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는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술람미 여인이 보이지 않는 솔로몬을 찾고자 할 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신랑을 찾는 술람미 여인을 공격하고 빼앗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원래 성안 사람들을 지키라고 그리고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라고 세워진 사람들일텐데, 왜 이들은 오히려 술람미 여인을 도와주지 못했는가? 대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들은 천사들인가 사람들인가? 2021-10-25(월)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신부(40) 아가서강해(30)[최종회] 성안 순찰자와 성벽 파수꾼은 왜 술람미 여인을 도와주지 못했을까(아3:2~3,5: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5urMsGcxaM [혹은 https://tv.naver.com/v/23166374 ]

 

1. 들어가며

  아가서의 말씀들은 사실 실제했던 사건을 기록한 것이지만 동시에 이 책에 등장인물과 배경들은 다 어떤 함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영적인 책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을 사용해 좀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특히 아가서에 나오는 각종 나무와 꽃들 그리고 동물들과 숫자까지도 다 의미가 들어있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등장 인물들이 누군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들 중에는 "예루살렘의 딸들"로 지칭되는 '처녀들'이 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내로서 왕후(왕비)와 비빈(후궁)과 시녀들도 등장한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에 살 때에 만났던 사람들도 나온다. 그들은 바로 '성 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이다. 오늘은 이들이 과연 누구인지 왜 이들은 술람미 여인을 도와주지 않았거나 혹은 못했는지 그리고 나중에 이들은 왜 술람미 여인을 모욕하는 자들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어떤 말씀을 들을 때에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것은 우리의 과제와 기도제목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2. 술람미 여인이 청혼 후 임시로 거주했던 예루살렘 성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술람미 여인을 귀하게 본 솔로몬이 어느날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아2:10~14). 그리고 임시로 예루살렘 성 안에 머물게 한다(아3:1~3). 그런데 솔로몬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은 밤에 고민을 하다가 꿈 속에서 예비신랑인 솔로몬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녀는 꿈 속에서도 솔로몬을 만나지 못한다. 이에 꿈에서 깨어난 술람미 여인은 그밤에 성안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사랑하는 자 솔로몬을 찾아서 거리들과 큰 광장들로 나간다. 하지만 또한 만나지 못한다. 그때 그녀는 성안에서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보았는지를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해주지 못한다. 그런데 그때 그들을 지나치자마자(사라지자마자) 솔로몬을 만나게 된다. 솔로몬이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은 솔로몬을 찾는데 도와주지 못했던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지나가자마자 왜 솔로몬이 그녀 앞에 문득 나타나게 된 것인가?

 

3. 결혼 후에 또 한 번 신랑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가?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결혼 후에도 신랑을 한 번 잃어버린 일이 있었다(아5:2~7).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을 찾기가 예전의 경우보다 훨씬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일은 어느날 밤에 일어났다. 그녀가 침소에 든지 오래 지난 시각이었다. 그런데 새벽녘이 되어서야 남편이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남편의 머리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핑계를 대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아마도 다른 여인의 품에 있다가 이제야 들어오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핑계는 그녀가 옷을 벗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찌 다시 입을 수 있겠으며, 발을 씻었는데 어찌 다시 더럽히겠느냐고 하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그의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손으로부터 몰약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아5:4~5,13).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서 자신의 남편을 위하여 문을 열어 준다. 그녀가 문빗장을 만졌을 때에 자신의 손에서도 남편에게서 나온난 몰약즙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이미 벌써 돌아가버리고 그 자리에 없는 상태였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곧장 남편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만날 수 없었으며, 그를 불러보았지만 응답도 없었다. 그러자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가 찾아본다. 그리고 성안에서 또 다시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났는데, 이번에 그들은 그녀를 때려서 상하게 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역시 그녀의 겉옷을 벗겨서 가져가버렸다. 그러자 그녀는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남편을 찾을 수 있도록 하소연을 한다. 그러자 그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자가 다른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얼마나 희고도 붉은지 만인 중에 뛰어나다고 말했다(아5:10). 그리고 남편의 머리부터 다리까지 남편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들려주었다(아5:11~16). 그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자요 자신의 친구라고 말이다. 그러자 예루살렘의 딸들도 그녀와 함께 그를 찾는 데에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못가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그의 동산에서 만난다. 그는 이미 동산으로 돌아가 양떼를 먹이고 있었고 백합화를 줍고 있었다. 그럼, 왜 이번에 술람미 여인은 남편을 쉽게 만나지 못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가? 그리고 왜 성안 순찰자들과 성벽 파수꾼들에게 수모를 당해야 했는가? 

