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성막의 분향단이 들려주는 3,500년 전의 기도의 비밀(출30: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_gRbQaaWBc  [혹은 https://tv.naver.com/v/28284429 ]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마태복음 6:9~13에 나오는 주께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기도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무조건 "주여!" 혹은 "주 예수여!"라고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들으신다. 그렇지만 기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의 기도는 지금모다는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아! 기도는 이렇게 되어서 구만리장천 떨어진 하나님께서 전달되고 이렇게 응답되는구나" 하고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일평생 붙들어야 할 기도를 한 번 제대로 알고 기도해보기 위해 이번주부터 기도설교 씨리즈를 시작해 본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서 지금으로부터 3,500년전에 출애굽기에 나오는 기도의 비밀을 살펴보려고 한다. 거기에는 성막이 있었고, 성막 안에는 분향단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사르는 향이 이었다. 그래서 영적인 비밀들을 담고 있는 이러한 분향단을 통해 우리는 기도에 대한 정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우리들의 마음자세를 올바로 정립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긍휼이 있기를 바란다. 

 

2. 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가 전능자라면 아마 기도는 더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며 우리가 못할 것이 없다면 우리는 더이상 기도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다. 그것도 아담의 범죄 이후 우리는 타락했고 연약해져여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자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도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위대한 인물들도 기도하여 그러한 능력을 체험했던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하나같이 기도하여 기도에 성공했던 인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기독교회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 역시 기도에 열중했으며 그들 역시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영성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진정한 영성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더 나아가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역시 기도를 배우고 기도를 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기도란 무엇이며 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기도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기도를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기도는 절대초월자되시는 신적 존재와 교통하는 소통의 한 방법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기도는 대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기도할 때에는 마음으로 기도하기도 하고 입술을 벌려 기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도가 천국에서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을까? 그러한 비밀은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사람이 드린 기도는 '향'의 형태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향이 어떤 주발 같은 대접에 담기거나 향로에 담기는 것이다. 천국에는 모든 피조물의 대표인 네 생물들과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표인 24장로들이 있는데, 이들 중에서 24장로들이 하는 일은 딱 2가지다. 하나는 거문고를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며, 또 하는 기도하는 일이다. 그런데 계5:8에 말씀에 보면, 일찍 죽임당한 어린양에게 경배하는 24장로들을 본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는 향이 가득담긴 금대접이 들려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사도요한의 해설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이 향이라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라는 것이다(계5:8). 그렇다. 천국에서 기도는 향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와 같은 시편 기자는 자기의 기도가 주의 얼굴에(앞에) 분향함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시141:1~2). 그렇다. 천국에서 기도는 향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 자체는 향을 분향단에 태우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4. 기도는 어떻게 천국의 분향단까지 올라가게며 또한 우리에게 응답으로 되돌아 오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한 말로 기도하는 것이 어떻게 천국에서 향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아는가? 그것은 천사들의 활동 때문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태어나면서 천사가 붙여진다. 그래서 그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모든 일이 날마다 하나님께 보고가 된다. 그런데 이때 기도를 하게 되면, 천사가 그 기도를 대접에 향으로 받아 전달을 해준다. 자기보다 더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진 천사에게 말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기도담당 천사장에게 그것이 전달된다. 이때 기도담당 천사장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분향 제단 곁에서 그것을 자신의 향로에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분향단에 쏟아붓는다. 그러면 향이 불에 타면서 향연이 피어오르는데 그 향연을 천사가 자신의 손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흠향하시고 응답해주시는 것이다. 이때 응답은 하나님에게서 나오게 되며, 이러한 응답이 지상에 내려올 때에는 초자연적인 권능으로 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계에서 일어나는 기도의 전 과정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요한계시록 8:3~5절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분향단에 불태워지는 향의 연기와돠 같은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 채 하나님의 보좌 앞의 분향단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도 없어지지나 사라지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는 분향단까지는 올라가는 것이다. 

