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8(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27) 예수님의 죽음이 가져올 결과와 주님을 따를 자들의 진정한 각오(요12:20~5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KoE8uAkbZpw [또는 https://tv.naver.com/v/33096949]

 

1. 들어가며

  예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런데 이번 예루살렘 방문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공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이지만, 이번 유월절 방문은 다른 방문 때와는 아주 많이 달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방문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아주 많이 소동케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지 나흘된 베다니의 나사로를 살렸다는 소문이 이미 예루살렘에도 다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감람산 벳바게까지 마중을 나가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바닥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때로부터 나흘 뒤에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신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대체 무슨 일을 하신 것인가?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는 달리 이후 예수께서 몇몇 헬라인들의 방문을 맞이함으로 4일간의 삶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월요일에 일어났던 기사들은 다 생략한 채, 화요일에 있었던 일들을 이어서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입성 첫날에 예수께서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일까? 그리고 이때 들려주신 말씀은 공관복음서의 말씀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서 어떤 영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2. 몇몇 헬라인의 방문을 맞이한 예수께서는 군중들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예수께서 입성하시자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다. 이때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까지 관심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 헬라어를 말할 줄 아는 빌립과 안드레는 그들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한다. 그때였다.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것은 바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것이다(요12:23).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광'이라는 말은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이 영예롭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분의 어떠하심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때를 위하여 이 땅에 들어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통하여 당신의 어떠하심을 드러내시려 하셨던 것이다. 고로 영광이란 바로 예수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영광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어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요12:27~28). 그때 하늘에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할 것이다"라고 하는 음성이었다(요12:28). 사람들은 그 음성을 '천둥소리'였다고도 말하였고, '천사의 소리'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성부의 음성으로서, 이미 예수님을 통해 영광스럽게 한 일이 있고 앞으로도 예수님을 통해서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는 음성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이미 과거에 아들을 영광스럽게 한 일이 있었으며, 이제 앞으로 또한 영광스럽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영광이라는 의미는 결국 하나님의 생명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을 가리킨다. 고로 결국 예수께서 생명을 가진 채 이 땅에 육신을 입은 몸으로 오신 것 곧 성육신이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 일이 되는 것이며, 또한 장차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당신의 생명을 해방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될 것이다. 

 

3. 예수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2가지 결과는 무엇인가?

  이때 예수께서는 이방인의 방문을 통해, 이방인들을 포함한 온 인류를 위해 그분이 행하실 죽음의 놀라운 의미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크게 2가지였다.

  첫째는, 그분이 이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음에 넘겨지게 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요12:24). 여기서 한 알의 밀알이란 생명을 소유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또한 많은 열매란 그 생명을 많은 자들이 받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하시는 것이었다. 그 생명은 절대 건드릴 수 없고 파괴할 수도 없으며 영원히 사는 생명을 가리킨다. 예수께서는 이 생명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으셨다(요5:26).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오직 예수 안에만 이 생명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생명을 해방할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든지 이방인들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을 나눠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생명의 위대한 영광을 드러내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예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게 됨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비유로서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는, 그분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됨으로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 마귀를 바깥으로 내던질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12:31). 그렇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류의 죄사함과 생명 분배만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이 세상의 통치자로 있는 사탄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도 오신 것이다(요일3:8). 그리고 그 방법은 자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죽음에 넘겨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때 당시 사탄 마귀는 아마도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이미 다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데, 오직 한 사람 예수님만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만 죽여 없애버린다면, 모든 인류가 다 자기의 손아귀에 들어올 줄로 알았다. 하지만 마귀는 몰랐다. 그렇게 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면 그것은 자신이 불법을 저지르게 되어 심판받고 쫓겨난다는 것을 말이다.

