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1) 다윗의 감사기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3가지 특징(삼하7:18~29)_2022-01-17(월)

https://youtu.be/IsMdZRtmWJo [혹은 https://tv.naver.com/v/24992136 ]

 

1. B.C.995년경 45세가 되었던 다윗은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가?

   다윗은 30세에 유다 왕이 되었으며, 37세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7년 6개월이 흘러 그의 나이 45세가 되었을 때에 주변의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게 된다. 그러자 자신도 편안하게 왕궁에 거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에는 이미 5년 전에 법궤를 자신의 성에 모셔다 놓았지만 그는 늘 법궤를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왜냐하면 자신이 여부스인들의 산성을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로 왕 히람이 사람들을 보내어 자신을 위한 백향목 궁궐을 지어 주어서 거기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느 날 나단 선지자를 불러 자신의 마음에 있던 말을 전한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말리시면서, 자신이 집이 필요했다면 진즉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자신의 집을 지어 달라고 했을텐데 당신은 어디에나 계시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언젠가는 누군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만은 받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집(왕조)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자 다윗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다. 

 

2. 다윗의 감사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다윗의 감사 기도(삼하7:18~29)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는 현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언약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18~22절). 그리고 두 번째는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기적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23~24절). 그리고 세 번째는 앞으로 미래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에 대해 감사한 것이다(25~29절). 이처럼 다윗은 현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했고, 또한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했으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베풀어 주실 미래의 은혜에 감사했던 것이다. 

 

3. 다윗의 감사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3가지 교훈은 무엇인가?

  다윗의 감사 기도를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다윗의 감사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거절한 것에 대해 그 어떠한 불평이나 원망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그때까지 자신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으며, 앞으로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있게 될 미래의 일까지 알려 주신 것에 감사했다. 그러므로 다윗의 감사 기도에는 반항이나 거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라고 믿었기에 다윗은 그분의 말씀에 다만 순종하는 자세만을 보인 것이다. 둘째, 그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겸손의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을 철저히 낮췄다. 자기와 자기의 집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집안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양떼를 치는 데서 데려다가 왕을 삼아 주신 것에 대해 매우 매우 감사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기도에서 무려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주(당신)의 종"이라는 표현을 무려 9번이나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주 여호와"라는 호칭을 무려 6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주인이며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또한 그분이 행하신 일과 앞으로 행하실 일을 찬양하였다. 즉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된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으며, 그분의 말씀만이 진리라는 사실을 고백했다(22, 28절). 그리고 그분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셨던 위대한 일을 찬양했다(23~24절). 셋째, 그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분량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 그 언약이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심이 지나쳐 분수 이상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4. 하나님과의 친밀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가 하는 것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일반적으로 얼마나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얼마나 빨리 상달되고 응답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명확한 것은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하나님과의 통로가 잘 열려 있다는 것이며, 그 사람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보좌까지 직접 나아가는데 아주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가는데 가장 빠른 사람은 약 2~3초 걸린다고 말한다. 직접 자신의 영이 하나님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자신의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 보내는데 그 시간이 적어도 4~5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시간이 아주 짧게 걸리는 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의 분량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감사를 아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윗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고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는 온통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겸손했을 뿐만 아니라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도가 대단히 높은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5. 신약시대의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한 사람은 누구인가?

  신약시대의 인물들 중에서 성경 기록으로 볼 때에 가장 많이 감사를 했던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는 죄인의 괴수였고(딤전1:15),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즉 그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것이다(딤전1:13).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기에는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대한 사도로 들어서 사용하셨다. 그러자 그는 자신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편지들 곳곳마다 그는 얼마나 감사했으며 또한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감사할 것을 명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추측컨대 그는 아마도 영성에 있어서 상당히 깊은 경지에 들어갔던 인물같아 보인다. 그중에서도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서 구원받은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소개해 주는데 그것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라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감사를 잊어버렸는가? 지금부터라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정말 감사를 많이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17일(월)

정병진목사

 

  방언기도가 개인에게 매우 유익하다고 하니까 방언기도가 만능인 것으로 아는 성도들도 있다. 아니다. 방언기도는 만능기도가 아니다. 방언기도를 10년 20년을 한다해도 그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방언으로 기도한다 하더라도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대체 그런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방언사용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14:15)" 그렇다. 기도에도 영으로 드릴 기도가 있고 마음으로 드릴 기도가 각각 따로 있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자신의 영을 사용해 방언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절대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꼭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으로 꼭 드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들에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이 방언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방언기도를 하고 있거나 그러한 기도를 오래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구원이 보장되느냐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직접적인 상관관계는 없다는 것이다. 왜야하면 구원은 믿음과 회개로 받는 것인데, 우리가 고백해야 할 믿음이나 우리의 잘못을 자백하는 회개는 다 마음이 해야 효과가 있는 것이지 영이 하는 것으로는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오순절 계통의 성도들은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으면 자신이 구원받은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아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자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다시 말해,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세례를 받아 선물로서 방언을 말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그렇다.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구원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지 않는데 어찌 그런 사람이 구원받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꼭 마음으로 드려야 할 기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3가지 것들은 꼭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하는 것들이다.


