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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강해(02)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 하나님은 과연 누구신가?(02)(계1:1~8)_2017-07-05

갈렙66 2017. 7. 9. 22:55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매우 특별하다. 왜냐하면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되시는 하나님께서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주관하시는가를 알려주고, 독자에게 심판의 날을 대비하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종말에 관한 예연과 계시를 듬뿍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것을 정확히 해석하고 잘 적용할 수만 있다면, 이 불투명한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이므로, 우리는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서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구약성경 중에서 계시와 환상의 책인 다니엘서와 에스겔서와 스가랴서는 기본적으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의 모든 상징들이 여기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2. 편지의 책인 요한계시록

  더욱이 이 책 요한계시록은 편지형식을 빌어서 쓰여진 서신이다. 이 편지는 사도요한이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의 사자들에게 편지처럼 보낸 것인데, 요한이 어느날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보고 들은 것을 써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서두(1:1~8)와 인삿말(계1:4~6)이 있고, 맨 마지막에서는 끝맺는 인삿말(계22:6~21)이라는 것이 있다.

 

3.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책이기도 한 요한계시록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가장 완성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천국에 계시는 하나님이 과연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그분이 과연 천국에서 세 분으로 존재하시는지, 아니면 한 분으로 존재하는지를 알려준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가 과연 몇 개인지 곧 세 개인지 아니면 하나인지를 알려준다. 사실상 천상에 계시는 전능자 하나님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확실하게 알려주는 책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지난주에 이어서 요한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인지에 대한 살펴보고, 이어서 성령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4. 이제는 눈을 떠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자.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성경을 보는 눈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경은 전혀 다른 각도로 보여진다. 사람은 아무래도 주관적인 견해를 가진 채 있다. 특별히 어려서부터 어떤 특정한 교회에서 자란 성도들은 자기가 자란 교회의 목회자의 신학적인 견해를 통해 성경을 본다. 그래서 자신의 담임목회자로부터 들었던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교리가 성경을 보는 눈이 된다. 특별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은 대부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이다. 하지만 양태론적인 하나님에 대해 아는 자도 몇몇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 특히 개혁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그것은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대부분 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고 교리로 정착되었으며, 그것이 어떻게 발전되여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교리처럼 체계화되었는지에 잘 모른다. 삼위일체의 교리가 정통이라고 하니까, 그냥 맞겠지 하면서 그것을 정설로 받아들인다. 적어도 자신보다 훌륭한 신학자들이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서 얻은 결론이니 삼위일체 교리를 성경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고 배워왔던 교리들 중에는 사실 우리가 성경적이라고 알고 있으나 사실은 사람이 만든 교리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어떤 교리는 사실 100%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도 있다. 하지만 어떤 교리는 당시의 낮은 이해의 수준으로 고착화되어진 것들도 있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고의 지식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얕은 수준도 더러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과거에 우리가 정통으로 받아들였지만 오늘날 21세기에 들어와서 볼 때, 어떤 것은 성경에서 상당히 어긋나 있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소지를 가진 교리들도 있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교리 즉 신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 것들이 심하다. 그래서 오늘은 신론에 관한 잘못된 부분과 또한 성령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시며, 그분이 성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할 것이다.

 

5. 사도요한이 소개하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인삿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가?

  먼저, 사도요한이 언급하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인삿말부터 살펴보도록 하자(계1:4~7). 이 편지를 썼던 사도요한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다음과 같이 인사한다(계1:4~6).

계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 부분에서, 보통 신학자들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며,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묘사라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소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러한 견해가 맞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왜냐하면 5~6절에 나오는 분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가 맞기는 맞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그의 아버지와 하나님께 왕국과 제사장들로 삼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6절에 나오는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가 아니면 인성을 취한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가? 찬찬히 보라. 5~6절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인성을 취하신 뒤에 인류를 위한 속죄사역을 마치고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과 제사장들로 만드신 분에 대한 묘사이다. 한 마디로, 5~6절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개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삼위일체 방식으로 성경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절대 이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 역시 성자 하나님에 대한 소개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이지, 결코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나중에 나온다. 그렇다. 계1:4~6의 말씀은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닌 것이다. 또한 서로 인격이 다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소개도 아니다. 계1:4~6의 말씀은 무소부재하신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소개와 더불이 그분이 어떻게 그의 영을 통해 지금 활동하고 계시며, 과거에 사람이 되셔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소개인 것이다. 그렇다. 사도요한은 한 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성령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인성을 취하시어 인류의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과 제사장들로 삼으신 사람이신 예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다.

