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강해(11)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계3:14~22)_2017-09-13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왜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책망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를 소개할 때에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소개하셔야 했을까? 사실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어왔다. 언제부터 거기에 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의 마음 문 밖에 오랫동안 서 있으셨다. 밤서리를 맞은 채 몇날 며칠을 거기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씀하신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오로지 돈에 눈이 멀어 주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한 눈 먼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 우리는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서 마지막 시기에 놓여있는 교회상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와 평신들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을까? 어떻게 할 때에 과연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
1. 들어가며
라오디게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는 A.D.95년경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교회들 가운데 하나로서, 예수께서 지상에 있는 일곱교회 중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유형의 교회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부자교회이건만 영적으로는 뜨뜻미지근한 교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교회다. 그래서인지 이 교회는 부활승천하신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들었다. 그렇다면 왜 이 교회는 뜨뜻미지근한 교회가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 이 교회의 사자였던 메시지 전달자(목회자)는 어떻게 되어서 뜨뜻미지근한 신앙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니 주님을 밖에 세워두고 오랫동안 있었던 것일까? 사실 겉으로 보기에 이 교회는 문제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첫째, 교리적인 부패와 타락이 보이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이 교회 안에는 에베소와 버가모교회에 침투한 니골라당의 가르침이나 버가모교회에 있었던 발람의 가르침 혹은 두아디라교회에서 보여준 이세벨여선지자의 가르침과 같은 잘못된 교리들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유대인들이나 로마정부로부터의 핍박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교회는 너무 부자교회로서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왜 교회나 교회의 지도자가 돈이 많아지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따라서 오늘은 물질적으로 부자교회가 가지고 있는 약점이 무엇이며, 어떻게 처방해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라오디게아 도시와 라오디게아 교회
1)라오디게아 도시
라오디게아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도시들 가운데 가장 부요한 도시였다. 왜냐하면 첫째, 이 도시에는 고리대금업이 발달하여 금융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 도시는 의과대학이 있었고 의술이 발달하였는데, 안과와 이비인후과가 이 도시의 전문치료기관이었다. 특히 부르기아 안약은 전 세계로 팔려나가고 있는 상품이었다. 셋째, 이 도시는 흑양모로 직조한 고가의 겉옷을 제작생산판매하고 있어서 많은 수입을 올릴 수가 있었다. 그러다보니, A.D.60년에는 유래없는 큰 지진이 일어나 도시가 거의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도움없이 자력으로 도시를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도시에 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뿐더러, 병도 잘 치료받을 수 있는 참으로 부러움을 살만한 도시였다.
2)라오디게아 교회
이 도시에 언제 교회가 세워졌는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교회의 지도자가 상당한 부자였던 것만큼은 사실이다(계3:17).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칭찬 한 마디 없다. 오직 책망만 가득하다. 왜 이 도시의에 세워진 교회는 이렇게 책망만 들을 수밖에 없었던 교회가 되어버린 것일까? 대체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 그리고 과연 이 교회는 촛대가 옮겨지지 아니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이 시대의 마지막시기에 존재할 교회의 모형으로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를 살펴보고자 한다.
3.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소개된 예수님은 과연 누구신가?
우선, 이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주님께서는 자기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말씀을 하시고 있는 교회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기를 소개해오셨다. 그러므로 이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는 예수께서 어떤 분으로 소개되어 있는지를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 교회에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것은 3가지 표현이 사용되었다. 첫째로는 아멘이신 분, 둘째로는 신실하고 참되신 분, 셋재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분이시다. 예수께서 이 교회에게 자신을 먼저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참되신 분"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께서 이 교회를 책망하시기 위함이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와 정반대적 상황에 있는 교회도 있었다. 서머나교회나 빌라델비아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보자. 이때 예수께서 자신을 말씀하실 때에는 그 교회를 어떻게 하면 칭찬하고 위로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서머나교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계2:8). 그분이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죽음을 주관하시는 이이기 때문에 고난에 직면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놀라지 말라고 이러헥 자신을 소개하신 것이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계3:7). 이는 빌라델비아교회가 거룩한 교회였고, 참된 교회였으며, 구원의 문을 닫고 여는 권세를 사용하고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는 그 반대상황이다. 자신을 어떤 존재라고 소개하는 예수님은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기 위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멘이요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신 분"이라는 말은 라오디게아교회가 책망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예수님의 자기소개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라오디게아교회는 "아멘"을 잘 안 하고 있다는 뜻을 의미하며, 신실하지도 않고 참되지도 않아서 증인된 삶을 전혀 살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더욱이 당신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로 소개하고 있는 예수는 라오디게아교회를 진단하기를, 그 교회는 고쳐서 사용함으로 새롭게 될 수 있는 교회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가 필요할 만큼 부패되고 타락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과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이 교회의 지도자가 일찌감치 예수님을 방치한 채 문밖에 서 계시도록 오래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계3:20). 그때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 그때도 그분은 계속해서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에게 노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노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책망을 받을만한 교회이겠는가?
