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신앙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꾸었을 때 베풀어지는 놀라운 은혜(수2: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ofjMIS9-PLc  [혹은 https://tv.naver.com/v/29634973 ]

 

1. 들어가며

  설교의 주제는 크게 두 종류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회개와 순종을 강조하는 설교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는 설교다. 오늘은 이것들 중에서 은혜와 긍휼을 강조하는 말씀을 정해 보았다. 사실 신약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은혜'라고 할 수 있다.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보통 '은혜'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애(인자)'일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헤쎄드'이다. 헤쎄드는 '인애, 인자, 자비, 긍휼, 친절, 호의'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인데, 이것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제일 큰 속성의 하나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그 인자하심(헤쎄드)이 영원하다는 말씀을 자주 듣게 된다(시105:5,59:17). 그리고 오늘 말씀에도 등장하고 있다(수2:12). 왜냐하면 하나님은 원래가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분이시고 긍휼하심이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이방인이었다가 헤쎄드의 은혜를 받았던 사람은 대체 누구였을까? 우리는 그러한 사람의 하나로서,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기생 라합의 생애에 나타난 헤쎄드의 은혜를 나누어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기생 라합은 과연 어떤 하나님의 헤쎄드의 은혜를 받은 것일까? 그리고 그녀가 헤쎄드의 은혜를 받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던 것일까? 

 

2. 기생 라합은 어떤 여인이었을까?

  사람에게는 별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라합에게도 별명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 앞에 꼭 '기생'이라는 말이 붙어다닌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라합'이라는 사람은 '여호수아서'에서만 나오는 이름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라합이라는 이름이 세 군데에 걸쳐서 나오는데, 하나는 마태복음 1장(마1:5)에 나오고 이어서 히브리서 11장(히11:31)과 야고보서 2장(약2:25)에도 나온다. 그런데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서는 라합이라는 여인의 이름 앞에 별명이 붙혀져 있다. 그것은 '기생'이라는 것이다. 그럼 '기생'이라는 단어는 어떤 뜻인가? 이것을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보면, '창녀'라고 되어 있다. 왜 그녀에게는 '창녀'라는 별명이 붙어다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구약시대의 사람으로서 가나안 땅의 이방여인이었고 좋지 않은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행동을 통해 메시야의 조상에 그녀의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유대 랍비들은 그녀를 어떤 여인으로 보고 있을까?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창녀로 보지 않는다. 여관집 주인으로 본다. 왜냐하면 수2:1의 말씀에 따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떠났던 두 명의 정탐꾼이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가 묵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정탐꾼이 그 중요한 순간에 쾌락을 즐기기 위해 창녀의 집에 들어갔을 리가 없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조심스럽게 그녀의 집이 아마 여관집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그녀가 여관집을 운영했기에 가나안 땅 근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을 다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요, 자기의 가족들에게도 신임을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정탐꾼들이 묵으러 들어온 것이다. 

 

3. 라합은 정탐꾼들을 어떻게 대우했을까?

  당시에 여리고 성은 외지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면 반드시 들러서 가야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곳보다도 여관업이 성행했다. 그런데 라합 당시에 여리고 성은 아주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질풍노도처럼 밀려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정복 소식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성에 들어오는 사람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성이 외인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 소식은 금새 왕에게 들어갔고 왕은 사람들을 라합의 집에 보낸다. 그들은 기생 라합의 집을 찾아와서는 "그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기생 라합은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러한 사람이 온 것까지는 맞으나 해가 지기 전에 성문을 통해 빠져나갔으니 빨리 좇아가면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사실은 정탐꾼들을 자신의 옥상 위에 있는 삼대 속에 숨겨놓은 후였다. 병사들이 그를 추격하러 떠나자 그녀는 정탐꾼들이 잠들기 전에 올라가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미래를 부탁했고 그들을 안전하게 창문을 통해 밖으로 탈출하도록 도와주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집이 성벽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격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3일동안 피해있을 장소까지 알려주고 먹을 것도 준비해 주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탐꾼 두 명은 안전하게 여호수아의 진영으로 복귀하게 된다. 

 

4. 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주기로 결정한 것인가?

