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특별새벽집회 첫째날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20) 심판 중에도 주님이 준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렘21:1~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ZGE8dhz2es [또는 https://tv.naver.com/v/33751780]

 

1. 언약 백성으로 선택받았으면 벌은 받지 아니하는가?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된다. 사람은 다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령 본인이 언약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역시 죄를 지었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신약의 성도 역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새 언약의 백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의 성도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벌은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확한 사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치렀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은 그가 둘째 사망 곧 불과 유황이 타는 못인 지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도 오늘날에 가난의 저주, 질병의 저주, 자녀의 저주 가운데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있는 살고 있는 이들이 아주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자들이라도 저주 가운데서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은 죄와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죄를 반드시 입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럼, 내가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도 회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출20:5의 율법에 따라 우상숭배의 죄값을 자손 3~4대가 치른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도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여전히 계속해서 벌을 받는 것이며, 회개하는 자는 벌을 받지 아니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구약의 성도나 신약의 성도나 마찬가지이다.

 

2. 제20대 시드기야왕 때(B.C.597~586)에 왜 남유다는 멸망을 받게 되었는가?

  남유다는 구약시대 언약 백성이다. 이들은 할례를 받았으며, 아브라함으로부터 태어난 자손으로서, 혈통적으로 볼 때 정통 아브라함 자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계시겠다고 하신 성전이 남유다의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다. 그런데도 왜 남유다는 멸망하게 되었는가?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집의 처소로 삼으신 성전이 예루살렘에 계시기 때문에 남유다는 멸망당하지 않을 꺼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철저히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럼, 왜 언약 백성이면서 하나님이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성전이 있음에도 남유다는 멸망을 당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그들 간에 맺은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됨으로 악을 자행하고 도덕 역시 허물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죄악이 성 안에 가득찬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남유다를 멸하시기로 결정하셨고 그 일을 시드기야왕 때에 이루신 것이다. 

렘18:9~10 내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에 10 만일 그들이 나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여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에게 유익하게 하리라고 한 복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3. 개인이나 민족의 구원과 멸망은 만세 전에 이미 예정된 것인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은 첫째, 예정된 축복의 그릇으로 빚어졌던 자라도 범죄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그도 역시 멸망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태어나 보니 우상숭배의 집안에 태어나서 죄만 짓고 살던 자도 역시 회개하지 않고 믿음없이 죽었다면 그도 역시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멸망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죽어서 불못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만세 전에 개인의 구원은 이미 예정된 채 구원의 길이나 멸망의 길로 행하게 되는 것인가? 아니다. 만세 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을 기업으로 물려주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했으나 그는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빗나가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면서 살았다. 그러자 그들 중의 일부라도 건지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명자를 이 땅에 보내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하나님을 믿으며 주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인도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다.

  그리고 이때 사명자는 이미 천국에서 받을 복이 예정된 채 이 땅에 보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없는 영혼의 상태로서 여자의 자궁 속으로 보내어진다. 그런데 이미 여자의 자궁 안에는 악한 영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아기가 태중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며, 그 죄성 가운데 살아간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죄짓고 사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사명자를 보내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권면하신다. 그래서 그 말을 듣고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고,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세 전에 어떤 사람은 구원으로 예정되었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되었다는 말은 정확히는 틀린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복을 받을 그릇으로 예정되었다는 말은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예정되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옳은 말이 아니다. 처음부터 깨뜨려 버리기 위해 빚어지는 그릇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4. 시드기야가 바벨론의 4차 침공을 받았을 때,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중보기도를 부탁했는데도 왜 남유다는 멸망을 받았는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사람이 어떤 위기 상황에 봉착했을 때에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동안 시드기야는 어떻게 살았는가? 그는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애굽과 사람들을 의지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살아왔다. 또한 그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가두며 핍박해 왔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남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 멸망할 위험에 처하게 되자, 그는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하나님께 중보하여 기적을 좀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부탁을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바벨론의 군대를 성 안에 불러들여 칼로 백성을 죽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칼에 죽지 않는 자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래도 살아남은 자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제 남유다를 향해 진노와 분노와 대노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남유다 백성을 측은히 여기지 않고, 긍휼히 여기지도 않을 것이며, 불쌍히 여기지도 않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유다는 하나님의 허락과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을 하게 된다. 

