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아담성의] 회복, 그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창1:26~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op6ncpmnW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22]

 

1. 들어가며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다.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시대에 부여하신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감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기업을 위해 지금 이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결해야 하고, 은혜를 나눠줄 줄 알아야 하며, 영적 수준을 높이는 자라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영적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시는 것일까? 과연 우리가 온전히 회복이 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복이란 어떤 것이며,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며,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했던 아담은 어떤 수준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 그중에 인간은 맨 마지막날 해가 넘어갈 무렵에 창조하셨다. 그런데 사람의 창조는 다른 창조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육적인 피조물로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영적인 피조물로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직 온 우주 가운데 사람만이 영을 가진 존재로서 영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영적 수준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그리스도를 모델로 해서 창조했기 때문이다(고후4:4, 골1:15). 즉 창조된 아담의 수준은 예수님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의 수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 수준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그 수준을 헤아릴 수 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종류로 창조되었기에, 그 지혜와 능력이 무궁하다는 것이다(창1:26~28). 사실 모든 식물이나 동물들은 각기 자신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창1:24~25). 그런데 사람은 사람의 종류대로 창조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 장차 인간이 천국에서 예수님처럼 살게 하려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육신을 입으셨던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나다나엘의 과거를 아시고, 베드로의 미래를 아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여인이 자신의 옷가를 만졌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모습도 속사람(영)이 육체보다 더 빛나는 상태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몸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둘째, 아담은 이 땅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는 왕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에 맨 마지막으로 창조된 고등 생명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셨다(창1:28).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 아담은 모든 만물 위에 있는 왕적 존재였다. 모든 만물이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음성에 순종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남의 나귀를 자신의 나귀처럼 가져다가 쓰실 수 있는 것과 같다. 사실 아담은 모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2:19~20).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들은 자신의 왕이 누군지를 알아보았고 아담의 말에 순종했던 것이다. 만약 아담이 화가 나서 무화과를 저주했더라면 그때 무화과도 역시 뿌리채 말라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뱀에게 떠나가라고 명령하면 에덴동산에서 나가야 했을 것이다. 뱀은 아담이 다스릴 수 있는 권한 안에 있는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특별했다. 육체적인 몸만 가진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의 몸과 그리고 영혼의 몸 즉 2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육의 눈으로는 자연 만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영의 눈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빛처럼 볼 수 있었고, 천사도 사탄 마귀도 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도 볼 수 있었고 지옥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의 귀가 열려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창3:8,10). 그것은 타락 후에도 얼마까지는 계속해서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영의 눈은 점차 닫히게 되었고 육의 눈은 더 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던 것이다. 

 

4.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영적인 감각과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이 엄청난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뒤에,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 하나를 창설하셨다. 그리고 그곳에 모든 종류의 나무들이 나게 하셨다. 그런데 동산의 한 중앙에는 생명나무를 두셨다. 그런데 그것과 가까운 곳에 선악과가 있었다. 그런데 생명나무는 특이한 나무였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생명수가 공급되어 자라고 있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생명나무는 이 땅에 속한 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적인 나무였던 것이다. 이 나무는 하늘에 있던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가져다 심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시고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 생명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담이 그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담은 이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짓고 말았다. 그러자 죄를 지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추방시키셨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전에 생명나무를 하늘로 올려가셨다. 그래서 지금 이 생명나무는 천국에 있다. 

  문제는 선악나무다. 선악의 지식의 나무는 어떤 나무였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나게 하신 평범한 나무였다. 하지만 마귀가 이 나무를 변조시켜 놓았다. 사탄 마귀는 원래 일반 나무의 열매에다가 자신의 악한 영들(뱀들)을 이용하여 선악나무의 열매로 만들었던 것이다. 보기에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비슷해 보였지만 뱀들이 그 나무의 열매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아담과 하와가 이 열매를 먹게 된다면 평범한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열매를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뱀들)을 먹게 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제사상에 올라 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을 같이 먹는 구조와 같다. 그런데 그만 하와가 먼저 뱀의 꾀임을 받아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고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자 아담도 그것을 먹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속에 사악한 영들인 뱀들이 치고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인 감각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육의 눈은 더 밝게 열려지기 시작했다. 타락 직후에는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충만히 있었으나 자손으로 내려갈수록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은 희미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영의 눈이 닫혀 있고 영의 귀가 막혀 있어서, 빛이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동식물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하여 자연 만물에게 무슨 명령을 한다 할지라도 자연 만물이 복종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귀신에게 명령해도 귀신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다. 

 

