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5(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왜 한 번 얻은 영생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는가?(요10:26~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JHlTrIszdMs  [혹은 https://tv.naver.com/v/29459531 ]

 

1. 들어가며

  어떤 분들은 한 번 영생을 얻었으면 그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주로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분들에게 속한다. 이는 구원에 있어서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구원의 주권이 주님께 있다는 것은 백 번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는다면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구원받는 일거수 일투족을 다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고 주관하시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준비해두신 후에 인간이 회개하고 믿어서 구원받기를 바라시고 계시기 때문이다(딤전2:4,벧후3:9). 다시 말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구원받도록 그에게 강제로 믿음을 쑤셔 집어넣거나 아니면 주리를 트시는 분이 아닌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해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으로 떨어졌다면, 하나님은 결코 심판 때에 그를 심판하실 수 없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뜻대로 다 해놓고 우리더러 왜 믿지 않았느냐고 다그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믿어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그 이름이 지워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통해 영생을 이미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잃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 성경말씀이다(계3:5).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한 번 얻은 영생이라도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리고 한 번 얻었던 영생을 우리가 잃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간직하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영생'과 '생명'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어떤 분은 '영생'과 '생명'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생을 얻는 것이 곧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의 줄임말로서, 생명과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영생'은 어떤 특별한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영생'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성경에서는 '영생'을 '아이오니오스 조에(ionios zoe)'라고 말한다. 이 말은 보통 우리말처럼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번역은 그 말이 의역이지 정확히 번역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아이오니오스 조에'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시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식어 '아이오니오스'는 명사 '아이온'의 형용사형으로서, '아이온'은 '시대(age)' 혹은 '세대'(generation) 혹은 '세상'(world)라고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이오니오스 조에'는 '시대의 생명'이라고 번역해야 가장 적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생명 중에서 어느 시대에 필요한 생명이 가리키는 특별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생명'이란 무엇이며 '생명'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생명(=조에)'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조에'라는 생명은 육체의 생명을 가리키지 않는다. 육체의 생명은 헬라어로 '비오스'라고 한다. 육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명은 '비오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그런데 '조에'라는 생명은 영혼에게 필요한 생명으로서, 이것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생명이다. 왜냐하면 이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 있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사람들에게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그것을 취할 수 있도록 에덴동산에 과일의 형태로 놓아두셨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불순종하게 되어 에덴동산에서 그만 쫓겨나고 말았다. 그래서 생명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예수님을 생명으로 먹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1)" 그렇다. 예수님을 생명의 떡으로 취하면 사람을 영생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자기자신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요5:26). 그런데 예수께서는 살아있는 인격체이므로 그분을 우리가 직접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죽음의 과정을 통하여 그 생명을 해방시켰고 그 생명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바람처럼 호흡처럼 주시기 위해 성령이 되셨다(고전15:45, 고후3:17). 이제는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받으면 그 사람 속에 생명이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 이 땅에 들어오셨으며, 먼저 인간이 지은 죄를 속량하시기위해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기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누구든지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요5:24).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생명주는 영 곧 성령이 되셨다고 언급한 바 있다(고전15:45).

 

