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62) 사람 특히 이방인의 경우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는가?(행15:1~11)_2022-11-03(목)

https://youtu.be/Nd6cLF1jpwo  [혹은 https://tv.naver.com/v/30582742 ]

 

1.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에 유대인들의 핍박이 아니라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그동안에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 전파에 있어서 제일 큰 문제는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에 의한 핍박이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에 관하여 문제를 삼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제기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문제였다. 그런데 그 문제는 이방인들의 구원 문제였다. 이방인들도 구원받으려면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안되며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유대의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온 믿는 이들로서,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 믿는 이들이었다. 

 

2.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는가?

  처음에 바울은 이들과 충돌했고 그리고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이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처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바울과 바나바와 그의 일행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이자 장로들에게 물어보기로 정한다. 어쩌면 그 문제에 대해 바울은 할례파 유대인 믿는 이들을 책망하거나 쫓아버리거나 혹은 성경적으로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 있었기에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일단락 짓기를 바랬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이 문제를 묻기로 한 것이다. 

 

3. 예루살렘교회는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어떻게 토의했는가?

  예루살렘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로부터 이 문제에 관해 들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교회 안에서도 이방인들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들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바리새파 사람들 중에 어떤 믿는 이들이었다. 그러자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변론이 있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교회는 오직 유대인들로만 구성된 교회였는데, 이 문제를 잘못 정리하게 되면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전파에 있어서 상당히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이방인들이라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비로소 구원을 얻는다고 정해 버린다면, 모든 이방인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먼저 유대인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그 다음에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4.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베드로는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가?

  그때였다.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방인의 구원 문제에 대해 과거에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교회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게 문을 열어 주도록 그를 선택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을 전도하는 문제였다. 당시 이달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었던 이방인 고넬료 가정을 베드로가 방문하여 복음을 전했는데, 그들이 세례를 받기도 전에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나중에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때 베드로의 주장은 3가지였다.

  첫째, 이방인들이 과연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최종적인 판단은 성령을 받는 것에 있다고 하였다(8절). 그렇다. 한 사람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그가 구원을 받았다는 표시는 곧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할례를 받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아직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그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받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도 성령을 아직 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무거운 멍에일 뿐이라고 하였다(10절). 율법은 크게 의식법과 도덕법이 있는데, 베드로는 그중에서 의식법들은 유대인들에게도 무거운 멍에일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의식법이란 행동으로 지켜야 하는 율법으로서 할례법, 안식일법, 절기법, 제사법, 정결법, 음식법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아무리 지킨다고 할지라도 이것으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고 영생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의식법들은 다 지켰어도 그중에 한 가지라도 범하게 되면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다 지켰다고 할지라도 결국 모든 것이 무효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까지 유대인들이 지기 어려웠던 멍에를 메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셋째, 구원의 문제 있어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혈통적인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고 하였다(9절).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다 믿음으로 깨끗함을 얻게 되는 것이지 율법의 의식법을 지켜서 깨끗함을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아서 혈통적으로 유대인이 불리든,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이방인이라 불리든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그러한 요건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부터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5. 베드로의 중재에 있어서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지금처럼 구원론이 확실히 정리된 상태에서 베드로의 의견을 들어 보면 조금만 더 제대로 언급을 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첫째, 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회개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회개를 강조했었다. 회개를 해야 죄사함이 주어진다고 말이다(행2:38). 또한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때에도 회개를 강조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행11:18). 그러므로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믿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째, 율법에 대해 정리할 때에 율법의 도덕법과 의식법을 왜 구분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즉 율법 중에서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은 멍에가 아니라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척도이기 때문에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언급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의식법들은 폐지되었지만, 도덕법 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이것을 통해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을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이러한 것들까지 자세하게 언급하기에는 다른 더 큰 문제가 있었고, 또한 이러한 것들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당시에는 이해되는 상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22년 11월 03일(목)