  자기 집에 손님으로 들어온 두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매우 고민했을 것이다. 첩자가 자기 집에 들어왔다고 왕에게 보고할 것인가에 말 것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그동안 남들로 들어왔던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들을 과연 왕에게 고발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이들을 숨겨주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추격자들을 성밖으로 내 보낸 후, 그녀는 옥상에 있는 그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힌다(수2:9~11). 그것은 왜 그들을 숨겨주고 있는지를 그들에게 말한 것이다. 첫째,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 게 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벌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역사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둘째, 여호와가 어떤 분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거대한 홍해물을 마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요단 저쪽에 있는 거인족의 두 왕들 곧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전멸시켰다는 소식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을 제저할 수 있는 가나안 민족은 없다고 내다보았다. 셋째, 라합은 오직 여호와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최고의 신이라고 보고 있었다.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 전에 무신론자로 살았었는지 혹은 가나안의 어떤 신을 섬기고 살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이미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신앙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두 사람이 자기 집에 들어온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장차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탐꾼으로 찾아온 두 명을 안전하게 숨겨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다가 혹시 발각되더라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와 함께 정탐꾼들을 숨겨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다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목숨이 경각간에 달린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니 장차 이스라엘 민족이 여리고 성을 정복하러 올 때에, 자기와 자기의 부모와 형제들도 살려달라고 말이다. 

 

5. 기생 라합으로 굳은 결단으로 인해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정탐꾼들이 안전하게 돌아간 뒤 여호수아는 군대를 이끌고 여리고 성을 정복하러 쳐들어간다. 그러나 가나안 전쟁의 첫 번째 전투인 만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방법대로 전쟁을 한다. 여리고성을 날마다 돌면서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함성을 질렀다. 그러자 성이 안쪽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그런데 기생 라합과 그 집안에 있던 가족들과 무려 친족들까지 살아남았다. 왜냐하면 정탐꾼들과 약조하기를 그 집에 빨간 줄을 매달아놓으면 그 집안 사람들을 살려주기로 약조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칠 때에 두 명의 정탐꾼들을 보낸다. 그래서 빨간 줄이 쳐져 있는 그녀의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스라엘 진영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리고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을 쳤다. 그때의 전쟁은 사실 '헤렘'전쟁이었다. 생명있는 것이라면 사람이든지 동물이든지 무론하고 다 죽이는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여리고 성 사람들이 다 죽던 그 마당에 오직 기생 라합과 그 집안에 있는 가족들 그리고 그녀의 친족들만 살아남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받은 축복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탐꾼들의 한 명으로 추정되는 유다 지파의 사람 살몬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녀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이가 바로 룻기서의 주인공은 '보아스'다. 보아스는 다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으며, 이새가 다윗왕을 낳았으니(마1:5), 그녀는 다윗왕의 고조 할머니가 되었고,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목숨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유다 지파의 조상이 되었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받게 된 것이다. 

 

6. 그녀가 그때 행한 말은 거짓말이었는가 그녀의 기지였는가?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잡으러 왔던 자들에게 그녀가 한 거짓말이다. 그것은 그녀가 기지를 발휘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했던 거짓말의 죄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성경에서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 그것도 십계명의 아홉번째 계명으로 떡 하니 규정되어 있다(출20:6).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규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고,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못 들어가게 되며,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계21:8,27,22;15). 그렇다. 거짓말하는 죄는 지옥형벌을 면치 못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대적하던 마귀의 제일 속성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말이 사탄마귀의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행한 거짓말의 죄는 작은 죄가 아니었다. 큰 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그녀를 '믿음의 여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히11:31), 그녀의 행동을 의로운 행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약2:25). 대체 어찌되었길래 그녀가 했던 거짓말의 죄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그녀를 믿음의 여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인가?

  