 

4. 두 번의 사건 속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2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그녀가 거주하던 '예루살렘'이 대체 어떤 곳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녀가 나중에 신랑을 발견한 장소였던 바, 솔로몬이 양떼를 먹이고 있는 동산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 두 사건 속에 등장하는 성안의 순찰자들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왜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은 그녀가 솔로몬을 찾는데 첫 번째에도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오히려 그녀를 때리고 그녀의 겉옷까지 빼앗아가는 일을 저지른 것인가? 

  먼저, 그녀가 처음에 남편을 찾았던 장소와 그리고 순찰자들을 만났던 장소가 어디였는지부터 정리해보자. 그곳은 "성안"이었다. 여기서 성이란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이란 왕이 거주하고 다스리는 도성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녀가 첫번 째의 경우에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예비신랑을 만났지만, 나중에는 성안에서 그를 만나지 못했고 그의 동산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 대한 영적인 해석을 할 때에 우리는 예루살렘 성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잘 해석해야 한다. 어떤 이는 예루살렘 성은 '천국'을 의미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성은 남편의 임재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공간이었고, 신부가 성안의 순찰자들에게 모욕을 당할 수도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루살렘 성은 오늘날로 치자면 양과 염소가 혼재되어 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지상에 있는 교회 안에도 계시지만 진정 주님이 계시는 공간은 주님이 일하는 일터 곧 자기 동산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분은 교회 안에 계신다. 하지만 교회 전체가 다 거룩한 공간은 아니며,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위하는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가 두 번 다 솔로몬을 찾아나선 시간이 어느 때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둘 다 밤 시간이었다고 나온다. 그런데 아가서에서 밤 시간이란 두려움이 임하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솔로몬도 결혼을 위하여 술람미 여인을 모셔오도록 자신의 가마를 보낼 때에 이스라엘의 용사 60명을 딸려보냈었다. 그 용사들은 다 칼로 무장한 사람들이었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아3:7~8). 왜냐하면 그들도 밤의 두려움(위험)으로 인하여 각기 자기의 허리에 칼을 차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 솔로몬이 가마를 지키라고 보낸 용사들은 누구인가? 우선은 솔로몬이 보낸 왕의 군사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좀 더 영적으로 들어간다면, 귀신들의 공격으로부터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보호하도록 주님이 보낸 천사들 곧 칼을 찬 수호천사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5. 두 번의 사건 속에 등장하는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제 우리는 오늘 메시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서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본 시간이 되었다. 그럼 이들은 천사들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사람들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둘 다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이들을 사탄마귀와 귀신들로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무방한 해석이 된다. 왜냐하면 아가서에서는 기본적으로 짐승들 곧 포도밭을 허는 여우(아2:16)와 사자와 표범(아4:8)은 사탄마귀와 귀신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우'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왕'을 지칭할 때 사용한 표현이요(눅13:32), '사자'와 '표범'은 다니엘서 7장과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세상제국의 왕들을 가리키며, 그들의 실제는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들(귀신들)을 가리키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래도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고로 예루살렘의 딸들, 술람미 여인의 의붓오빠들, 그리고 성 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은 일차적으로는 그때 술람미 여인의 주변에 있던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나중에는 술람미 여인을 모욕하고 상처를 주고 겉옷까지 빼앗아갔던 성안의 순찰자들과 성벽의 파수꾼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2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사탄의 무리들"로 보는 견해다. 이렇게 해석하는 분은 히브리어 원어를 성경을 해석하는 체데크 성경원어 신학대학원장 송광현박사의 경우다("원어로 풀어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야기 아가서/체테크"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p.202.). 그리고 둘째는 교회를 지키도록 감독의 직분을 맡아 임무를 수행하는 자들로 보는 견해다. 이러한 견해는 총신대를 졸업하시고 칼빈대와 총신대의 교수를 역임하신 하문호 박사가 주장했다("아가서"/도서출판 그리심. p.413). 하문호박사는 그 직분자를 오늘날 교회의 목사와 장로, 더 나아가서는 권사나 구역장이나 교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상당히 새겨들어야 할 해석이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가는데 가장 방해하는 존재들이 바로 당시 종교지도자들이라고 호되게 지적하셨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마23:33~34).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두 천국에 들여보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천국문을 가로막고 있다고 책망하셨다(마23:13). 그러므로 술람미 여인이 신랑을 만나는데 방해하고 해코지하고 모욕을 준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일 수도 있다. 특히 여기서 '성안을 순찰하는 자들'은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자들로서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들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은 외부의 세력의 침입을 경고하는 자들로서, 신학자들이나 이단감별사들을 가리킬 수 있다. 사실 이들은 성도들을 지켜주어야 하고, 이들이 신랑되신 예수님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주어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오히려 방해꾼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혹시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이러한 지도자들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그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모든 삶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어느 목회자치고 자신의 양무리를 때리고 힘들게 하고 양떼들의 것을 갈취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십만분의 일이라도 그러한 일이 있다면 성도들은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나를 인도하는 목회자가 예수님과 같은 선한 목자로서 양무리를 천국으로 잘 인도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이다. 

