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4) 놉 땅의 제사장 학살사건이 들려주는 영적인 교훈(삼상22:1~23)_2021-12-24(금)

https://youtu.be/WEr6r1v5Fl4 [혹은 https://tv.naver.com/v/24312273 ]

 

1.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악령에 속한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하나님께 속한 다윗과 악령에 속한 사울은 갈수록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곰곰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속한 사람과 악령에 속한 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에 기록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양과 목자의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그렇다. 악령 곧 사탄마귀가 온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명시키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였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신하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초지종도 파악하지 않은 채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집을 반역의 공모자로 만들어 하루 아침에 몰살시켰기 때문이다. 젖먹는 아이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을 죽이는 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라 오히려 사람을 살리게 된다. 그리고 생명이 더 풍성하도록 만들어 준다. 다윗은 언제나 그랬다. 그는 남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 사람은 왜 달라지지 않고 구원받지 못하는가?

  사람은 잘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달라지는 사람이 있기는 있다. 그런데 이때 변화되는 사람의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지 아니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꾸 변명을 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당신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징계를 내리다가도 금방 그것을 철회하시며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끝내 회개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때 사람이 달라지지 아니하는 이유에는 명예욕과 권력욕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일 수도 있고, 시기질투심을 이기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사무엘상하의 말씀이 사울왕과 다윗왕을 비교하고 있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과 회개하는 사람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사울왕이나 다윗왕이나 범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다윗왕이 더 큰 죄를 범했다. 하지만 사울왕은 이유를 대면서 변명하였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끝내 회개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도 등장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삶에 무엇이 잘못되었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항상 하는 행동이 있었다. 그것은 그 죄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기꺼이 인정하고 그 잘못으로부터 돌이켰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똑같은 죄를 또 다시 범하지 않았다. 

 

3. 사무엘상 22장에서 다윗과 사울의 행동이 보여주는 각각의 특징은 무엇인가?

  다윗은 도망치는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부모와 소외되고 환난당한 자를 챙기는 사람이었다(삼상22:1~2). 왜냐하면 그의 부모는 사울이 다윗을 찾지 못했을 경우에는 보복살인을 할 대상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울시대에는 의외로 압제를 당하는 자들도 있었고, 원통한 일을 당한 자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다는 소문이 났을 때 모두들 그리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왕에게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달랐다. 자기 밑에 사람들을 기용한 후에는 그들을 늘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자는 자기를 반대하는 자요 역적이라는 것을 계속해셔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자기 밑에 신하들을 임명할 때 베냐민 지파의 사람 일색으로 배치한 다음, 그들을 향해서는 왜 나에게 충성하지 않느냐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다(삼상22:7~8). 사울은 이전에 이미 백성들의 밭과 포도원을 빼앗아 베냐민 사람에게 주었다. 그리고 천부장 백부장도 베냐민지파 사람으로 임명을 한 것이다. 그러므므로  자기를 돕지 않고 다윗을 돕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4. 악한 자 도엑이 저지른 죄는 대체 무엇인가?

  그때였다. 사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사울의 신하들 중에 한 명이었던 에돔 사람 도엑이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다윗의 공모자고 고발하게 된다. 왜냐하면 다윗이 혈혈단신으로 아히멜렉을 찾아왔을 때에 일어난 일을 그가 보았는데, 그는 모든 일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준 것만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울은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자기에게로 불렀다. 그리고 사울은 그가 다윗과 공모하여 다윗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을 여쭈어본 것은 자신을 대적한 일이고 반역한 일이라고 몰아부쳤다. 그러나 아히멜렉은 그간에 돌아가고 있었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아는 바에 따라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사울왕으로 하여금 자신을 공모자로 몰아가지 말 것을 당부했다. 실제로 아히멜렉 자신은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울은 호위병들을 시켜 돌아가는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아히멜렉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자 사울은 도엑을 지켜 제사장들을 죽이라고 명령을 한다. 그러자 도엑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였으니, 그날 에봇입은 자 85명을 죽였고, 더 나아가 제사장의 성읍이었던 놉 땅에 가서 그들의 자식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아기까지 싸그리 죽이고 말았다. 그것도 가축까지 말이다(삼상22:18~19). 그러자 훗날 다윗은 도엑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노래를 지어 남겨놓았으니, 시편 17편, 35편, 64편, 109편, 140편 등은 도엑의 일로 인하여 다윗이 지었던 시편들이다.  