7. 기생 라합은 어떻게 되어서 헤쎄드의 은혜를 입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호수아 2장의 말씀을 통해서 그녀가 정탐꾼들을 살리기 위해서 분명하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한 거짓말의 죄를 일단 덮어두셨다. 그것은 그녀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가 모든 신들 중에 여호와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나 기꺼이 스스로 하나님을 자기의 신앙의 대상으로 정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매우 기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가 행한 거짓말의 죄는 그냥 간과해주신 것이다. 그녀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야말로 너무나 큰 중대한 결정이라고 하나님께서는 보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혹은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결정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그것은 하나님,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결정할 때에 그 전에 지었던 모든 죄를 간과하심으로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너무나 중대한 결정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자 주권자를 하나님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날에도 역시 사람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사람과 믿은 후의 사람뿐인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을 자신에게서 예수님으로 이동시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 그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상관없이 그 죄를 눈감아주시는 것이다. 그때에 그는 이제 죄가 없다고 하늘에서 선언해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녀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신으로 믿기로 결정한 것을 크게 보시고 그녀가 지었던 거짓말의 죄를 눈감아주셨던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자비의 은혜' 곧 '헤쎄드의 은혜'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신약성경에서도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그 사람이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낱낱의 죄를 다 회개하지 않아도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엡1:7, 벧전1:18~19).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기로 결단하게 되면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 그 사람이 지었던 죄를 덮어버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지금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모든 죄를 다 회개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간다면 이 세상 사람 중에 그렇게 해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행동으로 지은 죄 뿐만 아니라 말과 마음으로 지은 죄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그 사람이 예순미을 믿기로 결정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전에 지었던 죄들은 용서해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용서해주신다'는 말은 '없는 셈으로 쳐주신다. 없다고 선언하신다'는 뜻이다. 그 죄가 있기는 있지만 그 죄를 거론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그 죄가 천국에 들어가는데 문제가 되게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던 모압 이방여인이었던 룻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녀의 민족이 섬기고 있던 그모스를 버렸다. 그리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죽고 남편도 죽고 아주버니도 죽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다시 자기 민족으로 돌아가서 재가해서 살라고 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평생 과부로 시어머니를 공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시어머니를 따라갔다. 그것은 자신의 시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의 그늘 아래 들어온 그녀를 어여삐 보셨다. 그래서 믿음 좋은 보아스를 만나서 결혼하게 해 주신 것이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섬기는 자는 자비의 은혜 곧 헤쎄드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이다. 

 

8. 기생 라합이 입게 된 두번째 헤쎄드의 은혜는 무엇이었는가?

  그런데 기생 라합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결단을 매우 귀하게 보시고 그녀가 바라고 원하는 일들까지 덤으로 허락해주시었다. 그것은 여리고 성 사람들이 다 진멸되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부모와 남녀 형제들 심지어 그녀의 친족들까지도 다 살아남아 구원받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수6:23). 그렇다. 누군가가 최초로 하나님 혹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최초로 예수믿는 그 사람 때문에 그 사람의 가족들까지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선택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두번째 헤쎄드의 은혜인 것이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신 자들은 이처럼 특별한 은총을 주어진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이방인이었던 로마 장교 고넬료도 자신이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자, 자기와 자기의 집안 식구와 그리고 그때 함께 그 집에서 복음을 들었던 자신의 친족들과 가까운 친구들까지도 다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행10:2,24,44~46). 그것은 고넬료 뿐만 아니다. 사도 바울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지만 그때 간수에게 전도할 기회가 있을 때에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행16:31)"라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수가 예수님을 믿게 되자 자기와 자기의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최초로 빌립보에도 교회가 탄생하게 된다(행16:31~34). 그렇다.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인 자에게는 자신의 가족도 구원받을 수 있는 특별한 은혜를 허락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생 라합처럼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들이 받을 수 있는 두번째의 헤쎄드의 은혜인 것이다. 

 

9. 나오며

  우리 교회처럼 회개를 외치면서, 회개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어떤 분들은 회개하지 않은 한 개의 죄라도 남아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못받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것은 헤쎄드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신앙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이라도 다 용서받게 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너무나 귀하고 또한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그 전에 지었던 죄들을 하나님께서도 눈감아주시는 것이다. 그래야 죄인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지,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과거의 모든 죄들을 낱낱이 다 자백해야만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회개도 평소 때 늘 하나님께 회개를 해 오던 자가 마지막 죽는 순간에 그동안 회개하지 못해 남아있던 죄들도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지, 평소 때에는 한 번도 회개하지 않다가 그날 죽을 때에 "하나님, 지금까지 지었던 모든 죄를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헤쎄드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진실로 회개하는 삶을 살았던 자가 죽을 때에도 미처 그동안 회개하지 못했던 죄들이 한꺼번에 용서되는 은혜가 베풀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것만큼 자신의 일생에서 있어서 중대한 결정은 없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평소 때에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회개하는 자라야 그때 회개할 때에 나머지 죄들도 용서받는 것이며, 또한 죽기 직전에 다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임을 알라. 