 

6. 나오며

  오늘 말씀은 정말 주의해서 들어야 할 말씀 중의 하나다. 잘못 설교했다가는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말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말씀만큼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말씀은 또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자가 오히려 주님과의 만남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거나 오히려 주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정말 자신이 섬기고 있는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아무리 부족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영적인 부모님을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 교회에게 주신 말씀의 핵심사항이기 때문이다(계2:2~5). 그렇다.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성도를 지키고 보호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외부의 이단세력이나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방어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더욱이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주 예수님을 만나게 도와주고 성도들로 하여금 천국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적으로 집행되지 못했을 때에, 아가서의 말씀은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성도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목양하는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을 발견하는 순간이 된다. 그러면 술람미 여인으로 하여금 솔로몬을 만나는데 실제적으로 방해하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사탄마귀와 귀신들이다. 이들이 배후에서 다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미워하려고 하지 말고 귀신들을 미워하라. 그리고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하라. 이것이 성도들의 바른 삶인 것이다. 

 

2021년 10월 24일(주일)

정병진목사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치르는가? 그렇다. 적어도 구약시대에는 그랬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달라졌다. 첫째는 이 세상이 귀신천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께서 온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범죄한 경우와 예수님 시대 이후에 범죄한 경우는 그것에 대한 처벌과 수위가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으며 어떻게 달라진 것인가? 그리고 나와 내 후손이 좋은 것만을 누리면서 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0-07-0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진짜 후손들이 치르는 것인가?(요9:1~4)
https://youtu.be/7jigB8K_iao  [혹은  tv.naver.com/v/14652750 ]

 

 

1. 들어가며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과연 아들과 자손 등 후손들이 받게 되는가? 그렇다고 하는 이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죄값에 대한 구약과 신약의 경륜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살펴봄으로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후손들이 죄값을 받는 것에 대해 귀신들은 과연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더 자세한 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미 기록된 성경 66권의 성경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의 삶도 점검하여, 오늘의 현재를 살고 있는 나 자신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2. 죄값을 처리하는 것에 대하여 구약시대에는 어떻게 했는가?