 

4. 사탄 마귀는 언제 어떻게 어디로 쫓겨나게 되었는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탄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을 창조시에 있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기 전 혹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직후에 사탄 마귀의 타락이 있었으며, 그때 하늘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일까? 만약 사탄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난 것을 천지창조 전후로 본다면 성경 말씀 중에 틀린 부분이 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욥기서 1장과 2장을 읽어 보면, 사탄이 하나님 앞에 서서 보고하기를 "내가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의 허락을 받고 땅에 내려가서 욥을 시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사탄은 어전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또한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미가야가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 환상이 나온다. 그때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군대인 천사들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기를 자신이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아합왕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하겠다고 제안하는 모습이 나온다. 여기에서도 역시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다. 그렇다. 구약시대에 사탄은 악한 일을 수행하는 자로서, 여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탄생 전후로 하늘에서 쫓겨난 듯하다. 그때 사탄은 혼자만 쫓겨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쫓겨나게 되는데 이들이 결국 귀신이 된다(게12:7~9). 그래서 그때 이후로 사탄은 하나님을 모방하여 음부에 자신의 보좌를 만들어 놓고 귀신들의 통치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그도 비로소 예수께서 하나님에게도 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40일 동안 금식하신 예수님을 시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고 시도한다. 이때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다. 이는 그도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잘 몰랐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한 영들이 하나도 없는 깨끗한 분, 죄 없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예수님을 시험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시험을 다 물리쳐 이겨 버리신다. 그러자 잠시 물러나 있던 사탄이 작전을 세운 것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이도록 조종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십자가에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게 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일은 죄 없는 사람에게 사망 권세를 사용한 것이 됨으로 사탄 마귀는 자신이 가진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어 주고 지상에서 쫓겨나 아직까지 무저갱에서 못 올라오고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 대환난의 때에 잠깐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게 될 터인데(계11:7, 17:8, 20:2~3,7~8), 그때 순교자의 숫자가 차게 됨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바로 요12:31의 말씀에 이 세상의 통치자가 장차 '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미 하늘에서 쫓겨난 이후 이 세상의 통치자로 활동하고 있던 사탄 마귀가 무저갱으로 쫓겨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사탄 마귀는 그때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주님께 내어 준 채 무저갱에 갇히게 되는 신세가 된 것이다. 

 

5.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의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주어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분배하는 것임을 밝히셨다(요12:24). 이는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역시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지 말고 그것을 미워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12:25). 만약 자신의 목숨을 사랑하여 그것을 아낀다면 그는 자기의 목숨을 오히려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님을 믿고 따라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이 세상에 속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요12:25). 그래서 주님처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자리까지도 함께 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도 역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정치적인 왕국을 세울 줄로 알았다. 그래서 주님이 세우신 왕국에서 자신을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나중에 그것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우선 주님을 따르는 자는 주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고 주님이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이때 주님께서 말씀하신 '잔'은 고난의 잔을 의미하고(마26:39), '세례'는 죽음의 세례를 의미한다(막10:39). 그러나 용감하게도 두 형제는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던 그 순간에 야고보는 도망쳤고 요한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정말 주님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목숨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사도들이 순교해서 일찍 죽었지만 오직 요한만큼은 죽지 않고 자연 수명대로 살다가 주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 주님을 위해 죽기를 선택하는 자는 오히려 살게 되는 것이고, 자기의 목숨을 아까워하는 자는 오히려 먼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그러한 자를 귀히 여겨 주신다고 말씀하셨다(요12:26). 

 

6. 왜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두고 마음이 괴롭다고 말씀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장차 가져올 위대한 일들을 아셨다. 하지만 그분은 죽음을 앞두고 혼이 괴로워하셨다. 즉 예수께서도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혼이 번민하신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신의 목숨을 죽음에 내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는 생명의 주인으로서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으시다. 그런데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죽음에게 자신을 내어 주어야 하는 것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번민하신 것이다. 둘째, 자신이 죽으려면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버림을 당해야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하는 것이 죽음(둘째 사망)이요, 또한 어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과 하나였고 함께 하셨던 예수께서도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당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번민하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외치셨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마27:46). 이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뜻이다. 이는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릴 때에는 속죄제물로서 염소 2마리를 바치게 되는데, 그중 한 마리는 '희생양'으로 바치고, 또 한 마리는 '버림받은 양'으로 바치게 되는데, 예수께서도 역시 우리 죄를 위해 희생양으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양으로 죽으셨던 것이다(레16:7~10). 

