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왜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을까? 그러나 이 땅에는 선한 부자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 하나님의 뜻에 맞는 부자들은 대체 어떠한 부자인가? 그리고 성도들이 살다가 만나게 되는 고난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무조건 고난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 되는가? 아니면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할까?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서 그 고난의 종류와 성격도 한 번 쯤은 생각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고난의 종류에 따라 대처하는 방법도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야고보가 말해주는 성경적인 부자관과 아울러 고난을 대처하는 2가지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022-05-04(수) 수요기도회

제목: 야고보서강해(06) 부한 자들에 대한 경고와 고난을 이기는 방법(약5:1~2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YTSLQNVBEM [혹은 https://tv.naver.com/v/26610514 ]

 

1. 들어가며

  야고보서는 각 장마다 부한 자들에 대하여 언급을 한다(약1:9~10, 2:1~7, 3:15, 4:3~4, 13~16). 왜 야고보는 짧은 편지 속에서 부한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많이 할애하여 언급하였던 것일까? 이는 우리가 서신서를 읽을 때에 그 편지의 배경이 되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편지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경을 읽다보면 그 편지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A.D.49년어간에 로마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기독교인에게 보내었던 편지였다. 그런데 A.D.49년 경에 로마의 4대 황제 글라우디오(A.D.42~54)가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본인이 유대교를 믿든지 아니면 기독교를 믿든지 상관없이 로마에서 떠나야 했다. 그러므로 이 즈음이 바로 유난히도 경제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던 때다. 특히 유대인들은 B.C.586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거의 대부분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았는데 가는 곳마다 회당을 짓고 살았다. 또한 그들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였는데, 그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은행업이었다. 고리대금업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중에는 부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이들 부자들이 재물을 취득하는 데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재물을 사용하는 데에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본론부의 마지막에 가서 최종적으로 강력 선포한다. 그리고 나서 이 편지의 마지막 주제인 고난의 문제를 언급한다.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만나게 될 고난 대처법의 아주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2. 야고보서 5장은 어떤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가?

  야고보서 5장은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시작된 본론부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불의한 부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의 말씀이다(1~6절). 그리고 이어서 5:7~20의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야고보서의 결론부로서 고난에 대한 성도의 바른 대처 방법을 언급한 것이다. 5:7~20의 결론부는 또 다시 2개로 나뉘어지는데, 7~11절에서는 고난당하고 있는 의인들을 향한 메시지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까지 주의 재림을 고대하며 인내하는 태도로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12~20절에서는 고난에 대한 바른 대처 방법으로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3.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하여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재물 자체가 악하거나 정죄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재물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율법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하셨다. 즉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신28:4-5)"라고 말씀하던 것이다. 또한 선한 부자의 사례도 성경에 나온다. 대표적인 경우를 들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자기 밑에 집에서 길리우고 훈련받은 병사 318명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니, 그의 집안 식구는 적어도 1,000명 이상 될 것으로 추정한다. 사실 아브라함은 이미 가나안 땅에서 거부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창14:14). 뿐만 아니라 동방사람 욥은 어떠했는가?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부자였던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에는 양과 낙타와 소와 암나귀와가 넘쳐났으며, 종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욥1:3). 그러므로 부자라고 해도 다 나쁜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디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선한 부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야고보는 부자들에 대해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한 것인가? 그것은 당시 부자들이 재물을 취득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았으며, 또한 그들이 재물을 사용하는 것 역시 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축적하고 있었고, 또한 그렇게 해서 모든 재물을 사치와 쾌락을 즐기는데 그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부자들이 품꾼들의 품삯을 주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지적하였다(4절). 이것은 약한 자를 억압하지 말고 착취하지 말며 품꾼들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두지 말라는 율법말씀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레19:13). 그리고 곤궁하고 가난한 품꾼을 학대하지 말고,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가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고도 말씀하셨다(신24:14~15). 만약 그렇지 않다가 품꾼들이 여호와께 호소라도 할 경우 그것이 죄가 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 부자들은 율법 말씀대로 살지 않았다. 추수한 품꾼들에게 주지 않은 삯이 소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만군의 귀에까지 들렸던 것이다(4절). 그러므로 야고보는 그들에게 경고한다. 그들의 재물은 이미 썩어 있고, 그들의 겉옷은 좀먹었으며, 그들의 금과 은은 이미 녹이 슬어있다고 말이다(2~3절). 그러니 곧 그들에게 불어닥칠 심판의 날이 찾아오면 그들의 비참함인하여 울라고 경고하였다. 그런데 당시 부자들은 약한 자들의 재물을 착취하는 일에만 죄를 짓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재물을 쓰되 자기의 쾌락을 위해 그리고 사치하는 데에 쓰고 있었던 것이다(5절). 더욱이 그들은 의로운 자들을 정죄하고 죽이는 일까지 범하고 있었다(6절). 그러니 야고보는 어느날 그들이 불같이 살라지는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3절). 

