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12) 쾌락 유흥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전도서2: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B-bFFbc2BYs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64]

 

1. 들어가며

  사람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기를 기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영화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 중에 혹시 악한 영들에 의해 나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이 악한 영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임을 과연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쾌락과 유흥의 영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쾌락과 유흥의 영 쓴 뿌리'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한번 살펴보고,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가는 것이 왜 좋지 않은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쾌락과 유흥의 영이 들어오는 통로는 무엇이며, 우리 인생들에게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은 장치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들은 우리 몸 어디에 달라붙는 것이며, 그 영들은 과연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까지 살펴보려고 한다. 

 

2. 쾌락과 유흥의 영이란 어떤 영을 가리키는가?

  쾌락과 유흥의 영이란 쾌락과 유흥을 즐기도록 꾀는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이런 영들이 자기 몸에 많이 달라붙어 있는 자는 쾌락과 유흥에 쉽게 넘어가 버린다. 그렇다면 쾌락과 유흥이 어떤 죄인지부터 살펴보자. 쾌락과 유흥도 일종의 죄가 되는가? 그렇다. 왜냐하면 쾌락을 즐기고 유흥을 즐길 때에 악한 영이 내 몸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럼, 쾌락과 유흥의 영은 어떤 때에 내 몸에 달라붙게 되는가? 쾌락과 유흥의 영은 육체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시간과 물질을 아낌없이 쓰지만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곧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데에는 시간과 물질을 쓰지 않고, 쓰면서도 아깝게 생각하며 사용할 때에 달라붙는다. 대부분 내 눈과 코, 귀와 입에 달라붙고, 손과 발에도 달라붙는다. 쾌락과 유흥 그리고 사치의 영은 얼굴에 달라붙고, 도박의 영은 손에, 그리고 떠돌이의 영은 발에 달라붙는다. 

  예를 들어 보자. 내 눈이 보는 것을 기뻐하고 보는 대로 갖고 싶어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에 악한 영은 내 몸에 달라붙는다. 내 눈이 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는 관광과 여행, 전시회 관람, 영화관람, TV 시청하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눈이 보는 대로 갖고 싶어하는 욕망에는 명품 구매, 백화점 쇼핑 등 사치에 과감하게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한두 번 물질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거나 혹은 영이 달라붙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죄가 되는 경우는 그것을 절제할 수 없을 때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 냄새 맡는 것과 입으로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에는 맛집 여행하기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분은 전국을 순례하면서 맛집을 서핑하며 찾아다닌다. 돈을 버는 목적도 이러한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보기 위함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으로 짓는 쾌락과 유흥의 죄에는 세상 노래를 즐겨 부르는 것도 있어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즐기는 것도 있다. 그리고 입에 쾌락과 유흥의 영이 붙어 있다면, 그 사람은 주점에 가서 술을 먹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수다를 떨어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차 알콜 중독, 흡연 중독, 마약 중독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스포츠를 즐기는 것을 주체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쾌락과 유흥의 영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3.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가는 것은 왜 좋지 아니한가?

  사실 육체는 먹어야 산다. 그러므로 먹는 것 자체를 가지고 악한 영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는 경우에 문제가 된다. 그것을 위해서 인생 자체를 살고, 그것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인생을 사느냐고 생각하는 자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을 구경하는 것 곧 여행이나 관광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이나 시간을 내는 목적이 온통 여행과 관광에만 쏠려 있다면 그것은 그가 쾌락과 유흥의 영에 빠져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도 마찬가지다. 낚시, 바둑, 만화, 게임, 오락, 영화 관람,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 등의 취미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요 기쁨이 될 때 그것이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그때에 악한 영들이 내게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쾌락과 유흥을 따라가서는 아니 되는가? 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절제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잘못하면 그것이 끊기 어려운 중독 증상으로 바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어떤 것에 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쾌락과 유흥의 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육체를 위해 쾌락과 유흥을 즐기게 되면 대부분 가정을 잘 돌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정을 돌보는 것은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쾌락과 유흥을 즐기는 것은 낙으로 생각한다. 셋째, 쾌락과 유흥을 즐기기 위해 물질을 쓰게 되면 가산이 탕진되어 가난하게 살게 되기 때문이다. 명품 사재기를 좋아하는데 어찌 부자로 계속 살 수 있겠는가? 수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없는데 계속 쓰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가난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넷째, 쾌락과 유흥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영혼을 위한 삶 곧 영적인 성장과 천국을 준비하는 삶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소홀히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천국에도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 들어간다고 해도 천국 변두리에서 살게 될 것이다. 

 

4. 쾌락과 유흥의 영이 들어오는 통로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렇다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 몸에 달라붙게 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본인이 쾌락과 유흥을 좋아하고 그것을 즐기는 데에 지나치게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내 얼굴과 내 손과 발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둘째, 자신의 조상 중에 무당이 있거나 무당과 가까이 교제하면서 산 사람이 있을 때에도 역시 쾌락과 유흥이 달라붙고, 사치의 영이 달라붙는다. 왜냐하면 무당에게 있는 무당의 영은 사람의 영혼의 미래를 위해 걱정해 주고 신경 써 주는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육체의 쾌락과 유흥만을 즐기도록 유도하는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당 자체가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 영을 받은 자들은 먹고 노는 일에 쉽게 노출이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조상들 중에 무당이었던 자가 있는 집안에는 춤추고 노래 잘하는 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라. 그리고 그것을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셋째, 자신과 자신의 조상 중에 부처와 불교를 가까이 한 사람이 있을 때에도 쾌락과 유흥의 영이 달라붙는데, 이런 이들은 보통 여행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면 이들의 발에 떠돌이의 영이 달라붙는다. 그러므로 한 달에 몇 번이라도 밖에 나가 바람을 쐬지 않으면 근질근질해서 못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역시 쾌락과 유흥의 변형으로서 떠돌이의 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떠돌이의 영을 가진 사람은 친구들을 술자리에 불러서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들은 그때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세상을 무슨 재미로 사느냐며 말하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 쾌락과 유흥의 영을 좇아가지 않도록 우리 인류를 위해 마련해 주신 장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쾌락과 유흥의 영을 좇아가지 않도록 우리 인류를 위해 마련해 주신 놀라운 장치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다.