 

7. 왜 예수께서는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 통치자인 사탄에게 매여 있는 자들을 향하여 권고하신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죽음을 통해서 이 세상 임금을 쫓아낼테니까,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서 빛의 아들이 되라고 하신 것이다(요12:35~36). 여기서 '빛'이란 곧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초막절 설교 때에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8:12). 그분은 어둠 가운데 살고 있어서 그것이 사망의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를 모르고 행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빛을 비추어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당시의 사람들은 빛이신 그분을 믿어서 생명을 소유해야 했다. 왜냐하면 빛이 없을 때에는 빛을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영적으로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그러나 빛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자는 더욱더 정금같이 빛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빛을 향해 나오지 않으면 그는 계속해서 어둠 가운데 걸어다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죄를 짓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마귀의 자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붙들 수 있을 때에 그 빛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요,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8. 그렇게 많은 표적들을 보았음에도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가?

  정말 신기한 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부인할 수 없는 표적들을 보았던 유대인들이었지만 끝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고, 이들에 의해 결국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된다. 왜 유대인들은 수많은 표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것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2가지 이유로 그것을 설명한다. 

  첫째,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눈이 멀어 있었고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요12:39~40). 이는 이미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되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었기에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기적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또한 그들에게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 하나님은 절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든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다윗 같은 왕만을 고대한 것이다. 그들은 수치와 모멸 속에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어갈 메시야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지켜온 기득권을 박살내 버리는 예수님을 달갑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사역을 보고서 그들은 깨달아야 했지만 그들은 끝내 자신들의 완고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둘째, 그 이유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요12:42~43). 그랬다. 유대인들 중에서 몇몇 사람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드러내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출교를 당했기 때문이다. 즉 유대 공동체에서 따돌림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회당 예배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그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보았지만 그것을 시인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좋아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역시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무엇이 진정 진리고 바른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뜻 가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많다.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의 입술이 시인한 그대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심판의 날이 되면 눈물로서 후회하겠지만 그때에는 후회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9. 나오며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 한다. 죽어갈 때 느껴야 하는 혹독한 고통도 있고, 죽으면 다시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랑하는 사람과 교통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죽음에 넘기겠다는 각오없이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생명의 길로 가기 어렵다. 타협은 마귀의 속삭임으로서 결코 생명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한 번도 죽어보지 않은 죽음 앞에서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버림당함을 경험해야 하는 죽음 앞에서 번민하신 것이다. 하지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겠지만 죽으면 그로 인하여 생명을 해방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을 받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묵묵히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음 이후에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행하실 영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죄인을 살리는 것이요 죄인에게 아버지의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며, 사람을 지배하는 마귀를 멸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기꺼이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내어 놓으신 것이다. 그분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도 이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먼저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차례다. 영안이 열리지 않아 영적 세계를 전혀 모른 채 신앙생활을 해서는 천국에서 훌륭한 지위를 얻기 어렵다. 고정 관념이 꽉 박혀 있어서 잘못된 성경 지식을 내려놓기 전까지 천국과 영의 세계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단이니 혹은 삼단이니 하는 핍박당함을 무서워해서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기 힘들다. 사도 바울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이 대단한 일인가? 주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어찌 환난을 겪지 않고 들어가겠는가? 그러나 그 모든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그 어떤 일도 우리에게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그 길은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놓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그래서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3년 02월 08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5)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행28:16~31)_2023-02-03(금)

https://youtu.be/_RssU0S-0ik [또는 https://tv.naver.com/v/32964180]

 

1.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제일 처음 무엇을 했는가?

  백부장 율리오에 의해 로마에 압송된 바울은 로마에 도착한 이후 무엇을 시작했는가? 그는 로마에 도착한 이후 삼일째 되는 날 유대인들 중에 높은 사람들을 자기의 셋집 숙소에 초청하여,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보고하면서 그들에게도 역시 복음을 증거하였다. 

 

2. 이때 바울은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했는가?

  이때 바울은 영어의 몸이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의 군병 중 한 사람에게 쇠사슬로 묶인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아직 미결수로서 재판을 받기 전의 상황이므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어떤 집에 세를 내고서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람들을 그 숙소로 초청하여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그때 바울이 어떤 자세로 복음을 전했는지를 의사 누가는 이렇게 증언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을 설득하고 있었다"(행28:23). 그랬다. 바울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이 과연 무엇을 말씀하고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몇몇 소수의 사람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3. 그때 바울이 증거했던 복음의 핵심 내용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증거했는데, 그때 바울이 증거했던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딱 2가지였다. 하나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다(행28:23,31). 

