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아담성의] 회복, 그 진정한 뜻은 무엇인가(창1:26~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op6ncpmnWI [또는 https://tv.naver.com/v/32647022]

 

1. 들어가며

  이 시대는 마지막 시대다. 주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 마지막 시대에 사용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시대에 부여하신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감당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기업을 위해 지금 이 시대에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결해야 하고, 은혜를 나눠줄 줄 알아야 하며, 영적 수준을 높이는 자라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의 영적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기대하시는 것일까? 과연 우리가 온전히 회복이 된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복이란 어떤 것이며, 어느 정도의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며,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했던 아담은 어떤 수준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만물을 엿새 동안 창조하셨다. 그중에 인간은 맨 마지막날 해가 넘어갈 무렵에 창조하셨다. 그런데 사람의 창조는 다른 창조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육적인 피조물로만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영적인 피조물로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직 온 우주 가운데 사람만이 영을 가진 존재로서 영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이 가능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의 영적 수준은 어떠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그리스도를 모델로 해서 창조했기 때문이다(고후4:4, 골1:15). 즉 창조된 아담의 수준은 예수님 수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3.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인간의 수준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인 예수님 수준으로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은 어떤 뜻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그 수준을 헤아릴 수 있다.

  첫째, 아담은 하나님의 종류로 창조되었기에, 그 지혜와 능력이 무궁하다는 것이다(창1:26~28). 사실 모든 식물이나 동물들은 각기 자신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창1:24~25). 그런데 사람은 사람의 종류대로 창조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종류대로 창조되었다. 장차 인간이 천국에서 예수님처럼 살게 하려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과 지혜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육신을 입으셨던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나다나엘의 과거를 아시고, 베드로의 미래를 아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여인이 자신의 옷가를 만졌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모습도 속사람(영)이 육체보다 더 빛나는 상태로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으나 몸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둘째, 아담은 이 땅과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지배할 수 있는 왕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에 맨 마지막으로 창조된 고등 생명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셨다(창1:28). 그러므로 타락하기 전 아담은 모든 만물 위에 있는 왕적 존재였다. 모든 만물이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음성에 순종해야 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남의 나귀를 자신의 나귀처럼 가져다가 쓰실 수 있는 것과 같다. 사실 아담은 모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2:19~20). 아담이 그것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들은 자신의 왕이 누군지를 알아보았고 아담의 말에 순종했던 것이다. 만약 아담이 화가 나서 무화과를 저주했더라면 그때 무화과도 역시 뿌리채 말라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뱀에게 떠나가라고 명령하면 에덴동산에서 나가야 했을 것이다. 뱀은 아담이 다스릴 수 있는 권한 안에 있는 생명체였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특별했다. 육체적인 몸만 가진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의 몸과 그리고 영혼의 몸 즉 2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육의 눈으로는 자연 만물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영의 눈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빛처럼 볼 수 있었고, 천사도 사탄 마귀도 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도 볼 수 있었고 지옥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의 귀가 열려 있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창3:8,10). 그것은 타락 후에도 얼마까지는 계속해서 영의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이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하여 영의 눈은 점차 닫히게 되었고 육의 눈은 더 열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던 것이다. 

 

4.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영적인 감각과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되어서 이 엄청난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신 뒤에,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 하나를 창설하셨다. 그리고 그곳에 모든 종류의 나무들이 나게 하셨다. 그런데 동산의 한 중앙에는 생명나무를 두셨다. 그런데 그것과 가까운 곳에 선악과가 있었다. 그런데 생명나무는 특이한 나무였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생명수가 공급되어 자라고 있는 나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생명나무는 이 땅에 속한 나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적인 나무였던 것이다. 이 나무는 하늘에 있던 것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가져다 심어 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를 마시고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 생명나무를 에덴동산에 두신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아담이 그 열매를 따먹고 영생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담은 이 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짓고 말았다. 그러자 죄를 지은 상태에서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추방시키셨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전에 생명나무를 하늘로 올려가셨다. 그래서 지금 이 생명나무는 천국에 있다. 

