엘을 자주 침범하였지만, 앞으로 주님이 주실 땅은 절대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땅이라고 하셨다. 그럼 그곳은 어디겠는가? 그것은 한 곳밖에 없다. 그곳은 곧 '천국'이다. 셋째는 그의 씨를 통하여 누구든지 다윗의 집과 다윗의 왕국과 다윗의 보좌를 영원히 줄 것이고 그것들을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다(11~16). 다윗에게 약속한 메시야를 붙잡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집을 영원히 보존하실 것이며, 그의 왕국도 영원히 보존하실 것이고, 그의 왕위(보좌)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2. 다윗의 언약의 중심은 무엇인가?

  다윗의 언약의 중심은 결국 '그의 씨'를 통한 약속의 성취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 "내가 네 몸에서 태어날 네 씨(제라흐)를 네 뒤에 세워 그의 왕국을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국 보좌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삼하7:12~14a)". 그렇다. 다윗의 언약은 한 마디로 그의 몸을 통하여 태어날 씨(아들이자 후손)를 통한 복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그 씨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성경은 그의 씨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밝혀 두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으며, 구속 사역을 완성하고 하늘로 가신 예수께서도 역시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6). 이것은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칭호에 인간의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하신 것인데 유일무이하다. 그런데 그 이름이 바로 '다윗'인 것이다. 고로 다윗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것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3. 다윗의 언약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다윗의 언약은 사실 창세기 3장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타락 직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원시 언약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어떤 '씨(seed)'를 통하여 이루시는 약속인데, 창세기 3:15에서는 '여자의 씨(제라흐)'를 통하여 이루시겠다고 하신 약속이다. 그 내용은 "내(여호와 하나님)가 너(뱀=사탄=마귀)로 여자(하와=교회=천국 백성)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인간이 범죄했을 때에 인간을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계획을 내비치셨다. 곧 인간을 꾄 뱀을 책망하시고 그와 여자는 원수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비록 인간이 범죄했어도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죄를 범했기에,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타락한 천사들(마귀와 귀신들)과 함께 살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여자의 씨(죄없는 둘째 아담)를 보내시어 뱀의 머리를 상하게(짓이기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다윗의 언약의 시작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B.C.995년에 다윗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 모든 원수들을 네 앞에서 멸하셨다(9절)"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너를 모든 원수들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할 것이다(11절)"이라고 또 한 번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있어 그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신 것 같이, 앞으로도 그를 모든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 

 

4. 다윗의 언약은 어떻게 발전하여 완성된 것인가?

  다윗의 언약을 보면, 그것은 '네(그의) 씨'에 관한 언약으로서, '네(그의) 씨'는 계속해서 아담의 타락 직후부터 시작하여 점점 더 추가되어 계시되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첫째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창세기 3:15에 나오는 약속에서 출발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없는 여자, 곧 처녀의 몸(사7:14)을 통하여 장차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브라함 때에 왔을 때에 보다 더 구체적으로 계시되었으니, 그것의 하나는 장차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줄 메시야는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다(창18:10,14). 그리고 또 하나는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며, 또한 그의 씨가 그의 대적의 문들을 차지하게(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창22:17~18). 그리고 이삭에게도 "네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창26:4)"이라고 거듭 반복해서 약속하셨으며, 야곱의 때에 와서는 더 큰 약속을 야곱과 맺으셨으니, 그것은 이제는 그의 씨를 통하여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이다(창28:13~14, 35:11~12, 49:10). 결국 이러한 메시야에 관한 약속들이 이처럼 모아져서 하나로 적용된 것이 곧 다윗 언약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 언약은 구약시대 곧 다윗 이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모든 메시야의 약속을 총결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 다윗 언약 속에 집(성전) 건축은 왜 그의 아들로 연기된 것인가?

  그렇다면 다윗의 언약 속에 성전 건축은 왜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아들로 미뤄진 것인가? 그것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윗의 사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윗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 땅 위에 신본주의 왕국을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만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원수들을 멸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왕국을 세우는 것이었다. 거기까지가 다윗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짓는 것은 그의 아들의 대로 미뤄진 것이다. 여기서 '그의 아들'이란 1차적으로는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네 씨' 곧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실 메시야(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장막을 치심으로 당신을 성전이라는 것을 계시하셨고(요1;14, 2:19~21), 결국 부활 승천하시면서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 주시어 이 땅에 유기체적인 인격적 성전으로서 믿는 자인 '교회'를 세우셨다(마16:18). 그리고 실제적으로 다윗은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의 예표인만큼, 장차 과연 어떤 사람이 천국 집에 들어가게 되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누가 왕 노릇할 자인가를 잘 보여 주는 샘플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윗은 천국에서 왕 노릇할 자로서 가장 완벽한 그림을 보여 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01월 12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07) 다윗 언약, 하나님은 왜 그와 언약을 맺으셨을까?(삼하7:1~17)_2022-01-11(화) 

https://youtu.be/nDlG8VKAPW0  [ 혹은 https://tv.naver.com/v/24771861 ]

 

1. 하나님은 언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B.C.995년경 그러니까 다윗의 나이가 45세 되던 해 곧 그가 예루살렘에 와서 왕이 된 지 8년이 지난 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을 약속으로 전달하게 하였다(삼하7:8~16). 