  이때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왕국(나라)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도래하며, 하나님의 나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증언한 것이다. 이때 바울이 증언했던 하나님의 왕국은 이 땅에 도래할 상태로서의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죽어서 들어가게 될 공간적인 장소로서의 천국을 전한 것이다. 사실 이 세상 나라는 사탄의 왕국에 속해 있다(마12:26, 요일5:19). 고로 예수께서도 공생애 시절에 이 세상 임금은 마귀라고 공식적으로 언급하셨다(마12:31, 14:30, 16:11).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범죄 이후 사실 다 사탄에게 포로로 붙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땅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해야 한다. 그것은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다(마12:28). 그러므로 오늘날에 성도들이 반드시 들어야 할 복음의 내용에는 영의 세계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탄과 귀신들 그리고 뱀들에 관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이들을 제압하고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장차 죽어서 들어갈 공간적으로 실제하는 천국에 대해서도 들어야 한다. 천국이 어떤 곳이며, 누가 들어가고 누가 못 들어가게 되는지,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신분과 기업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준비하는지를 복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모세의 율법이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가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전했다. 사실 구약성경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속된 메시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분이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이 바울의 복음의 핵심이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통해서 사람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아버지의 생명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만이 저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4. 그러자 로마의 유대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그러자 로마의 유대인 지도자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이때 로마의 유대인들은 두 부류로 갈렸다(행28:24). 그러자 작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자신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어 부활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부류가 생겨났다. 이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울의 증언을 거부하고 말았다. 

  그러자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성령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이 백성에게 가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고,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여러분의 마음이 둔하여져서 딱 이러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놀라운 구원을 이제 이방인들에게 보내시고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이방인들은 이 복음을 듣고 믿고 받아들일 것입니다."(행28:26~27). 그렇다. 그들은 여전히 복음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이미 워낙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꾸준히 복음을 거부할 것이다. 

 

5. 복음을 들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은 복음을 들었을 때에 대부분 거부하였다. 마음을 열고 들을 수 있다면 그들도 얼마든지 구약의 말씀이 바로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 그들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복음을 들을 때에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하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한쪽 귀로는 듣고 한쪽 귀로는 흘려버려야 할 것인가?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천국복음을 전해 주며, 그것을 듣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미쳤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장차 우리가 들어가서 거하게 될 천국이 어떠한 곳이며, 그곳에서 우리의 신분과 지위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해 주어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도 반드시 회개를 하여 악한 영들을 우리 몸과 환경에서 내보내야 하는데, 자기 자식들을 위해 회개하라고 그렇게 외쳐도 기도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들을 귀가 없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는 체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잘 알고 있으니, 나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다. 가끔씩 들려주는 간증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천국 정보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사실 들어야 할 천국의 분량이 얼마나 크고 많고 놀라운 것인지...

 

 

2023년 02월 0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100) 유대인들의 거짓고소 과연 이길 수 있었을까?(행24:1~23)_2023-01-26(목)

https://youtu.be/mVEUnpplqL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47]

 

1. 바울은 어떻게 되어서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가?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된 것은 여러 이방 교회들이 모아서 건네준 구제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고, 성전에 예물을 드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바울을 보았던 유대인들이 그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성전에 있는 바울을 붙잡아 죽이려고 시도한다. 그때 이것을 지켜 본 천부장이 막아섰고, 안토니오 요새의 층계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가진다. 하지만 바울의 간증을 듣던 유대인들은 다시 그를 없이하자고 외친다. 그러자 다시 천부장이 그를 보호하게 되는데, 이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공회에 그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공회에서도 죽은 자의 부활 문제로 소요가 그치지 않게 되고, 그를 다시 공회로 부를 시점에 중간에서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총독 앞에 서게 된다. 

 

2. 바울을 고발한 자들은 누구였으며,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을 로마 총독에게 고발한 이들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그러므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104km 떨어진 가이사랴까지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와 몇몇의 유대인들이 찾아왔다. 