 

5. 지상에 있는 성막의 분향단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천국에서는 천사가 분향단에 향을 부어서 그것을 사르는 일을 한다. 그런데 지상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가 있다. 그것은 성막의 '분향단'이다(출30:1~10).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분향단과 그곳에서 향을 사르는 것을 고스란히 모세에게 보여주시고는 그 식양대로 이 땅에 분향단을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향을 사르라고 하셨다. 그곳이 바로 성막의 '분향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상에 있는 성막의 분향단에 대해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기도의 전 과정과 절차 그리고 기도의 능력과 하나님의 존전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분향단은 성막의 기구들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 진을 쳤을 때에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하나님의 백성의 법도를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 20~24장에 나오는 십계명법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그 법에 따라 죄를 지었을 때에 어떻게 용서받는지를 알려주시기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하였다. 그것이 출애굽기 25~40장에 나온다. 고로 성막법은 사람이 죄를 용서받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막에서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과정이 거기에 들어있다. 고로 우리는 이때 제작되는 분향단의 제조과정과 또한 분향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살펴본다면,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거룩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한 받으시는지를 알 수가 있다. 

 

6. 지상의 성막의 분향단에서는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 향을 사르는가?

  그 렇다면 지상에 있는 성막의 분향단에서는 과연 누가 향을 사르게 되는가? 또한 향을 사르는 장소는 대체 어디인가? 출애굽기 30장을 읽어보면 그 답이 나온다. 과연 누가 성막에서 향을 사르는지 그리고 성막의 어디에서 향을 사르는지가 나온다. 첫째, 누가 향을 사르는가? 그것은 아론 곧 하나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사람 곧 대제사장만이 향을 사를 수 있다고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아침마다 금등대의 불을 끌 때에 분향단으로 가서 향을 사르고 또한 저녁에 불을 켤 때에도 분향단으로 가서 향을 사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출30:7~8). 둘째, 어디에서 향을 사르는가? 이처럼 향은 대제사장만이 사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분향단의 위에 놓인 향로에서 향을 사르라고 되어 있다. 그냥 자기의 처소에서 병풍을 쳐놓고 거기에서 향을 사르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향을 사르는 곳은 성막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7. 분향단은 실제로 성막의 어디에 위치해 있었던 것일까?

  일반적으로 분향단은 성막의 성소의 둘째 휘장 앞쪽에 위치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실제 그러할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경에서는 분향단이 성막의 성소에 위치해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그렇게 알려져 왔고 그렇게 인정하고 있지만, 아닌 것이다. 그리고 성막공부를 해보면 알겠지만, 모든 성막전문가들도 다들 그렇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문 성경을 보면, 답을 알 수 있다. 거기에는 단 한 번도 분향단이 성막의 성소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지성소의 증거궤에서 볼 때 분향단이 둘째휘장 뒷편에 있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런 말씀은 한 구절도 없다. 그렇다면 왜 성막전문가들까지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지 않고 성소에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분향단이 위치해 있는 장소에 대해 히브리어 원문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30:6을 우리말 개역성경으로 보면, 그것은 지성소에서 볼 때 휘장 '밖에' 있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 [분향]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출30:6)"라고 나온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분향단은 휘장 '밖에'(=후츠) 두는 것이 아니라 휘장 '앞에'(=파님) 두라고 나온다. 그래서 잠깐이지만 직역에 가까운 표준새번역을 살펴보자. "너는 분향단을 증거궤 앞, 곧 증거판을 덮고 있는 속죄판 앞(=파님), 휘장 정면에(=파님) 놓아 두어라. 거기 그 속죄판에서 내가 너를 만날 것이다"(출30:6). 그렇다. 성경 전체서 분향단을 휘장 '밖에'(=후츠) 두라는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성소에 있다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지만 '떡상'(진설병상)과 '등잔대(등대)'는 분명 둘 다 휘장 '밖에' 두라고 아예 지정하고 있다. 그중에서 떡상은 휘장 밖에 있는 북쪽에 두라고 나오며, 등잔대는 휘장 밖에 있는 남쪽에(떡상 건너편)에 두라고 나온다(출40:22, 27:21). 그런데도 우리는 개역성경의 오역된 말씀(출30:6)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역대하 26장에 나오는 웃시야왕(재위 B.C.767~739)의 분향사건을 통해서 분향단이 성소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는 것이다. 웃시야왕은 남유다의 10번째 왕으로서 상당히 센 왕이었다. 그러다보니 영토를 늘리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는데 그러자 교만해져서 그만 자신이 직접 여호와의 성전(헤칼)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러자 깜짝 놀란 대제사장 아사랴가 용맹한 제사장들 80명을 데리고 들어가 그를 데리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래도 막무가내로 분향단의 향로를 손으로 잡고 분향을 하려 시도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생기게 한다. 그러자 대제사장이 그를 급히 쫓아내었고 하나님이 치셨다는 것을 알게된 그도 급히 나가게 된다. 그때 아사랴 대제사장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라 오직 분향하기 위해서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이니, 성소(미크다쉬)에서 나가소서"(대하26:18). 아마도 사람들이 여기에 나오는 단어 '성소'(미크다쉬=거룩한 장소)를 지성소가 아니라 성소로 이해했거나, 아니면 진짜 이때쯤에는 누군가 분향단을 성소에 갖다 놓았든지 했기 때문에, 분향단이 성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성막에서 분향단은 지성소의 법궤 앞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며, 또한 다윗의 명을 받아 솔로몬이 지었던 첫번째 솔로몬성전(B.C.966)에서도 분향단은 내소 곧 지성소에 있었다는 것이다(왕상6:22). 