4. '영생'이란 무엇이며, 또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영생이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영생'이란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시대의 생명'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영생'이라고 하니까,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불신자들도 죽은 후에 지옥에서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생이라는 단어가 시간과 장소에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마디로, '영생'이란 다음 시대에 우리가 필요한 생명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 영생은 이 땅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영생은 우리가 죽고 난 후 다음 시대에 과연 어디서 살 것인가를 결정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이 다음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수고한 자들은 내세(오고 있는 시대)에서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8:29~30). 왜냐하면 영생은 다음 시대에 필요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고로 영생이란 한편으로는 '얻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장애인으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마18:8~9). 왜냐하면 영생이란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우리의 영혼이 들어가는 다음 시대의 장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얻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그때 대신하여 들어오시는 성령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우리는 다음 시대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생명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5. 영생은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인가?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영생을 주시려 오셨다는 것을 알고 그분의 피가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비로소 생명을 얻어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이다(요5:24).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얻은 영생을 과연 우리가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 어떤 분은 한 번 얻은 영생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에게 들어오시는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믿는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4:16~17에 나온다. 우선 그 말씀을 우리말 성경으로 그대로 옮겨보자.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후에 아버지께 구하여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러한 보혜사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또한 우리 속에 계시 것이라고 하셨다. 이때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으로만 성경을 본 사람은 한 번 믿는 자들에게 들어오신 성령은 결코 우리를 영원토록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을 볼 때 우리는 2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해석에 조금 어려움이 있으면 헬라어원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살펴보는 것이요, 둘째는 자신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인지를 다른 성경본문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럼, 첫째로, 헬라어원문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요14:16의 헬라어원문은 이렇다. "그리고 나도 역시 아버지께 장차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다른 보혜사를 장차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함께 '그 시대까지' 계속 있게 하기 위해서"(요14:16 헬라어직역). 그렇다. 먼저 성령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까지'로 함께 있기 위해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한 번역이다. 여기서 그 시대는 '다음 시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영원토록'이라고 번역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우리와 영원토록(그 시대까지) 함께 있게 하기 위하여 보혜사를 보내주신다는 문장이 바로 '가정법'문장이기 때문이다. '가정법'이란 실제가 아닌 것을 추측하거나 있음직한 가능성이나 가상을 나타내어 미래적인 의미를 띠는 문장법(mood)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한 번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신 성령은 반드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가정법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예수님을 대신하여 보내주시는데 이 성령을 보내주시는 이유는 성령이 다음 시대에서도 계속해서 성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함인 것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성령이 모든 사람에게 다음 시대까지 함께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로, 다른 성경본문에서는 한 번 들어오신 성령께서 떠나시지 않고 계속해서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는가? 한 개의 구절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우선 에베소서 4:30을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슬퍼하게) 하지 말고 있어라. 그분 안에서 너희가 구원(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렇다. 성령께서는 구원의 날까지 곧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우리를 인치시고 보증해주신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다음은 우리가 성령을 어떻게 대우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안에 들어오신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 했다면 그는 구속의 날에 성령이 떠나가실 수도 있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보혜사는 우리와 이 시대 뿐만 아니라 다음 시대까지 계속해서 함께 하도록 하기 위해 보내주신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을 계속해서 근심하게 한다면, 성령께서 이 다음 시대까지 계속해서 동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본문의 취지인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9에서 "너희는 성령을 계속해서 소멸하지(끄지) 말고 있어라"고도 하였다. 이는 어떤 믿는 이는 자기 속에 들어와 계시는 성령을 자꾸 꺼버린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어떤 지시를 그에게 내리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성령의 권면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가 어느날 그가 문득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때에도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어주시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고 심판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이다. 그날 그분은 긍휼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때도 성령께서 우리를 어여삐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때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까지 몽땅 강제로 끌고 천국에 들어가시는 분이 아니시다. 더욱이 한 번 영생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절대 변동이 없는 것이라면, 한 번 기록된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계3:5). 늘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을 소멸시켰던 자들은 그날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6. 왜 예수께서는 한 번 얻은 영생이라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한 번 얻은 영생이라도 이렇듯 영생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는 믿는 우리가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그날까지 늘 깨어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마24:42).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다가 안일한 생각 혹은 방종 가운데 있다가 그만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그만 그날 성령이 떠나가심으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경성하라고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는 그날까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할 것이다. 죽음의 그 순간까지 어느 누구도 구원이 완전히 보장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깨어있을 때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함으로서, 이 땅에서 살동안에 천국에서 받을 기업을 잘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마24:45~47). 늘 경각심을 가지고 깨어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행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때에 주님께서 부탁하신 말씀에 순종하고, 맡겨주신 일에 충성함으로 하늘에서 받을 기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님은 영생은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갈5:16). 우리가 영생을 잃어버리는 것은 결국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신 성령이 우리에게서 떠나감으로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깨우쳐주심에 늘 민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그날에 버림을 받아 슬피 울며 자신에 대해 이빨을 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그날부터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회개하라고 권면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끄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슬퍼하게 하거나 그분의 활동을 소멸시켜 버리지 말라. 그러면 그는 결국 멸망 곧 죽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사망 안으로 들어갈 것이기 말이다. 

 

7. 나오며

  고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보전할 수 있도록 2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요10:27~28). 그것은 첫째, 주님의 음성을 계속 들으라고 하셨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는 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섬겨주며,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라. 둘째, 주님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라고 하셨다. 이는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하던 일을 우리도 뒤따라서 행하라는 뜻이다. 가난하고 병든 자를 심방하고 그들을 고쳐주며 천국복음을 전파하라(마9:23). 이런 자가 다음 시대에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죽는 날 성령께서 떠나가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죽는 날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에 들어가게 될 있으며, 하늘에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장만해둔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히 얻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그 영생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받은 영생을 잃어버리지 않고 보전할 수 있도록 날마다 깨어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하여 하늘의 기업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다음 시대에는 반드시 영생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2년 09월 25일(주일)

정병진목사

 

천국에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행위책이요 또하는 생명책이다. 이 책들 중에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책은 '생명책'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이름들 중에 왜 주님은 이 책을 '생명책'이라고 명명하신 것인가? 그리고 언제 이 생명책에 우리 개인의 이름이 기록이 되는가? 그리고 한 번 기록된 이름은 절대 지워지지는 않는 것인가? 그런데 오늘 말씀에 의하면 사데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그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지워지고 있는 이름을 다시 살려내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 생명책에 관한 거의 모든 진실이 총망라되어 있다.