  이들이 바울을 기소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 소요죄로 고발했다. 바울이 세계에 온 유대인들을 소요하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이단 괴수죄로 고발했다. 즉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셋째, 성전 모독죄로 고발했다. 즉 바울이 성전에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감으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3. 바울은 어떻게 이들의 고발에 변명해야 했는가?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에 자신의 죄목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로마 총독 벨릭스의 허락에 따라 자신을 변호해야 했다. 첫째, '소요죄'에 대해서는 2가지 이유를 들어 그들의 거짓으로 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행24:11~13). 첫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온 지 12일 밖에 안 되었으니, 소요를 일으킬 만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누구와 변론을 했다든지 혹은 회당이나 시 안에서 무리를 소동했다는 것을 본 사람이 있느냐고 되물은 것이다. 그러므로 증거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둘째, '이단 괴수죄'에 대해서는 자신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행24:14~16절). 즉 바울도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을 믿으며, 그들의 소망처럼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정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셋째,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그러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행24:17~19절). 다만 바울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민족을 구제하기 위해 구제헌금과 제물을 가지고 왔으며, 성전 안에서는 결례를 행한 것 뿐, 거기에서 어떤 모임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소동도 없이 성전 안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 자신을 반대할 사건이 있었으면 당사자가 고소했어야 하는데 고소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예루살렘의 공회에서 사건이 마무리 되지 못한 것은 공회 석상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이야기함에 따라 분열이 일어나서 어쩔 수 없이 총독 앞에 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4. 총독 벨릭스는 어떤 선고를 내렸는가?

  이에 총독 벨릭스는 고발자의 고발과 피고인의 변호를 다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선고를 연기한다는 것이었다(행24:22). 하지만 바울은 무죄였다. 그러므로 총독도 바울을 감옥에 수감하도록 명령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를 지키되 그에게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바울을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만 말하였다(행24:23). 일종의 자유로운 구류를 지시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무죄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독은 바울을 석방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유대 지역의 대표자들인 산헤드린 공회가 서로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총독 벨릭스는 자기와 유대 지역 대표자들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선고를 무기한으로 연기한 것이다. 그런데 벨릭스는 무려 2년씩이나 그렇게 하고 있었다. 

 

5. 이 사건이 말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총독 벨릭스 앞에서는 재판 과정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된다. 첫째,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에게는 한사코 시기와 모함, 핍박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 바울도 역시 그랬다. 바울의 복음 전파를 가로막기 위해 유대인들은 그를 뒤따라 다니면서 방해했고, 그를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또한 유대인들은 총독 앞에서 바울을 이단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교리와 바울이 전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진리의 참된 복음을 전하려 하는 자를 가리켜 이단이니, 삼단이니 말하면서 모함을 하게 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사탄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를 알지 못하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을 동원한 사탄의 계략은 아무리 치밀할지라도 성공을 거둘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닿아 있었던 로마 총독과 산헤드린 공회는 같은 편이었지만 둘은 바울을 결코 정죄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바울이 행한 일들이 결코 죄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총독은 뒷일을 생각하여 바울을 구류해 두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거짓이 진리를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불의가 의로움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거짓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서 심판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결코 불의한 일을 저질러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본다. 

 

 

2023년 01월 2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9) 가장 안전한 피난처에서 보호를 받으려면?(행23:12~35)_2023-01-20(금)

https://youtu.be/lvh0MWsX2B0 [또는 https://tv.naver.com/v/32646619]

 

1. A.D.58년경 바울이 1차 공회를 마치자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결의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A.D.58년경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왔을 때에 에베소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게 되어 공회석상에 서게 된다. 하지만 공회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나눠짐으로 서로 간의 싸움판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천부장은 유대 민족끼리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음을 간파하고 임시 대기를 시킨다. 그런데 그날 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결의를 하게 되는데, 바울을 살해하기 전까지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한 것이다(행23:12~13). 일종의 바울 암살단을 조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암살단은 다시 공회가 열리면 안토니오 요새에서 공회로 이동하는 바울을 제거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바울 암살 음모는 어떻게 바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는가?

