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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강해(07) 버가모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요2:12~17)_2017-08-09

갈렙66 2017. 8. 20. 22:34

버가모교회, 이 교회는 경제적인 불이익과 핍박을 면해보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님을부터 책망을 받았던 교회다. 하지만 이 교회에는 책망만을 받았던 교회는 아니었다. 이 교회 내에는 끝까지 진리를 수호하고 예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다가 그만 죽임을 당한 안디바와 같은 사람도 있던 교회였다. 그리고 이 도시는 뱀신을 주신으로 섬겼고, 그 외에는 수많은 우상들을 숭배했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사탄이 사는 동네라 불리워졌고, 사탄의 보좌가 있는 지역이라고 일컬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대체 어떻게 하면 세상이나 비진리와 타합하는 도시로 나쁘게 변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러나 교회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을까를 집중조명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이 지상에 세워진 교회는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에베소교회는 거짓이단적인 교리를 분별하려다가 주의 종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를 대표한다. 그리고 서머나교회는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낸 핍박받는 교회를 대표한다. 그렇다면 버가모교회는 어떤 교회상을 가지고 있을까? 버가모교회는 한 마디로 핍박을 면하고 일상생활을 지장을 받지 않고도 거짓된 교리와 타협하고 있는 교회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버가모교회는 주님의 책망이 불보듯 뻔하게 예상되는 교회다. 하지만 버가모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다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교회의 말씀사역자를 비롯한 상당수의 성도들은 바른 진리를 따라갔다. 그리고 버가모교회의 대표자였던 안디바는 죽임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소아시아교회 중 세번째 교회에서 해당하는 버가모교회가 받았던 칭찬과 격려 그리고 책망과 권면 그리고 이기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2. 버가모 도시는 어떤 도시이며, 버가모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버가모는 페르가몬(pergamon)’이나 페르가모스(pergamos)’로도 불리는데, 이는 양피지(perchment)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실제로 버가모에는 20만권의 장서를 갖춘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다. B.C. 197~159년에 이르는 유메네스 치하에서는 아리스토파네스가 이 도서관의 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이 도서관에 있는 장서들을 빼내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애굽의 파피루스 공급을 중단시키면서 버가모에서는 양피지를 본격적으로 생산하여 책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여기서부터 버가모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그런데 버가모는 서머나로부터 해안을 따라 북쪽 약 104km지점에 위치한 내륙도시로서, 로마와 아시아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요, 교육과 문화가 발달한 아시아에서 매우 유명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에는 무시아의 수도였다. 지정학적으로 이 도시는 높이 천 피트의 돌 언덕 위에 세워져 있던 언덕 위의 도시로서, B.C.133년에 아탈루스 3세가 이곳을 로마에 헌납한 뒤에 로마의 예속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B.C.129아우구투스 황제와 로마여신의 신전이 건축되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 주변의 산성 위에 제우스(), 아테네, 디오니소스 신전 그리고 트라얀황제의 신전과 왕궁이 자리잡게 된다. 심지어 뱀 신인 에스클레피오스(Aesclepios)신전까지 도시 변두리에 자리잡을 정도로 우후죽순 격으로 각종 신전이 건립되었다. 특별히 제우스제단이 아크로폴리스 위에 놓여 있어서, ‘사탄의 자리를 쉽게 상상하게 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판을 치던 이교도의 도시였다.

이곳에 어떤 과정을 거쳐 교회가 세워졌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바클레이에 의하면, 이 교회의 역사가 매우 짧고 교세가 매우 빈약했다고 한다. 이런 면모를 고려하건데 버가모교회는 일찍부터 형성된 황제숭배와 우상숭배를 강요받고 있었고, 이 교회에게 주어진 예언적인 메시지를 전체적으로 감안한다면,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당의 교훈등의 각종 이단 사설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바로 그러한 점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버가모교회는 핍박의 때에 순교자를 배출하기까지 하는 등 귀한 영적 유산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으나 일부 교인들이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름으로서 세속화될 위기를 맞고 있는 교회였다. 버가모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핍박을 면하기 위해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인 교회, 곧 타협하는 교회로서 로마국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313~590).

