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37) 다윗의 분노를 잠재운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삼상25:1~31)_2021-12-28(화)

https://youtu.be/mIFI92w4rQ4  [혹은 https://tv.naver.com/v/24314165 ]

 

 

1. 사무엘상 25장은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가?

  사무엘상 25장은 크게 3가지 이야기가 쓰여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무엘의 죽음이다(삼상25:1). 이제 사무엘이 84세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사사 시대의 마지막 주자로서 부름을 받아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였고,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음으로 왕정 시대를 열었던 기도의 사람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대처가 나온다(삼상25:2~38). 이 이야기는 뒤에 계속해서 다룰 것이다. 세 번째는 두 여인과 다윗과의 결혼 이야기다(삼상25:39~44). 다윗은 자신의 아내 미갈을 사울이 다른 사람 곧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시집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두 명의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는 마온의 과부였던 '아비가일'이었고, 또 한 사람은 유다지파 이스르엘 사람 '아히노암'이었다. 참고로 아히노암은 다윗의 세 번째 부인으로서 다윗의 맏아들 '암논'을 낳은 여인이 되었으며, 아비가일은 다윗의 두 번째 부인으로서 다윗의 둘째 아들인 '엘리압'(삼하3:3) 혹은 '다니엘'(대상3;1)이라고 이름하는 아들을 낳은 여인으로서, 오늘 두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이 여인의 남편 나발을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죽게 되었을 때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녀에게 청혼을 하고 결국 다윗의 두 번째 아내가 된다. 

 

2. 마온의 거부였던 나발, 그는 누구이며 그는 왜 다윗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그에게 모욕을 주었는가?

  유다지파 지역인 '마온'에 갈렙의 후손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나발'이라는 사람이었다(삼상25:2). 그는 부모로부터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자로서, 당시 양이 무려 3천 마리에, 염소를 1천 마리를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마온에 사는 사람들 중 갑부에 속한 자였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좀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는 거칠고 난폭했으며 행실이 악하였기 때문이다(삼상25:3). 심지어 그의 종들도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의 아내는 달랐다. 그의 아내는 '기쁨을 주는 자'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아비가일'이었는데, 그녀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고 용모도 아름다웠다(삼상25:3).

  그런데 어느날 나발에게 양털 깎는 시기가 찾아왔다. 이때는 사실 양떼의 주인에게 많은 수입이 들어오는 시기이므로 보통은 주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인다. 그러자 다윗도 자기의 청년들 10명을 그에게 보내어 그로부터 은혜 입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나발은 열렬한 사울 지지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사울왕으로부터 뛰쳐나간 다윗이라고 그를 맹비난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그는 다윗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다윗은 대체 어떤 놈이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더냐? 요즘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뛰쳐나간 종이 많이 있다는데, 내가 어찌 내 떡과 내 물 그리고 나의 양털 깎는 자들을 위해 잡은 고기를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놈들에게 나눠주겠느냐?(삼상25:20~11)" 이처럼 나발을 다윗을 경멸하였다. 아마도 그는 사울왕이 블레셋을 쳐부수고 난 뒤 나발의 양떼들이 있던 곳 곧 갈멜에다가 전쟁 승전 기념비를 세운 것을 보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사울왕을 흠모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사실 어느 지파 사람인가? 그는 유다지파의 사람이며, 그것도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했던 경건한 갈렙의 후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다지파 사람인 다윗을 이렇게 홀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나발의 양치기를 얼마나 돌보아 주었으며 성벽이 되어 주었는가? 그는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자였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만 그는 자기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잔치를 벌여놓고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사실 자기의 배만 위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 줄 모르는 몰인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3. 나발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어떤 결단을 내렸는가?

  그러자 나발이 자신의 종들을 통해 자신의 청원을 거절하고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이내 분개한 나머지 나발과 나발에 속한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려고 작정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에게 속한 남자들 600명 중에서 400명에게 칼을 찰 것을 명령하였다(삼상25:13). 그런데 그때였다. 하나님이 도운 일이 일어난다. 양치던 종이 주인의 아내인 아비가일에게 찾아가, 나발이 다윗이 보낸 자들을 그만 빈 손으로 돌려보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모욕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아마 다윗이 보낸 자들을 아비가일은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러자 아비가일은 즉시 다윗에게 갖다 줄 음식을 준비한다. 떡 200덩이, 포도주 두 가죽 부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식 다섯 세아(70리터), 건포도 100송이 그리고 무화과뭉치 200개를 가져다가 나귀에게 싣고 다윗에게로 향한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은 잘 알지 못하게 호젓한 길을 따라 다윗에게로 간 것이다. 

