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5(금) 금요기도회

제목: 교만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삼상2: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kTOMr-BN_vY  [또는] https://tv.naver.com/v/31250231

 

 

1. 들어가며

  '교만'이란 어떤 죄인가? '교만'을 국어사전에서는 "잘난 체하며, 겸손하지 않고 방자히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여 자기를 최고로 여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성경에서 교만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려 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대표적인 예가 구약시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그랬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만의 죄를 우상숭배의 죄와 같다고 말씀하셨다(삼상15:23).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의 죄를 가볍게 보아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면 사람이 교만하게 되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며, 교만하면 안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교만의 쓴 뿌리를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사람이 왜 교만하게 되는가?

  사람은 왜 교만하게 되는 것일까? 왜 사람은 자기를 높이려 하고 겸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인가? 사람이 교만하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탄 마귀의 속성을 사람이 닮아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탄 마귀가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고 했는데, 그들의 마음이 인간에게 전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 교만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원래 천사들 중에 최고로 아름다웠고 최고의 지혜를 가진 자였다(겔28:12,17). 그러다가 자신이 하나님 위에 군림하려는 욕망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하늘로부터 쫓아버린 것이다. 그때 천사들의 1/3이 그를 따랐다. 그래서 이들이 귀신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교만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교만하게 되는 데에는 단지 자신의 실력이나 학벌 그리고 외모나 가문이 월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는 교만의 악한 영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즉 교만의 쓴 뿌리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교만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사람이 교만해지는 이유는 교만의 영이 자기 자신 속에 들어와서 역사함으로 교만해지는 것이며, 그 외에 자신의 실력과 학벌, 외모나 가문이 뛰어나고 재산과 권력이 강해서도 그럴 수 있는 것이다. 

 

3. 사람이 교만해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람이 교만해지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교만해지면 안 되는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약4:6).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 값없이 베푸시는 은혜가 잘 안 오는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살아도 은혜가 잘 안 오는 것이다.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둘째,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그를 물리치시기 때문이다(벧전5:5). 즉 하나님께서 그와 전투를 하시고 그를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교만해질수록 하나님과 멀어지며,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갈 수가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 실제로 천국에서 보면, 믿었던 자라 할지라도 교만한 자는 성밖으로 내쫓겨나는 것이 보통이다.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셋째, 사람이 교만해지면 결국 그가 망하게 되기 때문이다(잠16:18, 18:12). 사람이 교만해지면 교만의 영이 들어오게 되는데, 사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되고 결국 불못에 처넣어지게 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넘어져서 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교만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4. 교만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교만의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이미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교만의 영을 제거해야 한다. 쓴 뿌리라는 말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영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서 깊숙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죄를 저질렀을 때에 교만의 영이 역사하게 되는가? 그것은 주로 우상숭배의 죄 중에서 제사의 죄와 무당 점쟁이의 죄를 저질렀을 때에 역사한다. 즉 내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제사를 열심히 지냈다거나 무당 점쟁이를 가까이 했다거나 아니면 무당 점쟁이질을 했다면 필히 교만의 영이 그의 후손에게 전가 된다. 그러므로 우선 우상숭배의 죄들 가운데, 위와 같은 2가지 죄를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자기 자신이 교만한 마음을 품고 행동했던 것을 회개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안에 교만의 영이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때는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했던 죄와 사람에게 교만했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대적이 되지 않으며, 망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셋째로,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십자가 세우기가 자가 축사방법으로서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탄 마귀와 귀신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하던 날에 다 십자가로 몰려왔다. 하지만 그날 그들은 불법을 저지른 죄로 인하여 자기들이 가진 권세와 능력을 무장 해제 당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들의 권세를 박탈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한 뒤에 우리가 십자가 세우기를 하면, 악한 영들은 힘을 상실한 채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5. 나오며

  사실 교만의 죄는 자신이 자랑할 것이 많아서 생기는 죄다. 자신이 특별하거나 뛰어나지 않는다면 사실 교만해질 수도 없다. 교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 생기는 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문이 좋다거나 신기가 있어서 무엇인가를 잘 알아맞추는 자는 더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교만의 죄이다. 교만의 죄는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는 제사를 지낼 때에 많이 들어오고, 무당 점쟁이의 죄를 지었을 때에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왕을 왕으로 계속 사용하지 않으시고 다윗왕을 쓰신 것 같다. 왜냐하면 사울왕은 잘 생겼고 키고 크고 싸움도 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실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직업은 양치기였다. 그래서 그는 평생 겸손하게 살 수가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원래 어떤 신분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교만의 영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며, 교만의 쓴 뿌리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도 받게 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2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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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만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제사의 죄