5. 죄짓기 전의 아담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죄짓기 전의 아담의 영성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선악과를 통해서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첫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악한 영들을 받아들였지만, 그 후에는 사람이 범죄할 때마다 뱀들이 몸속에 치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창3:14).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후 뱀에게 "너는 흙을 먹고 살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흙은 '아파르'로서 사람의 몸의 재료에 해당한다(창2:7). 그러므로 뱀은 지금도 사람이 범죄하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통해서 몸속에 들어온 영들과 자신의 범죄로 인해 또 불러들인 뱀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몸은 더럽혀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로 인해 더럽혀진 몸을 예수님의 피로서 반드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악한 영들을 몰아내어 내 몸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주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죄짓기 전의 아담의 영성으로 회복되지 아니한가?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침투해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보내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1년 동안 자신의 지은 죄가 다 용서될 수 있었겠는가? 만약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개인이 범죄했으면 개인은 반드시 속죄제사를 드려야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 얄팍한 사람이 있어서 자신의 개인 속죄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고 1년에 한 번 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믿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인도 낱낱의 죄를 회개해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회개생활을 등한히 여긴다. 이미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가 회개함으로 그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곧 충분한 회개만이 저주를 완전히 끝내고 죄짓기 전의 아담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고로 지금 내가 아담의 수준까지 회복되지 아니한 것은 아직 충분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결코 한꺼번에 내 몸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그것들이 우리 몸에 있어서 온갖 저주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병에 걸리기도 하고, 재물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내게 재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마는 것이다. 또한 내 앞길이 방해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충분히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께서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으로 만족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들은 우리가 이것을 안다고 하여 순순히 그냥 나가지 않는다. 우리의 입술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들까지도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도 우리 몸에서 합법적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충분한 회개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충분한 회개를 했다면 지금까지 내게 병을 주고 있는 귀신이 비로소 떠나갈 것이다. 그러면 병에서 곧바로 나을 것이다. 온갖 가난의 저주를 갖고 들어온 뱀들이 떠나가게 되니까,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귀신이 떠나가면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되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천사를 보고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돕는 천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볼 수 있고, 귀신들을 보고서 쫓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에게 명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도 수시로 눈을 뜨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영의 귀도 열리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천사와도 대화가 가능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물을 말로서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무화과나무를 하루아침에 뿌리채 마르게 할 수 있고, 물 위를 걸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과거를 당겨서 볼 수도 있고, 현재의 영적 상태도 볼 수 있으며, 미래의 상태도 당겨서 볼 수 있다. 이것이 타락하기 전 아담의 영적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회복은 바로 이러한 회복, 곧 아담성으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성도들은 세상의 유혹을 어떻게 이길 수 있으며 또한 악한 자 사탄마귀를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도 요한은 거듭난 성도들이 악한 사탄마귀를 이기는 것까지 목표를 두고 요한일서의 책을 집필하였다. 그래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기본적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하겠지만, 세상과 마귀는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꼭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세상과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21-12-29(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서신강해(07) 세상과 그리고 마귀를 이기는 승리의 요건은 무엇인가?(요일5:4~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9oJxCxVEGRs [혹은 https://tv.naver.com/v/24416355 ]

 

1. 들어가며

  요한일서는 초신자용 양육교재와 비슷하며, 초기영지주의 이단예방을 위한 좋은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책이 신앙의 기본요소를 갖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분과 교제하는 가운데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요한일서의 책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요한일서의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성도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사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다. 이 말씀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의 의미와, 내가 생명을 자기고 있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아무쪼록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세상과 마귀와 더불어 싸우는 영적 싸움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요한일서 5:4~21의 위치는?

  요한일서는 구분짓기가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같은 주제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굳이 요한일서를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일 처음 1~2장은 하나님과의 교제(코이노니아)라는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삶을 언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놈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죄'라고 정의하고 그 죄는 오직 자백함으로 용서받을 서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성도는 결국에는 죄짓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은 자라도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면 그는 마귀에게 속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 3:1~4:6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적인 관점에서 성도의 합당한 신앙과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씨 곧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의 자녀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4:7~5:3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4~21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사도 요한은 이 부분에서 성도란 하나님께로부 난 자들인데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는 자로서, 이들이 곧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사용하여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신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시는 자는 사탄마귀도 건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마귀에 대해서 승리하는 비결을 이 부분이 소개해주고 있는 것이다. 

 

3. 세상을 이기는 성도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사도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하면서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몇 가지로 소개하는데, 그 중에서 신앙의 성숙도를 알려주는 부분이 있다. 사도 요한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을 칭하는 호칭을 통해 알려준다(요일2:12~14). 거기에 보면, 성도들에 관한 호칭이 3~4자기 정도가 나온다. 그것들은 '자녀들' 혹은 '아이들'이 있고, '청년들'과 '아비들'이 있다(요일2:12~14). 여기서 '자녀들'이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군지를 아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아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가 누군지를 아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태초부터 계신 이"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14에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 그리고 '청년들'이라는 호칭이 등장하는데 이는 영적으로 강한 자들로서 영적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악한 자 곧 사탄마귀를 물리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란 어린아이의 단계를 넘어선 이들을 가리키는데, 이들 모두는 이미 회개하여 죄사함을 실천하고 있는 자들을 넘어서서 죄를 짓게 만드는 마귀 곧 악한 자 자체를 대적하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4. 성도들이 꼭 이겨야 할 2가지 대상은 무엇인가?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을 요한일서 5:4~21에서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언급한다. 그 중의 하나는 '세상'이고, 또 하나는 '악한 자' 곧 '사탄마귀'다. 무릇 성도라면 세상을 이겨야 하고 사탄마귀를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세상이나 혹은 마귀는 어떻게 이길 수가 있는가? 그때 사용하는 무기이자 방편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는 비결이 바로 '믿음'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도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관한 믿음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 관하여서 요한일서 5:4~17절에서 언급을 하고, 이어서 악한 자 곧 사탄마귀를 이기는 믿음에 관하여서는 요한일서 5:18~21에서 언급을 한다. 