 

4. 분노하여 군사를 끌고 오던 다윗은 왜 나발을 치려고 했던 뜻을 접게 되었는가?

  그때였다. 다윗 앞에 어떤 여인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말하는 것이었다. "내 주여 원하건대 그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삼상25:23)." 그녀가 그때 한 말은 2가지였다. 한 가지는 자신의 남편 나발의 행한 일을 마음에 두지 말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리석은 자로서 그렇게 행동한 것 뿐이라고 말하고는, 우선 자신이 다윗의 종들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받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두 번째 말을 이어갔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윗 왕의 미래에 관한 조심스러운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다윗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며 자신도 그렇게 될 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다윗이 나발과 그에게 속한 남자들을 쳐서 죽여 없애버린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훗날에 누가 말하기를, 다윗이 그때 무죄한 피를 흘렸고 힘이 약한 원수를 보복하고 다녔다고 한다면, 다윗에게 큰 흠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에게 한 치의 불명예가 가지 않도록 나발을 죽이는 일을 재고해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죄값을 물을 일이 있다면 여종인 아비가일에게 물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노여움을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실 다윗의 원수는 사울왕이었다. 그런데 만약 다윗이 나발을 친다면, 권세있는 사울 왕에게는 아무 것도 대항하지 아니하고, 마온의 약한 사람 그것도 아무것도 무장하지 않은 시골 사람을 죽여 없앤 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틀림없이 다윗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장차 왕이 될 자는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다윗의 결정을 심사숙고해달라는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그녀의 말로 인하여 감동을 받는다. 그녀가 행한 행동과 그녀가 한 말이 너무나 지혜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그대로 받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녀의 분별력있는 행동을 두루 칭찬한다. 그렇다. 한 여인의 분별력 있고 사려깊은 말이 분노하고 있는 다윗의 마음을 가라앉게 만들어, 훗날 다윗의 명예를 흠이 가지 않게 한 것이다. 

 

5. 다윗의 도피 여정의 이야기 가운데 왜 아비가일과 그리고 아히노암의 이야기가 들어 있을까? 

  사실 다윗의 도피 여정은 숨 쉴 틈이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사무엘서 기자는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이 사건들 사이에 넣어서 소개해주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기 위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붙여주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다윗에게는 다윗과 함께 새로운 왕국을 건설한 거물급의 인물들을 붙여주셨다는 것과 아비가일과 같은 현명한 사람을 붙여줌으로 다윗으로 하여금 왕으로서 품위를 갖추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다윗을 돕는 사람이 붙었듯이 듯 자신을 돕는 지혜롭고 현명하고 유능한 인재를 붙여달라고 말이다. 또 하나는 다윗을 따르던 자들이 먹을 식량문제가 어떻게 공급되었는지를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즉 다윗과 함께 자들은 장정만 600명이었으니 아마도 여성이나 아이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광야에서 도망다니며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었는가? 그것은 처음에는 베들레헴에 살던 자기의 가족들로부터 공수해 올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식량문제는 걱정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왜나하면 아비가일이 유다지파의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다윗에게 시집옴으로 그녀의 남편이 가진 재산이 다윗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취한 부인이 바로 '아히노암'이었는데, 이 사람 역시 유다지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주지하시다시피 아비가일은 유다지역인 마온과 갈멜지역에서 가장 부자였었다. 그리고 아히노암 역시 유다지역에 속한 이스르엘의 유력한 사람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훗날 다윗이 유다에서 새로운 왕국을 세울 때에 유다 지역의 사람들 모두가 하나같이 다윗을 전적으로 응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21년 12월 28일(화)

정병진목사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는 어떤 자일까? 다윗은 시편14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런데 중의적인 방법으로 그를 소개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두번째 부인의 전남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두려움이 무엇인지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누구이며, 그 최후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알아보자.
 

 

1. 들어가며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는 누구인가? 사실 교만이라는 품성은 원래 인간의 품성이라기보다는 사탄의 품성이었다. 그가 하늘에 있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교만한 마음을 품었고, 그 마음을 에덴동산에서 인류에게도 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사탄의 품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곧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면서, 교만한 자의 최후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는 누군가?

  시편14편에서 다윗은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다윗은 그가 바로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시14:1). 그렇다면, 이 세상에 가장 교만한 사람의 특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다윗은 시편14편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사람의 특징들을 4가지로 열거해 놓았다. 이 세상에서 교만한 사람은 첫째,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이 주인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횡포를 통제할 수는 없다(시14:1). 둘째, 그는 늘 자의적으로 행한다. 그래서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일하며 자신의 배만을 위해 살아간다(시14:3). 그리고 셋째, 열심히 이용하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내어버린다(사14:4). 그래서 자신에게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제거해버리거나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넷째, 하나님을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을 미워하며 핍박한다(사14:6).