  첫째, 그것들 중의 하나는 시간을 위해 마련해 주신 장치인데, 그것은 바로 안식일 준수다(사58:13~14).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몸과 영혼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잘 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위해서 열심히 땀 흘려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 보면 사람은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며 살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4계명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안식일에 쉬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영혼이 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참된 안식을 안겨 주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도들은 참된 안식을 주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지키는 주일성수는 육체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인류에게, 영혼을 위해 살 수 있게 배정해 주신 특별한 장치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둘째, 두 번째로는 물질을 위해 마련해 주신 장치인데, 그것은 바로 십일조와 헌물이다(말3:8~12). 십일조는 모든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땀 흘려 일해서 벌어들인 수입이라도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수고해서 얻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얻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와 헌물이다. 우리는 십일조와 헌물을 드림으로 열의 아홉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모든 물질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도록 주님께 먼저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십일조와 헌물을 주님께 먼저 드리지 못하고 세상 일과 육체를 위해서만 물질을 사용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물질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우리가 물질을 자신의 영혼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게 막고, 육체의 쾌락과 유흥을 즐기는 데에만 사용하도록 유혹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보라. 그 비유에서 둘째 아들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6. 쾌락과 유흥의 영을 이기고 이것들을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쾌락과 유흥의 영은 우리 몸의 어느 부위에 달라붙는가? 그것은 좀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우리의 몸 중에서도 우리의 얼굴과 그리고 손발에 달라붙는다. 보통 쾌락과 유흥의 영은 우리의 눈과 코, 입과 귀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사치의 영은 우리의 눈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잘못된 취미 생활로 인해 도박과 게임에 빠진 경우에는 우리의 손에 악한 영들이 달라붙고, 쾌락과 유흥의 아류인 떠돌이의 영은 우리의 발에 달라붙는다. 

  우리가 이러한 쾌락과 유흥을 이겨내고 이것들을 우리의 몸에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쾌락과 유흥의 영은 결국 우리의 영혼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 영들이 우리 몸에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는 영들을 떼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것들을 알고 실천해 보자. 

  첫째, 우리 인생이 자신의 육체를 위해 먹고 놀고 즐기며 살기에만 급급하다면, 우리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 짧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 긴 것 같지만 아주 짧기 때문이다(시90:4~6, 약4:13~14).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다 가져 보고 다 먹어 보고 다 누려보았던 솔로몬왕은 말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수고에 따른 분복이기는 하지만, 다 바람을 잡는 것 같았으며 다 헛된 것이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내가 가진 것일지라도 그것들 중에 하나도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요, 육체도 역시 시간이 지나면 늙고 병들어서 썩어짐을 향해 가기 때문이다(전2:1~11).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자인 것이다. 인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쉬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나와 내 조상들이 그동안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 산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내가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 산 것도 회개해야 되지만, 더더욱 회개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쾌락과 유흥의 영을 따라 산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최초 원인이 되는 우상숭배의 죄도 함께 회개해야 한다. 그것은 무당 점쟁이를 따라 산 죄와 부처와 불교를 따라 산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셋째, 날마다 십자가 세우기를 행하여 내 몸에 붙어 있는 쾌락과 유흥의 영을 떼어내야 하는 것이다. 십자가 세우기란 십자가에서 악한 영들의 모든 무장이 해제되었다는 결과를 내 몸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했다면 즉시 악한 영들에게 십자가 세우기를 행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내 몸에 붙어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방면에 중독이 되어 있는 분은 금식하며 기도하기 바라며, 축사 사역자의 도움도 받아야 할 것이다. 

 

7. 나오며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흙으로 빚어진 육체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유일하게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혼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실 두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창조된 세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의 세계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욕구는 동물과 다른 측면이 있다. 사실 동물은 자신의 육체의 욕구만을 채우면 그것으로 만족하며 산다. 하지만 인간은 영혼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만족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영혼의 허기짐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속에 모시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다. 그들은 보통 2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평생 그 만족을 얻기 위해서 여러 가지 종교 생활을 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을 만나면 좋겠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죽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을 그냥 즐기며 사는 것이다. 어차피 죽는 것인데 죽기 전에 육체가 좋아하는 것을 실컷 행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즐겨 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늦기 전에 우리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찾아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내가 벌어들인 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사용하며 산다. 그것을 자신이 장차 들어갈 천국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 지혜롭고 올바른 삶이었는지를 죽어 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2023년 02월 1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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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쾌락 유흥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육체의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았던 죄를 회개합니다. 저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보다는 세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데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쓰지 않고, 먹고 마시고 치장하고 즐기는 데에 사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배 드리는 시간은 왜 그리 아깝든지 그리고 예배 시간은 왜 그리 길든지 예배 시간이 되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면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습니다. 또한 매주 기도하는 시간은 왜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금요기도회 시간이 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제가 진정 사랑해야 할 하나님은 내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세상의 쾌락과 유흥을 즐기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며 살아온 죄를 고백하오니, 이 시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것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좋아했습니다. 돈이 생기면 없던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맛집을 서핑하면서 찾아다녔으며, 그곳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또한 돈을 벌어도 하나님의 나라와 내 영혼의 미래를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세상 것을 보고 즐기며, 관광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말로는 취미 생활을 한다고 둘러댔지만, 실제로는 삶에 지장을 줄 정도였습니다. 그중에 저는 스포츠를 너무나도 좋아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축구장과 야구장과 농구장과 경마장을 찾아가서 소리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바둑을 두고 낚시하는 것을 즐겼고, 만화보고 게임을 할 때에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또한 TV 드라마 보기, 음악 감상하기, 영화 감상하기 등은 절대 빼놓지 않고 꼭 찾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연예인의 사진과 앨범집을 모으면서 그들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내 몸을 명품으로 치장하는 데에 썼습니다. 남들이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있으면, 샘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노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찾아가서 도박하였고, 화투를 쳤으며 그래서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삶의 기쁨을 찾았습니다. PC 인터넷, 핸드폰 게임도 즐겼습니다. 그리고 노래방과 클럽 등에 춤추러 가서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습니다. 또한 친구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술자리를 만들어 불러서, 술 마시며 어울려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즐겼으며, 친구 집과 여러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세상을 관광하는 일은 죄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세상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술 취함과 방탕함은 분명히 육체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저는 세상의 정욕과 쾌락을 즐기는데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주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만족이 없는 물질에 내 마음을 빼앗겨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습니다. 때로는 교회도 가지 않고 일했으며, 주일성수도 하지 않고, 십일조 생활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노후(老後)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개미처럼 일하고 살았지만, 진정 대비해야 할 사후(死後)는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풀의 꽃과 같아서 아침에는 피어 자라다가도 저녁이 되면 시들어버린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인생이 밤의 한 경점(更點)처럼 쉬 지나간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썩어지고 없어져 버릴 세상 일과 쾌락과 유흥에만 열심을 내었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육체의 쾌락과 세상 재미에 빠져 불러들인, 쾌락 유흥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를 섬김으로 쾌락과 유흥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쾌락과 유흥은 하나님 없이도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은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과 점쟁이를 섬길 때에 들어온 악한 영들 때문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무당과 점쟁이는 영혼에도 미래가 있고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몰라서, 이 세상에서 즐기는 쾌락과 유흥, 음란에 온통 신경을 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이 세상을 즐기라고 충동하는 악한 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악한 영에게 속아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무조건 가져보려고 노력하였고, 즐겨보려고 하였으며, 코와 입을 자극하는 음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쫓아다녔습니다. 그래서 귀에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취하고 노래하며 춤추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쾌락과 유흥의 영과, 사치와 알콜의 영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것이었는데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쾌락과 유흥의 영이 내 눈과 코, 내 입과 귀에 달라붙게 했습니다. 이 시간 내 눈과 코, 내 입과 귀에 쾌락과 유흥의 영을 달라붙게 한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무당 점쟁이를 섬길 때에 불러들인, 쾌락 유흥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3) 부처 불교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부처와 불교를 섬겨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부처와 불교를 섬기면 현실감이 떨어져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망각하게 되고, 또한 어디에 열정을 쏟아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게 됨으로, 헛된 데에 시간과 물질을 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부처와 불교를 섬기면 하나님이 계셔야 할 공간이 텅 비어 있음으로 영혼에 허기짐이 발생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허기진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래서 떠돌아다니게 하는 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럴 때면 여행이나 관광을 다녀오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돌이의 영을 나의 발과 발목에 달라붙게 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앞길도 자주 막히곤 했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소중한 시간을 내 영혼의 미래와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영광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육체의 쾌락과 유흥 그리고 사치를 즐기는데 사용한 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또한 돈 버는 것을 내 삶의 목표에 두고 돈 버는 재미로 살아왔던 죄도 함께 회개합니다. 이 시간 이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예수님의 피로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부처 불교를 섬길 때에 불러들인, 떠돌이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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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7 쾌락 유흥의 영 쓴 뿌리 회기기도문.pdf