 

 

2022년 10월 02일(주일)

정병진목사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의 족보로 시작된다. 아니 신약성경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 그런데 이 메시야의 족보를 찬찬히 살펴보면 족보에 들어있어야 할 이름이 빠져 있기도 하고, 들어가서는 안 될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메시야의 족보에서 빠졌던 것이며, 무슨 이유 때문에 메시야의 족보에 오르게 되었던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메시야의 족보에 담긴 구원의 비밀을 함께 나누려고 한다. 무엇이 우리의 구원을 잃어버리게도 만들며, 무엇이 자격없는 사람이라도 구원얻게 만들어주는지를 파악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내가 죽는다면 나는 과연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까? 그리고 이미 기록된 이름을 계속해서 보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계3:5)

 

1. 들어가며

  마태복음1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 있어야 할 메시야의 조상들의 이름이 상당 부분 빠져 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세리 마태가 메시아의 족보를 기록할 때 임의대로 빼버린 것일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과 바벨론포로를 기점으로 숫자를 14대씩 맞추기 위해 그중에 변변치 않은 사람들 사람들을 빼버린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메시야의 족보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가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족보에 그의 이름을 올린 자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메시야의 족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이 메시야의 족보에서 빠졌는지를 살펴본 후에 과연 어떤 사람이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갔으며, 그들의 이름이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간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도 죽었을 때 과연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의 생명책에서 영원히 누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메시야의 족보에 이름이 빠진 자들은 누구인가?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있어야 하는 그의 이름이 누락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며 무엇 때문에 그 이름이 빠진 것일까?

  우선 빠진 사람들이 누군지부터 살펴보자. 잘 아시다시피 메시야의 족보는 아브라함의 손자였던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넷째아들인 유다지파의 후손들의 이름만 기록된 특별한 족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판단할 수 없지만 샘플은 된다. 왜 무엇 때문에 족보에서 그 이름이 빠져야 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야곱의 증손자 헤스론이 람을 낳았다는 것까지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마1:3). 하지만 람이 암미나답을 낳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마1:4). 왜냐하면 람은 입애굽시대의 첫세대의 사람이지만, 암미나답(아론의 장인)은 출애굽직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야곱의 증손자였던 헤스론 - 람  - 아미나답(암미나답) - 나손은 430년동안 애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애굽에 들어간 70명의 히브리인들이 4대만에 200만명이나 불어나기는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람과 아미나답 사이에 수대의 족보가 빠져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 증거로서 메시야의 족보에는 아버지 이름 다음에 꼭 아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마1장 11절에서 요시야왕의 다음의 왕이 여고냐(고니야, 여호야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여고냐왕은 요시야왕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요시야왕의 아들인 여호야김의 이름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나라에 있어서 아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 "벤'은 "아들"이라는 뜻만으로 쓰인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손자, 증손자, 후손에게도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족보에 기록단 사람이 앞에 기록된 사람의 아들인지 아닌지는 문맥을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430년간의 입애굽시대의 몇대(2~5대?)를 비롯하여, 사사시대에도 몇대(5~6대?)의 족보가 빠져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사시대는 적어도 350년이상 되는 기간인데, 그 때 등장하는 인물로 살몬 - 보아스 - 오벳 - 이새까지, 4대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몇대(5~6대)의 족보가 빠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열왕시대(다윗~시드기야)에도 왕들 중에서 7명의 왕들이 빠져 있다. 예를 들어 요람은 웃시야왕의 아버지가 아니다(마1:8). 요람 다음에 아하시야 - 요아스 - 아마샤라는 3대 후손들이 빠져 있다. 또한 바벨론포로 후에도 스룹바벨의 아들은 아비훗이 아니다(마1:13). 그러니까 아비훗은 스룹바벨의 5대후손인 것이지 아들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스룹바벨 다음에, 하나냐 - 스가냐 - 스마야 - 느아랴 - 에료에내라는 후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족보에는 유다지파의 후손들의 모든 이름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3. 비록 유다지파의 후손들이지만 메시야의 족보에서이름이 빠진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렇다면 메시야의 족보에서 그 이름이 빠진 자들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우리는 그 이유를 사사시대의 빠진 댓수(적어도 5~6대정도)가 무엇 때문에 그 이름이 누락되었는지를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삿2:10). 언약의 말씀을 계승해주지 못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어버린 자들이 족보에서 빠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사사시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요담의 직계후손들인 아하시야 - 요아스 - 아마샤의 세 왕들의 이름이 빠진 것은 요담의 아버지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과 우의를 돈독히 해보려고 북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달랴를 며느리로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유다가 온통 우상숭배에 빠진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한 한 가지, 입애굽시대와 가나안땅을 정복한 후의 세대인 사사시대의 많은 댓수가 족보에서 누락된 것은 그 시대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렸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시대는 영적으로는 빈사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하나님을 잊어버린다든지, 언약의 말씀의 중요성을 잃어버려 약속의 말씀을 계승하지 못했다든지, 우상숭배를 했다든지 하는 자들이 결국 메시야의 족보에서 그 이름이 빠져있는 것이다.

