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주일) 주일낮예배 [맥추감사주일예배] 제목: 사도 바울의 진정한 감사(살전2:13)_2022-07-03(주일) https://youtu.be/6O1CHAvSJJE [혹은 https://tv.naver.com/v/28024376 ]

 

1. 들어가며

 

 

2.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3. 믿음과 삶이 본 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보낸 사도바울이 알려진 비밀들은?

 

 

 

4.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동탄명성교회 온라인 성도들에게 감사한 것은?

 

 

 

5. 우리들의 사랑과 헌신을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다. 

 

 

 

6. 나오며

 

 

 

2022년 07월 03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하강해(11) 다윗의 감사기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3가지 특징(삼하7:18~29)_2022-01-17(월)

https://youtu.be/IsMdZRtmWJo [혹은 https://tv.naver.com/v/24992136 ]

 

1. B.C.995년경 45세가 되었던 다윗은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가?

   다윗은 30세에 유다 왕이 되었으며, 37세에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7년 6개월이 흘러 그의 나이 45세가 되었을 때에 주변의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게 된다. 그러자 자신도 편안하게 왕궁에 거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에는 이미 5년 전에 법궤를 자신의 성에 모셔다 놓았지만 그는 늘 법궤를 펄럭이는 휘장 가운데 두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왜냐하면 자신이 여부스인들의 산성을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두로 왕 히람이 사람들을 보내어 자신을 위한 백향목 궁궐을 지어 주어서 거기에 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느 날 나단 선지자를 불러 자신의 마음에 있던 말을 전한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말리시면서, 자신이 집이 필요했다면 진즉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자신의 집을 지어 달라고 했을텐데 당신은 어디에나 계시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윗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언젠가는 누군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해야 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만은 받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오히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지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집(왕조)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자 다윗은 감사한 마음으로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된 것이다. 

 

2. 다윗의 감사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다윗의 감사 기도(삼하7:18~29)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는 현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로운 언약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18~22절). 그리고 두 번째는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기적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가 나온다(23~24절). 그리고 세 번째는 앞으로 미래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에 대해 감사한 것이다(25~29절). 이처럼 다윗은 현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했고, 또한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했으며,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베풀어 주실 미래의 은혜에 감사했던 것이다. 

 

3. 다윗의 감사 기도에서 배울 수 있는 3가지 교훈은 무엇인가?

  다윗의 감사 기도를 하나하나씩 살펴보면 다윗의 감사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는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거절한 것에 대해 그 어떠한 불평이나 원망을 늘어놓지 않았으며, 그때까지 자신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으며, 앞으로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있게 될 미래의 일까지 알려 주신 것에 감사했다. 그러므로 다윗의 감사 기도에는 반항이나 거부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라고 믿었기에 다윗은 그분의 말씀에 다만 순종하는 자세만을 보인 것이다. 둘째, 그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겸손의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을 철저히 낮췄다. 자기와 자기의 집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집안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양떼를 치는 데서 데려다가 왕을 삼아 주신 것에 대해 매우 매우 감사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 기도에서 무려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주(당신)의 종"이라는 표현을 무려 9번이나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주 여호와"라는 호칭을 무려 6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주인이며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또한 그분이 행하신 일과 앞으로 행하실 일을 찬양하였다. 즉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이 위대하시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된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으며, 그분의 말씀만이 진리라는 사실을 고백했다(22, 28절). 그리고 그분이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셨던 위대한 일을 찬양했다(23~24절). 셋째, 그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분량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해 주시겠다고 하는 그 언약이 꼭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심이 지나쳐 분수 이상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4. 하나님과의 친밀도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과 친밀한가 하는 것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그것은 일반적으로 얼마나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하나님께 얼마나 빨리 상달되고 응답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명확한 것은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하나님과의 통로가 잘 열려 있다는 것이며, 그 사람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보좌까지 직접 나아가는데 아주 시간이 짧게 걸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가는데 가장 빠른 사람은 약 2~3초 걸린다고 말한다. 직접 자신의 영이 하나님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자신의 영안이 열리지 않아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 보내는데 그 시간이 적어도 4~5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는데 시간이 아주 짧게 걸리는 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의 분량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친밀할수록 감사를 아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윗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고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는 온통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겸손했을 뿐만 아니라 감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과의 친밀도가 대단히 높은 사람으로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5. 신약시대의 인물들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를 많이 한 사람은 누구인가?