 

3. 다윗이 초기에 경험했던 교만한 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렇다면, 다윗에게 있어서 이러한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다윗은 그의 이름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 다윗을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말했다(시14;1). 여기서 우리는 '어리석은'이라는 형용사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단어가 '나발'이라는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윗의 초기 도피생활 가운데 그에게 악인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마온출신의 나발이라는 사람이었다(삼상25:2~3). 그는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었다. 그에게는 양이 3천마리, 염소가 1천마리나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종들도 여럿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완고했고, 행실이 악했으며, 은혜도 몰라보는 파렴치한이었다. 어느날 다윗이 같이 도피하는 자들 600명과 함께 갈멜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때 갈멜에 있는 나발의 양떼들을 보호해주고 지켜준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둘이 상종할 동안에 누군가 다치거나 양떼 중 잃은 것이 없었다. 어느날 나발이 양털을 깎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자신의 소년 10명을 보내 나발로부터 무엇인가 은혜를 구했다. 하지만 나발은 자신의 떡과 물과 고기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자들에게 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다윗은 자신의 군사력으로 얼마나 나발의 양떼들을 빼앗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살았다. 하지만 나발은 그 은혜를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칼을 찬채 나발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발의 종 하나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주인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에게 고하였다. 아비가엘은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러니 즉시 떡과 포도주, 요리한 양고기와 볶은 곡식 그리고 건포도와 무화과뭉치를 자루에 넣고 나귀에게 싣고 다윗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그의 지혜로운 말은 다윗을 감동케하고도 남았다. 결국 다윗은 그녀를 받아주었고 그녀의 남편과 종들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나발이 왕의 잔치같은 잔치를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있지 아니한가? 그러자 그 다음에 술이 깬 나발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나발은 그 즉시 마음이 무너지면서 몸이 돌과 같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10일 후에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자 그만 죽고 말았다. 그러자 훗날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아비가일을 데려와서 자신의 두번째 아내로 삼는다.

  이 사람이 바로 나발이다. 나발은 하나님이 없다고 사는 자였다. 오직 자신의 부와 권력을 믿고 자신의 육체의 쾌락만을 위해 살아온 자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실천하지 않았다. 고아와 객과 과부를 선대하라고 했지만 그는 객들인 다윗의 소년들에게 매우 인색했다. 아니 그들을 경멸했다. 또한 자신의 양떼를 보호해주고 종들을 지켜준 은혜를 저버렸다. 그가 바로 어리석은 자 곧 나발이었던 것이다.

 

4. 교만한 자의 최후는 어떻게 돌변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 곧 악한 자의 종국은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시14:5)" 이 말은 악행을 저지르며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자기맘대로 살아가는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잘 대변해준다. 악인 혹은 교만한 자의 최후는 한 마디로 비참하다. 왜냐하면 심판과 죽음의 공포에 휩싸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발은 다윗을 악하게 대한 것에 대해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다윗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왔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그만 낙담하여 그의 몸이 돌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너무나 두려웠던 것이다. 죽음이 자기를 엄습해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공포에 질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고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겸손히 선행을 실천하고 회개생활을 해 온 자는 죽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겸손하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들을 용서해주실 것을 겸손히 간구한다. 그리고 주님의 속죄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천군천사가 자기를 데리러 오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만한 자 곧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오직 자기자신만을 믿고 살아온 자는 죽음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그에게 죽음은 공포 그 자체다. 심판을 받아 어떤 상황에 떨어질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발이 그랬다. 자신의 부요와 권력을 믿었을 때에는 가진 자로서 무수한 횡포를 저질렀다. 하지만 자기보다 더 힘쎈 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과거에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있었기에, 나발은 그만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소화나 제대로 되었을까 의심스럽다. 밥이나 제대로 목으로 넘어갔을지 의심스럽다. 결국 나발은 10일이 지난 후에 죽고 말았다.

 

5. 나오며

  그렇다. 악인은 자신의 악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악인은 빨리 죄인의 신분으로 자신을 바꿔야 한다. 하나님은 악인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고 겸손히 하나님을 구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자를 사랑하신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 수가 없다. 그리고 오직 자기의 육체만을 위해 살며, 이웃에게 선을 행하지도 않고 자비를 베풀지도 않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자신이 악하게 살아왔다면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한다. 그동안 자신이 인생을 잘못 알고 살아왔음을 겸손히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긍휼을 간구해야 한다. 자신의 지은 죄들에 대한 주님의 속죄를 간구해야 한다. 그래야 심판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떨지 않게 된다. 그래야 죽을 날이 가까울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 충만해진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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