 

4. 성도들이 고난에 대처하는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고난을 만났을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성도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 대처하는 방법 2가지를 소개하고 있다(7~20절). 하나는 그때에 인내하라는 것이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7~12절).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라는 것이다(13~20절). 그것도 자기의 죄를 고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고난을 만났을 인내하여야 하며, 어떤 고난을 만났을 때에 기도해야 하는가? 사실 성도들이 만나는 고난에는 여러 종류의 고난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핍박같은 고난이 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할 때에 가족이나 또는 불신자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는 고난이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이럴 때에는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이다(마5:10~12). 그러므로 이때에 성도들이 해야 할 대처는 그러한 고난을 참아내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핍박을 당할 때에 자기에게 고난을 주는 대상에게 대항하라는 말씀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핍박자들 위해 기도하라고만 나온다(마5:44). 그러므로 고난 중에서도 사탄이 사람을 통해 주는 고난은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잘 견뎌내야 한다. 이는 핍박자가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고난은 우리나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다. 그러한 고난에는 질병의 고난, 가난의 고난, 자녀의 불행의 고난 등이 있다.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무조건 참아내는 것이 온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고난이 왜 자기에게 주어졌는지를 파악하고 그 고난에 맞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그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죄를 회개하면서 대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였다(16절). 다시 말해, 이러한 고난에 대해서는 무조건 인내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인 죄들을 회개하여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5. 사탄이 주는 핍박과 같은 고난에 직면했을 때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성도들은 사탄이 사람을 통해 주는 고난에 대해서는 대항하지 말아야 한다. 즉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그를 저주하거나 그를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고 기도할 경우 하나님께서 그를 치실 수가 있는데, 그러면 그가 회개하여 천국에 들어갈길이 영영 차단이 될 수도 있다. 스데반의 경우를 보라. 사실 성경 전체를 볼 때에 사탄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 대처하는 방법에는 2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도망치라는 것이다(마24:16~20).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의 심판의 날이 올 때까지 길이 참으면서 핍박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고난 대처법들이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야 하듯이 참아내는 것이다(7절).

  그렇다면 왜 성도들은 핍박같은 고난이 오면 길이 참고 인내해야 하는 것인가? 야고보는 그 이유를 3가지로 언급한다. 첫째는 주님의 강림이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8~9절). 곧 심판주가 오셔서 핍박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주가 곧 와서 그의 억울한 사정을 신원해 주실 것으므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럴 경우 결코 원망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는 믿음의 선배들이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을 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0절). 왜냐하면 주의 이름으로 말했던 선지자들도 다 이와같이 고난을 견뎌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내하는 자를 위해 하나님께서 복을 준비해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절). 대표적인 경우로서 야고보는 욥의 인내를 든다.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 고난을 겪어야 했다. 제일 처음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다 잃었으며, 2차 때에는 7남 3녀의 자녀까지 잃었다. 그리고 3차 때에는 자신의 건강과 가정마저 잃게 되었다. 그런데 70인역에 의하면 그는 약 70년 동안을 악성종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끝까지 참아내었다. 기다린 것이다. 기도를 쉬지 않은 탓이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방문을 받게 되었고 진실로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회개한 끝에 이전보다 2배나 더 큰 축복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 기도하면서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서 언제가 해결해주실 날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야고보는 함부로 맹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붙여서 언급하였다(12절).