  문제는 선악나무다. 선악의 지식의 나무는 어떤 나무였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나게 하신 평범한 나무였다. 하지만 마귀가 이 나무를 변조시켜 놓았다. 사탄 마귀는 원래 일반 나무의 열매에다가 자신의 악한 영들(뱀들)을 이용하여 선악나무의 열매로 만들었던 것이다. 보기에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비슷해 보였지만 뱀들이 그 나무의 열매들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아담과 하와가 이 열매를 먹게 된다면 평범한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 열매를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뱀들)을 먹게 되는 것이었다. 이는 마치 제사상에 올라 있는 음식을 먹게 되면 음식을 둘러싸고 있는 악한 영들을 같이 먹는 구조와 같다. 그런데 그만 하와가 먼저 뱀의 꾀임을 받아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말았고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도 주자 아담도 그것을 먹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속에 사악한 영들인 뱀들이 치고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영적인 감각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육의 눈은 더 밝게 열려지기 시작했다. 타락 직후에는 그래도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 충만히 있었으나 자손으로 내려갈수록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은 희미해져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영의 눈이 닫혀 있고 영의 귀가 막혀 있어서, 빛이신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동식물에 대한 지배권도 상실하여 자연 만물에게 무슨 명령을 한다 할지라도 자연 만물이 복종하는 것은 흔하지 않다. 그리고 귀신에게 명령해도 귀신이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다. 

 

5. 죄짓기 전의 아담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람이 죄짓기 전의 아담의 영성으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선악과를 통해서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첫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 악한 영들을 받아들였지만, 그 후에는 사람이 범죄할 때마다 뱀들이 몸속에 치고 들어오게 된 것이다(창3:14).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후 뱀에게 "너는 흙을 먹고 살리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흙은 '아파르'로서 사람의 몸의 재료에 해당한다(창2:7). 그러므로 뱀은 지금도 사람이 범죄하면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통해서 몸속에 들어온 영들과 자신의 범죄로 인해 또 불러들인 뱀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몸은 더럽혀진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로 인해 더럽혀진 몸을 예수님의 피로서 반드시 씻어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악한 영들을 몰아내어 내 몸을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을 믿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주가 끝나지 않고 있으며, 죄짓기 전의 아담의 영성으로 회복되지 아니한가? 그것은 우리 몸 안에 침투해 들어온 악한 영들을 내보내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구약시대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드리는 대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1년 동안 자신의 지은 죄가 다 용서될 수 있었겠는가? 만약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개인이 범죄했으면 개인은 반드시 속죄제사를 드려야 용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 얄팍한 사람이 있어서 자신의 개인 속죄제사는 한 번도 드리지 않고 1년에 한 번 속죄일 제사에 참여했다고 해서 자신의 죄를 다 용서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예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믿었다고 해서 자신의 모든 죄가 다 사함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인도 낱낱의 죄를 회개해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게 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회개생활을 등한히 여긴다. 이미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가 회개함으로 그 악한 영들을 내 몸에서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곧 충분한 회개만이 저주를 완전히 끝내고 죄짓기 전의 아담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고로 지금 내가 아담의 수준까지 회복되지 아니한 것은 아직 충분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결코 한꺼번에 내 몸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다. 이것 때문에 그것들이 우리 몸에 있어서 온갖 저주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병에 걸리기도 하고, 재물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내게 재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도 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온갖 사건 사고에 휘말리고 마는 것이다. 또한 내 앞길이 방해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것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충분히 회개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께서 대속죄일 제사를 드린 것으로 만족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들은 우리가 이것을 안다고 하여 순순히 그냥 나가지 않는다. 우리의 입술로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들까지도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들도 우리 몸에서 합법적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충분한 회개를 했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충분한 회개를 했다면 지금까지 내게 병을 주고 있는 귀신이 비로소 떠나갈 것이다. 그러면 병에서 곧바로 나을 것이다. 온갖 가난의 저주를 갖고 들어온 뱀들이 떠나가게 되니까,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귀신이 떠나가면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되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된다. 천사를 보고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돕는 천사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볼 수 있고, 귀신들을 보고서 쫓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에게 명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의 세계인 천국과 지옥도 수시로 눈을 뜨고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아울러 영의 귀도 열리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천사와도 대화가 가능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물을 말로서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무화과나무를 하루아침에 뿌리채 마르게 할 수 있고, 물 위를 걸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과거를 당겨서 볼 수도 있고, 현재의 영적 상태도 볼 수 있으며, 미래의 상태도 당겨서 볼 수 있다. 이것이 타락하기 전 아담의 영적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회복은 바로 이러한 회복, 곧 아담성으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2023년 01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10) 사도행전에 나타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행2:1~13)_2022-06-15(수)

https://youtu.be/1Ifr3WLQtHE  [혹은 https://tv.naver.com/v/27449919 ]