 

5.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남유다를 심판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어떤 기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를 곧 심판하게 될 터인데, 그때에라도 그들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다(렘21:8). 이는 심판 중에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겠다는 뜻이다. 즉 남유다의 범죄로 인해 내려진 심판의 상황이지만 바벨론에게 항복하게 되면 그들의 목숨만을 살게 하실 것이지만, 끝까지 바벨론에게 대항한다면 그들 모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사람의 구원은 순전히 인간의 책임이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이나 국가가 혹 징계를 받고 있는 상황이더라도 그것 자체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 회개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깡통을 차고 빌어 먹어도 지옥만은 가지 마라"는 저자로서, 충남의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구병교회의 김상호 장로의 간증을 들어 보자. 그가 살던 마을은 대대로 일 년에 두 차례씩 신신제(산신령, 호랑이신)를 지내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가 결혼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그만 6남매를 1년 안에 다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보여 주셨고, 천사와 예수님의 방문도 받게 하신다. 그리고 교회가 없던 마을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자신의 첫째 아들을 목회자가 되게 하여 세계적인 능력의 사역자가 되게 만들어 주신다. 그렇다면, 왜 김상호 장로의 자녀들이 그때 죽었는가?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아내의 집안에 죄가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 집안에 무당이 무려 5명이나 있었으니 그의 윗대 조상부터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믿는 김상호 장로의 6남매가 희생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킨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6남매가 다 천국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어 징계를 받는 것과 지옥에 가는 것은 사실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가는 것이요,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회개하는 삶을 살아, 장차 천국에도 들어가고 우리의 후손들도 저주를 받지 않도록 하기를 바란다. 

 

2023년 03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9) 참 신과 가짜 신의 구별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렘7:1~10:25)_2023-02-16(목)

https://youtu.be/_el_yGJDSYI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40]

 

1. 예레미야서에서의 단편 예언 12개 가운데 제3예언은 어떤 것인가?

  예레미야서에는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나온다. 그것은 본론(2~51장)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2~25장). 이들 중에서 제3예언(렘7:1~10:25)은 예레미야 7장부터 10장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이 부분에서 왜곡된 성전숭배를 중심으로 한 총체적인 신앙 오염을 고발하고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이 선포된 시기는 정황으로 보건대, 아마도 남유다 제18대 여호야김(B.C.609~598 재위)의 즉위 초인 듯하다. 이때는 바벨론의 1차 침공(B.C.605년) 직전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3가지다. 첫째는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둘째는 남유다의 멸망이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려 주는 징표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별하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2.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레미야의 제3예언 중에서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은 예레미야서 7장에 나온다. 예레미야 7장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전 문 앞에서 선포했다고 해서 보통 '성전설교'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가운데 '성전설교'는 예레미야 7장 외에도 26장에 한 번 더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에 대해 예레미야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비록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루살렘 가운데에 성전이 있는 한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 이스라엘이 아무리 범죄하여도 하나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을 스스로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자기들을 할례를 받은 언약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램9:25~26). 그래서 그들은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멸망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 민족 만큼은 절대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즉 자기들에게 만큼은 재앙이 임하지 아니할 것이고, 칼과 기근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렘5:12). 그러나 이것 역시 모두 다 왜곡된 신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채 형식만 가지고 있는 자들을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보시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제사나 예배는 헛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성전제사나 할례는 헛된 것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이방신이나 우상들을 동시에 섬기는 신앙은 결코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는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분은 자기의 백성들이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렘9:24).

 

3. 남유다의 멸망이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서 이미 결정된 것임을 알려 주는 표징은 무엇인가?

