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5(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회복의 가장 안전하고 빠른 지름길은 무엇인가?(욥42:5~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LdGWo5fUfMY [또는 https://tv.naver.com/v/32964187]

 

1. 들어가며

   과연 원인이 없는 고난이 있는가? 동방의 최고의 부자였던 욥은 자신이 바로 '원인이 없는 고난'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항변하면서 따졌다(욥40:2). 왜냐하면 자신은 분명히 지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처럼 여기시고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주느냐면서 항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은 분명 깨끗하며 순전하고, 불의를 행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냐며 그 이유를 알려 달라고 대든다(욥33:9~11). 그리고 하나님께서 까닭 없이 자신을 치시고 자기에게 괴로움을 더하신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욥9:17~18). 왜냐하면 자신은 잘못한 일이 없었는데도, 하루아침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자신의 열 명의 자식들도 비명횡사로 잃어버렸으며, 급기야는 자신의 건강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욥의 세 친구들이 와서 그에게 이유 없는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회개를 촉구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로움을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동안 그의 고통은 감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욥은 과연 어떻게 되어서 그 길고도 깊은 고난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그는 왜 고난 가운데 계속해서 고통을 겪어야 했는가? 사람이 자신의 비참함에서 벗어나 회복하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복의 가장 안전하고 빠른 지름길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2. 욥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가 당한 고난은 어느 정도였는가?

  욥은 의인이었다. 그는 구속사의 라인에 서 있지 않은 이방인이었다. 그는 아마도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의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그는 온전하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였고, 악에서 떠나 살고 있었다(욥1:1). 그러므로 그가 동방에서 가장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들 일곱에다가 딸은 셋을 두었으며, 그는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마리, 소가 500 마리, 암나귀가 500마리나 되었고, 집안에 종들도 무수히 많았다(욥2:2~3).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욥은 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다시 말해 그가 가진 모든 소유물 곧 가축들과 종들과 심지어 자신의 자녀들까지 모조리 잃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온 몸에 악성 종기가 돋아나 살이 터지고 찢어지면서 진물이 흘러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는 차라리 죽고 싶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그렇다면 욥은 대체 얼마 동안 이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 욥기서 자체만을 보면, 그가 언제부터 그리고 얼마 동안 고통을 겪었는지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판인 70인역을 보면, 그가 고난이 지나간 후에 170년을 더 살았고, 따라서 240년을 향유하고 죽었다고 나온다(욥42:16). 그리고 바울의 묵시록이라는 외경에 보면, 욥은 70세부터 고통을 겪기 시작하여 30년을 지냈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고통을 겪었던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욥은 육체적인 질병의 고통만을 겪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형제자매와 친족들과 자신의 종들로부터도 버림을 받는다. 그러니 그 상실감은 어떠하였겠으며, 자신의 친구들마저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갔으니 얼마나 힘들었던 것일까?

 

3. 회개의 비밀과 영의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욥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욥은 사실 인품도 좋았고 신앙도 좋은 인물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도 그를 사탄 마귀에게 자랑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훌륭한 사람이었어도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통이 끝나지 않았고 30년간 지속되었던 것이다. 

  첫째, 욥은 영적인 세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욥에게 있어서 영의 눈이 완전히 떠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았다(욥23:8~9). 비록 그가 꿈과 환상 정도는 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욥7:14), 자신의 영의 눈이 떠지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자신의 재산과 자녀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건강을 잃어버린 이유가 하나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욥의 영성은 초보적인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그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하에 사탄 마귀가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주시고 있다고 착각하고는 왜 자신에게 이러한 고통을 안겨주느냐면서 하나님께 항변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영적 세계를 모르는 것은 그의 세 친구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째, 욥은 율법적인 행위가 지닌 한계를 모르고 있었다. 욥은 율법의 행위들로 비추어 보았을 때 자신은 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원시적인 율법의 기준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고스란히 실천하고 있었다. 일례를 들어본다면, 그는 자신의 자녀들이 행여 잔치 때에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했을까 봐 잔치가 끝나면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번제를 드릴 정도였다(욥1:4~5). 욥의 모든 행사가 다 그와 같았던 것이다. 그렇다. 그는 율법에 비추어서 흠이 될 만한 일들은 전혀 행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곧바로 제사를 드려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율법적으로 보았을 때 그는 온전한 자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가 얼마나 흠없는 사람이었는지는 욥기서 31장에 나온다.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10가지 사항에 있어서 더욱 그랬다. 즉 그는 어떤 쾌락이나 유흥을 추구하지 않았고, 부정을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남의 아내와 간음하지도 않았고, 약한 자들을 억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궁핍한 자에게 주는 것을 거절하지 않았으며, 탐욕을 부리지도 않았고, 우상숭배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에게 복수하지도 않았으며, 가난한 자들에게 몰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위선적인 행동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아무리 율법적으로 흠없는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몸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은 잘 몰랐다. 고백하기를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치신 이유가 바로 자신이 젊었을 때에 지은 죄로 인하여 형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욥13:26~27). 그랬다. 그도 젊었을 때에는 죄를 짓고 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그 죄로 인해 제사는 드렸겠지만 그는 회개를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자신의 몸속에 침투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잘 몰랐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에게까지 내려와 있는 것도 사실 잘 몰랐다(출20:5). 그러므로 자신의 현재의 삶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에 그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들과 조상들이 지은 죄들로 인하여 자신의 몸에 악한 영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오직 회개만이 자신의 죄된 본성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자신이 지은 죄들을 용서받게 해 주며 원래대로 자신을 회복하게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욥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속죄제사는 드려왔지만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는 삶을 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율법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제사를 드렸기에,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율법 말씀을 어겨 죄를 지었을 때에, 제사만 드린다고 해서 악한 영들이 떠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몸속에는 많지는 않아도 악한 영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참고로, 사람의 몸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신학적으로는 '죄된 본성'이라고 언급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아무리 흠잡을 데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과거에 지었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과 조상들이 물려준 악한 영들은, 오직 제사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그러한 죄된 본성들(영들)은 오직 자신의 입술로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을 때에 자신의 몸에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몸안에 남아 있는 죄된 본성 곧 악한 영들 때문에 30년간 시험을 받으면서 그 영들로 인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4. 욥은 고통을 겪는 동안 어떤 죄를 범하고 말았는가?