정병진목사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할 것인가?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들 자신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가족구성원들보다 나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먼저 보게 하셨고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셨으니, 먼저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내 가족은 내가 먼저 믿었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영혼구원에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가족전도를 못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가 있다. 가족구성원에서 믿는 자로서 모범된 삶을 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믿는 자는 모범된 자로서, 도덕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 그리고 영적인 측면에서 보범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전도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족을 구원할 책임이 누구에게 주어지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긴의 가족을 전도할 수 있을 것인지까지 살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할 것인가? 부모인가 아니면 자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친구인가 이웃인가? 성경에서는 가족 중에 먼저 믿는 자라고 말씀한다. 그렇다. 누가 가족을 전도할 것인가? 먼저 믿는 나 자신이다. 내가 먼저 믿었다면 그것은 나를 통하여 온 가족이 구원얻도록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 구원의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서 우리는 이러한 근거를 발견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은 가족 구원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더불어 가족구원이 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가족구원을 이미 이룬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까지 살펴볼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구원얻기를 바라시는 기본단위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되 일개인만을 구원하시려하기보다는 온 가족을 구원하시려 하신다. 그러한 근거는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그렇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자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의 하나님이신지는 아담과 노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출애굽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출애굽사건 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양을 꼭 잡으라고 명령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천사가 애굽에서 난 모든 첫 것을 다 멸하실 때에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유월절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와 문설주에 바른 집은 화를 면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하나 더 이유가 있다. 그것은 급히 그리고 빨리 애굽을 도망쳐나와야 하는데, 그때 힘을 비축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유월절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았고 양고기를 불어 구워먹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양을 잡을 때에는 주의할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양을 잡을 때에, 아침까지 양고기를 집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인원수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한 집안의 식구가 너무 작을 때에는 자기 집의 이웃과 함께 양 한 마리를 취하여 잡으라고 하신 것이다(출12:3~4).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가족의 한 사람만 믿고 그 사람만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가족이 다 구원얻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3.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므로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가 되었든지 먼저 믿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족구원의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구원얻게 하시기보다는 먼저 한 사람의 눈을 뜨게 도와주신다. 그리고 믿게 하신다. 그리고는 먼저 믿은 그 사람을 통하여 가족구성원 전체를 구원얻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누가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지 답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보자. 가나안지경의 첫성이었던 여리고성에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정보가 가장 확실히 드나드는 곳은 역시 여리고성 성문에 붙어있던 여관집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신문이 있나 TV가 없는 시대였다. 그러므로 모든 정보는 외부에 나갔다가 들어온 사람이나 외부인들이 들어오면서 가져온 정보에 의지해야 했다. 이때 기생라합이라는 여인은 여리고성의 여관집 주인의 딸로서 그러한 정보에 능하던 여자였다. 어떤 사람은 이 여인이 창녀였을 것이라고 추정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사명을 주어 보낸 정탐꾼이 맨 처음에 기생의 집 안으로 들어갈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생집이 아니라 여관집에 머물렀을 것이다(유대역다가 요세푸스나 랍비들은 다 라합이 여관집 딸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미 정보를 전해듣고 있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른지 미리 집작하고 있는 기생라합 뿐만 아니라, 여리고성의 왕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리고성 사람들은 자기 성에 찾아온 자들 곧 히브리인으로 보이는 외부인을 그냥 놔 둘리가 없었을 것이다. 곧바로 수색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보를 통해 상황판단을 하고 있던 기생 라합은 그 두 사람을 숨겨준다. 그리고 장차 자기고 살고 있는 여리고성이 멸망당할 때, 자기 아버지의 집을 선대해달라고 부탁한다(수2:12). 그리하여 자기의 부모와 자기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부모님의 가족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수2:13). 결국 붉은 줄로 표시한 그 집 안에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된다. 이는 기생라합이 그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두 명의 정탐꾼을 살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음은이란 반드시 행함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준 것이다. 결국 그녀는 그 믿음으로 인하여 자기와 자기의 온 가족이 구원받게 해 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집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집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아면, 그때 어떤 사람들이 라합의 집에 남아있어서 살아남게 되었는가? 그들은 기생라합과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버지의 친척들이었다(수2:18). 그렇다. 기생라합의 집은 그 집의 딸이었던 라합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과 친척들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

 

4. 신약의 경우에도 가족구원에 관한 예가 등장하는가?