  셋째, 성막의 전문가들이 신약성경의 하나인 히브리서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9장에 보면, 성막의 성소와 지성소에 어떤 성물들이 놓여있는지가 나오는데, 거기를 보면 성소에는 등잔대와 떡상이 있고, 지성소에는 향단 위에 놓는 향로와 언약궤(법궤,증거궤)가 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히9:1~4). 하지만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향로가 놓인 향단은 비록 성소에 있지만 지성물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히브기서 기자가 잘못 쓴 것이 아닌가 하고 주석을 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성막에서 분향단은 지성소의 법궤 앞에, 그리고 휘장 밖이 아니라 바로 휘장 앞에 있었다고 나온다는 사실이다. 훗날 누가 성소에 갖다 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8.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는 지성물이었다는 것과 기도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런데 분향단이 지성소에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첫째, 지성소는 하나님이 현현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출25:21~22,30:6). 하나님은 성소에 있지 아니하며, 성막뜰에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지성소의 법궤 위 속죄소의 두 그룹 사이에서 현현하신다. 그리고 바로 그 앞쪽에 놓인 분향단에서 향을 사른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얼굴(직역) 앞에서 향을 사른다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상에서 드리는 기도는 구만리 장천을 직행하여 올라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 있는 분향단에 향을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그것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에서 향을 사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분향단에서 향을 사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요 구별된 자로서 대제사장만이 그곳에 들어가서 향을 사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하자.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우리에까지 활짝 열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하는 모든 자를 주님은 대제사장처럼 여기주시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십자가에서 찢으신 예수님의 육체가 둘째 휘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전의 둘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게 된다(마27:50~51).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들(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을 주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심으로 열어놓으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히10:19~20).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기도할 때에는 대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이요, 누구든지 자신의 기도만큼은 하나님의 보좌 앞 곧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올려보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고로 사도 베드로는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한 것이다(벧전2:9). 

 