 

5. 어떤 성도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가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떻게 할 때에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여기서에 언급된 '세상'이라는 단어는 이미 요한일서 2:16~17에서 말했던  바로 그 단어로서, 성도들로 하여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하는 것들을 가리킨다. 즉 '세상'이란 하나님을 대적할 뿐더러 사탄마귀의 포로가 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이 세상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럼 왜 사람들은 이 세상에 빠지는 것인가? 그것은 세상이 사람들에게 주는 것들이 대단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에게 때로는 인기와 명예를 안겨주기도 하고, 칭찬과 부귀를 안겨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지만 이 세상의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이 세상의 본질이 바로 사탄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놓여) 있다"고 말한다(요일5:19).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이 세상에 살더라도 어찌하든지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성도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고 또한 이길 수가 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오직 한 가지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였다(요일5:5). 한 마디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듭 태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성도가 또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도 요한은 대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길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가 세상을 이긴다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일서에서도 사도 요한이 답하고 있지만,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에 가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서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곧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뜻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을 지칭할 때에 그렇게 사용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나타내신 것이라는 말한다. 즉 나타난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으로서 여호와만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또 다른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속에 하나님은 언제는 영이신 하나님이었던 것이지,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라고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에, 당시 유대인들은 어떻게 사람인 주제에 자기를 하나님으로 빙자하여 말하느냐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고소하여 결국 십자가에서 죽게 만든다.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분은 하나님으로 나오셨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람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에, 자기자신을 아들이라고 늘 칭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한 분이시므로, 하나님은 아들로도 계시고 그때부터는 아버지로도 함께 계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을 때에는, 육체를 입지 않는 신성한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분이 예수님을 이 땅에 파송하였고 사람의 태를 빌려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려 할 때에 조심할 것은 그분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것은 그분만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 자가 있다면 그는 얼마든지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사탄마귀도 이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7.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해 주는 3가지가 있다고 말한다(요일5:6~9). 그리고 세 가지는 오직 한 가지 사실을 증언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이 땅에 보내어진 육체를 입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세 가지 증거 곧 '물'과 '피'와 '그영(보혜사 성령)'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물과 피와 성령이 어떤 것이기에, 이 셋은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해주는가? 사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은 둘이다. 그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증거'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증거'가 있다. 그중에 사람들의 증거란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있었으나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았던 자들의 증거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들 중의 한 명이었던 사도 요한이 지금 그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요일1:1-2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보았던 이들은 죽고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증거 이외에 또다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증거다. 그것이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라는 것이다. 왜나하면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셨다가 가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물'과 '피'는 예수께서 육체를 입으실 때 취하신 인성의 일부분이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기에, 그때 물질세계에 속한 것을 취하셨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육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육체는 죽고 부활하신 후에 그 몸을 가지고 승천하심으로 그 몸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그렇지만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는 여전히 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승천하셨던 예수께서는 하늘에 가셔서 그분이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지고 오셨으며, 이 육체를 통하여 인류의 죄를 속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그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오직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언해주시고 있다(요15:26).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기도 하신다(요14: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인 것이다. 

 

8.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 속에는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이 들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육체를 입으신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다. 그분이 직접 인류의 죄를 대신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기 위함이었다. 이는 피가 죄를 속하기 때문이다(히9:22). 그리고 죽음이 인류가 범죄한 죄값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런데 인류의 죄를 속죄할 피는 더러운 피로서는 아니 되고, 깨끗한 피여야 했기 때문에 죄없으신 하나님께서 피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가지고 오셨던 것들 중에 중요한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을 보내실 때에 그 속에 생명을 주어서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이 땅에 있는 유한한 생명과는 다르다.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이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부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는 아버지의 유일하신 아들이었다. 즉 독생자였던 것이다. 그분이 아버지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유일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만을 가지고 있으려고 가지고 온 것이 아니다.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 주려고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한 가운데서 생명나무를 심어놓으셨던 것이다. 그 열매를 따먹고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라는것이다. 하지만 첫째 아담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둘째 아담으로 그리고 마지막 아담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고 부할하신 후에 그는 생명을 나눠주시기 시작하셨는데, 그가 쓴 방법은 당신 대신에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시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님의 또 다른 방식으로 오심으로서, 그분이 오실 때에는 영으로 오시지만 믿는 이들 속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오시어 믿는 이들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이 그 사람 속에 있는 한 하나님의 생명도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죽은 날까지 생명을 지켜내야 한다. 어떤 일이 불어닥쳐도 그분을 부인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던 성령께서도 떠나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한 번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라면, 그 생명은 그가 죽는 날까지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그 사람 속에 계속해서 함께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설령 죄를 범하였어도 성령은 그 안에 계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에 주님을 부인하거나 죄를 지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을 때에는 성령께서도 그 사람을 떠나가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곧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한 자들 속에는 누구나 다 영생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말한다. "아들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잇는 자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가지고 있지 않는 자는 [자기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요일5:12)"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고 있는 너희에게이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요일5:13)". 

 

9. 내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믿는 이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다는 말은 자기 속에 보혜사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죽고 부활하셨던 예수님을 일컬어 '생명주는 영'이라고 하였다(고전15:45). 그분이 생명주는 영 곧 보혜사 성령이 되어서 우리 안에 거주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성령이 오심으로 나타나는 증상이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나 성령이나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것이 발현됨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증상을 통해서 확인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영이 내 속에 들어오면 그 사람이 그 생명을 받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의 죽어있던 영이 말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방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생명은 성질이 곧 빛이요 진리이요 사랑이기 때문에, 이 생명을 받은 자는 어둠 안에 거하지 아니하며, 거짓말도 하지 아니하고, 형제를 미워하지 않게 된다. 이 생명을 받은 자는 빛 가운데 거하며, 진리를 말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요한 사도는 그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다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양자)가 되었으므로 그도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부부터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혹시 죄를 범한 자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요일5:14~17).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10. 죄들 중에 '사망에 이르는 죄'란 대체 어떤 것인가?