  그런데 신약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다수 등장한다.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경우는 자신이 먼저 믿어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루포와 알렉산더)를 전도한 경우다(막15:21, 행16:13). 그리고 로마의 백부장이었던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은 가장인 고넬료로 인하여 온 가족과 심지어 일가친척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구원받은 경우다(행10:24). 그리고 빌립보성의 간수는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믿은 후 그 온 가족들이 다 구원받게 한 경우다(행16:33). 그렇다. 누구든지 먼저 믿은 자가 그 집안의 선교사인 것이다. 누구든지 먼저 믿은 자가 자기 가족을 구원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선교사들인 것이다.

 

5. 가족구성원 전체를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가족구성원 중에 한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에 속한 온 가족이 전부다 구원받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가? 사도바울는 분명하게 이렇게 외쳤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고 말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수믿으면 온 가족이 예수믿고 구원받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다 배려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먼저 믿은 자의 부족함과 실수로 인하여, 가족구성원 전체가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가족구성원 전체를 구원받게 하려면, 먼저 믿은 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먼저 믿은 자로서의 모범된 삶이 필요하다. 그것도 3가지 영역에서 모두 말이다. 하나는 도덕적인 측면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인 측면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영적인 측면에서 먼저 믿은 자는 모범인이 되어야 한다. 먼저, 먼저 믿은 가족을 구원할 자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만약 그와 반대로 남을 비방하고 헐뜯고 욕하고 거짓을 말하고 이웃을 안 좋게 표현하는 자, 다른 사람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미워하도록 충돌시키며, 질투하면서 흠담을 늘어놓게 되면, 자식은 분명 부모가 믿는 하나님을 믿기가 더 꺼끄러워졌을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어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수시로 멘탈이 붕괴되는 자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하기가 쉽지 않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자는 자신은 회개하여 구원받을 수 있을른지 모르지만, 다른 가족들은 전도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먼저 믿은 자는 셋째로, 영적인 분야에서도 모범이 되어야 한다. 주일성수, 예배생활, 십일조생활, 봉사생활, 귀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 기도생활 등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먼저 믿었던 가족구성원의 말이 힘을 얻게 되고 어느 기회좋은 날이 생길 때에 가족을 형제자매를 따라 교회를 출석하기가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6. 이미 다 구원받은 가족들이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가족 구성원이 다 믿고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내 가족이 다 구원받았으니 그만 쉬고 놀며 지내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이미 부모 때부터 쌓아놓은 기도가 있어서 잘 되어진 것임을 새겨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전도하여 영적인 가족을 만들기를 추천해본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구레네사람 시몬의 아내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자신의 영적인 어머니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딤전1:1~2의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을 장가를 가지 않았는데도, 그는 어떤 젊은이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바로 디모데였다. 사도바울은 영적으로 디모데를 자식으로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처럼 가족이 다 구원받은 경우라면, 그의 눈을 영적인 가족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끔씩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전도할 대상이 민족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다. 피부와 색깔과 언어가 다른 곳으로 달려가 복음을 전해주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가족은 내가 구원해야 할 가장 기초적인 구성단위다.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이 있으며, 더 나아가 이방민족이 있는 것이다.

 

7. 나오며

  누가 자신의 가족을 전도해야 하는가?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 예수님을 먼저 믿은 자다. 가족 구성원중에서 먼저 믿은 자가 자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주면 온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믿은 자가 자기의 가족들 곧 자기의 부모와 자신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조카들이나 아버지의 가족들에까지 복음을 전해주면 계속 연결 연결되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이다. 특히 혈통이 아니라 법적인 가족은 배우자나, 사위나 며느리 등으로 이어지는 가족도 가족구성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이므로 온 세상은 가족전도로 말미암아 복음화될 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가족을 전도하는 것은 크게 볼 때에 세계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가족이 가장 우선이다. 그러면 가족전도로 온 세상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을 구원하며,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가족구성원에게 모범된 증인이 되어야 한다. 기도로 충분히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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