2023-02-17 쾌락 유흥의 영 쓴 뿌리 회기기도문.pptx

 

2023-02-03(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10) 두려움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욥3:25~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kW_a41tvSo [또는 https://tv.naver.com/v/32964183]

 

1. 들어가며

  두려움이란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갑자기 공포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포는 절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결단코 '두려움의 영'을 주시지 않는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딤후1:7). 디모데후서 1:7의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며, 두려움의 정체는 바로 악한 영이라는 것이다. 영물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역사하면 사람은 주눅이 들게 되고 위축되며, 심장이 떨리고 쪼그라들며, 등에서는 식은 땀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자신감 있게 진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실패하는 일이 많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두려움의 영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과연 두려움의 영은 어떻게 해서 내게 들어오게 되는 것인지, 또한 그 영들은 내 몸 어디에 달라붙어 있게 되는지, 그리고 이 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두려움의 영이란 어떤 것인가?

  사람은 살면서 여러 가지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이 두려움 때문에 일상생활을 하기 어렵거나 혹은 두려움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알고 보면 이러한 두려움은 거의 다 두려움을 주는 영이 역사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의 영이 내게 역사하여 나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특히 나와 내 조상들이 미신 잡신을 많이 섬길 때에 두려움의 영이 내게 들어온다. 왜냐하면 사람이 미신 잡신을 섬기게 되면 두려움의 영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먼저는 불안 초조의 영이 들어온다. 그리고 더 진전되면 두려움의 영이 치고 들어온다. 그럼, 왜 미신 잡신을 섬기게 될 때 불안 초조의 영과 두려움의 영이 치고 들어오는 것인가? 그것은 미신 잡신을 섬기는 이유가 본래 불안한 마음 때문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늘 불안해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의지하려 하는데, 삼라만상 모든 것에 신적 존재가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삶을 주관한다고 믿는 미신적인 생각이 점점 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나 자신의 조상들 중에 미신 잡신을 많이 섬긴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신의 자손 중에 불안 초초 장애를 겪고 있거나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원천인 두려움의 영을 제거한 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지나갈수록 더 불어나서 자기 후손에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움의 영의 쓴 뿌리를 제거하려면 반드시 미신 잡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3. 무엇이 과연 사람을 두렵게 하는가?

  모든 사람은 아담의 범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상태에 놓여 있기에 항상 불안한 마음이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공격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덴동산 안에 살 때에는 어디에도 아담과 하와를 해칠 존재가 없었다. 다 아담과 하와의 통제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 이후 아담과 하와는 평안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에덴동산을 떠나 아무도 그를 보호해 주지 않는 공간으로 나가서 살아야 했다. 결국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인간에게 불안함을 안겨주기 시작한 것이고 공포심을 안겨준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로 사람들은 보통 어떤 환경에 있을 때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가? 그것은 보통 다음과 같은 4가지 상황이다. 

  첫째,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소중하게 지켜온 것인데 어느 날 그것들을 갑자기 잃어버릴 것 같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실에 대한 두려움 중에 가장 큰 것은 역시 자신의 '건강'이다. 자신의 건강을 어느 날 잃어버리고 병이 들어 암병이나 불치병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 곧 부모와 자식, 형제와 배우자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도 항상 있다. 또한 자신의 소중한 직업이나 집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과 두려움도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고스란히 욥기서에 나오는데, 욥은 먼저 자신의 재산을 잃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자녀와 아내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건강마저 잃어버렸다. 그러자 욥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공포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욥3:25~26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26 나에게는 평온(평안)도 없고 안일(잠잠함)도 없고 휴식(편안)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둘째,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인류가 맞이해야 할 일종의 숙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죽음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죽음은 부활생명으로 들어가는 통로로서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관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기를 두려워한다(히2:14). 왜냐하면 죽음은 모든 것을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자신의 육체의 기관 중에서 부신이 고장나서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음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부신에서는 부신피질 호르몬을 분비하여 생존에 대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이 부족하게 되면 사람은 쉽게 공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주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은 병원에 가서 반드시 피검사를 통해 자신의 부신피질 호르몬이 정상 수치인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사도 바울도 바다에서 광풍을 만나 14일간 해도 보지 못하고 별도 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자 바울도 두려움을 느꼈다(행27:24).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일종의 운명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에도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다. 악한 영들이 가져다 주는 공포감은 모든 것을 주저 앉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두려움의 영이 우리를 공격하면 몸이 굳어져 우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또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기도하다가도 등꼴이 오싹해지면서 뒷머리카락이 서는 일이 있다. 왜 그런가? 공포감을 주는 영이 등골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귀신들이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범죄 사실 때문이다. 사람이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귀신이 그를 어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아까 말씀드렸지만 미신 잡신을 많이 섬긴 조상이 있다든지 혹은 자신이 그렇게 했을 때에 불안 초조의 영과 두려움의 영이 달라붙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공포감을 느낀다. 그러나 귀신은 피조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들은 영원한 패배자라는 것을 우리는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면 이들은 우리에게서 어떠한 권세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넷째, 사람은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평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이나 일에 있어서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새해가 시작되면 일년운세를 보고 토정비결을 보며 한 해의 운세에 대해 점을 친다. 왜냐하면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미신 잡신을 섬길 때에 들어온 '실패하게 하는 영'과 무당과 점쟁이를 섬길 때에 들어온' 망하게 하는 영'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영적 기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다. 그리고 자신이 실패하고 망하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평판에 대한 두려움도 동시에 갖는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소가 자신에게 쏟아지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고 걱정하다가 불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중에 급기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고로 두려움은 근심 걱정의 영과 불안 초조의 영들과 함께 역사한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4. 두려움의 영은 어디에 달라붙는가?