  신약시대의 인물들 중에서 성경 기록으로 볼 때에 가장 많이 감사를 했던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이다. 그는 죄인의 괴수였고(딤전1:15),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즉 그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것이다(딤전1:13). 이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기에는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대한 사도로 들어서 사용하셨다. 그러자 그는 자신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의 편지들 곳곳마다 그는 얼마나 감사했으며 또한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감사할 것을 명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추측컨대 그는 아마도 영성에 있어서 상당히 깊은 경지에 들어갔던 인물같아 보인다. 그중에서도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서 구원받은 우리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소개해 주는데 그것은 '기쁨'과 '기도'와 '감사'라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 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분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감사를 잊어버렸는가? 지금부터라도 감사의 조건을 찾아서 감사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정말 감사를 많이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2022년 01월 17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4)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5) 인색[함]의 죄(막10:17~31)_2021-01-04(월)

https://youtu.be/2n87Yr8Saa4  [혹은 https://tv.naver.com/v/17672272  ]

 

1. 인색함도 죄가 되나요?

  인색함도 죄가 될까요? 인색(吝嗇)이라는 단어는 "아낄 인"자에다가 "아낄 색"자입니다. 이는 아낀다는 것인데, 아끼고 근검절약하는 것이 과연 죄가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아끼고 근검절약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죄가 되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는 최고로 아낌없이 쓰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색한 것을 가리킵니다. 과거에 귀신을 내어쫓는 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귀신이 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귀신들은 잘 나가는데 이 귀신만 잘 나가지 않자, 귀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나가지 않느냐고. 그러자 귀신이 말하기를, "하나님께 헌금하면 나갈께" 그런 것입니다. 왜 헌금을 드리면 나갈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귀신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과거에 부처와 무당을 섬길 때에는 어마어마하게 돈을 바쳤으면서 하나님께는 너무나 인색하게 드렸기 때문에 나가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의 건강이나 자기의 가족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사용하면서도 하나님께는 인색하게 혹은 선심쓰는 양 드리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2. 인색한 자들은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 인색하고 약한 자에게 구제하기를 게을리한 자들은 가난해집니다(잠11:24~25). 가난의 영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색한 자들의 손과 손목을 보면 귀신들이 엉겨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손은 움켜쥐고 있는데, 절대 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영은 받기만 하며 나누는 데에는 인색하게 만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드리는 것이 인색한 사람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도 별로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심는대로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갈6:7). 그러므로 혹 내가 뿌린 것이지만 내가 거두지 못한다고 섭섭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심는대로 거둘 날이 ㅇ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지 못하면, 내 후대에 가서 누군가가 그것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반드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 인색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람이 하나님께 인색한 것에는 보통 3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다 받은 은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표현하지 않은 것입니다. 첫째, 물질로 감사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마6:21)"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있으면 꼭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고침받은 문둥병자에게 말하기를 가서 모세에게 명한 예물을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8:4). 열 명의 문둥병자가 다 고침을 받았지만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하는 자는 혼자였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눅17:18)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보물을 땅에만 쌓아두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려서 하늘에 쌓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마6:19~20). 특별히 사도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이 드린 예물을 잊지 않고 기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예물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것은 반드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빌4:18). 그렇습니다. 물질로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둘째, 은사와 달란트(재능)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은사와 달란트를 조금이더라도 다 주셨는데, 그것을 오직 자기를 위해(자기의 직업이나 소득을 위해서) 사용하고, 하나님께는 돌려드리지 않는 것이 인색함의 죄인 것입니다. 만약 물질로 드릴 것이 없다면 자신이 가진 은사와 달란트로서 주님과 몸된 교회를 위해 섬길 수 있습니다. 셋째 마지막으로 시간을 드리는 데에 인색한 것입니다. 이것은 "봉사"의 인색함을 가리킵니다. 주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드릴 물질도 없고 드릴 달란트도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때는 주님께 자신의 몸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 자신의 시간을 드려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사람에게 인색한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성경에서 인색함의 죄를 말할 때는 딱 2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에게 인색하게 행한 것이요, 또 하나는 사람에게 인색하게 행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들 중에서 사람에게 인색한 것이란 불쌍한 자를 보고도 구제를 하지 않은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게는 감사하고 사람에게는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10:21).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구제하는 일에 있어서는 인색하지 말고 넉넉하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고넬료 백부장이 이방인 중에서 최초로 성령을 받은 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때 천사가 와서 고넬료에게 말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행10:4)"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가 드리는 기도를 다 보시고계셨고 그가 행하는 구제를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구약율법에 따르면,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추수할 때에 곡식의 한 뭇을 남겨두고, 감람나무를 떤 후에도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남겨두며, 포도원의 포도를 딸 때에도 그 남은 것은 다시 따지 말며 남겨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24:19~22).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과거에 애굽 땅에 종이자 나그네였던 것을 잊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5. 왜 구제할 때에는 은밀하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사람에게 구제할 때에는 언제나 은밀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벌리면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혹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나팔을 불면서 구제하면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구제는 언제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마6:16~18). 그러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면 사람들로부터 받은 칭찬과 격려가 그의 상이 될 뿐,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나, 누군가를 도울 때에는 생색내기로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실 상이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주 작은 자들 중의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대접하면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입니다(마10:42). 