 

5. 다윗은 놉 땅의 제사장들이 죽임당했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

  다윗은 얼마후 놉 땅의 제사장들이 죽임을 당했고 놉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이는 아히멜렉의 아들이었던 아비아달이 난을 피하여 다윗에게도 도망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윗은 그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의 집의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은 나의 탓이로다(내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삼상22:22~23)" 그렇다. 다윗은 놉 땅의 제사장들이 죽게 된 것을 그들의 잘못만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판단하였고 그 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겠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다윗이 지은 죄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거짓증거의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날 다윗은 사울왕의 특명을 받고 아히멜렉에게로 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거짓증거는 이것보다도 사건의 위중성에 있는 바, 다윗이 저지른 완전한 범죄라고도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부득이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거짓증거의 죄를 그냥 넘어가지는 않으셨다. 그렇다면 실제로 놉 땅의 제사장들이 죽임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얼핏 보기에는 사울왕의 잘못된 판단, 다윗의 빌미 제공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실은 아히멜렉의 4대 조상이었던 엘리제사장 때에 있었던 바, 엘리와 그리고 그의 두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장차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에서 노인이 없게 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삼상2:31~32). 그렇다.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려면  그에게 회개가 동반되지 않았을 때다. 하지만 아히멜렉은 자기도 몰랐지만 결국 다윗을 돕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는 엘리 제사장 때에 이미 예고되어진 말씀이 정말 비참한 상황에서 성취된 것이 아니라 의롭게 성취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히멜렉과 제사장들은 순교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죽었다고 해보자. 얼마나 비참한 죽음이었겠는가? 그러므로 혹시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예고되었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라. 회개하고 의롭게 살아간다면 나중 심판 때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을 것이기 분명하다. 

 

2021년 12월 24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3) 다윗에게 있었던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일들(삼상21:1~15)_2021-12-23(목)

https://youtu.be/ge5I09ClWyU [혹은 https://tv.naver.com/v/24312015 ]

 

1. 사울왕으로부터 쫓기게 된 다윗이 요나단과 작별한 후에 찾아온 곳은 어디였는가?

  사울은 자기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는 것이었고 자기 아들 요나단의 뜻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다윗을 제거하는데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한다. 그의 마지막 10년의 인생을 여기에 바친 것이다. 그러자 뒤이어 사울왕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게 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곁에서 떠나보내기로 결정한다. 에셀 바위 옆에서 그렇게 둘은 서럽게 울고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어디로 도망쳤을가? 그가 찾아간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대제사장 아히멜렉이 제사장으로 있는 놉 땅이었다.

 

2. 왜 다윗은 대제사장을 제일 먼저 찾아갔는가?

  이제 요나단과 헤어진 다윗은 실로 도피여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가 제일 처음 선택하여 찾아간 곳은 놉 땅이었다. 왜냐하면 여기에 대제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다윗은 도피 여정을 시작하면서 곧장 자기의 부모가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놉 땅으로 갔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중에 놉 땅에 있었던 일을 지켜보고 사울에게 보고했던 도엑의 말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이유가 큰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 뜻을 여쭈어 보기 위해 다윗은 일부러 그곳에 간 것이다(삼상22:10). 그렇다. 다윗은 그간 국가의 중대한 일이나 전쟁을 하기 전에 늘 하나님의 뜻을 묻고 행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그가 선택한 것은 제사장에게 찾아가는 묻는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그곳에 간 김에 먹을 것을 얻기 위함도 있었다(삼상22:10, 21:3). 그는 배가 고팠가 때문이다. 3일 동안 먹지 못했던 것이다(삼상21:5). 사실 그의 도피는 힘겨운 것이었다. 이 일이 바로 있기 전에 요나단에게도 죽음이 한 걸음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삼상20:3). 그처럼 다윗은 위험하고도 급박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도망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급히 도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를 따르는 몇몇 소년들과 함께 아무도 몰래 기브아를 떠났던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혹시 칼이나 창과 같은 무기가 있으면 그것을 얻으려고 놉 땅에 있는 제사장을 찾아간 것이다. 