  욥이 자신의 재산과 자녀 그리고 건강을 잃어버렸을 바로 그 시기에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불평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욥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자신의 징계가 철회되지 않자, 욥은 자신의 몸속에 있는 악한 영들과 더불어 다음과 같은 3가지 죄를 범하고 만다. 

  그것은 첫째로, 그는 원망 불평의 죄를 짓고 만다(욥7:10, 10:1). 그는 먼저 하나님을 저주할 수 없으니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다(욥3:1). 왜 자신이 어머니의 태 속에서 나올 때 죽어 나오지 않았을까 하면서 탄식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겠다고 말하면서, 왜 자신이 이런 고생을 당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욥7:10).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허물을 사해 주지 않고 죄악을 제거해 주지 않아서라고 항변한다(욥7:21). 그리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니까, 불평을 토로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치시는지 모르겠다고 따진다(욥10:1,17). 고통의 기간이 길어지니,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술로 불평의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로, 그는 비교적 작은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불신앙의 죄를 짓게 된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속에 남아 있는 악한 영들로 인하여 언젠가 혹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과 건강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고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욥3:25~26)" 그랬다. 그는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이것은 아주 심각한 것이었는데,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의롭다고 함으로 교만한 마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항변하다가 그만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고 판단해 버린다(욥32:1~2). 죄를 지은 것이 자신에게는 없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통 속에 밀어넣었다고 판단하고는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못한 일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게 여기는 마음 곧 교만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5. 욥은 어떻게 되어서 회개하게 되었는가?

  그러하면 욥은 어떻게 되어서 회개하기에 이르게 되었는가? 이때 욥이 회개를 시작하게 되었던 그 출발은 젊은이 엘리후의 강력한 책망 때문이었다(욥32~37장). 욥은 엘리후의 변론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행하고 있는지를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엘리후가 그에게 다음과 같은 항목을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책망했기 때문이다. 엘리후의 말은 이러했다. 첫째,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지만 사람의 의로움은 하나님의 의로움보다 클 수가 없다고 했다(욥33:12).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에 대답하지 않으심은 우리의 교만을 꺾으시기 위함이라고 했다(욥33:17). 셋째, 욥은 자신이 아무리 의롭다고 해도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잘못되었다고 정죄할 수는 없다고 했다(욥34:17). 넷째, 그래도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욥은 끝까지 하나님의 시험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욥34:36). 다섯째, 자신이 아무리 의롭다고 해도 주님을 불의하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욥36:23). 결국 엘리후는 욥이 무지하여 헛되이 입을 열어 지식없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책망한 것이다. 그러자 욥은 아무런 댓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시어 그에게 결정적인 말씀을 하신다. 그것은 욥은 절대 알 수 없는 일들 곧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일들을 욥에게 질문하심으로 비롯된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의 일들과 하늘과 자연 만물이 운행하는 이치를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대답해 보라고 하신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던진 질문들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대답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만 자신의 입술을 가릴 뿐이라고 말한다(욥40:4~5). 그리고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웠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깨닫지도 못한 것을 말해 왔었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일들을 아는 것처럼 말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욥42:3). 그래서 그는 티끌과 재를 뒤집어쓰면서 회개하기 시작한다(욥42:6). 왜냐하면 그는 너무나 무지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는 영의 눈이 열리지 않았기에 영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있었으며, 율법 준수만을 최고로 여겼기에 악한 영들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고, 회개만이 악한 영들을 내보냄으로 진정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회개만이 모든 곤경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해 준다는 사실을 비로소 회개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6. 욥은 어떻게 되어서 자신의  곤경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었는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세 친구들도 역시 무지한 상태에서 욥을 정죄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표시로 세 친구들이 자신에게 와서 번제제사를 드릴 때에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신다. 그러자 욥 자신도 무지로 인해 하나님께 따지며 항변했던 일이 있었기에, 욥은 기꺼이 자신의 친구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한다(욥42:7~9).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욥을 모든 곤경에서 돌이켜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신다(욥42:10). 

 

7. 욥이 회개하고 자신의 친구들의 잘못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하여 욥은 자신의 영적인 무지함과 자신의 잘못을 먼저 회개한다. 그리고 친구들의 죄까지 대신하여 빌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욥을 모든 곤경에서 돌이켜 주신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의 잃어버린 '건강'과 잃어버린 '지위'를 되찾게 해 주신다(욥42:10~11).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앓았기에 피부가 시커멓게 변해 버려 있었지만, 그의 몸은 이내 정상적으로 회복된다. 왜냐하면 그의 범죄와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그에게 악성 종기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사라지니, 몸이 회복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떠나간 그의 형제들과 자매들 그리고 이전에 알던 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그를 위로하면서 그를 원래 지위로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의 잃어버린 '재산'을 되찾게 해 주신다(욥42:10,12). 그런데 그것도 두 배로 복을 주신다. 그래서 양과 낙타, 소와 암나귀가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의 회개로 인하여 그에게 역사하고 있던 '재산을 잃게 하는 영'이 그에게서 떠나갔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그의 잃어버린 자식들 대신에 다시 10명의 자식을 주시되 이전보다 훨씬 더 빼어나고 준수한 자식을 허락하신다(욥42:13~14). 그중에 그의 세 딸들은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딸이라고 소문이 난다. 왜냐하면 회개함으로 인하여 그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죽음의 영''과 '살인의 영'이 욥에게서 완전히 떠나갔기 때문이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욥 자신에게 장수의 축복을 허락하신다(욥42:16~17). 그래서 욥은 이 일 후에도 70년(혹은 140년)을 더 살면서 자손 4대를 보았고 늙어서 장수하고 주님 품에 안긴다. 