9. 기도가 향으로 드려지고 향기되어 올라가며 응답이 떨어지는 장소인 분향단이 들려주는 영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기도가 아무런 가감없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장소인 지상의 분향단으로 가보자. 그런데 성경은 분향단을 어떻게 제조하며, 또한 그곳에서 향을 사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첫째, 분향단은 조각목(아카시아나무)로 짓되 그것의 보이는 모든 부분(위면와 옆면들)을 순금을 입히라고 했다는 것이다(출30:1~3). 여기서 '조각목'은 사람의 '인성'을 상징하고, '순금'은 불순물이 전혀 없는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을 상징한다. 사람의 성품은 깨끗하지 않다. 더럽고 추하다. 아담의 원죄가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더러운 인성일지라도 분향단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신성한 본성으로 감싸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비록 더럽고 추하다고 할지라도 기도할 때만큼은 그분이 우리를 금으로 덮어주시어 우리더러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 분향단을 만들 때에위쪽 네 모퉁이에는 뿔을 만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출30:2~3). 이러한 뿔은 성막기구들 중에서 오직 번제단과 분향단에만 있다. 그리고 이 뿔은 영적으로 '힘'과 '권세'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각목으로 만들어진 인간이지만 기도할 때만큼은 하나님의 힘과 권세가 그에게서 나타나게 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미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는 방법은 오직 기도에 있다. 그러므로 위대한 인물들도 다 이러한 전능자의 힘과 권세를 기도를 통해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셋째, 분향단에 향을 피우게 되면 어떤 죄인의 죄도 가려지고, 심지어 죄를 지은 것도 용서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레16:12~13, 민16:46~48).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사는 대제사장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때 살아남을 수 있는 대제사장은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향연으로 지성소를 가리는 것이다(레16:12~13). 그러면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민수기 16장에 나온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염병으로 그들을 치실 때에, 아론이 향로를 가져다가 향을 피움으로 염병이 그쳤다는 말씀이 나온다(민16:46~48). 그렇다. 기도할 때에는 지은 죄도 속죄가 일어나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시고 징계까지도 멈추시며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셨던 것이다. 번제단에서만 속죄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향을 사를 때에도 죄를 사함받을 수가 있음을 알라. 오, 이 얼마나 큰 은혜란 말인가?

 

10. 나오며

  우리는 번제단에서 듸는 제물의 향기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분향제단에서 사르는 향의 향기도 하나님일 받으신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별히 우리가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제사장으로 인정하신다는 것도 들었다. 왜냐하면 오직 향을 사를 수 있는 분향단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대제사장에게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각목 같은 우리 인생들이지만 기도하는 그 시간만큼은 우리를 순금으로 덮어주신다는 것도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향연이 존엄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가려주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대면하여도 죽지 않게 해 주는 것이다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죄를 지었을지도 직접 향을 태우고 있을 때에는 우리의 지은 죄들도 용서해주신다는 것도 배웠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 큰 죄를 지은 자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를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 기도는 내 몸이 비록 이 지상에 있지만 내 영혼을 순식간에 하늘의 지성소인 하나님의 보좌 곧 하나님의 얼굴 앞으로 보내는 고속도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경험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죄를 지은 자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귀한 기도의 능력이며 이 얼마나 놀라운 기도의 권한인가? 기도를 하자. 우리도 기도를 드리자. 그래서 우리도 그 순간만큼은 대제사장이 되어보자. 그리고 어떠한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예외로 인정해주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해 보자. 기도가 바로 특권이요 고속도로와 같은 것이며, 기도야말로 능력과 권세이자,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이기 때문이다. 

 

2022년 07월 31일(주일)

정병진목사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나의 필요를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구하여 얻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본질적인 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실 때에는 단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적인 의미다. 그리고 과연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기도가 되는가? 그것에는 기도의 본질적인 정의에 따른 3가지 방법들이 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3단계의 기도방법 중에 1단계의 방법으로 끝낼 분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은 2단계와 3단계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세번째의 경우에는 기도응답받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기도하는 자가 너무나 많다. 결론적으로 예수께서는 기도를 결코 은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것을 율법이자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 주께서는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도의 비밀과 아울러 응답되는 기도의 3가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1. 들어가며

  기도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은 모든 기독교인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 중의 하나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왜 기도응답이 더디 되거나 안 되는 것인지 아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과연 누구에게서 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신 예수님에게서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예수께서는 기도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리고 어떻게 기도해야 우리의 영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기도해도 기도응답이 되지 않거나 혹은 기도응답의 횟수가 적거나 기도응답의 내용이 작게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것을을 알아야 기도를 드려도 기도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리고 정말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지를 알 수 있지 아니하겠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기도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어떻게 하면 기도응답이 되어지는지를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도록 하자.

