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1(수) 수요기도회

제목: [골로새서강해(05)] 가까운 인간관계의 윤리와 바울의 동역자들에 대한 의미심장한 인사말(골3:18~4: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1ZPTlgdkPoc [또는 https://tv.naver.com/v/48263532]

 

1. 들어가며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다(골1:7). 그런데 그는 골로새교회만 세운 것이 아니었다. 골로새 옆에 있는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에도 교회를 세운 것 같다(골4:13). 그런데 그 교회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그것은 이단 사조들이 교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이러한 소식을 에바브라에게서 직접 듣고 이것을 바로 잡고자 편지를 써서 두기고의 손에 들려 보낸다. 그때 감옥에서 만나서 개종한 신실한 형제 오네시모에게 빌레몬서를 들려 보낸다. 두 사람을 골로새로 보낸 것이다. 오늘은 골로새서의 마지막 시간으로서 골로새교회의 성도들 중에 가까운 사람들끼리 지켜야 할 윤리 문제와 기도 부탁과 몇 가지 권면 그리고 로마 감옥에 바울과 같이 갇혀 있는 동료들과 골로새교회 성도들에 대한 인사말을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사람들 간에 어떤 좋은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이며 더불어 처음에는 바울에게 무익했던 사람이 나중에 유익한 사람이 되고, 처음에는 유익했던 사람이 나중에 무익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만나게 될 것이다. 

 

2. 골로새서 3:18~4:18의 위치는 어떠한가?

  골로새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도입부다(골1:1~12). 도입부에서는 골로새서의 발신자와 수신자 그리고 축도 및 바울의 감사기도와 중보기도가 담겨 있다. 그리고 본론부(골1:13~4:6)에서는 바울이 쓰고 싶어했던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바울은 본론부에서 2가지를 언급한다. 전반부(골1:13~2:23)는 교리를 언급하고, 후반부(골3:1~4:18)에서는 생활을 언급한다. 바울은 본론의 전반부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우월성을 언급하고, 뿐만 아니라 이단 사조를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본론의 후반부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에 대한 실천적인 부분을 언급한다. 그것은 성도들은 위엣 것을 찾아야 하며(골3:1~4),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라고 권면한다(골3:5~11). 그러고 나서 새 사람의 성품에 대해서 언급한다(골3:12~17). 이어서 바울은 가까운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를 언급하고(골3:18~4:1), 기도생활과 불신자와의 관계와 언어생활에 대해 언급한다(골4:2~6). 그리고 마지막 종결부(골4:7~18)에서는 바울과 함께 있는 동역자들의 근황과 골로새교회 성도들에 대한 인사말을 끝으로 편지를 마무리한다. 고로, 오늘 배우게 될 골3:18~4:18의 말씀은 가까운 인간과 지켜야 할 아름다운 윤리와 아울러 개인적인 권면과 그리고 문안 인사라고 정리할 수 있다. 

 

3. 골로새서의 핵심 주제와 보조 주제는 무엇인가?

  골로새서의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독론(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의 탁월성이 바로 골로새서의 주제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서신의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골로새교회를 개척했던 에바브라를 통해서 골로새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이단 사조들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4가지 이단 사조들 곧 지혜를 강조하는 초기 영지주의, 의식법 준수를 추구하는 유대 율법주의, 천사숭배를 강조하는 신비주의 그리고 모든 것을 금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금욕주의에 대하여 듣고 그러한 세력들을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그리스도는 지혜를 추구하는 영지주의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모든 충만이 육체에 거하신 분으로서(골1:19),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요(골2:3), 더욱이 그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골2:9). 둘째, 그리스도는 의식법을 통해 의로움을 추구하는 율법주의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유대의 의식법들 곧 먹고 마시는 음식법과 안식일과 초하루법을 포함한 절기법은 실체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단지 그림자일 뿐, 실체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골2:16~17). 셋째, 그리스도는 천사들을 숭배하고 자의적으로 겸손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천사들을 창조하신 분, 특히 높은 계급의 천사들을 창조하신 분이자(골1:16), 이들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이다(골2:10). 뿐만 아니라 이들로부터 떨어져 나간 타락한 천사들을 무장 해제시키고 그것들을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신 분이기 때문이다(골2:15). 넷째, 그리스도는 음식 절제를 통해 금욕을 추구하는 금욕주의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음식 절제를 통해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경건을 가져다  주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골로새서를 찬찬히 읽어 보면, 잘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보조 주제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메시지다. 그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비밀인 교회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하나님의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일꾼으로 세웠다고 간증했다(골1:25).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이란 바로 성도들 몸에 들어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이신데(골1:27), 이것이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었던 것으로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다(골1:26). 그러므로 골로새 성도들이 진정 알아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고 그들이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골1:28, 2:2). 그것이 가능한 것은 골로새 성도들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가 영지주의보다도 뛰어나고, 율법주의보다 뛰어나며, 신비주의보다 뛰어나고, 금욕주의보다 뛰어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잘 전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도를 부탁한다(골4:3).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영 속에 담고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 