  성경에 나오는 말씀 중에서 난제가 하나 있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망에 이르는 죄"다. 대체 사도 요한은 어떤 죄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말했으며, 왜 그러한 죄를 지은 것에 대해서는 기도하라고 말하지 않겠노라고 말한 것인가? 어떤 사람은 성령훼방죄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역사를 마귀의 역사라고 치부하는 것을 성령훼방죄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사망에 이르는 죄' 보다 더 원문상으로 정확히 말하면, '사망을 향하여 있는 죄'라는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 요하니 '사망에 이르는 죄'는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사망'은 '생명'의 반대말이며, 여기에서 '생명'은 아버지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죽어도 다시 사는 부활생명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사망도 역시 육체적인 사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사망을 뜻하는 것이라야 한다. 다시 말해, 영원한 죽음을 향하여 짓는 죄를 가리켜,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영원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죄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불신앙의 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국 죽을 때에 영원한 사망 안에 처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였지만 영원한 사망에 처하는 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예수님을 한 번 믿었다면 어떤 죄를 짓더라도 그 죄와 상관없이 자신은 구원받는다고 믿는 죄를 가리킨다.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그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면 그는 죽는 날 그이 속에 들어있는 성령께서 그를 떠나가실 것이다. 죄를 다 처리하지 못한 자까지 주님은 그를 천국에 억지로 데려가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직 죄를 청산한 자만 천국에 데려가신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사람이 되셨고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씻어내지 못한 자는 결국 남게 된다. 죄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는 매일 자기의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령의 책망을 멀리하고 죄짓고 살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께서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깨우쳐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우리 속에서 책망하시고 가르쳐주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예수님을 믿은 자가 되었지만 성령의 책망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국 구약의 사울왕처럼 버림을 받고 말 것이다. 이러한 죄가 바로 사망에 이르는 죄인 것이다. 

 

11. 악한 자 사탄을 이기는 자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사탄마귀를 '악한 자'라고 칭하였다. 그것도 다섯 번 나오는데, 다 사탄마귀를 지칭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요일2:13~14, 3:12, 5:18~19). 그는 선한 자가 아니라 악한 자다. 그는 선과 악을 알고 있지만 악에 물들어 있는 자다. 그는 악을 밥으로 먹고 사는 것이다. 그는 한 마디로 악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잔인한 자다. 그는 냉혹한 자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에게 속아넘어가 그의 영원히 갇혀 있을 감옥에 들어가면 아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의 공격들 즉 유혹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는가? 그런데 사실 우리 인간이 가진 능력과 지혜만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가 없다. 그는 하나님 다음으로 지혜롭고 미가엘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상당히 큰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지닌 우리 인간의 힘과 타락한 본성에 휩싸여 있는 우리 인간의 지혜만으로는 그를 이길 수가 없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탄마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사탄마귀를 이기신 우리 주 예수님을 힘입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께서 사탄마귀보다 크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요일4:4). 사탄마귀는 피조물이고,우리 주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사탄마귀의 권세와 능력과 지혜는 제한적이지만 우리 주님은 무제한적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힘입는다면 그를 거뜬히 이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거듭 태어난 성도는 하나님께서 나셨던 자인 예수께서 그를 지켜주기 때문에 악한 자가 그를 손댈 수 없다고 했다(요일5:18).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 안에 전능자께서 들어와 계시는데 어찌 그 놈이 함부로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가지 그 놈이 우리에 접근하고 우리 안에 들어오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짓게 될 때다(요일3:8).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그에게 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탄마귀를 이기셨던 예수님을 힘입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회개하기만 하고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면 우리는 거뜬히 사탄마귀를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마귀는 광야의 시험에서 3대 0으로 예수님에게 판정패 당했으며, 3년반 뒤에 십자가에서 KO패 당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없는 예수님을 그가 죽였기 때문에, 그의 계급이 무장해제 당했기 때문이다. 그날 그러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마귀는 불법을 사용하여 그가 가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예수님에게 넘기게 되었으며, 그때 그는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무저갱에 갇혀 이 지상에 못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주님 재림 직전에 잠깐 풀려서 올라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그는 지금도 지하세계에게 자신의 부하들은 올려보내 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쫄 필요가 없다. 우리 속에 예수님이 계시는데, 그는 예수님 앞에서는 패배자이기 때문에 그는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있다. 내 안에 사탄마귀보다 더 큰 이가 내주하고 있음을 믿으라. 그리고 담대히 맞서라. 마귀를 대적하면 그가 피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피하지 않으면 성령의 검으로 그의 머리를 찔러버리고 그의 몸을 싹뚝 잘라버리라(영의 세계에서 그렇게 명령하면 된다). 그가 우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다. 

 

12. 예수 그리스도는 대체 누구신가?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마무리 지으면서 예수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공개한다. 그분은 말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지지만 실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라는 것이다(요일5:20). 그분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것불렸다는 것과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했다고 해서 그분은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한 다른 표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무렵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고 하느냐?" 그렇다. 그분의 신성은 하나님이셨다. 다만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신성한 그분이 육신을 입어 인성을 잠시 취하신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고 부활하실 때에 그분의 몸은 신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끌어가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신성한 세계의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분이 비록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지만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로 낮춰 불러서는 아니 되겠기에 그분을 참 하나님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분만이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이시다. 그러므로 공생애 마지막에 예수께서도 아버지께 기도하실 때에 이렇게 기도하셨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그랬다. 하나님이 보내셨던 분, 그래서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하셨던 분은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요한은 자기자신을 우상에게서 멀리할 것을 주문하였다(요일5:21). 그런데 이말을 헬라어 원문을 통해서 보면, 자기자신을 우상으로부터 지켜내라는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우상숭배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지면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 부분은 다른 설교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사도 요한은 초신자들에게는 이 부분까지 다 설명해 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이 부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 같다. 그는 가장 높은 수준의 영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말이다. 