 

2. 하나님을 알아가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들이 여러 개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으로 알아가는 방법이 있고 체험으로 알아가는 방법이 있다. 책 즉 기록으로 알아가는 방법에는 성경을 통해서 알아가는 방법이 있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기록된 66권의 성경책을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두번째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체험을 통한 방법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기도의 방법이 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 중의 가장 효과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인 것이다. 성경책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은 간접적인 방법이라면, 체험인 기도를 통해서 알아가는 방법은 직접적인 방법에 속한다. 다시 말해 성경책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은 남들이 만난 하나님을 나는 독서나 설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알아가는 방법이라면, 체험 곧 기도의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은 내가 직접 하나님을 독대로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기도를 해봐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3.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전능자되신 하나님께 간구하여 얻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속뜻은 아니다. 겉으로 볼 때 기도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하나님을 통해서 얻는 것이지만 그것이 속뜻은 아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는 방법들 중의 하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야 한다. 그런데 기도를 해 보았고 기도응답을 많이 받아보았다는 분이라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몰랐다면, 그사람은 기도의 실용적인 측면만을 안 것일 뿐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명령한 기도의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도 기도의 본질적인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으로서, 산상수훈에 나온다. 즉 예수께서 기도에 관해 가르쳐준 산상수훈의 교훈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본문으로서 마7:7~12이 그것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기도란 무엇인가가 나온다. 나중에 정리하겠지만, 기도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의 하나로서,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결국 그분으로 적셔짐으로 그분을 닮아가게 되고 그분의 이름만 불러도 그분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므로 그분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기도는 그분과 나와 개인적인 만남이요, 그것을 통해서 내가 믿는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 수 있도록 기도의 수단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해서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기쁘고 즐거워하지 말라. 오히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기뻐하라. 결국 하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 자는 비록 구원의 노정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천국에 못들어갈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생활의 비슷하다. 우리는 광야같은 이 교회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분께서는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기도를 통해서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4. 왜 기도의 응답은 대체적으로 늦어지는 것인가?
  그러므로 기도하여 기도응답을 받기까지 기도는 대부분 오래 걸린다. 기도는 많은 시간과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때로는 땀도 흘려야하고, 때로는 물질(헌금)도 아낌없이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 가르쳐준 말씀(마7:7~12)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때 예수께서는 기도를 3가지로 말씀하셨다. 하나는 구하라(요구하라. 요청하라)는 단어이고 또 하나는 찾으라는 단어이며, 마지막 하나는 문을 두드리라는 단어다. 그런데 이 3가지 단어는 다 2인칭복수이면서 현재 능동태 명령문들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너희들은 [현재] [계속해서] 요청하라. 너희들은 [현재] [계속해서] 찾아내라. 너희들은 [현재]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어라"는 명령어들이 기도인 것이다. 전부다 한 번 하고 끝마칠 그러한 성질의 단어들이 아니다. 계속해서 꾸준히 쉬지 않고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함을 뜻한다. 그렇다. 기도는 한 번 두 번 간구하다가 끝마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기도의 응답이 내게 올 때까지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한 두 번의 간구에 응답해주시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3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방법이므로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계속해서 간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조금 후에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둘째, 기도는 계속해서 간구할 때에 그것이 응답되는 순간 비로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다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셋째,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신앙의 표현이기 때문이다(눅18:7~8). 그렇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도는 결국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도응답을 뒤로 미루신다. 그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이 누군지를 안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꾸준히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주시고 싶어하는 것을 간구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때로 우리가 간구하는 것이 우리가 당장 생각하기에는 최선의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기도가 응답되고 나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신앙을 타락으로 이끌어가고,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세상적인 것에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늦게 아니 더 늦게 응답하시려고 하신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하는 것이 우리를 더 해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장 그것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더 계속해서 기도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가 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꾸준히 지속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고 싶어하는 바로 그것으로 기도의 내용을 바꾸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요청하는 것이 주님이 주고 싶어하는 것과 일치할 때에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더러 기다리게 하지 아니하시고 즉시 응답해주신다. 이것이 기도요 기도의 법칙이다.