 

6.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대체 누구신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대한 소개는 무엇인가? 그것은 4절상반절에 나온다. "이제도 계시도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가 바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에 대한 소개다. 이본문을 헬라어원전으로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지금도 계시며, 전부터 있어 왔는데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계1:4b)"다. 그렇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고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홀로 한 분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묘사가 나온다. 그것이 바로 인삿말의 끝에 나오는 계1:8의 말씀이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3가지로 소개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8절에서 자신을 첫째,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라고 소개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가리킨다. 그분이 시작하고 그분이 끝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면서,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시작과 마침"이시다. 다 같은 말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B.C.700년경 이사야를 통해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사41:4, 44:6, 48:12).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자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여호와와  똑같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계1:17, 2:8, 21:6, 22:13)고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바로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이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구약시데에 여호와는 누구신가? 그분은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에는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 그분이 바로 동정녀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태어나신 하나님 아들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언젠가는 구름을 타고,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과 천군천사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그리로 둘째로, 계1:4상반절과 1:8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시다(계1:4a,8). 셋째,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전능자이시다(계1:8). 결국 계1:4에서 소개되어 있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이다.

 

7.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은 성령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닌 제3의 하나님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만일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누구신지가 분명하게 묘사지 못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성령을 단독적인 제3위의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완전히 틀린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요한계시록에서 성령님은 단독적인 제3위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한 분 하나님의 영이 바로 성령이라는 것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에 대해 4가지 좀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은 성령이 첫째, 일곱 영이라는 것이며(계1:4,3:1,4:5,5:6), 둘째,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영이라는 것이며(계5:6), 셋째, 성령은 어린양의 일곱 눈이라는 것이다(계:5:6). 넷째, 예수께서 그 성령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계3:1). 자,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이 독특한 표현들을 보라.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계1:4)",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계3;1)",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4:5)", "어린 양에게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을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5:6)" 그렇다. 성령은 어린양의 눈이다. 그것도 일곱 눈들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일곱이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다. 만약 어린양에게 눈이 7개가 달려있다면 어린 양은 괴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이란 상징적인 숫자로서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곧 온 땅에 보내어져 이 땅 모든 곳을 다 감찰하시는 완전하신 예수님의 완전한 눈, 전지하신 예수님의 눈이 바로 성령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천상의 예수께서는 일곱 영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떠한가? 양태론적 신론에 빠져서 지금의 시대는 하나님이 성령님이 되셨으니, 성령을 만나야하고 성령을 배워야하고 성령을 체험해야 한다고 외친다. 지금의 시대는 예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오순절 이후에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을 알고 그분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이 누군가? 그들이 바로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을 하는 지들이다. 특별히 신사도와 빈야드운동을 하는 자들이 말하는 성령은 성령이 아니다. 오히려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 훨씬 더 가깝다. 그러니 능력을 가진 귀신들이 성령을 사칭하고 성령님의 행세를 해도 그들은 그것이 성령님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니 성령운동을 하는 자들에게서 저주가 떠나지 않고 있다. 귀신은 저주받은 영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령의 체험은 한 번 체험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하니, 계속해서 은사운동하는 집회에 쫓아다닐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군데에 낭비하는지 모른다. 그 귀한 시간을 예수님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는데 써야 하지 않겠는가? 이 땅에 참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데에 사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8. 나오며

  결국 계1:4~6의 인삿말 말씀은 홀로 한 분이시나 동시존재가 가능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에 해당하는 것이다. 거기에 성령님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자 예수님의 눈으로서 온 땅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성을 취하신 아들로서,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 친히 사람으로서 오셔서 사역하신 뒤에, 높이 올려지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동등한 삼위일체의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을 소개하는 본문이 아니다.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 대체 누구시며, 그분이 어떻게 영으로 활동하고 계시며, 과거에 어떻게 인류구속을 위해 일하셨는지를 소개하는 본문이다.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소개다. 그렇다. 하나님은 오직 홀로 한 분이시다. 하지만 무소부재하시며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당신의 영인 성령을 보내신 채 계신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이천년전에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것을 고스란히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계1:4~6의 인삿말의 실체인 것이다. 다음 이 시간에는 인성을 취하신 예수님과 그분의 재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