 

6. 자신이나 자기의 조상들의 죄에 관련된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고난 중에서도 자신이나 자기의 조상들의 죄에 관련되어 고난을 겪게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가? 야고보는 고난에 대처하는 두번째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13절). 그런데 기도할 때에 2가지 조치를 취하라고 하였다. 하나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병낫기를 기도하라는 것이었다(14절). 왜냐하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16절). 또 하나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죄를 서로에게 고백하라고 하였다(16절). 이것은 질병 치료에 관한 아주 중요한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이 걸리는 질병이 바로 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사실 인류가 죄를 짓기 전에는 질병도 없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므로 질병도 찾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죄를 처리해야 한다. 특히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게 만들어서 찾아오는 질병은 반드시 당사자를 찾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실제로 사람이 질병에 걸리게 되었을 경우 대부분은 그것이 영적인 이유와 맞물려 있다. 그 사람 안에 악한 영들이 들어와서 질병을 일으킨 것이다. 모든 질병이 귀신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죄를 지었을 때에 들어오는 귀신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더 실제적인 사실은 자기의 지은 죄로 인하여 생기는 질병보다는 자기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 때문에 질병이 생기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들에게 들어가 있던 악한 영들이 자기의 후손들에게 들어가서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때 질병으로 역사했던 악한 영이 후손에게 들어가면 그 후손에게 질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겪고 있는 고난이 질병의 경우라면 가장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이어서 자기의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다. 이런 것이 없이 기도한다면, 비록 의인의 간구로 인하여 병이 나았다고 할지라도 다시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사람이 질병에 걸렸을 경우에는 철저히 자기와 자기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의 대표적인 예로서 야고보는 엘리야의 기도를 언급한다(17~18절).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그가 다시 비가 오기를 기도했더니 하늘이 문을 열고 비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그 내부로 들어가서 보면, 우상숭배의 죄 때문에 3년 6개월동안 기근이 찾아온 것이었으며, 우상숭배의 죄를 그치자 큰 비가 다시 내렸던 것이다(왕상17~18장). 그렇다.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그 죄에서 떠나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불어닥친 고난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부록처럼 야고보는 형제들 중에 미혹을 받아 진리에서 떠난 자라도 돌이킬 수 있도록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면 그렇게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내는 것이며, 그의 지은 죄들을 덮을 수 있다고 말한다(19~20절)

 

7. 나오며

  말세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것은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재물은 하나님과 복음 전파를 위하여 사용해야 하고(마6:19~20,33), 객과 고아와 과부 같은  약한 자를 돕고 구제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만일 하나님과 복음전파를 위해 물질을 사용했다면 그는 하늘에서 합당한 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이 땅에서 약한 자들을 구제했다면 그와 그의 후손은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 재물 자체만으로 볼 때에 재물은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재물을 취득하는 과정이 부당하다거나 그 재물을 사치와 방탕에 쓴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을 취득할 때에는 언제나 합당하게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자가 되었으면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거나 약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오늘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에 직면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성도들을 마귀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도가 고난에 처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2가지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고난이 핍박으로 주어지는 고난이라면 어떤 고난이든 그 고난을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늘에서 큰 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죄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주는 고난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고난에는 질병의 고난, 물질의 고난, 자녀의 앞길의 고난 등이 있는데, 이때에는 먼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도 찾아가서 그에게서도 죄용서를 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당하는 대부분의 고난은 영적인 세력들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도록 권세를 주셨는데 이때에 귀신도 함께 쫓을 수 있는 권세를 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질병은 귀신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치유를 받되 완전한 치유를 받기를 원한다면 그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지은 죄를 특히 십계명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풀리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면 우선 병원부터 찾아간다. 그리고 의사부터 만나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왜나하면 대부분의 질병은 죄를 지어서 우리 안에 악한 영이 역사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 앞에 먼저 나가 죄를 고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에게도 찾아가 죄를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응급처방과 땜질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평생 죄와 더불어, 질병과 더불어, 가난과 더불어 그리고 자녀걱정과 더불어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사람이 고난을 받게 되는 원인에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범죄 때문이요, 또 하나는 사탄의 시험이나 핍박 때문이며, 마지막 하나는 하나님의 허락이나 뜻인 경우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출애굽후 광야에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또한 무엇인가? 그것은 욥의 회개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은 자신에게 고난이 불어닥칠 때 대처하는 법에 알아보자.