 

8. 나오며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회개의 대표자가 있다면 아마 그는 바로 '욥'과 '다윗'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 '욥'은 이방인의 회개자의 대표라고 할 수 있고, '다윗'은 할례받은 자의 회개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윗 역시 범죄를 했으나, 다윗은 놀랍게도 곧바로 곤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죄를 지은 후에 어떻게 했느냐에 있어서 달랐기 때문이다. 다윗은 죄를 지었을 때에 용서받기 위해서 속죄 제사를 먼저 드리지 않았다. 통회하고 자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회개를 먼저 했던 것이다. 그는 회개의 비밀을 이렇게 고백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6~17)" 다윗은 회개를 행함으로 자신의 죄도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때 들어온 악한 영들도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욥은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잘 몰랐기에 30년의 세월 동안 기나긴 고난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아마 그가 사탄의 시험을 받은 즉시 회개를 시작했더라면 그는 좀더 빨리 모든 것에서부터 회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나중에 가서야 그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 '회개'야말로 회복을 최고로 그리고 가장 빠르게 가져오는 지름길인 것이다. 

 

 

2023년 02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

 

 

2023-01-20(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08)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시27: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HfCHyYbrwQ [또는 https://tv.naver.com/v/32646965]

 

1. 들어가며

   사람 몸에 있는 쓴 뿌리 가운데 가장 안 좋은 쓴 뿌리(악한 영)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거절의 영'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절의 영은 자기를 계속적으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남들도 파괴하는 무서운 영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있으면 결국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든지 타인을 학대한다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때문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거절의 영 쓴 뿌리를 가진 이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면 교회는 늘 다투고 싸우고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일생을 두고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는 대체 어떻게 해서 사람 안에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거절의 영 쓴 뿌리는 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쓴 뿌리는 과연 사람의 몸의 어디에 붙어 있어서 역사하고 있는가? 오늘은 거절의 영 쓴 뿌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2.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거절의 영 쓴 뿌리란 어떤 것인가?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악한 영들로서 사람 몸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 가운데에서 사람에게 거절감을 가져다주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 이 쓴 뿌리는 주로 사람의 가슴과 머리에 박혀 있든지 그것들을 감고 있다. 그리고 그 실제 모양은 뱀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것으로서, 사람을 무지하게 피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하나님과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거절당했고, 버림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상대방으로부터 의미 있고 중요한 존재라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거절감을 느끼게 된다. 고로 거절의 영이란 거절감을 깊이 느끼게 하는 영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거절의 영에 붙잡히게 되면 그것이 안으로 역사했을 때에는 자기를 학대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 슬픔에 빠지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우울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이 밖으로 역사했을 때에는 남들을 학대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 고집과 완고함으로 적개심과 원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우월감과 경쟁심 그리고 지배욕과 소유욕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공부 중독에 빠지는 이도 있고 일중독에 빠지는 이도 있다. 이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과다한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3.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사람 속에 자리잡게 되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 때문에 발생하여 자리잡는다.

  첫째는 자신이 잉태될 때부터 혹은 출산 후 부모로부터 냉대를 받거나 소외를 당할 때에 생겨난다. 고로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릴 적 받은 상처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가 엄마의 태중에 임신되었을 때, 임신한 아이를 낙태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부모가 의논하는 것을 태중의 아이가 들을 때부터 거절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혹은 태어난 아기가 부모가 원치 않은 아이여서 내버려진다거나 부모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당할 때에 거절감이 밀려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가 더 냉대와 소외를 받으며, 첫째보다는 둘째가 훨씬 더 소외를 받게 된다. 

  둘째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서,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이 태아 속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렸을 적에 냉대와 소외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이 역사하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사실 부모로부터 거절을 당한 아이의 경우, 보통 자신의 부모도 역시 윗대에서 거절을 당했기 때문에 거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 집안에 거절의 영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셋째, 국가적으로 볼 때 신분적인 차별로 인하여 생겨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자기의 조상들이 양반이라는 신분과 권력 남용으로 아랫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학대를 했을 때에 거절의 영이 활동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있어서 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교 사상이 전래되면서 달라졌다.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여 양반과 상놈이라는 뚜렷한 신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역시 거절의 영이 차고 넘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신분적인 차별이나 성적인 차별이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잘 살게 된 것이다. 

 

4.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자신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쉽게 상처를 받고 쉽게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남들은 그러한 말을 들었을 때에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지만 자신은 그 말을 들을 때에 가슴에 깊은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들은 예배를 드릴 때에도 설교 말씀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것은 나를 치는 말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에 집중하다 보면 온통 자신을 치는 설교로 들리기 때문에 상처를 안 받으려고 설교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조는 경우가 많다. 

  둘째, 잘 보이려고 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거절감을 많이 느끼는 분들은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고 칭찬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쓴다. 칭찬을 듣기 위해 눈에 보이는 일에 힘을 쓴다. 어떤 성도는 목사님께 인정받기 위해 헌금도 지나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거나 띄워 주지 않으면 쉽게 시험에 든다. 그러므로 교회도 오래 다니지 못한다. 2~3년이면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교회를 옮기는 것이다. 내가 교회를 버린 것이지 교회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셋째, 거절을 못하고 남에게 부탁하지 못하면서 일생을 쩔쩔매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들어주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부탁을 거절하면 그가 나를 버릴까 봐 염려되기 때문에 남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남에게 부탁하지도 못한다. 내가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상대적으로 거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인생이 심히 고단하다. 사실 남이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아니한 것은 시간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서인데 정작 나 자신은 그가 나를 거부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중한 일 때문에 쉬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 일은 전혀 하지도 못한 채 남의 일 봐주다가 그만 지쳐 쓰러지기도 한다. 