5.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기도의 3가지 방법은 무슨 뜻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단도직입적으로 우리더러 "너희들은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을까? 오히려 우리더러 "너희들은 [계속해서] 요구하라. [계속해서] 찾으라.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라"는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여 기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시려고 하셨을까? 그것은 기도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다시 말해 기도가 1단계인 "구하는(요구하고, 요청하는)"단계로 끝마칠 수도 있지만, 어떤 기도는 계속해서 찾되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찾아내야 하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문을 두드려야 하는 단계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기도제목은 제1단계로 끝마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도제목은 2단계와 3단계까지 가야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기도하라는 명령에 대해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는 세 가지 단어를 사용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첫째, 구하라는 것은 요청하라는 뜻이다.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계속해서 요청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능력과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귀신들에게 요청하지 말고, 오직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전능하신 손길로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요청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장차 불원의 날에 얻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는 미래 수동태문장이다. 당장이 아니라 미래의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가 구하는 것을 얻게금 하신다는 뜻이다.
  둘째, 찾으라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찾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어떤 기도는 기도의 제1단계는 구하는 기도 즉 그냥 구하는 것으로 끝마치는 기도가 있다. 예를 들어, 구약의 다니엘 시대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 던져지려고 할 때 그들이 드리는 기도가 바로 이러한 제1단계 기도다. 하지만 2단계로 꼭 나가야 하는 기도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시험의 합격을 위하여, 공부를 잘 하기 위하여,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기도할 때에는 먼저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요청해야 한다. 그랬다면 그 다음에는 기도했던 것을 내가 얻기까지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 노력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결국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금메달을 딸 수도 있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기까지 문을 두드리라는 뜻이다. 기도에도 매우 중요한 한 가지 단계가 더 남아 있는 것이다. 어떤 기도는 바로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기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불치병에 걸렸다고 치자. 그러면 우리는 먼저 요청해야 한다. "주여, 나의 질병을 고쳐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질병을 내가 고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있다. 하나님이 치료해주신다면 그것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일일이 터득해야 하고, 또 다시 그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그날까지 충성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병은 아무리 요청해도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시지 않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 있는 좋은 의사와 약물을 모두 찾아서 그들의 지시에 따라 치료방법과 재발방지법을 사용해고, 또한 좋은 한방약재와 한방요법까지 찾아내서 사용해보지만 병에 차도가 없거나 병이 더욱 더 악화되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기도의 세번째단계에 돌입해야 한다. 그것은 문을 두드리는 단계다. 이대에는 우리 당사자가 문을 두드려야 하겠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시고 문을 열어주실 분은 우리가 아니라 그분 곧 하나님이시다.