  남유다의 멸망이 이미 결정된 것임을 알려 주는 표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유다의 가장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선지자와 제자들까지, 왕들과 백성들까지 총체적으로 부패하였다는 사실이다(렘8:10~11). 둘째는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을 좇아서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렘7:18,31). 즉 하나님께서 극도로 싫어하시는 1~2계명을 그들은 어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하도록 보낸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렘7:25~26). 그러나 하나님께서 확정적으로 그것을 알려 주는 표징으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사실이다(렘7:16, 참고11:16). 기도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막으신다면 더 이상 소망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참 신과 가짜 신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참 신과 가짜 신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가? 그것은 예레미야서에서는 2가지로 나온다. 그런데 이샤야서를 읽어 보면 또 한 가지 방법이 추가로 더 나온다. 고로 그것까지 합치면 약 3가지 정도가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천지를 창조하지 않았으며 자신도 피조물인 것들은 다 가짜 신이라고 하셨다(렘10:11). 하늘들과 땅 그리고 온 세계를 창조하지 않은 신은 가짜라는 것이다(렘10:11). 고로 이러한 신들은 역시 자신도 피조물로서,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창조주만이 하늘들과 땅 그리고 온 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 세계 안에 있는 것들 곧 물과 구름과 비와 번개와 바람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이다(렘10:12). 그러므로 가짜 신은 결코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이미 창조된 것들을 제한적으로 파괴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생명을 줄 수 없는 신은 가짜라고 하셨다(렘10:14). 그렇다. 가짜는 제한적으로 죽일 수는 있지만 결코 그들은 생명을 줄 수 없다. 이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늘 하시던 말씀은 자신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요4:14).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생명의 빛이다(요8:12). 나는 생명이다(요14:6)". 그렇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셋째, 이 말씀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지나간 과거는 혹 알 수 있는 것도 있으나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면 그는 가짜 신이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어도 역시 가짜 신인 것이라는 것이다(사41:21~23). 그렇다. 무당은 가짜 신을 믿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무당이 점을 쳐주는 것은 전부 과거의 사실만 말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점치러 온 사람에게 붙어 있는 악한 영에게 물어보아서 알아낸 정보를 말해 줄 뿐이다. 무당이 의지하는 귀신들도 사실은 천사였다가 타락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듣고 배워서 그리고 경험해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마치 그런 것처럼 속이고 있을 뿐이다. 특히 무당들은 귀신을 힘입어 점을 치는 자들이기 때문에 과거의 정보는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무당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이 클수록 더 많은 정보를 말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부다 과거의 정보일 뿐 미래의 정보는 하나도 없다. 만약 미래의 정보를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들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도록 점치러 온 사람에게 귀신을 딸려 보내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장래사나 후래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우상도 전능하지 않다. 일부 힘만 발휘할 뿐이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원래 천사요, 창조된 피조물로서 능력을 주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계급에 따라서 능력도 각각 다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서 악한 영들도 지식을 가지고 있고 능력도 있지만 그들이 가진 지식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분할 수 있는 기타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분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역시 있다. 그것에는 첫째로,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창조된 모든 것은 다 가짜 신이라는 것이다. 귀신도 천사였기에 어느 정도 정보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자존자가 아니다. 그들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짜 신은 동시에 존재가 불가능하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로 스스로 있지 않는 모든 피조물은 다 가짜 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가짜 신은 자기들도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을 떠난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서, 그것을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시든지,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시든지 하나님의 주관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나님 곧 여호와요 신약에는 예수님이신 한 분 하나님만 참 신으로 믿고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3년 02월 1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8) 진정한 회개의 조건 4가지는 무엇인가?(렘3:6~6:30)_2023-02-15(수)

https://youtu.be/ediVq8AnBAk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09]

 

1. 예레미야가 회개를 촉구하는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예레미야가 남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던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과연 남유다를 멸망함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예레미야가 남유다를 향해 회개를 촉구했던 것은 이미 예고된 멸망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 중에서 다만 몇이라도 건질 자를 건지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하기를 진정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남유다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2.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을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과연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했어도, 진정 예레미야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는 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 숫자를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성읍에서 한 명 정도요 족속 중에 둘 정도라고 말씀하셨다(렘3:14). 이 숫자가 회개의 외침을 듣고 구원얻을 자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보좌에 앉을 144,000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가 그 숫자만큼 적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읍에 한 명, 족속에 둘 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144,000명에 포함될 숫자를 말하는 것같이 보인다. 