 

13. 나오며

  요한일서를 공부하다보면 느끼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정말 암송해야 할 요절이 많은 성경책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이 책은 기초적인 영적인 진리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요한일서는 자범죄 용서를 위한 자백의 중요성(요일1:9)을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빛'이시고(요일1:5), '사랑'이라고 하는 정의하고 있다(요일4:8,16). 그리고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하늘에서 우리를 위한 대언자가 있다고 말한다(요일2;1). 그리고 이 세상 안에는 악한 자가 있어서  이 세상이 그 악한 자 안에 놓여 있으며(요일5:19), 악한 자가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데, 그것들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있다고 말한다(요일2:16).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며(요일2:22),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언급한다(요일4:2~3). 그러므로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를 분별하라고 권면한다(요일4:1). 그리고 요한일서는 진리의 성령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요일5:6),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는 영으로서(요일5:6), 그분의 가르침은 참되고 거짓이 없다고 말한다(요일2:27). 특히 요한일서는 우리가 대적해야 할 대상에 대해서도 알려주는데 그를 '악한 자'라고 부르며(요일2;13,14, 3;12, 요5:17,18), 죄를 짓게 되면 누구든지 그에게 속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요일3: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그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요일3:8). 아담의 장남 가인이 차남인 아벨을 쳐죽인 것도 그가 악한 자에게 속한 것이었으니(요일3;12),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요일4:20).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죄라고 가르쳐준다(요일3:15). 그리고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만큼 귀한 일은 없다고 말한다(요일3:16). 더욱이 요한일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으며(요일4:10),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다고 말한다(요일4:14). 하나님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만일 우리들이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요일4:12).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기려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친다(요일5:5). 그리고 성도가 세상을 이기려면 그때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우리의 '믿음'이라고 말한다(요일5:4). 그리고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셋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물'과 '피'와 '성령'이라고 알려준다(요일5:7~8). 그리고 예수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기에, 누구든지 생명을 얻기를 원하는 자는 아들을 영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요일5:12).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 거듭난 자는 예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악한 자라도 그를 만질 수 없다고 가르쳐준다(요일5:18). 왜냐하면 우리 믿는 이들 속에 들어와 계시는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요 영생이시라는 것이다(요일5:20).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요한일서를 공부할 때 암송할 성경구절들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요한일서가 바로 이러한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틈나는대로 아니 시간을 내어서라도 하루에 한 번씩 요한일서를 읽고 또 읽을 수만 있다면 그는 어마어마한 영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살기를 바라며, 믿음을 사용하여 악한 자를 이기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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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29일(수)

정병진목사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예언되어 있을까?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자 구원자로요, 그리스도(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 등으로 예언되어 있다. 그런데 그분은 또한 '목자'로도 예언되어 있다. 그렇다. 에스겔서와 미가서를 비롯한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장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보낼 구원자는 '목자'처럼 양떼들을 목양하고 또한 사나운 짐승들을 다스리는 자라고 예언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자는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들까지 가리키는가? 하나님이 약속한 그 목자는 대체 어떤 조건을 가진 자인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 시대의 거짓말장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2021-12-1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왜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목자가 되시는가?(마2:1~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UjNqNCpUKc8 [ 혹은 https://tv.naver.com/v/24171001 ]

 

1. 들어가며

  성탄절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절기다. 그런데 그분의 탄생은 여느 사람들의 태어남과는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그분의 탄생에 관하여 미리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그가 어디에서 태어나며 어떤 혈통 아래에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태어날 것인지 예고된 사람은 지금까지 예수님 이외에는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분의 탄생이야말로 온 인류에게 기쁨을 안겨줄 좋은 소식이 될 것을 말해 준다. 그중에 오늘은 그분의 탄생 장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오직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금 예수께서는 왜 베들레헴 출신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목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이외에 다른 약속된 목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 

 

2.  동방박사들은 왜 목숨을 내건 모험을 감행해야 했는가?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을 알고 축하하러 온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자 한 천사가 나타나 그날 밤 구주의 탄생 소식을 알려주었으니, 그때 밖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이 태어난 아기를 찾아가서 경배하였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하늘의 별들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스라엘 밖에 있었다. 그들은 밤 하늘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은 왜 자기 나라의 왕자가 아니라 약소국 그것도 로마의 속국인 유대 나라의 왕자로 탄생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찾아온 것인가? 그들은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살았다. 그리고 자기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찾아왔다. 그들은 왜 자기의 목숨을 담보한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 것인가? 결론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태어난 아기를 한 번 만나서 보고 그분께 예물을 드려 경배하는 것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날 태어난 아기 예수는 단순히 한 나라의 왕자가 아니라 온 인류에 영향을 미칠 위대한 왕의 탄생이라는 것을 말이다. 

 

3. 온 인류를 구원할 위대한 왕을 이 세상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가?

  동방박사들은 비록 자기가 성경 말씀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별의 움직임을 통하여, 그때 그 별이 위대한 왕의 탄생을 알려 주는 것을 믿었다. 그리고는 장장 800km나 되는 머나먼 여행을 감행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왕자가 정확히 어디에서 탄생할 것인지는 모른 채 달려왔다. 그래서 그 먼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 유대인의 왕이 될 자는 응당 유대 나라의 왕궁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헤롯 궁정에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 당시 유대 임금은 헤롯대왕(B.C.73~4)이었는데, 예수께서 태어날 당시 그는 69세로서 자기의 아들들도 이미 장성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권력욕이 강했던 헤롯대왕은 새로운 왕의 탄생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즉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아 그리스도가 태어날 장소가 어딘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미가의 예언의 말씀을 찾아내었고, 그곳은 베들레헴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곧 인류를 구원할 왕적 통치자의 탄생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언된 채 있는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군가 나타나서 내가 바로 예수님이 예언한 약속한 목자요, 내가 재림 예수라고 아무리 떠들어댄다고 할지라도 그가 가짜인 것을 구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 예언되어 있지 않으면 그러한 목자와 구원자는 다 가짜일 것이기 때문이다. 