“하나님, 조상에게 제사드려 교만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죽은 조상에게 상다리 휘어지도록 융슝하게 음식을 차려놓아, 자신의 가문은 명문가문(名文家門)이라고 자랑한 것을 회개합니다. 제사드리는 숫자가 많고 성대하게 치르는 제사를 매우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조상들을 잘 섬겨야 복을 받는다면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순간에 교만이 영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제사를 드리면 악한 교만의 영을 아무런 제제 없이 불러들인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말로는 죽은 조상에 대한 고마움과 은덕에 보답하는 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죽은 조상을 가장한 악한 귀신을 몸 속에 받아들이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신분과 가문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사를 활용했음을 회개합니다. 제사드릴 때마다 내 머리 꼭대기에 교만의 영을 더욱더 자리잡게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제사는 민족의 미풍양속이 아니었습니다. 교만의 영을 받아들이는 수단이었습니다. 이 시간 제사 드려 교만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죽은 조상에게 제사드려 불러들인, 교만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무당 점쟁이를 신뢰하여 교만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나와 내 조상 중에는 신 내림을 받아 무당 점쟁이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점을 쳐주고 굿을 해주며 부적을 써 주다 보니, 모든 사람들 위에 내가 있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스스로 우쭐댄 죄를 회개합니다. 자신은 신을 받은 사람이기에 나 자신만이 다른 사람의 길흉화복을 미리 말해줄 수 있고 그들의 삶을 주관할 수 있다고 믿은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내가 굿을 하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병도 치료할 수 있고 운명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죄를 회개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무당의 영이 임하여 나를 교만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무당과 점쟁이를 나와 내 가문의 길잡이로 섬긴 죄를 회개합니다. 이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무당 점쟁이가 되어 자신을 높이게 한, 교만의 영과 십자가가 세운다(10회)”

 

3) 하나님께 교만한 죄

“하나님, 이 시간은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려고 한 죄를 회개합니다. 모든 만물의 창조주는 하나님이시요 그것을 주관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신데, 교회에 나가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나약함의 표본이라고 생각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인데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실천하지 않았으며 복종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하면서 내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였고 하나님을 종부리듯 함으로 교만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자신이 능력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잘못하여 하나님이 치시는 것을 보고도, 내 잘못을 회개할 줄 모른 채 내 고집을 피웠습니다. 하나님께 교만하게 행하면 은혜가 임하지 않는데도, 왜 나에게는 은혜가 임하지 않을까 하면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것은 비굴한 모습이라면서 고개를 빳빳히 쳐든 죄를 회개합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어떤 영광도 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것인데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고 거들먹거렸습니다. 하나님께 순복하지 못하고 겸손하게 살지 못해 교만의 영을 불러들였습니다. 교만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교만하게 살아온 죄를 이 시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교만히 행하여 불러들인, 교만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4) 사람에게 교만한 죄

“하나님, 사람 앞에 나 자신을 높여 교만하게 살아서 교만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나는 남의 잘못과 허물을 들추어 비판하고 판단만 하려고 하였지, 나를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형제의 티끌은 들추어 내기 일쑤였지만 나의 들보는 미처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윗 사람의 권위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부모님과 상급자가 충고할 때면 듣는 시늉만 했을 뿐 실제로 그들의 말을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의 어떤 말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권위를 부정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목회자를 판단하며 살았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에는 말씀에 순종하려고 들은 것이 아니라 판단하려고 들었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과 상식에 어긋날 때에는 설교라도 난도질하였습니다. 목회자와 교회지도자의 말과 기도를 귀하여 여기지 않고 흘려들었습니다. 성경 말씀보다는 내 생각과 판단이 항상 내 삶의 기준이요 잣대였습니다. 그래서 남의 말이 귀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다른 사람 앞에서 나 자신의 외모와 실력과 출신을 자랑하기에 바빴습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 앞에서는 굽신거렸지만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 앞에서는 군림하려 했습니다. 약하고 배운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불공손한 태도로 교만하게 행동했습니다. 나의 의견을 따라오면 그들의 청은 뭐든지 다 들어주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혈기와 분노로 응징해야 분이 풀렸습니다. 내 말에 다른 사람이 굴복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생각 속에 남을 업신여겼습니다. 나를 낮추지 못했습니다. 나를 낮추는 것은 비굴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갈수록 나는 더욱더 교만해졌습니다. 그럴수록 내 속에 교만의 영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일평생을 교만하게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사람 앞에 교만히 행하여 불러들인, 교만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022-11-13(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도 과연 악한 영들이 있었을까?(행15:36~4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_ek8LbBS3k  [혹은 https://tv.naver.com/v/30826490 ]