  첫째, 회개는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요일1:9). 그러므로 회개기도는 꼭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 자신이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자신의 영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영으로 회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해서 자신이 지은 죄가 용서받는 것은 아니다. 영은 사실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면 그의 영은 자신이 지은 것이 죄인 것을 알고 회개에 들어간다. 하지만 자신의 영이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그 사람이 죄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실 그때 자신은 죄를 지었는지 의식도 못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사도요한을 통해 정확히 말씀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자신이 지은 죄는 자신이 직접 죄를 자백해야 용서받는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라.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범죄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용서받을 길이 없다. 영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타락한 한 번 타락으로 끝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육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가 있다. 우리가 마음을 찢으며 입술로 고백하면 용서받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범죄를 자신의 영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의 마음과 입술로서 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 지은 범죄에 대해 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회개는 자신의 마음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면 영은 회개할 수 있으나 마음으로는 전혀 의식도 하지 않고 있고 깨닫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만약 우리가 죄를 짓고도 죄가 죄인지도 모른 채 방언으로 계속 기도하려 하면 방언기도는 쉬 중지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과 마음이 그 순간에 충돌되기 때문이다. 영으로는 회개기도를 하고 있지만, 마음으로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으므로,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기도를 동시에 드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그 순간에 내 영이 드리는 기도를 중지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기도가 막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려고 하는데 방언기도가 잘 나오지 않고 자꾸 중단된다면 먼저 자신이 지은 죄가 있는 것임을 알고 회개기도부터 시작하라.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잘 모를 것이다. 그때에는 먼저 마음으로 기도하되,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해보라. 그래야 기도가 막히지 않게 된다. 마음으로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10년이상 방언으로 기도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마음이 죄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고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으니 그 사람의 죄는 용서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그때 드리는 방언기도는 사실 무용지물이다.


  사실 회개에도 두 가지 방면이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행하는 회개가 있고, 예수님을 믿은 후에 행하는 회개가 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용서를 구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죄는 다 용서된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낱낱이 자백함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에 드리는 회개기도를 통해 이미 구원의 여정에 들어선 자들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지은 죄들을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만히 있으면 다 용서가 될ㄲ가? 아니다. 자신의 마음과 입술로서 직접 자신의 지은 죄를 자백하여 회개함으로서 용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로서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줄로 생각하지 말고, 지은 죄가 떠오르는 즉시 회개하기 바란다.


  또한 사실 사람의 영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은 자신이 죄를 지은 순간에 벌써 회개기도에 들어간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모르고 그냥 지내며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이 회개기도를 하였다고 해서(물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도 거의 없겠지만) 자신이 지은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찢고 회개를 하라. 방언기도가 회개기도를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려면 꼭 회개기도를 먼저 하고 난 후에 방언기도를 하기를 바란다.


  둘째, 감사도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그 감사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영은 감사를 해도 마음으로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 그 감사가 하늘에 상달되겠는가? 사실 사람됨의 하나는 감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타락한 천사들인 귀신들은 죽었다 깨어난다해도 절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대해서 증오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오늘날 감사를 잃어버리고 원망과 불평만 하고 있다면 타락한 천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 늘 마음으로 감사하라. 방언으로 기도하고 있는 타인의 방언기도를 통역해 보면,  왜 감사하지 않느냐고 책망할 때가 참 많은 것을 보게 된다. 감사는 방언기도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해 표현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방언기도를 많이 한다 할지라도 감사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방언으로 아무리 기도한다고 해도 성품은 변화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아무리 많이 기도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반드시 자신의 성품을 바꾸어달라는 기도를 병행하면서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사람의 성품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런 열매들 중에는 더러운 것이 참 많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이와같이 말씀하셨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7:20-23)" 그렇다. 사람의 마음은 이미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더럽혀진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전적인 형질이 후손들에게 이어져 온 이상 우리는 우리의 성품을 방언기도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사람에 따라 어떤 사람은 탐욕으로 가득차 있고, 어떤 사람의 마음에는 음란으로 가득하며, 또 어떤 사람은 시기와 질투심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방언기도를 한다고 이런 것들이 없어지거나 사라지겠는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육체가 유명을 달리하는 그 순간까지 이러한 나쁜 심성들이 남아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를 끝까지 괴롭힐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와 더불어 우리가 꼭 마음으로 해야 하는 기도는 내 연약한 심성을 고쳐달라는 기도다. 그리고 우리의 심성이 좋으신 예수님의 품성으로 바꾸어지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내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면 내 안에 들어있는 나쁜 품성이 드러나지 않고 수면 아래에 가라 앉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충만이 이내 식어지게 되면 수면 아래에 가라 앉아있던 나쁜 품성들이 점차 위로 올라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이런 품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고쳐야 하는 것은 자신이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쁜 심성은 방언기도로 해결할 수 없다. 날마다 회개하고 버리고 죽음에 넘기우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그날까지 심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기도를 하라. 이것은 방언으로 기도해서 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과거 옛사람인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시인하고, 선포하면서, 이제는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가득 채워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를 세 번째 기도제목이다.  


  방언으로 드리는 기도, 사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유익하다. 하지만 방언기도가 회개기도나, 감사기도 그리고 성품변화를 위한 기도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되, 먼저 회개기도와 감사기도를 먼저하라. 그리고 성품변화를 위한 기도를 드리라. 그런 다음에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게 되면, 그때부터는 방언으로 쭉 기도하라. 그러다다가도 회개할 내용이가 감사할 내용이 떠으려면 방언기도를 중단하고 마음으로 하는 기도를 드리라.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다시 방언으로 기도하라. 그때부터 드리는 방언기도는 자신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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