6. 하나님은 언제 우리의 기도에 동의하시고 문을 열어주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언제 문을 열어주시는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가? 그것은 그분이 동의하고 문을 열어주실 때다. 다시 말해 어떤 기도는 우리가 아무리 요청해도 안 들어주는 기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마 아무리 찾아다녀서 얻은 방법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안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이유에서다. 그것은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동의가 되지 않을 때다. 하나님께서 그가 드리는 기도에 동의해주지 않는 기도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찾아내어 손을 써도 안 듣는 질병이 있는 것이다. 그때에는 왜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동의해주시지 않는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기도소리를 듣고도 동의해주시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동의해주시지 아니하는가? 그것은 기도자가 무엇인가를 잘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개해야 할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회개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자신을 치료해달라고 하나님께서 요청하며서,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모든 좋은 약재를 다 써보는 것이다. 아니다. 그래도 낫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분명이 있고 그것을 아직 회개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가 두드리는 응답의 문을 열어주시겠는가? 또한 다른 이유로서, 너무나 크게 예수님을 짓밟아 뭉개버렸다든지, 예수님의 피가 무슨 죄를 사할 수 있느냐면서 현저하게 거부한다든지, 회개케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을 일부러 거역해버린다든디 하면 그 사람의 질병을 결코 낫지 않는다(히10:26~29). 그때에는 그병으로 죽는 것이 가장 낫다. 하지만 회개하기만 하면 죽을 때에 그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현저하게 죄를 지으면 아니 된다. 그때는 백약이 무효가 된다. 그때에는 온 마음과 정성과 다해 아니 금식하면서 회개기도를 드리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7. 분명히 꾸준히 계속했는데, 기도응답이 작게 오거나 기도응답의 횟수가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기도는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기도응답이 없거나 작게 올 때 그리고 기도응답의 횟수가 적을 때에는 어떻게 하는지를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기도의 교훈 곧 기도가 무엇이며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후에 한 마디 말씀을 덧붙히셨다. 그것은 마7:12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접 직역해보자.
마7:12 그러므로 만약 [장차] 사람들이 무엇이든지 너희에게 행하기를 원한다면, 그 모든 것들만큼을, 너희도 이과같이 그들에게 [계속해서] 행하라. 왜냐하면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말씀에 의하면, 기도는 율법과 선지자라는 것이다. 기도란 원래 율법과 선지자와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자는 이 속성들을 정확히 알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기도응답이 축소되거나 없는 것인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인색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누군가에게 너무나 인색해왔는데, 어떻게 하나님께는 내게 풍성히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말해 내가 하나님께 긍휼을 얻기 원한다면, 우리가 우리에게 긍휼을 받기를 원하는 자에게 먼저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적인 의미다. 내가 하나님께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원한다면, 우리도 당연히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해주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의 법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율법은 행한대로 그 결과가 주어지는 법이지 은혜의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레18:5). 그러므로 내가 기도에 더욱 풍성한 응답을 원한다면 남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풍성한 것을 먼저 드릴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물질은 인색하면서도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하기를 구하는 것은 율법의 법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기도란 선지자라고도 말씀하셨다(마7:12). 이것은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맺은 약속이기에 하늘에 두쪽나도 반드시 지켜진다는 것을 알리는 말씀이다. 그렇다. 기도는 약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누가 막 불쌍하다고 해서 그에게 먼저 적용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8. 나오며
  이제는 우리가 기도할 차례다. 기도가 좋다는 것을 아무리 알고 있어도 책(기록)을 통해서만 배운다면 내게 실제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죽은 다음에 내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밖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좀 더 풍성하게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떤 기도는 1단계(구하는 단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2단계(찾는 단계) 내지는 이어지는 3단계(문을 두드리는 단계)까지 기도해야 할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요청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고시에 합격하는 일이라고 쳐보자. 공부는 안 했는데,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과연 그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일까? 아니다. 공부도 부지런히 해야, 합격의 영광도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크게 어려운 것은 3단계 기도의 방법이다. 그것은 이것이다. 아무리 무거운 기도제목이요 아무리 급한 기도제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동의 곧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져야만이 기도가 응답되는 것들도 있다. 이것이 바로 문을 두드려라는 기도방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동의가 아직 나지도 않았는데, 질병에게 마구 떠나갈 것을 요구하기도 하고, 귀신더러 떠나가라고 축사하기도 하고, 용하다는 세상의 방법을 다 찾아내어 적용해보기도 한다. 그래도 그 사람의 질병은 결코 낫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이 아직 참새 한 마디도 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락이 나기까지 우리는 철저히 겸손해져야 한다. 자신의 잘못이 없나를 부지런히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깨닫게 하는 일에 즉시 반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일에는 지난날에 지은 죄들에 대한 통회자복하는 일이 있다(사59:1~2). 그동안 남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개한 뒤에 긍휼을 베풀어주는 것도 있다(약2:13). 회개케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고 살아왔음을 철저히 회개하고 주님의 바램에 부응하는 것도 있다(마12:32).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도하다보면 성령께서 그것을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시행하면 된다. 
  기도응답은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은혜에 속한 것이 아니다. 기도는 마치 심는대로 그대로 거두워들이는 농업방식과 똑같다. 그러므로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고 하지 말라. 무엇으로 심든지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이 율법이다(갈6:7). 그 율법과도 같은 것이 기도인 것이다. 행한대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에게 내 죄를 용서받기 원한다면, 남이 자기에게 용서받기를 원하는 그 죄를 용서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라. 기도는 또한 선지자다. 하나님의 약속이기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기도하라. 그러면 그렇게 될 것이다. 건투를 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