  성경말씀에 보면,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는가에 대하여 구약성경의 말씀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예를 들어, 다윗과 사울왕과 아합왕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 때문에 후손들이 고통을 받았암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첫째, 다윗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정말 죄값을 물게 했는가를 살펴보자. 다윗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그는 먼저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 장수의 아내를 욕보였다. 그리고 그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우리야 장수를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하였다. 먼저 남의 여인을 탐냈으니 그는 제10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남의 여인을 도둑질했으니 또한 제8계명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남의 아내를 욕보였으니 제7계명을 어긴 것이고, 우리야 장수마저 죽게 했으니 제6계명을 어긴 것이다. 다윗은 탐심죄, 도둑질죄, 간음죄, 살인죄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 죄값을 어떻게 받았는가? 우선 그는 살인죄에 대한 벌로서 4배를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것은 그가 자기 입술로 내뱉은 말에 근거한다(삼하12:5~6). 그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남의 것을 빼앗은 죄에 대해서 4배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와같은 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즉시 그 죄를 인정하였고 눈물로 회개를 하였다. "내가 여호와를 대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도 그의 회개를 들으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윗 자신도 그 죄값으로 인하여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죄값은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가 그 죄값을 치렀는데, 그가 살인죄를 저지른 탓에, 그는 4명의 아들들이 잃어야 했다. 가장 먼저는 밧세바와 간음으로 인하여 잉태된 아이가 죽었으며, 셋째아들 압살롬에 의해 첫째아들 암논이 죽었고, 이어 압살롬이 쿠테타를 일으키는 바람에 요압장군에 의해 압살롬도 죽었으며, 그의 아들 솔로몬 대에 가서는 넷째아들 아도니야도 죽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남의 아내를 겁탈한 죄값(탐심죄, 도둑질죄, 간음죄)도 혹독하게 치러야 했으니, 압살롬에 의해 자신의 후궁들이 대낮에 욕을 당하는 꼴을 보아야 했다. 고로 우리는 다윗이 죄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값을 자신과 그의 후손들이 혹독하게 치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그의 후손들이 죽은 것을 두고서, 모두가 다 다윗의 잘못때문에 죽은 것으로만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죄는 용서받았으나 벌을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받았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 사울왕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정말 죄값을 물게 했는지도 살펴보자. 삼하21장에 보면, 다윗이 왕위에 있을 때에 계속해서 3년간 연거푸 기근이 있었다. 다윗은 기도한 결과 그것이 선왕이었던 사울왕의 잘못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선왕인 사울이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기브온 거민을 죽였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수년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마침내 기근의 재앙을 그 다음 세대에 내리셨다. 이처럼 한 나라의 지도자의 잘못은 한 나라에게 징계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자 다윗은 어떻게 해야 온 나라가 기근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를 궁리하다가 살아있는 기브온거민을 불러다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 민족을 학살하기고 모해한 했던 사울의 자손 일곱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을 목매어 죽이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다윗은 사울의 두 아들들과 외손자들 5명을 기브온거민에게 내어준다. 그들은 사울왕의 첩의 두 아들들이었고, 사울왕의 딸 메랍의 아들들로서 외손자들 5명을 그들에게 내준 것이다. 결국 7명의 후손이 사울이 범죄한 죄 때문에 대신 죽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 땅에 가뭄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조상의 죄값을 후손들이 혹독하게 치렀다는 것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예다. 

  셋째, 아합왕의 범죄가 후손들에게 죄값을 물게 했는지를 살펴보자왕상21장을 보면, 분열왕국 중에서 북이스라엘의 제7대왕이었던 아합 왕 때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봇이었다. 그 이유는 아합왕의 욕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아합왕은 왕궁 근처에 있는 포도원을 자신의 나물밭을 삼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 되자 자기의 아내를 통하여 포도원의 주인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는다. 그것은 도둑질의 죄요 살인죄에 해당할 것이다. 그것은 땅도 보고 하늘도 보고 있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도 보고 계셨다. 하나님은 즉시 선지자를 보내 아합왕이 지은 죄값을 그와 그의 자손에게 물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결국 살인죄를 저지른 아합왕도 비참하게 죽었고, 자기자식들과 손자들도 비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먼저 전쟁터에 나갔던 아합왕은 적이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았는데, 후송되는 과정에서 죽고만다. 그러자 피가 흥건히 적셔진 수레를 개가 핥으므로 나봇을 돌로 쳐죽이게 한 죄값을 자신이 도로 받는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첫째 아들 아하시야왕이 병들어 자식없이 죽었으며, 둘째아들 여호람 왕도 창자자 썩는 중한 병에 걸려서 창자가 빠져나오 죽게 된다(대하22:19). 그리고 여호람이 낳았던 손자들 42명도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하고, 아합왕의 다른 70명의 아들들도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과거에 자신의 조상이 나쁜 죄를 지으면 후손이 잘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랑스런 후손들이이 징계를 받아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 조상들의 지은 죄값을 후손에게도 묻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라 대단히 성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이 죽는 것이 100% 조상이 지은 죄값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조상들이 지은 죄를 후손들이 받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만약 조상이 지은 죄가 우상숭배의 경우라면, 그 죄값은 아들 손자 뿐만 아니라 더 내려가서 3~4대후손에게까지 물린다고 되어 있으니, 우상숭배의 죄값을 매우 크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출20:5). 고로 후손이 죄값을 받는다는 말은 헛된 말은 아닌 것이다. 