  사람에게서 두려움의 영이 나가는 것을 보면 항상 내 몸 뒤에서 나간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영이 달라붙을 때에는 나의 등골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말을 종종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많아지면 심장의 뒷편까지 파고 들어간다. 그러므로 등골에서 심장 뒤편까지 두려움의 영이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심장이 자꾸 떨리거나 쪼그라들어 숨을 잘 쉬지 못한다. 또는 심장을 빨리 뛰게 하여 혈압을 상승시킨다. 그러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의 영은 몰래 자신의 등 뒤로 와서 자리를 잡기 때문이다. 

 

5. 어떻게 하면 두려움의 영을 제거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때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는가? 그것에는 내가 두려움을 갖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고 또한 내게 두려움을 안겨다 주는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제거하는 것도 있다.

  첫째,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선포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두려움 자체를 느끼지 않고, 두려움 속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죽는 그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며, 언제나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두려움이 몰려오는 순간에 입술로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은 보통 사명자들(수1:5)과 선지자들(사41:10)에게 주신 말씀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다 지켜 주시지만 특히 사명자들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살 때에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졌다는 것은 여간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사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둘째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거듭난 성도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엄청난 위로와 평강을 준다. 왜냐하면 거듭난 모든 성도들을 우리 주님께서 지켜 주시되 악한 자가 우리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며(요일5:18), 그것도 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마28:19~20). 그리고 우리를 지켜 주실 주님은 세상에 있는 악한 마귀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요일4:4). 

요일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셋째로, 성령께서도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를 떠나지 않는 한 악한 자는 나를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둘째, 두려움이 몰려 올 때마다 주님께 자신을 지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주님, 이 시간 나를 생명싸개로 지켜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 우리를 지켜 주신다(시34:5~6). 그리고 생명싸개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삼상25:29). 다윗은 그와 같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들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34:6~7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셋째, 악한 영이 두려움을 주었을 때에는 두려움을 주는 영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느낄 때 즉시 십자가 세우기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지금 내게 두려움을 주는 모든 영들과 십자가 세운다". 이것을 한 20번 정도 선포하라. 그러면 평안이 즉시 찾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십자가에서 무장해제 당했기 때문이다(골2:15). 

 

6. 나오며

  성경 66권의 말씀을 살펴보면,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무려 80번 이상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러한 말씀을 주신 자들을 보면, 보통 구약시대에는 족장이나 민족의 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나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기드온에게, 여러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신약에 들어와서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베드로에게 그리고 바울과 사도 요한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은 다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환경보다 하나님을 더 굳게 믿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역을 마치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을 그들은 믿었던 것이다. 특히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거듭난 모든 이들을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음을 알라(요일5:18). 우리는 과연 무엇을 믿을 것인가? 약속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내게 두려움을 주는 환경과 두려움의 영들을 더 믿을 것인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새보다 귀하고, 온 천하보다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118:6~7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2023년 02월 03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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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두려움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제가 죽는 날까지 나를 변함없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나의 앞 길을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채, 내 주변의 것들을 두려워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으며, 내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나를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씀을 의심하고 믿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삶에 대한 근심 걱정에 시달리게 되었고 때로는 낙심하고 좌절하며 하나님을 의심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두려워야 할 대상은 진정 오직 한 분 하나님 곧 우리의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뿐이신데, 정작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두려워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까 봐 늘 두려움에 빠져 살았습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건강도 잃어버려 병들어 다른 사람의 신세를 질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부모 형제자매와 자녀 배우자 등 내 가족을 잃어버릴까 봐 불안해했습니다. 심지어 내가 가지고 있는 집이나 직업까지도 잃어버릴까 봐 늘 걱정하고 근심하며 살았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또한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부활 생명을 힘입어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공포를 주체하지 못한 채 떨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이 아무리 능력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나를 주장하도록 내가 허용하지 않는 한, 그들은 결코 내 생명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나에게 공포를 심어줄 때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명령에 고분고분 듣기도 했습니다. 귀신은 한낱 피조물로서 이미 십자가에서 실패한 것들이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대적한다면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낱 피조물을 전능한 창조주보다 더 두려워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저는 또한 사람들의 눈치를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행하는 일에 실패하면 저들이 나를 손가락질하지 않을까 혹은 나를 왕따시키지는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여 소신있게 말하지 못했고 늘 남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주께서 나와 동행하심으로 나를 해칠 존재는 결코 없다는 것을 믿지 못해 두려워하였습니다. 주여, 그동안 상실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귀신의 공격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사람들의 비난과 조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이 시간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 불신앙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 불러들인, 두려움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

 

2) 무당 점쟁이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을 섬김으로 두려움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내 앞길이 불안해 좌불안석(坐不安席)일 때면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럴수록 무당은 내 속에 두려움의 영을 심어 넣어준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갔고 의지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도 자신의 아랫 귀신들을 통해 나의 과거 정보를 파악해 낼 수 있지만, 우리의 미래는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내 앞길을 그들에게 맡긴 죄를 회개합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들이지만, 그들도 자신이 내뱉은 말이 그대로 이뤄지도록, 자신의 부하 귀신을 보내, 무당이 한 말이 그대로 이뤄지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들과 교제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깨어지고 귀신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보다 무당 점쟁이의 말을 더 믿고 신뢰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하여 두려움의 영을 날마다 내 몸에 달라붙게 하여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이 시간 용서해 주시옵소서.

무당 점쟁이를 섬겨 불러들인, 두려움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

 

3) 미신 잡신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미신 잡신을 섬김으로 두려움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주관하에 일어나는데도,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은 채, 관상 보고 사주팔자 보고, 손금 보고 반지점을 치며, 해와 달과 별들의 피조물에게 소원을 빌며 살아왔습니다. 진실로 회개합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귀신들이 있어서 우리의 인생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 인생이 실패하게 되는 것은 미신 잡신을 섬김으로 들어온 실패하게 하는 영과 망하게 하는 영 때문인데도 불구하고, 미신과 잡신을 섬기는 나의 정성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고민하면서, 더욱 더 미신 잡신을 의지하려 했던 죄를 회개합니다. 그럴수록 악한 영들은 내게 불안한 마음과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었고, 두려움의 영들을 내 등골에 꽉 달라붙게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면, 무슨 일이든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도와주시는데도 불구하고, 귀신의 힘을 힘입어 성공하려 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결코 귀신을 의지하지 하겠습니다. 무당과 점쟁이를 찾아가지도 않겠습니다. 내 생명은 주님께 속해 있기에 그 어떤 존재도 건드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가 실패하고 망하는 것은 실패하게 하는 영과 망하게 하는 영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인정합니다. 주님께 간구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내게 지혜를 주시고 용기와 희망을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믿습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죽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믿습니다. 이제는 강하고 담대하여 주님이 나와 내 가정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이루며 살아가겠습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미신 잡신을 섬겨 불러들인, 두려움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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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7(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09) 조급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잠언21:4~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CZC6sr0VTc [또는 https://tv.naver.com/v/32764047]