 

2022-04-03(주일) 주일낮예배(2부예배)

제목: 천국복음(37) 천국의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계3: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KA28EQQPbA [혹은 https://tv.naver.com/v/26080818 ]

 

1. 들어가며

  사람이 구원받는 여정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교회에 출석할 때부터인가? 아니면 세례를 받을 때부터인가 아니면 방언을 말할 때부터인가?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정확한 대답은 바로 이렇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기록되는 순간부터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때부터다. 이때쯤에 사람은 거듭나기 때문이다(요3:5~6). 그렇다면 사람이 거듭 태어나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되고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었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인가? 그런데 오늘 주님 말씀을 들어 보니, 한 번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 할지라도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그렇다면 왜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 이렇게 지워질 수가 있는 것인가? 생명책에 기록된 내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사람의 구원을 알려 주는 최종적인 생명책은 왜 생명책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사람이 죽게 되면 그는 심판대 앞에 있는 두 권의 책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하나는 생명책이요 또 하나는 행위책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행한 모든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중에 어떤 이는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 올려놓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의 이름을 하나의 책에 기록해 두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 책을 예수께서는 '생명책'이라고 명명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책을 두고서, '사랑책'이나 '인내책'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생명책'이라고 부른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기록된 이름일지라도 생명책에서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하늘에 있는 건축 천사들도 매일 생명책에 자기가 집 짓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지를 확인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 건축 재료가 덜 올라오고 어느 순간이 되면 안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사 뿐만 아니라 나도 매일 아침, 내 이름이 생명책에 계속 남아 있으며, 빛나고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3. 하늘에 있는 생명책은 어떤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가?

   하늘에 생명책이 있지만 그것을 직접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에는 그것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더 많아졌다. 그래서 생명책을 직접 본 이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생명책의 비밀과 그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지금까지 몇 가지 생명책에 관한 이야기는 생명책을 직접 본 사람의 간증을 모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경의 기록처럼 '진리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신앙생활에 유익한 것이기에 여기에 말씀드리는 것이다. 

  첫째, 생명책에 이름은 기록 천사가 기록한다. 하늘의 기록 천사들이란 생명책과 행위책을 관리하고 쓰고 지우는 것을 담당하는 천사들이며, 이 천사들을 총지휘하는 이는 기록 천사장인 우리엘이다. 둘째, 이 책은 한 번에 수억 명이라도 동시에 기록할 수 있다. 하늘에 있는 책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기록되기도 하고, 동시에 지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셋째, 생명책의 한 페이지에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며, 이름의 크기가 각자가 다르다. 넷째, 천국에서 상급을 많이 쌓아 둔 자의 이름은 크고 두껍고 선명하다. 반대로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거의 없는 자는 이름의 크기가 작고 얇고 흐릿하다. 상급이 쌓일수록 이름은 더 두꺼워지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일수록 그 이름에서 강렬한 빛이 흘러나오며, 이름 글자에 자수들이 수놓아지기도 하고, 그 이름에서 향기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다섯째, 그런데 커다란 이름 밑에는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간단한 평가가 기록이 된다. 여섯째, 평가 밑에는 작은 글씨로 그 사람이 상급받을 일을 한 것이 쓰여져 있다.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 일을 많이 하신 분도 있으며, 그것이 넘쳐서 포스트 잇이 붙여져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한 페지이에 1/4, 1/8, 1/16, 1/32, 1/64정도만 기록이 된 자들도 있다. 일곱째, 어떤 분들은 그가 하나님께 칭찬받은 부분 혹은 일생에서 중요한 일의 한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기도 한다. 여덟째, 그런데 생명책에 이미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세속에 물들어 살다가 지은 죄들을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그 이름이 지워지고 만다. 아홉째, 천사가 이름을 지울 때에는 천사가 지우개로 지우든지, 천사의 손으로 직접 지우던지,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칼로 도려내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적힌 종이를 찢어 버리기도 한다. 열째,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 그에게 파송되었던 수호 천사도 그만 그의 곁을 떠나가게 된다. 열한째,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는 성밖으로 쫓겨나게 되며 심지어 어떤 이는 불못에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는 천국에 들어가서 꼭 다시 확인해 보시기를 바란다. 아마 다 맞을 것이지만 말이다.