4.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그렇다면 라오디게아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었는가? 그것은 주님 보시기에 너무 역겨워 토해버려야 할 만큼이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차겁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고 뜨뜻미지근한 신앙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듣는다고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너무 감격하고 뜨거워 주님께 찬양하고 감사하는 모습도 전혀 없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 교회의 신앙의 미지근한 상태는 꼭 인근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식수의 온도와 같았다. 하나는 히에라볼리에서 내려오는 것인데, 출발할 때에는 온천수였지만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에는 미지근해버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식수는 골로새에서 올라오는 찬 물이었다. 그 찬물로 오는 과정에서 더워져 미지근한 물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교회를 향해 히에라볼리나 골로새의 물처럼 뜨겁든지 차거든지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의 영적 상태였다. 그들은 정말 까마득히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계3:17).
계3:17 [너는] [나는] 부자다. 그래서 부요하고 그리고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너는] 네가 곤고하다는 것과 그리고 가난하다는 것과 그리고 눈멀었다는 것과 그리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온 채 있지 않다(모른다).
그렇다. 라오디게아교회의 메시지전달자는 자신이 부자요 ,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교회는 고리대금업과 흑양모산업과 부르기아안약의 판대로 인하여 부자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적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육체적인 판단과는 정반대로 그 교회를 진단하셨다. 그 교회는 스스로를 부자요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그 교회는 영적으로 매우 비참한 상태에 있었고, 영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이 교회의 지도자와 교회의 성도들은 부르기아 안약과 같은 놀라운 의술 때문에 눈이 잘 보이고, 귀는 잘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만큼은 건강하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실제로 그들을 영적인 상태로 볼 때에는 그들의 전부가 다 눈병에 걸려 있는 상태이고, 귀가 멀어 있는 상태인 것이다.
5. 주님께서 내리신 처방전은 무엇이었을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3가지 처방전을 내렸다. 첫째 처방전으로는, 그들의 육적인 상태에 있어서는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셨고, 흰 겉옷을 사서 입으라고 하셨으며,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셨다(계3:18). 왜냐하면 이 교회를 육적으로 볼 때에는 보이는 금덩이를 많이 가지고 있고 흑양모로 짠 비싼 겉옷을 입고 있었으며, 부르기아 안약을 발라 건강하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의 진단은 정반대였다. 그래서 불로 연단된 금 곧 정금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다. 그리고 흑양모로 짠 겉옷을 버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흰 양털로 만든 겉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르기야 안약을 사다 발라서 눈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치료의 말씀을 먹어 먼 눈이 볼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다. 둘째 처방전으로는,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는 것이었고 단번에 회개하라는 것이었다(계3:19). 그랬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열심히 식어버린 교회다. 말씀을 듣는 일에도 멀어지고 있으며, 기도하는 일은 더더욱 동참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주 예수님의 말씀은 이 교회가 더욱더 열심을 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 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들은 단호하게 회개하여 뜯어고치고 잘라내 버리라는 것이었다. 사실 이 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들은 회개만이 살 길로 제시되고 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은 100% 지옥행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가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시고 있다.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배려를 살펴볼 수 있다. 마지막 셋째 처방전으로는 주님을 마음 안으로 모여들이어 그분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라나는 것이었다(계3:20). 라오디게아교회에 편지를 보낼 당시, 이 교회의 주의 종도 주님을 마음 밖에 서 계시도록 방치하고 있었다.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기를 바라셨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그와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6. 라오디게아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여 다시 시작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축복을 약속하셨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되었던 겇럼, 주님께 충성하는 자에게는 자기의 보좌에 함께 앉게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가 될 수 없다. 그 어떤 이기는 성도도 아버지의 보좌에는 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다. 누구든지 이기는 자가 된다면 그도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을 할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계20:1~10, 22:5). 그러므로 귀를 가진 자라면 성령께서 각 교회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계:3:22)
7. 나오며
그렇다. 사람은 혹시 잘못 행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자기가 어떤 문제에 빠져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라오디게아교회의 지도자는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떠한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어떤 영적 상태에 빠져 있었을른지 상상해보라.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지도자 및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다시 너희들과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이는 내가 사실 너희들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너희들은 내게 마음을 열고 나를 영접한 일이 없지 아니한 것이 아니냐! 왜냐하면 너희들 안에는 오로지 금과 흑양모겉옷과 부르기아 안약으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그랬다.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가 그들의 마음 밖에서 오랫동안 서 계셨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다시 그들 안으로 들어가려고 귿르의 마음의 눈을 노크하신다. 왜냐하면 아직 시작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회의 지도자와 평신도들은 자기들은 매주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십일조를 바치고 있으니, 자신은 이미 구원받은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큰 일이다. 이 시대의 교회지도자가 이런 상태에 빠져 있을까봐 말이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그렇게 판단하고 그냥 지내고 있을까봐... "오 주여! 이 시대의 교회와 주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회개할 기회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