 

1. 들어가며

  조급의 영이란 대체 어떤 쓴 뿌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런데 잠언 기자는 사람이 조급하면 궁핍함에 이른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잠21:5). 그렇다면 조급한 것과 가난하게 되는 것은 대체 어떤 상관이 있는 것인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조급해지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사실 '조급'이라는 말은 참을성이 없이 몹시 급한 것을 가리키는 단어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마음을 졸이다가 서둘러 일을 결정해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조급의 영이 많은 사람은 성급하게 판단하고 성급하게 결정해 버리기 일쑤다. 그러고 나서는 곧장 후회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무 성급한 결정으로 손해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그르쳤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참지 못하는 급한 마음은 반드시 우리가 통제해야 할 성질이자 성품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 때문인가? 어떻게 하면 조급한 마음을 조절할 수 있으며, 이것이 가져다주는 최종 결과로서 가난은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은 조급의 영 쓴 뿌리에 대해서 알아보고, 왜 우리가 조급해지며 또한 조급하게 결정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성경적인 사례를 들어서 한 번 살펴보고, 조급의 영을 물리치는 방법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이 조급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말이나 일에 대해서 참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결정해 버리고는 후회하는 사람이 참 많이들 있다. 그러한 일이 한두 번만 있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한 일이 늘 반복되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실패와 좌절 뿐이요, 물질로는 가난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길을 방해하는 가장 나쁜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조급한 성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재촉하는 습관이 너무 강하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때에 맞춰 말과 일을 잘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급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지금은 씨를 뿌릴 때인데 성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거두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조급하게 거두겠다고 해서 다 거두워지는 것이 아니다. 씨를 뿌려 놓지도 않았으면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둑의 심보다. 뿌려 놓은 것이 없는데 어디 가서 거둔다는 말인가? 남들이 이래서 성공했고 저래서 성공했다고 자랑하면 자기도 성공하고픈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어서 빨리 서둘러서 일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성공하고 있는 사람은 과거 누군가 특히 자신의 가족 중 조상들이 뿌려 놓은 씨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상들 중에 남의 것을 빼앗기만 했을 뿐 나눠주고 베풀어 준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지금 거둔다고 말하는 것인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말했다. "사람이 무엇이든 심든지(씨를 뿌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그렇다. 심었어야 추수할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거두게 하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때가 되어야 한다. 거둘 때가 되어야 한다. 거둘 때가 되지 않았는데 거두려고 아무리 애써 봤자 거둘 수 있는 것은 있지 않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할 여자의 후손 곧 메시야를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과연 언제 메시야가 이 땅에 태어났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약속하신 이후 약 4천 년이 지난 때였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때가 찼다"고 말했다(갈4:4). 그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그렇다. 다 때가 있는 것이다. 거둘 때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씨를 뿌려 놓았어도 그 식물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고 씨를 뿌리지만 또한 오래 참는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야 추수할 때가 오는 것이다. 씨를 뿌리고 자라서 열매맺도록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추수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3. 사람이 조급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조급하여 성급하게 결정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의 성품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고, 또한 다른 요인 곧 외부적인 요인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자기 자신의 성품에서 조급의 원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너무 빨리 어떤 업적(성공)을 남기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다. 사람은 저마다 성공하고픈 욕심들이 있다. 그래서 어서 성공해서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떤 일을 시작하여 그것을 성취하기까지는 과정이 있다.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군가 씨를 뿌려 놓은 것이 있었어야 내가 거둘 때도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의 욕심을 부리기 전에 먼저 나와 내 조상들은 과연 무엇을 얼마나 뿌려 놓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급선무다.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은 씨 뿌릴 때인 것이지 거둘 때가 아닌 것이다. 성공하고픈 욕심을 우선 내려놓으라. 그리고 지금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라. 

  둘째, 외부적인 요인에서 조급의 원인을 찾는다면, 그것은 세대와 가문에 있는 조급의 영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언젠가 거두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심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거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추수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나의 추수를 방해하는 세력이 진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력들이 없다면 지금 추수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추수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추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조급의 영들이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성급하게 결정하게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도록 막아버린다. 그러니 마음은 앞서지만 해 놓은 것들은 없게 된다. 다 악한 영들의 방해 공작 때문이다. 이러한 영들은 내 윗대 조상 1~4대에 있었던 영들(세대의 영들)과 그 윗대 5대에서 10대에 역사했던 영들(가문의 영들)이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급해지지 않으려면 반드시 조급의 영을 우리에게서 제거해야 한다. 이 영을 제거하지 않는 한 우리가 결실의 축복을 맺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 성경에서 조급하여 실패한 사람과 씨 뿌리고 기다려서 성공한 사람의 예는 있는가?

  조급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다 얻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옳다면 조급한 사람들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아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 것이다.

  먼저, 조급해서 실패한 사람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예를 들어, 아브라함과 같은 경우는 조급해서 실패한 사례에 해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분명히 하늘과 별들처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가 성급한 나머지 그만 하나님의 때가 더 뒤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그랬다. 시간이 흘러가도 아들이 생기지 않자 아브라함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자신의 조카 롯을 양자 삼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다메섹의 종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도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자 고육지책으로 아브라함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아내의 몸종이었던 애굽여인 하갈을 취하여 아들을 낳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들을 얻기는 얻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 그를 보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의 때가 뒤로 13년이나 더 밀쳐진 것이다. 그가 조급해서 일을 그르쳤던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서 성공한 사례를 살펴보자. 그러한 예로서는 다윗의 경우가 있다. 다윗은 15살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세우시겠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다윗이 그때로부터 왕이 되기까지는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그때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선왕 사울을 죽이려고 안달이 나 있었는가? 아니었다. 무려 10년 동안 사울에게 쫓겨 다녔지만 그는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두 번씩이나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도 주어졌지만 다윗은 직접 사울왕을 제거하지 않았다. 때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블레셋을 통해 사울을 제거하시고, 자연스럽게 백성들이 다윗을 왕으로 추대하게 하셨다. 그렇다. 다윗은 선한 일로 씨를 뿌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쓰실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러므로 마침내 다윗은 전무후무한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5. 조급의 영들은 어디에 붙어 있는가?

  사실 조급의 영들은 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대부분 내 주위 2m 안에 무수한 영들이 있다. 그 영들 중에 조급의 영들도 있다. 조상들 중 조급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면 당연지사 조급의 영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 조급의 영들이 있다. 그러면 그러한 조급의 영들의 우산 아래 살고 있는 후손들은 조급해진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조급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적인 성공 욕심에 빠질 때에 조급의 영들이 바로 그 사람에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게 들어온 조급의 영은 주로 어디에 붙어 있는가?