 

3. 죄값을 후손에게 물리는 것에 대한 구약의 경륜과 신약의 경륜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죄값을 물리는 것에 대한 구약시대의 처리방식과 신약시대의 처리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3가지 경우를 살펴보았지만, 구약시대에는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치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구약시대는 아직 메시야가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기 전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죄를 지었을지라도 본인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가 있었다(고로,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벌은 면제받지 못했고, 자기와 자기의 후손이 다 받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골고다언덕에서 죄값을 대신 담당하신 이후부터는 상황은 반전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대신하여 온 인류의 죄값을 대신 십자가에서 치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인류가 받아야 할 죄값을 대신 다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태어난 세대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기만 한다면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죄값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속죄사역을 치르신 후에 지은 죄들은 만약 그가 회개하기만 한다면, 다 용서받아 그 벌까지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상황은 다르다. 이스라엘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믿어온 백성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2~3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다 우상과 귀신들을 섬겼던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에게는 출20:5에 따라, 우상숭배의 죄값을 계속해서 후손들이 대신 받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조500년동안에는 죽은 조상을 신으로 떠받들어 섬겼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의식이었다. 결국 집집마다 귀신이 죽은 조상으로 나타나 제사를 받는지도 모른채 죄를 지었으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민족,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조상들이 지은 죄값을 후손들이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만 믿으면 과거에 지은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는다고 가르쳤다. 심지어 예수믿으면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값을 받지 않는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만 믿으면 과거의 죄가 사함받는다고 하는 말씀이 단 한 개도 없다. 오직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만 비로소 그 죄를 용서받는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요일1:9). 고로 예수를 믿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자기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과 자기 조상들이 지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랬을 때에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아직 메시야가 오시기 전의 상황이다. 고로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오실 메시야를 믿고 미리 구원받은 것이다. 장차 오시어 인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실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미리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자신이 지은 죄는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 예수께서 죄값을 처리하기 전의 상황이므로, 비록 죄는 용서받아도 후손들에게 묻겠다는 죄값은 여전히 유효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조상대대로 귀신과 우상과 미신과 잡신을 섬겨온 민족이다. 우상숭배의 죄값이 수천년을 이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후손들이 받아야 할 죄값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만 믿으면 조상들의 죄와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의 후손들인 우리가 얼마나 고통 속에 살고 있는가? 이제는 우리부터라도 회개하여 조상들의 죄값을 다 끊어놓아야 한다. 그래서 죄값이 더 이상 아래 후손에게로 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4.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의 경우 범죄했을 때에 악한 영들(귀신)은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구약시대에는 누군가 죄를 지었다면 그는 자신이 회개했을 경우에는 그의 죄는 용서을 받았지만 그 벌은 받아야 했다. 그것도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받아야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출34:6-7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그런데 예수께서 오실 무렵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우선적으로, 귀신들이 급격히 늘어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구약에도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있었다. 구약시대에 이방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대체 누구였겠는가? 애굽의 술사들이나, 바벨론의 술사들이 섬기던 신들도 대체 누구였겠는가? 그리고 엔돌에 신접한 여자 속에 들어있는 신은 대체 누구였겠는가? 다 귀신들이었다. 타락한 천사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에는 사탄의 왕국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사탄이 귀신들의 왕(통치자)가 되어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워 통치하던 시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니, 예수께서 탄생하기 직전에 용 곧 사탄마귀가 하늘의 천사들 1/3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계12:2~4). 그 즈음에 하늘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사탄마귀의 말을 듣고 반역을 일으킨 것이다. 그래서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에 의해 용과 용을 따르는 천사들이 땅(지구)로 쫓겨나게 되었다(계12:7~9). 그뒤 사탄은 음부(땅속)에 자신의 보좌를 만들어놓고 스스로 왕이 되어 귀신들을 자신의 부하로 두고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에는 귀신이라는 존재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신약시대에 들어와 갑자기 귀신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개별적으로 타락하여 떨어진 천사들 곧 악령들만 조금 등장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 신약시대가 되자, 귀신천지가 되었다. 고로 예수님의 공생애의 1/3은 사실 귀신을 쫓는 사역이었다. 그만큼 귀신이 많았고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 사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에서 설교할 때에도 귀신을 쫓아내야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죄에 대한 징계(벌)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면, 죄값을 비록 본인이 회개하여 용서받았음에도 자기와 자기의 후손이 받아야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값을 담당하신 후부터는 그 죄값을 담당하는 것이 훨씬 작아졌다. 아니 많이 줄어들었다대신 귀신들이 사람들 속에 들어가 온갖 저주(질병, 사건사고, 가난, 빼앗김, 종노릇함, 기근, 사망)를 가져다 주는 것은 부쩍 늘어났다. 이는 귀신들위 숫자가 구약시대에 비해 아주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아담의 타락이후부터 귀신들은 죄를 짓는 사람들 속에 들어가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창3:14). 그러므로 신약시대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을 경우 귀신들이 사람 속에 들어가 저주를 주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그의 후손에게 들어가 또 다시 저주로 역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연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았는지 그리고 조상들이 지은 죄들이 용서되었는지는 귀신의 역사를 통해서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벌써 귀신들이 집단적으로 역사하기 시작한지 2천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조상대대로 우상과 잡신과 미신과 귀신을 섬겨온 민족이기에 한국의 저주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사람이 만약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섬겼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이것을 하지 않고서는 자기도 온갖 저주를 받아서, 각종 질병과 사건사고에 시달리게 되고, 열심히 수고해봤자 얻은 것은 없으며, 가진 것도 빼앗기고 강탈당하며, 자식들은 어려움에 호소하나 도울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라도 회개는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지만 나와 내 자식의 앞 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5. 예수님의 시대에 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자는 과연 누구의 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당시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난 자에 대해서 왜 그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지은 죄값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가? 사실 어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저주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하나님만을 섬기던 민족에게서 맹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죄가 그의 윗대에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때에 제자들이 먼저 입을 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채 있는 것은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입니까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입니까?(요9:2)"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 죄를 짓지 않았으며, 그의 부모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다. 다만 그이(그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되기 위함이다(요9:3, 헬라어원문직역)"라고 말씀하셨다. 