 

4. 메시야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서는 안 되는 자들은 누구며, 그들은 무엇 때문에 메시야의 족보에 그의 이름이 올라간 것인가?

  그런데 오늘 살펴보게될 두번째 핵심내용은 족보에 들어가지 않아야 할 이름들이 왜 족보에 들어갔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들어가지 말아야 했던 이름이 족보에 들어간 경우가 누군지를 살펴보자. 놀랍게도 이들은 전부 여자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 여인들을 살펴보면, 이방여인도 있고 전혀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았던 여인도 있다. 그렇다면 여인들의 이름을 남편과 함께 시대별로 정리해보자. 그들은 5명이다. 유다의 며느리이자 아내였던 자로 다말, 여리고성의 정탐꾼의 하나인 살롬과 결혼한 기생라합,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 보아스와 결혼한 과부 모압여인 룻, 다윗을 통해 솔로몬을 낳았던 우리야의 아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다지파로 나사렛의 목수였던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 등이 그들이다.

  그렇다면, 왜 여자 5명의 이름이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간 것일까?

  첫째, 유다의 며느리이자 아내가 되었던 다말이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간 이유는 언약의 후손을 얻고자 했던 그녀의 거룩한 열망 때문이었으리라고 본다(룻4:12). 그녀는 유다의 첫째아들 엘의 아내로서 유다의 며느리다. 하지만 엘이 자식없이 죽었다. 그러나 형의 씨를 잇게 하고자 둘째아들 오난에게 들여보냈다. 하지만 오난은 씨를 주지 않으려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치심으로 죽고 말았다. 셋째아들은 셀라였는데 아주 어렸다. 사실 유다는 셋째아들이 죽을까봐 셋째아들을 며느리에게 주지 않았다. 그러자 창녀변장을 하고 시아버지를 통해서 자식을 낳은 여인이 다말이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유다지파를 통해서 왕인 메시야가 태어날 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아버지를 속여서라고 자식을 낳고져 했던 것이다.  성경은 다말이 결코 시아버지와 근친상간을 했던 음란한 여인이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다(룻4:12). 약속의 자손을 낳은 복된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

  둘째, 가나안땅의 여리고성을 정탐했던 정탐꾼의 하나인 살몬과 결혼한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다. 이 이방여인이 족보에 들어간 이유는 자신의 직업과 신분을 통하여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정보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이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목숨걸로 정탐꾼들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여인을 조국을 배반한 비열한 인간이라고 기록하지 않고 믿음을 행동으로 옮긴 여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약2:25).

  셋째, 베들레헴성의 사람들 중에서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무를 수 있는 보아스와 결혼한 모압여인 룻이 세번째 여인이다. 모압은 원래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이다(신23:3). 그럼에도 이 여인이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간 이유는 그녀가 모압에 있을 때, 시어머니로부터 받아들인 여호와 하나님신앙을 결코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평생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고단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시어머니를 따라나섰던 것이다(룻2:11~12).

  넷째, 다윗과의 사이에서 솔로몬을 낳았던 우리야의 아내의 경우는 왜 족보에 들어갔는지 그 이유를 잘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야의 아내"라는 다른 방식으로 그 이름이 들어가 있다.

  다섯째, 목수였던 총각 요셉에게 시집왔던 마리아가 메시야의 족보에 오른 것은 그녀가 바로 법적으로 유다지파 다윗의 가문이었던 요셉과 정혼했기 때문이다(눅3:23, 마1:16). 사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헬리가 2명의 딸들(마리아와 살로메)만 낳아 가문이 끊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광야시대에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딸만 있어 가문이 끊어지고 기업을 누구에게 상속해주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에는 자기가 속한 지파의 사람에게 시집가서, 가문을 잇고 기업을 보존하라고 하였다(민27:1~11, 36:1~12). 결국 갈릴리 나사렛에서 그녀는 유자지파의 총각과 정혼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요셉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만약 그녀에게 요셉의 씨가 이나라 다른 씨가 잉태되었을 경우 파혼을 당하거나 죽임당할 위험성이 있었지만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메시야의 족보에 여인으로서 그 이름이 기록된 자는 총 5명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의 신분은 간음녀이었거나 창녀였거나 이방인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메시야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따로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라 비록 죄인 혹은 창녀라 할지라도 누구든지 자신의 믿음을 통하여 메시야를 받아들이게 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생길이요 그것이 힘든 선택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인 자의 몫이었던 것이다.