 

3.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2번째 단편 예언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 말씀하신 단편 예언들이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장부터 25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서 제1예언은 2:1~3:5까지 말씀이며, 제2예언은 3:6~6:30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제1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이며, 제2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년)을 단행한 이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2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답습한 남유다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진실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유다 백성들이 비록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였으나 그들의 동참은 아주 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4. 남유다는 종교개혁 중에도 어떤 것을 답습하고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자매'라고 하셨다. '언니'가 '북이스라엘'이고 '동생'이 '남유다'라고 하셨다(렘3:6~7).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만 회개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해버렸다. 그때가 B.C.722년 남유다의 13대 히스기야왕 때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19대 호세아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앗수르의 살만에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다. 그런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모습을 자기들도 역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는 언니 북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다. 높은 산 위의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들을 섬기면서 그들에게 절하며 향을 피웠고 음식을 바쳤기 때문이다(렘2:20, 3:6).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변절자'라고 말씀하셨고, 이혼 증서를 써서 그들과 이혼한 관계라고 언급하셨다(렘3:6,8). 그런데 이것을 지켜본 남유다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라가고 있었다. 남유다도 북이스라엘과 똑같이 '돌'과 '나무'와 더불어 영적 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돌'이라 함은 남성신으로서, '풍요'를 상징하는 '바알신'을 가리키고, '나무'라 함은 여성신으로서, '다산'을 상징하는 '아세라신'을 가리킨다. 

 

5.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의 4가지 조건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주님께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4가지를 언급하셨다.

  그것은 첫째로, 가증한 우상들을 제거하되 망설이지 말고 제거하라고 하신 것이다(렘4:1). 이는 이방신들과 완전한 결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회개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과의 완전한 결별을 하는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들도 함께 섬겨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회개여야 한다고 밀씀하셨다(렘4:2). 즉 회개는 말이 아니라 삶이 따라오는 회개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행함으로 그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회개란 사실상 하나님께서 회개로 인정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요, 또한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회개 역시 죽은 회개일 뿐인 것이다(약2:26). 셋째로,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렘4:3). 이는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과 관념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낱낱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는 격이 되고 말아서, 결코 열매를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 마음이 잘못된 생각과 관념을 유지한 채로 회개하면, 회개의 모양은 있겠지만 그 결과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면 그 사이에서 씨앗이 싹은 틔우겠지만 결코 열매를 거두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로, 스스로 할례를 행하되 자신의 마음의 가죽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렘4:4).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 마음을 다해서 돌이키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심을 담지 않은 회개는 회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시야왕 때에 남유다 백성이 그러했다. 그들도 역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들은 위의 4가지와 같은 진실한 회개를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무인 그들에게 불이 되어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하셨다(렘5:14). 

 

2023년 02월 1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7)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무엇이었는가?(렘2:1~3:5)_2023-02-14(화)

https://youtu.be/6IszWb5P8OI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08]

 

1.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인물인데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가?