 

4. 온 인류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출할 구원자의 탄생에 관한 대표적인 예언은 무엇인가?

  온 인류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출할 구원자에 관한 예언들 중에서 제일 오래된 것은 B.C.4000년경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것은 '여자의 후손'을 통해서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이라고 한 것이다(창3:15). 그러다가 B.C.995년경 나단 선지자는 그분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삼하7:14). 그리고 B.C.734년경 이사야 선지자는 그분을 낳게 될 여자는 '처녀'일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으며(사7:14), 그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사람이 되실 분으로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해 주었다(사7:14, 9:6). 그리고 B.C.700년경 미가 선지자는 그분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미5:2). 다시 말해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날 인류의 구원자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가 선지자의 예언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다. 

미5:2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나를 위하여)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기원)은 상고에(옛적부터이며), 영원에(영원부터) 있느니라

 

5.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따른다면 온 인류를 구원할 분은 어떤 사람이라고 예언되어 있는가?

  이처럼 온 인류의 구원자에 관한 예언 중에서 미가의 예언은 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미가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 신약의 마태복음 기자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성경을 인용하였다(이러한 일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70인역에 따르면,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마2:5~6). 첫째, 그분은 다윗의 고향인 유대 나라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한다둘째, 그분은 먼저 계신 주권자로서 스스로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셋째,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인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요 목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것이다. 그렇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군가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이 약속한 목자요 예수께서 약속한 목자라고 아무리 외친다고 할지라도 위의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 있다면 그는 결코 온 인류를 구원할 목자가 될 수 없다. 

마2:5-6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 [안에서]이오니 이는 선지자(미가)로 이렇게 기록된 [채 있는]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들](집권자들,주권자들)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왜냐하면] 네게서(너에게서부터) 한 다스리[고 있]는 자가 [스스로] [밖으로] [장차] 나와서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혹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라) 하였음이니이다

 

6. 미가의 예언에 따르면 온 인류를 구원할 목자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미가의 예언(미5:2, 마2:6)에 의하면, 온 인류를 구원할 목자는 첫째로, 반드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유다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아무도 온 인류를 구원할 목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직계 자손으로서, 베들레헴이 자신의 고향이었던 예수의 법적 부친 요셉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살았지만, 마리아가 구세주를 낳을 그 무렵에는 호적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천하에 호적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서 해산할 날이 찼을 때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던 것이다(눅2:1~6). 그렇지만 헤롯대왕의 살해 계획 때문에 천사의 고지를 들었던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 땅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애굽을 떠나 갈릴리 나사렛으로 올라가서 살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던 때 사람들은 예수를 가리켜 흔히들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라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는 그리스도가 나오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요7:42). 

 

7. 미가의 예언에 따르면 온 인류를 구원할 목자의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미가의 예언(미5:2, 마2:6)에 따르면, 온 인류를 구원할 목자는 둘째로, 오직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는 존재만이 가능하다. 왜나하면 마태복음 2:6에 따르면, 그분은 이미 다스리고 있는 이(주권자, 왕)가 스스로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언의 원조격인 미가 5:2에 따르면, 그분의 기원은 옛적부터이며 영원부터라고 되어 있다. 고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왕 노릇하고 있던 자가 사람으로 태어나야 그분이 인류의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어나기도 전에 옛적부터 영원부터 다스리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그분은 오직 하나님 이외에 없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장차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실 목자에 관하여 가장 많이 예언을 쏟아내고 있는 에스겔 선지자는 그 목자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였다. 

겔34:11~15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렇다.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참 목자는 여호와가 사람되신 분이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셔서 양들을 목양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 사람은 결단코 주님이 약속하신 목자가 될 수 없다. 

 

8. 미가의 예언에 따르면 온 인류를 구원한 목자의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이제는 마지막으로 온 인류를 구원한 목자의 세 번째 조건에 대해 살펴보자. 이 조건에 따르면 그는 셋째로, 헬라어로 '포이마이노'하는 존재여야 한다. 구약성경의 미가서에서는 이 말씀이 '다스릴 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신약성경에서는 '포이마이노할 자'라고 쓰여 있다. 그러면 왜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에서 다스릴 자라는 말씀을 '포이마이노'라는 단어로 번역했던 것인가? 그 이유를 종합해 보면, 장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실 목자는 '다스리는 자'이면서 동시에 '목양하는 자'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포이마이노'라는 단어는 크게 2가지 뜻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목양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즉 양떼를 먹이고 기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뜻에서 한글성경에서는 '포이마이노'를 '목자가 된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다스리다. 통치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는 그가 왕으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구원자는 목양하는 자이면서 다스릴 자여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온 인류를 구원할 자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첫 번째 뜻은 '목양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목자는 양떼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맑은 물가로 인도하시어 그들을 양육하고 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실 목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세워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먹이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겔34:23~24).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으며, 나를 통하여서 들어가며 나가며 꼴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요10:9).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 영원한 목자가 되시어, 환난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목자가 되실(포이마이노)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계7:17). 