 

1. 들어가며

  과연 최고로 영성이 깊었던 대사도인 사도 바울에게도 과연 악한 영들은 역사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육적인 시야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잘 모를 수가 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라 할지라도 깨끗한 영안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사정을 달라진다. 그러므로 만약 지금이라도 마음이 청결하고 깨끗한 사람이 된다면, 우리에게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영안으로 진단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 그러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과연 바울 속에 과연 어떤 악한 영들이 역사하고 있었는지를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악한 영들이 역하고 있었던 것일까? 

 

2.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던 악한 영들은?

  아무리 뛰어난 영성을 가진 사람이 할지라도 악한 영들이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혹시 만약 그러한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분은 사람으로 오셨던 주 예수님 뿐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위대한 사도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는 악한 영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나 사실은 성경기록만을 보더라도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볼 악한 영들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러니 실제는 이보다 악한 영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 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든지 처음부터 악한 영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자식을 태중에 잉태하는 순간부터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도 바울 속에는 어떤 영들이 역사하고 있었을까? 악한 영들 중에서 바울에게 역사했던 영을 큰 영 내지는 숫자가 많이 들어 있는 영의 순서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에게는 '교만의 영'이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바울의 몸 속에 사탄의 사자(천사) 곧 가시를 넣어두신다고 했기 때문이다(고후12:7).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교만해 질 수 있기 때문에 주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에게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역사하고 있는 영 곧 육체의 질병을 일으키는 영을 쫓아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무려 세 번씩이나 기도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오히려 주께서는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왜냐하면 내 능력은 약한 때에 완전하여 지기 때문이다"고 말씀해 주셨다(고후12:9). 고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죽는 날까지 교만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바울에게는 '논쟁하게 하는 영'도 있었다. 사도 바울은 사실 정말 많이 배운 사람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예루살렘에 유학온 유학파였다. 그리고 당시 바울은 최고의 율법교사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율법의 대가였다. 한 마디로 율법에 대해서는 실력파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라틴어와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다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사람이든지 만나면 그 나라의 언어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많이 배웠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기에, 그에게는 항상 논쟁하게 하는 영이 뒤따라다녔다. 예를 들어보자. 그의 전도여행 가운데 가장 논쟁했던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아마도 2차 전도여행 중에 만났던 아덴(아테네)이었을 것이다. 그는 거기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의 논쟁을 벌였다(행17:18). 그래서 당시 철학자들은 그를 '말쟁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그는 말로서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처럼 논쟁하게 하는 영이 있었던 것이다. 

  셋째, 바울에게는 '우울의 영'이 역사하고 있었다. 바울을 영성이나 실력이나 능력 면에서 보면, 그는 베드로를 능가하는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베드로의 율법주의적 삶을 책망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최대의 약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육체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바울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있을 때에 12사도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른 12사도들에게 뒤질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늘 못 마땅하게 여기거나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바울을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말했다(고전9:2~5, 고후11:5~6, 12:11). 그러므로 그는 이 일에 대해 많은 변명을 해야 했다. 그는 사실 많이 우울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죽는 그날까지 늘 우울의 영이 붙어다녔다. 