  첫째, 조급의 영들은 주로 손과 발에 붙어 있다. 조급의 영들이 손에 붙어 있으면 이 사람은 거두지를 못한다. 조급의 영들이 거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급의 영들이 많은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이러한 영들이 지속적으로 성공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발에도 붙어 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 사업을 확장할 수 없고, 더 넓혀 나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자식의 길도 늘 막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급의 영이 발에 붙어 있어서 전진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 다음으로 많지는 않아도 조급의 영들은 머리와 가슴에도 붙어 있다. 만약 조급의 영이 머리에 달라붙게 되면 그때에는 혈기 분노의 영과 합작을 하여, 싸움 다툼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조급의 영들이 가슴에 달라붙게 되면 그때에는 불안 초초의 영으로서 활동한다.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 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드는가? 그것은 조급의 영이 자신의 가슴에서 지금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들을 제거해야 모든 일을 침착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죄를 지을 때에 조급의 영이 손과 발에 달라붙게 되는가? 그것은 미신 잡신을 섬길 때에 그렇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그것이 나무가 되었든 돌이 되었든 혹은 집이 되었든 땅이 되었든 상관없이 거기에 신이 있다고 믿고 그것에다가 절하고 빌고 일정한 것을 바치게 되면 거기에서 악한 영들이 역사한다. 이때 내게 달라붙은 영들을 가리켜, 미신 잡신의 영이라고 하는데, 그때 우리가 손으로 자꾸 빌기 때문에 손에 달라붙고,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서 신을 찾고 빌기 때문에 역시 다리에도 달라붙는다. 그런데 그 중에는 조급의 영들도 많이 감긴다. 이 영들 때문에 사업도 안 되고 일도 성사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열심히 수고하기 전에 먼저 이러한 영들을 제거해야 한다. 

 

6. 조급의 영들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

  조급의 영들은 내가 죄를 짓고 불러들여 내 몸에 있는 경우도 있고, 내 조상들로 인하여 내 몸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동작전으로 이것들을 내 몸에서 제거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영들이 내 몸속에 들어오지 않게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 보라.

  첫째, 성공하겠다는 욕심을 우선 내려놓고 지금은 내가 심을 때인가 아니면 거둘 때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은 것이 없다면 아무리 거두려고 한다 할지라도 거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이 만약 심을 때라면 먼저 심기를 선택하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거두는 것은 사실 때가 되면 신호가 온다. 그러나 심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기도로 심으라. 물질로 심으라. 구제로 심으라. 헌신함으로 심으라. 그러면 반드시 거둘 때가 올 것이다. 

  셋째, 그러나 이미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조급의 영을 제거하려면 조급하게 말하고 행동했던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 세우기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영권이 있는 자는 손과 발, 머리와 가슴에 붙어 있는 조급의 영들을 토막치기 하기를 바란다. 십자가 세우기는 본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방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토막치기는 영권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회개에 집중하여 십자가 세우기를 통해 악한 영을 제거하기를 바란다. 

 

7. 나오며

  조급해져서 일을 성급히 진행시킨다고 해서 다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둘 수 있는 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둑의 심보요, 그것은 결국 마귀의 속성을 닮아가는 일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남들이 거둔다고 해서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은 역시 때가 찬 것이다. 조상들 중에 누군가가 심어 놓은 것을 그의 후손이 지금 거두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사실 자신이 거두는 것에 대해서 자랑할 만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가? 사실 예수님을 믿고 열정이 있는 사람은 다들 부지런히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자신의 시대에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성공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뿌려 놓은 것이 적다면 거두는 것도 역시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거둠을 방해하고 전진을 방해하는 조급의 영들은 더 많이 내 주변과 내 몸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씨 뿌리는 일을 하는 것이요 동시에 거둠을 방해하고 전진을 방해하는 조급의 영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래야 우리도 풍성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급의 영이 있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일평생 수고하지만 거두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악한 영들이 계속해서 거둠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급했던 마음을 먼저 내려놓고 조상들로 물려받은 조급의 영을 제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결과를 자신이 직접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내 자식과 손자 때에 거두는 것이 생겨질 것이다. 

   

 

2023년 01월 2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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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조급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적인 성공욕에 빠져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성취하려는 욕심에 조급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는 법인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한 채 내 마음만 늘 바빴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과 내 계획대로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제가 앞섰습니다. 하나님께는 내 뜻을 따라와 주기를 바랐습니다.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신 것인데, 시기는 항상 내가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혈기와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혈기와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서 폭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성급하게 판단하고 조급하게 행동한 나머지, 일을 그르쳤습니다. 제멋대로 조급하게 결정하여 다른 사람들과 늘 다툼이 생겼고 원수맺는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누를 끼쳤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려 4천 년까지도 기다리셨는데, 저는 일 년도 아니 몇 달도 기다리지 못하고 안절부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참고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이루려는 욕심에 일을 그르친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세상적인 욕심 때문에 조급해 했습니다. 남들이 이렇게 이루었다 저렇게 이루었다고 하고 자랑하면 부화가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나도 빨리 성공하여 남 보란듯이 일궈낸 일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급해졌습니다. 주님의 때가 있는데도 시간이 급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제 욕심을 속히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그르쳤습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제가 거두려고 했던 것입니다. 남들이 현재 거두고 있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씨를 뿌려 놓았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거두려고만 했습니다. 조급하고 성급한 마음만 앞섰습니다. 일찍 성공하고픈 욕심에 남들과 경쟁하다가 일이 잘 되지 않으면 낙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좌절할 때가 많았고 때로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을 건지시기 위해 그토록 오래 참고 기다려 주셨는데, 나는 오래 참고 기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모든 일들은 전부 다 심은 후에 인내함으로 결실하는 것인데 저는 심지도 못했고 인내하지도 못했습니다. 주님, 세상적인 욕심에 빠져 일찍 성공하려다가 일을 그르친 죄를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스스로 세상적 성공 욕심에 빠져 불러들인, 조급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미신 잡신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미신 잡신을 섬김으로 조급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온갖 미신과 잡신을 섬김으로 손과 발에 조급의 영이 달라붙게 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고 나의 가슴에도 불안 초조의 영이 달라붙게 한 죄를 회개합니다. 미신 잡신을 섬기면, 내 손이 미신 잡신의 영에 묶여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미신 잡신에게 묶이면 아무리 노력하고 부지런히 살아도 가난에서 못 벗어난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미신 잡신을 섬긴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들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미신 잡신 영들을 떨쳐 버려야 하는데, 열심히만 살면 다 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또한 미신 잡신을 섬기면, 내 발이 미신 잡신의 영에게 묶여서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영들 때문에 발전이 더뎠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미신 잡신의 영이 나의 성공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들은 나에게 조바심만 안겨 주었을 뿐 아무 것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은 한사코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나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요 회개만이 이것에 대한 돌파구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나의 성공과 발전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손과 발에 붙어 있는 조급의 영을 떼어내지 못한 죄를 회개합니다. 오로지 성공의 욕심만을 이루기 위해 살다가 일을 그르친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하여 내 자손 3~4대까지 저주를 물려주고 있었습니다. 회개합니다. 이 시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그 때를 준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거두기 전에 먼저 심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알지 못한 채 내 욕심을 부린 죄를 회개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조급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도 않은 채, 제가 심고 제가 곧바로 거두려했던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 미신 잡신의 죄를 진실로 회개하오니 조급의 영과 불안 초조의 영이 떠나가게 하옵소서. 미신 잡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손과 발에 붙어있는 거둠 방해의 영과 전진 방해의 영을 제거해 주시옵소서. 주님, 지금까지 미신 잡신을 섬겨 어리석게 살아온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미신 잡신을 섬겨 불러들인, 조급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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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7 조급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pptx