 

4. 가까운 사람들끼리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는 어떠한 것인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삶이 어떠해야 할지를 그의 편지 후반부에 배치하고 있는데, 그것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아름다운 윤리가 있고 그것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때 가까운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를 세 가지 방면에서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에베소서를 읽어 보면 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에베소서는 골로새서의 확대판이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면서 더 깊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아내들과 남편들은 서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는 것이다(골3:18~19). 바울은 아내들에게는 자기의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했다. 그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고전11:3). 그리고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기 때문이며, 또한 남자가 여자를 위해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고전11:8~9).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처럼, 남편과 아내의 질서를 위한 것으로서, 하와가 자신의 남편인 아담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들어서 죄를 지은 것에서부터 기인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남편들에게는 자기의 아내를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고 아내를 괴롭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줌과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사랑하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녀들과 아버지들은 서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는 것이다(골3:20~21). 바울은 먼저 자녀들에게 모든 일들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사람에게 자기의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주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통해서 자식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배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즉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서 자식이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순종을 익혀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들 곧 부모는 자기의 자녀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서 자기 자녀를 화나게 해서는 아니 되며 그들을 낙심케 해서도 아니 된다고 언급한다. 

  셋째, 종들과 상전들은 서로 지켜야 할 윤리가 있다는 것이다(골3:22~4:1). 바울은 종들이 자기의 주인에게 지켜야 할 윤리가 있고, 주인은 자기의 종들에게 대해야 할 법도가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앞의 두 관계보다 더욱더 강조한다. 왜나하면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내는 두 사람 중에 하나가 빌레몬의 종 오네시모였기 때문이다. 그는 빌레몬으로 떠나 도망쳤는데 바울을 만나서 변화된 사람이다. 이에 먼저 바울은 종들은 자신의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고 한다. 그리고 순종을 해도 눈가림으로만 하지 말고 주를 경외하는 성실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장차 천국에서 받을 보상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냐햐면 종들이 주인을 잘 섬김으로 우리 주 예수님을 잘 섬기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상전들에게는 자신의 종들에게 의와 공평으로 대할 것을 권면한다. 자신의 종들이라고 억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육신의 상전들이라도 하늘에 가면 자기 위에 상전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5. 골로새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냈던 두 사람은 누구인가?

  바울은 이제 끝인사로서 자기와 함께 있다가 골로새교회에 보내어지는 두 사람을 언급한다. 한 사람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에 만나서 함께 예루살렘에 구제 헌금을 가지고 갔던 아시아 사람 '두기고'다(행20:4). 두기고는 그때부터 바울과 로마 감옥까지 함께 여행하였는데, 그가 얼마나 신실한 일꾼이었는지, 바울은 그를 특별히 골로새교회를 위해 쓴 편지 전달자로서 선정했던 것이다(골4:7~8). 바울에게 두기고는 정말로 사랑하는 형제였으며, 신실한 일꾼이었으며, 주 안에서 동역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은 또 한 사람을 골로새교회에 보내는데, 그는 골로새교회의 장로(?)격인 빌레몬의 종이었다가 도망친 '오네시모'였다(골4:9). 그렇지만 그가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개종하여 신실하고 사랑받는 일꾼이 되었기에, 그를 다시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에게 그를 잘 받아달라고 개인적으로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초기 옥중 서신의 하나였던 '빌레몬서'다. 그러니까 두기고가 골로새서를 가지고 골로새로 갔다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서를 들고 골로새로 간 것이다. 

 

6. 할례받은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을 위해 함께 일했던 동역자 세 사람은 누구인가?