 

5. 거절의 영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를 내 몸과 환경에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나를 소외시키고 나에게 거절감을 안겨 주었던 이들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있는 거절의 영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소외시키고 냉대했던 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결코 거절의 영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팁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도 그때에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사실은 나를 소외시키고 나에게 거절감을 안겨 주었던 그이도 역시 대부분 거절의 영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거절을 못하고 거절감에 쌓여 있는 이유가 조상적부터 거절의 영이 내려와서 내게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사실 거절의 영을 가진 자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지, 자신은 거절을 당해 보지도 아니한 자가 남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대부분 자신에게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거절감을 안겨 주는 것이다. 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조상들로부터 있는 거절의 영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거절감을 유난히도 많이 느끼며 사는 자는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셋째, 혹시 나를 낳아 준 부모는 나를 버릴 수 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시27:10).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그렇다. 혹시 내 부모는 나를 남겨두고 떠날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거두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영혼을 보내실 때에 지옥에 가도록 예정해 놓고 보내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비유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하고 떠나갔지만 아버지는 결코 둘째 아들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의 어떤 잘못도 추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지위와 특권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이것이 아버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소외당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혹시 나를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걱정 근심과 의심은 다 사라질 것이다. 

  넷째, 회개하고서 거절의 영과 십자가를 세우고 거절의 영을 쫓아내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채 거절의 영을 꾸짖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자신이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시인하고, 거절의 영을 받아들였음을 회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고 나서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라. 그리고 권위 있는 사역자들에게 축사를 받으라. 그럴수록 나의 마음에 평강이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간단한 청원을 해서 상대방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싫어해서도 아니며, 그들이 나를 거부한 것도 아니라, 그들이 시간이 없고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간단한 부탁을 하되, "할 수 있으면 나를 좀 도와줄래?"라고 부탁을 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도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보라. 

 

6. 거절의 영은 주로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은 주로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가? 가장 많이 달라붙어 있는 곳은 '가슴'이다. 심장에 많이 붙어 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절의 영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의 심장을 영안으로 보면 거기에 칼이 박혀 있고 도끼가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머리'다. 즉 뇌속에 거절의 영이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우리 뇌속에 좌절감을 계속해서 주입시키고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흥분하게 하거나 혹은 우울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세우기를 할 때에는 심장과 뇌속에 있는 영을 생각하면서 그것들과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손과 발에 달라붙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들이 역사하면 상대방이 시키는 일을 거절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7. 나오며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아주 악한 것이다. 나를 파괴하고 남들도 파괴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절의 영 쓴 뿌리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쓴 뿌리들 중의 쓴 뿌리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것이 없어져야만이 마음에 평강이 임한다. 삶에 여유도 생긴다. 이것이 없어져야 말 한 마디라도 푸근히 할 수 있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자살하겠다고 말하여 가족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혹시 우리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시27:10). 부모가 나를 학대했던 것은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도 거절의 영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라.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거절의 영이 그렇게 나를 느끼게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또한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도 진정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러한 외로움이 어느 날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그 귀한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셨다는 것이 가슴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주님을 만난 것이 제일 큰 기쁨이요 행복이다. 내가 주님을 버리지 않는 한 주님은 끝까지 나를 붙들어 나를 저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을 믿으라. 그리고 우리 몸에 역사하고 있는 거절의 영을 제거하라. 그러면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주께 쓰임받게 될 것이다. 

 

2023년 01월 2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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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

8. ‘거절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스스로 거절감에 쌓여 상처받으며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어렸을 적에 거절감으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거절은 하나님 안에서 얼마든지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스스로 상처 안에 머물며 살아왔습니다. 태중에 있을 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임신하지 않았어야 할 아이였다는 말을 은연중 들었으며, 태어나서는 부모에게서 원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의에 빠지고 낙심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열등의식 속에 나를 잡아매었습니다. 때로는 나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미웠기에 나 자신을 비롯하여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다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고 내 머리까지 상하게 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그 상황에서는 부모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거절하고 학대한 부모님과 가족을 용서하지 않은 채,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이 시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거절감 때문에 일평생을 거절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도 남이 거절할까 봐 그들에게 부탁하지도 못했으며, 거꾸로 남이 나에게 부탁할 때에는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애썼습니다. 상대방은 사실 시간이 없어서 못 들어준 것이고, 능력이 부족해서 못 들어준 것인데도, 나 자신을 거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은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모든 청을 들어주다 보니 인생이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부모와 형제들, 학교 선생님과 직장 상사, 친척과 친구들에게 환영받고 인정받으려고 때로는 공부에 전념해 보기도 했습니다. 일중독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직장 상사와 권위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 보니,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착한 척 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세상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자살해 버리겠다고 말하여 가족들을 겁에 질리게도 하였으며, 자해를 시도하여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생명은 주님의 소관인데 제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생명을 주관하는 악독한 짓을 저질렀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스스로 거절감에 쌓여 불러들인,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을 섬김으로 거절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무당들은 신내림을 받은 자들인데, 이들도 역시 자신을 찾아온 신에게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인정받으려고 스스로 굿하고 스스로 춤을 추고 살아왔던 자들입니다. 고로 무당에게는 거절의 영이 많이 붙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무당의 집안에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거절의 영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적부터 인정받으려고 하고 칭찬받으려고 애썼던 모든 일들이 거절의 영들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주님, 이 시간 무당이 되고 무당을 열심히 섬긴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하여 거절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서 늘 외롭게 살았고 힘들게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거절의 영을 쫓아야 거절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데, 악한 영들을 쫓아내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행여 내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려고 하지만,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악한 영들이 중간에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내게 내려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나를 버린다고 하여도 내 주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처럼, 내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과거를 다 용서하시고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맞아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나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혀 주시고, 내 손에 반지를 끼워 주시고, 벗은 발에 예쁜 신발을 신겨 주시고 큰 송아지도 잡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른 채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을 진실로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무당과 점쟁이를 섬겨 불러들인,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3) 국가와 민족의 죄