 

3.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과 그 교회의 상황과 칭찬 그리고 축복의 약속은 무엇인가?(직역강해)

(12) 그리고 너는 버가모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에게 [단호하게] 편지를 써라. 양쪽에 날이 선 칼을 가지신 분께서 이것들을 [지금] 말씀하신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는 계1:16절에서 소개되고 있는 분으로서, 그분은 촛대사이에 거니시는 인자같은 이 곧 부활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버가모교회에게 왜 이렇게 자기를 소개하셨을까? 아마도 버가모 교회의 메시지전달자가 핍박자인 로마정부로부터 칼로 죽임을 당했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우리가 환난을 당하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믿지 않고 핍박하는 자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때가 되면 예수께서 곧 재림하시어 칼로 심판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날선 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6:17, 4:12, 19:13). 하나님의 말씀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선과 악을 드러내고, 빛과 어두움을 분리시키며, 진리와 비진리를 갈라놓는다. 그러므로 진리를 따르고 비진리를 거부하지 않으면 죽임당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3) 나는 (너의 행위들과) 그리고 네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이미] 알아온 채로 있다. 거기는 사단의 보좌[있는 곳이라]. 그리고 너는 나의 이름[현재] 붙잡고(굳게 지키고) 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을 저버리지(거절하지, 부인하지) 않았다. 그리그 그 날들 안에, 나의 신실한 증인 안디바가 있는 장소 안에. 그는(안디바는) 너희 곁에서 [과거에] 죽임을 당했다. 그곳는 사단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소이다.

주님께서는 먼저 칭찬과 격려를 하신다. 이미 절대적인 지식으로 버가모교회의 메시지 전달자를 이미 아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가모교회의 메시지 전달자는 누구인가? 당시 그는 안디바. 그런데 안디바는 대체 어느 도시에서 살고 있었는가? 버가모다. 그런데 그곳은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이자, 사탄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장소. 왜 그런가? 이곳은 뱀신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을 숭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제우스 신전, 아테네 신전, 디오니소스 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로마여신의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는 로마의 트라얀황제의 신전과 왕궁도 이 도시에 건축되었다. 다시 말해, 이 도시는 뱀 신을 위시로 한 온갖 우상들을 숭배하고 있었고, 황제숭배도 왕성한 도시였기 때문에, 사탄의 보조가 있고, 사탄의 현재 거주하고 있는 도시라고 하였던 것이다.

터툴리아누스(A.D.160-220)의 전승에 의하면 안디바(안티파스=모든 것을 반대하다)는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으며, 도미티아누스 황제 숭배를 거절하다 불로 달군 놋쇠판 위에서 태워 죽임 당했다고 한다.

 

(14) 그러나 나는 너를 대항하여 [작지만]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네가 거기에서 발람의 가르침[현재] 지키고 있는 자들을 가지고 있음을. 그는(발람은) 이스라엘의 아들을 앞에 올무(올가미, )[단번에] 놓도록, 발락에게 이미 가르친 상태에 있으나 지금도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다(미완료구문). 우상의 제물(고기)[단번에] 먹도록 그리고 [단번에] 음행하도록.

이어서 주님께서는 버가모교회를 책망을 하신다. 왜냐하면 많지는 않았지만 주님께서 책망할 요소를 몇 가지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발람의 가르침을 그때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5절에 나오는 것처럼 니골라당의 가르침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발람의 가르침을 보자(22~24, 31:16). 발람은 유브라데강가 브돌에 사는 이방선지자.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도록 모압왕 발락이 발람선지자에게 온갖 돈을 갖다 바쳤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3번씩이나 저주하지 못하고 축복만하였다. 하지만 이미 돈을 받은 상태였기에, 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망하게 할 방법을 일러주고 갔다. 그것은 우상숭배의 잔치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대한 뒤에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이어지는 음행에 같이 동참하도록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올무에 걸려들고 말았다. 그날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천명이나 되었다. 만약 대제사장 비느하스의 의분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남자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지금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우상숭배와 음행. 이것을 제거하지 못하면, 결국 책망을 듣고도 회개하지 못하면 지옥행이다.