  넷째, 그에게는 '혈기 분노의 영'도 있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가장 애석한 모습을 사도행전 15장에서 볼 수가 있다. 그것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수행원으로 누구를 두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바나바와 심각하게 다투었다는 점이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바울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았다. 결국 둘은 심히 다투었고 피차 갈라서게 된다. 이때 사도 바울에게도 혈기 분노의 영이 역사했던 것이다. 사실 바울에게 있었던 혈기 분노의 영은 이미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일 때부터 바울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너무나 특심했다. 하지만 잘못된 믿음에서 출발한 그를 혈기 분노의 영이 놔주지 않았다. 

  다섯째, 바울에게는 '솔직하지 못함의 영'도 있었다. 바울은 바나바와 피차 싸운 뒤 서로 갈라져서 각기 다른 전도의 길에 올랐다. 그때에 바울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자로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나바의 적극적인 배려와 추천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적어도 마가 요한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바나바와 충돌했을 때에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도 바나바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는 보다 더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섯째, 바울에게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는 영'이 있었다. 어느날 바울은 자신을 찾아온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바로 그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종인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데 앞장 서왔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많은 괴로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죄없는 스데반을 죄를 뒤집어 씌워 돌로 쳐죽이는데 정작 자기자신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모함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쓸 때에도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스데반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곱째, 바울에게는 '주의 영광 가리게 하는 영'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나바와의 다툼은 누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예수님을 대신하여 파송받은 사역자로서는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때에 사도 바울은 주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잃어버리게 하는 영'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이 바나바와 2차 전도여행을 놓고 피차 싸우는 바람에, 바울은 사실 자신을 후원하는 교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2차 전도여행 초기를 제외하고서 바울은 안디옥 교회로부터 그 어떤 후원금도 받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바나바와 싸음으로 인하여 그는 후원교회를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둘도 없는 좋은 사역자 바나바도 랕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3.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던 영들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렇다면 바울에게 역사하고 있었던 악한 영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대체 무엇인가?

  첫째, 이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성경에서 가장 영성이 뛰어났던 사도 바울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남에게 감추고 싶은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둘째, 교만의 죄는 사람이 죽는 그날까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은 사역자는 더 교만할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도 바울의 행적을 보면 그에게도 자기 자랑의 마음이 있었고,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도 있었으며 그리고 자기자신이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아주 많았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가 있다. 

  셋째, 자신이 가진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도 바울은 강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악한 영들이 역사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혈기분노의 영이 역사하는 통로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많이 배운 지식은 그를 교만하게 만들기도 하였으며, 선교에 대한 열정은 그를 양보심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넷째, 누구든지 조상적부터 내려오고 있는 세대와 가문의 영을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 있는 큰 악한 영은 교만의 영이요 논쟁의 영이며, 그 다음으로는 우울의 영이자 혈기분노의 영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영들은 다 무당 점쟁이 계열의 영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역시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조상적부터 내려오고 있는 악한 영들로서 무당 점쟁이 계열의 영을 많이 갖고 태어난 것으로 판단된다. 고로 바울의 윗대 조상 중에 무당 점쟁이를 가까이 했든지 아니면 무당 점쟁이로 활동했던 조상들이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다섯째, 조상적부터 믿는 사람들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영들보다 자기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더 많은 영들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 바울은 사실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영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므로 그에게 역사했던 영들은 대부분 자기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더 많이 침투해 들어왔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경우는 1~2대만 위로 올라가면 다 불신자이며, 무당을 가까이 했던 민족이기 때문에 우상숭배의 영이 아주 많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악한 영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4. 나오며

  이상과 같이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던 악한 영들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정말 윗대부터 하나님을 믿는 조상들을 가진 사람들은 참 복이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은사를 가진 채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죄짓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를 짓게되면, 자신의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을 자기 몸 안에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이스라엘과는 정반대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의 경우는 거의 다 믿지 않는 불신자일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에 찌들어 있는 조상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경우 이스라엘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상대적으로 악한 영들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우상숭배에 관련된 영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인 것이다. 고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난과 질병과 패망의 영들을 몸 속에 지니고 태어난 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세대에 자신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정말 힘겨운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치 않게 되는 것은 지금의 시대야말로 마지막 시대이니만큼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혜와 은사를 주신다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 만 더 회개하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풍성한 은사를 내려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회개에 힘을 기울여보자. 그리고 주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조금 더 가져보자.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때보다도 더 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회개함으로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내고, 또한 하나님께 간구하여 성령의 은사들을 많이 받아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2022년 11월 13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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