 

5. 나오며

  그렇다. 메시야의 족보에 오른 여인들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죄인이라고 해서 메시야의 족보에 못들어갈 리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음녀여도 상관없고 창녀여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약의 계승자가 되기 위한 거룩한 열망을 가진 자가 된다면 메시야의 족보에 오를 수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을 자기의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하는 자도 메시야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한 것이 고생길이 환히 열리는 일이고, 그것이 죽음을 불러온다고 하더라고 오직 하나님신앙을 갖기를 원하는 자가 메시야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은 주님 보시기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어떤 조건에 합당한 자인가? 메시의 족보에 오른다는 것은 결국 하늘의 생명책에 그 명단을 올린 것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도 과연 천국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까? 이제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할 때가 아닌가 싶다.

 

2018년 8월 24일(금)

정병진목사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할 것인가?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들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가족구성원들보다 나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먼저 보게 하셨고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셨으니, 먼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내 가족은 내가 먼저 믿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영혼구원에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족전도를 못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가족구성원에서 믿는 자로서 모범된 삶을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모범된 자로서, 도덕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 그리고 영적인 측면에서 보범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전도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족을 구원할 책임이 누구에게 주어지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긴의 가족을 전도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할 것인가? 부모인가 아니면 자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친구인가 이웃인가? 성경에서는 가족 중에 먼저 믿는 자라고 말씀한다. 그렇다. 누가 가족을 전도할 것인가? 먼저 믿는 나 자신이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그것은 나를 통하여 온 가족이 구원얻도록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구원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서 우리는 이러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은 가족 구원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가족구원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가족구원을 이미 이룬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살펴볼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구원얻기를 바라시는 기본단위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되 일개인만을 구원하시려하기보다는 온 가족을 구원하시려 하신다. 그러한 근거는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그렇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자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의 하나님이신지는 아담과 노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출애굽사건 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양을 꼭 잡으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천사가 애굽에서 난 모든 첫 것을 다 멸하실 때에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유월절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와 문설주에 바른 집은 화를 면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하나 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급히 그리고 빨리 애굽을 도망쳐나와야 하는데, 그때 힘을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유월절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았고 양고기를 불어 구워먹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양을 잡을 때에는 주의할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양을 잡을 때에, 아침까지 양고기를 집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인원수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한 집안의 식구가 너무 작을 때에는 자기 집의 이웃과 함께 양 한 마리를 취하여 잡으라고 하신 것이다(출12:3~4).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가족의 한 사람만 믿고 그 사람만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가족이 다 구원얻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3.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가 되었든지 먼저 믿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족구원의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구원얻게 하시기보다는 먼저 한 사람의 눈을 뜨게 도와주신다. 그리고 믿게 하신다. 그리고는 먼저 믿은 그 사람을 통하여 가족구성원 전체를 구원얻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누가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지 답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보자. 가나안지경의 첫성이었던 여리고성에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정보가 가장 확실히 드나드는 곳은 역시 여리고성 성문에 붙어있던 여관집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신문이 있나 TV가 없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모든 정보는 외부에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이나 외부인들이 들어오면서 가져온 정보에 의지해야 했다. 이때 기생라합이라는 여인은 여리고성의 여관집 주인의 딸로서 그러한 정보에 능하던 여자였다. 어떤 사람은 이 여인이 창녀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사명을 주어 보낸 정탐꾼이 맨 처음에 기생의 집 안으로 들어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생집이 아니라 여관집에 머물렀을 것이다(유대역다가 요세푸스나 랍비들은 다 라합이 여관집 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미 정보를 전해듣고 있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른지 미리 집작하고 있는 기생라합 뿐만 아니라, 여리고성의 왕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리고성 사람들은 자기 성에 찾아온 자들 곧 히브리인으로 보이는 외부인을 그냥 놔 둘리가 없었을 것이다. 곧바로 수색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보를 통해 상황판단을 하고 있던 기생 라합은 그 두 사람을 숨겨준다. 그리고 장차 자기고 살고 있는 여리고성이 멸망당할 때, 자기 아버지의 집을 선대해달라고 부탁한다(수2:12). 그리하여 자기의 부모와 자기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부모님의 가족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수2:13). 결국 붉은 줄로 표시한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된다. 이는 기생라합이 그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두 명의 정탐꾼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음은이란 반드시 행함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준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자기와 자기의 온 가족이 구원받게 해 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아면, 그때 어떤 사람들이 라합의 집에 남아있어서 살아남게 되었는가? 그들은 기생라합과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버지의 친척들이었다(수2:18). 그렇다. 기생라합의 집은 그 집의 딸이었던 라합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과 친척들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