2023-01-27 조급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pdf

2023-01-20(금) 금요기도회

제목: 쓴 뿌리 제거(08)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가(시27:1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HfCHyYbrwQ [또는 https://tv.naver.com/v/32646965]

 

1. 들어가며

   사람 몸에 있는 쓴 뿌리 가운데 가장 안 좋은 쓴 뿌리(악한 영)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거절의 영'일 것이다. 왜냐하면 거절의 영은 자기를 계속적으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남들도 파괴하는 무서운 영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있으면 결국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든지 타인을 학대한다든지 아니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때문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아니 말할 수 없다. 거절의 영 쓴 뿌리를 가진 이가 교회 안에서 활동하면 교회는 늘 다투고 싸우고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일생을 두고 사람을 파괴하기 때문에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는 대체 어떻게 해서 사람 안에 생기는 것인가? 그리고 거절의 영 쓴 뿌리는 대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쓴 뿌리는 과연 사람의 몸의 어디에 붙어 있어서 역사하고 있는가? 오늘은 거절의 영 쓴 뿌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2.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거절의 영 쓴 뿌리란 어떤 것인가?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악한 영들로서 사람 몸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 가운데에서 사람에게 거절감을 가져다주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 이 쓴 뿌리는 주로 사람의 가슴과 머리에 박혀 있든지 그것들을 감고 있다. 그리고 그 실제 모양은 뱀이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부터 들어오기 시작한 것으로서, 사람을 무지하게 피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하나님과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거절당했고, 버림당했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상대방으로부터 의미 있고 중요한 존재라고 인정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거절감을 느끼게 된다. 고로 거절의 영이란 거절감을 깊이 느끼게 하는 영이라고 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거절의 영에 붙잡히게 되면 그것이 안으로 역사했을 때에는 자기를 학대하게 된다. 그래서 자기 슬픔에 빠지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우울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이 밖으로 역사했을 때에는 남들을 학대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 고집과 완고함으로 적개심과 원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대로 우월감과 경쟁심 그리고 지배욕과 소유욕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공부 중독에 빠지는 이도 있고 일중독에 빠지는 이도 있다. 이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의 과다한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3.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떻게 사람 속에 자리잡게 되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 때문에 발생하여 자리잡는다.

  첫째는 자신이 잉태될 때부터 혹은 출산 후 부모로부터 냉대를 받거나 소외를 당할 때에 생겨난다. 고로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릴 적 받은 상처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이가 엄마의 태중에 임신되었을 때, 임신한 아이를 낙태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부모가 의논하는 것을 태중의 아이가 들을 때부터 거절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혹은 태어난 아기가 부모가 원치 않은 아이여서 내버려진다거나 부모로부터 냉대와 소외를 당할 때에 거절감이 밀려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통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아이가 더 냉대와 소외를 받으며, 첫째보다는 둘째가 훨씬 더 소외를 받게 된다. 

  둘째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서,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이 태아 속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어렸을 적에 냉대와 소외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이 역사하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게 되며 쉽게 상처를 받게 된다. 사실 부모로부터 거절을 당한 아이의 경우, 보통 자신의 부모도 역시 윗대에서 거절을 당했기 때문에 거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 집안에 거절의 영이 계속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셋째, 국가적으로 볼 때 신분적인 차별로 인하여 생겨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자기의 조상들이 양반이라는 신분과 권력 남용으로 아랫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학대를 했을 때에 거절의 영이 활동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신분에 있어서 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유교 사상이 전래되면서 달라졌다.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여 양반과 상놈이라는 뚜렷한 신분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역시 거절의 영이 차고 넘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신분적인 차별이나 성적인 차별이 점차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잘 살게 된 것이다. 

 

4.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자신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쉽게 상처를 받고 쉽게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남들은 그러한 말을 들었을 때에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지만 자신은 그 말을 들을 때에 가슴에 깊은 상처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들은 예배를 드릴 때에도 설교 말씀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것은 나를 치는 말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에 집중하다 보면 온통 자신을 치는 설교로 들리기 때문에 상처를 안 받으려고 설교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조는 경우가 많다. 

  둘째, 잘 보이려고 하고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거절감을 많이 느끼는 분들은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고 칭찬해 주지 않으면 자신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쓴다. 칭찬을 듣기 위해 눈에 보이는 일에 힘을 쓴다. 어떤 성도는 목사님께 인정받기 위해 헌금도 지나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거나 띄워 주지 않으면 쉽게 시험에 든다. 그러므로 교회도 오래 다니지 못한다. 2~3년이면 교회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교회를 옮기는 것이다. 내가 교회를 버린 것이지 교회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셋째, 거절을 못하고 남에게 부탁하지 못하면서 일생을 쩔쩔매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들어주려고 애를 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부탁을 거절하면 그가 나를 버릴까 봐 염려되기 때문에 남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남에게 부탁하지도 못한다. 내가 부탁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상대적으로 거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인생이 심히 고단하다. 사실 남이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아니한 것은 시간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해서인데 정작 나 자신은 그가 나를 거부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중한 일 때문에 쉬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 일은 전혀 하지도 못한 채 남의 일 봐주다가 그만 지쳐 쓰러지기도 한다. 

 

5. 거절의 영 쓴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 쓴 뿌리를 내 몸과 환경에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나를 소외시키고 나에게 거절감을 안겨 주었던 이들을 용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있는 거절의 영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를 소외시키고 냉대했던 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결코 거절의 영이 내게서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방을 용서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팁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도 그때에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사실은 나를 소외시키고 나에게 거절감을 안겨 주었던 그이도 역시 대부분 거절의 영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거절을 못하고 거절감에 쌓여 있는 이유가 조상적부터 거절의 영이 내려와서 내게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사실 거절의 영을 가진 자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지, 자신은 거절을 당해 보지도 아니한 자가 남에게 일부러 상처를 주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대부분 자신에게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거절감을 안겨 주는 것이다. 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조상들로부터 있는 거절의 영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거절감을 유난히도 많이 느끼며 사는 자는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셋째, 혹시 나를 낳아 준 부모는 나를 버릴 수 있을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시27:10).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27:10)" 그렇다. 혹시 내 부모는 나를 남겨두고 떠날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거두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영혼을 보내실 때에 지옥에 가도록 예정해 놓고 보내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비유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몹쓸 짓을 하고 떠나갔지만 아버지는 결코 둘째 아들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의 어떤 잘못도 추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지위와 특권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이것이 아버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소외당하는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혹시 나를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 뿐이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걱정 근심과 의심은 다 사라질 것이다. 