 

2020년 01월 04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우리는 진정 왜 감사를 해야 하는가?(눅17:11~19)_2019-10-24(목)

https://youtu.be/dep1J9ax2BI

 

1.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어떤 부탁을 했나요?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멀리 서서 큰 소리로 연신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만물의 주관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눅17:13)" 그들은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에 있던 나병환자들이었는데, 그들은 자기의 병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의 기자는 그들 중에서 한 명이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이었나요?

  그러자 예수께서는 "가서, 너희의 몸을 제사장들에게 보이라(눅17:14)"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병환자가 나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하라고 하는 율법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몸이 나을 것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하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사장을 향하여 가다가 정말 그들의 나병이 나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외치신 것과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사장을 찾아갔던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인지 예수께서 누군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연신 "예수, 만물의 주관자시여"라고 그분을 큰 소리로 불렀던 것입니다. 둘째,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믿음도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제사장에게 가는 길을 재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나병에서 나은 사람은 예수께서 고쳐주신 사람 이외에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의 병이 나을 줄 믿었다니 하니, 그들이 가졌던 믿음은 놀라운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그런데 그들 중 병에서 나은 한 명의 사마리아 나병환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그런데 열 명의 나병환자들 주에서 한 명의 사마리아의 나병환자는 즉시 병이 낫자마자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4.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감사 이후에 주님께서 보이신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요?

  사마리아 나병환자가 돌아와 감사한 이후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이 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예수께서는 지금 당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열 사람이 깨끗함을 받았는지 그분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보지 않아도 보는 것처럼 보신 분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자신에게 왔다"는 표현을 하심으로,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께서는 나머지 9명의 나병환자에게 하실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나머지 9명도 응당 감사하러 왔어야 옳은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과 그리고 "그러나 오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은 중대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5. 왜 감사가 중요하고 왜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인가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감사란 3가지 면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9명의 나병환자는 그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둘째, 이미 받은 은혜를 완전히 내 것으로 인치는 것이 감사라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그때 고침받은 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며, 그것은 그들의 믿음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나은 것에 대해 감사했던 한 명의 나병환자에게 주신 말씀을 뜯어 보면, 감사는 이미 받은 은혜를 하나님께서도 인정해주시어 그것을 고정시키는 인침의 기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인침이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감사는 다음에 이어서 은혜가 올 수 있도록 미리 씨앗을 뿌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만약 한 명의 나병환자도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감사를 하면 이미 받은 은혜에 플러스 알파가 주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감사하지 아니했던 9명의 나병환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다음에 받을 은총의 씨앗을 전혀 뿌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이처럼 소중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감사를 하면, 그 감사로 인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그 믿음이 다음에 일어날 기적의 기초가 되며, 또한 이미 받은 은혜를 인쳐주는 일을 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 얻은 은혜 위에 또 다른 은혜를 위한 씨뿌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도 꼭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2019년 10월 24일(목)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