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1) 바울의 고별설교(2) 바울의 교회론과 목회자의 4가지 주의할 사항(행20:28~38)_2022-12-30(금)

https://youtu.be/_KZrFhMUi00  [혹은 https://tv.naver.com/v/32116106 ]

 

1.  바울이 밀레도에서 전한 고별설교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교회관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전했던 고별설교의 내용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에베소 장로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에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은 바울이 어떻게 에베소에 들어가서 주를 섬겼는지와 그가 전했던 복음의 핵심 4가지와 그리고 복음 전파자의 각오와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또 하나로서 바울이 장로들에게 한 권면의 말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랬다. 바울은 그때 자신이 바라보는 교회관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전했으며, 동시에 양떼를 돌보아야 할 감독자가 지녀야 할 4가지 주의사항에 대해서도 전했던 것이다. 

 

2.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교회관은 어떤 것이었는가?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그들은 성령으로부터 양떼를 맡은 감독자(에피스코포스)라 부름받은 것이라고 전했다(행20:28). 그러면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언급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피값을 주고 사신(획득하신) 것이라고 했다(행20:28). 이와 같은 사실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대신해서 얻은 것이 곧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다(롬5:8). 그리고 둘째로, 교회를 건져내기 위해 피흘리신 분은 실제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인데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시 한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교회는 감독자(목회자)와 양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행20:28). 오늘날에 들어와서 교회 안에는 목회자는 더이상 필요없고 모두 다 같이 형제자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곳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도 많은 기록을 남겼던 사도 바울이 교회의 구성원을 '감독자'와 '양떼', 이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사도 요한에게 편지를 써 보내게 하였는데, 그때 에베소교회에 보내라고 명령했던 편지를 통하여 말씀하기를, 주님께서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는 '교회의 사자'라고 했다. 여기서 '교회의 사자'는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로서 오늘날의 목회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계2:1). 그렇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그분은 이 땅에 있는 일곱 교회로 지칭되는 7가지 유형의 교회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 중에서도 역시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인 목회자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도 역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계시는데,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들을 쥐고 계시기 때문이다. 일곱 별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3. 바울은 훗날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였는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문제가 발생하자 그 문제를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게 된다. 그러자 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에 간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어떤 감옥에 갇혀 있게 되는데, 그때 그는 에베소교회에 편지(에베소서)를 써 보낸다. 그런데 이 편지에는 온통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표현했는가?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5~6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고 했다(엡1:23). 곧 교회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기관이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처럼 아끼는 각 지체들의 연합이라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했다(엡1:10).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셋째,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한 새 사람이라고 했다(엡2:15). 과거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믿고 따라 살던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우주적으로 큰 새 사람이라는 것이다.  넷째, 교회는 성전으로서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처소라고 하였다(엡2:21~22).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는 성막이었다. 그것이 성전으로 발전했는데, 어느 날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있었기 때문이다(요2:19~21). 그리고 그것이 믿는 성도들인 교회가 된 것이다(고전3:16). 다섯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부라고 했다(엡5:25~27,32). 이것은 교회의 미래적인 지위를 말씀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교회는 그분의 신부가 될 것이다. 여섯째, 교회는 영적 전사라고 했다(엡6:12). 교회는 악한 영들로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할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4. 바울은 양떼를 돌보아야 할 감독자(목회자)가 주의하고 있어야 할 4가지 주의사항으로 무엇을 말했는가?

  바울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그는 거의 모든 계시를 다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감독자들이 해야 할 일이자 또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무엇을 말했는가? 그것은 총 4가지를 언급했다. 이것들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첫째, 양떼를 해치는 포악한 이리 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행20:28~29). 즉 이단 세력으로부터 그리고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지켜내야 할 책임이 목회자에게 있다고 한 것이다. 둘째,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미혹하고 있는 거짓된 세력을 분별해 내라고 하였다(행20:30). 이들은 자기의 뒤를 따르게 하기 위해 주님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불러내어 왜곡된 말을 하고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두 종류의 이단 세력들이 있었다. 하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다(행15:1~2). 오늘날에 이런 세력들은 일부 안식교에도 있는데, 대표적인 이단 세력은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다. 또 하나는 영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영적인 지식만을 깨우치게 되면 육은 아무렇게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자신의 영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상에게 경배해도 그것은 우상숭배 행위가 되지 아니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당시에는 에베소교회에 있던 '니골라당'이 여기에 속하며(계2:6), 버가모교회에서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계2:15~16). 그리고 두아디라교회의 경우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들'이 이들이다(계2:20). 고로 교회에서 목회자는 이런 세력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분별해내어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셋째, 사도 바울이 무려 3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르쳐 주었던 말씀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행20:31~32). 이것은 곧 회개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의도, 경륜)에 관한 말씀들이다. 넷째, 범사에 모본을 보이라는 것이다(행20:33~35). 물질에 욕심을 내지 말고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고 그렇게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다. 

 

5.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고별설교는 왜 중요한가?