  넷째, 회개하고서 거절의 영과 십자가를 세우고 거절의 영을 쫓아내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은 채 거절의 영을 꾸짖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다. 자신이 용서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시인하고, 거절의 영을 받아들였음을 회개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고 나서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우기를 하라. 그리고 권위 있는 사역자들에게 축사를 받으라. 그럴수록 나의 마음에 평강이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간단한 청원을 해서 상대방도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해 보라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싫어해서도 아니며, 그들이 나를 거부한 것도 아니라, 그들이 시간이 없고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간단한 부탁을 하되, "할 수 있으면 나를 좀 도와줄래?"라고 부탁을 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도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보라. 

 

6. 거절의 영은 주로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가? 

  그렇다면 거절의 영은 주로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가? 가장 많이 달라붙어 있는 곳은 '가슴'이다. 심장에 많이 붙어 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절의 영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의 심장을 영안으로 보면 거기에 칼이 박혀 있고 도끼가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머리'다. 즉 뇌속에 거절의 영이 달라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우리 뇌속에 좌절감을 계속해서 주입시키고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흥분하게 하거나 혹은 우울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세우기를 할 때에는 심장과 뇌속에 있는 영을 생각하면서 그것들과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손과 발에 달라붙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영들이 역사하면 상대방이 시키는 일을 거절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7. 나오며

  거절의 영 쓴 뿌리는 아주 악한 것이다. 나를 파괴하고 남들도 파괴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절의 영 쓴 뿌리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쓴 뿌리들 중의 쓴 뿌리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것이 없어져야만이 마음에 평강이 임한다. 삶에 여유도 생긴다. 이것이 없어져야 말 한 마디라도 푸근히 할 수 있다.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자살하겠다고 말하여 가족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혹시 우리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시27:10). 부모가 나를 학대했던 것은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도 거절의 영의 피해자라는 것을 알라.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거절의 영이 그렇게 나를 느끼게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또한 거절의 영 쓴 뿌리가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도 진정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러한 외로움이 어느 날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그 귀한 목숨을 아낌없이 버리셨다는 것이 가슴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주님을 만난 것이 제일 큰 기쁨이요 행복이다. 내가 주님을 버리지 않는 한 주님은 끝까지 나를 붙들어 나를 저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사랑을 믿으라. 그리고 우리 몸에 역사하고 있는 거절의 영을 제거하라. 그러면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주께 쓰임받게 될 것이다. 

 

2023년 01월 2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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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의 영 쓴 뿌리 회개기도문]

8. ‘거절의 영’을 불러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1) 스스로 거절감에 쌓여 상처받으며 살아온 죄

“하나님, 저는 어렸을 적에 거절감으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거절은 하나님 안에서 얼마든지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스스로 상처 안에 머물며 살아왔습니다. 태중에 있을 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임신하지 않았어야 할 아이였다는 말을 은연중 들었으며, 태어나서는 부모에게서 원하지 않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실의에 빠지고 낙심에 빠졌습니다. 스스로 열등의식 속에 나를 잡아매었습니다. 때로는 나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미웠기에 나 자신을 비롯하여 나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다 증오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이 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고 내 머리까지 상하게 한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사실 그 상황에서는 부모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거절하고 학대한 부모님과 가족을 용서하지 않은 채, 미워하고 증오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이 시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는 거절감 때문에 일평생을 거절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도 남이 거절할까 봐 그들에게 부탁하지도 못했으며, 거꾸로 남이 나에게 부탁할 때에는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애썼습니다. 상대방은 사실 시간이 없어서 못 들어준 것이고, 능력이 부족해서 못 들어준 것인데도, 나 자신을 거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은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모든 청을 들어주다 보니 인생이 참으로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하나님,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하나님, 부모와 형제들, 학교 선생님과 직장 상사, 친척과 친구들에게 환영받고 인정받으려고 때로는 공부에 전념해 보기도 했습니다. 일중독에 빠지기도 하였으며,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직장 상사와 권위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 보니, 늘 긴장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착한 척 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세상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자살해 버리겠다고 말하여 가족들을 겁에 질리게도 하였으며, 자해를 시도하여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생명은 주님의 소관인데 제가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생명을 주관하는 악독한 짓을 저질렀던 지난날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스스로 거절감에 쌓여 불러들인,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2) 무당의 죄

“하나님, 나와 내 조상들이 무당을 섬김으로 거절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무당들은 신내림을 받은 자들인데, 이들도 역시 자신을 찾아온 신에게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그리고 인정받으려고 스스로 굿하고 스스로 춤을 추고 살아왔던 자들입니다. 고로 무당에게는 거절의 영이 많이 붙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내가 무당의 집안에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거절의 영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적부터 인정받으려고 하고 칭찬받으려고 애썼던 모든 일들이 거절의 영들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주님, 이 시간 무당이 되고 무당을 열심히 섬긴 죄를 회개합니다. 그리하여 거절의 영을 받아들인 죄를 회개합니다. 그래서 늘 외롭게 살았고 힘들게 살아왔음을 회개합니다. 거절의 영을 쫓아야 거절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데, 악한 영들을 쫓아내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행여 내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판단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려고 하지만,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악한 영들이 중간에 막아서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내게 내려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나의 부모는 나를 버린다고 하여도 내 주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정말 몰랐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처럼, 내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나의 과거를 다 용서하시고 한걸음에 달려와 나를 맞아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나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혀 주시고, 내 손에 반지를 끼워 주시고, 벗은 발에 예쁜 신발을 신겨 주시고 큰 송아지도 잡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른 채 살아온 지난날의 잘못을 진실로 회개합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무당과 점쟁이를 섬겨 불러들인,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3) 국가와 민족의 죄

“하나님, 내 조상들이 양반이라는 신분과 권력 남용으로 아랫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에게 횡포를 저지르고 살아온 죄를 회개합니다. 그럴수록 그들의 후손에게는 거절의 영이 쌓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조상들이 죽게 되면 어느 날 자신의 후손들이 거절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산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제 우리 조상들을 대신하여 회개하오니, 국가와 민족이 저지른 악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나는 저를 거절하고 학대했던 모든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그들도 조상적부터 내려온 거절의 영에 대한 피해자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회개로 용서받고 있는 나 자신부터 달라지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를 언제나 귀하게 보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원상복구가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내가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칭찬과 환대에 목말라할 것이 아니라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며 살겠습니다. 거절감 때문에 스스로 낙심하고 좌절하고, 스트레스와 우울에 빠져 살아온 지난날의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양반 신분과 권력 남용으로 불러들인, 거절의 영과 십자가 세운다(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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