 

1. 들어가며

  고난은 사람만이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는가? 천사들은 육체가 없기에 고난을 받지 아니한다. 육체가 없는 존재는 고난을 못 느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들 중의 일부가 지금 지옥 불구덩이 속에 있지만, 그들은 그 어떤 뜨거움을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불의 뜨거움에 노출된다해도 그러한 뜨거움 때문에 몸이 데는 일이 없다.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육체를 가졌기에 고통을 느낀다. 뿐만 죽은 후에도 부활의 몸을 입고 살아야 하기에, 인간의 육체가 가졌던 고통과 아픔을 똑같이 느끼게 된다. 사람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오순절이후에 사람은 죽은 즉시 부활의 몸을 입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간다. 믿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는 생명의 부활을 얻고 천국으로 즉시 들어가며, 믿지 않아 죄사함을 받지 못한 채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지 못한 자는 사망의 부활을 얻어 지옥으로 즉시 들어간다. 하지만 지옥에 들어간 부활의 몸(부활체)는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어찌하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이처럼 사람은 육체를 지녔기에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곧 육체가 있다는 것은 고난을 겪는다 것을 의미한다.

 

2. 사람이 육체를 가졌기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은 무엇인가?

  하지만 사람이 육체를 지녔기에 가질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것은 육체를 지녔을 때에만 상급을 쌓을 수 있으며, 죄를 지었어도 육체를 지녔을 때에는 회개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이다. 천사는 육체가 없어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 않지만, 반대로 천사는 육체가 없기에 회개할 기회도 없다. 그러므로 천사의 한 번 타락은 영원한 타락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천사는 육체가 없기에  다시 회개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 하늘에서 쫓겨남을 받았을까? 미루어 짐작하건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실 전후의 시기라고 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 번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과 그의 천사들(귀신들)은 다시는 천국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육체가 없기에 회개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모여 천국과 같은 모형을 만들어 놓았으니, 이 지구 속에 있는 음부가 곧 지옥이 그곳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그곳에 가면 사탄의 보좌가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타락한 천사들 곧 귀신들이 사탄을 하나님을 섬기듯 섬기고 있는 것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탄도 하나님 노릇을 하듯 그곳에서 왕노릇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죄를 대신 해결해 줄 메시야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찌하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방해하려고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자녀를 생산하여, 천국에 데려가려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이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가 되었음에 대한 후회를 대신 앙갚음하는 것이다.

 

3. 예수께서 이 세상에 들어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낳지 않으시는가? 그것은 아마도 사탄의 시험을 받으면서 오직 하나님만을 선택하고 믿는 자들을 얻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어찌되었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고, 그들만을 천국에 데려가신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천국자녀를 생산하는 밭에 해당한다. 그리고 언젠가 천국자녀를 다 얻게되면, 하나님께서도 더이상 이 세상밭이 필요치 아니하므로 이 세상을 불태워 없애버리실 것이다. 사실 크게 보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과 지구를 창조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천국자녀를 얻기 위함이다. 그래서 온 우주만물을 먼저 창조하셨고, 그 한 가운데 중심에 지구를 창조하셨으며, 지구의 중심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흙으로 만들어 모양을 만든 다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런 사람들 중에서 믿는 하나님의 자녀를 얻어서, 천국으로 데려가시는 것이다.