  둘째, 온 인류를 구원할 자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두 번째 뜻은 '다스린다. 통치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스린다'는 이 말은 두 방면을 가지고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자를 심판하고 깨뜨리고 쳐부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 장차 기름부으실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장차 철장(쇠 지팡이)으로 민족들을 질그릇 깨뜨리듯 부술 것이라고 하였다(시2:7~9). 그리고 또 하나는 사나운 짐승에 의해 잡혀간 양떼를 그들로부터 구원해 낸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는 목자가 하는 일은 양떼를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구출하여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게 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겔34:22). 여기서 사나운 짐승이란 악한 영들로서 사탄과 그를 따르는 귀신들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9.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포이마이노'의 용례는 장차 인류를 구원할 목자에 대해 어떠한 사실을 알려 주는가?

  요한계시록에는 '목자가 된다'는 말의 헬라어 동사 '포이마이노'가 딱 네 번 나온다(계2:26~27, 7:17, 12:5, 19:15). 이 중에서 한 번은 목자가 '목양한다'는 의미로 쓰였고(계7:17), 나머지 세 번은 왕으로 '다스린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한글성경에서는 한 번은 '목자가 된다'로 번역되어 있고, 나머지 세 번은 '다스린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목자는 목자로서 양떼를 먹이고 기를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로부터 양떼들을 건져내야 하며 양떼들을 해치려는 놈들을 처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말씀들에 따르면 과연 누가 목자가 될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 7:17의 말씀에 따르면,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다. 요한계시록 어디를 살펴보아도 목자가 되실 분은 오직 한 분이다. 그분은 지금도 보좌 가운데 계시는 어린양으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계7:17). 그런데 실제로 그분은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목자'로서 예언되어 있었다(미5:2, 겔34:23~24). 뿐만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목자가 되셔서 하늘에 올라온 성도들을 인도하고 계신다. 그렇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어디에서도 예수께서 또 다른 약속된 목자를 보내 주신다는 말씀은 없다. 목자는 오직 한 분으로서 옛적부터 계신 이이자 영원부터 계신 이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시다. 이는 그분 이외에 다른 목자는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말씀과 성령을 주실 수 있으시며, 그분만이 악한 사탄 마귀와 그 졸개들인 귀신들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실 수 있으시고, 그들을 처단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에서 일하는 주의 종들(목사들)은 그분이 맡긴 직무를 수행하는 일꾼들에 불과하다. 다 사역자들인 것이다. '목자'라는 칭호는 오직 예수님 그분에게만 붙이는 것이지 함부로 붙이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분만이 필연적인 목자이시기 때문이다. 

 

10. 과연 오늘날 누구는 과연 예수께서 예언한 말세의 약속된 목자인가?

  그런데도 오늘날 신천지의 이만희는 자신을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약속한 참 목자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그가 자신이 누군지를 말한 선언서를 잠시 들어 보자.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홈페이지 참조).

  "저 이만희는 예수님이 교회들을 위해 보낸 약속의 목자입니다(계22:16). 저는 계1:1~2과 10장의 약속같이 속히 될 일을 교회 목자들과 성도들에게 알리기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제가 전할 말씀은 계시록 전장의 예언이 육신이 되어 나타난 실체들을 보고 들은 말씀들입니다. 이 계시록은 예수님이 예언하신지 약 2,000년이 된 오늘날 다 이루셨고, 이루실 때 저는 곁에서 계시록 전장 곧 1장에서 22장까지를 다 보았습니다(계22:8참고)...."

  이분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교회들을 위해 보낼 것이라고 하는 목자에 관한 말씀은 한 말씀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고 있는 요한계시록 22:16의 말씀은 목자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사자(천사, 혹은 메시지 전달자)에 관한 말씀이다. 그것도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쓰고 있을 당시 예수께서 이미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을 위해 보낸 천사에 관한 말씀이다. 이때 예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일곱 교회들에게 전할 말씀을 주셨다. 만약 이만희가 곁에서 예수께서 하셨던 이 말씀들을 들어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전해 주었다면, 이만희는 신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2천 년 전에 예수님 곁에서 그 말씀을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기꾼이 또 어디에 있는가? 인간인 주제에 선재하신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성경만으로 보면,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언하게 하였노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이 말씀을 가지고 말장난을 하는 것이다. 이 본문을 살짝 바꾸어 '나 예수는 [이 시대의 ]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약속된 목자 이만희)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언하게 하였노라'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일 년 이상 신천지에 가서 세뇌 당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 금방 이만희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버린다. 그러나 헬라어를 보라. 과거형이다. 사도 요한이 성경을 쓸 당시에 이미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이만희는 자기는 이미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다 보았다고 하는데, 아니다. 아직 성취되어야 할 말씀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자신은 이미 요한계시록 22장까지 되어질 일들을 다 보았다고 증거한다. 만약 그가 그것을 다 보았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지금 신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A.D.95년경에 이미 쓰였고 주님은 그때에 이미 당신의 천사를 시켜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전달했던 말씀이다. 2천 년이 지난 오늘을 살고 있는 이만희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다.

  생각해 보라. 지금 이만희가 144,0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육체 영생의 나라인 천년왕국에 데려가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목베임을 받았거나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그의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한 사람도 못 들어가는가? 그리고 이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의 사람들만이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되는가? 그리고 성경에는 첫째 부활을 통해 살아난 자가 천년왕국에 들어간다고 쓰여 있는데, 어찌 육체를 가진 자들이 그곳에 들어간다고 말을 하는가? 그리고 이때는 하늘에서 영의 사람 144,000명이 육의 사람 144,000명 속에 들어간다고 살짝 속이는데, 어찌 영이 있는 사람 속에 또 다른 사람의 영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귀신도 사람의 영 속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판국에 어찌 사람의 영이 또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간다고 사기를 치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은 대체 영의 사람인가 육의 사람인가? 