  바울이 로마에 잡혀갔을 때에 바울은 실로 외로웠을 것이다. 특히 자신과 같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주변에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자가 있으면 그러한 사람을 더욱더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왜냐하면 바울이 진정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자기의 동족인 유대인들이 빨리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구원받아 하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이 그 주변에 많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그에게 따라붙었던 유대인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데살로니가 출신으로서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조카인 마가 '요한' 그리고 유스도로 일컬어지고 있는 '예수'였다(골4:10~11). 이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바울을 위로해 주었다. 자신을 끝까지 따라오면서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위해 자기를 희생했기 때문이다. 

 

7. 바울에게 찾아온 에바브라와 골로새교회의 후임자 아킵보는 대체 누구인가?

  골로새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가 아니었다. 골로새교회는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에 두란노 서원에서 배워서 자기 고향에 복음을 전파해 주었던 '에바브라'에 의해서 개척된 교회였기 때문이다(골1:7). 그런데 에바브라는 이웃 도시였던 히에라볼리와 라오디게아교회도 같이 개척하였던 것 같다(골4:13). 바울은 그들에게 온 에바브라가 얼마나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었는데, 이는 골로새교회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있게 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골4:12). 그리고 그가 로마까지 와서도 얼마나 세 교회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역시 목회자는 성도들을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존재이자 가장 성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바울은 끝으로 빌레몬의 아들인 '아킵보'에게도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주 안에서 삼가 이루라고 권면하였다(골4:17). 이는 아킵보가 에바브라의 뒤를 이어 골로새교회를 목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 마가 요한과 데마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울의 끝인사 가운데 등장하는 두 사람 곧 '마가'라고 하는 '요한'과 바울의 동역자였던 '데마'다. 이 두사람은 서로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먼저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조카로서,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같이 따라갔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생을 안 해 본 탓인지 선교 중 힘들다고 그만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에, 바울은 마가 요한을 데려갈 것인가를 놓고 바나바와 크게 다투게 된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이 어려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잘 훈련시켜 사역자가 되도록 2차 전도여행에 데려가야 한다는 주장하였다. 하지만 바울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가 요한을 수행자로 두는 문제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은 크게 싸우고 헤어지게 된다.

  그런데 바울이 이제 로마에 감옥에 갇힌 이후, 마가 요한은 아리스다고와 데마와 함께 바울에게 아주 귀한 동역자가 되어 있었다(몬1:24). 그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나와 있지는 않지만, 마가 요한은 사람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바울도 과거의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뒤로 하고 그를 동역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가 요한이 베드로를 따라 로마까지 왔고 베드로의 통역자가 되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파해 준 사실이 바울의 귀에 들렸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바울이 잠시 풀려났다가 2차로 감옥에 갇힌 후, 순교하기 직전에 썼던 디모데후서에 따르면, 마가 요한은 바울에게 매우 유익한 존재라고 언급되어 있다(딤후4:11). 마가 요한은 당시에 에베소교회까지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의 평가에 있어서 가슴 아픈 사람이 한 사람이 나온다. 그는 골로새서를 보낼 때만 해도 바울에게 신실한 동역자였던 '데마'라는 인물이다(골4:14, 몬1:24). 데마는 아마도 데살로니가 사람 같은데, 아마도 3차 전도여행의 끝무렵에 바울 전도팀과 합류하여 바울과 함께 로마까지 따라갔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야 할지 모르는 감옥생활이 힘들었는지, 그만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나가 버렸다(딤후4:10). 그런데 그는 바울의 1차 감옥생활 때만 해도 같이 고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울의 2차 감옥생활 때에 그는 바울을 떠나갔다. 왜 데마는 바울을 떠나갔던 것일까? 누구에게나 복음 전파자로 고생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적인 나이가 적은 사람은 복음 전파의 직무를 감당하는데 힘겨울 수 있다. 그리고 청년 시절의 마가 요한처럼 고생을 안 해 본 사람이었다면 복음 전파의 직무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진정 세상의 안락함과 평안함을 위하여 복음 전파의 직무를 저버리고 떠나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말년의 바울을 그냥 놔두고 그를 떠나간 것 만큼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천국에서 왕 노릇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데마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9. 의사 누가와 눔바는 어떤 사람인가?