 

3. 다윗이 얻어 먹은 음식은 과연 다윗이 먹어도 괜찮은 것이었는가?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은 과연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받아 먹은 음식(빵)이 다윗이 먹기에 합당한 음식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이 그때 자기의 손 안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일반적인 떡은 없었고 오직 안식일에서 성소에서 물려 내온 떡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삼상21:4,6). 사실 율법 규정을 보면, 제사장이 성소에서 물려 낸 떡 곧 진설병은 오직 제사장과 제사장의 가족만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레24:5~9). 하지만 다윗은 유다 지파의 사람으로서 제사장의 지파가 아니었기에 그 떡을 먹을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그의 소년들은 제사장으로부터 그 떡을 받아서 먹었던 것이다(마12:3~7, 막2:26, 눅6:3~4).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행위를 범죄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연 이때 다윗은 율법을 어기고 만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경우는 부득이한 경우로서 그래도 받아 줄 만한 특별한 종류의 일인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율법의 규정 자체로만 본다면 다윗이 진설병을 먹은 것은 율법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안식일이나 혹은 다른 일들이라도 사람을 살리는 일인 경우 용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다윗이 이러한 행위에 죄가 없는 것임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휼의 차원에서 보면 다윗의 행동은 그래도 받아 줄 만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동물이 구덩이에 빠져도 건져내 살려내는데,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갈 때에는 우선 살려 놓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율법의 규정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때 다윗은 진설병 음식 외에도 엘리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무기도 얻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몇 년 전 다윗은 블레셋과 전투할 때에 물매 돌로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그의 칼을 뽑아 그의 목을 벤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골리앗의 칼을 전리품으로 습득하여 자기 집에 갔다 놓았다(삼상17:54). 그것이 어떻게 보자기에 싸여서 성소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그 과정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이후 다윗이 골리앗의 칼을 왕에게 드렸거나 아니면 하나님께 드림으로 놉 땅의 제사장이 보관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다윗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진심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꼭 기억해 놓으셨다가 나중에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 도로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가 있다. 

 

4.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을 속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식량을 얻고 무기를 얻었던 것은 괜찮은 일인가?

  다윗이 이히멜렉 제사장에게 혈혈단신으로 왔을 때에 제사장이 그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홀로 왔느냐고 말이다.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왕이 내게 어떤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 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삼상21:2). 그런데 사실 그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다윗은 자신이 도망자인 것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둘러서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렇게 말한 것은 과연 죄가 되는 것인가? 어찌 보면, 이것을 두고 다윗이 지혜롭게 답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엤지만, 그것은 사울왕이 실제로 한 말이 아니라 다윗이 지어낸 말이기 때문에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다윗의 이 거짓말로 인하여, 놉 땅에 있는 제사장들 85명과 제사장의 아들 딸들이 죽어야 했으며, 가축까지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그때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의 제사장이 가문이 전멸을 당하시디피 하였고, 이때에 죽은 사람들 중에는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까지도 다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삼상22:18~19). 그러므로 다윗이 한 말을 두고 결코 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십계명 중에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에 완전히 저촉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지 사람을 죽게 하려고 주어진 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5. 다윗이 놉 다음에 도피처로 찾아간 곳은 어디였는가?

  다윗이 놉 땅에서 아히멜렉 제사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였다. 마침 그곳에 '도엑'이라는 사울의 목자장이 어떤 일로 와 있었다. 그러므로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에게 베풀어 준 일을 도엑은 고스란히 보게 된다. 그리고 다윗도 눈치로 그가 사울왕에게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보고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더이상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자신을 숨길 장소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그는 이웃나라로 망명을 시도한다. 이스라엘에 근접해 있는 블레셋 나라의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서 망명을 시도한 것이다(삼상21:10).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블레셋의 사람들은 다윗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소문이 이미 다 퍼져 있다는 것을 다윗도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간파하고는 즉시 미친 사람 흉내를 내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대문짝에 자신의 몸을 긁적거리면서 침을 흘리다가 미친 사람 취급받고 왕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갖고 있어야 할 체면과 품위를 그곳에서 완전하게 구기게 된다. 그는 이렇게 행동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는 몇 년전만 해도 가드의 거인 블레셋 장수 골리앗과 싸우면서 무슨 말을 했는가? 어찌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도록 내버려두느냐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그러한 대적의 왕을 찾아가서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고 또 회개하였다는 것을 그가 남긴 시편 34편과 52편과 56편을 보고 알 수 있다. 이처럼 다윗에게도 숨기고픈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사람인데 모든 것이 다 완전할 수 있겠는가! 

 

2021년 12월 23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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