  예레미야는 구약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B.C.627년(요시야 13년)~B.C.586년(시드기야 11년)에 활동한 남유다 선지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를 예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뒤를 이어 메시야의 예표자로 불려졌기 때문이다(마16:14). 그는 예루살렘 성이 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엄청난 책망을 쏟아냈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예수님처럼 홀로 어쩌면 외로이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를 메시야의 예표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레미야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은 1장으로서 예레미야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결론은 맨 마지막 52장으로서, 예루살렘이 정말 멸망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여호여긴왕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남유다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중간이 본론 부분인데, 본론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로, 먼저 유다의 심판에 관한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나온다(2~25장). 그리고 둘째로 예루살렘 멸망 전후에 있었던 이야기와 심판 예언이 나온다(26~45장). 그리고 셋째로, 남유다 주변에 있는 10개국에 대한 미래와 운명 예언이 나온다(45~51장). 그중에서도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본론의 유다의 심판에 관한 단편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 2~25장의 맨 첫 부분으로서,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첫째 예언에 해당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때를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직후(B.C.627)의 어느 시점으로 적어도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을 아직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받은 것으로 본다. 

 

3.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의 핵심 사항으로서,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대체 무엇인가?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2:1~3:5)의 핵심 사항은 예레미야 2:13에 나와 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저수조들)이니라(렘2:13)" 그렇다. 남유다 백성이 두 가지의 악을 행한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또 하나는 물을 가두어 놓기 위해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물을 저장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인데 이같은 사실은 2:1~2:12에 나오며, 또 하나로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인데, 이것은 2:14~3:5에 그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죄가 회복이 불가능한 죄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심판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심판으로서만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멸망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만 죄가 조금 덜 차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죄가 가득 차야(관영해야)만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라. 그때 죄가 관영했다고 했다. 즉 그때도 역시 죄악이 가득찼기에, 하나님께서도 홍수를 통해 전 인류에게 심판을 행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었는가? 그것은 좀 전에 렘2:13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첫째는 하나님을 버린 죄요, 또 하나는 터진 웅덩이를 판 죄인 것이다. 

 

4. 회복 불가능한 2가지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남유다가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은 무슨 죄 때문인가? 그것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를 저버린 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어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민족의 태동기 때 곧 출애굽 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따랐지만(렘2:1~3) 그들이 기름진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그만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이다(렘2:4~8).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곳 사막에서는 농사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만을 바라고 먹었으며,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름진 땅, 과목이 있고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에 이르자 금새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도 살 만했기 때문이다. 이는 남유다가 가나안 정착 때부터 배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렘2:4~8).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방 지역의 사람들 곧 서쪽의 깃딤의 사람들이나 동쪽으로 게달 민족을 보더라도,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의 신들만큼은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유다는 자신의 신을 무익한 것들과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렘2:10~11).

  둘째, 그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터진 웅덩이를 판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물이 귀한 나라다. 그래서 물이 생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천국의 모든 땅을 적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치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물을 저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광야는 물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도착하니 물을 가둬놓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저마나 농사를 위해 웅덩이(저수조)를 만들어 농사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다 터진 저수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했던 가나안의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애굽과 앗수르)은 생수를 계속해서 공급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남유다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섬기기 시작한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은 다 가짜였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은 결코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 비를 제공해 줄 수는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비를 공급해 줄 수 있는데, 남유다 백성들은 터진 웅덩이를 하나님으로 알고 그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5.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사항은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을 신명기의 말씀을 들어서 언급하신다. 그것은 어떤 남자의 아내가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어서 이혼증서를 써서 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으나 그 남자에게서 또다시 버려질 경우 다시 본 남편이 그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고 하셨다(신24:1~4). 그러므로 그 아내가 아무리 불쌍하다고 할지라도 전 남편은 그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는 것이 율법 규정이었다. 그러므로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살고 있는데, 그들도 얼마 안 있으면 이방신들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또다시 받아 주겠느냐고 물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소시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노여움을 한없이 내지 않으실 것이고, 끝까지 노여움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렘3:4~5).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면서 반문하신다. 그렇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복음이 들어왔던 초기에는 가난했고 병들었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눈물로 기도하여 잘사는 나라를 일구어 놓았는데, 이제 나라가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구원하였으니 그분을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요, 자신의 구원은 만세 전에 작정된 전적인 예정에 따른 것이니 자신은 절대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과거에는 내 아내였지만 다른 남자에게 가서 그 남자에게서까지 버려진 아내를 다시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1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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