  이 본문에 대한 그동안의 해석은 이렇다. 이 일이 있던 시기는 초막절의 절기로서, 초막절에는 밤에 높이 들린 등잔대에 불을 밝혀 한 밤중에도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대낮처럼 밝게 해 두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은예수께서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영적인 세계를 알고 보니, 한 가지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상들의 죄값을 후손에게 물으시겠다는 출20:5의 말씀이 이 일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살펴보니, 예수님의 말씀을 틀림없는 하나님 말씀이다. 그러므로 맹인이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우상숭배의 죄값은 3~4대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을 이 상황에 대입해보면,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은 2~3대 윗대의 조상들의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다아마도 조부나 조모에게 우상숭배의 죄가 있었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에 들어와서 손자손녀들이 받고 있는 저주가 대부분 조부나 조모의 우상숭배의 죄로 나타나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랬다. 예수님의 말씀은 절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렇다고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 죄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냐하면 지체 장애는 결코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장애는 축복이 될 수도 있지만, 출생으로 인한 지체장애는 결코 축복이 될 수는 없다. 고로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출20:5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우리가 진정 복을 받고 우리 후손이 복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할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6. 나오며

  사람이 죄를 지으면 누구나 거기에 합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만약 자기가 그 벌을 받지 않으면 그의 후손이라도 반드시 받는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율법의 정신이다(출20:5). 그러므로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십계명은 지키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하여 나 자신이 십계명을 어기고 범죄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죄로 인해 반드시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구약시대에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값을 담당하기 이전의 상황이므로, 회개를 했다고 할지라도 그 벌은 면제되지 아니하였다. 세 왕들 곧 다윗과 사울과 아합왕의 경우를 보라. 그래서 자기와 자기의 후손들이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처리하신 이후부터는,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서 형벌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하늘의 집단적인 반역이 있었다. 그리하여 사탄의 왕국이 땅속 음부에 세워졌다. 그후로 사탄의 부하들인 귀신들이 올라와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사람 속으로 들어가(창3:14),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으로 삼고 거주하기 시작하였다(마12:43~45). 그리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귀신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다시 그의 후손에게로 들어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2~3대만 올라가도 다 불신자였기에 적어도 2천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니 얼마나 귀신들이 많겠으며, 귀신들이 가져다주는 저주들이 또한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저주를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회개했을 때에 비로소 죄를 용서받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아도 죄가 다 용서되었다고 그리고 저주도 받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신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와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악을 인정하고 자백하고 통렬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죄가 용서되고 죄가 용서되면서 귀신들도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내가 잘 되기 시작하고, 내 후손들도 복을 받는데, 손대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고 승승장구하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신28:12~14). 건승을 빈다. 