 

4. 신약의 경우에도 가족구원에 관한 예가 등장하는가?

  그런데 신약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다수 등장한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경우는 자신이 먼저 믿어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루포와 알렉산더)를 전도한 경우다(막15:21, 행16:13). 그리고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은 가장인 고넬료로 인하여 온 가족과 심지어 일가친척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구원받은 경우다(행10:24). 그리고 빌립보성의 간수는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믿은 후 그 온 가족들이 다 구원받게 한 경우다(행16:33). 그렇다. 누구든지 먼저 믿은 자가 그 집안의 선교사인 것이다. 누구든지 먼저 믿은 자가 자기 가족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선교사들인 것이다.

 

5. 가족구성원 전체를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가족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에 속한 온 가족이 전부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가? 사도바울는 분명하게 이렇게 외쳤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말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수믿으면 온 가족이 예수믿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다 배려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믿은 자의 부족함과 실수로 인하여, 가족구성원 전체가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족구성원 전체를 구원받게 하려면, 먼저 믿은 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먼저 믿은 자로서의 모범된 삶이 필요하다. 그것도 3가지 영역에서 모두 말이다. 하나는 도덕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인 측면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영적인 측면에서 먼저 믿은 자는 모범인이 되어야 한다. 먼저, 먼저 믿은 가족을 구원할 자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만약 그와 반대로 남을 비방하고 헐뜯고 욕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웃을 안 좋게 표현하는 자, 다른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미워하도록 충돌시키며, 질투하면서 흠담을 늘어놓게 되면, 자식은 분명 부모가 믿는 하나님을 믿기가 더 꺼끄러워졌을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수시로 멘탈이 붕괴되는 자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하기가 쉽지 않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자는 자신은 회개하여 구원받을 수 있을른지 모르지만, 다른 가족들은 전도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먼저 믿은 자는 셋째로, 영적인 분야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주일성수, 예배생활, 십일조생활, 봉사생활, 귀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기도생활 등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먼저 믿었던 가족구성원의 말이 힘을 얻게 되고 어느 기회좋은 날이 생길 때에 가족을 형제자매를 따라 교회를 출석하기가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6. 이미 다 구원받은 가족들이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이 다 믿고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내 가족이 다 구원받았으니 그만 쉬고 놀며 지내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이미 부모 때부터 쌓아놓은 기도가 있어서 잘 되어진 것임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전도하여 영적인 가족을 만들기를 추천해본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구레네사람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자신의 영적인 어머니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딤전1:1~2의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을 장가를 가지 않았는데도, 그는 어떤 젊은이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바로 디모데였다. 사도바울은 영적으로 디모데를 자식으로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처럼 가족이 다 구원받은 경우라면, 그의 눈을 영적인 가족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끔씩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전도할 대상이 민족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다. 피부와 색깔과 언어가 다른 곳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해주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가족은 내가 구원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구성단위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이 있으며, 더 나아가 이방민족이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가?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 예수님을 먼저 믿은 자다. 가족 구성원중에서 먼저 믿은 자가 자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주면 온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믿은 자가 자기의 가족들 곧 자기의 부모와 자신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조카들이나 아버지의 가족들에까지 복음을 전해주면 계속 연결 연결되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다. 특히 혈통이 아니라 법적인 가족은 배우자나, 사위나 며느리 등으로 이어지는 가족도 가족구성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므로 온 세상은 가족전도로 말미암아 복음화될 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족을 전도하는 것은 크게 볼 때에 세계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족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면 가족전도로 온 세상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을 구원하며,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가족구성원에게 모범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기도로 충분히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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