  그런데 바울의 선교여행에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의사 누가였다(골4:14). 그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에 만났던 사람으로서, 아마도 안과 의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눈을 치료해 준 인연으로 만나서, 그만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버렸다. 사실 바울의 선교여행 가운데 다른 사람들은 바울과 같이 사역하다가도 잠시 바울의 명령을 따라 떠나 있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의사 누가는 거의 모든 시간을 바울과 함께 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바울과 함께 겪었던 복음 전파 이야기를 전기 형식으로 쓸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이며, 그후에 예수님의 일대기를 전해 듣고 글로 남긴 것이 바로 '누가복음'이다. 그는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바울의 선교활동을 위해 일평생 헌신했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고로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고마운 인물이 있다면 그중의 하나가 아마 의사 누가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사랑받는 의사 누가'라고 불렀다(골4:14).

  그리고 바울은 인사말의 끝무렵에 골로새교회의 성도였던 한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그녀는 '눔바'라는 여인이다(골4:15). 그녀는 골로새교회의 성도였는데 자신의 집을 교회로 쓰도록 내 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내 주어 복음 전파의 장소로 제공했던 빌립보 성의 자주 장사 루디아와 같은 여인 같다. 그리고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이었을 때 고린도에서 만나서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 준 브리스길라와 같은 여인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이 세상에는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기꺼이 헌신한 인물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들 때문에 복음이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 나오며

  바울은 1차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 들었던 골로새교회의 개척 소식은 바울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굳은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특히 에바브라가 그에게 와서 들려준 개척 교회의 이야기는 바울로 하여금 정말 가슴을 뛰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골로새교회가 그만 이단 사조들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은 그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골로새교회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보낸다. 마치 자기가 개척한 교회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을 골로새서를 통해서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골로새교회를 위협했던 세력들을 향하여 바울은 하나씩 하나씩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언급하면서, 자신이 믿고 따르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탁월한 분이신지를 소개한다. 그러므로 골로새서를 가리켜 사람들은 '기독론'의 교과서라 부르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누군지에 관하여 그토록 짧은 서신 안에 이렇게 많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을 골로새서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그전에 보내어진 라오디게아서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면 우리는 더더욱 놀라운 영적 비밀들을 알 수 있었을텐데, 아쉽지만 라오디게아서는 현재에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골로새서에 기록된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영지주의와 같은 이단 세력에 맞설 수 있으며, 유대 율법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금욕주의 세력에도 맞설 수가 있다. 이 세상에는 주 예수보다 더 뛰어난 것은 정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 예수님만을 배우고 주 예수님만을 자랑하자. 그리고 그분만을 전하자. 그것이 우리가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24년 02월 21일(수)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09)] 초실절의 실체는 대체 누구며 그날은 실제 언제였을까?(레23:9~14)_2024-02-21(수)

https://youtu.be/BBeTSN6Nmo4 [또는 https://tv.naver.com/v/48263530]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이시다(고전15:20).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첫 번째로 부활하셨는가? 보통 알고 있기로는 예수께서는 성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토요일 안식일에는 무덤에 묻혀 계시다가,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셨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중에서, 주님이 보여 주실 표적은 오직 요나의 표적 뿐인데,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가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마12:40)"는 말씀이 성취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 금요일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가 일요일 오전 6시경에 부활하셨다면 3일(72시간)이 아니라 1일 반 정도(39시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대로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세 날들과 세 밤들을 땅 속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언제 돌아가신 것이고 또한 언제 부활하신 것인가?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의 초실절의 절기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2.' 초실절'이란 어떤 절기인가?

  '초실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되었을 때에 그 해의 곡물을 수확한 후에 맨 처음 익은 곡식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명하신 절기를 가리킨다(레23:5~14). 그리고 이때 바칠 첫 열매는 안식일 다음 날에 요제로 흔들어 바치라고 하셨다(레23:11). 그리고 이때에는 곡식단으로 드린 요제와 함께 번제와 소제 그리고 전제를 같이 드리라고 했다(레23:12~13). 그리고 이 예물을 바치기 전까지는 어떤 곡식이든지 먹지 말라고 하셨다(레23:14). 그리고 이 절기는 무교절의 절기 후 안식일에 지켜져야 했다. 또한 이 절기는 하루만 지키는 절기였다. 

 

3. 초실절날은 언제였는가?