“하나님, 내 조상들이 양반이라는 신분과 권력 남용으로 아랫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에게 횡포를 저지르고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그럴수록 그들의 후손에게는 거절의 영이 쌓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조상들이 죽게 되면 어느 날 자신의 후손들이 거절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산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 조상들을 대신하여 회개하오니, 국가와 민족이 저지른 악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나는 저를 거절하고 학대했던 모든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그들도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에 대한 피해자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회개로 용서받고 있는 나 자신부터 달라지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언제나 귀하게 보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원상복구가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내가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칭찬과 환대에 목말라할 것이 아니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살겠습니다. 거절감 때문에 스스로 낙심하고 좌절하고, 스트레스와 우울에 빠져 살아온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반 신분과 권력 남용으로 불러들인,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023-01-13(금) 금요기도회

제목: 회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단9:11,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amasyh904E [또는 https://tv.naver.com/v/32376041]

 

1. 들어가며

  회개,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 사실 회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요, 저주로부터 해방받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영역이 바로 회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런데 회개가 잘 안된다. 주변이 회개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닌 것도 문제이지만, 정작 회개는 매우 힘든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할 때에 우리의 회개가 과연 응답받는 회개가 될 수 있으며, 회개의 열매들을 직접 보면서 행할 수 있는 회개가 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를 제대로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몇 가지 팁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회개의 유일한 정도(바른 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20년에 걸친 임상실험의 결과인 만큼 참조하면서 회개한다면 우리의 회개에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2. 우리가 회개를 잘하기 위해서 회개할 때 유의해야 할 사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가 회개를 잘하기 위해서는 회개할 때 유의하고 있으면 좋은 것들이 있다. 그것은 대략 7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회개할 때에는 어떻게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가? 둘째,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셋째, 회개할 때는 어떤 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죄를 회개하는 것이 좋은가? 넷째, 우상숭배의 유형에 따른 특징들은 대체 무엇인가? 다섯째, 회개할 때에 축사는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여섯째, 회개의 분량은 어느 정도를 채워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일곱째, 회개할 때에는 어떤 각오를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좋은가? 

  우리가 대체로 위와 같은 7가지 사항들 즉 회개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터득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보다 더 회개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3. 회개할 때에는 어떻게 시작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은가?

  회개할 때에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 회개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으며,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지 모르면 회개를 지속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회개도 자신이 지은 죄를 한 번만 회개한다면 그것으로 회개가 다 된 것으로 아는 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회개를 지속하기가 힘들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들은 지금 회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처음 예수 믿을 때에 회심으로서 하는 회개는 일생에 한 번만 회개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죄를 지은 숫자만큼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요일1:9). 한 번 회개함으로 현재 짓고 있는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회개를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 권장하는 것은 '회개기도문'으로 회개를 시작하라는 것이다('회개기도문'은 본 교회 홈페이지 참조). 회개기도문은 자신과 자신의 조상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를 총망라해 놓은 좋은 참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하면 좋은 것은 회개기도문은 십계명을 잘 풀어놓은 기도문이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도 십계명은 도덕법으로서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십계명은 폐지되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에는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회개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기준으로 죄목들을 기록해 놓고 있는 회개기도문은 아주 유용한 회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회개기도문으로 기도를 시작했으면, 한 360번 정도 회개하라. 그리고 그렇게 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 다음 단계는 '깊은 우상숭배 회개문'과 '깊은 생활 회개기도문'으로 회개하면 좋을 것이다(기독교 서점에서 구입 가능함). 이것은 '회개기도문'의 확대판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들은 매우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죄목들을 나열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도문으로 기도하다 보면 자신과 자신의 부모가 지은 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선 책을 덮어놓고 그 부분을 회개하라. 그러고 나서 '우상숭배 회개문'으로 기도하라. 그리고 이때부터는 각각의 우상숭배에 따른 24가지 악한 영들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면서 기도하라.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쓴 뿌리 회개기도문'으로 기도를 쭉 이어 나가라. 그렇게 기도하다 보면 약 10년은 소요될 것이다. 

 

4.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목적은 대체 무엇인가?

  회개할 때에 회개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회개해야 하는지를 알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 왜 회개해야 하는지 그 목적을 모르면 기도하다가 결국 중단하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기도의 목표가 흐지부지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가 회개기도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첫째, 내가 죽는 날 천국가기 위해서 회개하는 것이다(마4:17, 막1:15). 우리가 회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함이다. 회개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죄를 가지고는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조상이 지은 죄가 아니라 바로 내가 지은 죄를 회개하기 위함이다.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 하는지의 여부는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둘째, 나와 내 후손들이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회개하는 것이다(출20:5, 단9:11,16, 요일1:9). 우리가 회개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저주 가운데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받는 저주는 보통 3가지인데, '질병'과 '가난'과 '형통 방해(막힘)'이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전부 질병에 시달리지 않게 되고, 부자가 되며, 형통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지은 죄의 댓가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그들의 후손에게 내려가 온갖 저주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출20:5).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었다고 할지라도 무조건 다 건강해지고 부유하게 살게 되며 형통한 길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 해결받을 수가 있다. 