 

2020년 7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10) 영들분별의 은사는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나?(고전12:10)_2020-06-30(화)

https://youtu.be/WCUkR343n0A [혹은 https://tv.naver.com/v/14539929 ]

 

 

1. 성령의 9가지 은사가 가운데, "영들분별"의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요?

  성령의 9가지 은사 가운데 "영들분별함"의 은사(고전12:10)는 어떤 영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를 분별해내는 은사입니다. 여기서 "선한 영"이란 하나니을 수종드는 선한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악한 영"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이 땅으로 쫓겨내려온 "사탄의 그의 부하들" 곧 사탄과 귀신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영들분별의 은사는 어떤 역사가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를 구별해내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2. 선한 영과 악한 영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나요?

  그것이 선한 영인지 악한 영인지를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은 그 존재를 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놈들도 과거에는 선한 천사였기에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영원히 숨길 수 없습니다. 참고로 선한 천사들은 결코 악한 영으로 가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영적 세력들을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이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귀신이 들렸어도 자신은 귀신들리지 않았으며, 또한 자기 속에 귀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까지 있습니다. 분명 그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영락없이 귀신이 들려있는데, 자기에게는 귀신이 없다고 그냥 잡아떼는 것입니다. 보고서 말하지 않으면 그놈들도 계속해서 속이려고 할 것입니다. 

 

3. 초대교회 때에는 어떻게 영들분별 은사가 나타났나요?

  특별은사로서 누군가 영들분별의 은사를 가졌다고 한다면, 그는 천사를 본다는 뜻입니다. 또한 귀신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천사를 보거나 귀신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오순절날 마가다락방에서 최초의 성령세례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서 사도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그에게는 영들분별의 은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천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행12:7). 천사가 찾아와 옥중에 갇혀 있는 자신의 쇠사슬을 풀어주었고 쇠창살도 푼 다음, 그가 탈출하게금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성령의 음성도 들었습니다(행11:12). 또그리고 예수님의 음성까지 들었습니다(행10:13~15,28). 또한 사마리아에 가서는 시몬이 귀신들린 것까지 알아보았습니다(행8:18~24). 그리고 대낮에 환상도 보았습니다(행10:10~12). 그에게 이미 영들분별이 은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바울도 베드로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귀신을 보았습니다. 그가 귀신들려 점치고 있는 여종에게 귀신을 쫓아내었기 때문이다(행16:16~18). 그리고 환상도 보았습니다(행18:9~10). 그리고 직접 주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행9:3~5,23:11). 이는 그가 어떤 음성을 들을 때에 그것이 주님의 음성인지 귀신의 음성인지도 구분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4. 영들분별의 은사가 왜 지금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요?

  그런데 오늘날에 들어와서는 왜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기가 희귀하게 되었을까요? 그때의 성령 또한 그때의 성령의 은사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것인가요? 그때에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시기였고 지금은 아닌 시대가 되었다고 우기면 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성령께서는 내주하시고 부어지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있어서 지금에는 귀신을 잘 볼 수 없고, 천사도 잘 볼 수 없고, 성령의 음성이나 주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인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서 영의 세계를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영안이 열린다면 그에게서도 영들분별의 은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5. 영안이 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동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뿌리를 한 두 뿌리 정도 뽑는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는다고 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산기도를 다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산기도는 커녕 철야기도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 철야기도를 계속하면 영안이 열리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도 하지 않은 사람이 영안이 열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 영안이 열리지 않는 이유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뇌)에 온갖 악한 세력(뱀들)이 들어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 죄가 다 씻겨진다면 누구나 다 영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머리 속에 있는 영적 세력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회개하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는 일인데, 그것도 자기가 행했던 우상숭배의 죄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까지 포함하여 회개할 때에 악한 세력들이 떠나가게 되고 그러면 영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고백해야 할 우상숭배의 죄는 무엇입니까? 그건 한 4가지 정도입니다. 조상제사를 드렸던 것, 부처를 섬겼던 것, 무당과 점쟁이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그들이 시킨대로 행했던 것, 미신과 잡신을 섬겼던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우상숭배의 죄는 자신을 창조한 주인(왕)을 버리고 다른 주인을 섬긴 죄였으므로, 대역죄에 해당합니다. 대역죄는 한 두 번 용서해달라고 하는 것으로 용서되는 죄가 아닙니다.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자신의 죄와 조상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할 때에 악한 세력들이 힘을 잃어버리고 머릿 속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라도 날마다 회개합시다. 

 

2020년 06월 30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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