  그렇다면, '안식일 이튿날'은 과연 언제인가? 우리는 출애굽기 12장의 기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1월 14일로 정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15일은 무교절의 첫날로서 절기들 가운데 첫 번째로 있는 절기의 안식일이었다(레23:7). 그러고 나서 '안식일 이튿날'에 초실절을 지키라고 하셨다(레23:11). 그러므로 보통은 그날이 1월 16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 말하는 안식일은 절기의 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간의 안식일(일곱째 날)을 가리킨다. 그것은 안식일을 기준으로 해서 다시 일곱 번을 지나서 그 이튿날을 오순절로 계산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레23:15~16). 그러므로 굳이 유대력의 날짜로 따진다면, 1월 14일(수)은 유월절이고, 1월 15일(목)은 무교절의 첫날(명절 큰 날, 요19:31)이며, 1월 16일(금)은 아무것도 아닌 평일이며, 대신 이날이 평일이었기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향품을 사다 갖다 둔다. 그리고 17일(토)이 되니 그날은 주간의 안식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인들이 계명을 좇아 주간의 안식일에는 쉬었다고 말한다(눅23:56~24:1). 그리고 그때 여인들은 안식일(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이른 아침에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갔던 것이다. 

 

4. 예수님께서 언제 부활하셨는가?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부활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무교절의 첫날의 안식일(15일/목)에는 무덤에 계셨다. 아마도 누룩과 같은 죄를 속량하시는 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평일(16일/금)을 하루 더 보내신 후에, 주간의 안식일이 지난 후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고전15:20). 그런데 첫 열매는 하나님께 바쳐져야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시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자, 아직 자신은 아버지께 첫 열매로 드려지지 않았다면서, 아직 자신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요20:17). 

 

5. 구약의 성도들의 부활과 신약 성도들의 부활은 언제인가?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다른 성도들은 언제 부활하는가? 먼저, 죽어서 낙원에 가 있는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영체로 낙원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자기들이 죽자마자 곧바로 낙원에 있는 심판대로 간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 대한 심판은 이미 끝난 것이다. 심판이 이미 끝났음으로 죽을 때에 두 명의 천사의 부축을 받는다든지, 마차를 가지고 데리러 온 천사들의 안내를 받고 천국의 낙원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부활은 죽은 즉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이 죽으면 자신의 육체는 무덤에 묻혀 있고 영혼은 잠자는 상태에 있다가 주님이 오시는 날에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아니다.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가서 왕 노릇할 자는 왕 노릇을 한다. 주님의 재림때까지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왕국이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 왕 노릇하는 자가 왕으로 통치하시는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2024년 02월 21일(수)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그리스도인의 율법관(08)] 예수 그리스도는 무교절의 절기를 어떻게 지키셨는가?(출12:15~20)_2024-02-20(화)

https://youtu.be/6Ku6YraeGmU [또는 https://tv.naver.com/v/48263528]

 

1. 들어가며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의 실체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A.D.30년 유월절 날인 1월 14일(수) 해 질 무렵(오후3시 경)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초실절로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데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무교절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관하여 속시원하게 답해 주는 이는 많지 않다. 단지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죽으시고 무교절의 첫날에 무덤에 묻히셨으며 3일째 되는 날 초실절에 살아나셨기 때문이다(고전15:3~4).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무교절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교절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2. 유월절 양이신 예수께서는 유월절의 어떤 규례를 이루셨는가?

  유월절이란 애굽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애굽 전역에 내린 장자 죽음의 재앙을 피하고 출애굽할 수 있도록 마련하신 규례를 기념하는 절기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1월 14일 해 질 무렵에 양을 잡아야 했다. 그것도 1년 된 흠없는 어린양 수컷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때 어린양의 피를 양푼에 담아 우슬초로 자기 집의 좌우 설주와 문인방에 뿌리고 발라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15일)부터 아침까지 12시간 안에 어린양의 고기를 쓴 나물과 함께 먹되 급히 먹어야 했다. 하지만 양의 뼈는 꺾지 말아야 했다. 이것이 유월절의 규례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유월절의 규례를 직접 유월절 양이 되시어 그대로 성취하였다. 그분은 A.D.30년 1월 14일(수) 해질녘인 오후3시에 십자가에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산헤드린 공회도 급히 서둘러 예수님을 처형해버린 것이다. 그분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죄가 없는 흠없는 양이 되어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뿌리셨다. 깨끗하신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의 피를 흘리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가 저지른 죄들의 삯은 사망이었기 때문이다(롬6:23). 그분이 인류의 죄값을 치르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인류의 생명 공급을 위해 자신의 살을 내어 놓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뼈는 꺾이지 않았다. 다만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심장)를 찔렀을 뿐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그분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지게 된다. 