  셋째, 내가 깨끗한 그릇으로 주님께 쓰임받기 위해 회개하는 것이다(딤전2:20~21).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님께 쓰임받으면 주님께서 그를 귀히 쓰는 그릇으로 쓰시기가 어렵다. 더러운 그릇은 주님의 이름과 명예를 더럽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내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와 은사를 받고 그것을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 회개하는 것이다(마25:21,23). 사실 사람은 누구든지 부모로부터 달란트를 물려받은 채 태어난다. '일반 은사'가 여기에 속한다. 지혜의 은사, 지도력의 은사, 물질의 은사 등은 이러한 은사들이다. 하지만 이것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악한 영들이 달란트를 덮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 은사'를 주신다. 그런데 부모가 믿어서 특별 은사를 가진 채 태어나거나 혹은 예수님을 믿게 된 후에 특별 은사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악한 영들이 있으면 그것들이 그 은사를 튕겨내버린다. 그러므로 은사가 내게 달라붙지를 않는다. 그리고 이미 받은 은사라도 악한 영들의 방해로 인해 은사들을 충분히 발휘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받은 달란트와 은사를 최대한 발휘하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역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귀신이 가장하는 일에는 꿈이나 환상, 예언이나 방언 통역의 은사 등이 있다. 

 

5. 회개할 때는 어떤 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죄를 회개하는 것이 좋은가?

  그렇다면 회개할 때에는 어떤 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죄를 회개하는 것이 좋은가? 그것은 처음에는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자신이 지은 죄가 떠오를 것이다. 제사를 지낸 것, 사월 초파일에 절에 가서 연등을 달았던 것, 무당 점쟁이를 찾아가 운세를 물어본 것, 미신과 잡신을 섬기고 살아왔던 것, 도둑질했던 것, 거짓말했던 것, 불효했던 것 등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 그것부터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 뒤로 둘째로, 자신의 세대와 가문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여기서 '세대의 죄'라 함은 자신의 부모인 1대부터 4대 조상까지 지은 죄를 가리키며, '가문의 죄'라 함은 자신의 5대 조상부터 10대가 기본이고 시조까지 지은 죄를 가리킨다. 세대가 죄를 지어 불러들인 영들은 우리의 몸 가까이(50cm~2m)에 있고, 우리의 집 지붕 위와 울타리에 있다. 그리고 가문이 죄를 지어 불러들인 영들은 공중에(300m~3km)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지역의 죄와 국가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지역의 영으로는 서울 사람은 교만과 간사와 계산의 죄가 많고, 경상도 사람은 자기 주장과 혈기의 영들이 많다. 그리고 전라도 사람들은 유흥과 간사함과 사치, 반역의 죄가 많다. 전라도에 유배지가 많기 때문이다. 충청도는 우유부단과 게으름의 영이 많고, 강원도는 아둔의 영과 제자리의 영과 무능의 영이 많다. 그리고 국가의 죄로서는 삼국시대는 불교를 섬긴 죄를, 조선시대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죄를 기본적으로 회개하고, 고조선시대부터 무당을 섬긴 죄를 우선적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상반제도를 통한 억압과 착취의 죄, 권력 남용의 죄, 남녀 차별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으므로 전쟁과 살인과 당파 싸움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유흥과 게으름의 죄도 회개해야 한다. 

 

6. 우상숭배의 유형에 따른 특징들은 대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에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찾아보고 그 죄를 회개하면 된다. 이를 테면, 우리 집안에 자살해 죽은 자가 많고, 이혼과 재혼이 많다면 자신의 윗대 4대 조상들 안에 분명히 무당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책임하고 가정을 책임지지 않는 사람이 있거나, 돈을 벌어도 그것을 모으지 못하고 늘 가난하게 산다면 그의 4대 조상들 안에 스님이 있거나 절을 세운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의 유형에 따른 열매들을 기억하면서 회개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우상숭배의 유형에 따른 열매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것들을 알고 있으면 내 조상들이 무슨 죄를 지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지금 나에게 역사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회개함으로 훨씬 더 빨리 집안의 저주를 떠나가게 할 수 있다. 

●제     사: 무지, 무능, 무기력, 열매없음, 영적 무지, 신앙 방해
●부처불교: 망상(헛된 꿈), 게으름, 떠돌이(불안정), 헛소리(떠듬), 열정없게 함
●무당점쟁이: 교만, 혈기, 거짓, 우울, 음란, 거절, 시기 질투, 망함
●미신잡신: 어둠, 막막함, 눌림, 미혹, 혼란, 앞길 막힘, 형통 방해, 전진 방해, 실패하게 함
 

7. 회개할 때에 축사는 언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그렇다면 회개할 때에는 언제부터 축사가 가능한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무조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쫓겨나간다고 생각한다. 원칙적으로 보면 틀린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마귀를 이긴 자이시므로 예수의 이름으로만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회개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귀신을 쫓아내면 내가 가진 권세 때문에 귀신이 쫓겨가기는 하지만 곧바로 다시 들어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들어올 때에는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또한 귀신을 쫓는 나 자신이나 귀신은 다 영물이다. 그런데 영물에는 영적인 계급이 있다. 그러므로 영적인 계급이 작은 자가 큰 계급을 가진 귀신을 내쫓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계속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덤벼든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축사를 받거나 축사를 하려면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하라.