  그런데 이러한 바울 암살 음모는 바울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울의 조카(생질)가 와서 그 사실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행23:16). 그렇다면 어떻게 바울의 조카는 바울 암살 음모를 알게 되었을까? 우리는 여기서 처음으로 바울의 가족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울에게 누나가 있었다는 것이며, 그 누나에게는 적어도 아들 청년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의 누나가 언제부터 예루살렘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그녀가 장성한 청년 아들을 두었다는 것은 팩트다. 그런데 바울은 원래 길리기아 주의 다소 성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였다(행21:39, 22:3).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와서 살게 된다. 그리고 그때에 바울은 율법의 가장 엄한 교훈을 가르치는 바리새인의 거장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행22:3). 그래서 그도 역시 바리새인이 되었고 바리새인의 후손이 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의 암살 음모는 당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바리새인 포함)도 알고 있었을 것이므로, 바울의 매형은 이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거나 이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바울의 매형이 이러한 첩보를 입수한 뒤, 자기 아들을 시켜 바울의 신변이 위험하다는 것을 바울에게 알려준 것이 아닌가 싶다. 

 

3. 바울 암살 첩보를 입수한 천부장은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그러자 바울의 조카가 바울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려주었고, 바울은 백부장을 통해 천부장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청년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천부장은 그날 밤에 바울을 보다 안전한 장소로 피신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그날 밤 9시, 보병 200명, 기마병 70명, 창병 200명으로 꾸려진 호송 군사들과 함께 바울은 가이사야의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진다(행23:23).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군인들은 고작 60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총독관저가 있는 가이사랴에는 로마 군인 약 6,000명 정도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신변이 보다 더 안전한 곳이자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장소는 역시 가이사랴였다. 그리고 더불어 당시 총독 벨릭스 역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에 대한 정식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천부장은 바울을 총독에게 보내었던 것이다. 또한 총독 벨릭스는 유대 땅 뿐만 아니라, 수리아 그리고 길리기아 성까지 다스리고 재판하는 통치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재판도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돈 한 푼 내지 않은 채, 미결수의 신분으로 470명의 로마 군사들에게 둘러쌓여 안전하게 가이사랴까지 이동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4. 바울이 죽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이 암살단에 의해 죽지 아니하고 가이사랴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첫째는 주 예수님께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행21:11). 그러므로 바울은 안전하게 로마까지 이동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가 예루살렘에서 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어떤 사건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면 인간의 어떤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고로 바울이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파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없었다면 바울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인생을 마감해야 했을른지도 모른다. 둘째는, 그를 도와주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는 천부장이 있었다. 맨 처음에 천부장은 소요 사태의 진압 과정에서 바울을 만났으나, 그가 헬라어를 구사할 줄 알고, 로마 시민이었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아직 바울이 죄인인지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죄인으로 취급했었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그는 바울을 쇠사슬에 결박시켰고 더욱이 그를 채찍질 할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이 잘못되면 도리어 자신이 벌을 받게 되고 관직을 박탈당할 위험이 있었기에 천부장은 바울의 안전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울 암살 음모를 듣게 되자 그는 즉시 바울을 보다 더 안전한 가이사랴의 총독관저로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안전하게 재판을 받도록 배려해 준 것이다. 둘째로는 좀 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의 생질(조카)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죽지 않고 가이사랴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5. 이 사건이 보여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역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도와줄 자가 아무도 없을 때에, 로마의 천부장과 바울의 조카 생질을 바로 그곳에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에는 예루살렘 안에 있는 교회 구성원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도 어느 정도는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안에는 믿는 이 수만 명이 있다고 주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이 막상 붙들려 갔을 때에 어느 누구도 바울을 구출하는 데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엉뚱하게도 로마 장교가 나타나서 바울을 지켜주었고 그리고 바울의 조카가 나타나서 바울의 살해 위험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그곳에 사람을 배치하여 바울을 구원하기로 섭리하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피난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특히 우리들 중에 누구라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면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이 남아 있다면 어느 누구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고로, 우리 인간편에서 볼 때 가장 안전한 피난처에서 보호를 받으려면 우리도 역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역시 당신의 일을 하는 우리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며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시46:1~3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023년 01월 2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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