 

1.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오순절'이라는 절기는 어떤 절기이며, 그때 바치는 누룩넣은 떡 두 덩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7개 절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절기로는 유월절(1.14), 무교절(1.15~21), 초실절(1.16), 맥추절(3.5)(=칠칠절, 오순절), 나팔절(7.1), 속죄일(7.10), 초막절(7.15~21)(=장막절, 수장절)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절기는 사실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유월절과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농사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 수장절이 있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초막절은 원래 구원의 절기로 시작했으나, 밀 추수와 나무 실과(포도,무화과, 석류, 감람유, 대추야자)의 추수를 마친 후에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수장절'로서 농사를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중에서 '오순절'이라는 절기는 '칠칠절'이나 '맥추절'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초실절을 지킨 후 50일째(7*7=49일 이튿날) 되는 날에 맞이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다섯 '오(五)', 열흘 '순(旬)' 자를 써서 '오순절(五旬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절기는 보리의 첫 곡식을 거둔 초실절을 지키고 난 후 50일째 되는 날, 즉 보리 추수를 다 마치고 밀 추수를 시작하면서 드리는 절기다(레23:15~22). 그런데 이 절기 만큼은 좀 특별한 제사를 드린다. 그것은 보리떡 2개를 하나님께 요제를 드리게 되는데 이때에는 새 소제물로서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떡 두 덩이를 만들어 바치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룩'이란 원래 제사에는 절대 들어가면 안되는 것이지만, 오순절 만큼은 허용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룩은 원래 '부패'를 가져오는 것이므로 '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절기 때에는 누룩을 넣도록 허용했다는 말은 죄가 조금 들어 있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는 떡을 두 덩이로 만들어 새 소제물을 드렸다. 이 말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생기게 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유대인 믿는 이들(행2:1~4)과 이방인 믿는 이들(행10:34~48)로 구성될 것임을 말해 준다(고전10:17). 그래서 사도행전 5장을 읽어 보면, 성령을 받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만 성령을 속이다가 즉사하는 일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누룩을 좋게 해석하면, 우리 믿는 이들이 조금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성령세례를 부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때부터 일평생 자기에게 들어 있는 누룩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 오순절날 성령세례로 주어진 2가지 성령의 은사는 무엇인가?

  오순절날에 히브리파 유대인들만 모여 있었던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성령안에서 세례가 부어진 것이다. 그러자 그들에게 2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났다. 하나는 '능력'의 은사가 나타났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성령이 오시면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며 그리고 능력으로 옷 입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행1:4~5,8, 눅24:49). 그런데 그때 '능력'은 좀 높은 계급의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엡1:21), 하늘에서부터 안에서 밖으로 내려온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로 나타났다(행2:2~3, 시104:3~4, 히1:7, 시103:20~22). 이것은 '천사들'이 밖에 부어지는 성령세례의 표적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안으로 부어지는 성령세례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딴 '방언'이라는 표적들로 나타났다. 안으로 부어졌던 성령세례가 그때 120명의 성도들에게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 곧 방언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때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인하여 그 방언 소리가 무엇인지를 듣는 이들로 알아듣게 했으니, 15개국에서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이 장면을 목격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120명의 성도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큰 일을 자기들의 모국어(지방말)로 듣는 기이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 그들의 반응은 "하나님의 큰 일들"을 듣는도다고 했다(행2:11). 이는 그들에게 순간적으로 방언 통역의 은사가 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날 성령께서 주셨던 은사들로는 사실 '능력'과 '방언' 그리고 일시적이었지만 '방언 통역'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3. 오순절날 나타난 '방언'은 대체 어떤 언어였는가?

  그렇다면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일제히 나타났던 성령의 선물들 가운데 '방언'의 은사는 어떤 언어였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글로싸'였다. 이는 곧 방언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영의 언어인 것을 말해 준다(막16:17, 행2:4, 고전14:2). 고로 은사로 주어지는 '방언'은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종류의 언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전혀 딴 종류의('헤테로스'=different) 언어였기 때문이다(행2:4). 고로 이 언어가 단순히 지방말('디아레크토스')이었던 것이 아니라, 하늘의 언어이자 영의 언어로서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글로싸')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2에서 그 실체를 알려 준다. 왜냐하면 방언은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 말하는 비밀의 언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고전14:2). 