  첫째, 축사를 받기 전에는 반드시 충분한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고 받는 축사는 허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 악한 영의 공격을 받지 않고 축사를 하거나, 내 속에 있는 영들을 떠나보내고 싶다면(자가 축사), 그때부터는 악한 영과 사람과 대상과 환경을 향해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십자가 세우기는 본 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그러니까 축사자에게 축사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충분히 회개하고 악한 영들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때에 귀신이 떠나가기도 하고 내 몸에 달라붙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다. 셋째, 남을 위해 축사하려면 자신은 영적 계급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령 계급이 되어야 하고, 별은 달아야 한다. 자신의 영적 계급은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것이지만 대체로 회개하고 충성하고 악한 영들과 싸움을 많이 하면 할수록 계급이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 회개의 분량은 어느 정도를 채워야 하는가?

  그렇다면 회개는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는가? 그것은 2가지 기준을 생각하고 회개의 분량을 채우면 된다. 첫째는 내 회개기도가 하나님의 보좌까지 쭉 올라갈 수 있는 수준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회개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내 집 위에와 공중에는 세대의 영과 가문의 영이 가득차 있는데 그것들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만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영들은 너무 많고 또한 크기 때문에 우리가 다 치울 수는 없다. 하나님 보좌까지 가는 구멍만 뚫을 수 있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어느 정도 회개했다고 말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10년 정도는 걸린다고 봐야 한다. 둘째는 귀신들이 가져다 준 저주가 끝나서 모든 것이 원상복구될 때까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조상들 중에 자살해 죽은 자가 있다고 치자. 고무신을 벗어 놓고 바위 위에서 물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하자, 그러면 환상으로 그 장면이 보인다. 그런데 회개가 다 되면(하나님의 생명을 함부로 끊어 자살한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물에서 다시 나와서 고무신을 신고 다시 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환상이 뜨면 회개를 다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집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면, 환상에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하지만 제사의 죄를 회개하면, 촛불이 꺼진다. 그리고 완전히 제사의 죄가 다 용서되었으면 촛대마저도 휙 날아간다. 이렇듯 우리가 얼마만큼 회개해야 하느냐 하는 것은 저주가 다 사라질 때까지라는 것을 명심하자. 나와 내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나와 내 후손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저주들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부지런히 회개해야 한다. 

 

9. 회개할 때에는 어떤 각오를 가지고 회개하는 것이 좋은가? 

  회개할 때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는 회개자의 각오와 자세와 마음이다. 이 마음이 흔들리면 회개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회개하는 자는 어떤 각오와 자세로 회개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를 안 했다가는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각오를 하면서 회개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믿기 전의 죄를 회심할 때에는 탕감받지만, 예수믿고 난 죄는 반드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둘째는 내가 믿음의 새 가문을 시작하고 새 역사를 쓰겠다는 각오로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처럼 우상숭배의 저주를 끝내고 믿음의 가문을 새로 일으킨다는 각오로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내 후손(자식과 손자들)에게는 저주를 물려주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회개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 후손에게는 나와 내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해 내려가는 악한 영들이 두 눈 시퍼렇게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죽은 날까지 회개하다가 주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각오로 회개하는 것이다. 그렇다. 회개해야 주님이 쓰시는 그릇이 될 수 있고 주님이 이 땅에 부여하신 사명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10. 나오며

  회개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그러한 선택 사항일까? 아니다. 회개가 바로 생명이요 또한 회개가 축복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회개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고, 회개없이는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회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께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십분 활용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다 받아서 사역함으로서, 주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회개를 잘 할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한 정답은 사실 없다. 다만 믿음의 선배들이 행한 회개의 방법들과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방법을 따라 회개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주님이 원하는 회개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공짜라는 것은 없다. 또한 회개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회개하려면 땀과 열정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오직 회개하는 자만이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요한계시록 2~3장에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기는 자가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하셨다. 회개하자. 올 한 해, 그래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어 보자. 그러나 이것은 단지 듣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으로 옮길 때에 비로소 완전케 된다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부터 회개기도문으로 기도를 시작해 보자.

 

 

2023년 01월 13일(금)

정병진목사

2023-01-08(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사도 바울도 회개했을까?(행22:1~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u691s-kig4  [혹은 https://tv.naver.com/v/32238772]

1. 들어가며

  바울도 과연 회개했을까? 우리는 성경에 바울에 관한 기록들을 갖고 있다. 그의 행적은 사도행전(9~28장)과 13권(로마서~빌레몬서)의 그의 서신서들에 들어 있다. 그런데 성경기록만을 보면 과연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 직접적으로 살펴보기는 어렵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윗왕은 살인교사죄와 간음죄 이후에 과연 죄를 회개했을까? 회개했다. 그가 회개한 사실은 시편 51편과 32편과 6편에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회개를 안 한 것인가? 회개를 했는데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우리는 회개에 관한 정의를 다시 더듬어보면서 과연 바울이 회개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도 과연 회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의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이 진정 회개를 했는지 안 했는지의 여부를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입술로 고백한 것만을 가지고 회개를 했다고 판정하기는 사실 어렵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마3:8). 세례 요한은 회개를 외쳤던 선지자들 중의 최고의 선지자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기에게 세례받기 위해 나아오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어떻게 책망했는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7~9)." 그렇다. 그는 자신에게 와서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회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에 관하여는 과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그에게서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3. 회개를 실제로 나누면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회개는 보통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서의 회개로 나뉜다. 회심으로서의 회개란 처음 믿을 때에 행하는 회개를 가리킨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하나님으로 믿고 섬긴 죄를 회개하고, 또한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거나 모른 채 살아온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때 사람은 과거에 지은 자신의 모든 죄에 대해 탕감을 받는다(임시적인 용서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람은 그때 이후로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자백함을 통해 자신의 죄들을 용서 받아야 한다(요일1:9).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도 과연 회개했는지 안 했는지는 이 두 방면에서 체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회개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으니 그가 맺은 회개의 열매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먼저 첫째로, 그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던 것인가? 물론 했다. 그 증거가 있는가? 있다. 그것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온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을 향해 가고 있을 때에 주님이 직접 그를 만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했다. 그리고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러고는 다메섹의 아나니아로부터 자신에 대한 주님의 소명을 들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다. 이때 그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때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러자 그때부터 며칠 지난 후 그는 곧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증거하기 시작한다(행9:20,22). 이는 그가 확실히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했다는 것을 증언해 준다. 