 

4. 왜 사데 교회 성도들 중의 대부분은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질 위기에 처해 있었는가?

  '사데'라는 도시에는 교회가 한 개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교회가 여럿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죽어 있었다. 살아 있다고 하는 명성은 자자했으나 예수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왜 그랬는가? 그것은 3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그들이 깨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계3:2).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죄인지도 알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안일함과 방심 때문이었다. 이는 그 도시의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인 부요함도 함께 작용했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 도시는 천연 요새와 같은 도시여서 일찌기 잘 함락되지 않은 도시였기 때문이요 또한 그 도시는 금광이 있어서 금이 풍성하여 아주 부자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안일한 생각 속에 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온다면 그분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게 된 것에는 2가지 원인이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그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그들의 지도자가 바른 가르침으로 그들을 깨우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계3:1).

  둘째는 처음에 받았던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으며, 잘못된 행위들을 회개하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계3:3). 그들은 처음에 받은 말씀과 처음에 들었던 말씀을 모두 잊어버렸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성도다운 삶인지를 아예 잊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그들이 처음에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기억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즉시 회개하라고 하셨다. 그들은 어느새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을 잊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지옥에서 나올 수 없다는 말씀을 주의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그들은 부자였지만 가난한 이웃 형제를 돕는 데도 인색하였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는 그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았기 때문이다(계3:5). 그들은 주님을 시인해야 하는 자리에서 주님을 감추고 있었다. 자기들은 예수님을 안 믿는 척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 보실 때에 그들은 더이상 성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이 교회는 겉으로는 살아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죽은 교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의 행위들 중에서 온전한 것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거의 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5. 생명책에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주께서는 3가지로 처방전을 내리셨다. 첫째, 그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계3:2).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성도의 바른 삶인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또 묻고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거듭날 때에 들어오셔서 살고 있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주의 종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고 하셨다. 성도들을 깨우는 것은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주께서 오늘이라도 당장 오신다면 부끄럽지 않는 모습으로 설 수 있도록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 흰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셨다(계3:4).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옷이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말씀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2가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하셨다. 첫째는 더럽혀진 옷을 희게 빨아야 한다고 하셨다(계3:5). 이것은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 내는 것이다(계22:14, 7:14). 그리고 둘째는 빛나는 옷으로 단장해야 한다고 하셨다(계3:5). 그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 그들의 옷이 빛나게 하는 것이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 때에 입을 옷을 단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것이다(계19:7~8). 셋째,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계3:5). 그들은 돈 때문에 그리고 사회적인 관계 때문에 주님을 모르는 것처럼 부인하고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주님을 시인해야 할 자리에서는 주님을 시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삶 속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있다면 그날 심판의 때에도 주님께서 그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마10:32~33). 그러므로 신자는 불신자처럼 살 것이 아니라 성도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6. 나오며

  오늘날 교회도 여전히 사데 교회와 같은 경우가 많다. 영적으로 죽어 있지만 자신이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는 것이다. 깨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계3:2). 왜냐하면 자기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도 않고 있고, 그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계3:1).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의 종들이 영적으로 잠자고 있으며, 잠자는 성도들을 깨우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계3:1). 또한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며,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사상이 교회 안에 파다하게 있기 때문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 곧 행함으로 믿음의 온전함이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인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구원받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마7:21).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혹시 그렇게 살지 않고 있다면 그는 빨리 회개해야 한다.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보이려고 금식할 것이 아니라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해야 하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들보를 돌아보아야 한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한다.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고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듣고 그냥 끝내 버릴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실천하여 자신의 천국 집을 반석 위에 지어야 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에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야 할 때에는 그것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사회적인 제약을 받는다 하여도 기꺼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어떤 커다란 죄를 범해서 만이 아니다. 하루 하루 깨어 있지 않는 것, 말씀대로 실천하지 않는 것, 죄인 줄 알게 되었지만 회개하지 않은 것, 주님을 시인할 자리에서 주님을 모른 체 한 것이 바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하는 중요한 원인들이다. 주여, 우리의 잘못과 허물을 이 시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여 주소서. 

 

2022년 04월 0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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