고전14:2[개역]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고전14:2[직역] 왜냐하면 방언('글로싸')으로 발설하고 있는 자는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영으로 비밀들을 발설하는 것이다. 

  사실 고린도전서 14장을 읽어 보면, '글로싸(방언)'가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 하나는 위의 경우처럼 '영이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고전14:2).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영에게 공급됨으로 그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께 비밀들을 발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는 '영의 기도'라는 것이다(고전14:14~15). 왜냐하면 방언 통역을 해 보면, 방언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전부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가운데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약 80~90%는 영이 비밀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그중에 약 20~10% 정도는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방언의 은사를 '외국어다', '헛소리다', '귀신소리다'로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성령의 은사는 성경 기록을 끝으로 계시가 이미 끝난 상태이기에 더 이상 성령의 은사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성경의 기록대로 믿어야 할 것이다. 

 

4.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세례의 사례들은 몇 건이나 되는가?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믿는 자들에게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들은 총 5번 있다. 첫째는 예루살렘에서 있었고(행2:1~4), 둘째는 사마리아에서 있었으며(행8:14~17), 셋째는 사도 바울에게 개인적으로 있었다(행9:17~18, 고전14:18). 넷째는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에도 있었으며(행10:44~48),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에베소에서도 있었다. 이중에서 다섯 번째는 사도 바울이 안수함으로 성령이 오셨고 그들에게 선물로 주어졌다고 말씀하고 있다. 

 

5.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로서 방언 은사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도행전에는 위의 경우처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성령이 오심으로 믿는 이들에게 부어지는 역사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방언 은사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방언들 나타남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모든 성령세례의 사건에서 '방언'의 은사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것들 중에서 사마리아의 성령세례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정황으로 봐서 하나님의 선물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에 그들에게도 방언 은사가 나타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방언의 은사가 통역이 될 때에는 복음 전파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행2:6~13). 왜냐하면 방언을 통역해 보면, 그 내용이 일부는 '기도'이고, 그 일부는 '예언'과 같아서, 그 내용이 권면(고전14:31), 교육(고전14:31), 책망(고전14:24), 판단(고전14:24), 폭로(고전14:25)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에 부어진 성령세례로 인하여 120명의 성도들이 각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한 것은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니라 하늘의 언어였으며, 15개국에서 온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의 지방말로 그것을 알아듣는 등 방언 통역도 동시에 나타났던 놀라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15개국의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글로싸)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듣는도다"(행1:11). 이는 방언이 통역만 될 수 있다면 놀라운 복음 전파의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2022년 06월 1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08) 오순절 성령세례로 인해 나타난 표적은 무엇이었나?(행2:1~4)_2022-06-13(월)

https://youtu.be/KvZ2cJVxnkU  [혹은 https://tv.naver.com/v/27324716 ]

 

1. A.D.30년 5월 28일 오순절날이 되자 마가 다락방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A.D.30년 5월 28일 오전 9시경, 오순절날이 이르자 마가 다락방에는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가? 그때에 3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첫째로는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으며, 그리고 둘째로는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고, 셋째로는 거기에 모인 자들의 입에서 방언들을 말하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행2:1~4).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것들은 성령이 각 사람들 머리 위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표적들이며, 세 번째의 것은 성령께서 사람 속에 내주하시면서 나타나는 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것은 외적인 성령세례 뿐만 아니라 내적인 성령세례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때 밖에(사람의 머리 위에) 부어지는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이고(눅24:49, 행1:5),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세례는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저녁에 말씀하신 것이다(요14:16,26,15:26, 16:7~10). 

 

2. 오순절날 아침에 펼쳐진 이 현상은 성령강림 사건인가 아니면 성령세례 사건인가?