 

3. 무교절이란 어떤 절기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날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그렇다면 '무교절'의 절기는 어떤 절기인가? 이스라엘의 연중 절기 가운데 '무교절'이란 유월절 다음날(15일)부터 시작하여 일주일간 진행되는 절기로서(출12:8,15), 이날들 가운데 첫날에는 집안에 있는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했다(출12:15,19). 그리고 일주일 동안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 곧 발효되지 못한 무교병을 먹어야 했다(출12:15,18). 이날에는 유교병이 집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고(출13:7), 만약 이 절기 동안에 유교병을 먹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했다(출12:15,19). 이것이 바로 무교절의 규정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교병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날에 급히 애굽을 탈출했어야 했기 때문에 발효되지 못한 빵을 먹게 된 것이다. 

 

4. 예수께서 무교절에 제거하는 누룩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우리는 예수께서 구약의 의식법의 실체라는 것을 바울 사도의 율법 해석을 통해 알게 된다(골2:16~17). 고로 예수께서는 유월절이자 유월절 양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무교절이 되신 것이다. 이날 무교절이 되신 예수께서는 온 인류의 누룩을 제거하는 일을 하셨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무교절에 할 일이 바로 누룩을 제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는 인류의 누룩을 제거하기 위해 유월절 양이 되셨고 무교절이 되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룩'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아주 명확하게 그 의미를 해석해 주었다. 그것은 작지만 온 덩이에 퍼지게 하는 전염성이 강한 죄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 예수께서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려고 유월절 양으로 희생되셨으며, 곧바로 누룩을 제거하신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고전5:6~8).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누룩에는 2가지가 있다고 했다(고전5:8). 첫째는 묵은(오래된) 누룩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공생애 당시에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삼가하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마16:11~12). 이것은 오래된 전통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거나 역행하는 죄악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고르반 제도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분명한 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부모를 공경할 것을 돈으로 환산하여 하나님께 드리면 살아 계신 부모님께 효도를 하지 않아도 하늘나라에서는 의인이 될 것이라고 배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는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이 있다고 했다. 이것은 악한 것들로서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탐심과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도 들어 있는데, 보통은 이것을 감추고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을 소개한다. 이러한 악한 누룩에는 겉으로는 남을 위한다고 하면서 일하지만 실제는 자신의 안일을 위한 것이요,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누룩'이란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으나 아직까지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죄된 본성을 가리킨다.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무교절 첫날에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신 것이다. 

 

5. 예수께서 음부에 들어가셔서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스스로 무교절의 규례를 성취하기 위해 음부에 내려가신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셨던 것인가? 엡4:9, 시16:10, 행21:27, 마13:40, 벧전3:18, 4:4~6에 따르면, 사실 무교절의 첫날은 절기의 안식일에 해당하는 날이다(출12:16). 그러므로 그날에는 일을 하지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일곱 가지 절기 가운데 안식일은 무교절의 첫날과 마지막날과 그리고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및 거룩한 대회의 첫날과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그의 몸은 무덤에 있으면서 그의 영은 어디로 가셨는가? 성경에 나온 기록에 의하면, 그분은 그날 음부로 가셨다. 그리고 노아 홍수 때에 홍수의 심판을 몰라 죽임당한 영혼들이 가득 들어 있는 옥에도 다녀오셨다. 아마도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위해 피 흘렸음을 그들에게도 전해 주고 그때 구원받을 자들을 구원받게 하셨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교병의 절기이신 예수께서 무덤으로 내려가셨지만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어, 영으로는 쉬지 않고 일을 하신 것이다(요5:17).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더 만들어 주시려는 것이었다. 

 

6. 왜 하나님께서는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군대라고 칭하셨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갓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군대'라고 칭하셨는가?(출12:17) 그것은 군대는 무기를 장비하고 싸움을 훈련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누룩을 제거했을 때에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누룩은 '죄'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강한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몸에서 아주 작은 죄라도 제거해야 함을 의미한다. 특히 죄를 인격화시키면 그것이 곧 귀신들이다. 그러므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군대가 되려면 자기 몸에서 작은 귀신 하나라도 있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때부터는 자기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는 상속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02월 20일(화)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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