  하지만 교만한 사탄의 방해가 그 중간에 있었다. 뱀으로 변화하여 인간을 유혹하여 그만 인간을 범죄케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값을 대신 받으시려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죄값을 대신 치르셨다. 그리고 사람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리셨다. 이것이 복음전파다. 이러한 일은 만세전의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속죄제물로 대신 죽으실 메시야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무려 350가지 이상의 예언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대로 이루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서 해야 할 구속사역을 다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 탄생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안식처는 이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이 세상을 탈출하여(엑소더스, 출애굽) 천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예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탈출시키려 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죄문제를 해결하는 자뿐이다. 죄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죽을 때에 그 죄 때문에 이 세상을 탈출할 수가 없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이다(요일3:8).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우리를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탈출시키려고 오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탈출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사실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해야 할 일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수용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이 세상을 탈출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탈출시키기 위해 하신 일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속죄제물로서 죽으신 것을 믿지 아니하므로 죄용서를 받지 못하여 이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다. 어떤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속죄사역을 완성하셨음을 믿는 자다. 그러면 그에게는 하늘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면서 그 생명을 가진 자가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4. 인간에게 고난이 닥칠 때 어떻게 대처햐야 하는가?

  그렇다면 육체를 가진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는 2가지가 필요다.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또 하나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가. 꼭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

  첫째, 인간에게 고난이 닥칠 때 꼭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다. 그것은 첫째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고전10:10). 원망은 고난을 통과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탈출하는 것까지 방해한다. 출애굽했던 이스라엘백성의 예를 보자. 그들이 비록 출애굽하여 광야에 나왔으나 그들 중에 원망하던 자들은 단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민14:27~30). 여기에 나오는 '애굽'이란 이 세상을 의미하며, '가나안'땅은 천국은 상징한다. 결국 출애굽한 자라도 이 세상에서 원망불평을 계속하는 자는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광야로 불러낸 것은 광야에서 죽게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과연 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양식으로 자신의 양식을 바꾸어가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를 하나님께서 테스트하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이런 테스트를 통과한 자를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에 데려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광야에 나왔다고 해서, 그래서 광야생활이 힘들다고 해서, 쉬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아니 된다. 광야는 우리를 죽이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를 시험하는 장소요, 우리의 순종여부를 테스트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한 것에 대한 꿈과 비전과 사명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광야로 나온 것은 고난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요 잠시 잠깐 있을 일에 불과하다. 우리가 광야로 나온 것은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광야로 나온 우리의 목표는 천국에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육체를 지닌 고통 가운데 살아도 우리의 꿈은 천국이어야 하고, 천국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천국에 대한 꿈을 접지 않고 그곳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 꼭 해야 할 것 3가지
  이제는 둘째, 인간에게 고난이 닥칠 때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그것은 욥이 고난을 받을 때에 했던 것과 비슷하다(약5:7~18). 그렇다면 고난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 일을 하는 것이다. 첫째는, 회개하는 일이다. 사람이 받는 고난 중에는 자신이 지은 죄나 조상의 우상숭배로 인한 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엎드리어 자신을 돌아보고 죄가 떠으르면 그것부터 회개해야 한다. 둘째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 것을 구하고 그리고 그 해결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문은 열리게 될 것이다. 셋째는 목표가 성취될 때까지 인내로 참아 기다리는 것이다. 농부가 길이 참아 곡식을 거두듯이,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씨를 뿌렸는데 그날 곡식을 거둘 수가 있겠는가? 어느정도 자라고 결실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면 결실하지 못한다. 사탄의 핍박과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알곡이 될 수 없고, 알곡이 되지 못하면 천국창고들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이 주는 어떠한 핍박이라도 우리는 그것을 견뎌야 한다. 때로는 피해 달아날 때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버가모 경우 안디바처럼 몇 사람은 죽임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으로서 자기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요, 천국에 들어가서도 영원토록 빛나게 될 면류관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5. 나오며

  그렇다. 인간은 육체를 지녔기에 고난을 겪는다. 하지만 육체를 지녔기에 회개할 기회도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고난이 자신에게 불어닥친다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시련과 고난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3가지가 있다. 원망하지 말아야 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한편 우리에게 아무리 어려운 시련과 고난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회개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과 인내로 기다리는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와 목적대로 살아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인내하여, 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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