  오순절날 아침 9시경에 일어난 이 사건은 어떤 사건인가? 성령이 오신 사건인가 아니면 성령세례가 부어진 사건인가? 얼핏 보기에는 성령이 강림한 사건이라고만 보일 것이다. 맞다. 그날이 성령이 오신 것이 맞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약속하신 바 성령세례 사건이 동시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성령이 오시면 능력으로 옷입혀지게 되는 성령세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9, 행1:4~5, 8).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그리고 둘째로, 오순절날 아침에 일어난 사건은 성령세례 사건이었다고 베드로가 훗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행1:15~17). 그것은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를 받아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거기에서 일어난 성령세례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면서 말한 것이다. 그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11:15~17)" 그렇다. 베드로는 오순절 아침의 사건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건이었음을 고백했으며, 그때 그들에게 성령의 선물이 주어졌다는 것을 말했다. 

 

3. 바람과 불의 혀 같은 것의 나타남과 그리고 방언은 어떤 구약의 예언 말씀의 성취인가?

  우리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2가지 성령세례 곧 '내적인 성령세례'와 '외적인 성령세례'를 부어주실 것을 약속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 내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은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며(겔36:24~28), 외적인 성령세례에 대한 약속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다(욜2:28~29). 고로 오순절날 일어난 세 가지 표적은 이 두 가지 약속이 모두 다 성취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 속에도 들어오시게 되었으며, 믿는 이들 머리 위에도 부어지심으로 복음전파를 위한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겔36:24~28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욜2:28~29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4.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순절날 성령께서 120명의 성도들에게 부어질 때에 나타난 현상들 곧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이러한 현상은 우선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모세에게 율법을 직접 주려고 하실 때에 시내산 꼭대기에서 일어난 사건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도 청각적인 소리와 시각적인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출19:16~19). 

출19:16~19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7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18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우레와 번개 그리고 나팔소리 및 연기와 불은 하나님께서 직접 시내산에 내려오실 때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먼저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오시기 전에 '우레'와 '번개'와 '나팔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청각적인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둘째로, '연기'와 '불'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시각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직접 강림하실 때에는 이와같이 2가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는 청각적인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시각적인 어떤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서도 나타난 표적들 곧 청각적인 소리가 들리고, 시각적으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인 것은 하나님이 오셨다는 증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의 실제적인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사들'이 왔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오실 때에 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은 얼마라 실제적이었는가는 오늘 본문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헬라어 성경으로 행2:1~4의 말씀을 살펴보자.

행2:1~4[직역] 그리고 오순절날의 가득 채워지게 됨 안에서 그들 모두가 같은 곳 위에 함께 있어 왔다. 2 그리고 갑자기 하늘로[안에서]부터 [밖으로] 마치 운반되어지고 있는 강력한 바람 같은 어떤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이 앉아 있는 바 온 집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마치 불처럼 혀들이 갈라지고 있으면서 그것들이 그들에게 보여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각각의 한 사람씩 위에 앉았다. 4 그러자 그들 모두가 거룩한 영의 어떤 것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영이 그들에게 주고 있어온 것처럼 [계속해서] 담대하게(크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도록 딴(종류의 다른) 방언들을 [계속해서] 발설하기 시작했다. 

  이때 들리는 소리는 저 하늘 안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었고, 불의 혀들도 같이 내려와서는 사람들 위에서 갈라지더니 각 사람 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성령께서 오실 때 보이는 모습과 들리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체적으로는 천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음 문항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5. 오순절 성령세례 사건 때 나타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오순절날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오순절날 모인 성도에게 일어난 성령세례에 대한 표적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들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시편104:3~4과 히브리서 1:7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온다. 

시104:3~4 [그분은]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4 바람[들](영들)을 자기 사신[들](천사들)로 삼으시고(만드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들](수종드는 자를)를 삼으시며(만드시며)
히1: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그렇다. 성령께서는 능력 있는 천사들을 바람과 불꽃으로 삼고 그날 강림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날에 하늘 안에서부터 밖으로 내려왔던 소리 같은 것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의 실체는 천사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 온 천사들의 분류가 '능력들'이다. 이는 사실 영계에서 볼 때 좀 더 높은 계급의 선한 천사들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엡1:21). 하늘의 천사들 중에는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보좌' 등과 같은 높은 계급을 가진 천사들이 있는데(엡1:21, 3:10, 6:12, 골1:15), 이들 중에서 '능력(뒤나미스)'의 천사들이 그날 성령과 함께 온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행1:5) 곧 성령이 오시고 성령세례가 부어지면 능력을 옷입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 고스란히 성취된 것이다. 

 

2022년 06월 13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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