  바울은 이러한 만남을 끝으로 더 이상 에베소 장로들과 만나지 못한다. 그때 그들에게 전해 준 것이 장로들이 꼭 들어야 할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준다. 그것은 첫째로, 목회자는 교회의 수호에 있어서 책임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둘째로, 목회자는 반드시 이단 세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가 가르쳐야 할 복음의 핵심 4가지를 잘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목회자는 베푸는 데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이러한 것들에 주의하면 교회는 건강해질 것이고, 또한 성도들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2년 12월 3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38)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의 교회관은?(행9:10~18)_2022-09-09(금)

https://youtu.be/YAHMuCkl_KQ  [혹은 https://tv.naver.com/v/29111775 ]

 

1. 바울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는가?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드디어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바울이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주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신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바울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이 땅에 그에게 사명을 주어 보내셨던 분께서 이제는 때가 되니 찾아오셔서 그를 불러내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부터 이 땅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려고 보냄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어둠의 영들에 갇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경륜도,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전혀 알지 못한 채 있었다. 그러다나 어느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을 가다가 빛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럼, 예수께서 사람에게 오실 때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 하늘과 우리가 살고 있는 첫째 하늘이 순간적으로 딱 맞닿아버리면서 즉시 오시는 것이다. 즉 중간의 둘째 하늘이 접혀져 버리면서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빛은 프리즘처럼 쫙 펼쳐지게 되는데, 그 속에서 예수님의 형상이 그려지면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빛 가운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2.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로 3가지는 무엇인가?

  사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로는 3가지다. 하나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방문을 맞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구약시대에 해당되며,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고, 모세가 그랬으며, 사무엘이 그랬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에는 이름을 부르시는데, 그때에는 꼭 두 번씩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창22:11), "모세야 모세야"(출3:4), "사무엘아 사무엘아"(삼상3:10). 그러나 하나님의 모습은 결코 볼 수 없다(요4:24).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딤전6:16).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방문을 맞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의 일인데, 예수님의 방문을 맞이하는 것도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있어서 중대한 일을 행하실 때에는 아버지 하나님이나 예수님께서 직접 오신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경로는 어떠할까? 그때에는 대부분 다 성령께서 오셔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세 번째의 경우이다. 그런데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육안으로는 하나님이 오셨는지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셨는가 하는 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는 결과로서 알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주인이 나였던 것이 그때부터 성령 하나님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세미하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예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음이 확실히 믿어지게 되고, 내 인격이 바뀌게 되고, 내 삶의 목적도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그때 오신 성령께서 내게 어떤 선물(은사)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래서 어떤 이는 방언을 말하기도 하고 환상을 보기도 하고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경우는 두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직접 찾아오신 경우였기 때문이다. 

 

3. 사도바울의 교회관은 어떻게 생겼을까?

  성경에서 '교회관'이라고 함은 거의 다 사도 바울이 말했던 교회관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본다. 물론 교회를 세우셨으며 교회가 무엇인지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셨지만 말이다. 어느날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군지를 물어보았을 때에, 수석 사도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은 그 그리스도이시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그러자 베드로는 그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 곧 주님이 주인인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한 교회는 음부의 권세(문들)이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16:18). 다시 말해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교회는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교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 그것은 그의 다메섹에서의 체험 때문이었다. 사울이 혈기등등하여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 결박하고 옥에 가두고 때로는 죽이기 위해 주의 성도들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 때였다. 열심이 특심이었는지 그는 이방지역에 해당하는 다메섹에까지 가서 주의 성도들을 잡아오려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치었고, 그때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때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9:4). 그러자 문득 자기 앞에 빛 속에 나타난 예수님을 보고는 그는 말했다.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게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9:5~6). 바울은 그때 예수믿는 자들을 못살게 박해하고 있었던 것이지 결코 죽고 사라져 버린 예수님을 박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 앞에 이미 죽어서 없는 분이 나타나신 것이다. 그리고 사울의 이름을 부르면서 왜 자기를 핍박하느냐고 말씀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실 예수님을 믿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는데, 그것이 곧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들은 것이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의 교회관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4. 바울이 다메섹에서 체험한 주님과의 만남과 그분의 지시는 그의 교회관을 어떻게 정립하게 해 주었는가?

  바울은 그때 스데반과 주의 성도들이 예수님과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도들이 매맞고 성도들이 옥에 갇히고 성도들이 죽임당하게 되는 것을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당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교회를 정의하기를 "교회는 그(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이라"라고 하였다(엡1:22). 스데반과 주의 성도는 당시 주님과 한 몸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몸은 하나인 것이지만 많은 지체가 있는 사람과 똑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12:12)" 그리고 각 지체들은 자기들의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앞에 나타난 예수께서는 더이상 그에게 말씀하지 않고 그에게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를 붙혀준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바울이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5.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렇다면 교회가 교회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사도 바울에 의하면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주 예수님을 주님이자 머리로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엡1:21). 왜냐하면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들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머리로 믿고 따르지 않는 자는 교회가 아닌 것이다. 둘째, 자기 안에 성령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12:13). 성령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들어와 있어야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직신학 책을 보면, 교회의 표지는 다음과 같은 3가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첫째는 말씀의 참된 선포요, 둘째는 성례(세례와 성찬)의 바른 집행이며, 셋째는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비록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예수님을 진정 주님으로 믿고 있고, 자기 안에 성령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의 모임이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교회는 주님을 사랑하고 지체를 자기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엡5:28~30). 왜냐하면 주님께서 먼저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기의 몸을 내주셨기 때문이다(엡5:25).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우리를 교회로 만드시기 위해 자기의 몸을 내어주셨는데, 어찌 그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또한 그분이 핏값을 주고 산 이웃 형제자매를 어찌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권징을 신실하게 집행하는 데에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주님께서 행하셨던 희생적인 사랑을 다른 지체들에게 그대로 행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나니아가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행9:17). 사실 예수믿는 자들은 결박하여 옥에 넘기기 위해 다메섹에 들어온 바울은 아나니에게는 원수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용서하고 그 원수와 같은 자를 형제로 받아주라고 하셨다. 또한 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성령을 받게 하고 그의 눈에게 악한 영들을 제거해주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그대로 준행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까지 베푼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여러 지체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것이 교회인 것이다. 

 

2022년 09월 09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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