 

11. 나오며

  우리는 미가서와 에스겔에서 기록된 목자에 관한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 이 세상에 목자로서 오셨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분은 우리 주 예수님 뿐이다. 아무나 그 목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보내신 목자가 되려고 한다면, 그는 옛적부터 그리고 영원부터 존재하던 자여야 한다(미5:2). 그러니까 하나님이 오셔야 인류의 목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그 목자라고 사기칠 것을 미리 아시고 장차 보내줄 목자는 3가지 조건을 갖춘 자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다. 그는 첫째로, 베들레헴 출신이어야 한다. 그는 둘째로, 영원 전부터 왕 노릇하고 있는 주권자 곧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그는 목자로서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사탄 마귀와 악한 영들로부터 인류를 구원해 낼 수 있어야 하고, 그것들을 처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오직 이러한 조건을 갖추신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그분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보더라도, 부활 승천하신 주께서는 누가 목자인지를 알려 주셨다. 그분은 보좌 가운데 계신,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시다. 그분만이 천국에 들어온 영혼들을 생명수 샘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이외에 다른 목자를 보내 주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리고 소아시아에 일곱 교회에게 들려줄 말씀도 이미 A.D.95년경에 주님께서 천사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다만 주의 사역자가 되어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해석하고 전달할 뿐이다(그것도 대부분 틀린 것도 많지만). 그러나 오늘날 누구든지 회개하고 순종하여 이기는 자가 되면 그도 144,000명에 들 수 있다(계2:26~27). 아니 말이 필요없다. 지금이라도 천국에 올라가서 누가 144,000명의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직접 가서 보기를 바란다. 거기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말이다. 거기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비롯한 구약의 성도들이 앉아 있고(마8:11), 신약의 제자들도 앉아 있으며(마9:28), 지금도 남아 있는 그 자리에 다른 성도들로 채워가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는가?

 

2021년 12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히브리서가 가르쳐주는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대체 누구였는가?(히11:8~16)_2019-09-17(화)

https://youtu.be/CVNyhl1h4AA

 

1. 창세기에 따르면, 그때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었나요?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대개 12장부터 22장(출생은 11장, 죽음은 25장)에 걸쳐서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약 4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창12장에서는 "구원 안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고, 둘째, 창18장~21장에서는 "약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이뤄가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하는 사라(아브라함의 아내)의 태를 열어 잉태케하고 또한 그녀로 하여금 출산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창19장에서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당신을 표현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넷째,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시험하시는 분이라고 나타나 있습니다.

 

2.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창세기의 11장에 나오는 하나님과 어떤 측면에서 일치하고 있나요?

  히브리서 11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히11:8~19에 걸쳐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 나온 하나님과 동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구원으로 초대하시고,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며, 못할 것이 없은 분이자, 시험하시는 분이심이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에는 뚜렷하게 나타나있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옵니다.

 

3.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가 소개하는 독특한 면은 대체 무엇인가요?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창세기의 기자와 같은 관점으로 하나님을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창세기에서 발견하기가 어려운 부분을 기록해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된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설계자이시며, 건축자시다는 것입니다(히11:10). 그러나 우리말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원문의 뜻이 잘 반영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개역개정)에서는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10)"라고 번역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을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는 기초를 가지고 있는 도성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의 설계자와 건축가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번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누구신지가 분명하게 나옵니다. 그것은 그분이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목수이시며 건축가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일평생 바라보고 살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부분에 등장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라고 주어진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자신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자신을 부르기를 즐겨했는데, 이는 그가 본향찾는 자인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히11:14).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본향'이라는 단어가 매우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본향'이라는 헬라어단어가 '파트리스'라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파트리스'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것은 '파트로스'입니다. 한편 '파트로스'라는 단어의 뜻은 "아버지"라는 것이 기본적인 뜻이고,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온 "조상, 선조"라는 뜻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헬라어로 "본향"이라는 단어의 뜻은 "아버지의 나라(The country of Father)" 혹은 "아버지의 땅(Fatherland)"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고향을 결코 그가 태어난 "갈대아우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의 아버지의 고향으로서 "갈대아우르"라고 말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자기의 아버지의 나라(땅)"은 어디였을까요? 그곳은 하늘에 있는 아버지께서 마련하고 계시는 도성(도시)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에 있는 도성을 바라보면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4. "하나님의 도성"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도시입니까?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있는 도시인데요, 이 도시는 구약시대에는 한 번도 정확히 계시된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뒤 승천하셔서 그때부터 하늘에 준비하고 계시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요14:2~3). 이 도시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기초를 닦으셨으며, 예수께서 승천하신 뒤부터는 예수께서 그곳에다가 성도들이 들어가서 살 집을 짓고 계십니다. 이것은 만세전에 이미 지어진 채 있는 집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한 뒤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난 그날부터 지어지고 있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도성"의 터 위에 지어지는 우리들의 "내 집"은 어떻게 지어지나요?

  "하나님의 도성"은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도시 안에 있는 터(기초) 위에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거듭난 뒤 어떻게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지어지는 집입니다. 그 집은 결코 아파트형이 아니라 단독주택형인데, 그리 높지 않은 건축물들입니다(직접 가서 보시면 정확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집들의 차이는 그 집 군데군데에 얼마나 크고 다른 보석으로 꾸며져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예수믿고 나서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 우리의 집들이 계속해서 멋지게 지어지고 또한 보석도 그곳에 박히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고, 죄짓고, 의심하고, 일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때에는 그 집의 일부분이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왕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하늘에서 보석집을 잘 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019년 9월 17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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