결국 발람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올무에 걸려 죄를 짓게되어,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하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실제로 버가모 교회 안에는 발람과 같이 발람의 가르침을 가르치는 사람과 그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2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William James Durant에 의하면 버가모 지역의 이교도 축제는 봄에 디오니소스(술의 신, 로마의 박카스)3일 축제 기간 술이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모든 사람이 술에 취한 채 음란한 연극을 보았으며, 축제 기간 동안 성적 자유가 허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버가모 교인 중 일부가 발람의 가르침에 따라 그 지역의 문화 축제에 참석하여 술을 먹고 음란한 연극을 관람하고 성적 음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 강점기 때에 신사참배가 강요되자 많은 교회들이 발람의 가르침에 따라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닌 문화의 문제라고 말하므로, 수많은 목사와 교인들은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라고 알고 실시했으며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지옥 백성이 되고 말았다.

 

(15) 이와같이 너도 니골라당의 가르침[현재] 지키고 있는 자들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미워한다.

한편 이들은 에베소교회와는 반대로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지키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이 교회는 딱 2가지만 있었다. 한 부류는 오직 안디바처럼 순교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로지 예수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있고, 주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하면 굶주리게 되고 정죄를 받아 칼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뻔했다. 그러자 또 한 부류는 우상숭배와 음행은 이미 영으로 구원얻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큰 일 날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 중에는 세상에 타협해버리는 성도들이 있는가하며, 끝까지 주님이 가르쳐준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의 몫이다. 책망을 받을 것인가? 칭찬을 들을 것인가? 더 나아가 천국에 들어갈 것인가 지옥에 들어갈 것인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16) [단호하게] 회개하라(과거명령법).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에게 속히 [지금] 간다. 그리고 내 입의 칼로 그들과 함께 [미래에] 싸울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발람의 가르침과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지금 당장 회개할 것을 단호하게 요청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당장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금께서 당장 가서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말씀)으로 그들과 싸울 것이라고 했다.

19:15-16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구약 민2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발람이 발락왕에게 가지 못하도록 여호와의 천사를 보내 칼로 길을 막았다. 하지만 그것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17) 귀를 [현재] 가지고 있는 자는 [단호하게] 들어라. 성령이 [지금] 무슨 말씀을 교회들에게 하고 있는지를. [현재] 이기고 있는 자, 내가 그에게 [이미] 감추어진 채 있는 만나로부터 [단번에] 먹도록 [미래에] 줄 것이다. 그리고 흰 돌[미래에]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돌 위에는 [이미] 기록되어진 채 있는 새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현재] 받고 있는 자 외에는 안(과거)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우상숭배와 음행을 그치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칭찬과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2가지다. 첫째는 이미 감추어진 채 있는 만나[미래에] 먹도록 해주시겠다고 했다. 이는 하늘양식으로서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40년간 먹었지만 이것은 아마도 죽어서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에(미래에) 천국에서 먹게 될 것이다. , 감추어진 채 있는 만나를 먹게 하실 것이라고 했을까? 왜냐하면 버가모교회 성도들 중에서 충성된 증인 안다바를 따르는 자들은 우상숭배와 황제숭배를 거절하고 음행을 거절했기에 음식먹는 것까지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는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여주시겠다는 뜻이다.

둘째, 그들에게 흰 돌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것도 미래형이다. 흰 돌은 우림과 둠밈이라는 대제사장의 판결흉패에 들어있는 조약돌인데, 흰 돌은 죄없음을 뜻했다. 안디바를 따르는 자들은 로마정부와 버가모에서 불법자 취급을 받았고 그래서 유죄판결을 받아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천국에서 그들은 무죄임을 선언하시겠다는 뜻이다.

한편, 그 흰 돌 위에는 이미 기록되어진 채 있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예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4. 나오며

  신앙은 갖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기독교인이 되면 불이익을 주거나 경제활동에 제재를 가하고, 도시에서 추방하며, 때로는 화형당하거나 사자밥이 된다고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연 안디바처럼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주님은 세상과 타협하고, 거짓교리를 만들고 그것을 따라가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씀하셨다. 아니 칼로 그의 생명을 잘라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진리와 타협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손해보는 것 같고, 억울한 일 당하는 것 같고, 희생이 따르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길이 버가모의 안비다가처럼 생명길이 될 수 있다. 다음 주 이 시간에는 두라디아교회의 경우를 살펴보면서, 교회의 지도자들마저 발람의 교훈, 니골라당의 교훈에 넘어간 선례를 집중조명하고자 한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