 

2. 하나님께서 왜 나단 선지자에게 다윗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달하라고 하셨는가?

  여호와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모든 원수를 무찌르게 하시고 왕으로 자신의 궁에 편안히 살게 하실 때의 일이었다. 다윗왕이 어느 날 나단 선지자를 불러 자신의 마음에 있는 바를 꺼내서 말하였다. "볼지어다. 지금 나는 백향목[으로 지어진] 궁에 살고 있으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아래에) 있도다(삼하7:2)". 그때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마음에 있는 바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하고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참으로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당신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십시오(삼하7:3)". 그러나 그것은 나단 선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서 성전을 짓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날 밤에 즉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전달할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시급하게 교정해야 할 것이 있었던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이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것을 받지 않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나단 선지자에게 했던 모든 말을 다 들으셨다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가진 기특하고도 귀한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것이다(그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감격하셔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에게 우선 이렇게 말하라고 하셨다. 

삼하7:6-7 [참으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걸어]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사사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짓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그랬다. 하나님은 B.C.1445년 1월 15일 출애굽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 오셨지만 그 어떤 사람에게도 자신을 위하여 멋진 건축물을 지어 달라고 명령하거나 부탁하신 일이 없으셨다. 그런데 다윗이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어 드리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감동을 주셔서 하게 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윗이 왕위에 오른 뒤에 스스로 생각해 보니,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어진 좋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은 늘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건 아니야,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기셔서 여기에 있게 된 것인데, 나는 좋은 집에 거주하면서 하나님을 펄럭이는 이동식 텐트 가운데 두면 되겠는가?"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이다. 

 

4. 왜 하나님께서는 이때까지 당신을 위해 집(건축물)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으셨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 다윗 때까지 그러니까 약 451년 동안 성막에 거주하시고 계셨지만 왜 한 번도 당신을 위해 집을 지어 달라고 명령하거나 요청하지 않으셨던 것일까?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는 건축물을 짓게 되면 인간이 타락할 것을 잘 아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여 건축물을 세우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건축물이 존재하는 이유를 상실한 채 건물의 화려함만 추구하여 원래 건축물을 세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번도 자신을 위하여 건축물을 세워 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던 것이다. 둘째, 진짜 성막이란 이 땅에 장막을 치러 오신 예수님으로 장차 표현하실 것이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거처는 굳이 건축물으로 지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요2:19~21).

요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의 성전의 의미란 죄인들이 거기에 와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으심으로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의 외양이 굳이 멋지게 꾸며질 필요는 없었다. 고로 하나님께서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당신의 집을 지어 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5.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린다고 했을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린다고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기특한 마음에 감동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에게 주어진 사명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 다윗을 내려 보내실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당신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는 사명까지 손에 쥐어서 보낸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께서 다윗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신정 국가를 이루는 것이었다. 사실 사사였던 사무엘 시대까지만 해도 제사장직과 선지자직 그리고 왕직(지도자직)은 겹쳐 있었다. 하지만 사무엘 시대에 드디어 왕직과 선지자직과 제사장직이 완전히 구별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왕직은 사울왕에게로 넘어갔고, 선지자직은 사무엘에게 그대로 남아 있었고, 마지막으로 제사장직은 사무엘에게서 아비아달에게로 이관되고 있었다. 그런데 기름부음을 받는 3가지 직분 중에 천국에서도 영원히 남아 있을 직분은 오직 왕직 뿐이라는 사실이다. 제사장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사이지만 천국에서는 더이상 제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에서 선지자직도 필요 없는 이유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알게 되기 때문에 더이상 무엇인가를 깨우쳐줄 것도 없고 책망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서 성도가 왕 노릇하는 것은 영원히 지속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왕 노릇을 하는 다윗을 통하여 하늘에서도 왕 노릇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선택된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땅에 왕직을 수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잘 실천하여 하늘에서도 왕 노릇하는 사람의 예표가 되어 주면 되었다. 그것이 그에 대한 하나님의 사명이었다. 고로 다윗의 사명은 이 땅에서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다윗의 마음을 아주 기쁘게 받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로 하여금 그가 장차 받아서 누리게 될 3가지 영광을 들려 주었으니, 실로 놀라운 영광들이었다. 그것은 다윗 자신을 위한 것이 있었고, 다윗 때문에 그 나라 그 민족이 받을 영광도 있었으며, 그의 가문과 그의 후손이 받을 축복도 있었는데, 이 세 번째 축복 가운데에는 그의 씨를 통하여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예언이 포함되어 있었다. 

 

20222년 01월 11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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