  둘째로, 그는 자백함의 회개를 했는가? 그렇다. 이것도 역시 그가 지은 죄들에 대해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 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들을 지었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십계명을 어긴 것만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레마(말씀)을 거부하한 것도 역시 죄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으로만 짓는 것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입술로 짓는 것도 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우리는 사도행전으 기록과 그가 남긴 서신서들을 중심으로 그가 최소한 3가지의 죄는 지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그는 살인과 폭력의 죄를 지었다(행22:4, 19~20, 26:10~11).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믿기 직전에 지은 죄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깨닫지 못해 지은 죄였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을 몰랐기에 지은 죄였다. 그 죄는 바로 주님의 충성스러운 평신도였던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스데반을 죽이는데 직접 참여는 하지 않고, 다만 증인들의 겉옷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스데반 집사를 죽였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내가 이 도를 박해아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행22:4)" 그랬다. 그는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때렸으며(행22:19), 감옥에 가두었으며, 회당에서 처벌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기도 하였다(행26:10~11). 그리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찬성투표를 하였으며,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가담했다(행22:20). 

  둘째, 그는 혈기 분노의 죄를 지었다(행15:39). 그가 혈기 분노의 죄를 지은 것은 그가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복귀했다가 다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데 수행자로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동역자인 바나바와 피차 다투었던 것이다. 그리고 둘은 갈라섰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바울에게는 혈기 분노의 영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아마도 그가 다메섹의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을 때에는 살인과 폭력의 영이 떠나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때 사울의 눈에서 어떤 뱀 비늘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여전히 혈기와 분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싸웠다. 그러므로 그때 그는 혈기 분노의 영을 더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셋째, 그는 교만의 죄를 지었다. 그는 교만했는지를 그의 속에 들어가보지 못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후서의 편지에서 교만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 상황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후12:7~9). 

고후12:7~9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랬다. 그는 다른 사도들과는 좀 달랐다. 비록 육체로 계셨던 주님의 사도는 아니었더라도,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에 대한 거의 모든 계시를 다 받은 자였다(갈1:11~12). 그러므로 그에게는 교만한 마음도 역시 마음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님께 자신의 몸 속에 있는 사탄의 천사 곧 귀신을 제거해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기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귀신을 자신의 교만함에 대한 표출의 잣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교만했었을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베드로를 책망하고 바나바를 책망하면서 더 교만한 마음을 가졌을른지도 모른다(갈2:11~16). 
 

5. 바울은 회개했는가?

  바울이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는지는 명시적으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는가를 통해 그가 회개했는지를 역추적할 수는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는 회개해서 완전히 죄용서를 받은 것도 있었지만 회개하는 과정에 있는 죄도 있었다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살인 폭력의 죄는 확실히 회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살인 폭력에 가담한 것이 분명한데,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자신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았으면 받았지 남을 핍박하고 고난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인은 복음 전하다가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예수믿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채찍질하고 감옥에 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에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다른 사람을 죽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회개의 열매를 통해서 그가 살인 폭력의 죄에 대해 회개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둘째로, 혈기 분노의 죄도 회개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2차 전도여행 이후를 보면 그가 혈기 분노를 낼 수 있는 형편에 처하는 상황 가운데서도 한 번도 혈기 분노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본문처럼 그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는데, 거기어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에 의해 억울하게 죄인으로 붙들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를 고소한 죄목에는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이 들어 있었다. 그가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고 고소당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일에 자신이 죄인 취급 받게 되었을 때에 그들을 향해 혈기 분노를 쏟아낼 수 있었다. 왜 거짓으로 나를 모함하고 고소하느냐고 오히려 역정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이 손으로 때리고 옷을 잡아당기는 일을 했지만 한 번도 반항하거나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이는 그가 혈기 분노의 죄를 회개하여, 혈기 분노의 영을 내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교만의 죄는 그가 회개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교만해서 자기 안에 들어온 사탄의 천사들 곧 악한 영을 내보내 달라고 주님께 간구했지만 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에게 작더라도 교만함의 영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사도권 방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가? 그것은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적나라하게 나온다. 그는 자신이 사도인 것을 알 수 있도록 얼마나 그 사실을 편지에 써서 말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은 이런 자인데 왜 너희들은 그것을 몰라보느냐?"는 그의 교만함의 표출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는 점차로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십자가만 자랑한다. 그리고 자신의 학식보다는 예수님을 더 드러낸다. 이는 그가 계속해서 교만한 죄를 회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교만의 죄와 음란의 죄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줄어들고 약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교만의 죄에 부분에 대해서는 일평생 회개를 통해서 자복하고 눈물 흘리며 회개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천국에서 24장로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회개하라고 하니 어떤 사람은 회개기도문을 수백 번 읽은 것을 가지고 자신은 회개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바울이 비록 말로 자백함으로 회개했다는 대목이 성경에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회개하는 자였고 또한 회개를 하고 있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지금 천국에서 갖고 있는 지위를 통해서도 그는 회개한 자였음을 살펴볼 수가 있다. 그렇다. 그는 회개하는 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회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도 이제 회개할 때에는 자신의 회개한 죄목에서 자신이 진정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열매와 결과가 나타나고 있을 때에 진정한 회개에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일평생에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를 통해 과거에 지은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리고 범죄의 숫자를 줄여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죄를 안 짓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한 일에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깨끗한 그릇으로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회개에 집중하고 열매맺는 회개를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3년 01월 08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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